법문http://nungin.net/Rss/rssGiGwang.aspx지광스님의 좋으신 말씀입니다.ko몸과 마음은 별개인 듯 하나다. 따라서 마음과 질병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Media/law/Read.aspx?db_cnt=81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만상은 파동이다, 파동은 반드시 반응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 말과 생각과 행동을 지시한다는 것입니다. “ 마음을 아름답게 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 또한 그러하리라. 흡사 수레를 따르는 바퀴자국과도 같이.”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지요. 마음 가운데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고 마음이 주인인데 그 마음 잘 다룰 줄 모릅니다. ‘그냥 마음은 마음이지, 뭐’이러잖아요. 오늘은 마음 다루는 법,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쓸 것인가에 대해 공부해보겠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흔히 팔만대장경은 마음 ‘심(心)’ 한 자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음 심 한 글자를 설명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마음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래서 당장‘마음을 잘 써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치유라는 말을 하는데 상처가 나서 얼마 동안 지나면 도로 낫잖아요.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해도 얼마 동안 쉬면 나아요. 처방약이란 “잘 먹고 쉬십시오.”이거예요. 특별한 약이 없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자연치유라고 하는 세계, 왜 자연히 병이 낫는가? 본래 마음의 나라는 부처님 나라거든요. 부처님은 대의왕여래십니다. 부처님은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분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처럼 마음과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을 잘못 쓰면 몸에 고장 나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주인이 돼서 모든 일을 시키거든요. 물에다 약품을 희석해보세요. 열 번 스무 번 계속 물을 갈아도 그 약 성분은 남아 있습니다. 개구리 다리를 절단해도 개구리는 다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바닷가에 서식하는 불가사리를 보세요. 다리를 잘게 잘라내도 또다시 살아납니다. 이 광활한 우주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면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에 있는 유전자의 세계도 전부 나선상으로 돕니다. 매일매일 단백질 세포가 죽어가고 또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른바 경락이나 경혈에다 빛을 쏘게 되면 몸의 어떤 부분에서 그 빛이 나오는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그 빛이 흘러나오더라는 겁니다. 몸에도 빛이 통하는 채널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 몸에는 영원, 부처님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 통로가 우리가 말하는 경락, 경혈, 차크라, 마르마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나 저나 우선 마음을 잘못 쓰면 나선형으로 흐르는 구조가 끊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독심이 유전자를 절단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절단된 유전자가 암세포로 변합니다. 내가 마음을 잘못 쓰면 병변을 일으키는 세포, 병변유전자를 만들게 되는 거예요. 마음이 몸의 건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용심을 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에서 나오는 게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면 생각은 생각 념(念) 자를 씁니다. 생각은 염파(念波), 즉 파동이에요. 파동이니까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전달 기능을 가집니다. 이 때 파동은 반송파라고 해서 목적을 달성하면 다시 되돌아옵니다. 파동은 꼭 반응이 있어요. 네, 치유의 기능도 있어서 마음을 잘 쓰면 몸과 마음 가운데 건강이 오고 마음을 잘못 쓰면 몸에 타격이 옵니다. 또 마음은 전달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텔레파시, 이심전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전달능력과 같습니다. 왜냐? 생각은 파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스님, 제가 아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간암박사였는데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실제로 그런 예들이 의료계에서 심심치 않게 돌아다닙니다. 왜 그럴 것 같습니까? 매일 간암 걸린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까 간암 걸린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고장 난 파동이 의사에게 노출됩니다. 간박사가 간으로 죽는 것입니다. 실제로 폐 박사가 폐로 죽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죠?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나란히 놓고 연구를 했는데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암이 전이된다는 말을 하잖아요. 암세포 역시 파동이기 때문에 전달의 기능, 정보의 기능을 가집니다. 여러분이 일요일에 이렇게 법당에 나오시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약 잡수시는 것과 같습니다. 법약(法藥)이라고 그러죠. 법약은 고장 난 몸의 여러 가지 파동을 정상파로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만상은 저마다의 파동을 내고 입자상태와 파동상태는 같은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심즉시불(心卽是佛)’</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기서 아주 중요한 게 마음의 저장기능입니다. 저장기능이란 제가 여러분에게“어제 이맘 때 뭐 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어제 뭐 했는지 기억이 나는 걸 말합니다. 어제 것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어제 것뿐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탁 깨닫자마자 팔천 생이 한 눈에 보이더래요. 이 우주가 상전벽해 되는 걸 여러 번 목격했노라,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모든 건 사라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엄마 아버지 뱃속의 원생동물로부터 시작해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서 영장류까지 진화해온 모든 과정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서운 저장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따라서 그릇된 걸 저장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마음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당연히 몸과 마음에 치명적인 장애를 입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금강경에도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이라, ‘마음의 자세를 어떻게 갖출 것이며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을 것입니까?’를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묻잖아요. 마음은 원자의 장, 전자의 장, 분자의 장, 세포의 장 등 몸의 여러 장르에 걸쳐 투영되기 때문에 그만큼 잘 써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세포는 우주와 같다.”고 얘기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세포는 전부 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에모토 마사루가 쓴 책에 나온 것처럼 ‘물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이건 기정사실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 물의 구조는 H2O입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서 물이 되는 건데 물이 모든 걸 알고 있으면 허공은 뭘 모르고 있겠냐는 말이에요. 허공이 부처님입니다. 허공이 마음이잖아요. ‘심즉시불’이니까 다 기록에 남습니다. 저장됩니다. 어떤 분이 제게 물어요. “스님, 사람들이 모두 과거의 부처님이고 지금도 부처님이라면 왜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를까요? 또 어떻게 하다가 우린 중생으로 떨어졌을까요?” 그와 같은 진실은 우리가 깨닫는 순간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확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주파수가 던져집니다. 한 사람도 얼굴이 같지 않습니다. 만상은 식물이니 동물이니 고유의, 특유의 주파수가 있습니다. 주파수, 파동은 전달기능을 가지고 있고 또 모든 걸 저장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벨루조프-자보틴스키 반응(Belousov-Zabotinsky reaction)’이 있습니다. 학자들이 원소들을 모아서 물속에 집어넣고 반응을 지켜봤습니다. 처음엔 파란색이었는데 잠시 후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다시 자주색으로 자기들 멋대로 색깔을 바꾸더라는 거예요. 그들은 자기 조직화 실험(self-organized experiment)을 통해서 만상은 파동을 일으키거나 저장작용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끼리끼리 모여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니까 ‘일체유심조’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잖아요. 아름다운 꽃밭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과 나비가 날아와 씨를 맺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고. 또한 더러운 시궁창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파리모기가 날아와 해충을 만듭니다. 여러분의 마음 또한 어떤 시스템을 창안합니다. 마음은 위대한 창조의 능력을 가집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물질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물질이 만들어지고 급기야 유전자가 깨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때 모든 유전자들은 나선상의 스타일로 전개됩니다. 나선형(screw)으로 돌아가니까, 그만큼 힘이 있다는 거지요. 은하계 우주도 이와 같은 나선 모양으로 도는데 그 이유가 우주 공간을 질주하기 때문입니다. 팔랑개비처럼 돌아요. 우리 몸의 시스템 역시 이와 같은 모양새로 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머리 한가운데 있는 가마입니다. 가마는 은하계 우주의 회전 방향과 백퍼센트 일치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주의 모양대로 돌고 있는 거예요. 얼렁얼렁 살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작은 우주입니다. 그런 우주를 잘못 다스리면 고장이 나는 건 불을 보듯 정확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기(氣)의 흐름</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학자들이 38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암세포를 연구했습니다. 다른 정상세포는 빛을 쏘면 흡수를 하는데 이 작은 암세포는 빛을 흡수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 암세포에다 빛을 쏘아 넣었습니다. 그러자 암세포가 정상화되더래요. 만약 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옆에 있는 세포의 빛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암이 전이 된다고 합니다. 더욱이 암세포는 공기로도 전염 됩니다. 암세포에서 나온 파동이 정상세포로 떨어졌다는 판명이 났어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과 자주 만나야 하는 겁니다. 진리는 지식이 아니에요. 진리는 실천입니다. 제가 왜‘이뭣고’라는 화두를 들고 번뇌 망상을 척결하라고 하는 고 하니 잡념 자체가 물질을 위주로 한 마음이기 때문이에요. 망상은 독심이거든요. 그 번뇌망상을 척결해내야 내 마음이 맑아집니다. 염불도 화두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염불을 하면 잡념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지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참으로 안타까운 게 우리가 누구한테 악한 감정 생기면 “그 집구석 잘되나 봐라!”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주의 파동이 날아옵니다. 하지만 염피관음력, 관세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지장보살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하는 마음 가운데 부처님 파동이 나오게 되어 날아오던 독의 파동을 중화시켜줍니다. 연꽃이 되어서 떨어진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전부 마음의 과학에서 시작된 결과입니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얘기하지만 마음의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영역으로 놓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우리의 모든 걸 좌우합니다. 문제는 마음을 잘 써야 하는 데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러한 마음 수행은 중이나 특수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가 해야 합니다. 누구나가 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야 해요. 파동은 곧 정보거든요. 파동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담깁니다. 생각 가운데 마음이 담겨요. 생각 가운데 독심이 담기고요. 만약 독심이 담긴다면 병변이 생길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한다고 쳐보세요. 몸에서 긍정적인 파동이 나옵니다. 이를 어찌 공덕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 공덕을 짓는 분들은 부처님이 다 아십니다. 염피관음력, 이른바 명훈가피력, 영험이란 것이 특수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잖아요. 왜냐? 부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도저히 손을 못 쓰는 분들조차 죽자 사자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방법으로 병이 치유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 허공 자체가 무한이고 불가사의고 부처님의 위신력 그 자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로다. 마음은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 가운데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흡사 수레를 따르는 바퀴자국과도 같이.’ 마음이 모든 일의 주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육신에는 끊임없이 흘러드는 영원의 통로가 있습니다. 만약 통로가 막혔다, 그러면 문제 있는 겁니다. 기가 막히면 죽는다고 얘기하잖아요. 기가 원활히 흘러야 합니다. 그 중에 절이 있습니다. 절하는 것만큼 내 마음이 숭고해질 때가 또 어디 있어요? 절을 하면 내 몸에 있는 모든 통로가 열리고 부처님의 거룩한 기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기능과 마음의 작용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몸은 점점 나쁜 쪽으로 이환됩니다. 물은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허공은 모든 걸 알고 있어요. 세포는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포라는 이름의 대우주’란 책도 나와 있잖아요. 우리의 마음은 부처님 마음과 하나입니다. 항상 부처님을 호흡해야 합니다. 그런 걸 기도라고 하고 조상님 역시 우리와 연결돼 있으니까 천도라고 합니다. 종교의식이 아니라 과학의 기본입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고 아이들과도 마찬가지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은 항상 통하게 돼 있습니다. 마음은 본래 하나잖아요. 하나인데 딱 막아놓으면 질식(choking)하는 겁니다. 정보교환장애로 인해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단체도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부처님을 흡수하고 부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은 과거현재미래가 한통속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에 있는 세포들과 파동이 같은 게 원적외선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소화가 되고 양분을 흡수해 상처를 아물게 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 때 빠른 방법으로 원적외선을 직접 상처에 쏴주면 회복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타박상이건 뭐건 간에 그렇습니다. 원적외선은 과학적인 기자재, 의학자재, 의료기자재입니다. 2~3주 정도 갈만한 상처가 2주, 열흘 만에 아문다고 나와 있어요. 부처님은 대의왕여래이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부처님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공덕이고, 영험입니다. 심지어 골치 아픈 병도 낫는다고 합니다. 자연치유기능을 강화시키려면 부처님을 만나야 해요. 내 안에 계신 부처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Garbage in, Garbage out’이라는 컴퓨터 용어가 있습니다. 가비지(garbage), 쓰레기예요.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인 고 하니 마음은 저장기능이 있다고 그랬죠? 쓰레기 같은 거 보지 마세요, 듣지도 말고요. 열반경에 나옵니다. 몸과 마음을 음란하게 하지 말라, 듣지 말라. 지저분한 걸 집어넣으면 지저분한 물질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보저장기능이 있고 기억기능이 있거든요. 우리는 엄마 아버지 뱃속에서부터 인류가 수십억 년 진화해온 과정이 다 재현됩니다. 다 기억돼 있습니다. ‘내가 우주다’라는 자세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이런 마음 자세가 안 되면 몸에 고장이 납니다. 삶이 어려워져요. 고통스러워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본질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 마음 가운데 있다’는 것이니 부처님을 등지지마세요. 우린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위대한 선지식들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부처님을 백안시하지 마세요.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입니다. 참회하면서 가야 합니다. 참회는 광명입니다. 마음은 모든 걸 다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게 지은 죄, 모르게 지은 죄조차 모두 기억합니다. 만약 전생에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면 간이 약하게 태어납니다. 알라야식에 심어져 그대로 내생으로 가니 다시 태어날 때는 간이 나쁠 수밖에요. ‘넌 술을 좀 덜 먹어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과거현재미래는 따로 없습니다. 영원입니다. 나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 역시 돌아가셨다고 끝이 아닙니다. 내가 지운 아기가 있다면 응당히 내가 참회해야 합니다. 전생, 현생, 내생 따로 없습니다.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입니다. 지금 받고 있는 걸 보면 전생을 알 수 있다고 그러잖아요. 지금 짓고 있는 걸 보면 내생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금생을 살다가 이 땅을 등지게 되면 얼마나 한이 많을까요? 아니면 애착이 얼마나 많을까요? 한이 많거나 애착이 많으면 그게 누구한테 작용할까요? 자손들에게 그대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긍정적인 영향력이냐, 부정적인 영향력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각자 지은 공덕과 지혜에 따른 급수라고 보면 됩니다. 마음은 과거현재미래 상관없이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함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 융이 말한 대로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한국과 다른 나라가 축구를 하면 응당 우리나라를 응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것 역시 집단무의식에 기여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것은 과거현재미래가 관통하는 것입니다. 영원을 가는 무량한 영혼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것이 커다란 공덕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은 부처님이기 때문에 독심을 쓰면 내 몸의 세포들에 병변이 오는 건 당연합니다. 필라멘트가 끊어지듯 유전자가 끊어진 경우입니다. 고장 날 것이고 자연치유기능을 훼손당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서는 끊임없는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파동을 만들어내세요. 마음은 저장의 기능이 있고 저장된 식들을 영원히 기억됩니다. 영원을 관통하는 마음은 과거현재미래가 따로 없습니다. 여러 가지 차원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 마음을 잘 갈고닦아 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9-02-19 오후 2:33:10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먼저 타인을 배려하라 2018.12.30/Media/law/Read.aspx?db_cnt=81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나를 내려놓으면 고통도 녹는다 여러 가지로 힘겨운 가운데 무술년 한 해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고통을, 아픔을, 쓰라림을 본질로 합니다. 누구나 울면서 나왔다가 울면서 떠납니다. 물론 잠깐잠깐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밑바탕에 고통을 깔고 산다,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도 비교적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요? 돈 많이 번 사람들은 삶은 힘들지 않을까요?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또 어떻고요? 그들도 다 힘듭니다. 문제는 우리가 고통 가운데 살면서도 고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 이거예요. 고통을 당할 때마다 원망하고,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고통은 내가 과거에 지은 바 그 업의 현실화일 뿐입니다. 누가 나에게 고통을 가해와도 내가 과거 생에 어떻게 살았던가를 참회하면 됩니다. 또 장구하고 지속적인 행복이라는 건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해서 영원히 즐겁고 행복한가요? 아니에요. 그다음엔 또 다른 어려운 날들이 밀려옵니다. 우리 법당에 나오시는 보살님 아들이 힘들게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를 개업했습니다. 여럿이 모여 운영하다 보니까 잘 안 되더래요. 다시 직장엘 다녀야겠다 싶어 은행에 들어갔대요. 월급이 얼마 안 되더라는 거죠.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생의 본질을 어떤 기준을 갖고 대하느냐입니다. 모든 게 다 마찬가지예요. 춘하추동도 그렇습니다. 봄에 새로움으로 시작해 여름, 가을, 겨울, 끊임없이 순환하는 게 삶의 근본이치거든요. 부처님은 “이 땅에 극락이 있다.” 그리고 “너희 마음 가운데 극락이 있다.” 이러셨어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네, 고통스럽게 살지만 고통도 나누면 작아지고 즐거움은 나누면 커진다는 의미겠지요.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들어 보셨을 거예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을 때 그 어린아이가 체험한 걸 쭉 기록한 겁니다. 거기에 보면 매일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나가는데도 항상 웃으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고통스러워하지 마십시오.’ 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으면 고통은 덜합니다. 저도 예전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고문을 한 사람이 밉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친구를 미워해봤자 무슨 소용인가.’생각하고 그 미움을 내려놨어요. 상대방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내 미움만 커집니다. 미움을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통이 덜하더라고요. 나를 내려놓으면 고통이 녹아요. 고통을 느낄 나가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계속 윤회하는 이유도 잘못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연발하기 때문이에요. 2.친절과 배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땐 엄마와 호흡을 같이 합니다. 산소도 영양분도 엄마를 통해 공급 받습니다. 280일 동안을 그렇게 지내다 ‘응애’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가 호흡이 시작되는 거죠.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건 호흡입니다. 그래서 수행방법 가운데도 호흡에 관계된 것이 많습니다. 호흡은 연속성을 갖거든요. 생명이 존재하는 한 생명이 멈출 때까지 계속성을 갖습니다. 호흡을 주시한다는 것은 내 몸의 영원성, 계속성, 지속성을 향상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탁월한 성현들은 이 땅에 와서 어떻게 하면 중생이 영원성을 깨달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부처님도 “너희는 죽어도 죽은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은 영원과 현실의 교량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에 초점을 두고 염불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이란 몸과 마음의 영원성, 지속성, 계속성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염불한다든지, 끊임없이 이뭣고 한다든지, 계속 일념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결국 죽음도 한 생각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한 생각으로 그 죽음조차 이겨내야 합니다. 생사 일여, 그렇잖아요. 생각이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거니까, 화두를 챙기는 것처럼,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 하면서 살면 됩니다.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안타까운 게 “그저 한 세상 살면 그만이지 하는 겁니다. 돈이나 많이 벌고, 권력이나 쌓고 그러면 되는 거 아냐?” 이거 아니에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건강을 해치는 사람 많습니다. 왜냐? 몸과 마음의 영원성이 깨지면 몸이 쉽게 상처받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해야 합니다. 체온이 항상 36도 5부로 일정하게 가야 하듯이 수행 역시 영원성의 증장, 영원성의 향상에 뜻을 둔 지속성과 연결돼 일정하게 가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을 뜨고 사는 동안에는 대부분 영원성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해도 때가 되면 반드시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모두 순환의 주기에 따라 이 땅의 삶을 끝낸 다음에는 다시 허공, 영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원은 우리의 본바탕이니까요. 주변을 가만히 보세요.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저 사람 참 똑똑하다.’ 그래요. 근데 똑똑한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재주만 믿고 살아서입니다. 항상 남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같이 울어주고 같이 웃어줘야 해요. 그래서 불교에선 자비란 말을 대신해서 발고여락(拔苦與樂)을 말합니다. 주위와 조화롭게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공감할 테지만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은 별로 갖지 않아요.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면 먼저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게 정석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관심, 사랑, 친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정과 배려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불성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의견만을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나도 있다, 이거죠. 하지만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을 내 가슴으로 안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면 아내를 의견을 잘 들어주고 인정해주세요.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면 남편을 배려하고 친절을 다해야 합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고 상대방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거지요. 누가 그런 사람과 일하고 싶겠어요. 말 한 마디에도 친절과 배려, 사랑과 관심을 담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게 삶의 만족한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할 때, 그럴 때는 따로 없습니다. 모자라지만 노력으로 채워가고, 협조 받아가면서 사는 게 인생입니다. 상대방의 도움을 받으려면 평상시 어떤 마음자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통스럽습니다.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들어요. 또 인생은 언제나 오르내립니다. 경제도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는 것처럼 삶은 항상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시소와 같습니다. 서로 두 손을 맞잡고 가 보세요. 힘듦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등산을 해보면 압니다. 가파른 능선을 올라갈 때는 자신의 힘에 맞는 보폭을 유지해야 하고 보폭에 맞게 호흡도 조절해야 합니다. 누가 힘들어하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크고 작은 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삶의 본바탕은 고통입니다. 3.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마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할 게 괴로움은 어디서 오느냐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괴로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합니다. 시간 낭비에서 와요. 무지가 대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을 살라고 합니다. 우리가 화두일념, 이뭣고, 혹은 무(無), 염불하는 자세가 중요한 이유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항상’ 하는 마음이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다음에 천당, 극락? 소용없습니다. 불교는 ‘죽은 다음에 극락 가자.’ 이거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하면 극락이고 천당이고 소용없습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제대로 엮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극락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변해간다는 건 새로움입니다. 새로움이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에 내 몸과 마음을 던지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가불해 괴로워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새로움 속에 사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실험한 내용입니다. 세포를 추출해 좋은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해줬더니 세포가 죽질 않더랍니다. 우리 몸에도 뭔가 부정적인 환경을 만드니까 세포가 죽어가는 거예요. 항상 마음과 몸을 꾸준히, 견실하게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변화에 잘 대응해나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에 너무 고집을 세우지 마세요. 고집을 세우는 것만큼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이 우주에 고정된 건 없습니다. 영원의 강물에 흘러 변해갑니다. 다만 세상은 계속 변해가도 변해가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영원을 가는 법칙입니다. 제행무상이지만 제법이 무아인 것입니다. 미국의 갤럽에서 백만 명을 상대로 심리검사를 했습니다. 대단히 큰 규모의 조사였죠. 인간이 그리고 이 사회가 혼돈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조사결과에 나왔습니다. 제가 그대로 베껴왔는데요, 70프로 이상의 사람이 “나는 평균 이상이다. 나는 점수가 잘 나올 것이다.” 이렇게 대답한 거예요. 그다음 85프로 이상이 “나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다.” 라고 대답했어요. 그럼 이 사회가 아주 잘 돌아가야지 않겠어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는 대인관계도 훌륭하고, 리더십도 훌륭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잖아요. “나 같은 남편 없을 거야. 나는 잘하는데 아내는 왜 저렇게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선생님들도 그래요. “나처럼 훌륭한 선생이 어디 있느냐? 또 나처럼 잘해주는 사장님이 어디 있지?” 헌데 학생들한테, 직원들한테 물어봐요. 그런 것 같지만 아니에요. 전부가 자기중심적이니까, 모두 자기가 잘났다, 자기가 잘해줬다, 자기가 잘했다 합니다. 아집에 가득 차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입니다. 그 아집을 내려놓으세요. 고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업도 그르칠 가능성이 커집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항상 공부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연마하는 것, 그것이 이른바 고통을 감소시키는 비결입니다. 엊그제 제가 아는 할아버님이 암으로 임종을 앞두고 계셔서 문병을 다녀왔습니다. 할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후회되는 게 하나 있대요. “뭐가 그렇게 후회스러우신데요?” 물었더니 “아내를 좀 더 사랑했었어야 했는데, 가족을 좀 더 사랑했어야 했는데 사랑을 많이 못해줘서 후회스럽다.”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우리도 언제 떠날진 모르지만 아직은 사랑할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사랑 가운데 좀 더 가정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습니다. 그날 할아버지 말씀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습니다. 4.서로에게 필요한 존재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지? 하늘은 왜 나를 도와주지 않지? 하늘도 무심하다.” 하는데 민심이 곧 천심입니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하늘이 나를 사랑할 이유가 있겠어요? 하늘의 복을 받으려면 주변사람부터 사랑하세요. 사람의 마음은 하늘과, 영원과 통해 있습니다. ‘나는 복이 참 짧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내가 주변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너무 무관심했다고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그건 상식이지요.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 건 마음에 가시가 있어서 그렇다, 이겁니다. 가시 돋친 말, 가시 돋친 행동, 가시 돋친 시선. 네, 그런 거 하지 마세요.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단 하나라도 지키려고 애를 써야 삶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집니다. 천국도, 극락도 여러분의 말 한 마디 속에 있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직원들에게,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말 한 마디를 던질 때 그 자리가 천국입니다. 그 자리가 극락입니다. 행복은 신기루처럼 슬쩍 지나갑니다. 순간 왔다가 순간 가는 거예요. 두고두고 고통스럽다가 반짝 즐거웠다 또 계속 고통스럽고, 또 반짝 즐거웠다, 그런 순간이 행복입니다. 그런 마음이 하나로 모여야 하늘의 때가 열립니다. 때인가, 아닌가? 천시(天時), 그것은 민심과 하나일 때 가능합니다. 민심을 모은 자가 하늘의 때를 압니다. 아무리 괴롭고 아프고 쓰라린 순간에도 제행이 무상이라는 사실만 명심하세요. 이제 또 한 해 살아가다 보면 고통스러운 날이 얼마든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후회 가운데서 인생을 마감 짓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그런 와중에도 삼라만상이 언제나 변함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느낄 때 그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직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고맙다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요즘 상사가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권위로 사람들을 묶으려고 하는데 그럼 그들이 반발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모자라니까, 누구나 부족하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누구나가 다 칭찬받길 원합니다.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우선 남들이 인정해 줘야 합니다. 내가 남편이라면 내가 아내라면 서로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사장이라면 직원들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중요한 존재가 돼요? 남들을 인정하지 않고, 관심 갖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부처님 말씀대로 변함없이 ‘고맙다’ 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시길 당부 드립니다. 2019-02-13 오후 2:44:08행복과 행운은 고행 속에서 탄생한다/Media/law/Read.aspx?db_cnt=81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욕망을 떠나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오늘은 불가(佛家)에서 중요시 여기는 명절, 음력 12월 8일 성도재일입니다. 또 약사재일이기도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경전에 보면“부처님은 6년 고행 끝에 새벽별을 보고 깨치셨다.”라고 나옵니다. 깨친 내용이 무엇인지 직접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부처님 경계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새벽별을 보고 깨치셨다’는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새벽별은 저 높은 하늘에 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지상에 살고 있지요. 새벽별과 나, 부처님, 그러면 양자가 새벽별을 보면서 깨달음이 왔다는 거 아녜요. 깨달음은 광명이라고 했습니다. 전기불도 플러스마이너스 통하면 번쩍 하고 들어옵니다. 상대성의 극복이라고 할까요?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가 하나가 돼서 빛이 되는 것, 그와 같은 경계가 6년 고행의 결과 아닐까 생각합니다. 깨달음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고행 끝에, 자기 몸과 마음을 던지는 수행 끝에 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이나 저나 ‘이 몸이 나의 모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신은 당장 감각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인연해서 살아가는 게 육체잖아요. 그런데 감각의 세계 너머에 정적인 또 하나의 나가 있습니다. 좋다 싫다든지, 예쁘다 밉다든지 하는 감정의 나입니다. 눈으로 보는 세계를 한 단계 넘어섭니다. 그것뿐 아니라 감정의 나 너머에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모든 감각과 감정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이른바 의식의 나라고 할까요? 영혼의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영체입니다. 그 영을 식(識),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합니다. 그 식이 타파되면 이제 법신(法身)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문제는 감각의 나, 감정의 나, 영적인 나, 법신의 나, 이 네 가지가 한 데 어울려 있으며 각각 추구하는 행복의 급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줘보세요. “엄마, 행복해!”합니다. 아이스크림이 달콤하잖아요. 네, 감각의 나가 행복해지는 순간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러한 감각은 항상 욕망을 동반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물어요. “스님, 감각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데 주고서 그것을 배격하라고 하는 건 무슨 의도입니까?”네, 감각의 즐거움은 당연히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근데 또 중요한 것이 부처님 말씀처럼 ‘욕망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감각을 위해, 쾌락을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육신은 더 크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음을 항복받고 쾌락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표면적인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마음 가운데 더 깊고 오묘한 나가 있습니다. 성불(成佛)이라는 태제, 우리의 본질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남에게 뭘 베풀어보세요. 우선 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한데 그 베푸는 게 어렵습니다. 내 호주머니에 있던 거 남에게 주는 거 좋아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주고 나면 마음은 시원합니다. 삶이 이와 같아서 고통을 겪으면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한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변에 행복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게 행복인 줄 잘 모르고 사는 거지요.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은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좀 더 나으면 좋겠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바람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항상‘비교를 떠나라’하셨고 또 소욕지족을 말씀하셨습니다. 욕망을 좀 작게 하라, 이거죠. 우리는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모두 놔두고 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벤젠고리</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여러분에게 ‘성불합시다’라고 하는데 성불은 상대성의 세계를 떠나 허공과 하나가 되는 걸 말합니다. 무한과 하나가 되니까 우리의 에너지를 영원과 무한에 보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성불하신 부처님의 그 위신력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무량공덕을 닦고 무량 지혜를 닦아서 중생에게 회향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부처님의 회향공덕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많이 갖고 더 적게 갖고 하며 싸워 무엇 하겠습니까? 삶의 의미가 없으면 행복의 길로 다가서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오늘 깨달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라면 여러분은 삶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상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입니다. 양면성을 가집니다. 물질의 궁극 가운데 하나가 전자인데, 그 전자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거예요. 간단한 예로 동물이나 식물에서 나오는 파동을 채취해서 특수 처리합니다. 그랬더니 아주 무서운 결과가 나왔어요. 라벤다 향 하나하나가 전부 라벤다 그 자체를 담고 있더라는 겁니다. 뱀에서 나온 파동 하나가 뱀 그 자체의 성품을 담고 있다니까요. 화엄경에 보면 일미진중함시방, 작은 티끌하나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과 여지없이 똑같습니다. 범인이 떨어뜨리고 간 손수건의 냄새를 맡은 개가 범인을 찾아내잖아요. 여러분도 지금 몸과 마음에서 어떤 향기든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유의 향기예요. 우리에게는 누구나 그러한 고유의 주파수가 있습니다. 무량겁을 통해 쌓아온 여러분의 분신을 허공에 방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를 잘 지키면 계를 머금은 분신이 방사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지금 법당에 나와 앉아계시는 것도 시방세계에 계신 무량한 불법승 삼보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 보세요.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만나 스파크가 일어나는 게 쉬운가요? 전기는 스위치를 누르면 금방 불이 들어오지만 별을 보고 깨우치기엔 무량한 고행을 필요로 합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99퍼센트의 노력하는 자만이 1퍼센트의 영감에 의해 반짝이는 거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깨달음입니다. 위대한 발견은 전부 스파크가 일어나듯 옵니다. 유기화학의 비조라고 그러죠? 벤젠고리를 발견한 프리드리히 케쿨레,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탄화수소 계열의 정형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잠깐 졸았는데 꿈에서 알록달록한 뱀이 춤을 추다가 딸까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걸 봤습니다. 그게 육각형으로 딱 멈추더라는 거 아녜요. 퍼떡 깨서 그 모습 그대로 그려 벤젠고리를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과학사에 나오는 숨겨진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백날을 봐봤자 모르잖아요. 우연의 산물인 것 같지만 고행한 덕분에 얻어진 결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몸은 불태우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쾌락만 추구해 먹고 마시는 일에 치우쳐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몸이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가야할 또 다른 행로가 있습니다. 고통을 감수하며 감각적인 나, 감정적인 나, 영적인 나, 법신의, 나로 점점 고차원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저차원에서 머물러버린 예가 대부분입니다. ‘죽으면 그만이지.’이래요. 그러면 내 마음 가운데 계신 부처님이‘너 왜 그러니?’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도 여러 개의 나가 갈등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법당에 나오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건 그래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초전법문에서 부처님은 ‘사성제 팔정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누구나 다 고통스럽지 않냐? 그런데 그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네가 뿌린 대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누구나 깨달아야 한다. 성불해야 한다.”라고 깨달음을 위해서 도를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나온 도가‘팔정도’입니다. 성도(成道)는 정도(正道)거든요. 제일 첫머리에 오는 정견(正見),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자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의미 있는 삶</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감각의 포로가 되면 항균능력이 떨어져 몸이 빨리 망가집니다.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때 삶이 행복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해서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군상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다짐하고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하고 연구실에 앉아 골몰합니다. 대뇌생리학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두뇌는 미묘해서 어떤 목표를 주입시킬 때 그 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무의미한 일에서는 뇌가 빨리 썩는다고 하지요.