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http://nungin.net/Rss/rssGiGwang.aspx지광스님의 좋으신 말씀입니다.ko마음의 나라를 위한 광명의 등불을 밝히세요. 초파일 연등 밝혀 온 우주를 광명으로…/Media/law/Read.aspx?db_cnt=77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P><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1. 원천적 에너지</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눈에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단계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눈을 떠서 육안으로 여러분을 뵙고 있어요. 여러분 또한 저를 보고 계십니다. 제가 가끔 여쭤 보잖아요. 우리가 지금 강남의 능인선원에 있는데요, “저 해운대 앞 파란 바닷물을 떠올려 보세요.”합니다. 그러면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해운대의 파란 바다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색깔도 보여요. 제가 다시 물어봅니다. “무슨 눈으로 보셨습니까?” 하니“마음의 눈으로 봤어요.”합니다. 마음의 눈이라는 걸 생각한 거예요. 육안 말고 또 다른 뭔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이제 다른 차원으로 얘길 바꿔보면 우리가 잠을 잡니다. 잠을 자면 꿈을 꾸잖아요. 눈, 귀, 코, 혀, 몸이 다 막힙니다. 근데 분명한 사실이 우린 꿈속에서도 말하고 보고 듣고 해요. 육안이 막혔는데도 보는 세계, 존재하고 들리는 세계가 있단 말입니다. 그럼 그건 무슨 눈과 귀로 보는가? 그리고 총천연색 꿈을 꾼다고 얘길 하는데 실제로 꿈에 빛깔이 있다는 것인가? 스님들이 그래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즉 마음을 본다는 거예요. 우린 마음을 볼 수가 없잖아요. 마음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자들은 성불한 존재라고 보면 됩니다. 직접 마음을 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안(心眼), 영혼에게 눈이 있다는 건데 그런 눈은 상용화되지는 않아요. 압도적인 시간을 육안의 상태에서 살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어둠과 밝음이 있습니다. 영혼의 나라에도 어둠과 밝음이 있고요. 어둠은 악에서 나온 거짓으로 이루어진다고 했거든요. 악행은 이기심을 바탕으로 해서 나옵니다. 나와 남 사이에 장벽을 쳐놓고, 내 것을 강화시키는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할까요? 반면 밝음은 선행과 진리에서 나옵니다. 지혜광명, 한없이 찬연한 빛의 나라입니다. 빛은 열을 수반합니다. 자비심, 사랑하는 마음이면 어때요? 마음이 따뜻해지잖아요.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이 몸은 가상이에요. 3차원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니까 빛과 열이 강합니다. 만상을 대할 때 항상 사랑의 마음을 가지세요. 그래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어야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함으로 인해서 내 몸과 마음 가운데 빛과 열의 모태가 되는 원천적 에너지를 얻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린 분명히 꿈속에서도 뭔가 보고 듣고 합니다. 꿈속에도 밝음의 세계가 있어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 3차원적인 물질의 나라에 태양이 있지만, 마음의 나라에도 태양이 있답니다. 마음의 나라도 빛이 있어요. 제가 이렇게 말을 하다가 딱 멈추니까 말이 사라졌습니다. 말이 어디로 갔을까요? 성대를 울리고 나온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확장돼 나와서 여러분의 고막을 때린 후 그 말은 각자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말이,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랬어요. 마음이에요.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이해하고 ‘아, 그럴 것도 같다’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잖아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그런데 마음에서 나오는 게 세 가지가 있대요. 말이 있고, 생각이 있고, 행동이 있다는 거예요.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게 말과 생각과 행동이니까 그게 전부 여러분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간다니까요. 여러분은 꿈속에서도 행동을 합니다. 네, 꿈속에서도 행동을 하니까 이 육신이 아니고 또 다른 영체라고 하고 염체라고도 하고 유체라고도 하는 어떤 또 다른 몸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에 기(氣)가 흐른다고 합니다. 경락과 경혈을 얘기하고요. 이른바 인도 요가의 베단타에 보면 마르마, 차크라라고 해서 우리 몸에 우주의 기운이 흘러 다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은 금방 고막을 때리고 사라져 버리지만 그 말을 듣는 존재가 분명히 있습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2. 지혜와 자비는 영원하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리가 연등을 밝히면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의 나라를 잊고 살기 때문이에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육신만 보고 육신에 걸친 옷만 보잖아요. 그런데 부처님 말씀에 보면 참 묘한 게 있습니다. 불교에선 4유설을 말하는데 태어나는 걸 생유(生有)라고 그래요. 생이 있게 되었다. 그다음 죽을 때까지를 본유(本有)라고 그래요. 삶의 과정을 말합니다. 그다음 죽는 순간을 사유(死有), 죽음이 있게 되었다. 사유로부터 다시 본유까지를 중유(中有),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영혼의 세계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 계셔도 잘 모르지만 여러분 마음의 빛깔을 보는 또 다른 자들이 있어요. 축생의 영혼은 연기 빛 같다고 하고 욕계, 하늘나라 갈 사람들은 황색, 이른바 노란색을 띠게 되고, 색계는 빛이 선명하고 밝고 깨끗하고, 무색계는 중음신이 없다고 나와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의 세계를 보고 그걸 체크하는 존재들이 있다니까요. 그 존재는 이 육신하곤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게 내 마음의 빛깔은 어떠한가? 입니다. 영혼의 빛깔이 어두운 것, 그 어둠은 악에서 나온 거짓을 바탕으로 한다고 했잖아요. 탐욕스러운 마음입니다. 빛, 이른바 선행은 진리, 지혜, 자비심에서 나옵니다. 선에서 나온 마음, 광명의 마음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티베트 사람들이 만든 『사자의 서』에 보면 사람은 죽을 때 영혼의 빛깔이 있어서 자기가 선호하는 빛깔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루들은 ‘그 빛깔 따라가지 마라’당부합니다. 왜냐? 영혼의 빛깔을 따라가는 세계는 긍정적인 세계가 아니거든요. 진리를 떠나서 욕심에 가리면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암흑의 영혼이 되고, 그런 존재들은 악도로 간다는 거죠. 마음의 나라. 영혼에게도 빛이 있고 열이 있다니까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있잖아요. 우리가 음식을 먹어도 열량이 나오지만 마음의 자양분을 섭취해도 마음의 열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식이요법이나 의사의 치료, 약 처방을 했는데도 병을 고칠 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종교에 귀의해 보세요.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하다 보면 마음 나라의 따뜻한 기운이 흘러듭니다. 마음 나라에도 열이 있어요, 빛이 있고요. 우리가 쓰는 빛과 열은 전부 마음 나라의 복사판 같은 겁니다. 물질을 위해서 우리가 가공한 것이라고 그럴까요? 차원이 좀 낮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전기를 써도 미세한 회로에는 약한 전기가 흐르잖아요.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열이 나요. 지혜와 복덕이 구족한 그 빛은 우리를 안내해주는 원천적 에너지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지혜가 수승한 존재는 가운데 위치하고 지혜의 빛이 엷은 사람은 외곽에 비치하는 스타일이 사회적 구성원리잖아요. 흡사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모델 같다고 할까요? 원자핵에도 태양과 같은 양자가 있습니다. 중심을 딱 잡는 중성자가 있고요. 태양계의 확장판을 은하계라고 한다면 그 시초는 원자의 세계로부터 시작하고 그 이하의 단위, 타키온, 쿼크 등 근본적으로 마음의 나라가 물질의 나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러거든요.</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따라서 누가 나를 알아달라고 하소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지혜를 닦고 사랑과 자비심을 닦으면 부처님 나라는 물론 세상에서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권의 핵심부다, 그러면 그 정권에 대한 투철한 긍정적인 마음, 태양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런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같이 일을 도모하다 보면 꼭 배신자가 생겨납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부처님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스러져가는 모든 존재는 아마 영어(囹圄)의 몸이 돼서도 배신의 아픔 때문에 쓴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사바세계는 다 그래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왜 지옥에 사는 영혼들이 느티나무를 불에 그을린 것같이 시커먼가? 부처님 나라의 빛을 가리잖아요. 그래서 시커멓게 어두워지는 겁니다. 어둠이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빛을 가리니까 자연스럽게 어두워지는 거죠. 지구에 생기는 낮과 밤이 태양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태양은 한 곳에서 항상 빛납니다. 다만 지구가 돌기 때문입니다. 자전을 하는 지구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마음자리에 따라서 어둡고 밝아지는 거예요.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깊이 들어가면 과학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 세계라는 걸 알게 됩니다. 왜냐? 내가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베푼다는 건 뿜어내는 거잖아요. 내가 뿜어내면 이 우주는 무진장이니까 부처님 힘이 흘러 들어오면서 내 몸이 따듯해지거든요. 미국에서 조사한 대로 사회복지관에 가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7~8년 더 길다는 게 통계에 나와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는 영원합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3. 육신은 수련복이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진리를 힘으로 내 몸에 칼이 들어와도 당당해야 합니다. 강화된 지혜와 자비심으로 내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악마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화엄경』의 야마천궁게찬품을 보세요. ‘부처님은 무한한 눈이 있어서 만상을 다 보고 계신다. 부처님은 무한한 귀가 있어서 다 듣고 계신다’고 나오잖아요. 부처님은 무한한 향기를 맡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여러분 영혼의 빛깔을 다 보고 계신 거예요. 내 영혼의 빛깔이 얼마나 탁한가, 맑은가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욕심이 드세면 나는 못 보지만 부처님 나라의 불보살과 신장들은 내 영혼의 청탁(淸濁)을 알아봅니다. 더러움과 결점이 없어져야 천룡팔부신장이 그 자리에 오세요. 신령스러운 힘이 흘러 들어오는 통로가 열린다는 얘기예요. 몸과 마음을 맑게 하세요. 마음이 탁해지면 병이 됩니다. 마음의 나라를 등진 채 돈 많이 벌고 권력을 드날린다고 다가 아니에요. 지혜를 닦고 자비심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점점 빛이 납니다. 한시도 연마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내가 과장이다 부장이다 혹은 회사를 운영한다 해도 마음이 따라야 그 단체가 잘 돼요. 참 ‘나’를 잊으면 곤란합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아미타경에 보면 아미타불 나라에도 새가 있다고 나와요. 아미타불 국토에 있는 새들은 우리처럼 운다고 그러지 않아요. 법문을 설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미타불 국토에도 과일이 있는데 그 과일들은 전부 지혜의 열매래요. 그걸 따먹으면 지혜가 증장되는 거예요. 일종의 영적인 사물입니다. 여긴 3차원적인 사물의 세계라고 하면 마음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 합당한 사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환경은 내 마음의 그림자 같습니다. 세상의 사물은 하늘나라의 사물과 껍데기는 같지만 실질은 다릅니다. 세상의 사물은 태양에 의해서 이글이글 타오르잖아요. 마음 나라의 태양은 광명일 뿐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시간과 공간은 모두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떨어져 버린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이 돼야 합니다. 부처님이‘네 마음 가운데에 부처님이 있다’고 하신 뜻은 우리 마음 가운데에 우주가 들어 있어서 갈고 닦는 대로 간다는 거예요. 저마다 신심이 다르다는 얘기예요. 인과(因果), 뿌린 대로, 닦은 대로 갑니다. 어디서 훔치거나 속일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숭고하고 엄정하게 살아가세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은 입는 옷부터 다릅니다. 빛의 정도가 다른 옷을 입습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요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합니다. 창의성을 끌어내라고 하지요. 주입식 교육으로는 곤란합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다음 ‘어떻게 그런 걸 찾아냈습니까?’ 그랬더니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항상 생각했다. 낮이고 밤이고 생각했다’고 했듯이 마음 깊이 들어갈수록 마음 나라의 과학자들이 한 수씩 가르쳐 준다니까요. 부처님 나라에는 다 있는 거거든요. 저마다 부처님 나라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지는데 그릇 따라서 밖에 받아먹지 못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마음을 끌어내는 교육을 시켜야 해요. 창의성은 내면 깊은 곳에 있습니다. 외부에 있지 않아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은 육신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세계를 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 마음의 광명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자들이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주장했듯이 수행은 인격을 구성하는 근본이 됩니다. 수행을 통해 영혼의 열림 정도에 따라서 환희와 열락이 달라집니다. 영혼의 업이 유사한 정도에 따라서 유유상종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사랑이 뛰어난 자들이 중앙에 있고, 열등한 자들은 외곽에 삽니다. 화학에서 나온 세계하고 똑같은 거예요. 지혜, 진리는 힘입니다. 수행을 할수록 외부의 공격을 척결해 낼 수 있는 힘이 강화된다는 겁니다. 악마의 세계, 지옥의 세계 세력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해요.</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육신(肉身)은 백년 정도 입고 수련하는 수련복입니다. 태권도장, 유도장, 헬스장에 가 보세요. 수련복을 입잖아요. 어둠은 태양 탓이 아니라 지구 탓입니다. 아상 탓이에요.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밝음과 어두움에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철두철미하게 다 알고 계시니까요. 무한과 유한의 차이는 이기심의 차이이고, 아상의 차이입니다. 마음의 연등을 밝히라는 이유도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영가들도 다 보고 듣고 계세요. 가능한 한 영혼들을 예경하며 사세요. 몸과 마음을 다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인연영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내야합니다. 마음의 나라가 삶의 원천이란 자세로 살아갈 때 여러분의 수명장수는 담보될 수 있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2018-05-23 오후 2:39:57법우의 등불을 밝혀 무량겁의 어둠을 거둬내십시오.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항상 반조하십시오 /Media/law/Read.aspx?db_cnt=77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center;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 </P>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1. 사바세계</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피카소가 이런 얘길 했어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을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생각을 훔친다’, 위대한 예술가는 남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훔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잖아요. ‘위대한 생각을 훔쳐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마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특허권 분쟁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훔치는 게 통하지 않으면 차라리 회사를 사라는 얘기를 할 정도래요. 또 경업금지약정(Non-Compete Agreement)이라고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각 주마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와 퇴직을 하면 일정기간 동안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동종회사를 창업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는다고 합니다. IT 업계에서는 아이디어가 생명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생각은 전부 아이디어, 특허와 같다니까요. 서로 그 생각을 훔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죠.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학자들이 보통 사람의 뇌파를 연구조사해보니까 1초에 72회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고 나와요.