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건 당연한 논리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법당에 나오신 것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 계신 부처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큰마음 내서 법당에 오셨잖아요. 이런 자율적 습관이 중요합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 술 마시는 습관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습관도 있거든요. 우리가 마음을 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습(習)이랑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습(習), 깃털 두 개 밑에 백 백(百) 자가 달려 있습니다. 적어도 날개를 백 번을 퍼덕여야 날갯짓이 되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마음을 먹으면 최소한 20일 정도는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뇌에 길이 나는 거예요. 그 후 길이 점점 넓어져 소로가 대로 되고 마침내 대도(大道)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좋은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세요. 다이어트도 그렇고 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반복해서 몸에 익을 수 있을 만한 노력의 화신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이 쌓여 습이 되고 업이 된다고 그러잖아요.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마음을 냈으면 무턱대고 한 달은 해보세요. 한 달 정도 하면 좀 더 익숙해지고 점점 더 그 뜻이 강화됩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데 이런 말을 합니다. “등산을 매일 하다 안 가면 찌뿌둥한 것처럼 교회를 안 가면서 어떻게 살 수 있냐?” 그에겐 교회 가는 일이 생활화된 거죠. 여러분도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하면 거기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니까요. 법(法)이 불(佛)이요, 불이 법이라고 그랬습니다. 부처님 법문을 자꾸만 연마하세요. 깨달음의 빛이 마음 가운데 드리우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을 보면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던지기도, 박애정신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당장은 고통스러울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해서 장기적인 의미를 잉태한 경우입니다.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인물이잖습니까? 만약 그들의 영혼이 지금 나타난다면 “나의 희생이 오늘의 영광을 가져왔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대뇌생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어떤 의미 없는 삶, 목적이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어 한답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영원에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두뇌는 목적이 없거나 의미 없는 생활을 배격합니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라거나 심장마비에 취약하다는 게 논문에 나와 있어요. 치매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나의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에릭 클링거란 유명한 심리학자는‘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어 한다(The human brain cannot sustain purposeless living)고 말했습니다. 유의미의 원천은 부처님 마음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미의 실현, 자기실현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이란 존재는 네 개의 몸, 감각적인 몸, 감정적인 몸, 영적인 몸, 법신의 몸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본래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가 충만한 존재라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입니다. 삶의 의미가 충만할 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배양됩니다. 말 한 마디에도 의미를 담아하세요.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립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아내를 배려하고 남편을 배려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는 삶이 무기력한 삶에서의 탈출방법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행복을 고통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쾌락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바이러스 유전자가 면역억제,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염증유전자가 늘어나는 겁니다. 의미 있는 말과 생각 과 행동가운데 기도하며 살아야 해요. 그런 사람들은 면역력이 강해 염증유전자가 죽습니다. 요즘 욜로(YOLO)란 말이 유행이죠. ‘You Only Live Once’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은 의미 있는 삶이고 목표가 있는 삶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이 하늘의 별을 보고 깨치신 건 우연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밑바닥엔 6년 고행이 깔려 있습니다. 무량겁이 깔려 있어요. 행복은 고행 속에 탄생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비움으로서 행복을 채웁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기부를 많이 하고 공동체 가운데서 행복을 찾는다고 하니 보다 의미 있는, 보다 목표의식 충만한 삶 살아가시길 당부 드립니다.</SPAN></P>2019-02-13 오후 1:57:34상대방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변한다/Media/law/Read.aspx?db_cnt=81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는 존재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진지한 마음 자세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저히 함부로 살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삶속의 마음 자세가 깊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매양 대해야 하는 것을 바탕으로 살기 때문에 길지 못하고, 표면세계에 집착을 해서 무리를 저지릅니다. 여러분들이 법당에 앉아 계시면서도 무한대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몇 가지만 생각해봐도 금방 알 수가 있어요. 해운대 앞바다 장렬한 태양아래 헤엄치는 거 상상 해보세요, 수영하는 내가 신이 나죠. 나의 마음이 나를 해운대 앞바다로 데려가죠. 또 백운대 꼭대기에 올라가면 서울 시내가 잘 보이죠. ‘야호‘하는 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럼 내가 백운대 꼭대기에 가 있단 말이죠. 이번에는 제주도 백록담에 올라가 보죠. 시원하게 트인 제주도 앞바다가 보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순간순간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분이 그 자리에 가 있어요. 생각 따라서 얼마든지 어디라도 갈 수 있죠. 낮이고 밤이고, 자나 깨나, 꿈꾸고 있을 때도 똑 같아요. 잠을 자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신 세상으로 가기도 하고, 과거 생애 그리워하던 애인이 문득 떠오르면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버립니다. 마음의 세계, 생각의 세계는 눈을 뜨건 감건 시간과 공간의 아무런 차별이 없어요. 제가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귀결이 어떻게 될까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어떤 미래 시점에 와 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영락없이 그와 같은 상황이 현실 가운데 재현됨을 확인했어요. 상황의 이동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진리의 세계, 궁극의 진리는 무엇일까 생각하면 낮에 열심히 연구를 하다가 밤에 잠을 자면 비몽사몽간에 궁극을 보게 됩니다. 각양각색의 발견, 발명들이 그렇게 이루어졌어요. 유명한 소설가 스티브 워킹은 내가 멋진 소설을 하나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장면이 쓱 지나가더래요, 어떤 여기자가 폭력배에게 칼을 맞고 흉측한 장면 같은 걸 보고 잠에서 깨어나 아 이거 소설 감이구나 하고 미저리란 소설을 쓰고 빅히트를 쳤죠.꿈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추 할 수도 있어요. 현실 속에서도 백운대도 한라산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잠을 자면서도 깨어 있으면서도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과거와 현재 미래, 물질, 진리, 궁극의 세계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나 반응하는 이런 세계만이 다 인 줄 알고 밀도 짙게 살다 보니 그게 다인 줄 알아요. 이순신 장군, 가수 넷킹콜 다 돌아가셨지만 세상을 등지고 또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고 계세요. 여러분 자신도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마음의 눈은 시공간을 떠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봅니다. 법당에 나오셔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도 무한을 만나 무엇을 선택하고 사시는지요? 이 광활한 우주는 여러분들의 생각 따라서 원하는 바 따라서, 바라보는 대로 이 우주가 그려지고 있어요. 연관된 양자 역학을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데요, 물에다 대고 사랑해 하니 물의 결정 구조 자체가 변하는 거예요. 또 난 널 미워해 라는 글만 붙였는데도 물 결정 분자 구조가 이지러지고 깨지고 못생겨져 버린대요. 또 학자들이 암세포에도 실험해 봤어요.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몸 속 암세포에게 자연 질서를 회복 하는 게, 다시 정상적으로 자라는 게 어떻겠어 하니 그렇게 이야기한 그룹의 40%정도가 암세포가 원래대로 돌아갔대요. 그리고 암세포 다 죽게 해주시고, 몇 개만 남게 해 주세요 한 그룹은 암세포가 20%정도 감소했고,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 부처님의 사랑과 연민이 암세포에 미치도록 해 주세요 한 그룹은 암세포의 20%감소, 암세포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과 연민을 보내주세요 했더니 별로 변화가 없고, 암세포를 파괴시켜 주세요 했더니 별로 변화가 없었대요. 암세포에게 올바른 길로 가라, 자연의 질서대로 정상적으로 가봐 했더니 알아먹더라는 거죠, 정상의 길로 가더래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때문에 걱정하고, 야단치고 할 것이 아니라,미국의 로버트 솔버 박사가 연구한 결과처럼,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숙제를 내주세요. 너 논문 며칠까지 써 올 거야?한 그룹과 그냥 시간되는 대로 언제까지 써와 라고 한 그룹으로 나누어 물어 본겁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하루에 몇 장씩 어디서 쓸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봅니다. 그런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여주면 그 맵을 따라 가더라는 거죠. 또 다른 예로 법당에 나오는 보살님 중 법문을 듣고 걸으면 지방질이 몇 방울 떨어질까, 여러 방울 떨어 졌겠는 걸 하고 생각하고 법당까지 걸어 나오시니 실제로 살이 빠졌답니다. 생각만으로도 지방질이 떨어져 나갑니다. 금연, 금주도 이와 마찬가지이로 꾸준히 하시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상대방도 세상도 우리가 바라보는 대로 변해 간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이렇게 법당에서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은 녹화 찍으면서 레코딩하고 계세요. 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미촉법을 가동하면서 허공 가운데 알 수 없는 무언가 계속 뭉쳐서 영상화 시키고, 정보화 시키고 있거든요. 기억이라해도 좋고, 불교에서는 식이라고 하죠. 반응을 통해서 형성되는 식을 통해 정보가 물질이 된다는 말입니다. 식은 어떤 식이든지 행동, 반응을 한다는 말이죠. 그럼 생각이 물질이고, 물질이 생각인 것입니다. 제가 해운대, 지리산 이야기 했죠. 그 말씀을 던지는 순간 순식간에 해운대로 움직였어요. 반응을 했다고요. 지각 운동은 반응하면 물질이 만들어지죠. 물질이라고 말하지만 정보입니다. 모든 물질은 정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정보의 덩어리들 이예요. 내 아들, 딸, 남편 주변에 있는 모든 만상들이 다 정보의 덩어리예요.나도 그렇고 우리도 그래요. 내가 상대방을 바라보면 동일한 정보의 사람이니까 개별적으로 다른 측면도 있지만 공통된 것이 너무나 많고 하나인 것이 너무 많아요. 생각이 물질이니 나의 생각이 상대방에게 투영되어 상대방이 정보를 알고 변해가는 겁니다. 우주가 나의 생각 따라서 춤을 추는 마하무드라이며 실제로도 그렇죠. 생각따라 바다, 백운산, 지리산 현재 과거 미래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가족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이 되기를 생각하고 기도해 보세요. 어느 보살님은 시험 합격한 아들 모습 떠올리면서 노력해도 안 되던데요 하세요. 한 삽, 두 삽 퍼내서 물이 콸콸 나옵니까, 많은 흙을 퍼내고 오래 공을 들이다 보면 물이 콸콸 터지는 거죠. 상대방도, 세상도 우리가 바라보는 이미지로 변해갑니다. 왜냐하면 모든 만상의 근본은 하나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원리 따라서 나온거죠, 그래서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어요. 내가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마음이 곧 물질입니다. 마음이 곧 물질이죠. 내가 남편의 건강한 모습을 영상으로 자꾸 떠올리는 거예요. 건강한 영상과 정보를 기도라고 해도 무관해요. 건강한 영상, 합격한 영상, 오랜 세월 그런 의지를 가지고 가다보면 그 영상이 대상에 씌워진다니까요. 그게 변해가는 모습이죠. 상대방과 내 마음이 하나인 세계가 있고, 내가 그에게 자꾸만 내 의지를 투영시키게 되면, 3차원 적인 존재인 우리는 점점 변해가는 겁니다. 고차원 적인 세계는 변하는 것이 쉽고, 거침이 없고 걸림 없는 세계라 신통이 자재하다 그럽니다. 다만 사바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므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력을 해줘야 합니다. 그게 3차원과 고차원 세계의 차이점이죠. 하나의 장 안에서 우리가 상대방에게 원을 투영시키면 그렇게 변해가는 겁니다. 한 삽, 두 삽. 백 삽, 천 삽 계속 퍼내다가 보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언젠가는 변해가는 겁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하면 이 우주가 여러분들이 바라보는 대로 춤을 춥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이, 노력, 지성이 많이 투입되지 않으니까,정신일도가 되지 않아 잘 안 되는 것이니 얼마나 깊이 있게 노력 하는가에 따라 변화의 폭이 달라지는 겁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나의 미래를 자꾸 투영하여 이렇게 갈 것이다, 저렇게 간다고 마음먹으면 세월이 흐른 뒤에 내가 떠올렸던 그 자를 만나게 됩니다. 챨리본이라는 피아니스트는 어렸을 때 전 세계를 돌면서 피아노 연주하며 여행하는 꿈을 꿨대요.나이가 들어 보니 어렸을 때 꿈 꾼 그대로 성취되어 자신이 돌아다니고 있더래요. 또 솔밸롬은 시나고구 선생님이 너 다음에 커서 노벨상 받겠다고 상 받는 그림을 그려줬단 말이죠. 정말로 나이가 들어서 보니, 노벨상을 받은 거예요. 선생님의 예언 그대로 실행이 된 거죠. 선생님의 그림이 나에게 투영되어 나의 미래가 되어버린 거죠. 선생님의 그림이 제자도 노벨상 받게 하고, 부모도 자식을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상대방을 좋게 보면 좋은 영상, 좋은 정보가 들어가니까 상대방이 좋게 변해 갈 수 밖에 없어요. 바라보는 대로, 투영되어 변해갑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느 여고학생의 반 친구가 걷는 게 안짱다리인데 그 친구가 불쌍해서 매일 같이 등하교를 같이 했어요. 그 친구를 측은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니까, 똑같아 진거죠. 동변상련의 마음이죠. 법당에 나오는 보살님 아들이 키 크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드렸는데, 정말 작은 키가 어느 순간 확 커져 버렸대요.처음에는 기도의 힘을 믿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양자 역학 강좌를 한 학기 듣고, 마음먹은 대로 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여자는 머리가 나빠서 체스를 못한다, 체스는 남자들의 경기라는 말을 듣고 ‘홀가’라는 심리학자가 다 똑같은데 왜 그럴까하며 의문을 가지고자기 세 딸들에게 갓난쟁이 때부터, 자기는 체스를 하면서 아이들이 알려달라고 조르면 너희는 너무 어려서 못해, 좀 더 커야 된다고 야단치고 하면서 동기 유발을 한거죠. 동기 유발이 가장 중요한 심리상태라는 판단 하에 아이들이 간절하게 체스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심어준거죠. 그런 다음에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 줬다는 거죠. 체스에 대한 관심으로 세 딸 모두 세계 챔피언이 되어어요. 20세 안팎의 천재는 동기유발이고 마음이란 걸 증명한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과 공간은 상관없어요. 온 세상이 여러분이 바라보는 대로 춤을 춰요. 모든 만상은 부처님의 의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만상은 여러분 일체가 다 가지고 계세요.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된 우리는 기도와 수행을 통하여 변해간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것은 원자, 전자로 되어 있어요. 이 소립자들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의 센타하우스의 여학생은 어렸을 때 바이러스가 두뇌에 들어가 두뇌 반쪽을 절개했어요. 반쪽의 두뇌로 살지만 우등생입니다.세포 하나하나가 우주거든요.두뇌도 똑똑 하지만, 몸도 똑똑합니다. 학자들이 쥐의 두뇌를 반으로 잘라 미로 찾기를 시켜했는데 미로 찾기를 하더래요.도마뱀 머리를 자르고 뇌를 짓이겨 다시 집어 넣었어요. 그렇게 두뇌를 잘게 쓸어 넣었는데도,도마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상하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법이 불이고 불이 법입니다. 마음은 법이고, 이 우주 자체가 부처님 입니다. 원형 그 자리 법은 법력, 에너지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요.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나쁜 생각을 해보세요. 나쁜 생각이 허공에 떠버리면 나쁜 물질, 나쁜 바이러스가 만들어져요. 에볼라, 에이즈, 인플루엔자 등 바이러스 종류도 무한히 많습니다. 나쁜 아미노산을 만들고 아미노산의 결정체인 바이러스가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에 허공 가운데 그 기운이 뜨니까 우주가 그걸 바탕으로 뭉치고, 뭉치다 보면 은하계 우주가 빅뱅이 되고, 터져 버리고, 세상이 다시 만들어지고 밑도 끝도 없이,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만들어지는 겁니다. 생각이 물질이기 때문에 좋은 생각을 하셔야 그것이 공덕이 되는 겁니다. 나쁜 생각 하는 것은 이 우주를 더럽히고, 나쁜 바이러스를 만드는 원천적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의식은 곧 물질이기 때문에 나쁜 생각은 나쁜 아미노산 CHCON, 독성을 가진 물질로 되어 버려요. 산소도 다 좋은 산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활성산소가 있어서 우리의 수명을 갉아먹죠, 전자도 반 전자, 나쁜 전자가 있어요. 그런 게 뭉쳐져서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병균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의식을 정화하고, 기도, 수행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종교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치부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 자체가 종교, 과학과는 무관한 거예요. 소립자 자체가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선과 악의 존재이며, 상대성의 존재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소립자들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읽고 그렇게 변해 갑니다. 소립자 자체가 굉장히 똑똑합니다. 소립자나 일체, 모든 원자나 분자들은 전부 다 의식, 지능을 가지고 있어요. 이 우주 만상이 지능을 가지고 있어요. 전자, 양자, 원자 같은 것이 그냥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꽝입니다. 아인슈타인, 물리학자들과 부처님의 사고방식이 이 부분에서 좀 차이가 나죠. 요즘 양자역학 공부하신 분들이 말씀하시길 양자역학과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 마음이 물질이고, 물질이 마음인 사상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의 세포도 의식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몸의 세포가 자꾸만 악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신의 의지를 투영 시킵니다. 정보를 주는 거죠. 기도가 거듭될수록 효과가 커져요. 기도라는 것이 다 과학입니다. 소립자는 소립자가 아닙니다. 소립자는 지능체 입니다. 모든 의식의 집합체라 여러분이 매일같이 기도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힘이 모이면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가 모이면 질량이 되니까 자꾸만 좋은 의지, 의식을 가지세요. 염력, 염식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좋은 마음 자세를 유지하세요. 이 일이 될까 안 될까 하는 마음은 방해하는 거잖아요. 상황을 주관적, 객관적으로 놓고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그림 이외의 방해되는 것은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생각만 바꾸면부처님의 분신들이니까 몸도 환경도 얼마든지바꿀 수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소립자들이 의식과 지능을 가지고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따르면 평화, 기쁨, 사랑을 느낄 때 우리 몸에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진답니다. 발산이 된답니다.두 번째는 죄책감, 무관심 등을 느낄 때는 몸에 기가 쫙 빠져 버린대요. 누군가로부터 어느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거나 죄를 짓거나 수치심을 느끼거나 사랑받지 못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거나 하면 몸에 기운이 쫙 빠지죠. 건드리기만 해도쓰러질 거 같거나, 머릿속이 하얗게 되죠.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도와 참선을 통해 빠져나간 기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을 잃어버리거나, 부처님의 기운, 법력, 활력을 놓치면 딴 생각이 들고, 기운이 빠져버려 악마가 득세해 버립니다. 그러면 감기 몸살이 와 버리고, 몸이 가라 앉아 버리죠. 부처님과 하나가 될 때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흐르고 왕성한 힘이 나옵니다.비난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되면 에너지가 흐르지 않고, 악마의 기운이 득세되니까 내 몸과 마음이 함락당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실험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브레인 심상화를 통하여 상황을 객관화 시키고, 관찰자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미래의 나를 그림 그리세요. 내가 언제가 꼭 목표를 이루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잡생각도 들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항상 나는 이 길을 갈 것이다, 나의 미래가 좋아질 것이다, 성격이 밝아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밀고 나가면 그 그림이 실현되죠. 우리는 바다, 백운대 꼭대기 어디든 마음의 세계는 그냥 가 버립니다. 삼차원의 우리가 4차원의 세계를 현실화 시키려면 시간과 공간, 정성이 들어가야 되죠. 성공하려면 힘을 계속 쌓아야 해요. 이뤄지는 그날까지. 하면 되고 안하면 안 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인간과 태양, 인간과 공기는 떼어내려 해도 뗄 수가 없어요. 비가 안 내리면 살 수 있나요? 빛, 공기, 물은 헤아릴 수가 없어서 묵가보라고 그럽니다. 돈으로 헤아릴 없는 생명 그 자체이죠.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값어치인 태양, 공기, 물도 거저 주셨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것은 인과 따라 간다고 부처님께서 못 박아 놓으셨어요. 因果 - 인자는 네모 안에 큰 대자가 들어가 원인 인因자 예요. 그 밑에 마음 심자가 들어가면 은혜 恩은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뭔들 안 이뤄지겠어요. 대학교 합격하고, 진급하고 돈 벌고 이런 건 장난이에요. 내가 마음을 먹고 부처님께 이루고 싶습니다하고 빌면 무한한 것도 거저 주신 분이 뭘 안주시겠어요. 부처님께서 왜 거저 주시겠어요. 아까울 게 뭐가 있겠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주에는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하며, 아이슈타인은 완벽한 두뇌가 존재 한다고 했죠. 우리 자체가 여기 앉아 있으면서도 해운대도 백운산 정상, 전생, 미래도 다녀올 수 있는 자유자재한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태양도 물도 거저 주실까요. 이제 백세시대이니 여러분이 끊임없이 머리를 쓰고 원력을 세우고 나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아셔야 해요.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바라 본대로 변해가는 겁니다. 나를 상대화시키고 관찰자가 되면 여러분들의 수행은 더 깊어지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SPAN></P>2019-01-30 오후 3:36:17고통을 고통으로 아는 자에겐 내일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Media/law/Read.aspx?db_cnt=81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center;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마음을 비우면 부처님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산을 바라보면 어떤 산은 잘 가꿔서 녹음이 우거진 산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산은 제대로 가꾸질 못해서 민둥산이 되어버린 산이 있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도끼로 자꾸만 잘라내면 도리가 없습니다. 헐벗은 산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산은 스스로 자생력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가꾸면 또 자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묘목이 자라는 그 곳에 소떼나 양떼들을 방목하게 되면 또 다시 민둥산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을 하면 그 산이 다시 녹음이 우거진 산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척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도 많이 있어요. 자신을 위하고 타인을 위하여 스스로 얼마만큼 노력을 하는가? 라는 것에 따라서 그 마음이 녹음이 우거진 것처럼 풍요롭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누구나 다 부처님 마음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어떤 단체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민둥산이라 하더라도, 척박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자꾸만 갈고 닦으면 풍요로운 마음을 낼 수가 있습니다. 물이 담긴 대야를 들여다보거나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척박한가, 아닌가를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다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백년 가까이 살면서 뭔가 쌓아 올렸다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고통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 집착 때문에 생겨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산다면 그다지 고통스러움을 갖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땅을 떠나서 살 수가 없는 게 당위적인 인간의 운명입니다. 다만 이제 이 땅을 살다 떠나가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곳, 전혀 알지 못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고통을 고통으로 아는 자에겐 내일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여여 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편하고 힘들어도 삶을 고통스럽다거나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잘 이겨내며 살아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삶을 살면서 뭘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통이나 불편 가운데서도 여여 하게, 담담하게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복을 짓고 덕을 베푸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는 것을 배우고,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일론 머스크는 지구란 별에 문제가 많아서 모두들 화성으로 가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존재들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수행을 하게 되면 신족통이 열려서 육신을 놔두고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이 땅을 살면서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까? 수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중생입니다. 고통이 많지만 그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지 않고 아픔과 쓰라림을 값지게 가슴에 안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쓰라림과 슬픔도 잘 이겨내도록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일어난 사람들을 박수쳐 주면서 예찬을 합니다. 불편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어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몸, 그 사람의 삶을 존경하며 금쪽같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힘들어도 힘들다하지 않고 잘 살아야지 자기의 가치가 승화됩니다. 경전을 보게 되면 환상적인 세계를 많이 느낍니다. 화엄을 보거나, 법화경을 보거나, 수많은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설하는 한없는 그런 하늘나라, 한없는 화엄의 그 세계 속에는 환상적인 말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한번 상상을 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도 아름다운 마음, 금쪽같은 마음, 다이아몬드 같은 마음, 금강경이란 경전에 있는 그런 내 마음이 ‘약견제상비상’ 영원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여래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텅 비우게 되면 찬연한 세계, 부처님 세계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금쪽같은 삶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나의 노력과 내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민둥산이지만 자꾸만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나무를 심고 하다보면 큰 수목이 우거진 산이 되고 숲이 됩니다. 농사짓는 것도. 나무 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 나면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매일매일 성실한 그런 그 인생의 농부처럼 살다보면 풍요로운 마음, 금쪽같은 인생이 펼쳐집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아름다운 마음에는 자비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에디슨을 우리는 발명왕이라고 말합니다. 에디슨, 스티브 잡스, 그레이엄 벨, 빌 게이츠 등 모두가 탁월하고 훌륭한 인물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변 팀들이 막강해서 좋은 결과물을 남긴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팀플레이를 잘하였다고. 팀을 잘 조직하고 운용하는 방법이 남다르며 천재적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같이 모여서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연구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창조성이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요. 누구나 다 마음 가운데에 아이디어는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다수의 사람이 모인 팀을 통해서 발전을 시켜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크게 되는 사람들은 혼자서 뭐가 되는 게 아닙니다. 타인과 팀과 함께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인생을 금 쪽같이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백세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수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좋기만 하겠어요? 불편도 더 커지겠지요. 길어지고 깊어지는 불편과 고통을 잘 이겨내는 인내와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개인도, 단체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우리나라의 실업문제 등을 잘 극복하여 참다운 혁신을 해야만 좋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당연히 기업의 혁신도 필요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선 해탈이란 말을 잘 합니다. 해탈이란 탈을 좀 벗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벗어나야만 하는데 우리들의 삶에는 항상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두려움은 다른 두려움이 아니라 애착과 집착에서 오는 두려움이 제일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탈을 하다보면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남의 역할을 바라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자기의 삶의 몫을 제대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똑같은 삶을 사는데도 나름대로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는 걸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걸어가는 것. 지속발전가능의 어떤 사람들. 새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혁명아들이며 매일매일 해탈하는 사람이 혁명아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거나 누가 나에게 남을 위해서, 부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사는 비결, 그래서 나의 삶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금쪽같은 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건 내가 부처님 말씀대로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너희들에게 이른바 말하면 영원의 길, 깨달음의 길, 지혜와 복덕의 길을 열어서, 개(開)-열어서, 시(示)-보여주고 너희들로 하여금 그 길을 가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 왔다.’고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들 인생에서 시간은 금이에요. 백년 정도 살 수 있는 공덕을 지었기 때문에 이 땅에 온 것입니다. 그 백년 정도의 시간을 정말 잘 보내야지 그나마 인도환생 하게 됩니다. 신심을 바탕으로 유정중생들을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보살의 삶을 보면 깨달은 자들이 인도환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삼차원의 세계인 이곳에서 눈을 감으면 여러 곳으로 날아갈 수 있고 상상만으로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 사람의 생각이며 능력입니다. 해운대 앞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지금 앉아있는 곳이 춥지만 파란 해운대 앞바다를 보는 그 눈은 어떤 눈일까요.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의 눈입니다. 마음의 눈이 딱 열려 버리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여요. 더욱 멀리 있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기도 합니다. 눈에 과거엔 전혀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볼 수 없던 세계가 열립니다. 이 육신은 소용이 없어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요. 캡슐이에요. 가치 있는 삶, 금쪽같은 인생은 선행을 얼마나 하고 사는가?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리이타,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살게 되면 인생의 시간이 헛되지 않고 금쪽같은 시간이 됩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인생을 얼마나 승화시키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삶을 살면서 금쪽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같이 그 아픔을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에게 어떤 일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항상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자비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시험을 두려워하지만, 시험이 출세의 길을 열어 준다고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직장이 없어서 참으로 힘들어요. 뭔가 앞으로 해결의 기미가 좀 보일지 의문이며 스스로도 극복하기 어렵고 살기가 팍팍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어려운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어렵다고 한다면 골이 깊어지고 더욱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날이 와도 그 어려운 상황 같은 것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응전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인간은 의외로 스스로 자신의 어떠한 고통도 잘 이겨내는 그런 전사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내면의 어떤 전사, 내면의 투사를 이끌어내 가지고 더욱 강하게 대처합니다. 그래서 그 역경을 이겨내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예찬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가 그런 영웅이 된다면, 아마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그래요.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요즘에 너무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불편을, 고통을 동반자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고통과 불편을 체험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며 좋은 훈련이 되어 앞으로의 삶에 강인한 힘을 보탤 수도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의 마음 가운데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더 고통을 주는지 몰라요. 가만히 보면 서로 다들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떠들다보면 사분오열이 되어서 단결이 안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 없는 일방적인 생각만 하게 되고 화합이 어려워집니다. 경전 대집경 월장분에 보면,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 하더라도 그 음식이 썩어 버리면 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맛있고 예쁘게 만들어진 음식도 썩게 되면 다 버리고 맙니다. 마음이 비루하고 타락해 버린 자식이 애비 말을 안 듣고, 애비 말을 실천하지 않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한다면 버리게 되는 겁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무시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자신의 아집만으로 뭉쳐 타협이 되지 않는 불합리한 사람이라면 불법을 익히기가 힘들어 집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을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떤 마음이 될 것인가? 누구를 서로서로를 탓하기에 앞서서 내 자신부터 고통과 불편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어렵더라도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콩 한 조각이라도 있으면 나누어 먹었다고 하는 것처럼 그런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있을 때 하늘이 고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그곳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하늘의 옹호를 받는 자들은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 지금도 허공에서 보살펴 줍니다. ‘옹호성중만허공’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나릉 도와줘야지 계속 기도하자 정진하자고 하면 하늘도 도와줍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과 지혜, 자비로 정진하다보면 하늘나라에서 인정하는, 영원의 세계에서, 영원의 장에서 인정하는 그러한 보살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의인이 되고 정의로운 존재가 되어서 인생을 금 쪽같이 사는 그런 존재들이 많으면 이 나라는 보호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대집경월장분’에 나온 것처럼 싸우고 서로를 해치려 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어떠한 고통과 불편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그것을 도전으로 알고 두 팔 벌려서 다 끌어안으며 더 어려운 날이 올지라도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하나의 마음, 차원이 다른 마음, 그런 마음이 될 때 하늘의 옹호를 받게 되며. 지성이면 감천이니,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익혀 들어야 합니다. 천우신조란 말처럼 하늘이 도와주고, 보이지 않는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자세가 될 때, 그런 마음을 우리가 사랑과 자비심으로 승화시킬 때 가능한 것이 됩니다. 여러 가지로 문제들이 많은 그런 지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잘 이겨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정말 금쪽같은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불법을 깨치며 참회하고 산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인도환생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땅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열 명 중의 아홉은 다시 악도로 떨어진다고 하는 부처님 말씀을 진지하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자비심을 거양하는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SPAN></P>2019-01-30 오후 3:31:00부처님이시여! 화엄성중이시여!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Media/law/Read.aspx?db_cnt=81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생명을 지탱해주는 건 죽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한 주일 내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 많으셨을 텐데 오늘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마음의 모든 스트레스를 떨쳐내시길 당부 드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흔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마음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고 하지요. 예를 들면 여러분은 각각 한 가정을 이루고 삽니다. 이 때 부처님 말씀대로 아내를 신처럼 모시고 살면 그 가정이 편안합니다. 고무신이 아니라 진짜 신처럼 모시래요. 아내를 신으로, 아내를 천사 대하듯 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내 마음 가운데서 천사가 이끌려 나옵니다. 반대로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면 아내 마음 가운데서 악마가 이끌려 나와요.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헨리 토마스 말마따나 “네가 여왕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남편을 왕으로 모시라.”그랬거든요. 남편을 왕처럼 대접하면 남편의 마음 가운데서 왕 같은 존재가 이끌려 나옵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강아지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천사로 만들기도 하고 악마로 만들기도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천수경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게 ‘정구업진언’ 입니다. 우리는 예사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입으로 독경만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구업(口業)이란 말은 매우 무서운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천사로 만들 것이냐, 악마로 만들 것이냐, 오직 마음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나오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가까운 사람, 주변사람들을 신 대하듯 하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떤 방식으로 삶에 대입할 것인가, 하는 응용력이나 실천력입니다. 공부하는 게 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부한 내용을 세상에 펼쳐 보일 것인가, 그게 공덕이 되는 거예요. 그게 성불의 지름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공을 보세요. 허공은 그냥 텅 비어있으니까 “에이, 허공이 부처님이라는데, 그럴까?” 합니다. 그런데 화엄경에 보면 ‘옹호성중만허공’ 이라고 나와요. 나를 옹호하는 성중들이 허공에 꽉 차 있다는 거죠. 또 ‘우보익생만허공’ 항상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보배비가 허공에서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성중님, 신장님 등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허공을 통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허공의 장군들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영혼이 얼마나 많겠어요. 말도 못하게 많습니다. 당장 호흡하는 걸 관찰해보세요. 호흡은 허공을 마시는 거잖아요.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을 하다 이제 다 정리가 됐습니다만, 모든 물질의 궁극은 입자냐 파동이냐,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질은 입자다, 입자는 에너지다,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입자는 눈에 보이는 거고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차원이 다를 뿐 분명히 존재합니다. 허공은 무상심심미묘법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은 언제나 “우리가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궁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 덩어리씩 몸을 받고 나왔잖아요. 한 조각 구름의 생겨남입니다. 그러다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한 조각 구름의 사라짐이에요. 뜬구름은 본래 허망한 것입니다. 한 조각 연기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는 겁니다. 사실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매일매일 사는 게 매일매일 죽는 거예요. 하루 사는 것만큼 하루 죽는 거잖아요. 부처님은 “산다는 것은 죽는 것이다.” 라고 ‘생사일여’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루 24시간 살고 나면 24시간만큼 죽은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우리 몸엔 무수한 세포들이 태어나고 또 죽고 있다니까요. 그 열 배나 되는 미생물들도 수없이 생겨나고 죽고 생겨나고 죽어요. 말도 못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이 오래 살아봐야 100일도 못 산다잖아요. 100일만 지나면 한 바퀴가 싹 바뀝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생명을 지탱해주는 건 죽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좋은 도반(道伴)이 되자</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어느새 1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한해를 열심히 사셨겠지만 여러분은 이제 그만큼 죽음 저 너머로 가까이 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할 게 사는 게 곧 죽는 거니까, ‘부처님이시여, 화엄성중님이시여, 불보살님이시여, 제 몸을 당신님께 바칩니다.’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지심귀명례, 나를 던지는 자세로 경건하게 살아야 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신장님이나 천사를 대하듯 맑고 깨끗한 말로 대하며 살아가세요.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를 정성스럽게 대해야 큰 공덕 됩니다. 이 껍데기는 언젠가 구름처럼 사라져갑니다. 죽음을 두려워말고 삶을 두려워하세요.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을 부처님, 보살님, 신장님으로 대하시고요. 그 마음이 성불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탐(貪), 하늘나라에서 강등돼 온 인간들이 주로 탐심을 낸답니다. 진(嗔), 화를 내는 이들은 이른바 지옥이나 아귀보를 받고 살다 인간으로 진급해 온 거고요. 치(痴), 어리석은 존재들은 축생에서 사람으로 승격돼 와서 그렇답니다. 이러한 탐·진·치 삼독심이 우리를 부정적인 세계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금쪽같은 인생이라고 하니 그만큼 삶을 귀중하게 여기고 살아야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귀중하게 사는 것일까요? 상대방을 귀중하게 대하는 게 귀중하게 사는 거예요. 돈 많이 벌어 쌓아놓고 죽자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보살과 신장님처럼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키우자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함께합니다. 나아가 허공엔 먼저 간 선배 영혼들이 많습니다. 내가 만약 좋은 마음을 쓰면 주변을 감도는 존재들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의 존재가 대부분이 됩니다. 옹호성중만허공, 신장들 역시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을 제도하고 있어요. 내가 만약 기도하는 마음, 천도하는 마음이라면 그들도 흥겨워하겠지요. 마음 편안해 해요. 큰 군사를 나의 편으로 하는 겁니다. 그들은 돌아가셨어도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거든요. 차원만 다를 뿐이에요. 이제 여러분이 이 땅을 등지면 그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예외 없습니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을 천사처럼, 성중처럼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마음으로 대하며 살아가세요. 그럼 장애가 다 풀립니다. 내가 상대방을 공경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장애할 이유가 없잖아요. 부처님 말씀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일체중생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을 가져야 그것으로 인해서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장애가 풀어질 것이다.” 이러셨거든요. 천수경에도 무애대비심(無碍大悲心), 장애가 없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살다 보면 장애가 참 많습니다. 무엇 하나를 한다 하더라도 걸리는 거 투성이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 마음자리 그대로 현실에 투영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상대방은 네 마음의 거울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방이 왜 자꾸만 나한테 트릿하게 구느냐? 그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존심 없는 사람 없어요. 누구나 다 자존심 있습니다. 자존심은 있지만 세상 살다 보면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럼 자존심 있고 자존감은 있는데,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 있으면 자존심이 변형을 취합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나타나요? 질투심으로 나타납니다. 자존심의 변형이 질투심이고 시기심인 거예요. 질투, 시기하는 마음은 좋은 게 아닙니다. 그 마음이 자꾸만 나를 장애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좋은 도반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도반, 좋은 사람이 되는 첫째 조건은 계(戒)를 지키는 마음입니다. 둘째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셋째 남에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베풀고 펼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 항상 한 생각 한 생각 잘 챙기며 정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이 되어 보세요. 마음의 실력이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상대방을 대하는 것으로 금방 평가가 나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말로 상대방은 점수를 매깁니다. ‘저 친구가 진심으로 말하는가, 아닌가?’ 금방 알아요. 상대방도 다 듣고 생각을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나에게 말하는 걸 자세히 봅니다. ‘저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골몰하잖아요. 저 친구 나를 좋은 동료로 인정하고 말하는가, 아닌가? 항상 계산을 합니다. 그럼요. 아내가 하는 말을 가지고 남편이 계속 분석해요. 또 남편이 한 마디 두 마디 던진 거 가지고 아내가 어쩔 줄 모르는 수도 있다니까요. 상대방이 무심코 던질 말 한 마디에 소화가 안 됩니다. 그런 감정이 마음 가운데 탁 맺히면 종양이 되고, 암이 돼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내를 신으로 모시라 그러고 남편을 신으로 모시라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내를 신으로 본다고 하면 내가 신인 거예요. 신이 아니면 상대방을 신으로 볼 수가 없죠.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이니까요. 상대방에게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선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에게 악한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악한 사람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 ‘그냥 할 뿐’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결국 잘나가는 사람들은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또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다 이유가 있어요. 부처님 경에서 “좋은 친구는 참으로 귀하다. 그들은 투철한 신심을 가지고 계행을 잘 지키며, 열심히 자기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남에게 베풀고 펼치는 마음에 익숙하고, 정진을 하며, 항상 바른 생각으로 삼매경을 사랑하고, 통찰지를 구족한다.” 고 나옵니다. 항상 자기를 갈고닦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천사로 만들거나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거나 모두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요즘 참 안타까운 게 정권이 바뀌니까 적폐라고 해서 사람들을 계속 쓸어내는데 이러다 보면 어찌될지 답답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얼마 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부시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요. 근데 부시는 아버지 장례식 추도사에서 “아버지, 당신은 다른 건 다 훌륭했는데 춤에는 젬병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죽음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보였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지 매일 매순간이 수행입니다. 이른바 참선이고 명상이고 기도인 거예요. 우리가 말하는 염불 같은 거지요. 수행은 절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매일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선적인 삶을 사세요. 화두일념이라고 그러잖아요.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에 멍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을 잘못 놀리면 재앙의 문이 돼요. 그래서 ‘정 구업진언’ 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 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둘째 글은 한 줄 모르더라도 신심 그 자체인 존재들입니다. 셋째 생각하는 기질을 가진 자들입니다. 근데 이 세 부류가 모두 함께여야 한다는 겁니다. 신심과 공부와 사색이 말이죠. 항상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사람은 남의 자신도 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 책에 보니까 누구하고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다리를 꼬는 사람, 다리를 편안히 앉은 사람 이렇게요. 평상시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에 따라 상대방의 긴장상태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대화가 잘 풀려나갑니다. 삶은 모두 서로 간의 암묵적인 거래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상대방의 자세를 보는 즉시 협상이 잘돼 가는구나, 이런 걸 알 수가 있거든요. ‘상대방이 지금 긴장해 있구나, 그럼 대화가 잘 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요. 우리가 스스로를 관찰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내가 지금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그걸 체크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수행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은 누구든지 긍정적입니다. 지극 정성스럽게 몸과 마음을 던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죠. 내 몸과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신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황벽스님 이야기요. 황벽스님, 그는 일자무식이에요. 본래 육척장신의 나무꾼이었답니다. 절에다 나무를 해 대던 나무꾼인데 어느 날 우연히 큰스님 법문을 들은 거예요. “모든 중생의 마음 가운덴 불성이 있다. 그것을 갈고 닦으면 누구나 부처님 된다.” 그 소리가 탁 귀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주지스님한테 “저도 부처가 되고 싶으니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넌 안 된다” 했대요. “아니, 똑같이 불성이 있다는데 왜 저는 안 된다고 그럽니까? 좀 일러주십시오.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라고 졸랐어요. 하도 조르니까 스님은 “너 같은 녀석은 일자무식이니 절이나 해라.” 했지요. 절을 하면 도통한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죽자 사자 절만 한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탁 터졌어요. 하나가 돼 버리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게 된 것입니다. ‘저 스님, 법문하면서 딴 생각하네.’ 하면서 지게작대기로 스님 어깨를 툭툭 쳤다는 거 아녜요. 그래 조용한 시간에 나무꾼을 불러다 시험해보니까 나무꾼인데도 불구하고 열린 거예요. 머리를 깎이고 자리에 앉혀 수행을 시켰다는 겁니다. 그 후 정말 큰 스님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황벽스님, 나름 도인 평가를 받은 사람이 매일 절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문하로 들어온 임제가 묻습니다. “스님, 보통 사람들은 구하는 바가 있어서 절을 하는데, 스님은 이미 도인이 다 됐는데 왜 절을 계속 하십니까?’ 그랬더니 그는 무작정 임제를 팼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 스님은 물어보기만 하면 때리는 스님이 됩니다. ‘그냥 할 뿐, 조건을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송나라 황제가 ”우리 아들 좀 가르쳐달라“고 황벽스님의 절로 보냈습니다. 황제의 아들이 절을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임제를 두들겨 패듯 태자를 두들겨 팼어요. 태자를 두들겨 패면 얼마나 큰 죄예요. 황제가 노했지만 그래도 황벽이니까 그냥 놔뒀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게 ‘왜, 뭣 때문에 절을 하냐?’ 에 대한 답은 ‘그냥 할 뿐’이라는 겁니다. 유명한 얘기예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4.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라시대 혜초스님이 인도로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인도까지 얼마나 먼 길입니까. 그런데 시험을 쳐 떨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에서 중국을 거쳐 배를 타고 인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귀중한 여행기를 남깁니다. 그 당시 혜초와 같이 인도로 가서 날란다 대학에 합격한 비슷한 연배의 당나라 스님 현장법사가 있습니다. 현장법사는 중국 역사에 길이 남는 스님이 됐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혜초스님이 불합격한 인도의 그 유명한 날란다 대학의 총장이 나로빠스님입니다. 그는 학술적, 학문적으론 월등했지만 자신의 종교체험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자들한테 물어요, “지금 인도나 다른 곳에서라도 부처님 경지를 깨달은 자가 있는지 알아봐라.” 몇 날 며칠 알아본 제자들이 “틸로빠란 스승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더이다.”합니다. 그는 그 즉시 대학총장직을 내려놓고 틸로빠 스승을 찾아갑니다. 틸로빠의 수행처소로 가서 부처님 법을 배우러왔다고 하니 “여보게, 이 나라의 가장 훌륭한 스승인 자네를 나 같은 미거한 중생이 어떻게 가르치겠는가?”하면서 그를 쫓아냅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조르니 틸로빠 스승은 “자네가 내 수행처소의 문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나갈 때는 내 허락 없이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고려해 보겠네.” 라고 약속을 제안합니다. “그거야 뭐 어렵습니까. 약속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주장자로 나로빠를 때렸습니다. 그는 스님으로부터 “헌신이 부처니라, 헌신이 부처니라”라는 말을 들으며 3년 동안 매일 두들겨 맞았습니다. 앓아서 눕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이제 3년 지난 어느 날 두들겨 맞다가 퍼떡 깨달았어요. 네, ‘헌신이 부처니라’는 의미를 탁 깨닫고는 맞아서 아픈 몸으로 틸로빠 스승을 업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는 이야기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매일 하는 예불에 ‘지심귀명례’란 말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던지는 거예요. 불태우는 거죠 우리는 덩어리진 이 몸을 불태우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금강경의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도 결국은 나를 던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질투하고 시기하고 문제가 생겨납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니까 상대방을 천사로 보고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보는 게 어려운 거예요. 나보다 잘난 상대방 꼴을 못 봐요. 헌신이 부처고 지심귀명이 부처입니다. 부처님 눈에 부처님만 보이고 신의 눈에는 신만 보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여기서 우리가 가장 유념할 건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라는 죽음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 집중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세요.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수행 속에 사는 삶이이어야 이득이 있습니다. 물론 무슨 이득을 바라고 하는 수행은 아니지만 수행을 하다보면 즐거움의 단계가 나타납니다. 누가 말하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아요. 작은 희열입니다. 그리고 번갯불처럼 휙 지나가는 순간적인 희열이 있어요. 이른바 잔잔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해지는 거죠. 그다음 좋아서 펄펄 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떤 땐 뿌듯하고 충만한 희열도 있어요. 수행을 해나갈수록 내 몸과 마음 가운데 희열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초선, 이선, 삼선, 사선 공처정, 식처정, 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그러는 것처럼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런데 안타까운 게 현대인들이 삶에 치우쳐 살다 보니 수행에 투자할 시간과 정열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심귀명례’가 잘 안 돼요. 그저 ‘산다는 게 죽는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닦아가세요. 하나를 생각하는 집중된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어떤 것이라도 지속해 보세요. 점점 잘하게 됩니다. 옛날 어르신네들도 뭐든 꾸준히(slow and steady)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겁을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수행을 해봐야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상대방을 신장으로, 천사로 대하며 나아가세요. 꾸준히 가다보면 내 삶의 자세가 달라지고 또 허공의 신장들도 그런 달라진 나를 알게 됩니다. 인생은 뭐예요? 언젠간 다 떠나야 하는 게 인생이잖아요. 산다는 건 죽는 겁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수행해보세요.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5년이고 10년이고 죽을 때까지요. 즐거움의 정도가 달라지고 희열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부처님이시여, 화엄성중님이시여, 나의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칩니다.’ 하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굳게 마음먹고 하루에 오백 배씩 해본다, 천배씩 한다, 3년, 5년, 10년 계속한다, 이렇게 실천해보세요.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가 달라질 것입니다. </SPAN></P>2019-01-30 오후 3:27:55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 사랑 받으려하기 보다 사랑하라/Media/law/Read.aspx?db_cnt=81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지극한 비움의 원리</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미묘불가사의 하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선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을 모릅니다. 그리고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또 나아가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불분명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했지만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문이 많으니 우리는 끊임없이 궁구하고 끊임없이 탁마해야만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런 세속의 인간을 뛰어넘는 영원의 존재가 되라는 것이 모든 위대한 인물들의 한결같은 바램입니다. 그러나 세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추동력이랄까, 밀어주는 힘은 욕망이 앞서갑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욕망은 부질없는 것이지요. 권력이나 재물, 성(性) 등 사람들이 향유하는 바가 삶의 흐름 가운데서 말발굽에 밟히는 민들레처럼 하잘 것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뛰어넘는 삶에 대해 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여러 가지로 이루고 싶은 게 많은데 제대로 되지는 않고, 또 도움을 누가 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고 외롭다는 겁니다. 참 사는 게 힘들고 고독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은 왜 외롭고 고독할까요? 또 힘들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어떤 개체화된 마음 때문입니다. 그게 사람들을 외롭게 합니다. 주려는 삶이라야 덜 외로운데 말입니다. “아, 뭐 줄 게 별로 없는데…” 아니에요. 마음이라도 주고 안아 주고 손이라도 어루만져 주세요. 부처님이 ‘아상(我相)’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있다’는 것도 사실은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줄기차게 공부한 내용이 바로 그거 아닙니까. 제가 하도 많은 분들을 저승으로 모시고 살다보니까 화장장에 갔다 올 때마다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관을 불 속으로 밀어 넣어 태우고 빻아서 단지에 담아 오는 가족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여기서 우리가 이 땅에 왜 왔는가 물으면 복잡한 얘기 다 놔두고 사랑 받으러 온 것이라기보다 사랑 주러 왔다고 하는 게 옳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 하고, 아내는 또 아내대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우린 사랑을 주러 왔는데 모두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니까 만족스럽지 않은 겁니다. 충족되지 않아요. 그래 항상 갈망(渴望)합니다. 애가 타고 목마른 거예요. 학수고대(鶴首苦待)할 때의 대(待)자를 보세요. 두 인 변에 절 사 자를 쓰잖아요. 그저 누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다림이 인간의 숙명임을 대변해줍니다. 자꾸만 받으려고 하니까 기다릴 수밖에요. 기다림이란 건 참 애가 타는 거 맞습니다. 우리는 전부 기다리다 죽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이 우주의 묘리는 자꾸만 비우면 채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누구한테든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마음을 비워보면 압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해보면 알아요. 흔들림 없는 마음이 돼야 합니다. 가만히 보세요, 세상은 다 돌잖아요. 채워지면 내보내야 하듯이 봄여름가을겨울 다 돌아요. 안 도는 게 없습니다. 경기도 호경기니 불경기니 하면서 계속 돕니다. 내가 지금 좀 어렵다 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또 언젠가 일어서는 날이 오거든요. 이와 같이 세상만사 다 돌고 돕니다. 흔히 말하는 주역(周易)이라고 할 때의 역이란 말도 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게 자연의 섭리입니다. 내가 뭔가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오래도록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주의 원리가 돌기 때문에 그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내가 가지고 있으려고만 하면 애가 탑니다. 받으려 하고 챙기려 하면 병이 나요. 장구하게 영원을 가려면 도는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이제 ‘또 좋은 날도 오겠지.’ 하세요. 내가 잘 나간다고 그러면 ‘아, 이거 또 내가…’ 하면서 경계하면 됩니다. 참 묘한 게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져죽을 확률이 더 많잖아요? 마찬가지로 일에 너무 탐닉하다보면 일에 빠져버릴 수가 있습니다. 산에 금이 묻혀 있다고 산을 다 파헤치거나 돌의 옥을 캐려고 그 돌을 다 깨버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내가 있다, 그러면 없어지고 내가 없어지면 다시 있어져요. 도(道)는 내가 있다 없다 하는 생각을 떠나버릴 때 나타납니다. 만상은 태어나면 죽게 돼 있고, 생겨나면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고 사라지고 생겨나는 게 끝나면 부처님 말씀대로 성불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욕망이 있어서 태어나는 겁니다. 지극한 비움이 영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타인에 대한 사랑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비워야 채워집니다. 끌어들이기만 하면 새나가기 십상이지요. 우주의 법칙이 그렇습니다. 받으려 하지 말고 자꾸만 주세요. 그러면 채워집니다. 채워지면 또 주면 됩니다. 그럼 점점 비워지고 마침내 큰 비움이 됩니다. 작게 버리면 작게 얻고, 크게 버리면 크게 얻습니다. 무한히 버리면 무한을 얻는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질서정연하게 도는 양상을 ‘우주의 춤’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것에든 전부 리듬이 있습니다. 우리가 춤을 추게 되면 우주의 리듬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든 분이나 젊은이나 춤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춤을 많이 추면 페로몬이라고 하는 특수한 쾌감 호르몬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우주의 춤을 ‘마하무드라’라고 하는 겁니다. ‘무드라’라는 말이 원래 ‘춤’이거든요. 우주는 끊임없는 생성을 위해 지금도 춤추고 있습니다. 우리도 운동을 해야 세로토닌이 나오고 도파민 나오면서 몸이 건강해지잖아요. 두뇌도 운동을 함으로 인해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머리가 띵하고 멍한 분들은 꼭 운동을 해보세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때 두뇌능력이 향상되고 두뇌세포들이 가지런해집니다. 카타르시스, 알 수 없는 황홀감 같은 걸 느껴요. 춤은 두뇌에 아주 좋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연구결과에도 나와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문제는 돌고 도는 이 우주의 장엄한 춤의 세계를 등지면 고장 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면 돌아오게 되는데 그게 원활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고장이 납니다.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기만 해보세요. 반드시 돌아옵니다. 근데 참 안타까운 게 사람들이 받으려고만 하니까 참 애잔한 거죠. 문제가 생겨요. 부처님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의 공통적 주장이 내가 잘되기보다 상대방을 잘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잘 된다는 논리입니다. 또 “상대방을 비판하기보다 너 자신을 비판하라. 상대방을 잘되게 하고 뛰어나게 하면 너도 좋아진다.”는 거 아닙니까. 네, 상대방을 뛰어나게 하면 내 편이 많아집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뛰어나다는 걸 과시하면 주변이 전부 적으로 변해버린다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대로 가능한 한 자신의 마음을 낮춰보세요. 온 세상이 자신의 품에 안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허공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금도 허공의 무량한 호법신장님들은 부처님 법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만 되더라도 그들에게 큰 공덕주가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바라밀다행을 닦아가세요. 그럼 내 마음 안에 더 큰 공간이 생겨납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내 마음이 자꾸만 비워지니까 더 많은 것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내 마음이 바뀌어요. 사람이 혁신된다니까요. 세상을 사랑하고 영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참선 명상이나 기도가 그런 원리예요. “머리를 텅 비우고 쉬어봐라. 그러면 그에 합당한 아이디어가 들어온다.” 그런 얘기거든요. 학자들 얘기가 밤에 잠을 자면 누군가 하루 온종일 수집했던 정보들을 걸러내 해마에 저장해준다는 거예요.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기억력이 약해지고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끌어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언제 나갈까, 하잖아요. 그런데 남에게 베푸는 사람은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수행법이 생긴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 하라는 겁니다. 우린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삶의 대의명제를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떠날 때도 편안합니다. 계속 끌어들이려면 못 떠납니다. 자승자박이 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끌어들이려고만 하지, 내보낼 줄 모릅니다. 끊임없는 번뇌와 투쟁에 자신의 삶을 다 던져버려요. 금쪽같은 인생인데 사사로운 언쟁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쓸 데 없는 생각, 쓸 데 없는 말과 행동에 시간을 낭비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야! 피해, 피해!” 하면서 개한테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 개가 어떻게 해요? 물어버려요. 개하고 싸우면 개가 사정 봐줍니까? 쓸 데 없는 언쟁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작은 사랑이나 큰 사랑이나, 사랑도 훈련이고 수행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타인에 대한 사랑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생각도 없이 사랑하려면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욕망을 이겨내는 삶</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으려하기 보다 사랑을 주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내가 끌어들인 여러 물건과 재물, 동산이나 부동산 그리고 아내 남편 등이 서로 강한 인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나를 끌어당겨 떠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워야 허공처럼 훨훨 날 수 있습니다. 새들도 날기 위해 뼈를 비운다고 그러잖아요. 높이 날려면 비워야 합니다. 열심히 살면 하늘이, 부처님이 다 해결해주십니다. 무상심심미묘법은 우리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이 땅을 등져도 그 법은 유효합니다. 그 법은 영원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남자가 생겨나고 여자가 생겨나고, 하늘은 아비고 땅은 어미고, 만상은 플러스마이너스 원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됩니다. 그렇게 생성되는 가운데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으며 그들은 지속적으로 파동 칩니다. 그러니 내가 잘나간다고 해도 절대로 안심하지 마세요. 잘나간다고 해서 영원히 잘나가는 거 아니에요. 권투선수를 보세요. 처음에는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링 위에 오릅니다. 근데 올라가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거든요. 결국 힘을 쌓지 않으면 링에서 넘어집니다. 버티는 게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힘을 배양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자율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누구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목표를 달성했다 해도 계속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가느냐는 것입니다. 언제 격하될지 모릅니다. 돌다가 힘이 떨어지면 아웃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등불이 되라, 하셨잖아요. 항상 자신을 불태워야 합니다. 우주는 계속 돕니다. 돌고 도니까 성공과 실패가 계속 분기하는 거예요. 내가 다시 일어날 마음만 있으면 실패는 병가지상사입니다. 실패했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견디기 어려웠지만 견뎠노라 하면서 계속 가세요. 우린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들입니다. 왜냐? 우리는 모두 부처님의 아들딸이니까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마침내 부처님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 되기를 숙명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화엄경에 “너희는 부처님 되게끔 돼 있다.”라고 나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당신은 언젠가 부처님 될 분입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직무유기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리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산 넘어 또 산이 있어요. ‘아, 힘들다. 이제 좀 쉬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때도 있죠. 그럴 땐 쉬었다가 또 가는 거예요. 다만 내가 쉬는 동안 누군가 또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늦더라도 거북이처럼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면 됩니다. 아픈 사람이 의사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진단을 듣지 않으면 그는 죽잖아요. 부처님은 “나는 좋은 의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법을 열심히 듣고 마음의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가혹하게 비판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누가 뭐라고 하면 그저 잘 듣는 거예요. 아내가 뭐라고 그러면 잘 들어주시고요. 남편이 뭐라고 그러면 잘 들어주세요. 윗사람이 뭐라고 그래도 잘 들어주면 그게 나의 몸과 마음에 영약이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광활한 우주가 돌지 않으면 무엇이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 우주는 도는 세계입니다. 나가면 반드시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난하다고 절대로 비관할 거 아닙니다. 들어올 날이 있습니다. 그럼요. 또 내가 한 번 망했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금생에 못하면 내생에 다시 하지.” 이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 중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의사의 진단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가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귀담아듣지 않거나 고까워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큰 병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그러면 듣기 싫어합니다. 좀 안타깝습니다. 어쨌든 간에 우리는 끊임없이 돌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 나라에서 왔다가 끊임없이 돌면서 다시 부처님 나라로 가는 존재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이 땅에 와서 고생하는 것은 그만한 원인이 있어서입니다.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을 받으려는 마음이 더 강하니 문제가 있는 중생들이지요. 중생이 아니라 부처님이라면 무한히 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우린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기 살다가 숨이 딱 멈춰버리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응보, 성적표가 쫙 나옵니다. 그냥 맥 놓고 살다가 딸까닥 숨넘어갔는데 저승 가서 ‘오호, 이거 웬일이야.’ 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상대방을 밝게 하고,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세요. 크게 돈을 주라는 게 아녜요. 내가 정말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인가, 영원을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욕망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도 빈말이 아닙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모시고 사는 중이지만 다른 대단한 스님들을 보면 가진 것 다 내던지고도 신나게 삽니다. 가진 것 없지만 우주를 가진 것처럼 사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요. 세속 인간은 욕망이 삶의 추동력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뛰어넘는 삶을 추구합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는, 상대방을 뛰어나게 하는 자의 길이 보살의 길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씩씩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9-01-30 오후 3:24:05인생은 고통 극복의 달인을 만들기 위해 지어진 프로그램이다/Media/law/Read.aspx?db_cnt=81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자신을 경시할 이유가 없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오늘이 개원기념법회 날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1년을 돌아보면서 능인선원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저는 오늘 개원법회를 맞이해 여러분과 무슨 말씀을 나눌까, 생각해봤습니다. 수행이 원래 그런 것처럼 그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과 함께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과감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슨 일이든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된다.”라는 말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건 많습니다. 제가 왜 서두에 어렵지만 ‘행복하다’ 고 말씀드렸을까요? 그 이유가 저는 비교적 마음먹었던 대로 대부분이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우연은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제가 믿었던 건 부처님, 그리고 저 자신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취약점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겁니다. 저는 다행스럽게 부처님 법을 만나서 내가 누구인지 조금 압니다. ‘아, 내가 정말 부처님의 아들이고 딸이구나.’ 부처님 아들딸인데 자기를 경시할 이유가 없잖아요. 우린 중생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아들딸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역량을 낮추지 마세요. 어려운 문제, 힘겨운 문제가 있으면 부처님과 상의하면 됩니다. 부처님은 이 우주의 주인공이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저는 법회를 할 때 항상 제가 체험한 것만 말씀드립니다. 체험하지 않은 걸 어떻게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기도 가운데서 답을 얻고, 문제가 생기면“부처님, 제가 무지해서, 정말 어리석어서 그랬습니다. 참회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부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항상 드리는 말씀이 “부처님을 체험해봐라. 여긴 말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다. 여긴 글자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영원의 존재니까 그렇습니다. 영원은 반복해서 가야 합니다.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영원은 중단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중생이 아닙니다. 중생이라고 부르는 부처입니다. 중생이라고 부르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수자상, 그저 한 세상 살면 끝나는 존재가 아니에요. 이생을 등진다 해도 또 어딘가에 태어나서 부처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로 경시하지 마세요. 자신을 믿고 부처님을 믿으면 됩니다. 모자라는 게 많아도 몸과 마음을 다해야합니다. 부처님은 “나의 가르침은 추상적 이치가 아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바른 행동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항상 움직이려고 애썼고, 항상 행동하는 인간이고 싶었으며 영원한 수행자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30여 년 이상 능인선원과 함께 살아온 수많은 시신들과도 함께 했습니다. 제가 항상 얘기하잖습니까. 제 업은 시체 치우는 일입니다. 임종하는 자들을 수도 없이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나의 스승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주로 자기 평가가 낮은 사람들이 누가 뭐라고 하면 하찮은 일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내가 부처님의 아들딸인데, 이런 것쯤이야.’ 하고 툭툭 털어버려야 합니다. 인생은 고통 속에서 명수, 달인을 만들기 위해 계획된 시스템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태어나는 이유도 인생을 잘 모르니까, 자꾸만 실수를 하니까, 죄를 지으니까 그 죄를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과정을 윤회라고 부르는데 모든 문제는 인과(因果) 따라서 이미 짜인 시나리오라고 보면 됩니다. 제 습관 중의 하나는 부처님 말씀 따라서 삶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도 빈틈없이 전생의 얽힌 사슬 따라 금생이 짜인 게 확실하구나, 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행동이 두려움을 치유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독일어를 공부했습니다. 독일어를 처음 보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어 배우기를 참 좋아했어요. 독일어 담임선생님이 “너 독일어 어디서 공부한 적 있냐?”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취재차 유럽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중세시대 성당을 보았는데 전혀 낯설지 않더라고요. 그 후 열심히 성당에 다녔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게, 혜화동에 가면 동성 중고등학교 뒤에 혜화동 본당이 있습니다. 그 뒤로 올라가면 대신학교라고해서 신부님을 키우는 대학이 있습니다. 신부님의 소개로 그곳에서 학기 동안 청강을 한 적도 있어요. 그 학교 건물이 유럽 중세의 수도원처럼 지어져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러다 제가 도망을 가서 산중의 스님들과 살게 되었습니다. 스님들하고 매일 다투고 토론하다가 큰스님께서 저를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불교를 잘 모르면서 왜 불교를 욕 하냐? 너도 체험해보고 나면 더 이상 우리한테 시비 걸지 않을 거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앉아있으면 뭐가 됩니까?” 했더니 도인이 된다는 말, 그리고 네가 이 깊은 산중에 왜 기어들어 왔는지 알게 된다는 말, 전생을 확연히 알게 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체험해보지 않은 인간이 말하는 것도 죄가 되겠구나 싶어 그때부터 미친 듯이 기도하고 정진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전생의 필름이 선연히 흘러가는데 한 생각지간에 제 모든 걸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어렸을 때 벌어진 일들이 전부 필유곡절이었구나.’ 과거에 살았던 모습, 독일에 살았던 날들의 기억, 그 모습이 물 흐르듯 흘러가면서 아주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 앉아계신 것도 인과 따라 짜인 그 어떤 삶을 살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너희가 받고 있는 것은 과거 생에 지은 업대로 받는 것이다. 지금 짓는 것은 그대로 내생에 받을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러니까 절대로 자신을 경시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부처님 아들딸이고, 영겁으로부터 지금까지 흘러나온 위대한 존재입니다. 저 같은 별 볼 일 없는 중생도 많은 신도들과 더불어 힘을 합쳐 “우리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법당을 지어 후대 스님들에게 귀감이 되는 역사의 혁명가가 되자.” 해서 지금의 능인선원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별다른 욕심 없습니다. 오로지 이 길을 계속 갈 뿐입니다. 절대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거야.’ 이런 소리하지 마세요. 가능하다고 믿고 가야합니다. 자신을 경시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겁니다. 자신을 경시하니까 모든 게 하찮게 보이는 거예요. 안타까운 거죠. 자기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모두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겁니다. 어떤 일이든 중요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요즘 느끼는 게 보살님들이 그저 아녀자로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고 살다 보니 다른 일은 해본 적 없다고 하면서 일을 시키면 매사 겁을 냅니다. 그럴 때 제일 안타깝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우린 부처님의 아들딸들인데 말입니다. 그럼요. 작게 믿으면 작게 성공하구요, 크게 믿으면 크게 성공하는 법입니다. 제가 체험한 그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부처님께 하겠다고 마음을 내면 부처님이 왜 안 도와주시겠어요.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풀라고 주어지는 거예요. ‘자꾸만 풀어라. 그럼 실력이 는다. 내가 도와줄게.’ 그런 것입니다. 세세생생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닥쳐오겠습니까. 금생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아라한에 오른 제자들을 앉혀놓으시고도 “너희는 앞으로도 무량한 지옥을 거쳐 가야 할 것이다.” 이러셨어요. 저도 요즘 연말이고 보니 이일 저일 매우 바쁘고 너무 힘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대상포진이 와서 아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신도님들이 모두 절에 오시는데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아프면 ‘제까짓 게 얼마나 아프겠어.’ 하면서 견뎌내는 수밖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간 최대의 약점은 자기경시입니다. 정말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자기 계량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불하는 존재라는데 어떻게 한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거 신문사를 인수할까, 말까? 그래 좋아, 내가 어렸을 때 마음먹었던 거니까 해보자.’ 그래서 부산의 국제신문을 인수한 거예요. 지금은 그래도 잘 굴러가니 다행입니다. 행동이 두려움을 치유합니다. 절대로 겁내지 마세요. 우린 부처님 아들딸입니다. 우리는 성불을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들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우주는 영원한 반복</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다른 건 다 속일 수 있는데 사람의 눈빛만은 속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임종자의 눈을 보면 그래요. 겁먹은 눈, 공포에 질린 눈, 두려움에 떠는 눈입니다. 그런 눈 하지 말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런 분의 눈을 보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 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오늘은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감 넘치는 눈은 어떤가, 자신의 눈빛을 살펴보세요. 거울을 보고 “부처님, 저는 정말 열심히 살다 갑니다. 저는 임종하는 날 힘찬 눈빛으로 부처님 나라에 가겠습니다.”다짐해보세요. 부처님 말씀은 그냥 듣고 말아버리는 인식의 대상의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은 실천의 대상입니다. 행동해야 할 강령입니다. 실현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거예요.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은 싸움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시비를 걸어도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아니한다.’ 이거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의 몸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녹아 있습니다. 조상님을 잘 모시라고 하는 이유도 제가 체험한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아버지 임종을 못 지켰거든요. 산중에 도망가 있는데 돌아가셨어요. 근데 아버지가 꿈에만 나타나면 나쁜 일이 계속 벌어졌어요. 