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부처님도 너희가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거나 마음에 드는 남자를 볼 때 ‘저 여자를 내 여자로 하고 싶다’또는 ‘저 남자를 내 남자로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죄를 범하는 것이라 하셨거든요. 우리는 모두 매일 사음죄를 범하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항상 그런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혼미해진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성관계가 쾌락으로 변질되는 순간 범죄를 저지르기도 해요. 게다가 사바세계 중생은 기회만 닿으면 술이나 마약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를 지키지 않고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가 힘든 곳인데 말입니다. 이 우주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을 삼업이라고 하는데 삼업을 청정히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잘 받들어 지니고 항상 그와 같이 살지 않으면 세세생생 박복한 이 땅에서의 삶을 면키 어렵다고 하거든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어떤 분이 제게 물어요. “어느 경전을 보니까 사바세계 중생이 열 명 가운데 아홉은 악도로 간다고 하는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너무한 게 아니라 우리가 눈여겨보면 반성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을 덮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 아귀 축생의 저 밑에서 천신만고 끝에 사바세계로 인도환생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 광음천에서 혹은 여러 별에서 귀양 보내는 귀양지가 이 사바세계래요. 거기서도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사는 땅으로 강등된다는 거예요. 그곳에서도 죄를 짓고 오는 거죠. 지옥, 아귀, 축생에서 올라오는 중생은 자칫하면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 하늘나라에서 오는 중생은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부처님은‘너희 성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 중생은 남 잘되는 꼴을 못 보지 않냐’ 네, 그래요. 부처님 당시도 그랬겠죠. 흔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잖아요. 또 저마다 잘났다고 하거나 교만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다 잘났대요. 한 사람도 못났다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탐진치, 삼독심이 가득해 자기 욕심이 강하고, 성내는 마음이 강해 툭하면 너 죽고 나 죽자 식이에요. 더욱이 무엇이든, 어떤 경우든 자기 잘못을 탓하기보다 남을 원망하는 게 사바세계 주민의 보편심입니다. 변명을 일삼고 상대를 모함합니다. 자기 잘못을 들춰내는 것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들춰내는 데 익숙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상승의 기운을 갖는 중생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부처님 말씀대로 우리는 박복한 땅에서 열심히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바’란 많은 참음의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 용감하고 과감하게 참아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약육강식이라 했으니 이 땅에선 살생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살생을 도모하니까 서로 원한을 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곳이지요.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합니다. 과감하게 참고 견디면서 열심히 정진해야 해요. 이 땅은 감인토입니다. 과감하게 참고 수행하는 자만의 세상이거든요. 자칫하면 다시 악도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열 명 중의 아홉 명은 악도로 간다는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싶지만 아무리 봐도 부처님 말씀이 정확합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2. 21세기는 명상의 시대</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내가 너희에게 해탈을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냐? 해탈의 지견을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냐? 너희는 모두 막을 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삽니다. 부부지간은 물론 친척 친지간에도 막을 쓰고 이중성을 띠며 살아요. 진심이 결여돼 있습니다. 몸과 마음 가운데 독이 가득하다는 거예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인데 마음을 잘못 쓰니까 몸에 독이 가득 차 있다는 거죠. 매일매일 참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회를 너희의 운명으로 삼고 살아라’이겁니다. 쓰레기통으로 변하는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남에게 베풀고 펼쳐보세요. 따뜻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걸 끌어들이려는 마음이면 몸과 마음이 차가워져 각양각색의 질병과 재앙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사바세계는 참회가 필요한 곳입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하나서부터 열까지 죄다 나만 잘났다고 주장합니다. 욕심이 가득해요. 성을 잘 내고 음란심이 가득합니다. 남을 원망하거나 변명하기 일쑤입니다. 중상모략을 일삼아요.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선 내 마음이 맑아지거든요. 아침에 머리가 띵하고 맑지 않은 사람은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아밀로이드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농도가 짙다는 증거예요. 잠자리에 들기 전 참회하는 마음으로 독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잠자기 한 두 시간 전의 의식구조가 잠을 관통한다고 하거든요. 경전에 보면 ‘네가 참회하는 가운데 번뇌를 태우고, 참회하는 마음 가운데 선정이, 사선락이 가능해지고 여의주가 쏟아지듯이 내려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부처님의 궁전에 들어가게 되고,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고 부처의 꽃을 피우게 되고, 부처님의 거울, 지혜의 거울을 얻게 되는 보배의 장소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참회를 통해서 해탈의 길을 가야 합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기도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이면 몸과 마음이 맑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도 없이 얘기했죠, 잠을 잘 때마다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꿈을 꿀 때마다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거니까 우리는 매일같이 죽음을 연습하는 거예요. 잠자다 심장마비로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잠을 잘 때 순도 높은 숙면을 취해보세요. 아침에 머리가 맑아집니다. 외부경계를 상대로 하는 모든 시스템이 머리에 있거든요. 주무실 때마다 두뇌청소를 해야 합니다. 마음청소, 몸 청소, 꿈 관리, 잠 관리를 잘해야 다음 날 살아야 할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습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리가 항상 건명(乾命), 곤명(坤命) 그러잖아요. 건명은 플러스이고 곤명은 마이너스라고요. 하늘과 땅이 연결돼 있으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늘과 통하는 자력이, 강한 힘이 작용하게 돼 있어요.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거든요. 그런데도 우리는 부처님을 잊고 삽니다. 참회는 나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으로 복원시키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나 참선, 참회를 몰라요. 참회를 통해 이기적인 막을 깨뜨려보세요. 전기가 통하면서 자력이 생깁니다. 맥스웰 방정식입니다. 전기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강한 흡인력이 생기는 거예요. 기도하는 마음은 맑아지는 마음입니다.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 헌신적인 참회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이에요.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가운데 부처님의 위신력이 흘러 들어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3. 법등명, 자등명</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자 보세요. 우리가 눈으로 대상을 보면서‘아, 저거 내 것으로 하고 싶은데’ 그것도 도심(盜心)이라는 겁니다. ‘저 남자를 내 남자로 하고 싶은데, 저 여자 내 여자로 하고 싶은데’보는 것마다 눈으로 끌어들여요. 피곤할 수밖에요. 내보내야 가벼운데 말입니다. 내보내야 몸과 마음이 맑아지잖아요. 끌어들이려고만 하니까 무거워지고, 애착이 커집니다. 그럼 어떻게 돼요? 고혈압이니 당뇨니 여러 질병이 생겨납니다. 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져야 하는데, 띵하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증거입니다. 잠자기 전 단 10분이고 20분이고 참회의 기도를 해보세요. ‘오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랫사람한테 너무 잘못했네요. 오늘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뭔가를 서운하게 했습니다’ 하면서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부족한 데서 만족을 찾으라 했거든요. 너무 꽉 채우려들면 무거워집니다. 비워진 데서 만족함을 찾는 사람의 마음이 맑아진다고 그럽니다. 부족할수록 홀가분해져요. 내가 만족감이 높을수록 몸과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음식을 먹더라도 위를 꽉 채우지 말고 팔부 정도만 채워야 해요.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리는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이라야 믿음이 가거든요. 한결같은 마음이라야 내면세계가 담백해집니다. 가장 훌륭한 마음이란 상대방을 신뢰하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거예요. 흔히‘어디 믿을 만한 사람 없냐?’하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잖아요. 마음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은 우선 마음이 깨끗하고 담백하니까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아, 저 사람 뭔가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 그렇게 되거든요. 언제 어떤 경우라도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 신뢰감을 베풀어야 해요. 그런 사람은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릅니다.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릅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불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는 법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하나라는 거예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부부간에, 친척 간에 상대방을 논리로 설득하려고 그래요. 툭탁하면 논리로 다툽니다.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마음의 세계, 내 마음이 논리로 설명됩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논리로 이해가 돼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잘났다 하지 말고 항상 부처님을 우러러보면서 참회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우리의 본질이 정화됩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라는 건 자성이 없다, 실다움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나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게 죄예요. 이기심을 타파하면 죄는 사라집니다. 기도하는 마음, 참선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일 때 내 몸과 마음 가운데에 부처님의 힘이 강화됩니다. 전기가 작용해요. 자력이 붙어요. 법력이 붙어 면역력이 강해집니다. 참선과 명상을 하면 언어에 대한 통제력과 언어의 이해력이 높아집니다. 통찰력이 깊어집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전기와 자기는 같은 성질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께 참회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일념으로 가면 통합니다. 강한 자력이 붙으면서 흡인력이 쌓이고 법력이 쌓여 상대방이 딱 보면 그 사람한테 빨려들게 됩니다. 종교학에선 카리스마라고 그래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지만 잘못을 저지르며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참회하며 마음 청소를 해 보세요. 힘이 쌓입니다. 맑아집니다. 주변사람에게 신심을 선물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돼요. 그러나 누구든지 권력이나 재력이 높아지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게 인간의 큰 약점이에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행을 해야 합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FONT size=2>우주의 근본적인 힘은 일체유심조라고 했습니다. 모든 건 마음이 창조하는 거거든요. 아름다운 마음을 쌓아가세요. 부처님 마음이 되어보세요. 전기가 들어오면 불이 켜지잖아요. 불이 켜지면 내 마음이 밝아집니다. 지혜의 등불이거든요. 법의 등불이에요. 법등명, 자등명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통하게 만들어 부처님과 나 사이의 어둠을 걷어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삶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몰랐던 세계가 열립니다. 열심히 정진해 법의 등불을 환히 밝혀보시기 바랍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P>2018-05-16 오후 12:41:32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연등은 밝히셨나요? 마음의 연등도 밝히세요 /Media/law/Read.aspx?db_cnt=77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공부는 꾸준히 평생을 해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부처님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보세요. 어제는 능인선원 전임 간사장단 회의가 있었거든요. 매년마다 혹은 2년간 간사장을 맡았던 분들의 모임이에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말을 해요. ‘어느 새 능인선원을 다닌 세월이 30년이 넘었습니다’라고요. 그러면서 그동안 각자가 걸어온 삶에 대한 역사를 얘기하는데 부처님을 만나 대과없이 살아왔다는 점에 참으로 감사하다는 겁니다. 제가 그들과 무려 34년을 함께 했으니 그들 자녀가 시집장가를 가고 심지어 스물한 살 된 손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정이 번창하는 데 부처님의, 불보살님, 신장님의 가피가 대단히 컸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어요. 그 중엔 남편이 먼저 가신 분도 계셨는데 “ 부처님 덕분에 씩씩하게 잘 살아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마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살이는 대부분 돈이다, 권력이다, 혹은 집이 얼마나 크냐?, 땅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냐? 하면서 주로 눈에 보이는 걸로 평가하고 계량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누구에게 천원을 베풀었다고 칩시다. 또는 호떡을 사줬다 쳐요. 상대방에게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했을 땐 우선 내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지잖아요. 이처럼 모든 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인정을 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내 안에는 내가 잘 하는가 못 하는가를 판가름 하는 심판관이 있다는 거예요. ‘아, 이건 안 되는데…’하면서 실제로 안 되는 거 압니다. 양심의 가책이라고도 하지요. 마음의 나라에는 죄를 다는 저울이 있고, 복을 다는 저울이 있어요. 엄정합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우리는 사바세계적인 사고방식을 좀 멀리해야 합니다. 당장 내가 누구에게 베풀어보세요. 베푼 마음에 대한 즉각적인 답이 와요. 내가 상대방에게 해코지를 하면 그것 역시 즉각적으로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반복해서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듣고서 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들어도‘아, 그래’하잖아요. 공부는 반복입니다. 반복하면서 나가는 거예요. 참회하면서 나가는 거구요. 후회하면서 나가는 겁니다. 도리가 없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어둠을 걷어내면서 계속 가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하늘나라의 법칙을 터득을 하게 되고 함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틀림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미국에서 평화봉사단이 와 학교마다에 배치돼 영어를 가르쳤어요. 또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죠. 그들은 뭔가 헌신하는 자세로 우리나라에 와서 영어도 가르치고,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잖아요. 아펜젤러나 언더우두와 같은 이름 많이 들어보셨죠? 언더우드가 설립한 학교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기라성 같은 대학으로 거듭났습니다. 부처님은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무량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바로 보살이다, 그러셨거든요. 