또 제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토끼를 키우셨습니다. 일본산 토끼라고 꽤 컸었어요. 가죽은 벗겨서 팔고, 고기는 고기대로 팔고 하셨지요. 저도 토끼모이를 해다 대느라 애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그런 토끼를 팔면 제게 학용품도 사주시고 과자도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200여 마리나 되는 토끼를 키우다보니 토끼들의 배설물도 엄청났어요. 할머니가 고무신을 신고 모이를 주시다 토키 오줌을 밟아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치셨는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중이 된 다음에도 계속 그들 조상님들이 꿈에 나타나는 바람에 지금은 꼭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이런 말씀을 드리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분의 제사를 의뢰를 받았어요. 근데 그 전날 제 아버지가 딱 꿈에 나타나신 거예요. 저는 그분들의 제사를 지내면서 꼽사리로 우리 아버지 이름을 같이 올려드렸다니까요. 또 어느 날은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시기에 할머니 이름을 꼽사리 끼어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아, 근데 그렇게 한 1년간 계속하다보니까 할머니가 선명하게 꿈속에 환한 얼굴로 나타나서는 “고맙다”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뒷걸음질 치면서 빛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그 이후엔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그래서 ‘아, 천도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 다음부터 일체 나타나지 않으십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저는 지금까지 법회를 삼십 여년을 하고 있지만 항상 체험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몽은 선몽인데, 돈이 한 푼 없다고 맥 놓고 있으면 선몽은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여러분이 선몽이라고 여겨지면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길이 열리게 돼 있습니다. 선몽이다 싶으면 움직여야 합니다. 행동해야 해요. 지금의 능인선원이 된 이 터도 제 돈 하나 없이 부처님이 선몽으로 주신 겁니다. 여러분, 정말 부처님을 믿고 가세요. 여러분은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부처님과 함께임을 잊지 말란 말이에요. 몸과 마음을 다해 계속 기도하면 됩니다. 내 뜻을 담아서 부처님께 상의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해보세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주는 영원한 반복입니다. 어려운 문제는 부처님이 다 해결해주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오고 힘든 문제가 온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시키신 일인데 하세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게 항상 문제가, 적이, 고통이 나를 키워준다는 것입니다. 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문젯거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문제를 풀어봐야 실력이 늘어납니다. 이 우주에 문제없는 곳은 없습니다. 저도 어떤 문제가 닥쳐오면 성질이 나지만 속으로 웃습니다. ‘이거 또 어떻게 풀지? 부처님, 풀고 나가게 해주십시오.’ 네, 그럼 시간이 지나면 푸는 거예요. 문제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문제를 타박하지 마시고, 고통을 타박하지 마세요. 우연은 반드시 준비된 사람에게만 옵니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부처님의 아들딸임을 몰라서 그래요. 자기무지에 대한 보복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마음으로 흘러듭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4.간절히 기도하라, 이루지 못할 것 없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을 따라가면 위대한 영광의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닿는 대로 능인대학원대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해보세요. 그리고 부처님을 꼭 체험해 봐야 합니다. 여긴 말 배우는 법당이 아닙니다. 체험을 해보는 곳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됩니다. 일체유심조라고 그랬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됩니다. 저는 스님된 걸 아주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부처님, 세속에서 뛰고 감옥에 드나드는 것보다 이렇게 머리 깎고 살게 돼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사랑을 받습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의 사랑을 받아요. 부처님을 사랑하면 부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무조건 해보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얼마나 부처님을 사랑하세요?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물어보세요. ‘난 얼마나 부처님을 사랑하는가? 난 얼마나 부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좋은 걸 좋게 못 쓰면 그것은 나쁜 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산소 마십니다.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독심이 쌓이면 우리 몸에 유익한 산소가 활성산소로 바뀐대요. 일종의 산소의 변형인데 그것이 수명을 감퇴시킵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신데 이걸 잘못 쓰면 나쁜 곳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가장 큰 원수가 되는 겁니다. 요즘 ‘소확행’이라고 그러죠? 너무 거창한 걸 하기보다 소소한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양심이 거부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헤겔 말마따나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덴 양심의 법정이 있습니다.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을 하면 사고가 납니다. 왜 ‘음식이 정신을 만든다.’ 그러잖아요. 육신에만 좋은 음식은 정신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찰음식을 추천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데는 ‘네가 그 일을 해서 되겠니?’ 또 하나는 ‘너는 분명히 해낼 수 있어.’하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현실로 향하는 영혼이 있고 영원을 향하는 영혼이 있지요. 양자의 끊임없는 싸움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근데 그 같은 괴로움이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절대로 지지 마세요. 두 개의 영혼이 우리를 숭고하게 만듭니다. 한 생각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지만 깨닫고 보면 부처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된다고 생각하는 스위치를 넣으면 됩니다. 자기경시는 금물입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는 이유는 무지 때문에, 무명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이 부처님의 아들딸임을 거부하는 거예요. 부처님을 향한 뜨거운 신심은 무한창조력의 스위치입니다. 우리는 그거 배우자고 여기 와 앉아있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어떤 분이 저를 보고 그럽니다. “중이 신문사 차려서 뭐하냐?” 그래서 제가 그럽니다. “나는 어렸을 때 신문팔이를 해서 그런지 꼭 한번 신문사를 해보고 싶었어.” 저는 신문하고 참 인연이 많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훌륭한 분이 나타나면 그 신문사도 넘겨드릴 생각입니다. 능인선원도 능인대학원대학을 나온 훌륭한 분들이 법당을 운영해가게 할 겁니다. 제가 우리 스님들한테 그럽니다. “너희, 학교 다시 다녀서 석사 박사 다 받고, 그래서 잘하는 놈 있으면 내 물려주고 갈 거다. 열심히 기도해.” 결국 제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인지 아닌지는 저 자신이 키워낸 사람을 보면 아는 거니까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 아들딸, 위대한 수행자의 사고방식은 행동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실천으로 연결돼 있어요. 부처님 말씀대로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정말 기도하면 이루지 못함 없습니다. 부처님 직설입니다. ‘내가 한다고 될까?’ 이런 생각 하지마세요. 인간의 최대의 약점은 자기경시입니다. 앞으로도 능인선원은 여러분과 함께 또 다른 차원으로 계속 나갈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능인선원을 꿋꿋하게 지켜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PAN></P>2019-01-30 오후 3:21:14공부는 왜 하는가, 수행은 왜 하는가/Media/law/Read.aspx?db_cnt=80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신념(信念)</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갑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시간들을 잘 마무리해보시기 바랍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우리는 누구나 미래지향성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 고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잖아요. 그 부처님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계속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몸과 마음이 고장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홍서원이나 여래십대발원문을 챙깁니다. 원(願)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라는 거예요. 세속에서는‘희망을 가져라’하는데 불교에서는 원력을 가지라고 얘기하거든요. 부처님은 “원력이 없는 자는 나의 아들딸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돈 많이 벌어야겠다’하는 생각도 어떻게 보면 원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나아가려는 마음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의사가 쓴 책인데 그 중에“사람들이 하루에 일정한 시간 걷기만 해도 90프로의 병이 낫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걷지 않아서 병이 생긴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시간 나는 대로 집 주변을 산책해보세요. 몸과 마음은 언제나 같이 갑니다. 제프 스펙 같은 세계적인 도시계획 전문가도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Walkable City)’무릇 모든 도시에는 걷는 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도시를 설계한다고 합니다. 걷다보면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어 활력이 생기고 그래서 일자리가 많아지고 따라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일하는 공간도 많이 걷는 구조로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느 철학자는 친구(friends)란 단어의 철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f, Fight for you, 너를 위해 싸워줄 수 있는 사람. r, Respect you, 너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 I, Include you, 네 삶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사람. e, Encourage you, 네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 n, Need you.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 Deserve you, 항상 더불어 할 수 있는 사람. 끝으로 s, Stand by you, 네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렇게요. 심지어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마크 빅터 한센은 “좋은 친구는 브래지어와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가슴을 단단히 잡아주는 속옷과 같이 가까이서 힘을 보태주는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업을 키우고 권력을 잡으려면 결국 많은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실력이 출중해도 주변에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보살심을 강조하셨습니다.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되라는 것입니다. 보살심을 끊임없이 키워가야 합니다. 용기는 신심에서 나옵니다. 수행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제가 자꾸 기도하라고 아우성치는 이유도 열심히 기도한 사람의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들에게 성스런 이미지를 주면 그들이 달라지거든요. 하늘은 우리의 모든 것이고 부처님입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의 밑바탕엔 신념이 있었습니다. 실패하는 가운데서도 ‘이건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지요. ‘실패를 통해서 부족했던 도전정신을 배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실패를‘하늘이 나를 버렸다, 신이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하늘이 나에게 큰 힘을 주기 위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개념부터 다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실패,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자, 용기 있는 자가 부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아는 사람이에요. 유대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신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에디슨도 유대인 아닙니까? 천 번 이상 실패했어도“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실수했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는‘하늘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나에게 좀 더 큰 힘을 주기 위해 하늘이 기회를 부여하셨다.’라는 생각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과 영원을 같이 삽니다. 그런데 영원과 현실이 함께인 삶을 살지 않아서 문제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안 모이는 거지요. 신념이 중요하고 신심이 중요합니다. 왜냐? 우리는 복합체거든요. 가족에게 직원들에게 그 누구에게든 분명 하늘이 우리를 도울 거라는 ‘신념’그대로를 전달하면 충분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영원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뉴욕 브루클린에 어떤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는 건물이 너무 오래되었고 불량 학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로운 선생님이 오게 됐어요. 그는 낡은 교실을 수리하기 위해 교육청에 시설 자금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안 주는 거예요. 그러자 교장한테“창문을 좀 크게 해야겠습니다.” 했더니 교장은“돈이 어디서 나와 하느냐?”하더래요. 생각다 못한 선생님은“자신이 담당한 학급의 교실만이라도 제 월급으로 하겠습니다.”하고는 창문을 더 크게 반듯하게 고쳤답니다. 창문을 고치고 나니 그 반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네, 하늘을 바라보니까 마음이 열리잖아요. 브루클린의 불량학생들이 다니던 학교가 우수한 학교가 된 것입니다. 창문만 뜯어고쳤는데 말입니다. 영원과 현실은 항상 같이 갑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 영원, 하늘을 생각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늘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면 앞이 탁 터져야 하거든요. 스마트폰 중독이 마약중독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사고력, 집중력, 상상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어요. 아주대 연구팀에서 390명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까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의 유아들 가운데 15프로 정도가 스마트폰을 매일 만진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서에서 나온 데이터에도 세 살부터 아홉 살까지 아동의 다섯 명 중 세 명이 매일 스마트폰을 만지고 산대요. 그거 조심시켜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미국 실리콘밸리에 가면 발도로프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주로 실리콘밸리의 유수한 IT 전문가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불허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거죠. 하느님, 부처님, 영원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아이디어의 세계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공간은 전부 하늘과 통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원으로 통해요. 그렇다면 그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생활하는 곳, 법당입니다. 저기 돌아가신 분들이 십만 명 이상 계시잖아요. 조상에 대한 감사, 부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한국이 지금까지도 일본에 질질 끌려가며 고통 받는 이유가 뭐겠어요? 과거 일본은 개방정책을 일찍 시행했습니다. 우리는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쓰는 바람에 외세로부터 이리저리 침략을 당했습니다. 들어오는 물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곳이 세상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그 마음이 영원을 향해 열린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나를 도와주시건 아니 도와주시건 그건 놔두고 내 마음이 우선 열려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영원을 머금고, 허공을 머금고, 부처님을 머금고 살아가세요. 머금는 삶이야말로 마음을 영원으로 가득 채우는 아주 귀중한 열쇠가 됩니다. 우리는 너무 땅만 바라보고 삽니다. 우리의 본질은 하늘인데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이 기억력도 출중합니다. 관찰력, 창조력, 상상력 등의 공감각 능력이 탁월해져요. 열려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열리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지만 모두를 수용하는 마음자세를 가져보세요.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성적이기 보다 비이성적인 경우의 사람도 있어요. 자기중심적이고 비논리적이지요. 다종다양합니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떡합니까, 우린 한 덩어리로 사는데요. “쟤는 안 돼.” 이거 아니에요. 언젠가 인연 따라 또 만나게 되니 누구든 내치지 말고 그냥 안고 가야 합니다. 왜냐?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참회의 눈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이 있지만 사실 큰 집들도 순간에 넘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린 꾸준히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계속 걷지 않으면 병납니다. 하루에 일정 시간 걸으세요. 정진하지 않는 건 비정상입니다. 우리의 의무는 끊임없이 나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운명인데, 나아가지 않으니 기계가, 몸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양 잘하는 건 아니니 날마다 참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처님도“참회가 없는 자에겐 내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잘못한 건 뉘우치세요. 참회의 눈물이 없는 자들은 병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속상하고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밖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진 마음이 핏속에 독이 되어 흐르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후 10개월까지의 아기들은 하루에 보통 세 시간 이상을 운다고 합니다. 엄마 뱃속, 깜깜한 세계에서 280일 동안 사느라 답답했던 마음을 토해내는 거래요. 또 생후 12개월 정도가 되면 하루에 세 시간 울고 세 살 되기까지 하루에 두 시간 운답니다. 열 살이 되기까지 일주일 동안 두 시간 12분씩 운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10대, 20대로 성장해갈수록 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울지 않아요. 참회하지 않습니다. 당장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위산과다로 속이 쓰립니다. 병이 나지요.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몸 안에 독소가 빠져 나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참회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입니다. 살기 위해서 우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참회해야 합니다. 우선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나 남편과 손 맞잡고 백팔참회라도 해보세요. 그럼 몸 안의 독소가 쭉 빠져나갑니다. 스스로 참회하지 않으면 부처도, 신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범망경 보살계에 보면 부처님 법문 듣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인간, 탁마하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비정상의 길을 가게 됩니다. 부처님 마지막 유언이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는 거잖아요. 자꾸만 앞으로 걸어가세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해탈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 병이 나고 맙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옛날엔 부(富)가 개인에게 몰렸습니다. 이젠 그 부가 전부 기업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기업시민(enterprise citizen)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시민으로서의 구실, 즉 사회적인 어떤 책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지요. 기업이 사회봉사, 사회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징계를 받게 돼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기업을 운영하게 된다면 일정한 부분 사회에 기여하고, 복지, 봉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모든 재원이나 부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기업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더욱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는 미국 대법원 판결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경제적인 가치와 사회적인 가치의 동반추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기업이 성장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갈 게 분명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몸과 마음을 모아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세요.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만약 가다가 실패를 하게 될 때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함께 가야 합니다. 개인도, 기업도, 나라도, 우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으면, 내가 그릇된 마음을 가지면 곧바로 독소가 됩니다. 비가 내린 뒤 무지개가 뜨듯이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내 마음에 무지개가 뜹니다. 우린 너무 참회를 할 줄 모릅니다. 기업도 기업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살아요. 나라의 좋은 정책이라도 갑자기 시행하다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녹용이나 산삼과 같은 보약도 몸이 받쳐주지 않으면 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속도를 슬기롭게 조절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날마다 집안 청소를 하듯이 날마다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몸과 마음 가운데 독소를 제거하고 내일을 위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가 절실한 시대가 올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제 아이들 교육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들이 하고 싶은 참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머리 깎고 살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저처럼 머리를 깎고 스님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 그럼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거든요. 젊은이들이 일정 기간 군대에 가듯 일정 기간 동안 절에 들어가 생활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계종 사찰이 3천5백 개래요. 스님들은 약 7,8천 명이고요. 일본은 스님들만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중국도 후진타오 때 백만 명 승려 양성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우리와는 경쟁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도 템플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절에서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환경을 늘려나가면 좋겠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법 공부란 자기 자신을 아는 공부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건 곧 자기를 버리는 거잖아요. 참 나를 찾아가는 것, 이기적인 나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 때문에 탐심, 진심, 치심의 탐진치가 오거든요. 수행은 이러한 탐진치 삼독심을 녹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것도 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싸우는데 꼭 많이 쌓아놔야 좋은 건 아닙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실 스님 생활도 어렵긴 합니다. 일도 많고요. 하지만 여러분과 더불어 부처님 말씀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어떠한 경우라도 나는 부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즐겁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내가 나를 지켜보고 다짐하며 사는 거예요. 순간순간 나를 지켜보는 힘이 강화되는 거, 그게 위빠싸나입니다. 찰나생 찰나사, 순간순간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이 죽어가는가를 알아차리고 닦아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심을 제거하기 위해 첫째, 끊임없이 공덕을 쌓으라하셨습니다. 두 번째, 자기 정화, 참회하라 하셨지요. 세 번째, 이 세상을 나보다 먼저 하직한 나의 선조 영혼들에게 예경을 올리라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조상님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음이에요. 눈에 안 보이니까 관심 없어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가능한 한 제사를 잘 지내는 게 좋습니다. 그들 영혼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가족이 편안합니다. 네 번째, 불보살과 호법선신들께 끊임없이 기도 올리고 공양 올리라 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를 잊지 마세요. 삶에는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많이 공부해라. 많이 들어라. 들은 다음에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하니까 많이 생각해라. 듣고 생각하고 그다음 닦아라. 경솔함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내적인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현실과 영원이 함께하는 법당입니다. 가정도 법당입니다. 나라도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이나 저나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중생을 돕는 겁니다. 이타행입니다. 이타행을 하면 이기심이 깨집니다. 그리고 애착을 녹여야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원력을 세우고 나아가면 됩니다. 요즘 나라 안팎의 상황을 보면 IMF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하늘이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나에게 좀 더 힘을 쌓으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세요.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부처님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잘 견뎌내야 합니다. 덧없는 것에 신경 쓰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기적인 마음 내려놓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공부하지 않는 건 비정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왜 능력을 쌓습니까? 많은 중생을 사랑하기 위해서, 위대한 용기와 신심으로 무량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참회하고 용기를 내서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가세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SPAN></P>2019-01-16 오후 2:44:29일을 이루기는 어려우나 그르치기는 쉽다. 이름은 세우기 어려우나 무너뜨리기 쉽다/Media/law/Read.aspx?db_cnt=80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때를 잘 읽어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일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설사 어느 정도 성취했다 하더라도 사고가 나거나 화재가 나면 한 방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일을 이루기는 참 어렵지만 그르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자-일이라고 하는 것은, 난성이라-이루기 어렵다, 그러나 이파니라-쉽게 깨진다 이거죠. 명자-이름이라고 하는 것도, 난립이라-세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폐-사라져 버리기는 용이하다, 그런 얘기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있습니다. 또 한신이라고 행정을 잘 했던 소하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죠. 그리고 지략가 장량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명장 중의 명장입니다. 참 묘한 게 이 세 사람이 우리가 일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웅변해줍니다. 장량은 지금도 장량의 꾀라고 말할 정도로 지혜로운 인물입니다. 장량은 나라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조용히 물러나 유유자적한 인물이었습니다. 소하도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그러고 물려주고 떠납니다. 그런데 소하, 한신은 자기가 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고 떠벌리고 다니다 결국은 포박돼 살해당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보살의 정의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름을 얻는 사람들은 사심(私心)을 놓아버릴 줄 압니다. 사람들을 항상 그런 이를 칭송합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면 세월이 흘러도 알게 되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해 일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그래서 제가 세상을 살면서 항상 타이밍을 잘 맞춰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잖아요. 부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내가 내려갈 때가 되었는가, 아니 되었는가 하늘의 아들들과 상의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로 갈 것인가, 어느 종족에 태어날 것인가, 어느 부모를 만날 것인가 이렇게요. 누구든지 일어날 때와 앉을 때가 있습니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가 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 이루었다 해도 상대가 잘났다는 건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잘났다고 그러면 듣는 사람은 못났다는 얘기니까 그래요.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장량 같은 지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신은 많이 알려진 용맹한 장군이었으면서도 포박돼서 결국 살해되었으니 말입니다. 때를 잘 이겨야 합니다. 때를 잘 읽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요즘 AI(인공지능)시대다, 4차 산업혁명시대다, 백세시대다 해서 전 세계가 들끓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재양성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계속 되고 있지요. 그런데 참 묘한 게 하버드나 MIT, 콜럼비아나 스탠포드와 같은 유수한 대학에서 대학의 교양필수과목으로 음악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하버드에서도 음악교육과정을 교양필수로 집어넣고, 콜럼비아 대학은 과거보다 음악회를 빈번하게 열고, MIT도 꼭 음악을 이수해야 한다는 과정을 집어넣었대요. 스탠포드도 연간 150회 이상의 콘서트를 대학 내에서 열라고 지시했답니다. 음악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걸 연구한 결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몸과 마음을 연소하다 보면 여가나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가 사람을 쉬게 해야 한다는 걸 교육행정가들도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올지 우린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대로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할지언정 마음은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한 시대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글이나 애플에서는 마음을 쉬게 하는 참선이나 명상을 한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자신을 불태우는 삶</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무명(無明)이 대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이름을 날리려거나 돈 많이 벌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이 몸을 던지러 온 거거든요. 이 몸을 불태우러 온 거예요. 이 몸은 사실 허상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죽어요. 죽을 때 아깝다고 백날 울고불고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이 몸을 불태워서 허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라밀다의 참뜻을 실천하다 가야 합니다. 육바라밀의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가 나를 불태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을 불태워본 적이 있나’ 생각해보세요. 나이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수행은 이기심을 불태우는 과정입니다. 수행은 어둠을 광명으로 바뀌게 합니다. 우리는 원래 어둠의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빛의 존재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여러분은 오늘 아침에도 공양을 드셨겠지만 그것 역시 전부 빛의 합성물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빛이 되라, 등불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무명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 육신이 무명의 덩어리니까 이 육신을 불태워 광명이 되어야 해요. 수지신시광명당, 그러면 수지심시신통장이 된다, 이거잖아요. 바라밀다는 내 몸을 불태우는 덕목입니다. 부처님은 “네 자신을 태워보면 네 자신이 빛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자신을 불태우면서도 날 알아달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빛은 그냥 빛을 발할 뿐입니다. 내가 잘났다, 빛은 그런 소리 안 합니다. 자기 자신이 빛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성불(成佛)입니다. “내 자신을 불태울 마음만 내면 위대한 부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이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고 인품이 고양되는 게 아닙니다. 육법전서를 통달했다고 거기서 인품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인품은 고뇌하는 가운데, 부처님 말씀을 내 것으로 실천하면서 나를 불태우는 과정 가운데 형성됩니다. 요새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도 그들의 품격이 부족한 탓이라고 보면 옳아요. 아무리 법을 공부했어도 내면에 있는 빛의 통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는 얘기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 불은 꺼집니다. 원아불퇴보리심, 불을 꺼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어떤 의지나 용기가 있어야 유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라도 경제력이 막강해져야 할 텐데 요새 많은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유능한 리더십이랄까! 그게 쉽지 않아 걱정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견인불발의 의지로 자신을 불태우는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어떤 분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제게 물어요. “왜 자비도량참법을 하는데,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보이지 않는 모든 허공계에 계신, 악도에 계신 그들의 참회까지도 우리가 대신 참회해야 합니까?” 근데 사실은 중요한 게 우리가 몸과 마음이 하나라고 그러죠? 환경, 주변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거예요. 우리는 환경의 동물입니다. 마음 나라는 하나인데 선조들 가운데 악도에 가 계시지 않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다고 자신 있게 말할 분 계세요? 악도에 떨어져 있는 인연영가들, 조상님들이 계시다면 그들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여기도 지금 힘든데 여기보다 더 힘들 거예요. 그러면 계속 자손들에게 SOS를 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목련존자 얘기 많이 하잖아요. 목련존자 어머니가 악도에 떨어져 고생하니까 그는 부처님을 찾아가 “제 어머니 좀 제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랬더니 부처님은 “너 혼자 힘으론 어렵다.”하셨습니다. 그래서 7월 백중 때까지 스님들하고 모든 수행자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공덕을 쌓아 함께 천도해드린 게 우란분재잖아요. 우리와 인연 있는 영가들, 조상들이 지옥에 떨어져 축생, 아수라로 아픔과 쓰라림에 있으면 우리의 삶도 별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전쟁이 많았던 나라 아녜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자꾸만 기도하고 천도재를 하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기도를 하면 주변의 많은 인연영가들이 달려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자석이 되는 거예요. 자석은 끌어들이잖아요. 우리가 기도하고 열심히 정진하면 악도의 모든 중생도 편히 쉴 수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게 그저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 않냐, 이런 사고방식이거든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면 먼저 선산에 가서 예경을 올립니다.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선대들이 만들어놓은 의식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계속해서 내려올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도 “대를 거르면서 계속 내려오는 가운데 진리가 들어 있고 법이 들어 있다.” 하셨거든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몸과 마음을 불태우고 천도하는 마음으로 불태우면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람들이 날 좀 살려달라고 모여들게 되고 그러면 저절로 무량대복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여러분 스스로를 자석으로 만들어보세요. 그럼 다 빨려 들어옵니다. 제가 언젠가 진공청소기 얘기했지요? 진공청소기(vacuum cleaner)는 그 안은 텅 비어있어요. 진공이니까 주르륵 밀고 나가면 먼지가 다 빨려 들어가듯이 탁월한 인물, 인정받는 사람은 대체로 사심 없이 텅 비운 자들이에요. 자기를 버리고 비운 사람들, 바라밀다의 화신들입니다. 사심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이의 사랑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일이 잘 되질 않지요. 다 보이거든요, 다 알고.</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정진을 하되 상을 버리자</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참선을 한다, 기도를 한다, 이게 전부 집중입니다. 집중(concentration),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가 되면 사심이 녹아요. 하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나로 모으면 분산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른바 집중은 응집된 힘을 갖거든요. 금속공학에서도 전기가 들어가면 그 금속에 있는 분자들이 일관성을 갖는다잖아요. 볼록렌즈도 그냥 던져놓으면 유리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햇살을 받아 하나로 모아지면 종이를 다 태워 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해야 해요. 공심(空心)이 돼야 하늘의 힘이 작용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이 작용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선 남에게 뭔가 베풀고 펼쳐보세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옛날엔 관공서에 급행료라는 게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베풀면 시간이 단축됩니다. 시간이 금이니까 내가 금을 베풀면 시간을 사는 거예요. 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좋아합니다. 짜장면도 같이 먹고 국수도 같이 먹고 커피도 좀 사고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하나가 된다.’이거에요. 베푸는 마음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위대한 힘이 작용합니다. 부처님도 이화동균(利和同均), 이익이 나면 남들과 고르게 나누라 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화엄경에 나옵니다. 한 나라 왕이 되려면 그 나라 국민이 과거생에 모두 그 왕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나라님도 하늘이 낸다고 하고 큰 부자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중요한 건 아무나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게 인연이 닿아야 해요. 저도 많은 분을 만나서 돈 많이 번 사람, 권력을 드날린 사람의 얘길 들어보면 그 가운데 한 줄거리씩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공덕이 허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심을 가지고 공덕을 짓는 자, 그들을 보고 하늘이 감응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고 합니다. 정신일도가 뭐예요? 기도하는 거잖아요.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겁니다. 기도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이유도 마음을 한데로 모으면 강력한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다 각도를 맞추면 힘이 쌓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만 공을 들이는 거예요. 공을 쌓아가는 게 성공입니다. 끊임없이 쌓아가세요. 쌓아감에 끝이 없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정진을 하되 상을 버리는 것, 그게 부처님이 요구하신 보살상입니다. 내가 뭘 이뤘다, 그러면 다시 거기서부터 또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좀 잘났다, 이거 곤란한 얘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이루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수긴 쉬워요. 내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보세요. 내가 그동안 남에게 많이 베풀었어요.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했다고 그다음부터 띵까띵까 놀면 죽는 거예요. 공덕 무한입니다. 절대 겸손해야 합니다. 금강경에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듯이 잘했다고 폼 잡지 마세요. 저도 항상 경계하고 삽니다. 우리의 가치는 내가 세상에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더 이상 줄 게 없다면 그 사람 꽝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슬픔은 바다와 같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니까요. 헤엄치는 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영원을 가는 바다이기 때문에 계속 헤엄을 쳐야 해요. 헤엄치는 힘이 떨어지면 바다에 빠져 죽거든요. 계속 기운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무한한 힘의 실재는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만 공부하라고 그러고, 기도하자고 그러고, 공덕을 쌓자고 그러는 겁니다. “그대의 가치는 그대가 세상에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요. 부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무한히 주시잖아요. 태양도, 공기도, 바람도, 비도, 무한히 주십니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너는 부처를, 나를 잘 모르는구나. 부처란 자리는 공덕 닦기에 더 이상 부지런한 자가 없는 자리, 나보다 지혜를 닦기에 더 이상 부지런한 자가 없는 자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있다’ 생각하면 멀리 못 갑니다. 부서지기 딱 알맞습니다. 그냥 가는 거예요. 계속 헤엄치고 가는 겁니다. 도리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4.인간(human being)의 속성</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간을 이른바 ‘human being’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being의 존재예요. 말을 참 묘하게 만들었지요. becoming, 계속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영원을 가는 존재인데 전체성을 망각하고 산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우린 전체고 하나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석이 되라, 이거예요. 진공청소기, 볼록렌즈, 기중기가 되어보세요. 중요한 건 우리가 한 분도 빠짐없이 지금도 부처님이고, 앞으로 부처님 되실 분이라고 그랬잖아요. 부처님도 새벽별 보고 깨치셨다고 합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에 빛나는 별은 하나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전체성이 너무 박약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모든 문제는 어떻습니까? 복합적이지요. 여러 가지로 꼬이거나 연결돼있습니다. 그런 걸 풀어내려면 많은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에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오.” 