그들도 아마 보살심으로 이 땅에 와서 많은 사람에게 이바지하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나름대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한 삶을 산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누구나 다 힘들어요. 이 혼탁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름 공부한 이들이 그 길을 갑니다. 흔히 아이들 공부시킬 때“너 이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람 돼라.”고 합니다. 아들딸만 훌륭한 사람 되는 게 아니라 부모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해요. 네, 깨달은 사람,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을 빛나게 만들려는 의지의 화신이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공부는 계속돼야 해요. 비록 지금은 내가 공부한 게 그냥 흘러갔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아, 내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이 일어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세상을 위해서 이바지하겠다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 인욕보살이 되겠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인생 칠십 잠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끊임없이 지혜광명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생을 눈뜨게 하는 범부가 되고 성자가 되어야 해요.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다 보면 마음 가운데 부처님 세계를 만들려는 의지와 아이디어, 방편이 자꾸만 떠오르거든요. 그러면 나의 원(願)을 달성하게 됨은 물론 다른 사람의 원을 달성시켜 주는 존재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우선 수행의 힘을 닦아보세요. 그다음 신심, 자비심, 또 입이 열릴 수 있는 변재의 힘을 길러보세요. 끊임없이 기도하는 힘을 강화시켜야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다보면 내 안의 부처님이 활성화됩니다. 다른 사람의 깨달음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내가 공부함으로 인해서 남들도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나와 남의 영혼이 동시에 정화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도 탁해진 내 마음을 밝혀나가는 뜻에서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등불을 밝혀 밝은 세계로 나아가다 보면 윤회에 대한 집착이 떨어지고, 성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어떻게 이 세상을 도울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그래요. ‘왜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습니까?’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끊임없이 정법을 수지하고, 깊이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며 삼보님께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하고, 본성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베풀고 펼치면, 여래의 광명이 항상 하여 이루지 못할 게 없다’라고 하셨거든요. 우리가 뜻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노력이 부족한, 나의 정진력이 부족한 때문이에요. 정말 그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계를 욕계(欲界), 욕망의 세계라고 합니다.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은 남녀가 만나는 욕망입니다. 물론 물질욕, 권력욕, 재물욕도 있지만 제일 큰 게 남녀가 만나는 욕망이지요. 그런데 우리보다 위에 있는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나라예요. 하나가 되면 남녀가 필요 없다는 거죠. 색계에 가면 남녀가 필요 없다고 그러잖아요. 남녀가 필요 없는 색계는 어떻게 사느냐?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색계는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하는데 선(禪)은 내 마음 가운데 번뇌를 떨어트리는 겁니다. 번뇌는 이기심이잖아요. 이기심을 야기 시키는 마음이 곧 번뇌입니다. 우리는 그런 번뇌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참선원에서 정진하는 겁니다. 참선을 해서 삼독심을 떨어뜨리면 남녀가 없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경전에 보면 초선천에는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의 세 가지 종류의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이 중 범중천은 이른바 성현들, 작은 성인들, 범보천은 성인들 가운데 좀 보배로운 성인들, 그다음 대범천은 대범천왕이 머무는 거주처입니다. 초선천에는 끊임없이 수행해 나아가는 존재들이 머무는 곳이에요. 이선천은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의 세 가지로서 빛의, 화신들의 세계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바로 이 광음천에 살다가 오셨다고 하잖아요. 하늘나라가 끝이 아니라 무한이에요. 우리가 사는 곳은 음성(音聲), 성음(聲音)이죠. 거긴 광음입니다. 우린 목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하늘나라는 빛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는 나이가 좀 드신 분도 계시지만 인생 육십 잠깐입니다. 칠십도 잠깐이에요. 우리 나이 육십, 칠십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광음천의 수명은 겁(劫)이거든요. 여긴 백 년을 산다고 난리잖아요. 저도 생각해보니 나이 칠십이 순식간에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칠십 년 지내는 것이 순간인 것처럼 수명이 겁인 세계라 하더라도 즐거움에 취해 얼렁얼렁 살다 보면 순식간에 가버린다는 거예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가버린다니까요. 천체물리학자는 빅뱅이라고 그러는데 화엄경에서는 별이 만들어지는 기간, 머무는 기간, 파괴되는 기간, 공으로 돌아가는 기간으로 성주괴공 한다고 나오거든요. 우리가 사는 우주도 수명이 다하면 빅뱅,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터지고 태양도 터져 버립니다. 은하계 우주가 전부 다 파괴가 되고 그 힘으로 터져 나오면서 새로운 아기 우주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을 모태와도 같다고 설명했거든요. 이 우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마음의 연등을 밝혀 혼탁한 세상의 등불이 되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흔히 독서삼매 그럽니다. 삼매경의 어떤 법희를 아는 자, 우리는 법의 즐거움인 삼매의 세계를 좀 알아야 해요. 힘든 일조차 몰입하면 환희심이 나잖아요. 삼매경을 닦아야 합니다. 이 껍데기는 아무리 오래 가도 백년 안팎입니다. 마음의 나라와는 차원이 다르게 유한적인 존재입니다. 물론 남자, 여자 만나 사는 것도 재미있고 행복하죠. 그러나 타화자재, 다른 사람과 자재하게 하나가 되면 남녀가 하나로 뭉쳐지는 거예요. 색계는 전부 선정으로 살아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오염이 돼 있어서 처염상정이라 합니다. 그래서 더러운 연못 속에 피는 아름다운 연꽃과 같은 삶을 살라는 겁니다. 오염된 곳에 처한다 하더라도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연꽃의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안에는 영원을 아는 존재가 있습니다. 영원, 무한의 존재입니다. 내 안에 영원을 인정하는 자가 있어요. 그자가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세상의 모든 어떤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마음이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법문을 공부하고 수행을 하면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이 밝아질 수가 있어요. 장벽이 걷어지니까 해탈의 길을 가게 되는 거거든요. 뭔가 잘 되려고 한다면 의무적 사명감을 갖고 모셔야 될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네가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면 세상 중생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공부를 하면 내가 밝아지니까 남들도 밝게 할 수 있습니다. ‘네가 열심히 수행하면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우린 이런 자격을 갖추고자 연마하는 거예요. ‘네가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하면 이 세상 중생의 평안에 기여한다’,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사람들 마음도 평안해집니다. 열심히 정진하면 중생의 무명을 걷어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하면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베푸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면 부처님 전에 공경, 공양케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다니까요. 여러분이 일요일에 쉬지도 않고 이렇게 법당에 나오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그래서 저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밝아진다는 건 세상의 밝음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건 부처님 직설이에요. ‘네가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하면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 공경하는 것이다.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면 무량한 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면 부처님이 기뻐하신대요. 여러분 아들딸들이 공부하면 엄마 아버지가 기뻐하잖아요. 자꾸만 부처님을 뵙게 해달라면 정통으로 부처님 뵙게 된다는 거예요. 성불한다는 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과 공간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기심, 악덕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이기심은 무량한 고통의 원흉이고 원인이란 말입니다. 사랑과 진정한 자비심만이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녹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저 친구 누가 안 잡아가나?” 하는 사람, 실제로 그런 사람 있어요. 그럼요, 사람을 살상하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마음을 밝힌다는 거, 연꽃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그런 거예요. 부처님에 대한 투철한 신심을 내보세요.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세요. ‘난 얼마나 신심이 투철한가? 부처님은 나의 신심을 얼마나 인정하실까?’ 신심을 통한 크나큰 이익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어야 해요. 신심을 갖고 부처님 말씀 따라 열심히 정진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나라는 마음의 나라입니다. 죄를 짓는 마음이 있고, 복을 받는 마음이 있어요. 생각마다 염불, 부처님 생각하라는 거예요. 염법, 법을 생각하라. 염승, 스님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라. 염계, 이 우주의 규칙을 생각하라. 염시, 베푸는 마음을 내라. 염천, 하늘이 무서운 줄 알라. 육염심, 정진심, 끊임없이 참선하고 끊임없이 수행하고, 선정삼매, 사선팔정에 들어야 합니다. 당장은 윤회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언젠가는 색계 무색계로 나가야 하니까 계속 힘을 길러놔야 해요. 끊임없이 번뇌를 잡아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중생을 중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 ‘하나’라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남에게 얘기할 때도 법담을 나눠보세요. 남에게 법담을 하면 내 마음의 법성이 강화됩니다. 또 상대방의 마음 가운데 법성을 심어줍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악담을 하면 내 마음에도 악성이 길러지고 상대방의 마음에도 악성을 심어주게 됩니다. 인생 칠십 잠깐입니다. 항상 우리 안에 부처님 계신다는 의지를 갖고 열심히 수행해 나아가세요. 이제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연등을 밝히는 것은 물론 마음의 연등도 밝혀 혼탁한 세상의 환한 등불이 돼보시기 바랍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2018-05-09 오후 2:25:01번창하고 번영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베풀고 펼치는 사랑과 자비심의 결과이다/Media/law/Read.aspx?db_cnt=77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스스로 갈고 닦는 사람은 날마다 축제입니다 인생을 만남이라고 얘기를 한다면,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의 연을 보면 지난 날 만났던 날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느낌이었는데,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면서 뭔가 끌리는 마음이 들어 인연을 맺기도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끌어들이는지 상대방이 나를 끌어들이는지 알 수가 없지만, 둘 사이에는 어떤 인력이 작용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 점점 만남을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 힘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또 한 걸음 더 나가면 자비의 힘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심이나 사랑, 혹은 분노나 증오, 이런 마음들이 다 힘으로 생겨납니다. 사랑과 자비심은 나로 하여금 환희와 열락의 세계로 안내하고, 증오나 분노의 마음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여, 불안과 초조로 산란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 금강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으로 집착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기쁜 일이나 슬픈 일들을 겪게 됩니다. 슬픔이나 기쁨 등의 감정은 오래 가지 않고 물질처럼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건 오래 이어집니다. 이승을 등진 다음에 또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에게나 집착, 욕심, 탐착, 독심이 어떤 순간에 나타나게 되고 그런 마음이 스스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건 전부가 다 나의 이기심이나 집착에서 생겨납니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은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수행을 해나가면 내 마음 가운데에 향기로운 꽃이 피게 됩니다. 불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갈고 닦다보면 내 마음이 점점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집착하는 마음, 애착하는 마음, 나의 마음을 검게 하는 암흑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마음들을 버리려면 스스로 절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 마음 가운데에 있는 절제를 모르는 마음을 잘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오게 되고 결국 몸의 병을 가져옵니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려면 부지런히 약사대불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 힘이 작용하는데, 부처님을 만나고 기도를 하면 더욱 큰 힘이 생겨납니다. 마음먹기 따라서 힘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수행합시다. 그것이 부처님의 힘을 얻는 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으면서 내 마음 가운데 어두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번창하고 번영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베풀고 펼치는 사랑과 자비심의 결과를 받게 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갈고닦는 사람들을 보면 날마다 축제일입니다, 성인도 그릇된 생각을 가지면 성인의 도리가 사라집니다. 한 생각 깨닫고 보면 부처지만 한 생각 어두워버리면 중생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라도 그릇된 생각을 놓아버리면 성자의 길로 가는 겁니다. 나 스스로 끊임없이 진보하는 마음으로 몸을 다해 수행하는 자세가 제대로 확립이 안 되면 그것이 바로 퇴보가 됩니다. 날마다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사람들은 다가오는 날들이 축제날입니다. 살얼음 딛듯이,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갈고 닦으면 어리석음도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화두를 들고 생각하는 건 깨달음의 눈을 자꾸만 열어가는 것이고 번뇌를 벗겨가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건 우리 스스로가 부처님께로 걸어가는 겁니다. 염불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선과 참회를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새 부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부처님 보살님들의 명호에는 부사의한 힘이 있어서 자꾸 부르고 부르면 우주만유의 힘이 생명력을 지니고 우리에게 흐릅니다. “나무불”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극락왕생한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열 번만 하더라도 왕생극락한다고 했으니 우리는 언제나 정진하며 염불합시다. 기도가 대중화가 되어야 하고 나 스스로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을 사랑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흘러들어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허공에 있는 천신과 천인과 아수라, 모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다 그를 공양합니다. 이 원리가 곧, 화엄경에 나오는 한마디 ‘일미진중함시방’과 같습니다. 지구 속에 하나의 티끌이 있고, 티끌 속에 우주의 무한한 기능이 있습니다. 산책로가 있어서 그곳에서 걷다보면 느끼게 됩니다. 서서 걸을 때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어요. 