라고 했듯이 참는 게 왕입니다. 부처님도 “이 우주에 무릇 마음을 낮추고 견인불발의 의지를 가진 자들은 부처님 복이 자기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남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게 인생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나를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나아가서 나를 얼마나 우러르는가? 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전체를 생각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불성, 신성이 강화됩니다. 이른바 법력이 쌓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내가 이익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별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좀 덜 먹어야 상대방이 좋아합니다. 내가 나를 불태우고 나를 내려놔야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합니다. 그들과 나누는 건 좋은데, 주는 사람 입장은 어떻게 돼요?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비용이 듭니다. 비용이 늘어나면 기업 운영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양면성이 있다니까요. 그런 것도 감안해야 할 텐데 임금만 올리다 보면 비용부담이 큰 기업은 직원을 줄여야 하고 그에 따른 생산성이 떨어지니 문제가 됩니다. 임금(賃金)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받는 근로자는 소득이지만 주는 사람은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제가 역사를 쭉 조사해 본 적이 있는데 과거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계속 싸웠습니다. 그 당시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비해 병력이 3분의 1밖에 안 됐어요. 인구도 3분의 1이에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에는 아테네가 전성기였지만 결국 스파르타한테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그래서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또 11세기 송나라 인구는 1억 명 최강대국이었습니다. 철강생산이 1년에 10만 톤 이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4백만밖에 안 되는 거란에게 연패 당했습니다. 결국 남송시대를 거쳐 송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또 17세기 명나라는 인구 1억 5천만이에요. 근데 후금의 누르하치가 지휘하는 6만 5천 명의 팔기군에 쓸려 패망합니다. 그래서 명나라가 청나라가 됩니다. 더 기가 막힌 게 20세기 들어와서 모택동 당시 국민당이 430만이에요. 함정, 야포, 다 갖추고 있었어요. 공산군은 100만 명이었지요. 4대 1이에요. 그런데도 완전히 패망해서 공산당이 됐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지금 우리나라도 경제력 크다고 자만하는데 경제력 월등하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개인도 나라도 끊임없이 단련해야 합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입니다. 지금 웬만큼 잘 먹고 잘 산다고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일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깨지는 것은 여반장입니다. 이름을 세우기는 어렵지만 깨뜨리는 건 시간문제예요. 너와 내가 힘을 합해 전체성을 키워가야 합니다. 모든 곳에 양면성이 있음을 위정자들도 자각해야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법 없습니다. </SPAN></P>2019-01-16 오후 2:31:21공부는 왜 하는가, 수행은 왜 하는가/Media/law/Read.aspx?db_cnt=80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신념(信念)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갑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시간들을 잘 마무리해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우리는 누구나 미래지향성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 고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잖아요. 그 부처님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계속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몸과 마음이 고장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홍서원이나 여래십대발원문을 챙깁니다. 원(願)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라는 거예요. 세속에서는‘희망을 가져라’하는데 불교에서는 원력을 가지라고 얘기하거든요. 부처님은 “원력이 없는 자는 나의 아들딸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돈 많이 벌어야겠다’하는 생각도 어떻게 보면 원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나아가려는 마음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요즘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의사가 쓴 책인데 그 중에“사람들이 하루에 일정한 시간 걷기만 해도 90프로의 병이 낫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걷지 않아서 병이 생긴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시간 나는 대로 집 주변을 산책해보세요. 몸과 마음은 언제나 같이 갑니다. 제프 스펙 같은 세계적인 도시계획 전문가도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Walkable City)’무릇 모든 도시에는 걷는 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도시를 설계한다고 합니다. 걷다보면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어 활력이 생기고 그래서 일자리가 많아지고 따라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일하는 공간도 많이 걷는 구조로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느 철학자는 친구(friends)란 단어의 철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f, Fight for you, 너를 위해 싸워줄 수 있는 사람. r, Respect you, 너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 I, Include you, 네 삶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사람. e, Encourage you, 네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 n, Need you.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 Deserve you, 항상 더불어 할 수 있는 사람. 끝으로 s, Stand by you, 네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렇게요. 심지어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마크 빅터 한센은 “좋은 친구는 브래지어와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가슴을 단단히 잡아주는 속옷과 같이 가까이서 힘을 보태주는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업을 키우고 권력을 잡으려면 결국 많은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실력이 출중해도 주변에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보살심을 강조하셨습니다.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되라는 것입니다. 보살심을 끊임없이 키워가야 합니다. 용기는 신심에서 나옵니다. 수행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제가 자꾸 기도하라고 아우성치는 이유도 열심히 기도한 사람의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들에게 성스런 이미지를 주면 그들이 달라지거든요. 하늘은 우리의 모든 것이고 부처님입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의 밑바탕엔 신념이 있었습니다. 실패하는 가운데서도 ‘이건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지요. ‘실패를 통해서 부족했던 도전정신을 배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실패를‘하늘이 나를 버렸다, 신이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하늘이 나에게 큰 힘을 주기 위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개념부터 다릅니다. 실패,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자, 용기 있는 자가 부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아는 사람이에요. 유대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신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에디슨도 유대인 아닙니까? 천 번 이상 실패했어도“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실수했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는‘하늘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나에게 좀 더 큰 힘을 주기 위해 하늘이 기회를 부여하셨다.’라는 생각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과 영원을 같이 삽니다. 그런데 영원과 현실이 함께인 삶을 살지 않아서 문제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안 모이는 거지요. 신념이 중요하고 신심이 중요합니다. 왜냐? 우리는 복합체거든요. 가족에게 직원들에게 그 누구에게든 분명 하늘이 우리를 도울 거라는 ‘신념’그대로를 전달하면 충분합니다. 2.영원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 뉴욕 브루클린에 어떤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는 건물이 너무 오래되었고 불량 학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로운 선생님이 오게 됐어요. 그는 낡은 교실을 수리하기 위해 교육청에 시설 자금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안 주는 거예요. 그러자 교장한테“창문을 좀 크게 해야겠습니다.” 했더니 교장은“돈이 어디서 나와 하느냐?”하더래요. 생각다 못한 선생님은“자신이 담당한 학급의 교실만이라도 제 월급으로 하겠습니다.”하고는 창문을 더 크게 반듯하게 고쳤답니다. 창문을 고치고 나니 그 반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네, 하늘을 바라보니까 마음이 열리잖아요. 브루클린의 불량학생들이 다니던 학교가 우수한 학교가 된 것입니다. 창문만 뜯어고쳤는데 말입니다. 영원과 현실은 항상 같이 갑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 영원, 하늘을 생각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늘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면 앞이 탁 터져야 하거든요. 스마트폰 중독이 마약중독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사고력, 집중력, 상상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어요. 아주대 연구팀에서 390명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까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의 유아들 가운데 15프로 정도가 스마트폰을 매일 만진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서에서 나온 데이터에도 세 살부터 아홉 살까지 아동의 다섯 명 중 세 명이 매일 스마트폰을 만지고 산대요. 그거 조심시켜야 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면 발도로프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주로 실리콘밸리의 유수한 IT 전문가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불허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거죠. 하느님, 부처님, 영원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아이디어의 세계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공간은 전부 하늘과 통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원으로 통해요. 그렇다면 그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생활하는 곳, 법당입니다. 저기 돌아가신 분들이 십만 명 이상 계시잖아요. 조상에 대한 감사, 부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한국이 지금까지도 일본에 질질 끌려가며 고통 받는 이유가 뭐겠어요? 과거 일본은 개방정책을 일찍 시행했습니다. 우리는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쓰는 바람에 외세로부터 이리저리 침략을 당했습니다. 들어오는 물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곳이 세상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그 마음이 영원을 향해 열린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나를 도와주시건 아니 도와주시건 그건 놔두고 내 마음이 우선 열려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영원을 머금고, 허공을 머금고, 부처님을 머금고 살아가세요. 머금는 삶이야말로 마음을 영원으로 가득 채우는 아주 귀중한 열쇠가 됩니다. 우리는 너무 땅만 바라보고 삽니다. 우리의 본질은 하늘인데요.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이 기억력도 출중합니다. 관찰력, 창조력, 상상력 등의 공감각 능력이 탁월해져요. 열려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열리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지만 모두를 수용하는 마음자세를 가져보세요.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성적이기 보다 비이성적인 경우의 사람도 있어요. 자기중심적이고 비논리적이지요. 다종다양합니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떡합니까, 우린 한 덩어리로 사는데요. “쟤는 안 돼.” 이거 아니에요. 언젠가 인연 따라 또 만나게 되니 누구든 내치지 말고 그냥 안고 가야 합니다. 왜냐?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참회의 눈물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이 있지만 사실 큰 집들도 순간에 넘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린 꾸준히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계속 걷지 않으면 병납니다. 하루에 일정 시간 걸으세요. 정진하지 않는 건 비정상입니다. 우리의 의무는 끊임없이 나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운명인데, 나아가지 않으니 기계가, 몸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양 잘하는 건 아니니 날마다 참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처님도“참회가 없는 자에겐 내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잘못한 건 뉘우치세요. 참회의 눈물이 없는 자들은 병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속상하고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밖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진 마음이 핏속에 독이 되어 흐르게 됩니다. 생후 10개월까지의 아기들은 하루에 보통 세 시간 이상을 운다고 합니다. 엄마 뱃속, 깜깜한 세계에서 280일 동안 사느라 답답했던 마음을 토해내는 거래요. 또 생후 12개월 정도가 되면 하루에 세 시간 울고 세 살 되기까지 하루에 두 시간 운답니다. 열 살이 되기까지 일주일 동안 두 시간 12분씩 운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10대, 20대로 성장해갈수록 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울지 않아요. 참회하지 않습니다. 당장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위산과다로 속이 쓰립니다. 병이 나지요.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몸 안에 독소가 빠져 나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참회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입니다. 살기 위해서 우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참회해야 합니다. 우선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나 남편과 손 맞잡고 백팔참회라도 해보세요. 그럼 몸 안의 독소가 쭉 빠져나갑니다. 스스로 참회하지 않으면 부처도, 신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범망경 보살계에 보면 부처님 법문 듣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인간, 탁마하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비정상의 길을 가게 됩니다. 부처님 마지막 유언이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는 거잖아요. 자꾸만 앞으로 걸어가세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해탈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 병이 나고 맙니다. 옛날엔 부(富)가 개인에게 몰렸습니다. 이젠 그 부가 전부 기업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기업시민(enterprise citizen)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시민으로서의 구실, 즉 사회적인 어떤 책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지요. 기업이 사회봉사, 사회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징계를 받게 돼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기업을 운영하게 된다면 일정한 부분 사회에 기여하고, 복지, 봉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모든 재원이나 부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기업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더욱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는 미국 대법원 판결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경제적인 가치와 사회적인 가치의 동반추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기업이 성장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갈 게 분명합니다. 몸과 마음을 모아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세요.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만약 가다가 실패를 하게 될 때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함께 가야 합니다. 개인도, 기업도, 나라도, 우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으면, 내가 그릇된 마음을 가지면 곧바로 독소가 됩니다. 비가 내린 뒤 무지개가 뜨듯이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내 마음에 무지개가 뜹니다. 우린 너무 참회를 할 줄 모릅니다. 기업도 기업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살아요. 나라의 좋은 정책이라도 갑자기 시행하다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녹용이나 산삼과 같은 보약도 몸이 받쳐주지 않으면 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속도를 슬기롭게 조절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날마다 집안 청소를 하듯이 날마다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몸과 마음 가운데 독소를 제거하고 내일을 위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가 절실한 시대가 올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 교육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들이 하고 싶은 참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머리 깎고 살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저처럼 머리를 깎고 스님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 그럼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거든요. 젊은이들이 일정 기간 군대에 가듯 일정 기간 동안 절에 들어가 생활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계종 사찰이 3천5백 개래요. 스님들은 약 7,8천 명이고요. 일본은 스님들만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중국도 후진타오 때 백만 명 승려 양성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우리와는 경쟁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도 템플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절에서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환경을 늘려나가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법 공부란 자기 자신을 아는 공부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건 곧 자기를 버리는 거잖아요. 참 나를 찾아가는 것, 이기적인 나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 때문에 탐심, 진심, 치심의 탐진치가 오거든요. 수행은 이러한 탐진치 삼독심을 녹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것도 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싸우는데 꼭 많이 쌓아놔야 좋은 건 아닙니다. 사실 스님 생활도 어렵긴 합니다. 일도 많고요. 하지만 여러분과 더불어 부처님 말씀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어떠한 경우라도 나는 부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즐겁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내가 나를 지켜보고 다짐하며 사는 거예요. 순간순간 나를 지켜보는 힘이 강화되는 거, 그게 위빠싸나입니다. 찰나생 찰나사, 순간순간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이 죽어가는가를 알아차리고 닦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심을 제거하기 위해 첫째, 끊임없이 공덕을 쌓으라하셨습니다. 두 번째, 자기 정화, 참회하라 하셨지요. 세 번째, 이 세상을 나보다 먼저 하직한 나의 선조 영혼들에게 예경을 올리라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조상님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음이에요. 눈에 안 보이니까 관심 없어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가능한 한 제사를 잘 지내는 게 좋습니다. 그들 영혼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가족이 편안합니다. 네 번째, 불보살과 호법선신들께 끊임없이 기도 올리고 공양 올리라 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를 잊지 마세요. 삶에는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많이 공부해라. 많이 들어라. 들은 다음에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하니까 많이 생각해라. 듣고 생각하고 그다음 닦아라. 경솔함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내적인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현실과 영원이 함께하는 법당입니다. 가정도 법당입니다. 나라도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중생을 돕는 겁니다. 이타행입니다. 이타행을 하면 이기심이 깨집니다. 그리고 애착을 녹여야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원력을 세우고 나아가면 됩니다. 요즘 나라 안팎의 상황을 보면 IMF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하늘이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나에게 좀 더 힘을 쌓으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세요.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부처님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잘 견뎌내야 합니다. 덧없는 것에 신경 쓰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기적인 마음 내려놓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공부하지 않는 건 비정상입니다. 우리가 왜 능력을 쌓습니까? 많은 중생을 사랑하기 위해서, 위대한 용기와 신심으로 무량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참회하고 용기를 내서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가세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2018-12-26 오후 1:55:49모두 때가 있다. 때는 하늘의 소관이다. 한 세상 사는 길은 온통 참고 이겨나가는 과정일 뿐! /Media/law/Read.aspx?db_cnt=80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마음의 여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많은 분을 모시고 살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올해 이사 가도 되나요?” “항상 마음이 찜찜해서 묘지를 옮기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보통 이런 거죠. 또 어떤 분은 “어느 방향으로 이사를 가면 좋을까요? 남편이 어떻게 하다 남쪽에 집을 얻게 됐는데 그쪽으로 가도 괜찮겠습니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때가 좋은 때인지 혹은 어떤 때가 나쁜 때인지, 어떤 방향이 좋은지 어떤 방향이 좋지 않은지, 그걸 누가 알 수 있겠냐 말입니다. 아마 부처님밖에 모르실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노름을 잘 해서 노름판에만 들어가면 돈을 따는 고수가 있었지요. 사람들이“자네는 판에 들어가기만 하면 돈을 거둬들이니 무슨 비결이 있나?”물었습니다. 아무 비결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평소 습관이나 자세를 관찰해 봤습니다. 참 묘한 게 노름을 하다가도“아, 나 잠깐 한 바퀴 돌고 올게.”하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자네 어디 갔다 왔나?”물으니 그는“어, 기분 전환할 겸 한 바퀴 돌고 왔지.” 하더래요. 너무 조급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요. 사람들은 돈이 눈앞에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노름이 사람의 마음을 휩쓸어 가거든요. 노름을 하는 데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지난번에 안식일을 발명한 민족이 유대민족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전 세계 달력에 토요일과 일요일에 놀게 되는 이유가 유대인 때문이래요. 현재 그들이 뉴욕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월가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전 세계 금융기관이 월가와 연결돼 있어요. 그들은 안식일에 무조건 쉽니다. 그들의 전통입니다. 탈무드의 법칙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네가 여왕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네 남편을 왕으로 모셔라.”, “네가 왕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네 아내를 여왕으로 모셔라.”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왕의 복과 여왕의 복은 평상시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 그 누구마다 다 특별하다는 가르침입니다. 특별한 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시간, 매순간이 다 소중합니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라는 부처님 말씀은 그래서 유명하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 톨스토이 인생론전집을 보면서‘아, 톨스토이란 사람이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네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이렇게요. 제가 어려서는 톨스토이 글인 줄로만 알았는데 커서 중이 되고 보니 부처님 경전에 나온 얘기더라고요. 톨스토이가 부처님 경전을 많이 공부한 사람인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다 보면 직감적으로 ‘아, 뭔가 오는구나!’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마다‘아, 이 사람이 나에게 뭔가 선물을 주러 왔구나!’알게 됩니다. 자장스님에 대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자장스님은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 어느 잔칫날이었어요. 웬 나이든 분이 앙상한 강아지 한 마리를 이끌고 자장스님 잔치를 보러왔습니다. 노인에게 밥상을 대접하려는데 그 노인이“강아지도 한 상 차려주지?” 이랬다는 거예요. “아이, 강아지가 무슨 한 상이냐!”그랬더니 노인은“강아지도 음식을 먹고 싶을 거 아니냐.”했겠죠. 그러자 주인인 자장스님은 “여긴 강아지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법은 없다.”고 하자 그는“내가 평상시 듣던 얘기와 다르구나.” 하면서 병든 강아지가 일주문을 향해 날더니 호랑이로, 다시 문수보살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연하게 만나는 분들, 그분들이 문수보살의 화현인지 모릅니다. 항상 만나는 사람 그 누구든 특별하게 대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에 ‘이 사람은 내 편이고, 저 사람은 또 누구 편이고’하지 마세요. 우리가 공덕을 지어나가다 보면 저절로 때가 옵니다. 때인가 아닌가 묻지 않아도 이 우주는 그렇게 돼 있다니까요. 부처님은 다 아십니다. 항상 마음을 평정하게, ‘평상심시도’로 계·정·혜 삼학을 잘 지켜 가면 됩니다. 계(戒)라는 건 결국 경건하게 살라는 겁니다. 정(定)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고요하게 살라는 거고요. 혜(慧)는 법을 연구해 법의 지혜를 내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정혜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 길로 가야 해탈의 길이 열리고 해탈 지견이 열립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부처님 말씀 연구하는 것도 마음의 여유를 찾는 한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로 산다는 게 힘겹잖아요. 마음의 여유를 좀 찾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텅 빈 충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보살님이 저한테 물어보세요. “텅 빈 충만이란 말이 가능합니까?”자기는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된대요. 그런데 당장 보세요. 내가 상대방에게 뭔가 베풉니다. 내가 남에게 베푸니까 나는 손해 같죠? 하지만 내 마음은 충만해집니다.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지잖아요. 보살님이 누구한테 호떡을 주거나 빵떡을 주거나 하면 나는 비워지지만 반대로 그 비워진 자리에는 풍요로운 기운이 생겨납니다. 그 마음을 ‘충만’이라고 합니다. 텅 비었지만 여긴 또 4차원 이상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시어(詩語)들은 대체로 4차원 스타일로 쓰입니다. 시인들 마음의 세계는 그래요.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또 어떤 진주가 고향인 분이 물어요. 진주에 가면 지수면이 있고 그곳에 지수초등학교가 있대요. 근데 그 지수 초등학교 동창들 가운데 이병철 씨, 구인회 씨, 허만정 씨, 조홍제 씨 등 한국의 기라성 같은 4대 재벌들이 한 학교의 동창생이라는 겁니다. 그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는 거죠. 네, 그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실 때 어땠습니까? 도솔천에서 부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이 부처님이 지상에 내려가 성불하시니까 ‘우리도 따라 내려가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성불의 길을 갈 것이다’하면서 하늘나라에서 떼로 내려왔다고 그러잖아요.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그와 같은 상황이 설명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 석가모니 부처님 나이하고, 공자님 나이가 같아요. 소크라테스 선생하고 나이가 같다니까요. 그들은 B.C. 6세기 사람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태어난 그 당시 그리스는 소피스트의 황금시대였습니다. 뛰어난 철학자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공자님 부처님 또 시대는 다르지만 노자, 장자 여럿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때’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화엄경에 나옵니다. “그 사람이 지은바 공덕 따라 태어나는 별이 다르다고, 태어나는 나라가 다르고 만나게 되는 부모가 다르니라.”어느 별, 어느 나라, 어느 부모, 이런 것이 다 공덕의 소산이라는 것입니다. 주역이라는 게 다른 겁니까? 사람들의 생년월일, 생시를 따지잖아요. 뭔가 일치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주변에 정말 나와 한 몸인 분신들이 있는가? 정말 일생을 두고 흉허물 없는 한 몸과 마음의 분신이 얼마나 되는지 말입니다. 여유,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항상 “마음을 밝게 하고 스스로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남도 공경하지 않습니다. 나의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자기도 사랑해요. 바깥으로 정의가 아니면 과감하게 쳐내야 합니다. 안으로는 정말 마음을 밝게 해야 하고요. 그릇된 언행을 척결하고 바른 행동을 실천하세요. 부처님 마음이 되어보세요. 순간순간을 귀중히 여기고 만나는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면 내 마음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화엄경의 핵심사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저 광활한 우주의 무량한 은하계와 다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데 여러분은 그와 같은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감씨를 보세요. 보잘 것 없는 감씨 하나를 심습니다. 몇 년 후 감나무가 자라서 수백 개의 감이 열려요. 수백 개의 감씨 중에는 또 다른 감나무가 되는 게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감이 끝이 없겠지요? 이 지구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감씨 하나에도 영원이 들어 있어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대로가 영원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원임을 잘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인간이 우주를 머금고 있는데 문제는 저마다 소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네가 생기면서 전부 내 것 네 것을 따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제도 제사를 지내고 그제도 지내고 매일 제사 지냅니다만 인간은 올 때도 알몸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 동전 한 닢도 가져가지 못해요. 태어날 땐 손을 집고 나오지만 돌아갈 땐 손을 쫙 피고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잡으려고 합니다. 잡음은 한시적인데 사라질까 불안해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잖아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삶을 두려워하세요. 삶은 모두 불안정하고 유한하고 무상합니다. 탐욕이나 집착이라는 게 사실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것을 놓을 줄 모르니까, 자기가 영원인 걸 까맣게 모르니까 이게 안타깝습니다. 강한 소유욕을 뿌리치지 못하면 자꾸만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두뇌가 항상 불안해요. 그래서 치매가 많아집니다. 사라지는 걸 자꾸만 잡으려하니까 장애가 올 수밖에요.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감사 속에 살아야 감사할 일이 생긴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집이 강해진다고 하는데 갈 때가 됐다 싶으면 점점 더 내려놔야 합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크듯 내 마음도 나이 들수록 키워야 해요. 이젠 내려놓으세요. 떠나가는 차에 마음을 가난하게, 마음을 풍요롭게 가꿔가세요. 부처님이 우리에게 등불이 되라고 하신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걸 다 태워버리라는 것입니다. 태워야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살아가는 동안 특별히 좋은 때가 있을까? 궁금해 하지 마세요.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인데 얼마나 좋은 걸 기대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죽는 날짜를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나 미완성으로 태어났다 미완성으로 갑니다. 미완성으로 태어났지만 우리 안에는 영원이 들어 있습니다. 병원에 가보세요. 걷지 못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눈 안 보이는 사람도 숱하게 많아요. 또 이가 아파 잡숫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다음 이른바 오줌똥 가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심지어 아무 때나 배설하는 분도 계세요. 여러분은 그러진 않잖아요. 그것만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삶이라 하더라도 우린 한 걸음 두 걸음 영원이 되는 그 날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항상 ‘성불합시다’ 그러잖아요. 이 우주에는 행운을 누릴 만한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임자가 따로 있네, 그래요. 어떤 사람이 임자가 되는 고 하니 부처님 말씀대로 어떤 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가 임자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부처님이 다 아세요. 화엄경에 자비희사는 환희행이라고 나옵니다. 부처님 생각하면서, 남들과 더불어 웃으면서, 남들의 고통을 내가 대신 등짐지면서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행운을 불러들이는 사람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항상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지금 하고 있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아내를 여왕처럼, 남편을 왕처럼 모시고 사세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나의 분신처럼 대하시고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듭니다. 행운은 내가 찾으려면 도망가 버려요. 내가 잡으려 하면 행운은 새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행운은 잊고 있을 때 저절로 찾아 들어옵니다. 다만 몸과 마음을 다하면 됩니다. 파랑새 얘기했잖아요. 파랑새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 자기 집 마당 나무 위를 보니까 그곳에 파랑새가 와서 울더라는 거 아녜요. 감사 속에 살아야 감사한 일이 옵니다. 유유상종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순간을 놓치지 않는 삶이 선수행자의 길입니다. 이뭣고, 화엄성중,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불 그러잖아요, 화두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염(念)은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소의 시간단위입니다. 한 생각이 정말 소중한 대접을 받아야 해요. 순간순간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 영원으로부터 대접받습니다. 항상 상대방을 문수보살처럼, 부처님처럼 대하다 보면 진짜 부처님을 떨꺼덕 만납니다.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들어가다 보면 시간과 공간이 깨지는 경계를 만나요. 그것이 성불이고 삼매인 거예요. 이 사람은 내편이고 이 사람은 적, 하다 보면 그 사람은 영원히 부처님 만나는 건 불가능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언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로댕이 말한 대로 현대인들의 비극은 자기 직업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은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삶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는 영원의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대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경멸할 자격이 없어요. 누구를 경멸하고 누구를 하대하는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아귀보를 받고 축생보를 받아요. 자기가 남을 하대하니까 한 대로, 악도로 가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일념즉시무량겁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범부와 보살의 차이가 뭐라고 그랬어요? 범부와 보살의 차이는 첫째, 용기의 차이입니다. 두 번째, 신심의 차이입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축구를 하거나 야구를 하거나 기본기가 있잖습니까? 영웅은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항상 법등명자등명을 말씀하셨잖아요. 법의 등불을 밝혀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자리한 어둠을 걷어내야 합니다. 악마의 마음, 이기심을 걷어내고, 찬연한 빛이 되어야지요. 누구나 다 영원입니다. 누구나 다 영웅이에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오늘을 잘 살아야 보다 나은 내일이 옵니다.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이 좋아져요. 무턱대고 좋은 날이 오지 않습니다. 이 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미래를 결정지을 사람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미래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저 사람도 부처님 말씀을 통해 영원의 길을 가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여유를 내고 살아가세요. 나만 살기 바빠서 어쩔 줄 모르지 말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린 하다말다 들쭉날쭉 파동 속에 삽니다. 음과 양속에 살지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부가 다 양면성이 있습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거든요. 어디나 항상 그렇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꿋꿋이 가는 겁니다. 음양이 항상 돌고 도는 거니까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어려운 능선을 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시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옛날 머리가 둘인 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콩이 하나 땅에 떨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그 콩에는 독이 묻어 있었지요. 한쪽 머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너 그거 먹으면 죽는다.”했더니 한쪽 머리는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그 콩을 집어 삼켰습니다. 둘 다 죽었지요. 요즘 세상도 마찬가지예요. 보수니 진보니 해서 서로서로 마음이 만나야 하는데 만나질 못합니다. 만나야 할 특정한 때가 있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행운은 내가 잡으려고 하면 도망갑니다. 내가 잡으려고 하지 않아야 날아 들어와요. 다만 항상 몸과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만나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예요? 남편, 아내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아내와 남편이 한 몸이 될 때 욕계로 간다고 합니다. 아니, 욕계를 떠나 색계로 갑니다. 한 몸이 되는 거예요. 아내와 남편이 한 몸이 되면 암수 자웅동체가 되거든요. 지구상에도 그런 존재가 있습니다. 욕계를 벗어나면 색계로 가는데 색계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상대방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은 색계로 갑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 색계로 가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색계는 남녀가 따로 없습니다. 부부가 같이 모여 살게 돼 있지요. 우리는 모두 영원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다 때가 있고, 그 때는 하늘 소관입니다. 부처님 소관입니다. 행운이란 누릴 만한 때가 있고 행운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 때는 부처님이 관장하십니다. 어디로 이사 가면 좋으냐? 지금 때가 됐냐? 묻지 마시고 그냥 항상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정진하세요. 부처님은 그때마다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무상심심미묘한 도리가 있습니다. 선몽이 있고 태몽이라는 것도 있어요.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SPAN></P>2018-12-05 오후 2:16:57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공덕을 써버리는 것이다. 우주에는 전쟁이 끝이 없다. 천왕들도 항상 전쟁 한다/Media/law/Read.aspx?db_cnt=80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세상은 끊임없는 전쟁터</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르침 가운데 보왕삼매론이 있습니다. 그 중에 “내가 언제 어느 곳에 위치하든지 간에 상대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이른바 적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계나 자연계나 우리를 아프게 하는 대상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상대방이 있고, 적이 있으니 고통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아군이 되는 날, 모두가 나의 아들딸 형제자매가 되는 날, 무아상, 이기심이 녹아지는 그 날이 성불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불하기 전까지, 부처님 되기 전까지는 그 어디든 적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삼계(三界) 가운데 어디에도 평화로운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은 날마다 범죄 얘기, 전쟁얘기로 가득합니다. 그런 기사를 빼고 나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운영되겠어요? 잔혹한 사건들을 제외해 놓고서는 얘기가 되질 않아요.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광활한 우주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에도 전쟁이 있대요. 아수라와 같은 천인들이 끊임없이 천왕들에게 싸움을 건답니다. 천왕들도 전쟁을 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나라가 과거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크게 도와준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냥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거든요. 지금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간에 서 있는 우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형국입니다. 사실 중국의 개방의 문을 열어준 나라는 미국이에요. 미국이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과거 닉슨과 키신저 시절 미국은 중국의 많은 인구를 이용하기 위해 자국에 있던 생산 공장을 전부 중국으로 이전한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트럼프는 미국의 기술이나 특허권이 중국에 의해 전부 도용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 당시 미국에 있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되고 보니 자연히 기술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6,70년 사이에 이제 중국은 강국이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살기 힘들어진 겁니다. 이른바 공해를 수반하는 공장들이 중국으로 또는 다른 나라로 가니까 그것이 오히려 덫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치열한 무역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잘 타협해서 논쟁이 끝나겠거니 기대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미국은 또 우리나라에도 자동차와 반도체 등의 거래 실태를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계속 압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영원한 친구나 영원한 적은 없습니다. 끊임없는 싸움만 있을 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싸움을 멈출 도리는 없습니다. 또 매양 이길 수도 없어요. 부처님 말씀처럼 원아불퇴보리심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요일 부처님 전에 나오잖아요. 부처님이 항상“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하신 이유도 부처님 자신이 그렇게 살다 가셨으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아침에는 꼭 정진하시고 하루 온종일 법문하시고, 걸식하시고…. 평생을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스님, 그럼 쉴 시간은 없습니까?”라고 물어요. 물론 휴식은 필요합니다. 다만 나의 실력이나 여러 가지 능력이 부족하면 상대방에게 눌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거예요. 도처에 상대방이, 도처에 적이 존재합니다. 경쟁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정말 안타까운 일인데 시험공부에 지쳐 어떻게 할 수 없다고“시험 없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요.”라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우주에 시험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쟁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거든요. 경쟁이 있어야 번창합니다. 뭔가 순서를 정해야 질서가 생깁니다. 순번을 정해줘야 안정되고 조용해져요. “네 성적이 이런데…”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아마 시험을 치르지 않아 이러한 위계질서가 무너진다면 중구난방 혼돈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억울하면 출세하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혜와 복덕 구족하신 부처님’이 되기 위해 오늘도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합니다. 우리도 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지혜를 닦아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복력을 닦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뭔가 목표를 이루려면 적당히 해서는 되질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절대로 천재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신이 내린 천재는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처절한 노력, 뼈를 깎는 수련이 부처를 만들고 천재를 만듭니다.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삶이 힘들다고 자살을 한 사람이면 그는 내생에 금생에 완수하지 못한 것까지 곱빼기로 살아야 합니다. 내생이 더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생마다 자기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제대로 못 풀고 가면 내생은 더 어려워집니다. 가중치가 생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수행과 정진이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마법의 음료수와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부단한 노력과 본능적인 열정이 필요한 곳이 이 세상입니다. 처절하게 살지 않으면 밟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이에요. 원아불퇴보리심 원아결정생안양, 불퇴전의 노력으로 성불하라는 거거든요. 원아광도제중생, 무량한 중생들을 제도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배터리와 같습니다. 계속 힘을 축전해가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밟힐지 몰라요. 기도하고, 수행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법력을 쌓고, 재력을 쌓고…. 끊임없이 힘을 길러 고전압이 되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클라우드 브리스톨이 지은 책 『신념의 마력(The Magical Power of Belief)』에서처럼 계속 힘을 쌓아 가야 마음이 강해집니다. 내 호주머니가 두둑하면 힘이 느껴지잖아요.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래, 오면 오는 대로 가는 거지.’ 그러고 가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신력은 부처님을 자각하는 정도에 따라서 선택되어지고 한계 지워집니다. 부처님 법칙이란 그 누구든 부처님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이용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품안으로 들어오는 아들딸들이 얼마나 예쁘겠어요. 우리가 부처님 품안에 안기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부처님은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걸 잘 모르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바 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매진하세요. 부처님은 다 주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신이 내리거나 부처님이 내린 천재는 없습니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천재이고 그에게 영감이 옵니다. 아인슈타인도 에디슨도 99퍼센트 노력하는 자가 1퍼센트의 영감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영감어린 삶을 사세요. 부처님은 “응관법계성, 몸과 마음을 다해 간구하는 바가 있다면 어찌 내가 너희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노력과 정진만이 불교의 대명사입니다. 뼈를 깎는 수련이 불멸의 천재를 만들고 부처님을 만듭니다. 서양의 안데르센 에릭슨 같은 학자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2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고요. 10년간 매일 3시간씩 하면 나름대로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2만 시간이면 20년이고, 3만 시간이면 30년입니다. 탁월한 리더들은 하나같이 영감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얼렁얼렁 살지 않는 영감의 사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내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고, 내가 직장에 다니는 상사라면 나는 정말 내 아들딸에게 영혼의 부르짖음, 영감을 일깨울 수 있는 부모인가, 또 직장의 상사인가? 가족은 물론 직장 동료도 나의 가족입니다. 부처님은 우리를 항상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사람 모두가 나의 가족이란 생각을 가질수록 고차원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 말처럼 이 우주, 자연계의 법칙은 너무나 잔혹하기 때문입니다. 터럭만큼, 바늘 끝만큼도 들어갈 자리가 없이 냉정합니다. 노력에 의한 평등, 정진에 의한 평등만이 존재합니다. 왜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거죠.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픕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되는 사람에게는 되는 사람만의 법칙이 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제일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게 한참 벌다 보면 죽게 돼있거든요. 한참 쌓아놓다 보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가 항상 죽어도 죽지 않는 게 인간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른바 응무소주이생기심, 애착이 말도 못하거든요. 공부가 잘 안 돼 있으니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지금 열심히 정진하자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사후의 세상이 이승과 진배없음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실력 없고 능력 없으면 죽어서도 절대로 편치 않습니다. ‘죽으면 그만이지’그거 아니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 보세요, 식물과 동물의 세계는 참 절묘합니다. 우선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갈라져 있습니다. 또 인간은 탄산가스를 내보내고 산소를 마십니다. 식물은 탄산가스를 마시고 우리에게 산소를 줍니다. 동식물이 본래 하나였던 거예요. 만유가 둘로 나뉜 이유는 우리의 업장 탓이고 이기심 탓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남에게 뭔가 베푸는 사람일수록 그 힘이 강해집니다. 내가 얼마나 남에게 도움이 되는가, 내가 얼마나 남에게 펼치고 베푸는가가 관건입니다. 천도재를 올리고 기도를 하는 것도 제불환희, 불보살님을 즐겁게 하고, 신장님들을 즐겁게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살아가시는 동안 주변에 자신의 분신을 많이 만들어 놓으세요. 내가 어디 가서 누구하고 다툼이 있거나 하면 나를 도와줄 군대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나의 분신들입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신 가운데 신장님이 계십니다. 귀왕, 무독귀왕, 악독귀왕도 있고요. 저세상에 가보신 다음에 어쩌구 저쩌구 하면 때는 늦습니다. 여기서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상대방을 많이 도와주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육바라밀의 실천을 나의 분신 만드는 법칙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보시, 남에게 작은 것이라도 뭔가 베풀 수 있는 마음을 내보세요. “아, 스님, 없는데도 베풀어야 하나요?” 없으면 미소라도 짓고 따사로운 말 한 마디, 행동이라도 하면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얘기 있잖아요. “사랑이란 관심을 가져주는 거란다.”관심을 가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내 또는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해보세요. 아들딸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해요. 내가 직장의 상사다 그러면 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표명해 주시고요. 관심이 곧 사랑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은 부처님입니다. ‘나를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기도의 의미를 잘못알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기도한다고 잘 되게 해주시는 분이 아니세요. 내가 비우는 것만큼 담아주시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란 뜻이지요. 내가 비우면 스스로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비우지 않으면 넘칩니다.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많이 베풀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일이 더 잘 풀립니다. 항상 뭔가 잘 되는 사람들은 잘 되는 사람의 법칙을 아니까 그런 거예요. 되는 사람에게는 되는 사람만의 법칙이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기도는 우리의 운명</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잘 아는 스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는 가진 게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겠다는 원력을 품었지요. 포교당을 마련하고자 산에 들어가 천일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지극정성으로 3년 동안 기도를 하고 내려와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스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습니다. 그 역시 불자로서 반가운 마음에 스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스님이 3년간 산에서 기도하고 지금 내려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스님, 제게 의정부에 땅이 있는데 스님께 드리겠습니다.”하면서 함께 가 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스님은 산을 내려와 기차를 타자마자 공덕주를 만나게 된 거예요. 스님은 현재 의정부에 포교당을 만들고 부처님 말씀 전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다 듣고 다 보고 계십니다. 안 된다고 하는 건 자기가 뭔가 모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우주는 전쟁의 도가니입니다. 힘이 있는 자는 더 크게 만들고 싶은 거예요. 힘없는 자는 밑에 깔리는 거지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얘기대로 중국의 역사는 전부 전쟁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예요. 계속 힘을 길러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워요. 억울하면 출세해야 합니다. 도리 없습니다.</SPAN></P> <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은 순간순간 변해갑니다. ‘내가 꼭 해볼 거야’ 금방 앉아서 다짐하고 서서 깨뜨립니다. 법당 안에서 법문 듣고 문 열고 나가 공양간에서 밥 먹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왜 그렇게 순간순간 변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변하는 마음을 꽉 잡아놔야 해요. 금강경의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 겁니다. 변덕이 무쌍한 이 마음을 하나로 ‘탁’뭉쳐갈 수 있는 마음, 사실 그게 기도입니다. 기도가 공덕이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말입니다. 내가 자꾸만 기도를 하면 내 마음에 다짐이 생기거든요. 또 기도는 돈 안 들이고 공덕 쌓는 일입니다. 허공에 나의 군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백악관을 구경 간 적이 있는데요,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전쟁 중에도 매일 기도했다고 합니다. 전쟁통이니 매일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대요. 저도 항상 기도를 생명으로 알고 삽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항상 기도하세요.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기도 하고요. 기도는 우리의 숙명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SPAN></P> <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마음이 순간순간 얼마나 요동치는지, 얼마나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지 잘 모릅니다. 천사와 악마 사이를 이리 저리 오가는 그런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꼭 당부 드리겠는데요, 우리가 추락하지 않으려면 계속 정진해야 합니다. 밟히지 않으려면 계속 공덕을 쌓아가야 해요. 이 우주의 전쟁은 끝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상 평화롭지 않습니다. 지구뿐만이 아니라 하늘나라도 전쟁을 하잖아요. 경전에 보면 우주전쟁 얘기가 즐비하게 나옵니다. 여기서 부단히 공덕을 쌓아야 저승 가서 고생을 덜 합니다. </SPAN></P> <P style="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금생에 내가 모시던 부모님이 계십니다. 나를 낳아주신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방탕한 삶을 사셨어요. 어머니는 그나마 동냥중이 오면 한 푼이라도, 쌀 한 됫박이라도 시주하며 사셨지요. 그들은 저승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사는 장소는 달라집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도와줄 수 있느냐? 거긴 그런 곳이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 가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승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삶이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마세요. 고통은 나를 승화시키는 명약이고 영약입니다. </SPAN></P>2018-12-05 오후 2:07:50마음은 양자에너지. 몸과 마음은 별개인 듯 하나다/Media/law/Read.aspx?db_cnt=80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마음놀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으로 끝내시나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얼마나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모시고 사는가.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꾸준히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천하는 사람만이 성불의 길로 들어설 수 있어요. 부처님은‘나의 가르침은 추상적 이치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이고 바른 실천이 내 가르침의 참뜻이다’그러셨거든요. 단 한 가지라도 좋습니다. 세상을 향해, 가족이나 직장에서 뭔가 실천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만들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가정, 사회, 나라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삼세일체제불, 그분들의 주장대로라면 일체 만유는 마음으로 지어집니다. 근데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 뛰었는데 잘 안 되더라, 그것은 시간과 정성이 좀 더 필요할 뿐입니다. 제가 항상“부처님은 우리에게 태양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모든 걸 다 주시는 분이다.”라고 말하잖아요. 부처님이 뭐가 아까워 안 주시겠어요. 다만 그릇이 돼야 합니다. 각자의 그릇 따라서 받아먹는다,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내가 어떤 그릇인가를 보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서 윤회란 말을 하는데 혹자는“스님, 윤회란 정말 의미 있는 얘깁니까?”물어요. 조금 전에도 만상은 마음이 만든다고 했지만 사람들은“아, 그건 종교에서나 하는 말이잖아요.”합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얘길 들먹이면 “그런가?”또 이래요.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요.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 만상은 에너지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너지는 불생불멸, 영원합니다. 제가 에너지 항존의 법칙을 수천만 번 얘기했지요. 그러니까 마음과 에너지는 어떤 면에서 보면 같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따라서 과학에서는 에너지면 그냥 에너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선 선심과 악심을 따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든지 전생을 안다든지 내생을 안다든지 하는 마음놀음을 말합니다.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데 하나도 이해 안 갈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너지는 파동이거든요. 부처님 말씀대로 에너지는 파동이니까, 불생불멸이니까 그 파동이 어떻게 되겠어요? 제가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드리면 음파가 퍼져나가 여러분의 고막을 때립니다. 그런 다음 그 소리는 온대간대 없이 사라집니다. 어디로요? 여러분 마음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 소리는 마음 안에서 공감되고, 교감이 되고, 소통됩니다. 일단 여러분 마음으로 들어간 소리는 살아 있다고 보면 돼요. 그 소리를 가지고 누구와 얘기를 나누면 그 말은 또 다른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마음과 마음이 전부 하나로 연결됐다는 증거예요. 에너지는 파동이고 파동은 영원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이 여기 와 앉아 계신 것도 모두 과거의 산물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또 지금 여러분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게 눈,귀,코,혀,몸을 잘 간수하는 일입니다. 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미촉법을 인연하면서 펼쳐지는 세계를 감각이라고 하는데 감각은 생각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감각이 생각을 촉발시킵니다. ‘아, 저 사람이 아무개구나’, ‘아유, 저것은 사과네’하면서요. 생각은 마음의 눈입니다. 생각이 마음을 이끌고 마음이 몸을 이끌어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수행은 감각의 통제</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감각은 우리 몸을 메커니즘대로 움직이게 합니다. 여러분이 엄한 걸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나쁜 마음이 일어나면 내 몸을 나쁜 데로 이끌고 갑니다. 좋은 걸 많이 보도록 하세요. 좋은 걸 많이 들어야 합니다.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입으론 염불을 하세요. 감각 버튼, 생각을 촉발시키는 감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쓸 데 없는 걸 보면 쓸 데 없는 길이 열립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상황은 전부 생각이 마음의 눈이 돼서 마음을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몸이 마음과 하나인 거죠. 따라서 수행은 감각의 통제입니다. 그릇된 걸 보지 말라, 그릇된 걸 듣지 말라, 그릇된 것을 생각도 하지 말라, 그릇된 것은 절대로 접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릇된 걸 보면 그릇된 생각이 탁 피어오른다니까요. 감각, 생각, 마음, 몸, 선도, 악도, 운명은 전부 시스템 따라 움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도하는 마음, 불보살님 전에, 신장님 전에 기도하는 마음을 내세요. 허공의 무량한 조력자가 우리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거예요. 우주엔 무한한 조력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한한 파괴자도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도업이 얼마나 닦였느냐에 따라서 그들은 허공에서 자손들에게 애착하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세간의 효를 뛰어넘은 출세간의 효를 다하세요. 그들이 존재하는 허공을 잘 이용해야합니다. 허공을 잘 이용하는 그분이 바로 부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허공을 잘 이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마음을, 생각을 잘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곧 운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고유한 주파수를 갖습니다. 그런 고유의 주파수, 파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정란에서 나오는 파동을 약 30분간 복사해 오리 알에 쏘였습니다. 그랬더니 닭과 오리의 잡종이 태어났습니다. 또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른바 암세포 파동의 어떤 한 부분만 몸 안에 들어가면 안 나온다는 거예요. 다른 세포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들만 그럴까? 해서 그 암세포에다 미세한 380마이크로파를 계속 쏘아줬대요. 마침내 암세포가 정상세포로 변하더라는 겁니다. 어떤 파동이 빛에 굶주려있던 거예요. 우리가 가족력을 따지는 것도 이런 굶주린 파동이 가족 대대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또한 기가 막힌 게, 도롱뇽 있죠, 개구리하고 비슷한 게 파충류에요. 이 도롱뇽의 배아에다 강한 자기장을 쏘았어요. 그런 다음 거기서 나온 파장을 복사해 개구리에 쏘았습니다. 놀랍게도 개구리 알이 도롱뇽으로 변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운, 파동, 에너지는 음으로 양으로 주변사람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서는 알라야식을 말합니다. 알라야식(阿賴耶識), 쌓여 있다, 저장이 돼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빙산이라는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눈에 보이는 맨 위 부분을 현재의식이라고 합니</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다. 지금 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미촉법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그죠? 그리고 그 밑에 10분의 9나 되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잠재의식이라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빙산이 녹으면 바다로 간단 말이에요. 그 바다를 잠재의식이라고 하는데 잠재의식이란 말을 찾아낸 사람이 프로이드예요. 바다에 해당하는 것을 이른바 집단무의식(collective subconscious)이라 하고 집단무의식은 개별 개별의 업이 한데 모인 걸 말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보세요. 우리가 어디 외국에 나가서 일본 사람을 만나요. 또 중국 사람을 만나다고 해요. 그들도 우리와 같은 동양 사람이긴 한데 뭔가 풍기는 분위기는 다릅니다. 참 묘하게도 오랜 역사 속에서 경험한 배달겨레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공업(共業)이 있습니다. 그럼 또 지구라고 하는 별에 사는 중생들에게도 공업이 있겠죠. 지구라는 별에 사는 중생들은 저마다 몸과 마음 가운데 본능에 해당되는 어떤 의식이 들어 있다고요. 남자 여자는 사랑해야 된다, 남자 여자가 만나면 아이가 잉태된다, 하는 진화 과정이 똑같은 집단의식, 집단무의식이 작용합니다. 본능에 해당되는 거, 인식주체에 해당되는 거, 전 인류의식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식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탈출하기</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러한 3차원의 세상에서 다른 세계로 탈출하려면 지구의 인력권을 튕겨 나갈 수 있는 로케트처럼 공업을 이겨내야 합니다. 불교에선 해탈이라고 합니다. 탈을 벗어야 해요. 현재의식인 빙산의 일각, 잠재의식, 집단무의식이 다 녹아야 허공으로 갈 수 있습니다. 별업과 공업이란 세계를 깨야 이 지구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영혼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에게 사바세계에 살던 습과 업이 남아 있다면 지구란 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탈출할 수 없어요. 다시 이 별에 환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미촉법을 인연하는 중생으로 이 지구를 탈출하려면 감각을 이겨내야 합니다. 감각은 생각을 촉발시키고 마음 가운데 욕망을 발동시키고 탐욕을 발동시킵니다. 자기 아내를 만나지 않고 다른 여자를 만나요. 범죄가 되는 거죠. 탐진치 삼독심이라고 그럽니다. 스님이 될 때 독신으로 가라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탈출해야 합니다. 빙산도 녹아야 바다로 가고 땅도 깨져야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별로 가요. 우리는 지구에 사는 존재로서 고유의 어떤 주파수를 깨뜨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불의 길, 영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바세계의 존재들은 낮밤이 있는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타심과 이기심이 반반씩입니다. 그 이기심을 내려놓고 이타심을 키워가야 해요. 자신의 고정된 프레임을 깨뜨려야 합니다. 개별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의 세계, 지구란 업을 떠나야 이 별을 떠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허공에는 지구를 떠나 다른 차원으로 전개해간 무량한 존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보살 신장님들, 화엄성중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또 이 땅을 등진 조상님들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천도재를 지냅니다. 기도와 천도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에너지는 파동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성질이 같은 파동과 만날 수 있습니다. 공명하게 돼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세요.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서든 다 만납니다. 마음자리 자체가 파동이고 물질인 거예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러잖아요. 부처님은 ‘너희가 지심으로 기도하면 그가 산에 있거나 바다에 있거나 누워 있건 앉아 있건 밤이건 낮이건 내가 항상 그 사람을 눈앞에 있는 듯 보고 계시리라’고 경전에 나옵니다. 부처님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고 계신대요. 왜냐? 파동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늘과 연결돼 있거든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번호만 누르면 상대방과 연결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허공으로 날아가 다 연결됩니다. 생각으로도 얼마든지 그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알고 있는 기공(氣功)사들은 몸에 있는 기를 모으는 훈련을 오래 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그들의 기운을 이용한 실험보고서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를테면 독성을 가진 균을 시험관에 담아 놓고 기공사에게 10분, 20분, 30분 시험관을 잡고 있는 시간을 준 거예요. 약 40분, 50분이 지나니까 맹독성 균들이 시험관 안에서 다 죽더래요. 우리도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몸 안의 잡균들이 정말 죽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그 주파수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부부로 5년 이상 같이 살다 보면 파동이 닮는다는 거 아녜요. 목소리까지도 닮는대요. 그런데 돌아가신 분들과 비슷한 파동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과도 연결이 된다는 겁니다. 만약 그들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 마음이 편안하겠어요? 별로 편안하지 않아요. 관음경에 끊임없이 기도하는 마음이면 저주의 파동이 정화돼 연꽃으로 변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찬연한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천년만년의 어둠도 떠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대요. 빛을 비추기만 하면 어둠은 스러집니다. ‘그 집구석 잘 되나 봐라.’하는 저주의 파동이 날아와도 내가 기도하는 마음이면 저주의 화살은 연꽃이 돼서 떨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파동은 저장성이 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미국의 스트레스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학자들 말에 의하면 슬픔, 불안, 분노, 고독, 공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75프로 내지 90프로 정도가 질병에 이환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살아온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사망하면 1년, 2년 내에 남아 있는 한 사람도 사망하는 경우가 상당하답니다. 배우자가 함께 사망한 예도 많대요. 또 배우자가 함께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하니 파동은 서로 닮아갑니다. 생물학자 토마스 홉킨스박사도 사람들의 성장배경을 쭉 조사해 보니까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의 대부분이 30년 내지 40년 뒤 암에 걸릴 확률이 7,80프로래요. 부모님의 무관심이 좋지 않은 파동으로 작용한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기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심장질환이 올 확률이 높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백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해요. 공격적이고 참을성 없는 사람들이 관상동맥질환에 걸린다고 하고요. 이기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7년 이내에 관상동맥질환이 오고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면 된답니다. 분노가 심한 사람은 보통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 올 확률이 7배래요. 전부 마음 따라 발병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극단적인 감정억제가 각종 암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감정을 억제하기에 앞서 기도를 통해 자꾸만 토해내야 하는 이유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가만히 보면 여기 계신 보살님들 가운데도“자식이 웬수야.”라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열반경에 보면 ‘철천지원수가 과거생의 네 애비 어미다’라고 나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몸과 마음을 다해 끊임없이 수행하면 됩니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부처님 말씀대로 천안통(天眼通), 가만 앉았어도 흘러가는 우주를 볼 수 있습니다. 육안이 천안이 된다고 그러죠. 혜안, 법안, 불안, 부처님 눈이 됩니다. 우리가 점점 승화되는 존재로 나아간다는 건 통한다는 증거입니다. 장벽이 깨지는 거예요. 집단무의식이 깨지는 거죠. 공업중생이 깨집니다. 육안(肉眼), 제일 급수가 낮은 눈이지만 수행을 통해 우주를 굽어보는 천안통이 열립니다. 아나율 존자가 눈이 멀어 바늘귀도 못 꿰지만 눈을 감고도 우주를 본다고 했잖아요. 고도로 수행한 자들은 삼세숙명통이 열립니다. 왜냐? 마음은 파동이니까, 영원이니까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파동은 저장성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속에 우리가 말한 거, 문자 날린 거, 영상 다 저장되잖아요. 부처님도 딱 깨닫고 나니 팔천 생이 한눈에 보이더래요. 우주가 상전벽해 되는 걸 여러 번 목격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환상 같은 얘기지만 진짜입니다. 항상 경건하게 사세요, 내가 지금 날려놓은 파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매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파동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그게 쌓이고 그게 길이 됩니다. 우리는 그 길 따라 갑니다. 매일매일 사는 게 길 닦는 거예요. 내가 경건한 파동을 닦아 가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파동은 무시무종입니다. 무시무종이면 무형이고, 적연부동(寂然不動)이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우주는 하나의 장입니다. 아인슈타인 말마따나 장이론(field theory) 시장, 경쟁의 장입니다. 매일매일 우주와 교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그 마음이 신심입니다. 파동은 어느 그릇에든 모조리 담깁니다. 파동은 죽지 않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통해요. 파동으로 연결돼 있거든요. 우주에 통하지 않는 건 없습니다. 말은 말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마음, 곧 파동이지요. 탁한 파동을 만들면 죄 짓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탁해져 병에 걸리는 것은 주변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암도 전염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미국에 LSD라고 하는 환각제가 있습니다. 하버드대, 예일대의 의료진이 이 환각제를 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약 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LSD를 먹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녹음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이상한 얘기를 토해냈습니다. 태반 속에 있을 때, 엄마의 몸에서 흐르는 피의 흐름을 얘기했지요. 어머니가 임신 중 가졌던 생각과 느낌 기억을 그대로 말한 겁니다. 태아로 엄마 뱃속에 있어도 다 압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다고 해서 무관심하지 않아요. 자신이 과거생에 파충류 암컷이었던 사실도 기억해 내더래요. 거짓말 같죠? 사실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파동, 전생의 모든 것은 하나도 사라짐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마음을 잘 갈무리하며 사세요. 마음은 파동이기 때문에 교란되기 쉽습니다. 참선명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기도로 마음 다스림에 신경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도 마음이 에너지요, 파동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적멸보궁이니 항상 수행자의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SPAN></P>2018-11-21 오후 1:07:50우리는 부처다. 우리는 왜 중생으로 전락하였나. 한 생각의 의미를 깨달아라/Media/law/Read.aspx?db_cnt=80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우리가 중생으로 전락하여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를 알아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엇이든지 생겨나면 소멸되게 되어 있어요. 생겨나면 소멸되는 당체를 생명체라고 부르죠. 생겨나니 언젠간 떠나게 돼 있어요. 생멸이 있는 세계는 모두가 다 상대성의 세계입니다. 본래가 다 부처님이라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중생세계에 떨어졌을까. 내가 왜 이렇게 이 땅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여기 왜 이렇게 와서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겠어요. 다 이유가 있죠.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문을 여니 순간 팔 천생이 다보이고 이 우주가 상전벽해로 만들어지고 머물고 파괴돼서 공으로 돌아갔다 또 다시 생겨나고, 머물고, 파괴되고, 공으로 돌아가고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많이 목격 했노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부처님은 생생하게 정말 다 기억하고 계신가 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자기가 한 생각의 잘못, 한 생각으로 인해 중생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하고 환생하면서 부처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다 겪고 있는 존재입니다. 한 생각 - 그 생각이 바로 나와 여러분들로 하여금 중생 세계에 떨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고,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 그 생각이 바로 미래입니다. 생각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생각이 있음으로 인해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또한 좋은 생각을 일으키면 좋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게 되고,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면 그런 부류가 끼리끼리 모여서 부풀어 올라 문제가 아주 어려워지기도 해요. 우리가 과거를 기억 못해도 사라지진 않아요. 우리는 과거 생도 모르고 우리가 출발해온 시발점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죠. 모든 것은 이 한 생각이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생각이라는 건 바로 한 생각으로 전락하는 상대성의 세계라는 거죠. 기독교로 치면 낙원에서 추방되는 시점인거죠. 타락한 천사가 되는 거죠. 그 시점이 한 생각 - 상대성의 생각입니다. 그 상대성의 생각 떨어져 나오는 것을 불교에서는 무명이라고 불러요. 무명이면 행이요, 행은 식이요. 무명을 타파하면 광명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겁니다. 내가 부처님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천지가 열리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알려면 계속 거슬러 올라가야겠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참선할 때도 고요히 지켜본다고 하잖아요. 고요히 지켜보고 있으면 계속 흘러가거든요.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지켜보는 나가 있어요. 끊임없이 지켜보기만 해요. 관이라고 하기도하고 견이라고 하기도하고. 그 지켜보는 나가 나를 본다니까요. 부처님 세계는 선도 악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중생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니까 선도 악도 있다 그러거든요. 상대성의 세계에 떨어진 존재니까 일어나는 생각조차도 허상이에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이미 생각의 길이 나 있으니 그 다음 생각이 또 일어나요. 그런데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라 힘을 가져요. 방향성도 가져요. 내가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저기 가야겠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 목표가 생기죠. 그런데 상대성의 세계에 떨어지고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나와 남이 갈라져 버리거든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본래 나라는 건 없는 거고 생각 자체도 허상입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냥 원판 그대로 절대 세계에 있는 그런 상태로 머물죠. 부처님 세계를 선이라고 하면, 나를 위주로 하는 생각은 악이 되는 거죠. 상대방을 생각해서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을 선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나라는 선밖에 없어요. 중생 세계로 떨어지면서 악이 생긴 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나라에서는 우리 마음속에 두 개의 나가 있다고 해요. 하나는 진짜 나, 다른 하나는 가짜 나, 허상의 나죠.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 범죄자 불순분자 불구자 매춘부 등에게- 왜 저렇게 살지? 하면서 우월감을 가지고 그들을 저열한 사람이라고 멸시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지시면 안돼요. 그게 환생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에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하대하면 그 다음에 언젠간 그들의 삶이 나의 운명, 나의 길이 되는 겁니다. 그들 또한 한 생각의 잘못으로 그 길을 갔거든요. 그들도 언젠간 모두가 다 부처가 될 존재입니다. 누가 재벌이다, 대통령이다. 권력자다 뭐다하면 이 세상을 살 땐 그들이 힘을 쓰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여요. 여러분도 과거에 권력자일 때도, 재벌, 별나라 천왕이었던 적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스러져버리면 허상이고 다 소용 없어요. 이 땅에 사람으로 나올 때 만일 불운한 운명을 가지고 어려운 삶을 살고, 부모를 잘못만나고 이런 게 전부 우린 업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그게 전부다 생각의 잘못으로 인해서 그렇게 어렵게 살게 되면서 그들에게 깨달음이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살아가시면서 왜 내가 모진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이런 생각을 하시죠. 우린 전생도 기억을 못하고 몇 년 지난 것도 다 망각하지만,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가 다 찍어두고 기록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탁월한 인물들도 그들의 삶 가운데 고귀한 목표, 영원을 가는 이데아를 잊고 살아요. 마음 가운데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나 자신의 실상을 모르고 산다는 건 어둠을 헤매고, 무지 속에 살면서 마음속에 황무지를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관점, 정견, 바른 지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지 실수를 덜하고 참회할 수 있습니다. 돈이면 다고, 권력이 최고고 이런 사람들 안타깝죠. 그들도 언젠가는 고통 속에서 깨달을 날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멸시하고 경멸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감옥에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잘못해도 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많잖아요. 헬렌켈러 - 그런 분들께 박수를 쳐주세요. 우리가 끊임없이 계속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돌아가시면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삶의 주어진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사셔야지 방향타가 상향곡선으로 될 수 있어요. 뭔가 개심을 했구나 싶은 친구들은 궤도가 달라져요. 달라질 수 있으니 개심을 하고, 부처님 전에 나와 공부하셔야 할 이유가 그래서 있는 거예요. 중생들이 좋아 하는 것 - 돈이나 권력 - 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관점을 교정하고, 도를 닦아야 나의 행로가 달라집니다. 땅을 하나 샀는데 거기에 도로가 나면 대박 터진 거죠. 그렇듯이 길을 내야하고, 길을 닦아야 합니다. 길이 나서 대박 터지듯 마음의 길. 마음의 도를 닦아야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어요,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항상 죄악의 구렁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물어야 되는 게 나는 여기에 무얼 하러 왔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만상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한 생각이 오롯이 일어나서 이건 잘못된 길이구나를 깨닫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내가 바른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는 순간에 밝음의 길로 가니까 불보살님과 천신들이 여러분을 호위합니다. 내가 그릇된 생각을 하면 악마들이 들끓어 악도로 끌고 가는 거예요. 악마가 별 다르게 존재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악마가 있어요. 생각이 생각을 부르는 겁니다. 악마는 다 허상입니다. 이 우주는 너무 정교한 법칙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정말 에누리도, 터럭만큼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연이란 게 없어요. 인연이란 말 자체가 필연이고, 이 우주 자체가 필연이고 인연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한 생각의 의미를 알고 고통을 통해 배우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언젠가 제가 로켓공학자 얘기를 들었는데 우주로 로켓을 쏴 올릴 때 오차가 있으면 터져 버린데요. 볼트 하나라도 잘못 조이면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볼트를 만드는 쇠의 재질 등 이런 거 정밀하게 체크 되지 않으면 순간 수천억 들어간 거대한 로켓이 허공에서 그냥 불꽃놀이처럼 팡 터져 버린다는 거예요. 미국에선 한 칠천 억이 드는데 인도에서는 칠백 억으로 만들었죠. 미국에서 그런 탁월한 로켓을 만들 정도의 과학자들은 인도에서 받는 급여보다 네 배를 더 받는데요. 국가와 민족, 자존심을 가지고 한번 해보자하고 과거에 노벨상을 받은 인도인 로켓공학자가 그걸 해냈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면 월급 많이 주겠다고 했는데 자기는 내 고국으로 가야된다하고 해서, 그 사람이 오니까 그 밑에 세계적인 인물들이 따라 모여서 월급도 별로 안 받으면서 10분의 1로 비용으로 쏴 올렸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돼요. 우리나라도 좀 그런 게 있어야 됩니다. 마음이 먼저이고 물질은 의식의 부산물입니다. 부처님께서 좋은 마음은 좋은 물질을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모든 물질은 생각의 부산물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는 순간 어떤 물질이 만들어져요. 에너지가 뭉쳐지면 파워가 되고 파워가 뭉쳐지면 질량이 되는 거니까요. 심지어 우리 몸에 도파민 같은 좋은 물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나빠지면 이 좋은 물질이 한 순간에 아주 무서운 독성물질로 변한다는 겁니다. 학자들이 연구하고 보니까 우리 몸에 살모사 못지않은 독이 나온 데요. 우리 인간이 어떻게 보면 살모사보다 더 잔혹하고 무섭죠. 제가 법회 할 때마다 소립자 양자 중성자 전자 이런 과학 이론을 설명 드립니다. 소립자 등을 연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관련 도서 및 자료를 자주 접합니다.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생성이 같은 맥락, 같은 이치라 그걸 공부하지 않으면 불교가 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원판 그대로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되고,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질 않아요. 한문만 백날해서는 이해가 안돼요. 그러니 설명 안 되는 계를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죠. 어떤 공부도 전부다 빛이 되고, 부처님 말씀을 설명해주는 내용이거든요. 어느 학자가 노벨상을 하나 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부처님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은 바로 물질입니다. 나쁜 생각이 일어나니까 살모사의 독에 못지않은 독 물질로 변하는데 그게 바로 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에요. 도파민하고 분자구조가 너무나 같아요. 사람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니까 독이 머금어지면서 좋은 물질이 독 물질로 변하는 상황을 파악한거에요. 그래서 이 아드레날린의 학명은 메틸 옥시도파민으로 불려요. 극과 극은 통하는 겁니다. 정말 착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게 된다면 독사 이상의 더 무서운 존재가 되죠. 여러분이 공부를 통해 내가 나쁜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겠구나, 내 몸의 좋은 물질이 나쁜 물질로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시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독성이 생겨서 치매가 머리를 깨뜨립니다. 