땅에 닿아 있을 땐 마이너스 전기가 되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가만히 느껴봅니다. 걸을 때 발바닥이 뜨는 거는 플러스입니다.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다보면 몸에 기가 발생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몸이 충전기이기 때문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는 배터리 즉 충전을 하는 기능이 됩니다. 배터리는 그 안에 기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말합니다, 내가 발걸음, 걸음걸음을 걸을 때마다 기가 발전기처럼 생깁니다. ‘차크라’명상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의 순환을 도와줍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기가 발생됩니다. 약을 먹는 것이, 좋다는 약을 많이 먹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몸에 기가 잘 돌아가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걷기도 요가도 명상도 몸을 위한 운동이 되겠지요. 기가 잘 돌게 되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켜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흐르지 않고 멈추어버리면 병이 됩니다. 많이 먹는 것도 흐르지 않고 멈추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비만이 되고, 혈관이 축소가 되고, 고혈압이 오고, 당뇨가 오고 변비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거의 암으로 직결된다는 논문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착은 내보내지 않고 쌓아놓는 것처럼 위험한 증상될 수도 있습니다. 노폐물이 쌓이는 집착은 정체를 가져옵니다. 욕심이 많으면 병이 생기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모든 만상들이 마음의 원리 따라서 오고 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자비심을 가지면 하나가 되니까 서로 연장선상이 됩니다. 우선 내가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으로 내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내 마음이 맑아지거든요, 하나가 되니까. 그 다음에 몸과 마음의 긴장에서 집착을 벗어나려 합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우선 자기 자신의 기분이 좋아 집니다. 그 다음에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남과의 관계도 좋아지니 사랑은 여러 가지 이점을 낳게 합니다. 분노는 당장 화가 나니까 남들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나를 불안케 하고, 산란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고, 자꾸만 화가 나니까 나와 남의 흠을 잡게 됩니다. 스스로 갈고 닦으며 비우는 마음을 가집시다. 2. 두터운 업장은 벗겨내고 해탈의 삶이 열리게 하자 현대인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우리 뇌를 조종하고,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정체는 집착력, 애착력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의 마음이 없는, 배려해야하는 자비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날이 갈수록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되고 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과 물질에 매몰되어서 좋은 인연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부부도 처음에 사랑할 때 아름다운 장원, 녹색의 장원이어서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아름다운 꽃밭만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 사이가 가시덤불이 되는 수가 있기도 합니다. 내 마음 여하에 따라서 내가 사는 그 상황이 아름다운 꽃밭이 되는 수도 있고, 가시밭길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개체가 문제가 아니라 개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의 장이 펼치는 곳, 그냥 허공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 이 나라를 감싸고 있는 장이 문제입니다. 에너지의 장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름답고 건강한 에너지로 채워야 합니다. 몸과 몸뚱어리는 무량겁을 쌓아온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심과, 혹은 또 증오심과 분노 같은 것들이 엉겨있는 것이 우리들의 몸뚱어리입니다. 업장중생이라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마음자리가 사분오열되고 찢어져버리면 이게 무서운 겁니다. 허공이, 부처님이, 신장님이, 불보살님이, 이 땅의 사람들이 지어가는 업장을 어떻게 지켜보며 용납하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잘 살아야 할 것인지? 업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의 걱정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거나 어디를 가더라도 아이들이 잊지 않아야 될 것을 프린트를 해서 학생들에게 다 나눠줍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닐 동안에 계속 이것을 강조하고 교훈으로 써 붙이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월급이 많은 쪽과 적은 쪽이 있으면, 월급이 많은 쪽보다는 가능한 한 적은 쪽을 택하여라. 두 번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쪽을 택하라. 세 번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역설의 미학이죠. 네 번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다섯 번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그런 황무지를 택하라. 여섯 번째,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일곱 번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여덟 번째, 사회적으로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아홉 번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가장자리로 가라. 열 번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이것이 이 학교 교훈이에요, 열 가지 교훈. 이 교장이 완전히 미쳤구나. 완전히 넋 나갔구나. 그런데 그 학교 졸업생들이 훌륭하게 된 사람이 너무 많답니다, 훌륭하게 된 사람이 학교 다닐 때 교장선생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많은 걸 배우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간다는 겁니다. 역설의 미학 같은 거죠.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야 됩니다. 우리의 의식은 95프로가 다 같습니다. 심리학에서 보면 5프로만이 다릅니다. 다른 5프로가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그 5프로는 항상 혁신적으로,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능동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학술적인 견해에서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이지만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만다면 결국 이 사회가 쓰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역설을 강조하며 가르친 교장이 어쩌면 훌륭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지명인사였다는데 그 학교를 만들어가지고 아이들한테 5프로를 택하게 하는 교장은, 95프로는 똑같은데 5프로만이 항상 혁신적으로,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능동적으로 사는 것을 알기에 모두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수행이란 말을 여러 번 하게 됩니다. 스스로 기도하고 수행하며 사랑과 자비심을 길러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업장이 소멸되고 삶의 두꺼운 껍데기가 벗어지고 해탈의 삶이 열리게 됩니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자기의 사명감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기도하지 않고 수행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업장이 드리워져서 자기의 사명감을 몰각하게 됩니다. 제갈공명은 하늘이 돕지 않고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돕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천우신조를 말하였습니다. 제갈공명도 ‘결국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천하의 재사인 제갈공명이 쓰러질 때 ‘결국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도와주고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만남이 있고 그것이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좋은 인연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사랑과 자비심으로 어떤 장을 만드는가. 그런 장에, 법 있는 곳에 내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우신조의 어떤 경지로 나가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뿐만 아니라 나라의 성패도, 인류의 성패도 가름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주변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장, 그런 장이 서지 않으면 ‘성주괴공 생주이멸’하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부처님을 사랑하는가, 주변을 사랑하는가, 어떤 장을 만들고 사는가를 생각하면서 강하고 좋은 장을 형성합시다. 그 장이 곧 광명입니다.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의 장을, 어떤 마음의 장을 만들고 있는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아니에요. 장이 있습니다. 이 장을 호법선신과 불보살들로 채워야 합니다, 이걸 항상 유념하여 사랑하며 자비심으로 채워야 합니다. 집착을 버리는 것도 사랑입니다. 고통이라고 하는 건 집착과 이기심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스스로 수행하며 깨우쳐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여 밝은 곳으로 나아갑시다. 2018-05-02 오후 3:39:42道다운 삶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삼계육도가 있다/Media/law/Read.aspx?db_cnt=77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나마스떼(Namaste)’</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법당에 나와서 독경을 하거나 예경을 하면 몸에 있는 모든 혈자리가 하나로 모입니다. 일관성을 갖게 되죠. 하나, 내가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대한 힘이 함께하는 겁니다. 상대성의 세계를 떠나니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이 안정되고 기력도 왕성해집니다. 가호지묘력, 그러잖아요. 하나가 갖는 힘, 부처님이 갖는 힘, 법력이 나와 더불어 하니까 그래요. 또 내가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내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독심이 조절가능해집니다. 일명 ‘관(觀)’한다고 그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를 초기불교, 공관불교, 화엄불교 등 여러 갈래로 나누지만 모든 걸 해체하면 결국엔 공(空)이 됩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해탈하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럼 직관이 발달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색수상행식, 모든 물질은 감각, 지각 반응을 하고 정보가 쌓이는 실체라고 얘기합니다. 육근 육진 육식이라고 해서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에 인연해 식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5온론, 12처론, 거기다 육식을 더하면 18계가 됩니다. 이 우주는 어떤 투철한 인과 따라, 연기 따라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성제, 십이인연을 차근차근 분석해 해체해나가도 무상(無相)이요, 무아(無我)요, 공(空)입니다. 제행이 무상이고, 제법이 무아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마음을 비우면 부처님과 하나 되어 직관이 쌓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진화해 반야지혜가 드러나게 되고 지혜로 우주를 보니까 이 우주가 꽃과 같다 해서 화장장엄세계다, 화엄(華嚴)이라 말하게 된 것입니다. 불교는 철저히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세속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어요? 몸의 세포들이 지리멸렬하기도 했겠지요.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이 교란되면 원자단위에서부터 문제가 생겨나잖아요. 그럴수록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예경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면 부처님의 힘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부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몸에는 원자, 분자, 세포 등의 미생물이 가득합니다. 세포보다 더 많은 미생물과 평생을 함께 삽니다. 그런데 마음을 흔들어놓으면 그들이 지리멸렬되기 쉽습니다. 미생물이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력이 심대하거든요. 광활한 우주와 비교해 보면 우리 자체도 미생물에 불과합니다. 미생물 없는 데가 없습니다. 저 깊은 바다에도, 암석에도, 온천에도, 남극의 얼음 속에도 미생물은 무한으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미생물과 하나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와 제일 처음에 만나는 게 미생물입니다. 이러한 미생물과 친구처럼 지내려면 안정된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도에 가면 흔히 하는 인사말로‘나마스떼(Namaste)’가 있습니다. 나마스떼,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예경합니다, 신이 당신에게 주신 재능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나마스떼란 말이 골수에 배어있어요. 그게 도 닦는 자세거든요. 여러분도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들딸들에게 ‘나마스떼’라고 의미 있는 인사를 건네 보세요.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 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위기는 항상 대기 중에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그 효율이 점점 감소하기 때문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가는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재충전의 기회입니다. 휴식의 가운데 예경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예경하고, 자기가 자기를 예경하면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우리에겐 그런 예경의 자세가 꼭 필요한데 우린 예경을 잊고 삽니다. 당연히 오만해질 수밖에요. 흔히 평상심시도라 말하는데 중도(中道)가 정도(正道)인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위기는 항상 대기중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위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어요. 인간은 잠을 자지만 돈은 잠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돈이 잠들지 않으니 낮이고 밤이고 계속 돌아다닙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고만 하니 위기가 오잖아요. 우리나라도 1997년의 IMF(외환위기)를 맞이했습니다. 6.25동란 이후로 최대의 국가적 난국이라고 그랬잖아요. 그 당시에는 반도체 특수, 엔화 강세, 금융자유화로 낙관론이 펼쳐졌는데 끝내 터지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10년 쯤 지나서 2008년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물론 소소한 문제들은 그때그때 일어나지만 커다란 위기는 항시 대기 중인 게 맞습니다. 돈은 잠들지 않아요. 요즘도 FTA다, 북핵이다, 고령화다, 저출산이다 해서 무엇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항상 예경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오만하거나 무지해선 곤란합니다. 나마스떼, ‘나는 당신 안의 신에게 예경합니다’라는 인사를 나누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대기 중인 위기 가운데 환경의 위기, 쓰레기 위기, 페트병 위기 등 여러 가지 자원 위기가 있습니다. 인간이 편리한 만큼 자연이 신음을 해요. 우리가 기본적인 스텝조차 밟지 않고 편안하려고만 하다 보니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내는 건 좋지만 자연이 병들어가고 환경의 위기가 오는 건 심각한 문제예요. 자연과학 전문저널 네이처지에 나왔던 얘기로는 공룡이 참새가 될 때까지 5천만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쥐가 박쥐가 되는 데 6천2백만 년 걸렸대요. 환경에 따라 그들은 천천히 지속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 우리는 대책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변해 가고 있어요. 편리를 도모하는 것만큼 자연은 신음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아프리카에 사는 얼룩말을 보세요. 얼룩말의 색깔이 어떻습니까? 한 줄은 하얗고 한 줄은 까맣잖아요. 단순히 줄무늬가 예쁘다, 정도였는데 표면이 하얗고 까만 게 단열효과와 온열효과를 같이 가져온다고 합니다. 하얀 색깔은 빛을 반사하잖아요. 까만색은 빛을 받아들이고요. 얼룩말들의 체온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줄무늬라니 자연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또 개미집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개미집은 온도와 습도, 기압이 잘 조절되는 완벽한 건축물이래요. 인간이 범접을 할 수 없는 건축물들이라는 거예요. 더러운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의 표면도 매우 특수한 시스템으로 돼 있다고 합니다. 연잎에는 작은 미세돌기가 있어서 미세먼지가 앉아도 물방울이 똑 떨어지면 잎이 깨끗해진다는 거예요. 