치매가 와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 번지 점프 아세요?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 하니 진짜 아찔합니다. 부처님 경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우리가 부처님 나라에 있다가 물질의 세계로 번지점프를 할 땐 정말 아찔하고 고통스럽고 무섭죠. 우리가 부처님 존재였는데 차원 낮은 세계로 떨어지게 되면 무섭거든요.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고통인거에요. 업 인거죠. 끈이 매달려 있으니까 떨어져도 안 죽는단 걸 아니 안심이 되긴 하지만 정말로 떨어진다 생각하면 아찔 한거죠.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세계로부터 이 땅에 내려와서 고통 받는 건, 굉장히 차원 낮은 진동 속으로 떨어져 나왔기에 인간들이 고통스러운 거예요. 부처님 나라, 하나의 세계 절대 계에 있다가 한 생각의 잘못으로 상대계로 떨어져버리니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이 세상에 와서 물질계의 옷을 입고 여기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면서 계속 공부하는 거예요. 고통은 모두 배움이거든요. 어떠한 고통도 다 빛으로 가는 길이에요. 감옥에, 병원에 계신 천사님들, 사형수라 하더라도 부처님이에요. 기독교에서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악마들의 세계라고 하지만 그들은 거꾸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 나라에는 너도나도, 감옥에 계신 분들도, 지옥에 계신 분들 모두 부처님들이에요. 지옥의 부처님들을 제도 하려고 지장보살님이 지금도 고행하시잖아요. 지옥에 계신 부처님. 감옥에 계신 천사님들이라도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 밖에 안 보이거든요. 부처님 나라에는 죄가 없어요. 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이라는 말이 있듯이 참회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하세요. 너무 죄의식에 시달리지 마세요. 본래 그 자리는 죄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감옥에 있다거나 불순분자라거나 범죄자라 해도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지 마세요. 언젠가 그들도 부처님 되실 분들이니까. 모두 다 선생님들 입니다. 부처님 눈에 그저 측은할 뿐이에요. 살인범이든, 매춘부든. 불교에서는 희생자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희생이라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가 그와 같은 상황을 받아 들여야만 될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항상 깨어서 수행하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사실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인데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이런 게 없는거죠. 우리가 잠 속에 들어가면 과거 현재가 막 녹아버리죠. 전생도 보이고 선몽도 받고 미래가 보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이기도 하고-그건 과거거든요. 영원의 세계가 보여요. 그런데 현실 세계는 그게 불가능해요. 근데 우리가 꿈속에 들어가면 차원의 전이가 자유자재로 일어나요. 그러니까 누구라도-불구자든 살인자든 그 사람들에게 우월감이 있거나 멸시한다거나 냉담하거나 이런 사람은 분명히 장차 언젠가 불구자가 되는 자기를 볼 겁니다. 살인범이 되어있는 자기를 볼 겁니다. 정말로. 우리가 남들과 분리 되어 있다는 건 전부 환상입니다. 지금 여기 떨어져있는데 여러분들이 부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부처님 생각을 안 하나요? 이 모두가 환상인데. 내가 돈 많고, 권력이 있다 해도 그게 한 세상이면 끝이 난다니까요. 우리가 하나에서 분리 되어 있다는 생각이 환상이고 그 환상 때문에 공포도 있고 괴로움도 아픔도 있고 내가 분리 되어 있다는 생각도 있어요. 모든 공포의 원인, 모든 악의 원인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 때문에 생깁니다. 분명한 사실은 현실이 꿈이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생각은 모두 환상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일으키는 생각 이게 전부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다 죽어가면서 내가 잘 산다 못 산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환상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처예요. 왜 중생이 되었는가 한 생각 무명 때문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고 사라짐을 주시하는 게 선이에요. 항상 깨어있어라. 수행하라. 공부하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는 허상입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부처님 직설들이에요. 만상이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처럼 느끼는 너희들은 착각하고 있다. 너희들을 교육시키려는 내용들이다. 이건 모상, 모형이라니까요. 뒤집어쓰고 살면서 교육 받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일생동안 교육받는 겁니다. 장난감도 실물과 똑같이 만들잖아요. 제가 어떤 회사 사장님께 옛날에 정말 잘되고 싶으냐고 물었어요. 그럼 장난감 가게에 가서 비행기 모형을 사서 사장실에 갖다 놔봐 하니 거사가 비행기 모형을 몇 만원 주고 샀답니다. 진짜 그 후에 회사가 상승곡선을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마음 이라는 게 근본이거든요. 장난이 아니에요. 우리의 이 육신은 전부 모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환상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계속 말씀드리는데 꼭 몸과 마음을 잘 다지면서 참선 명상을 해보세요. 제가 단언컨대 부처님 나라를 당장 수행을 해서 내가 몰입해서 들어가면 환희의 세계, 연락의 세계로 몸이 백회혈과 단전이 밀고 터지면서 천지가 통하고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환희와 연락을 체험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나와요. 차원이 달라질수록 즐거움이 더하거든요. 꼭 좀 몸을 단련하세요. 몸의 회로를 열어놓고 계속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짜 체험을 해보시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으니 꼭 해보세요. 정말 확 열립니다. 여기가 환상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 높아질수록 체험하는 즐거움은 더 황홀해요. 악이 허상임을 알게 되고, 내 안에 부처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모두가 다 부처님 나라로부터 타락한 천사들이에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추방시킨 겁니다. 누가 나를 이 땅에 내려 보낸 게 아니에요. 스스로 말고는 그 누구도 우리를 추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건 환상이에요. 자꾸만 의식주, 먹고 살 걱정을 하지만, 여러분 정말 부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넋 나간 육신의 요구에 자꾸 복종하다보면 그게 나의 인생인줄 알아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신 나라에서 두려움 증오 갈등 대립이 넘실되는 나라로 만들어 버린 건 우리 자신의 죄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꾸만 압박 받으면 그 사람이 크잖아요. 어떤 종류의 싸움이든 간에 상대방을 강화시킵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안 죽으려고 하거든요. 싸움은 상대방을 더욱 힘 있게 만듭니다.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면 그냥 지나가 버리면 스스로 쓰러져 버립니다. 우리 몸에는 영원과 통하는 채널이 있어요. 우리는 부처이며, 우리 몸과 생각을 배포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세상은 많이 굴절되어 있거든요. 한 사람 두 사람 자꾸 부처님 나라를 우리 법당의 많은 분들이 체험하면 정말 막 번져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정말 백회혈을 여는 수행이 잘 없으니 꼭 하도록 하세요. 자 마치겠습니다.</SPAN></P>2018-11-08 오후 2:59:21 만상은 항상 양면성이 있다. 길함이 흉함이고 흉함이 곧 길함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라 /Media/law/Read.aspx?db_cnt=80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마음의 여유 삶의 현장을 살펴보면 일이 잘 풀릴 때 ‘아, 잘 나가는구나’하면서 자칫 마음이 해이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일이 잘 되갈수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내면 좋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르고 내림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옛날 선인들은 호사다마(好事多魔)를 얘기했나 봅니다. 지난여름 엄청 더웠습니다. 지독한 더위라 하지만 더울 때는 더워야 합니다. 또 추울 땐 추워야 하고요. 그래야 여러 가지 병균이 사멸하고 그 다음해 농사에 도움이 됩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지 아예 더위가 없거나 추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길함 가운데 항상 흉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흉함 가운데 길함이 들어 있으니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거든요. 한편은 양(陽)이고 한편은 음(陰)이라서 그렇습니다. 상대성의 세계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놓으면 반드시 낙하하게 돼 있거든요. 원아불퇴보리심이라고 그러잖아요. 마음을 놓으면 또 어디로 추락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게으르지 말라’하셨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마음자리는 전부 내 마음 따라 반응합니다. 자기 마음자리가 어떻게 운용되는가에 따라서 움직여요. 부처님이 우리에게‘성불하라’고 하신 이유도 영원히 승리하는 사람 없고 영원히 패배하는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잘나가다가도 무너지고 심지어 감옥에도 가잖아요. 법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고 수행해야 할 대상입니다. 내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과 마음은 순간순간 변해갑니다. 잘나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에 벌써 추락의 기미가 보인다고 그럴까요, 징후가 보입니다. 부처님이나 위대한 선사들이 얘기한 대로 자신을 경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순간에도 만상은 계속 작용하니까 그래요. 내가 좀 잘 나간다고 쉬어도 다른 사람들은 쉬지 않고 계속 가거든요. 한 번 길한 괘를 뽑았다고 지속적으로 길한 건 아닙니다. 또 한 번 흉한 괘를 뽑았다고 계속 흉한 것도 아니에요. 남자의 몸에 남성호르몬만 있는 게 아니고 여자의 몸에 여성호르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남자가 아니고 영원한 여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사홍서원‘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를 실천하며 살아가세요. 원력(願力),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어떤 구체적인 방향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원력은 일종의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 같은 겁니다.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야지요. 꿈이 이루어졌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세속 사람들은 전부 출세를 원하고, 사업이 잘 돼 돈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잘되고 나면 또 그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거예요? 그 다음엔 추락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의 원(願)은 무변(無變)을 말합니다. 중생무변서원도, 끝이 없단 말이에요. 오늘 같은 날은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을 발명해낸 민족이 유대민족이거든요.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하루 정도는 여유를 갖고 쉬자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삼보 일 배, 세 걸음 걷고 한 걸음 절하잖아요. 나아가면서도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엘다 샤피르라는 교수가 실험한 것 중에 재미난 게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큰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과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어요. 큰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자기가 넣고 싶은 걸 충분히 넣습니다. 근데 작은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은‘이거 넣을까? 이거 뺄까?’하면서 여유 없는 마음이 작용해요. 부익부빈익빈 되는 근본 이유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들이 잘 될 수밖에요. 여유가 없으면 넣을까 뺄까 하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그만큼 일이 순조롭게 잘 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2.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순간 변해갑니다. 순간순간 천당과 지옥을 오가요. 이런 저런 선택을 강요당하며 사니까 답답하고 갑갑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큰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넣고 싶은 만큼 넣고 갈 수 있습니다. 작은 가방을 가지고 있으면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아쉬움을 키워요.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하란 법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고 나아가세요. 처절한 아픔 속에 있다고, 괴로움 속에 있다고 영원히 괴로운 거 아니니까요. 하늘을 우러러 몸과 마음을 던져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 어렵다고 영원히 어려운 법 없습니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그러잖아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생각이 달라집니다. 바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빈 마음의 공간이에요. 음악에서 쉼표가 더 중요해요. 뉴욕에 가면 센트럴 파크라고 하는 큰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을 설계한 로버트 모지스는‘만약 맨하탄 중심부에 공원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5년쯤 지나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지금 뉴욕 시민들에게 센트럴 파크는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휴식공간입니다. 그들은 그 공원을 너무너무 사랑하잖아요. 마음의 여유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세상은 계속 변전무상하게 흘러갑니다. 잘되는 날도 있고 못되는 날도 있습니다. 괴로운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습니다. 특히 뫼가 높으면 골이 깊은 것처럼 잘나가는 사람들이 급전직하해요. 그래서 인생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필요해요.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합니다. 결핍돼 있을 땐 악순환 됩니다. 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가? 왜 기도가 중요한가? 왜 진리의 말씀이 중요한가? 자문해보세요. 그래야 여유를 찾을 수 있고, 마음에 안정이 와요. 큰 가방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여유로우니까 스트레스가 덜한 거예요. 작은 가방을 싸는 사람이라면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등산을 갑니다. 또 바다에 가요. 왜냐, 너른 여유로운 공간이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거든요. 공간은 에너지 그 자체이면서 지혜를 줍니다. 무한과 영원이라는 건 신비와 절대성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먼 데 있는 걸 보면 신비롭기도 하고 또 영원성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절대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기도는 무지의 피난처’라고 하셨어요. 기도를 통해 무명을 깨야 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허공을 바라보면 답답한 게 좀 풀리는 듯 하잖아요. 공간이 부처님이고 허공이 부처님이에요. 서양에서 교회나 성당의 천장을 웅장하고 높게 만드는 이유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큰 회사나 단체, 심지어 나라가 무너지는 이유는 허공을 잊고 사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를 잊고 사니까 그래요. 하나를 등한시하면 찢어집니다. 개인도 때가 되면 떠나가야 되고, 나라도 때가 되면 무너집니다. 문명이 마찬가지에요. 수명이 다합니다. 치매박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겁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게 나이 들수록 운동을 안 한다는 거죠. 몸도 계속 움직여야 해요. 많이 걸으세요. 자꾸만 걷다 보면 마음이 정갈해집니다.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돼요. 백세 시대에 걸맞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세요.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있습니다. 그는 매일 걷는 걸 아주 중요한 일 중의 하나로 여겼답니다. 걸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대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옹고집쟁이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 옹고집이란 좋은 게 아닙니다. 옹고집은 누가 말하면 그걸 수용하기를 거부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그래요. 이게 문제라니까요. 누가 나에게 부정적인 말, 생각, 행동을 해와도 그 말에 관용으로 버틸 수 있는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가 인간의 크기입니다. 고집을 세우지 말고, 아집을 꺾어야 부처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알라야식의 식(識)은 기억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두뇌능력이 좋아집니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어요. 몸과 마음을 다하면 시냅스 패턴이 달라집니다. 3.마음이 고요하면 천하를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쓸 데 없는 건 빨리빨리 버려야 합니다. 번뇌 따위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쓰레기밖에 안 되거든요. 쓰레기 치우는 작업이 참선이고 기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떠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마음 가운데 갖고 살아가세요. 허공을 꼭 기억하면 신장님과 불보살님과 많은 인연령이 나를 지켜봐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재의식은 전체의식의 1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의식이 10분의 9거든요. 부처님은‘바다와 땅이 다 깨지면 너희는 어디로 가냐?’물으셨어요. 당연히 허공으로 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밥 먹듯이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허공이 되고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우세요. 쓰레기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야 합니다. 마음을 맑고 청정하게 가꾸며 살아야 허공이 도와줍니다.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신심명에‘좋고 나쁨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도(道)는 좋고 나쁜 것을 이기는 거예요. 좋으면 좋은 대로 좋고 나쁘면 나쁜 대로 꾸준히, 끊임없이 그냥 가면 됩니다. 또 많이 걸으세요.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영어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무조건 영화 한 편을 삼백 번을 봐라, 이랬다는 거잖아요. 삼백 번, 한 편을 씹어 먹으면 귀가 터진다, 이랬다는 거예요. 계속 하다 보면 귀가 열립니다.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계속 가다보면 열리게 돼 있습니다. 내가 좀 잘나간다 싶으면 항상 ‘이만치면 됐지’하지요. 그때부터 낙하산 타는 거예요. 그저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꾸준히 가야합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는 세계적인 천재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정신의학자가 그들을 살피다 너무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어요. 유명한 천재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 아이들에게 자폐가 많더란 말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자폐아 천국 같대요. 그 이유를 밝혀낼 수가 없으니 의사도 굉장히 놀란 거죠. 부모가 항상 몰입하는 습관에 젖어 사니 그게 아이들한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요즘엔 실리콘밸리에서 과학적인 측면보단 예술적인 측면, 인문학적인 면을 많이 적용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늘 고요하면 천하의 바름을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텅 비면 어느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계를 잘 지켜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계를 깨뜨리면 마음이 불안해지고요. 마음이 고요해지는 게 수행입니다. 수행을 나의 생활양식으로 삼고 살아가세요. 그것이 불자의 삶의 준칙입니다. 예를 들어 “술 한두 잔은 괜찮아.”합니다만 의사들 얘기로는 술 한두 잔도 절대로 나쁘다고 해요. 부처님도 신도오계 가운데도 살생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거나 팔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삶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거기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우리 몸 자체가 플러스마이너스로 돼 있거든요. 양자, 전자로 돼 있어요. 우리의 몸을 비롯한 세상 전부가 동글동글해서 돌아갑니다. 지구도 돌잖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요. 너무 전전반측하지 마세요. 그러면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합니다. 항상 여여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가면 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과 함께 가시면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어요. 불보살님, 신장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 모두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만상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길함이 흉함이고 흉함이 곧 길함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항상 부처님은 나와 함께 계시구나, 생각하며 살아가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궁리해야 합니다. 천수경에 나오는‘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이 치매를 예방하는 철칙이자 성불의 길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온통 현실가운데 적용됨을 깨달아 열심히 정진하시기 당부 드립니다. 2018-10-16 오후 2:27:48잘 죽는 것도 실력이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 바람의 방향은 언제든 바뀐다 2018.09.09/Media/law/Read.aspx?db_cnt=80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죽음, 하나의 선물 저는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저세상으로 모셔요. 세속말로 제 업은 시신을 모시는 일이지요. 돌아가신 분들을 매일 매일 만납니다, 매일 제사가 있으니까요. 평생을 이렇게 살다보니 정말 많은 분을 제 손으로 입관하고, 화장하고, 매장하고…. 오늘도 사십구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을 뵈면 느끼는 게 있어요. 이른바 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는 겁니다. 죽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양상이 평생을 대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주검을 대할 기회가 흔치 않으나 저는 매일 시신을 모시고 살잖아요. 항상 말씀 드리는데 여러분이나 저나 떠나가지 않을 분 아무도 아니 계세요. 따지고 보면 산다는 건 사실상 매일 죽어간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어가죠. 근데 사람들은 잘 산다는 것에 목을 맵니다. 돈 버는 일에만 열심이에요.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사는 것만 생각하고 허둥대다 정작 떠나는 시간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돼있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이야기 자체를 듣기 싫어합니다. 막상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들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영가들 역시 발걸음을 잘 떼지 못하고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풍처럼 왔다가 소풍 끝내고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상호는 천태만상이거든요. 사람의 눈빛은 속일 수 없다고 하는데 돌아가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겁먹은 눈, 두려움에 가득 찬 눈, 가고 싶지 않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이에요. ‘정말 죽는 것도 실력이구나’를 절감합니다. 우리가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워지지 않잖아요. 죽는 실력을 잘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이 땅에 해탈을 위해, 새로워지기 위해 왔거든요. 오늘 법회가 끝나면 집에 가서 조용한 시간에 자신의 위패를 써 보세요. 뭔가 새로운 마음이 들 겁니다. 우리의 몸 전체가 그렇지만 인간의 뇌는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해야 썩지 않습니다. 나쁜 말, 나쁜 생각, 나쁜 행동을 하면 두뇌가 썩어 치매가 쉽게 와요. 어리석음에서 오는 게 치매(癡&#21574;)거든요. 뇌는 제대로 쓰지 않으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죽음은 하나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세상을 끝내야 다음 세상이 주어지는데 말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나려면 죽음의 문턱을 잘 넘어가야 합니다. 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삶을 선물 받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지혜와 자비를 닦아가야 해요. 그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답니다.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는 것예요.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을 터이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래요. 이른바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스트레스를 즐기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걸 보셨잖아요. 정권이 수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어떤 몰골로 죽어갈지를 생각해보세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도 앞으로 어떤 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갈공명도 오장원 전투에서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괴테가 파우스트라고 하는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60년을 매일 몰입했다는 거 아닙니까. 60년을 노력한 작품이 파우스트래요. 매일 매일이 쌓여서 일생이 되잖아요. 그만큼 마음과 몸, 머리를 잘 써야 합니다. 소쉬르 말처럼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나 망하려고 들면 말부터 망합니다. 망하는 말만 쓴다는 거예요. 생각도 마찬가지, 행동도 마찬가지고요. 흥하는 자는 말부터 달라요.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마음과 몸과 두뇌를 쓰는 일입니다. 상대방을 살리는 말, 생각,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해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를 생각해 보면 당장 말 한 마디라도 신중히 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가 나를 흥하게 하고, 남을 흥하게 하고, 세상을 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두뇌를 썩게 만들기도 하고 두뇌를 활성화시키기도 합니다. 당장 내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보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된다, 된다’ 하면 정말 됩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정말 안 돼요. 부처님은 그릇 따라 담아주신다고 그랬거든요. 뭔가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된다, 된다’는 의지를 갖고 나아갑니다. ‘아, 뭐가 되겠나?’의심하면 될 일도 안돼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조차 부처님 뜻에 계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953년 예일 대학에서는 그해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인생의 계획이 있는가? 있다면 글로 써서 내봐라’하는 설문 조사를 했대요. 22년이 지난 1975년, 그 자료를 다시 열어보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체크한 거죠. 그랬더니 자기 계획을 문서화해서 ‘나는 미래에 이런 길을 가겠다’라고 정확하게 써냈던 3퍼센트의 학생들이 97프로가 가진 자산의 총합보다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한 사회지도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유심조 그랬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거예요. 생각이 곧 운명입니다.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디란 말은 깨달음이란 말이고 사트바란 말은 영웅이란 뜻이거든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보살의 삶을 살라는 거 아녜요. 성공하는 개인, 성공하는 단체, 성공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영원’을 압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무량한 존재들에게 자기의 모든 걸 던져 헌신해야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람회에 가 보셨죠?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 되는데 작품을 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보살의 삶을 살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과정이 주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망률이 더 높이 나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견딜 만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의 사망률은 그만큼 낮더라는 겁니다. 인간은 고통을 이겨내는 것만큼 강해집니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이 없잖아요. 고통 없는 인생 어디 있어요? 3.스톡홀름 증후군 아무리 사는 게 바쁘시더라도 조용한 시간에‘나는 임종할 때의 인상은 어떨까? 얼마나 평안한 얼굴로 죽을까? 누군가 나의 죽은 얼굴을 보고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나 저나 언젠가는 떠나갑니다. 즐거움 가득한 눈망울로 부처님 나라로 가야 해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도록 사세요.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말은 전혀 다른데 하루를 살면 하루 죽는 거니까 의미는 같습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마세요. 죽음을 회피하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죽음에 대한 자각이 투철할 때 자기의 실존을 인정하게 되거든요. 죽음을 자각하는 자만이 실존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입니다. 만상은 부처님의 거룩한 의지를 머금고 있습니다. 만상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내지 않으면 절대로 즐거움이 올 수가 없어요. 웃는 얼굴로 모든 고통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지난여름은 너무 뜨거웠잖아요? 하지만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의 구실이 있습니다.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래요. 계절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비분별을 떠나야 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돼요.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것이다, 앞쪽만 생각하지 말고 뒤쪽도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상을 즐거움 가득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어야 해요. 그 기억들이 자신의 개성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의 경험이, 기억이 개성을 만들고 그것이 쌓여 바른 임종이 되는 거예요. 우울한 기억, 쓰라린 기억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란 말을 하잖아요. 그래야 자신의 개성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저도 꿈이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은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이 전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가치하냐? 아니에요. 사람은 꿈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거든요. 지구란 땅덩어리에선 천년만년 살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만 딱 살고 가야 해요. 이제 어디로, 어느 학교로 갈 것인가, 이승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나가 관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승을 등진 다음의 영원성을 제대로 확신하지 않아요. 죽는 것도 실력이란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겁니다. 그저 죽음을 싫어하기만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고 나와요. 여러분의 죽음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거울까, 깃털보다 가벼울까? 나의 죽음은 자손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요즘은 남북이 대화를 하고, 북미가 대화를 해요. 예전엔 텔레비전에 북한의 지도자가 나오면 긍정적이지 않았잖아요. 요즘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아졌어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죠? 스톡홀름의 어떤 은행에서 강도 사건이 났대요. 은행 직원들이 일주일가량 강도들에게 감금됐어요. 다행히 그들은 인질로 잡은 사람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대신 다리에 쐈다고 해요. 결국 전투 끝에 강도들은 잡혔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재판정에 나가 강도들의 흉악한 일을 증언해 달라니까 하나같이 ‘난 안 하겠다. 머리에 총을 쏘는 대신 다리를 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북한에 시달리며 살다 보니까 요즘의 상황과 비교해 북쪽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적용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묘합니다. 부처님은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거든요. 우리는 이 땅을 등져도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부처님께 죄송스럽지 않게 살아야 해요.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영혼의 어버이, 그분이 나의 말과 생각,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부끄럽지 않게요. 왜냐하면 그게 다 점수로 매겨지고 실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괜히 우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영원이란 관점에서 말과 생각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하게 되면 매일 매일의 삶이 밝아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마음이 나의 영원성을 담보합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불안의식, 초조한 앙금을 걷어내는 묘방이 될 수 있습니다. 4.행복은 절댓값이 아니다 산다는 건 죽는다는 것과 같이 갑니다. 그 죽음을 자극하는 자, 그자만이 자신의 영원성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죽는다. 그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며 살아가세요. 죽음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용기 있게 직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역사가 기록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찬탄합니다. 죽음을 생각함으로 죽음의 절박함을 알게 됩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으로 삶이 더욱더 짜임새 있어져요. 삶속의 진정한 희열이랄까, 몸과 마음을 다해서 아내를 사랑해야 되겠구나, 남편을 사랑해야 되겠구나 하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므로 인해 오히려 삶이 절박해지고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삶이 존귀하지 않은 겁니다. 살아있는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서 더욱더 사랑해야 되겠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 죽음이 가져올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깨달아야 합니다. 삶이 더 짜임새 있게 변해갑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언젠가 떠나갈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염세적이 되겠습니까? 아니에요. 보살로서의 삶을 더욱더 열심히 살 게 될 거예요. 죽음을 수용하면서‘내가 지금 이 순간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사랑할 기회가 또 있을까’하면서요. ‘이 순간이 사라지면 다시 오지 않을 텐데’하는 죽음의 절박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찾습니다. 죽은 다음의 행복, 이거 아닙니다. 저도 어렸을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쟁의 끝이라 정말 가난했어요. 지금은 옛날보다 먹고사는 게 훨씬 나아졌는데 사람들은 옛날보다 행복해합니까? 행복은 절댓값이 아니거든요. 행복은 상대적인 거예요. 부처님 말씀에 진정한 행복은 내가 없어질 때,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온다고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 가운데 행복감이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죽음과 함께할 때 옵니다. 스님들이 돌아가시는 걸 ‘열반에 드셨다’고 그러잖아요. 열반과 더불어 오는 행복이 참다운 행복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판다고 칩시다. 상대에게 감동을 주거나 울림이 있을 때 그 물건을 사게 되고 사랑하게 되잖아요. 결국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파는 거거든요. 마음과 제품이 함께 가는 삶을 살아가세요. 순수한 마음, 내가 녹아진 마음으로 만든 제품이라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말과 생각과 행동이어야 합니다. 정신과 과학은 같이 갑니다. 정신세계가 가미된 제품들이 히트를 치는 거죠. 요즘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고, 달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달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물이 드나들고, 갯벌이 생기면서 물고기가 살게 된 거라는 얘기에요. 밀물, 썰물이 전부 달 덕분이래요. 지구 자전축의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게 달이에요. 저는 그 말에 동감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하늘의 보살핌 가운데 가능한 얘기입니다. 항상 ‘나는 언젠가 떠나갈 것이다’라는 의지를 갖고 진정성 있게 살아가세요. 그래야 마지막 떠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 속에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해요. 잘 죽는 것도 실력입니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고 그 실력을 잘 닦아가세요. 절망할 것 없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바뀝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주의 법 따라 사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2018-10-16 오후 2:26:22우리는 누구나 진실과 본질이 연결되고 싶은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 길은 고통의 길이다 /Media/law/Read.aspx?db_cnt=80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진실, 본질(핵심)에 가까워지면, 탁월한 이데아를 창조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나가 다 이 세상에 던져 질 때는 문제를 안고 던져집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나오신 것도 문제의 탄생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우린 매일 매일의 삶을 살면서 매일 매일의 문제가 던져지고 그 문제가 잘 풀려지도록 몸과 마음을 다 던지잖아요. 부처님 말씀대로 라면 우린 누구나가 다 하나도 빠짐없이, 미물중생들까지도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가, 문제의 진실이 무엇인가와 같은 진실과 본질, 핵심을 추구하는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가 다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문제의 해답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항상 궁구하고 살고 계시다는 거죠. 저는 문제의식이 없는데요? 하시는 그런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작은 일을 하시면 작은 일 하시는 대로 큰일을 하시면 큰일을 하시는 대로 누구나가 다 그런 문제의 해결책과 본질에 접근하고, 그런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던집니다.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로 기업도, 나라도 그렇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의 태어남은 문제의 태어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풀려고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자꾸만 생각을 하게 되고 모색을 하게 되죠. 자신이 이렇게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결과의 방향은 그리로 가 버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제 해결책을 잘못 짚어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핵심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이게 아닌데 싶지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 굴레를 부수고 새로움을 만들려면 힘이 드니, 그대로 가다 정말로 문제가 되고, 재앙이 옵니다. 사람들은 아니다 싶은데도 그대로 끌려가니 망하는 거예요. 투자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도 그렇고 이게 아닌데 싶으면 딱 놔야 하는데 설마, 설마 하면서 방치합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죠. 이것이 인간의 취약점입니다. 냉철한 지혜로 아니다 싶으면 중단해야 합니다. 노키아 같이 거대한 회사도 무너졌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내가 물건을 구매할 때 신상품 나오면‘이건 없던 건데’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창조의 거대한 기둥 가운데 하나가 해탈이며, 창조를 위한 파괴가 있다는 부처님 말씀에 따라 계속 새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합니다. 본질을 향해서 계속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해결책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새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어요. 우리 마음 가운데 창조성도 있어요.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면 어디까지 갈지 몰라요, 무한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거나 창조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고 고통이 따릅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렇게나 나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칭찬을 들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도 하죠. 칭찬 중요하죠. 그런데 창의는 고통을 수반해야 되는데, 칭찬 받는 것에 중독되어 버리면, 창의적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거죠. 고통을 즐기는 자 - 창의적인 인간들은 고통스럽고, 고독합니다. 아이디어맨들은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성급할 수도 없어요. 진실과 본질에 접근해가다가 이거다 싶어서, 해결책을 이거로 가면되겠다 생각해서 작품 만들었는데 그게 히트를 치면 그 희열은 말도 못하잖아요. 예를 들면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은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이거 되겠다 이거 한번 해 보겠다 해서 야후의 창업자를 통해서 손정일 만났다는 거죠. 손정일이 아이디어를 한 번 듣더니 오케이 하고, 그 자리에서 이천만 달러를 줬다는 거죠.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이디어를 들어만 보고 해보라고 하니요. 그 사람에게 이천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삼천배로 튀겨졌다는 겁니다. 이천만 달러, 이백 억이 육십조가 됐다는 거죠. 전 세계 아이티업계를 뒤집어 놨다는 거예요.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회사가 단지 십 몇 년 만에 됐다는 거죠. 얼마나 희열이겠어요. 그게 희열 정도가 아니라 세계판도를 뒤바꿔 놓은 거죠. 지형을 바꿨다는 거죠. 얼마나 기가 막혀요. 우리가 본질에 접근하여 얻는 창의적인 이데아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효과는 한도 끝도 없어요. 일체유심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중국의 결제 시스템 - 중국의 15억 인구, 어마어마한 시장이죠,아이티 상거래를 90% 이상 장악하고 있으니 수익이 어마어마하겠죠, 능가할 자가 있을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이데아를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아이티 업계에 3D, 4D가 있어요. 평면에다가 3차원, 4차원, 5차원, 고차원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학은 차원의 전이랄까, 고차원적인 세계를 누락 시키고, 현실 세계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과학이라고 한다면 종교, 염력, 마음의 세계는 차원의 전이 -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 과학과 마음 세계, 염력의 차이는 뭘까요? 3차원의 세계에서는 알 수가 없죠. 차원의 전이는 평면에서 일어날 수 없어요. 마음은 무한이며, 점이성이 되고, 공간으로 나가지만 평면에다가 뭔가 하려면 3D, 4D로 만들어내죠. 탁월한 이데아들은 모두 무한대한 차원, 고차원의 세계와 만나야 가능 합니다. 생각이란 거 자체는 고차원의 제약을 받지 않아요. 