일명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그러죠. 자연계가 가진 시스템이 아주 절묘하다니까요. 우주 자체가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땅에 수행하러 왔습니다. 공덕을 짓고 업장소멸 하러 왔다니까요. 서로 사랑하러 왔습니다. 세상 모두를 예경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가만히 보세요. 우리가 합장을 하면 모든 게 통일된다니까요. 항상 몸과 마음 가운데 벌어지는 상황을 제대로 활용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선 내가 냉장고에 뭔가 가지러 갔는데 잘 생각나지 않은 결과가 나와요. 기억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통합, 하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참선이 중요한 거예요. 하나가 돼야 의식이 정리됩니다. 의식이 통합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오고, 세포의 문제, 유전자의 문제로 교란이 오거든요. 암이 오고 치매가 오고, 나아가 나라의 경제위기가 오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예경하는 자세</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슨 일이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흐름에 따라서 전개되거든요.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나 지구나 똑같은 법칙에 의거합니다. 안 보인다고, 없다고 치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에요. 특히 우리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사람들은 항상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도 가능한 한 예경의 자세로 살아야 해요. 저 같이 머리를 깎고 사는 사람은 무시로 귀신을 만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들을 위해 구정이나 추석 때 차례 지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은 이 세상을 등지는 날 즐거운 마음으로 갈 자신 있으세요? 아마 섭섭한 마음으로 가실 분이 태반일 겁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죠? 지구에도 오존층, 이온층, 전리층, 반데르발스층 등이 있어요. 땅의 단면을 봐도 여러 지층이 있고요. 우리가 쉽게 탈출하지 못하게 시스템이 엄정하다니까요. 우리는 적어도 60점 이상은 돼야 가벼운 마음으로 그 층을 뚫고 다른 데로 갈 수가 있습니다. 60점미만이면 힘 없고 무거우니까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40점미만이라면 지옥 아귀 축생 삼악도로 가는데, 41점서부터 59점까지가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빙글빙글 윤회합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주변에는 중음신을 비롯한 여러 차원의 신들이 꽉 차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이 “아, 지옥이 어디 있어요? 천당이 어디 있어요? 괜히 만들어낸 거지.”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제 말씀을 잠깐만 들어 보세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한 시간이 순식간에 가 버리잖아요. 근데 내가 난로 위에 앉아 있다면 1분이 여삼추라고 그랬잖아요. 시간이 어디서 나왔어요? 마음에서 나온 거라니까요. 내가 있으니까 네가 있게 돼 있다는 거죠. 나와 너 사이에 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잖아요. 나하고 너 사이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시간과 공간이 강하게 느껴지겠죠. 그런데 사랑의 마음, 하나가 되면 시간과 공간이 녹아내립니다. 내가 없어지니까 남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백 년이 하루인 별, 천 년이 하루인 별이 있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우주는 곳곳마다의 상념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다릅니다. 아름다운 마음, 사랑의 마음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별나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거라서 그래요. 우리가 얼마나 예경하는 마음으로 사는가, 사랑의 마음으로 사는가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이 공존합니다.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심리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잖아요. 상호 연결 속에서 지혜와 자비가 발달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앞으로 가긴 갑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너무 지리멸렬돼 있어서 걱정입니다. 서로 예경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힘이 신의 영역, 부처님 영역까지 흘러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도 대단히 크다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너희 마음 가운데 일념삼천이라, 삼계육도가 있다’했으니 훅하면 순간적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모두를 예경하는 자세로, 영원이 하나 되는 힘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끊임없이 예경하는 마음이어야 안락하게 살 수 있어요. 국가와 민족, 인류의 평안을 도모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복 받을 미래가 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꼭 혼돈의 와중에 전쟁의 천재를 내려 보내거든요. 우리 마음 가운데 삼계육도, 유토피아, 열반이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정진하시기 당부 드립니다. </SPAN></P>2018-05-02 오후 3:06:29인간의 삶은 참으로 소중한 것. 죽음 앞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행뿐, 오로지 공덕뿐/Media/law/Read.aspx?db_cnt=77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테레사 효과’ 우리는 몸으로만 음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자양분을 취하며 삽니다. 눈으로 먹고 귀로도 먹습니다. 좋은 걸 봐야 해요, 좋은 걸 들어야 합니다. 몸으로는 좋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몸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과 일맥상통하잖아요. 마음과 몸은 하나니까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듣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맥클리랜드(David McClelland)이란 사람이 테레사 효과(Theresa Effect)라는 재미난 논문을 냈습니다. 내용인 즉 옛날에 테레사 수녀님이 계셨잖아요. 이 테레사 수녀님의 살아생전 활동한 내용을 약 50분 정도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여준 사람, A그룹이에요. 다른 보통 영상을 보여준 사람, B그룹입니다. 똑같은 영상이지만 하나는 테레사 수녀님의 활동상이고 하나는 일반적인 영상인 거죠. 각각의 영상을 본 다음 그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테레사 수녀의 활동영상을 본 사람들의 면역수치(Immune globulin), 이른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방어하는 수치가 즉각 상승되더라는 겁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활동상은 보통 영상하고 다르잖아요.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눈으로도 보는 거예요. 눈으로도 음식을 취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한 주일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법당에 나와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은 귀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으로 좋은 행동을 하면 양질의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면역력을 강화시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예입니다마는 창세기 20장, 14절 또 출애굽기 31장, 민수기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 나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는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제대로 신봉하지 않는 자라는 거죠. 안식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살아야 할 가치가 없어 죽여야 한다니 무섭습니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하던 일요일에는 교회에 갑니다. 강요 같지만 강한 의미가 있어요. 안식일을 지키는 건 그들의 철칙입니다. 그들에게는 매우 이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무심코 법당에 드나들거나 남에게 베푸는 건 전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예요. 그 일에 대한 이자까지 붙어서 돌아옵니다. 선행이 건강을 가져오고 면역력 증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테레사 효과,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들어야 합니다. 선행을 해야 해요. 기도란 결국은 뭐예요? 기도는 영원과 만나는 거니까 그만큼 내 몸과 마음 가운데 영원성을 강화시켜줍니다. 우리의 본질은 영원이니까요. 본래 진면목이 있으니까 항상 그와 같은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신뢰하고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남에게 선행을 하면 마음이 즐거워지잖아요. 좋은 물질이 나올 수밖에요. ‘선행은 영원을 인정한 사람의 길이다’이랬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 비가 안 오면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 생명은 부처님 영역입니다. 이 몸뚱어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 거고 부처님 거란 얘기예요. 내가 잘나서 잘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몸 가지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안식일을 잘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돌로 쳐 죽여라,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철통같이 지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바라밀행도 마찬가지예요. 보시바라밀, 보시라는 게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지계, 이 우주에는 정해진 계율이 있다는 거죠. 그 다음의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수행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죽음은 삶의 결정체 우리가 사는 동안은 음식과 적절한 운동, 수면이 필수입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 하나예요.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음식에 의존합니다. 아무 음식이나 취하면 몸이 망가지잖아요. 좋은 걸 먹어야 바라보는 것도 순합니다. 아이들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린아이는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성장해요. 상대방이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마음이 안정되거든요. 내 마음이 편안할 때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지는 겁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마음이 가득하면 바라보는 모든 것이 순해져요.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은 변해갑니다. 항상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을 상대에게 전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눈치를 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내가 반응을 하기도 하고요. 내가 상대방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면 상대방의 눈길도 따뜻해집니다. 앞서 ‘테레사 효과’처럼 좋은 걸 보면 좋은 사람 되고 나쁜 걸 보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내를 바라볼 때 정말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셔야 해요. 남편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구요. 내가 접하는 사람들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을 변화시키거든요. 우리 인식대가 그래요. 결국 주변 사람들은 전부 나의 환경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데이터를 보니까 요즘 젊은이들의 정자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어서 나온답니다. 정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건 물론이거니와 정자의 활동상태가 대단히 나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기를 잉태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살아가는 데 따른 스트레스나 대기 오염, 전자기기도 많고요. 지금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보내는 정자도 금방 만든 게 아니라 이미 3개월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백일치성을 드린 겁니다. 뭘 하나 만들더라도 공을 들여야 해요. 아이들을 위해서도 공을 들여야 합니다. 마음을 정화해야 정자나 난자가 정화됩니다. 마음먹은 것이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언가 만드는 데 있어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고 하면 그것은 정성이 부족한 거예요. 겨울이 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쉬운 것과 같아요. 몸과 마음이 단련돼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섭취하려는 마음으로 좋은 걸 보도록 노력하세요.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게 그대로 시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의 결정체입니다. 여러분은 안 죽을 것 같이 펄펄 뛰어다니죠? 아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시신의 모습을 보면‘이분은 어떻게 사셨구나.’가 그대로 나타나요. 죽음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 좋은 데로 가셨는가, 그렇지 못한가, 살아온 대로 결정이 납니다. 죽음을 제대로 공부해야 삶이 깊어진다고 그러잖아요. 죽음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정말 무엇을 할 것인가?’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잡스의 이야기예요. 그는 죽음을 앞두고 매일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좋은 걸 봐야 해요. 좋은 걸 들어야 하고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너희는 시간이란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 때 바람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죠. 그래서 선원들은 기도를 합니다. 바람은 기도예요. 그다음 노를 잘 저어야 합니다. 배가 나아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공덕력이라는 거예요. 그다음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지혜로워야합니다. 배에다 좋은 걸 많이 실어야 좋은 데로 갈 수 있습니다. 나쁜 걸 실으면 나쁜 데로 갑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무력합니다. 그래서 수행에 백골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백골이 된 걸 생각하는 겁니다. 죽음 앞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수행밖에 없다는 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다른 건 소용없어요. 재산이 소용 있습니까, 권력이 소용 있습니까, 죽음은 반드시 옵니다. 다만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살아생전 나에게 올 마지막 날을 위해 공부하는 게 수행입니다. 부처님도 ‘네 아비와 어미의 시신을 놓고 영원을 공부하라’하셨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보다 먼저 가시면서 우리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수행자의 자세는 다릅니다. 열심히 수행하세요. 좋은 음식, 충분한 수면,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세상과 좋은 관계 속에 살아야 합니다. 3. 진정한 자유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필수 요즘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선행이 사람의 두뇌회로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매치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기도 해요. 하나인 마음이 두뇌능력을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이 지금 상당한 실효를 거두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고 상대방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두뇌회로가 깨끗하다는 거예요. 당연한 게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나라도 뭉쳐야 산다고 그랬잖아요. 민족이 단결한 나라는 외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결돼 있으니까 딴딴하잖아요. 중국이 일본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일본은 분열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주식회사라고 그러잖아요. 부처님은‘온 세상이 너로 하여금 아름다운 씨를 뿌려주기를 바라는 옥토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옥토라는 거예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좋은 걸 생각하고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회사 과장이다 부장이다, 그러면 부처님 말씀을 듣고 직원들에게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회사가 당연히 잘 될 수밖에요. 종교는 이론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부처님은‘나의 가르침은 추상적 이치에 있지 아니하다. 구체적이고 바른 행에 있다’ 고 하셨습니다. 무상심심미묘한 법을 행동으로 펼쳐가야 합니다. 현재, 이 순간은 영원입니다. 언제든지 순간에 죽음이 올 수 있거든요. 죽음이 마음먹고 옵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항상 순간에 영원을 맞이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선(禪)이란 현실과 영원을 하나로 하는 작업입니다. 선은 모든 회로의 일관성을 가져옵니다. 당연히 노화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나오는 게 활성산소인데 그것이 노화의 주범이에요. 근데 참선을 하면 활성산소의 생성량이 현저히 줄더라는 거예요. 그만큼 노화가 더딘 거예요. 참선은 차원의 이동입니다. 내가 현실을 살면서 영원을 가는 마음자세로 앉아 있다면 모든 게 쉬잖아요. 앉아 있는 게 공부예요. 시간을 이기는 거죠, 공간을 이기는 거고요. 입자의 세계로부터 파동의 세계로 나를 띄우는 거거든요. 지혜의 세계, 본질과 만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새 정부 들어 남북 대화를 한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한다, 또 중국이나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주변 정세가 전환기적인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운명적인 흐름이라고나 할까요, 역사의 어떤 변곡점이라고 그럴까요, 지금 상황이 그래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될 것인가를 진지한 자세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과잉된 자유 가운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자유롭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 있어야 하거든요. 자유는 마음대로 살라고 주어진 게 아닙니다. 자기 통제력, 자기 억제력, 자기 수행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사르트르 말마따나 무섭도록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진 게 인간이라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우린 무제한적이 아닌 각자의 내부에 통제사령탑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너 왜 아내에게 그런 모진 말을 했냐?’, ‘너 왜 남편에게 함부로 말했니?’하는 통제자가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라고도 하는데 적어도 양심에 충실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덴 놓아두면 이리저리 날뛰는 망아지와 같은 존재가 있어요. 함부로 살려는 마음이 있다니까요. 수행은 자기 통제입니다. 자기 억제예요.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들어야 합니다. 나쁜 걸 보고 나쁜 걸 들으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내가 좋은 마음을 쓰고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좋은 말, 좋은 걸 보면 응분의 대가가 순간순간 옵니다. 순간순간 보상이 와요. 제가 가끔 유대인 얘기를 하는데요, 그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은‘We are the chosen people.’다른 모든 민족 가운데 선택된 민족이라는 거죠. 사실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전쟁이 따릅니다. 그들이 이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갈지도 몰라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IMF, 서브프라임 등을 일으킨 주범이 전부 유대인들이거든요. 로버트 루빈이나 서머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제임스 올펜슨, 전부 유대인들입니다. 금융 테러범들의 백퍼센트가 유대인들이라니까요. 미국을 움직이는 그 이면의 세력에는 유대인이 있습니다. 미국 전체의 71퍼센트가 유대인의 영향력에 들어가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어요.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칼럼리스트인 아이언 윌리엄스는‘미국은 이스라엘의 위성국가다’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배달겨레로, 불교신자로 살고 있습니다. 좋은 거를 많이 보셔야 해요. 해인(海印), 바다와 같이 많이 찍으라, 많이 보라, 많이 들어야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선행을 하면 이자까지 쳐서 돌아옵니다. 부처님이 즉각 보상을 주십니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고 하는 건 나의 공덕이 모자라서,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릅니다. 이 순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에요. 죽음 앞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수행뿐이다, 공덕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부처님과 더불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18-04-25 오후 2:23:22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다. 그 감사와 사랑이 최고의 치유사다/Media/law/Read.aspx?db_cnt=77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차원이동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른바 관조, 관찰, 혹은 회광반조를 말합니다. 자기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비쳐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든 게 정말 무상심심미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세생생 원아불퇴보리심으로 이 길을 간다면 얼마나 복될 것인가, 얼마나 의미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요. 여러분은 매일매일 어떤 마음으로 사세요? 매일 장사가 안 된다, 영업이 안 된다, 사업이 안 된다 하면서 세상만사에 대한 어려움이 많으시지요? 물론 고통스럽죠. 어렵고 힘듭니다. 그런데 조금만 차원을 달리 하면 세상은 감사로, 은혜로 감싸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니까요. 흔히 ‘물거품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요. 물거품이 어떻게 생겼어요? 막이 있고 그 안에 공기가 들어 있습니다. 금강경에도 인생은 꿈결과도 같고, 물거품과도 같고, 그림자와도 같다고 합니다. 한갓 물거품처럼 금방 사라지는 인생인데 뭐 그리 의미심장할 수 있냐 이거죠. 일미진중함시방 그러거든요. 티끌 가운데 우주가 들어 있다고 하잖아요. 바닷가의 불가사리를 보세요. 이름이 불가살, 죽일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가사리라고 부른답니다. 끝을 잘라내도 금새 불가사리로 커나간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거죠. 이처럼 물거품 같은 몸이지만 우리 몸에는 신비한 세포가 존재합니다. 이 세포들은 전부 원자나 분자로 돼 있어요. 원자의 중심에 핵이 들어 있고 바깥으로는 전자가 돕니다. 핵을 탁구공만하다고 생각하면 전자는 능인선원에서 잠실운동장만큼 떨어진 곳에서 돌고 있는 게 원자의 구도입니다. 그러면 우리 몸뚱어리도 결국 물포대, 공(共), 허공으로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나 저나 눈귀코혀몸이 달려 있거든요. 우리만 눈귀코혀몸이 있는 게 아니라 부처님도 눈귀코혀몸이 있어요. 우린 삼차원이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건 당연합니다. 이 때 마음을 사차원으로 이동시키라는 거예요. 내가 산기슭을 따라서 힘겹게 올라갈 때도 있지만,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면 ‘내가 저기 저 언덕을 따라 올라왔구나’ 하는 게 보이잖아요. 지금 아프고 쓰라리지만 마음으로라도 한 차원 달리 해서‘물거품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을 바꾸면 차원이동이 가능합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지나온 날들이 그냥 즐겁게만 느껴져요. ‘내가 저 언덕을 올라올 때 얼마나 힘들었나’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 기분 때문에 등산을 하는 거죠. 한 차원 더 높이 서서 삶을 관조하면 고통이 고통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차원 이동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눈귀코혀몸으로 사물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 내 안에 무슨 부처님 계신가?’안 믿어요. 아니에요, 계십니다. 굳이 “볼 수도, 들을 수도, 맛볼 수도 없고 어떻게 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럼 오늘부터 ‘나는 부처님이다’라고 생각하고 항상 말하는 것마다 부처님이 얘기한다 생각하시라.”고요. 상대방을 대할 때마다 나도 부처님이고 상대방도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이 부처님께 얘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얘기해 보세요. 누구의 말을 들을 때 비록 내가 아는 말이라도 부처님처럼 귀담아 듣고, 부처님처럼 말하고 부처님처럼 생각하세요. 그리고 부처님처럼 행동을 하는 거예요. 마음이 만들어낸 게 말과 생각과 행동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말을, 생각을, 행동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뭔가 느껴지는 점이 있을 거예요. 소박하게라도 한번 해 보세요. 흘러가는 세상을 고통스럽게 보는 자는 중생입니다. 흘러가는 인생에 대해 ‘물거품 같다’고 회광반조해보세요. 실제로 여러분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수많은 날을 보냈잖아요. 근데 그게 다 물거품 같이 흘러갔습니다. 그 당시엔 심각하고 어렵고 힘들었을 테지만 어느 결에 물거품처럼 흘러갔어요. 물거품처럼 흘러간 인생을 중생의 눈으로 본다면 세상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고통가운데에서도 한 생각 바꿔 차원을 이동해보세요. 꼭 내가 봉정암에 올라가고, 한라산에 올라가야 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얼마든지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2. 내 영혼의 빛깔은? 칼 사이먼튼라는 미국의 유명한 암연구소가 있어요. 이곳은 아주 돈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암치료법으로 약물을 쓰기도 하지만 환자들에게 명상이나 참선을 시키면서 ‘암세포가 녹아 내려 나는 점점 몸이 깨끗해진다’라고 하는 이른바 강한 자기치유요법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이 방법을 쓰니까 암치료효과가 엄청나게 높아졌대요. 차원이동을 시키면 병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면‘내 안에 계신 부처님이 나를 어루만져 주신다’라고 하루에 단 5분만이라도 서너 번씩 앉아 보세요. 효과가 대단히 큽니다. 지금 가만히 앉아서 초등학교 교정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거예요. 내가 부처님 생각을 하면 내가 부처님 나라의 주민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됩니다. 얼마 전 스티븐 호킹이 사망했습니다. 그는 참 대단한 인물이었죠. 그가 재미난 얘길 했어요. 수학에 보면 실수라는 수가 있고, 허수라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소립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과연 물질의 극미의 세계가 입자냐, 파동이냐를 가지고 지금도 씨름합니다. 입자하고 파동은 실수하고 허수의 개념 같은 거거든요. 실수는 우리가 말하는 1,2,3,4의 숫자이고 허수는 계량이 안 돼요. -1인데 i라는 부호를 쓰고, i의 제곱이 마이너스… 이렇게 나가거든요. 차원, 시공간이 다른 거예요. 입자는 눈에 보이지만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어떻게 같이 놀겠냐는 건데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도 중생의 눈으로 보면 상대방이 미울 수가 있습니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당장 차원이동 되니까 상대방이‘아, 내가 전생에 저 친구한테 업을 쌓았나 보구나. 이게 업장소멸이구나’ 하면서 미웠던 마음이 금방 녹아내립니다. 아이스크림 녹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지금 상대방을 두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면 중생의 눈으로 보는 것인데‘아, 부처님이 부처님 눈으로 보라고 했지. 내가 저 친구한테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보다’ 하는 순간, 차원 이동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스티븐 호킹은 실수의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가 허수의 세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잖아요. 실수의 세계를 지배하는 게 허수의 세계래요. 허공이라는 거죠. 파동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기 거울이 있어요. 거울에 물건을 비췄더니 거울 안에 그림자가 생겼어요. 이 때 거울에 비친 건 허상이고, 거울 밖의 것이 실상입니다. 근데 사실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도 우리를 계속 찍어대는 존재가 있습니다. 실제로 두뇌에 거울세포라는 게 있다는 거죠. 부처님 눈엔 부처만 보인다는 원리가 과학을 뛰어넘는 초과학입니다. 마음의 과학이라니깐요.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려 하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포용해 하나가 되려고 노력해보세요. 두뇌 회로가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두뇌능력이 향상됩니다. 결국 부처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도(道) 닦는다고 하는데 두뇌 회로(回路)에서도 길로(路)자를 씁니다. 두뇌회로의 일관성으로 인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시하고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록 두뇌 능력이 지리멸렬돼 회로가 붕괴된대요. 그래서 우리가 명상이나 참선에 열중하는 거예요. 허상을 허상으로 알면 실상이 드러납니다. 영혼에도 빛깔이 있어요. 지옥에 갈 중음신은 시커멓다고 나오고 하늘나라 갈 중음신은 황금색이라고 나와요.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갖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앉아 있지만 부처님이나 신장님이 보시기에는 영혼의 빛깔이 다 다릅니다. 어떤 주된 성정(性情) 속에 살았느냐에 따라서 영혼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수행해 왔는가에 따라서 딸까닥 돌아가시면 갈 데가 정해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내 영혼은 어떤 빛깔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안에 부처님 계시나요?” 라고 물으시는 분들은 차원이동을 해보셔야 해요. 부처님 말을 하고 부처님 생각을 하고 부처님 행동을 해야 합니다. 3. 물거품 같은 인생 누가 나에게 모나게 대해 올 때 ‘짜식이!’ 하면 중생입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이 쉬어지지 않아요. 누가 나에게 모나게 대해와도 ‘아, 내가 저 친구한테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었나 보다. 여보게, 미안해’라고 중생에서 부처로 차원이동을 시키는 거예요.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 순간적으로 차원이동해서 녹여내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저는 ‘인생은 그저 물거품 같은 거’라는 부처님 말씀을 원용하며 삽니다. 부처님이 왜 물거품 같은 인생이라고 하셨겠어요? 이 세상 모두 흘러가는 것이라 그래요. 아침이슬 저녁연기 같고, 번갯불 같잖아요. 딱 부처님만 잡고 부처님 눈으로 보고 부처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어느 결에 다 흘러갑니다. 내 안에 계신 부처님 눈으로 순간, 차원이동 하면 됩니다. 회광반조하는 거예요, 당장 내가 부처님 말을 하면 돼요. 잘 되지 않더라도 자주 연습하세요. 내 안에 계신 부처님을 잘 이용하시라니깐요. 화엄경에도 나왔듯이 허공은 부처님 몸과 마음입니다. 허공엔 부처님의 무한한 눈이 있고 무한한 귀가 있습니다. 물거품 안에 있는 부처님 눈으로 세상을 보세요. 부처님 귀로 듣고. 부처님 마음으로 생각하고, 부처님 말을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남편이면 아내에게, 아내이면 남편에게 공경의 말을 쓰세요. 제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의 아버님이 100세고 어머님이 99세예요.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십니다. 그 두 분을 관찰해 보면요,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꼭 공대말을 쓰세요. 왜냐? 남에게 공경하는 말을 쓰면 내가 낮아지거든요. 낮아지는 곳이 바다가 됩니다. 마음이 넓어져요. 장수할 수밖에요. 내가 사장이다, 부장이다 해서 직원들에게 함부로 말하면 그들이 불안해합니다. 내가 남편이라고 아내에게 소리 지르면 아내가 불안해져요. 스트레스 받는 거죠. 남편이 피곤해서 들어왔는데 아내가 잔소리 해보세요. 그럼 남편이 불안하니까 들어오고 싶지 않겠죠. 남편을 부처로 보는 거예요. 아내를 부처로 보는 겁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도 보모들이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소리 높여 말하니까 불안한 마음에 집중이 안 돼서 그렇다는 거예요. 대부분 우범자가 될 수밖에요. 여러분이 상사라면 직원들에게도 공경의 말을 해야 합니다. 바다는 제일 낮은 곳에서 어떤 물이든 받아들입니다. 우린 이 땅에 부처되러 왔습니다. 업장 소멸하러 왔습니다. 화가 날 땐 ‘에이, 흘러가는 물결이지’하면서 차원을 이동하면 내 마음이 바다가 됩니다. 내 몸과 마음 가운데에 부처님의 위신력이 함께하게 돼요. 세포들에게 부처님의 힘이 머금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치매가 오겠어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암이 오겠냐고요. 마음 가운데 계신 부처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차원이동을 하다 보면 힘이 쌓여‘아, 그때 내가 잘 이겨냈지. 부처님 감사합니다’하는 감사와 찬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를 잘 실천하는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생명으로 알고 사는 민족이에요. 아인슈타인 말마따나 인간에게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위대한 방편 중에 기도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부처님으로 차원이동 하는 거예요. 참선, 명상이 차원이동이에요. 그걸 습관화하고 생활화하는 거예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내가 중생이다, 내가 뭐다, 하는 건 다 허상이에요. 전도몽상이라고 그랬잖아요. 강아지 눈에는 뭐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고요. 화가 날 때마다 ‘아, 차원이동하자’ 이렇게 다짐하세요. 그러면 문제가 문제 아닌 것처럼 변하고, 고통이 아이스크림 녹듯 녹습니다. 그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에요. 내가 누군데, 이러면 점점 문제가 생깁니다. 마음을 잘 조절해야죠. 차원이동에 능수능란해야 합니다. 4. 허수의 세계가 실수의 세계를 좌우한다 저 같은 중은 혼자 살잖아요. 