자유로이 생각, 사고하면서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공간도 만들 수 있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왜 이렇게 부처님 앞에 모여서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무한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은 몸과 현실에 잡히면 자신의 몸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원의 변이를 꿰뚫는 명상을 한다거나,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염력은 원동력이 되어 우리의 생각이 자유로워져 우주를 덮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법, 생각하는 것이 전 우주에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일체유심조 - 일체가 마음을 바탕으로 창조되고 있다, 마음은 무한한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이미 창조된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노력으로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참선, 수행, 명상을 통하여 의식세계의 차원 고양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법고대통 할 때 질문을 받았는데요, 불면증이라 잠이 안 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무실 때마다 부처님 만나러 갑니다. 다른 종교에 계신 분들이면 하나님 만나러 갑니다. 그렇게 하고 잠에 드시라고 하니, 얼마 후에 편지가 왔어요. 정말 스님 방송에서 들은 대로 잠을 잘 때마다 앉아서 30분 동안 이제 하나님 만나러 갑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잠을 자니까 잠이 잘 오더래요. 그럼요, 잠과 꿈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종 시에도 우리는 잠자듯이 죽어버려요. 꿈은 무한대한 차원이고 불가사의 인데.. 왜 불면증이 있는가. 현실을 생각하니까 두뇌 회로가 활성화되어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영혼의 세계로 들어갈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겁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이리 저리 뒤척거리니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거기다가 아이를 지웠거나, 여러 가지 파장들이 당도하니,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왜 꿈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냐는 거죠. 차원이 다르니까요. 이 문제는 융, 프로이트도 풀지 못했어요. 왜 꿈속에서 미래가 보이고, 돌아가신 분들이 보이는가. 차원이 다르니까요. 표면만 살짝 살짝 건드리는 수행을 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잠 주무시기 30분 전에 마음의 회로를 정리하고, 기도하세요. 오늘 하루 온 종일 피곤하게 전부다 썼더니 부처님 만나는 시간에 어루만져 주시고, 내일을 위해 우리 회로를 다 정리해주시고, 두뇌 회로도 다 정리해 주십니다. 그럼 내일 하루를 살 수 있는 거예요. 수면제 그거 독이에요. 정신 안정제라고 하는데 그거 많이 드시면 큰일 나요. 머리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멍해져요. 잠과 꿈, 4차원 너머와 만나는 시간, 히랍어로 잠다나토즘- 잠, 꿈, 죽음, 영혼은 어원이 같습니다. 잠자기 전에 회로 정리를 하고 영혼과 접하는 일종의 참선 같은 거, 명상 같은 것입니다. 회로 정리하는 그런 차원으로 아셔야 해요. 우리는 영혼과 하나이니까요. 선몽, 예지몽처럼 꿈꾸는 것이 꼭 맞아서 미래가 보인다는 거죠. 탁월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초월적인 인물들이며 수행의 인물들입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전이가 일어나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과학과 마음의 다른 세계가 열려요. 공부하고 책 읽고 문자 쓰고 다 좋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미국 트라이 사이더스 잡지 내용 중 참선, 명상하십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참선, 명상하는 사람은 상류계층 밖에 못한다는 거죠,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은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살면서 30분이건 1시간 이건 간에 무한을 만나는 시간을 자꾸만 만들어 두세요. 허공의 수많은 신장님들과 불보살님들 만나는 시간 나의 의식 세계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거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염파나 염력은 무진장입니다. 진실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 해결책을 알고 싶은 마음, 본질에 접근하고 싶음을 가지고 있어요. 본질이 뭐예요? 껍데기가 뭐예요? 시간이 가면 부패되는 거 아닙니까. 음식에도 발효음식이 좋다 그러죠. 발효와 부패 두 가지가 있어요. 썩는 것은 부패이고, 발효는 몸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유익한 균과 유해균이 몸속에 있는 것과 같이요. 이 몸은 언젠가는 부패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엄에 나오듯이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이 마음에 있지 않다 - 그럼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호흡을 통해서 들락날락 하고, 가동시킵니다. 호흡을 그냥 호흡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입니다. 밤에 잠 주무실 때 다른 아무것도 하지마시고 오로지 부처님 만나는 거예요. 회로를 정비하고 주무셔야 해요. 그래야 잠이 잘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허공 자체가 무한입니다. 무한한 정보가 있어 무한과 만나는 마음 자세를 가져주세요. 구글, 페이스북 등의 회사에서 참선, 명상을 매일같이 시켜요. 우리가 기록을 많이 하라고 하는데 기록을 하면 정리가 잘됩니다. 참선도 마찬가지라 하면 딱 보입니다. 우리가 등산을 해서 정상에 올라가면 왜 시원해요? 온 세상이 눈 밑에 보이거든요. 잘 보이는 겁니다. 고차원이 되면 저차원까지 다 정리되어 보입니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되니 해결책을 알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중국이나 인도에서 영국의 1/10 비용으로 화성 괘도에 진입하는 로켓 발사를 시켰어요. 급여도 미국보다 낮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존심을 걸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황색 돌풍이 불어 격변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삼성전자를 깨트리고 세계 1, 2, 3위 로 등극해버렸죠. 실패하면 돈이 날아가니까 연구를 한 번에 성공 시킵니다. 구라파나 미국 등지에‘공’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킵니까. 인도나 중국은 추상적이잖아요. 과학이 발달하면 고차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 삶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항상 순환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장악하는 그런 인간들이 승리합니다. 점점 고차원적으로 바뀌면 저차원적인 세계는 따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가정에서도, 기업에서도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으로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6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통체적으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다보면 하나의 원리가 있어요.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면 해답을 드리는데,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대의 명제를 아셔야 합니다. 성격도 나이도 배경도 다른 그런 사람들이 서로 만났습니다. 우주와 부처의 이치에 따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요.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전혀 다른 성별, 이질적인 사람이 만나는 결혼은 엄청난 수행입니다. 내 자존심과 정체성을 놔야 된다니까요. 타협하고 양보하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입니다. 그런데 결혼해도 깨달음이 없으니, 하나가 되고픈 환상으로 결혼이 실현 되지만, 살다보면 하나가 될 수 없는 좌절감을 확인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어요. 고통스럽죠, 깨지고 싸우고, 이혼하고.. 안타까워요. 자꾸만 자기가 함몰 돼 가는 거 같고 자길 잃어버리는 거 같으니까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죠. 하나가 되고픈 열망으로 큰 환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양자가 너무 자기주장을 하니까, 자기 페이스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려고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내 정체성 이걸 내가 잊어버린 거 같으니,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니 가정이 깨져 버립니다. 자기 자존심이라거나 정체감이 녹아지는 거 같으니 자꾸 자존심을 세우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고집스러운 마음, 경직된 태도는 참 곤란합니다. 안되거든요. 상대방이 도끼눈을 뜨면 도끼에 맞아 죽을까 봐 나도 공격 태세로 도끼눈을 뜨는 거죠. 장밋빛 환상 때문에 결혼했는데, 전쟁터 같은 그런 가정을 만들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심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 계속 면역 억제제를 맞는데요. 다른 사람의 심장이 내 몸으로 들어왔으니 그 전 사람의 면역세포가 있어서 면역 억제제가 필요하듯이, 심장과 마음이 만나 하나가 되었지만 둘 다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개성화된 특성을 자꾸만 녹이기 위해 면역 억제제를 자꾸만 맞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그 사람의 면역 세포들이 공격을 가한대요. 결혼을 한다는 것, 하나의 하트가 만난다는 것, 한 몸이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 면역주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방과 더불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부처인 나라인데 예외가 있겠습니까. 일본에서 조사된 것인데 우리나라도 결과가 비슷할 것입니다. 한 남자를 만나서 일생을 같이 보내는 여자는 자궁암 발생 유방암 발생 확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여러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 자신과 면역체계가 다르고, 체액이 다르니 자궁이 헐어버리고, 자궁암 발생 빈도가 현저히 높아져 버리는 거죠. 유곽지대에 있던 여자들 전부 다 병이 많잖아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 우주는 에누리가 없어요. 부부는 서로 필요해서 만났지만 면역 억제제를 맞아야 되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양보하고 타협하고 하는 거죠. 그런 노력, 그런 희생, 노력을 치르지 않겠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죠. 하나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런 각오는 하고 살아야죠. 전부 다 내 페이스대로 가려고 하고 소통을 위한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자존심이 자꾸 좌절당하는 그런 경험을 매일하니까, 예측 불허의 전쟁터가 되어 남자는 남자대로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고, 아내는 아내대로 눌리지 않으려고 하니 싸움이 되고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우주의 법칙이 어그러지는 거예요. 결국 다시 윤회하게 됩니다. 아내를 좀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남편도 아내를 많이 안아주세요.그렇지 않고 서로 성질내고 대립하면 피곤해서 일찍 죽어요. 화로 피가 끓어버리면 피가 탁해지고, 독소가 생깁니다. 상대를 먼저 만족시키세요. 미국의 리포트에 보면 섹스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고, 상호 만족이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끌어안고만 있어도 행복한 거거든요. 상대방과 하나가 됐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 부부유별이라고 하죠, 이건 안 되는 거거든요. 저에게 이 거리감에 대한 질문, 상담이 오면 서로 적절하게 타협해서 거리감을 축소시켜 나가야 한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양보와 타협으로 항상 상대를 먼저 생각해야 되며, 또한 나를 그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 결혼이기도 합니다. 가정 안에서 엄마, 아버지가 사는 양상을 자녀들이 그대로 반복하므로 잘 사셔야 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보살님들보면 80-90%가 불우한 가정이에요. 문제아는 전부 불우한 가정에서 나옵니다. 부모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잘못 커가는 것입니다. 일진이나 왕따가 그래서 나옵니다. 부모가 잘해야 됩니다. 사춘기를 잘 보내도록, 엄마, 할아버지 역할,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는 교육이 필요해요. 유대인들은 그런 점에서 정말 무섭습니다. 가족 공동체가 너무 중요하니까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항상 회의하고, 토론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인생전반을 갈음하는 수행임을 아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기업도 마찬가집니다. 탁월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진화하고 발전해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 해탈의 길을 가야하며, 고정된 것이 없어야하며, 창조와 파괴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며 계속 나가는 겁니다. 모기업 총수도 말했었죠,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혁신하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공부, 수행해야 합니다. 또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주식투자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죠, 버리는 거 아까워하지 말라, 멍든다. 사기 당하는 것도 괴로워하지 마세요. 전생 빚을 갚았다거나, 내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었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다 버리고 가는 거고, 새 출발을 위한 파괴입니다. 불교는 매일 부수라고 합니다. 그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주식도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니 개인도 기업도 수행해야 합니다. 명상, 참선, 기도하는 그런 기업이 승리합니다. 기업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데아,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업에서는 운영하는 사업 이상의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새로운 걸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은 제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색다른 것을 만들 수 있을까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은 킬러 앱, 킬러 상품, 킬러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해보세요. 그러려면 내가 죽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스티브잡스 같은 친구는 정말 버리는 마음으로 인도에 가서 히피처럼 살고 그랬죠. 스티브잡스, 페이스 북 등에서 좀 더 새롭게, 다르게 생각하자, 세상을 바꾸자고 합니다. 혁신적인 이데아를 가진, 프레임을 가진 인간이 되려면 새로운 것을 자꾸만 흡수해야 되고, 새로운 가르침에 관대해야 하고, 항상 질문해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도, 기업도, 가정도, 나라도 다 경영, 운영의 원리 원칙을 모두 정립해 놓으셔야 합니다. 직원들이 이상과 목표가 확실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데아가 있을 때 회사가 발전이 되는 것입니다. 발전의 원리입니다. 내가 정말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의 기업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 내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상대방을 위해서가 먼저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수익이 들어오는 겁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내가 중요해지려면 세상을 위해서 뭔가 줘야 내가 중요한 인물로 서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고, 항상 돈 계산부터 하니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줄 것이 없는 거죠. 헌 것을 누가 받나요? 아무리 줘도 헌 거 안 받습니다. 죽은 시체 주면 누가 받습니까? 새것 줘야 합니다. 기업도 새것을 줄 마음이 아니면 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는 능인선원에서 이렇게 하다가 후계자가 들어오면 그냥 다 넘겨주고 홀가분하게 가 버릴 겁니다. 새로운 것을 줄 수 없으면 내려와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눈 뜨면 무슨 말을 해줄까 이런 것을 한 번 연구해 보세요. 아내가 치장을 하면 용모를 칭찬하거나, 어제와 달라진 거 같다고 말하거나, 어제 밤에 좋은 꿈 꿨어? 하면서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어떤 새로운 말을 해줄까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연구도 안하고 어떻게 매일매일 삶이 새롭기를 바랍니까. 새로움 이라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써야 새로움이 옵니다. 또 계를 잘 지키고 이 우주의 룰을 잘 지켜야 합니다. 기도하고 마음을 항상 닦고 참선하면 향기가 달라져요. 항상 고차원을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부처님 지혜를 닦아야 해탈이 옵니다. 부처님 공부하시면서 자꾸만 마음을 새롭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지 정말로 공이 쌓입니다. 성공 그러죠? 공을 쌓아야지 성공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부 간에도 서로 보완해주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가정에도 도입해보세요. 가정 안에서 아내를 배려하고, 남편을 배려하고, 나를 버리고, 직원을 배려하고, 서로 상호간에 보강해주고, 보완하는 가치 창출 시스템이 가정에도 기업에도 누구나에게 다 필요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무언가 줄 수 있는가, 기업은 운영하는 사업 그 이상의 그 무엇을 줄 수 있는가로 가치는 평가되며, 그 결과로 기업의 가치를 입증 받을 것입니다. 새로움을 줄 수 없다면 기업은 문 닫습니다. 자꾸 잊어버리니 기록도 자주 하십시오, 그리고 참선, 기도를 많이 하세요. 이건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이라기보다 삶을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구글, 페이스북에서 명상을 왜 시키겠어요? 효용가치가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여러분들이 이 소중한 인생, 삶을 걸고 하는 일들이 과연 무엇인가, 진실과 본질에 접근해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시면서 사셔야 합니다. </SPAN></P>2018-10-02 오후 12:56:14사랑의 정도 따라 영혼의 아름다움 정도가 다르다. 선심은 하늘과 악심은 악도와 연결돼있다 /Media/law/Read.aspx?db_cnt=79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생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세상을 등진다 해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있다 없다 정확히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영가라는 말씀을 하셨고, 영식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영가, 영혼, 영식이란 존재는 이른바‘생각’입니다. 생각이 영혼이라는 거죠. 지금도 여러분은 생각을 하고 계세요. 생각이 오만가지라 하잖아요. 생각이 많아지면 영혼의 상태가 지리멸렬이다, 생각이 분산돼 집중이 안 된다,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중요한 건 생각을 하나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 중에는 좋은 생각이 있을 수 있고 나쁜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한 생각에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한 생각이 삼천대천세계를 머금는다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에요. 한 생각이 영원과 통한다 하니 생각을 잘 갈무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존재입니다. “저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몰라.” 해요. 그런 공처럼 튀는 생각을 다스리는 숭고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요.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염력이라 말하고 염파라 말하거든요. 에너지는 항존하므로 생각은 저승으로 갑니다. 그러한 생각을 상념체라고 불러요. 생각은 마음의 눈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의 모든 수행은 전부 이 생각을 가다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중 참선은 부정적인 번뇌와 망상을 걷어내는 작업이에요. 쓸 데 없는 생각을 걷어내서 맑고 깨끗한, 순일무잡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생각을 맑혀나가는 염불,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낮추는 마음으로 내야 해요. 누구나 아집이라는 걸 갖고 있잖아요. 자기주장을 거둬들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자기고집이라고 그럴까요, 자기주장을 쉽게 꺾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거예요. 이론적으로 정립해야 실천할 수 있는 거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산 거북이의 등가죽을 벗긴 것과도 같다’고 합니다. 부모의 생문을 통해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 울고 나오잖아요. 또 ‘죽어가는 것은 흡사 산 게를 끓는 물에 삶는 것과 같다’고 해요. 얼마나 태어나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힘들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세요. 정말 고통스러워합니다. 우리는 편안히 돌아갈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각을 잘 다스리셔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공부해 놓으면 시험 날짜가 코앞이래도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려면 뭔가 힘이 쌓여야 합니다. 고통을 용감하게 치고 나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정진력을 쌓아놓아야 해요. 부처님 경에 스스로 공덕을 쌓아 복을 지으면 그 공덕과 그 사람의 주파수가 하늘에 통보되어 업장이 소멸되고, 지은 복 따라 빛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손들, 다음 생에까지 경사로운 일이 생긴다, 이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승을 등질 때까지 계속 공부를 해두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평상심시도’평상시 마음 정리를 잘하고 살아가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삶에는 3가지 대의가 있습니다. 첫째, 누구나 죽는다. 안 죽는 사람 없잖아요. 둘째, 누구도 죽는 날을 모른다. 셋째, 때와 장소 없이 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허공에 한 맺힌 영혼이 꽉 차있을 수밖에요. 또 보통의 여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세 명 정도의 아이를 지운대요. 그럼 그 영혼은 또 어떻겠어요? 허공이 편안해져야 살아있는 자들이 편안해집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날짜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설날. 한가위에 차례를 지내는 건 허공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연중생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나와 척을 진 어떤 사람이 돌아가셨다, 그러면 그는 부정적인 상념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웃어넘기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영혼은 서운한 마음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은 참으로 묘해서 누군가를 생각하면 항상 영상으로 나타납니다. 불교에선 알라야식이라고 하죠? 알라야, 쌓여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찍히고 쌓입니다. 알라야식은 이른바 정보의 저장탱크 같은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생각의 응집체, 그걸 식(識)이라 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의 수많은 정보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라짐이 있을 수 있어요? 모두 다 드러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지금도 우리는 허공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항상‘성불합시다’ 합니다. 성불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전체와 하나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타심을 내야 합니다. 사랑은 빛이요, 이기심은 어둠입니다. 어둠 반, 빛 반이니까 낮밤이 반반인 세계, 지구에 태어났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 아미타부처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닌 것처럼 행복도 저절로 오는 게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때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드는 거예요. 남들을 즐겁게 해줘야 합니다. 아내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 남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나보다 남을 배려해야 선령이 됩니다. 남보다 나를 배려하면 악령이 되는 거죠. 지금도 우리는 허공에 있는 호법선신들, 신장님들과 교류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화탕지옥이나 도산지옥과 비슷한 환경에 연결돼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릇된 마음일 때는 악령, 악마들과 만난다니까요. ‘설마 내가 악귀가 되겠나?’ 하지만 내 생각이 나를 만드니까 악귀가 되는 건 순간입니다. ‘요즘 사는 게 지옥 같아’하잖아요. 행복은 기도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 남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음일 때 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우리를 아름다운 영혼으로 승화시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아, 나는 저승하고 상관없어.” 이러지 마세요. 마음은 언제나 영혼의 세계와 연결돼있기 때문입니다. 파동이니까 공명(resonance), 합성이 된다니까요. 사랑의 마음을 가득안고 살아가세요. 그래야 허공계에 있는 코드 맞는 영혼이 나와 더불어 삽니다. 그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내가 커지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도하는 마음, 제사를 드리는 마음, 법당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고 참회해야 나와 인연 있는 영혼들의 악업이 점점 감소합니다. 나의 선업이 증가하면 그들도 기쁘잖아요. 그들이 나를 가호해요.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지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도와줍니다. 허공은 다 압니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그러잖아요. 우리는 지금도 영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삽니다. 다만 감지하지 못할 뿐이에요. 그들도 생각으로 존재하니까 우리 주변에 항상 계십니다. 생각, 의지는 영혼에 속한 능력인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의 눈이 맑아져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맑아지면 보는 게 달라져요. 전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생각은 영혼의 세계와 통하거든요. 맑은 생각을 하세요. 이타심은 밝음입니다. 이기심은 어둠이에요. 남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베풀고 펼치면 해탈의 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다가 등져도 그 사람이 일생동안 가지고 있던 사랑의 정도, 생각의 맑고 깨끗함의 정도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얼마나, 어떻게 살았던가가 중대한 잣대가 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언제나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면 미래가 훤히 보이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몽이 있어요. 몽중가피라고 말합니다. 꿈에 훤히 보이거든요. 선몽은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진리에 따른 끊임없는 실천을 해야 받아요. 진리는 하나니까,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통하니까 미래가 보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서부터 생각했던 거 있죠? 그 생각했던 아주 많은 부분을 경험하고 나서 ‘인생계획서는 짜여 있는 게 분명하구나’깨닫게 되잖아요. 네, 그런 게 있어요. ‘아, 그때 내가 이렇게 되려고 했던 거구나’ 이렇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기분이 통하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끼리 모입니다. 영계도 사랑의 정도에 따라 모임이 각각입니다. 부부가 이승에서 만나 살아요. 그러다 아내가 먼저 돌아가시든지 남편이 먼저 돌아가셨어요. 아내가 저승 가면 ‘내 남편 만나 봐야겠다’합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백퍼센트 다 만납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니까 그래요. 만나게 되지만 사는 영계는 다릅니다. 얼마동안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업이 다르기 때문에 사는 세계는 달라집니다. 때가 되면 흩어져서 제 갈 길로 갑니다. 영혼의 세계는 내가 상대방을 돕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랑의 정도, 지혜의 정도에 따라서 해당된 영계 사회로 가야 합니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인신난득의 의미를 되새기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우리가 사람의 몸 받은 후 얼마나 수행했느냐에 따라 일종의 육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아, 내가 열심히 수행해야 되겠구나. 아, 내가 열심히 공덕을 쌓아야 되겠구나. 아, 내가 법을 생활화해야 되겠구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이미 살아있을 때 저 세상을 봤기 때문에 죽을 때도 죽음에 연연해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세요. 우리는 오랜 세월 갈고닦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왔습니다. 사람으로 왔다는 건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하면서 수행자의 길을 열심히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돈 벌러, 권력 드날리려고만 온 게 아니에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권을 가졌으니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어떤 영혼으로 승화돼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선택권은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은 금입니다. 금 같은 시간은 잠을 잘 때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인간은 잠을 안 자면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시간을 아껴 열심히 공덕을 닦고, 만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정진하세요. 그래야 잠을 잘 권리가 생깁니다. 오늘도 내가 단잠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신난득, 맹구우목의 의미를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법을 얼마나 실천하며 사는가? 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지혜로 가득 차 있는가? 내가 얼마나 영적인가? 자문해보세요. 인간에게는 세속적 인간, 도덕적 인간, 영적인 인간이 있거든요. 승화된 인격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불하는 그날까지 티끌만한 번뇌로 언제든 한순간 강등될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부처님은 삼계(三界) 안에 편안한 자리는 없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보내실 것인가를 고민해보세요. 사르트르 말처럼‘인간에겐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 같다’각자의 자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사랑의 실천을 도모하고, 지혜를 갈고닦기 위해서입니다. 열반을 구현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거예요. 부처님 법 따라, 진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능력이 계속 계발됩니다. 생각은 에너지, 염력이기 때문에 영원히 갑니다. 생각은 죽지 않아요. 관 속에서도 생각합니다. 일생동안 찍은 비디오라고 할까요, 테이프 하나 가지고 심판 받으러 가는 거예요. 업경대 앞으로 갑니다. 우주의 법은 철두철미해서 모두 자신의 행위, 기록 따라 재판을 받습니다. 인간으로 나온 이상 공덕주의 삶으로 채워야 해요.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쉬 꺼져 버립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에게나 생각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다 법신이에요. 누구나가 다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세요. 생각이 영혼이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생각엔 마음의 눈이 달려 있습니다. 그 생각의 눈이 얼마나 세속적으로 열려 있는가, 하늘로 열려 있는가, 부처님 나라로 열려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사랑의 정도에 따라 허공과 연결돼 있습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갈 곳은 정해져 있어요. 각자의 사랑의 정도, 지혜의 정도가 결판나 있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명이 주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하다는 겁니다. 왜냐? 내가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내 생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유념하세요. 사랑의 정도에 따라 지향하는 바, 영계가 달라집니다. 선령은 지극한 하늘과 연결돼 있고, 악령은 악도와 연결돼 있으니까요.</SPAN></P>2018-10-02 오후 12:11:10신심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열광 없이 열정 없이 위대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Media/law/Read.aspx?db_cnt=79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보이지 않는 내 안의 존재</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눈은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봅니다. 눈은 모든 물상을 대하게 돼 있어요. 대신 나를 보지 못해요. 눈은 항상 대상을 향해서 열려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남으란다고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의 취약한 점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에게 대단히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잘 보이니까 그래요. 그런데 자신은 잘 보지 못하니까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로 내가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내 안에는 보이지 않는 나가 있다니까요. 내면의 나인 거죠. 부처님은 이를 가리켜 ‘불성(佛性)’이라 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왜 불안하고 초조하겠어요? 그저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어떤 잣대를 가진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하지 않았을 때, 뭔가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 때, 그때는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그런 병리현상들은 전부 마음의 잣대에 의해 스스로를 징계한 결과입니다. 내가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 관대하면 온전한 판단력이 서질 못합니다. 자기 비호의식이죠. 물론 자기 존중 의식도 중요하지만 그릇된 행동조차 용납한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게 전부 일방통행이거든요. 서로 좋은 점을 채택해서 국리민복을 위해 써야 할 텐데 일방통행을 하다 보면 다른 많은 아픔을 가져옵니다. 불안의식, 절망의식을 가져와요. 불안과 절망은 형제간입니다. 자꾸 불안하다 보면 자기 체념과 절망을 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병리현상이에요. 부처님 말씀처럼 만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연으로, 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게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인과응보는 부처님 법칙이니까요.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언제라도 내 안에 계신 보이지 않는 존재, 잣대를 든 존재가‘너 왜 그렇게 했니?’라고 심문을 가해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항상 자기를 들여다보라’고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준엄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거예요. 불안이 쌓이면 질병이 오고, 불행이 옵니다. 영혼은 여러분의 생각이에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베풀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로 살다가 간다면 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부처님 경에 나오는 선신(善神)이 되는 거죠. 절망과 고통 가운데 스러져버린 사람은 악령이 됩니다. 우리 안에는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재판관도 들어 있고요. 우리 안에 부처님이 계신데 뭐가 없겠어요. 부처님이 그러셨잖아요. ‘상대방을 배려하라. 그리고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껴라’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업이 수승합니다. “쟤는 참 복 받을 사람이야.” 하늘이 다 알아요. 하늘이 아는 것보다 내 마음이 곧 하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신심은 영원히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상대방을 배려하는 삶을 통해서라야만 불안의식에서 오는 절망적인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의 세계로 나갈 수 있거든요. 어느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용 같지만, 상대방을 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상대방을 꽃으로 불러주면 상대방 역시 나를 꽃으로 보고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이란 개념을 불교에선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생각은 이 몸이 죽어도 죽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건 언젠가 사라지지만 생각이 영원을 가는 이유는 그 안에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생각은 마음의 눈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무한자, 영원 자는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영원은 우릴 기만하지 않아요. 그릇된 마음이 자신을 기만합니다. 속인다는 건 불완전한 자들의 속성이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종교가 무슨 필요 있냐고 하는데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인들이 문제입니다. 종교란 어떤 제약이잖아요. 만일 종교의 제약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멋대로,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한도 끝도 없는 욕망을 추구할 겁니다. 아마 세계는 혼란에 빠질 거예요. 종교는 초실정법적입니다. 실정법을 뛰어넘는 세계를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합니다. 도구 같은 거거든요. 종교의 어떤 인도가 없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 역사의 당, 송, 원, 명, 청을 봐도 황제들이 종교를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왕명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인간이 대부분일 겁니다. 종교는 영원을 얘기하잖아요. 고등 종교는 모두가 내세관을 가지고 있어요. 종교는 사회구조의 초인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종교인이 문제지, 종교가 문제가 아니에요. 위대한 성자들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만든 종교를 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욕망이란 전부 아상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의식의 흐름 가운데 생겨났다 사라지는 파도와 같은 것입니다. 삶이 거품이라는 개념을 확립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겨나요. 신심, 불성을 바로 봐야 합니다. 신심은 우리를 영원으로 밀고 갑니다. 몸과 마음을 던져서 시방삼세에 계신 영원하신 부처님을 향해, 법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직업, 어느 사업에 봉직을 하던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이라면 이 우주의 일체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노력과 정진, 그 가운데 독창성, 창의성, 영원성이 담보됩니다. 일의 질이 달라져요.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잖아요. 신심은 영원히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입니다. 신심의 종자가 수승한 지혜를 증장시키고 온갖 부처를 나타내 보입니다. ‘지심귀명례’ 하는 마음 가운데 영원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안, 절망은 내 안에 계신 거룩한 자를 이반해서 오는 결과물입니다. 마음이 불안할 땐 무조건 백팔배를 하세요. 불안이란 감정, 초조란 감정, 절망이란 감정은 순간순간 고개를 듭니다. 그 치료법을 현대의학이 잘 내놓고 있질 못하는 거죠. 중요한 건 영원과 만날 때라야 영혼이 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향을 찾아가면 마음이 평안하잖아요.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거예요. 영원과 만날 때 나의 영혼, 내 마음의 쉼과 만족이 있습니다. 헤겔 말대로 정언명령,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소리를 질러야 열광, 열정적인 마음이 아니고, 지심귀명례 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것이 이뤄집니다. 몸과 마음을 던지는 신심 없이 위대한 것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나 마음 안에는 거룩한 자가 있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타인의 어떤 존엄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 죄 짓는 거예요.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맹자의 말처럼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 배우지 않고도 잘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도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불교에선 전생을 얘기하는데 별로 배운 것 없어도 능력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어두워진다고 그랬어요. 또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하고요. 우리는 타고난 게 있다 하더라도 계속 연마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니까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기적은 언제나 일어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언제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잘 다스리세요.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집단은 망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골치 아픈 일을 당하게 돼 있습니다. 말은 마음을 담는 거거든요. 상대방과 일을 도모해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그 사람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 사람의 행동을 들여다보세요. 그 사람의 장래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한 눈에 보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상대의 말을 들으면 어느 정도는 감이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영철칙이 있습니다. 어디와 거래를 한다면 3대를 넘긴 회사와 한대요. 왜냐, 1대에 카리스마적 능력이 있었다면 2대에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보전을 합니다. 비로소 3대에 이르러서야 기업이 업그레이드되고 앞으로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뭐든 3대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잠을 자도 시간은 흐릅니다. 근데 시간은 금입니다. 금쪽같은 인생이에요. 죽음의 철학자 하이데거는‘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 모든 게 변해간다. 그러나 죽음 하나는 변하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가장 확실한 죽음을 염두에 둔 삶만이 행복하다는 겁니다. 역설 같습니까? 그만큼 나의 인생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다 속에 사는 상어는 최소 1킬로서부터 4킬로, 십 리 밖에 있는 피 냄새까지도 맡는답니다. 흔히 개코라고 하죠. 개들이 냄새 맡는 걸 우린 못 맡잖아요. 개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대단해요. 또 연어, 북대천, 남대천에 치어를 방류합니다. 연어는 최소 3천 킬로 이상 알래스카까지 이동해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곰, 미련이 곰퉁이라고 그러죠? 그거 틀린 얘기예요. 제가 얘기하는 곰은 20킬로미터 밖에 있는 죽은 동물의 냄새를 맡습니다. 밤에 날아다니는 작은 나방은 10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자기 짝의 냄새를 감지한답니다. 이런 예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 우주가 부처님 나라라는 증거예요. 미물중생이지만 그들에게도 부처님의 능력을 하나씩은 들어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동안 절망적인 기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잘못한 게 있으면 매일매일 참회하세요.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그랬잖아요. “아, 스님, 백겁 동안 쌓은 죄를 참회한다고 그게 참회가 됩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죄무자성종심기’ 그랬거든요. 죄는 실다움 없이 마음 따라 일어납니다. 참회하는 마음 하나면 죄는 순식간에 다 타버려요. 부처님 말씀을 믿고 가세요. 주무시기 전 108배를 하시면 좋습니다. 힘들면 3배라도 하고 주무세요. ‘부처님, 오늘 하루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해보시는 겁니다. 부처님은 ‘너 자신의 본성을 쫓아 사는 자, 그와 맞설 자 없다.’하셨어요. 우리의 본성에는 보이지 않는 거룩한 자, 부처님 계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 무엇을 하더라도 적당히 하지 마세요. 힘들다, 외롭다, 는 단말마적인 소리가 나올 때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는 경지가 열리거든요. 일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을 던져 열광적으로,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허물을 벗어야 본질적인 능력,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한 생각 돌리니 여기가 극락이다’ 하셨잖아요. 세상은‘제행무상’입니다. 모든 게 변해가요.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변은 언제나 일어납니다. 결코,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던져 본성과 만나는 자, 어느 누가 그와 맞서겠습니까?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선수들에게 있어 승리의 비결은 오로지 훈련, 연습입니다. 부처님을 철통같이 믿고 가세요. 체험으로 믿는 겁니다. 설명할 수 없는 거룩한 자, 내 마음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열정적으로, 열광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자, 지심귀명례 하는 자만이 위대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 결코 절망하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9-19 오후 3:4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