혼자 사니까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간장도 담고 고추장도 담아야 해요. 저도 메주를 띄워봤습니다. 장을 담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콩을 푹 삶아서 메주덩어리를 만들어 띄우잖아요. 근데 자칫 잘못하면 검은 곰팡이가 납니다. 이런 곰팡이 속엔 아플라톡신이라고 하는 일급 발암물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메주를 잘 띄워야 하는 거예요. 메주는 우리 몸에 제일 좋은 영양식품인데도 잘못 관리하면 곰팡이 난다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부처님이지만 이 마음을 잘못 관리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관리를 잘해야 해요. 마음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태양열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햇빛을 너무 많이 쏘이면 피부암에 걸립니다. 비도 너무 과하면 홍수가 나잖아요. 차원이동을 잘못 하면 지옥도 갑니다. 순간 화를 내면 사고치는 것과 같습니다. 위대한 선지식들은 하나같이‘너 자신을 알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무한한 힘을 가진 실체이면서도 차원이동을 잘못하면 나락으로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하는 겁니다. ‘신심불이요, 불이신심’입니다. 지극한 도(道)는 어렵지 않습니다. 좋고 나쁘고 예쁘고 밉고를 따지지 마세요. 순간 나를 저차원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평상시에 차원이동을 즐겨하는 삶을 살아야 주변에 마땅한 장(場)이 생깁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요. 여러분의 영혼의 빛깔은 제각각 다릅니다. 장이 달라요. 여러분을 가호하는 신장들과 불보살들의 질이 다릅니다. 매일매일 고차원적인 영혼으로 승화될 것인가, 저차원적인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질병에 이환되거나 암이 걸려 있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도 주변이 시커멓게 나온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악령이 있을 수 있어요. 악령이 빙의합니다. 옛날엔 정신분열증 그랬는데 요즘은 조현병이라고 그런대요. 차원이동을 즐기는 삶을 사세요. 우리는 실수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허수의 세계가 실수를 좌우함을 알아야 합니다. 허수는 수학에서 빼낼 수 없는 세계입니다. 허수는 허공을 다루는 세계, 파동장의 세계입니다.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이 허수의 세계가 실수의 세계를 좌우합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다해서 차원을 이동하세요. 우주는 전부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최고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018-04-18 오후 2:38:06행복은 향수와 같다. 자신에게 뿌리면 서서히 퍼져 나간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향수를 뿌려라 /Media/law/Read.aspx?db_cnt=77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꿈꾸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SPAN></P> <P style="TEXT-ALIGN: lef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흔히 예절은 마음의 향기와 같다고 합니다. 예절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향수를 뿌리기도 하지요. 향수를 뿌리면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도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거든요. 이와 같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오분법신향을 의미합니다. 부처님 나라, 법신의 나라는 아름다운 향기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니르바나, 지고의 행복을 뜻합니다. 이때의 행복은 향수와 같습니다. 자신에게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자신은 물론 남들도 행복하게 해주잖아요.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잊어버린 과거를 찾아서’를 보면 주인공은 어렸을 때 홍차에 찍어 먹던 마들렌이란 과자의 냄새를 맡고 기억을 일깨웁니다. 그는 특유의 향기와 연관된 모든 걸 끌어내서 명작을 썼어요. 코로 맡은 향기는 우리를 과거로, 기억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거예요. 향기, 삶은 몸과 마음을 다해 예경을 취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꽃은 피어야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개인이든 어떤 사회나 단체,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뭔가 터지면서 일이 생겨납니다. “요즘 분위기가 어때?”, “ 과거보단 나아.”하면서 분위기란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요즘 우리나라는 새로 들어선 정부가 과거의 그릇된 것을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에게도 적폐가 있을 수 있어요. 나 자신도 개혁이 필요할 때가 있죠. 당연히 개조해야 해요.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야 합니다. 계를 잘 지키지 않다 보면 마음이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부정적인 건 정리를 해야 청정해지잖아요. 그러나 개혁은 어느 한 순간 뚝딱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인망을 모아야 가능합니다. 개혁의 출발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좋은 향기를 뿜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향기를 따라 살게 되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행복의 비결은 자유,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은 자유로워야 해요. 속박을 당하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 때 우리가 자유로우려면 과거의 그릇된 것은 제거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니까요. 보살의 덕목인 위대한 용기로 과거의 나를 처단할 수 있어야 해요. 자유는 더 나아지기 위한 기회이니까요. 향기를 뿜어내려면 꽃이 터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꽃망울로 뭉쳐 있으면 향기가 나지 않아요. 줄탁동시,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탁탁 껍데기를 칠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만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은 어미닭의 깨뜨림이 필요합니다. 나 스스로 해탈의 의지가 있어야 해요. 개혁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수가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촉매제를 보세요. 예를 들면 자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물질이 들어감으로서 새로운 물질이 생겨납니다. 그런 가교 역할을 하는 존재를 촉매라고 하는데, 화학에서는 철을 촉매로 질소를 고정시켜 암모니아를 만들어냅니다. 부처님 역시 위대한 촉매자로서 우리가 노력하는 대로, 뿌린 대로 거두게 해주십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노력하는 사람, 마음을 비우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를 보면 꿈을 꾸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요. 꿈이 촉매다, 이거예요. 그들은 꿈속에서도 상상을 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잖아요. 꿈이 현실을 창조하고 또 미래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거기서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합니다. 꿈꾸는 것, 상상이 경쟁력이 되는 사회입니다. 꿈이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니까요.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꾸어보세요. 하늘과 통하는 채널이 열립니다. ‘아, 이거 한번 해볼까?’하면서 꿈을 꾸면 언제든 현실이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근데 자기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뭐든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을 때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얘기를 수도 없이 하잖아요. 마음의 향기가 예절이라고 그랬잖아요. 예경을 하는 거예요. 백팔배, 삼천배 하는 게 같은 맥락입니다.“백팔배 하면 뭐 좋습니까?”, “삼천배 하면 좋습니까?” 그렇게 묻지 말고 해보세요. 꿈꾸는 자, 상상하는 그 자가 경쟁에서 이깁니다. 그런 사람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나만의 향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꽃만이 향기를 뿜지 않습니다. 만상이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향기를 발산합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정보를 발산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주파수를 발산하잖아요. 이러한 사물의 본질을 확실히 알면 좀 더 쉽게 영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탁월한 인물들은 항상 공(空)을 만나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을 비우라는 겁니다. 부처님이‘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하신 이유도 과거를 척결해나가는 가운데 새로운 향기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장미의 향기다, 라일락 향기다, 하면서 자기를 들어내잖아요. 허공이 촉매라고 했듯이 촉매인 부처님은 우리의 그릇 따라서 담아 주십니다. 내가 나를 비우면 공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뿜게 됩니다. 기(氣)를 바꿔 나아가세요. 혁신을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기, 그냥 산소를 취한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공기는 바로 부처님 나라의 거룩하고 장엄한 정보랄까? 부처님 나라의 거룩한 지혜와 사랑을 먹으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그릇 따라서 뿜어내는 개인적인 향기라고 할까요? 내가 나의 껍데기를 벗겨내야 순수한 부처님 나라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면 안이비설신의도 잠을 잡니다. 그리고 간절한 가운데 꿈속에서 무언가와 통하게 됩니다.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은 꿈을 꾸는 자라고 하잖아요. 공기, 전기, 향기의 3자를 가만히 놓고 비교해 봐요. 공기는 부처님 나라의 기운이에요. 호흡으로 살지만 공기가 들락날락 할 뿐이지 우리 몸에 얼마나 머물겠어요? 경전에 나오죠. ‘다이아몬드를 먹어 봐라. 그럼 다이아몬드가 네 몸과 섞이더냐?'' 그냥 흘러나옵니다. 이 육신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구름 한 덩어리와 같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탁월한 인물들은‘너희가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꿈꾸기를 배우라’고 합니다. 꿈을 꾸는 가운데 위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마음이면 좋은 생각이 꿈과 더불어 들어옵니다. 롤프 옌센 말마따나 현대 사회는 꿈꾸는 자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돼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왜 음악을 좋아해요? 몸은 질량으로 돼 있는 에너지입니다. 또 에너지는 파동이니까 진동하는 몸 따라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요. 몸 자체가 음악을 연주하는 거거든요. 미술은 또 어때요? 우리는 빛을 머금고 그 빛과 열을 뿜고 삽니다. 음식을 먹으면 눈에서 빛(아우라)이 나오거든요.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색깔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림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드라마를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게 삶이고 문화인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분명히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갈등은 분별과 차별에서 옵니다. 갈등은 향기를 나쁘게 해요. 자꾸만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마세요. 갈등을 일으키면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가 생겨 악취가 납니다. 차별을 떠나 하나가 되어야 부처님 향기가 풍기는 거예요. 무지, 무명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 동굴 바깥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기심의 동굴에서 나와야 해요.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 나를 평가받기 위해선 나를 시장에 내놔봐야 해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가 하는 자신의 향기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바닷가에 가면 바다냄새 나듯이 산에 가면 산 냄새가 있습니다. 꽃에는 꽃의 향기가 있고, 과일에는 과일 향, 나무에는 나무 향이 있어요. 또 향신료에서 나오는 향도 있습니다. 향신료 가운데 대표적인 게 고추죠. 사람들이 왜 매운 걸 좋아하는지 아세요?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은 캡사이신 때문입니다. 특히 매운 고추를 먹으면 강한 자극이 오잖아요. 몸에서 열이 나요. 몸이 열이 나면 두뇌가 ‘어, 몸에 사고가 났나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매운 맛으로 인해 몸에 고통이 오면 두뇌가 착각을 해서 즉시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요. 몸을 혁신시키는 거죠. 엔돌핀은 몸에서 나오는 마약 같은 성분으로 매운 것 중독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매운 걸 먹으면서도 “어이구 시원해.” 그러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몸과 마음을 던져서 수행하는 것만큼 정말 아름다운 향기를 품는 건 없다, 이거예요. 수행을 하면 몸에서 강한 안정제가 나온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프루스트 효과</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향수 업계의 대부 에스티로더 말처럼 냄새를 지배하는 자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귀코혀몸은 전부 마음으로 통하는 거라 그래요. 중요한 건 우리가 몸에다 좋은 향수를 뿌리라는 게 아니라 불교적인 차원에서 가지런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라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분위기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향기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일명 프루스트 효과라고 해요. 왜 맵시라고 그러잖아요. ‘아, 저 사람은 참 맵시가 있어’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끌리는 겁니다. 원천적인 바다의 냄새, 산의 냄새, 꽃의 향기, 과일 향기와 같은 싱그러운 냄새가 나는 겁니다. 그런 냄새가 인간의 마음을 압도합니다. 향은 경험이면서 자극이면서 기억이에요. 향기는 우리 과거의 경험을 일깨우게 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의 향기를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예민하니까 아빠 냄새 난다 그러고 엄마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어떤 보살님이 제게 “스님, 요즘 남편이 달라졌어요.”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아내를 매일 안아요, 남편을 매일 안습니다. 근데 만약에 다른 여자를 안거나 다른 남자를 안아 보세요. 그 영상이 떠오릅니다. 기(氣)는 영상화되거든요. 하나도 빈말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 아내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냄새가 달라졌구나, 분위기가 달라졌구나, 체크 한단 말이에요. 여자 눈은 못 속인다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그래요. 그 보살님이 남편을 데리고 제게 오셨어요.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데 이 거사님이 제 눈을 동그랗게 쳐다보더라니까요. “기다란 머리의 이 여자는 누굽니까? 딸이에요?”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안 해요. 제가 그 여자를 제가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떠오르는데 어떡할 거예요. 네, 신장님들은 다 아세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 우주가 헐렁헐렁하지 않다고 항상 말씀드리잖아요. 부정적으로 살아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모든 것은 마음과 통해 있기 때문에 과거에 경험된 건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꽃이 있으면 향기가 있어요. 누구나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주파수 따라서 가는 겁니다. 경전에 나옵니다. ‘마음을 갈고 닦은 중음신들은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곳으로 가고, 그렇지 못한 중음신들은 악취가 나는 데로 간다’미국의 애플사 최고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디자인은 그 제품의 향기다’ 제품에도 향기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제품이래요. ‘제품의 향기를 드러낼 때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디자인은 제품의 향기를 아름답게 만든다’ 스티브 잡스 얘기예요. 사용자가 물건을 잡으면 동시에 그 제품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게 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개인의 질이 자신의 상품의 질을 결정짓습니다. 평상시에 얼마나 내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가 돌아보세요. 부부간에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말도, 내 생각도, 내 행동도 뭔가 물질을 생산을 해내고 있는 겁니다. 마음이 에너지잖아요. 이 에너지가 뭉치면 질량이니까 부부가 서로 경건하게 살면 당연히 경건한 아이가 나오겠지요. 그러한 세월이 향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래서 꾸준히 가야 해요. 하루에 세 시간씩 한 달이면 백 시간, 일 년이면 천 시간. 적어도 십 년은 해야 전문가란 칭호를 얻습니다. 인디언들이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듯이 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든지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게 될 거라는 걸 확신하세요? ‘성공할까? 실패할까?’두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의 진정한 위대함을 일깨울 수가 없는 거예요. 두려울수록, 공포를 느낄수록 더욱더 처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게 진정한 용기예요. 진정한 위대함을 깨우치게 하는 게 두려움입니다. 두렵다고 말하지 마세요.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마시고 몸과 마음을 던져 기도하세요. 부처님은 다 아세요. 그런 향기가, 그런 마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 때 비로소 진정으로 위대한 용기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두렵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학교입니다. 우주에 있는 별나라들이 학교라는 게 부처님 말씀 아닙니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이상 자신이 자신의 스승이 되고, 사회의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일 하는 어느 곳이든 교사는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 회사의 향기, 나라의 향기를 뿜어내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내가 얼마나 해탈의 길을 갔는가에 따라 향기를 뿜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두려울수록 열심히 수행하세요. 두려움이 재산입니다. 두려움은 나의 용기를 강화시키는 위대한 영약입니다. 팥죽도 계속 끓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번뇌가 보리라고 그러잖아요, 망상이 나를 성장케 하는 영약이고 재료입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결과물입니다. 부처님이 요구하신 개혁적인 인간, 해탈자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나는 얼마나 혁신적인 인간인가를 자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시기 당부 드립니다. </SPAN></P>2018-04-11 오후 2:03:34혁신은 항상 고통과 희생과 도태를 수반한다. 부처님 말씀대로 ‘게으르지 마라/Media/law/Read.aspx?db_cnt=76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나의 천적은 나 자신</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동안 법회에 열심히 나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금년엔 연초에 바뀐 새로운 정권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혁신이란 말이 빈번하게 등장했으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시겠지만 무수한 기업이 일어나고 또 쓰러지고를 반복합니다. 혁신은 언제나 희생과 도태를 수반하지요.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부처님의 유언이신 ‘게으르지 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로 대신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가만히 보세요. 빛과 공기와 물, 생명의 삼요소입니다. 허공 그자체가 선물이에요. 물론 태양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고 삽니다. 화엄경에서는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면 또 다른 차원의 태양이 있다고 말합니다. 천문학자들도 준항성체(Quasar)라고 하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를 말하잖아요. 우리가 아는 태양이 그 발광체의 주변을 돌고, 은하계 우주가 돌아요. 은하계 우주의 중심이 또 있다는 거 아녜요. 네, 중중무진, 제망중중 이럽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한 해를 보내면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정진의 사도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도태돼요. 노력하는 자만이 자연의 선택과 부름을 받는다는 거죠. 돌연변이, 끊임없이 환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운명이 가혹하다 하지만 운명을 얘기하는 사람은 취약한 사람이에요. 약한 사람들이 운명을 얘기하거든요. ‘운명아, 비켜라!’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쓰러졌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왜냐? 이 우주에는 영원한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스님, 인생 살아가는데 자꾸만 실패하면 어떡합니까?” 불교는 내생이라는 게 있잖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정진하기를 요구하신 분이 부처님이세요. 나이를 너무 인식하지 말고, 죽음도 너무 인식하지 마세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잖아요. 죽음이라는 건 고향 찾아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객지에요. 죽음을 두려워말아야 합니다.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안타까운 거죠. 언젠가 떠나갈 건데 왜 이렇게 애착이 많고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시는 부처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 독송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을 내면 충분해요. 순간과 영원은 통합니다.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순간을 장악합니다. 스포츠맨들은 젊었을 때 총력을 다 하고 큰돈을 거머쥐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물은 영원이 될 때까지 꾸준히 변해갑니다. 항구적인 정진, 부처님 말씀대로 변화가 법이에요. 세상은 계속 변해갑니다. 우리는 사라져 가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서 얼마나 부처님 뜻에 계합한 삶을 살았는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악행을 멀리하고, 끊임없이 남을 배려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물계에도 천적이라는 게 있지만 살아가면서 나의 천적은 바로 나 자신이에요. 나의 정진하는 길을 방해하는 자, 그자도 나라니까요. 그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린 영원을 가야 되는데, ‘아유, 힘들다. 이만치 했음 됐지’ 그럼 그때부터 낙하산 타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업 따라서 이 별에 왔으니까요. 반수반인이라고 그랬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모두 내려놓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참 이상한 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종교학에 나온 연구자들의 얘길 들어보면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일수록 죽음을 덜 두려워한다는 거 아녜요. 특히 인도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산다는 얘기를 했죠? 네, 인도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요. 그들은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카스트를 바꾼다는 논리잖아요. 한 세상을 초개처럼, 수행자처럼, 거지로서, 농사꾼으로서, 아니면 벼슬아치 크샤트리아로서 마땅히 삽니다. 그들은 심판이란 말을 항상 뇌리에 담고 살면서 부활의 날을 꿈꿉니다. 죽음을 친구처럼 생각하는 면이 많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이기심이 강해서 내려놓을 줄 잘 모릅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정진해야 해요. 조건은 똑같습니다. 누구에게든 빛과 공기와 물의 모두를 베풀어 주시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고, 바라밀다를 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끌어들이려고만 애를 쓰지요.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온 금생의 업장을 소멸하지 못하면 그 업장은 내생으로 이월됩니다. 올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업장소멸 했는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무한이고 영원인 부처님 나라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런 걸 찾아내야 하는 거예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항상 내 것, 네 것을 따집니다. 사람들은 내 것을 다 내려놓으면 내가 굶을 줄 알고, 내가 거지처럼 가난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비록 몸은 아프다 하더라도 마음은 아프지 말아야 하거든요. 내 것이란 집착을 놓아 버리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법을 아는 자들에 의해서 혁신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거잖아요. 과거의 것은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부처님 법 따라 살아야 해탈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혁신의 화신이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어디서 강연을 하는데, 어떤 분이 질문을 해요. “스님은 스님 되기 전하고 스님 되고 난 다음에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하나만 알려주세요.”뭐가 달라졌을 거 같아요? 문득 생각나는 게 제가 처음 머리를 깎을 때 가졌던 마음, ‘이젠 세상의 것에 집착 말고 버려야 되는구나!’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스님이 되고 나니 버려야 할 때 남들보다 좀 더 빨리 버릴 수 있게 됐다.”고 했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법을 알고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실패에 대해서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해본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미국의 벤처 기업이나 큰 회사에서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더 우대한다는 거 아녜요. 근원적으로 우리는 내려놔야 합니다. 우리가 버린다는 거, 버림 앞에선 사람이 원형질이 됩니다. 제가 체험을 해본 경험에 따르면 다 내려놓는다는 마음이 되니까 마음이 비교적 홀가분해지고 맑아지더라고요. 이제 올 해를 보내는 이 시점에 시간이라는 금덩어리는 내려놓아보세요. 한 해를 금같이 값지게 살았나를 돌아보고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법 따라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사히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세요. 호흡이 나갔다 더 이상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가야 하잖아요. 가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에요.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고 없이 옵니다. 우리가 임종하는 시점이 다가오면 ‘너는 어디로 간다’고 하는 표상이 등장합니다. 다음 생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공부하고 연마하면서 사후에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보세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생각하면서 연마하는 게 기도입니다. 삶은 번갯불과도, 꿈결과도 같이 한 순간에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은 너나없이 과학기술을 혁신하자, 산업을 혁신하자, 사회제도를 혁신하자,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사람 혁신입니다. 우선 사람 혁신이 중요해요. 법에 따라서 끊임없이 나를 개선광정해 나가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업가와 사업가의 차이가 뭔 줄 아세요? 기업가는 끊임없는 혁신을 하고 사업가는 모방을 한다는 거예요. 과거의 것을 버리고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기업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혁신, 의식의 혁신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무시무종이잖아요. 죽음은 항상 새로운 태어남을 암시합니다. 한 해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잠을 잡니다. 잠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잖아요. 부처님 직설, ‘잠을 자면서 죽음을 배운다. 꿈을 꾸면서 또 다른 세상을 배운다’우리는 잠을 통해 매일 매일 죽음을 훈련합니다.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작심을 해보세요. 내 주변과 내 이웃에 헌신하고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내야 해요. 남을 위해서 내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는 작은 불씨라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만을 버리고 부처님 뜻에 계합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이치 따라서 내가 좀 잘 살아보겠다. 어떤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과감히 감내하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 우리의 바탕은 본래가 영원입니다.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부처님이 들어오십니다. 부처님을 체험해 보시는 길은 실천해 보는 길 밖에 없어요. 저도 범부중생이잖아요. 그런데 머리 깎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 보니까 많은 체험을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든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면 금생에 몸과 마음을 다해서 노력했던 그 자리 따라서 표상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결코 슬퍼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면 그건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은 다시 일어나게끔 돼 있습니다. 죽음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건 고향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깨어나는 거니까요.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법 따라 살지 않아서 그래요. 법 따라 살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시고 슬퍼하지 마시고,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세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올 한 해 이제 오늘로 마감 짓습니다. 새로 맞이할 2018년에도 일신상에, 가정 내에, 이 나라, 인류에 무량한 부처님의 대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SPAN></P>2018-04-04 오후 2:51:45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자비의 참뜻을 안다 /Media/law/Read.aspx?db_cnt=76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네 가지의 ‘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시작의 순간에 그 의지가 용감하게 분출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는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여러 번에 걸쳐서 있습니다. 첫째로 어둠이 극에 달하고 밝음이 시작되는 동지, 우리는 예로부터 동지를 운기학상의 설날로 잡았습니다. 그날을 기준으로 밝음의 기운이 온 세상에 조금씩 자라난다는 겁니다. 동지가 지나고 나면 이제 새해가 열려요. 양력 설이 있고 또 음력 설이 있지요. 이런 두 번의 설이 지나고 입춘이 되면 한 해 농사를 준비합니다. 부처님은 경전에서‘너희는 누구나 성실한 인생의 농부가 되어라’하셨거든요. 즉 우리는 마음 밭을 가는 농부입니다. ‘심전경작’이라고 그랬죠. 나의 마음 밭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마음 밭도 갈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예전 시골에서는 두레니 향약이니 해서 서로 품앗이를 하며 함께 농사를 지었잖아요. 요즘으로 치면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농사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모두 먹고 살기 위한 일이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정조실록을 보면 입춘에 부모은중경의 다라니를 인쇄해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에게 나눠줬다고 해요. 한 해의 강녕과 풍요를 발원하는 거죠. 절기상의 설은 입춘입니다. 그래서 입춘 전날에는 월천공덕이라고 한 마을에서 한 마을로 흐르는 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점검했다고 합니다. 내를 건너는, 징검다리 놓는 공덕이라는 거죠. 또 활인공덕이라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호하는 공덕을 쌓았습니다. 그다음 염불공덕, 한 해의 어려움과 액난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공덕을 지었어요. 이와 같이 설을 한 해가 시작된다는 이유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모셨던 거예요. 운기학상의 동지, 서양에서 들어온 양력 설, 농사를 시작하는 절기상의 입춘이 있고, 이제 우리가 쓰는 음력 설 등 네 번의 새해를 맞으면서 투철한 의지를 다진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부부의 인연, 부모자식의 인연은 만겁이라고 그래요. 형제간의 인연은 구천겁이고, 부부간의 인연은 팔천겁이니까 혈육을 나눈 인연이 더 돈독하다고 볼 수 있지요 . 부부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의 플랜을 짜가지고 나오는데 금생에 만나게 되는 부모는 이미 만겁 전부터 예약이 돼 있던 존재들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아들이 나올지, 어떤 딸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고 그냥 뱃속에서 나오면 내 아들이구나, 내 딸이구나 하는 겁니다. 그들은 인연 따라서 그 배를 타고 나온 것뿐이에요. 어떤 생명체는 강아지 뱃속에 들어 나오고, 어떤 생명체는 송아지 뱃속에 들어 나오기도 합니다. 고로 우리가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부부를 만나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서로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한 것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이처럼 삶의 설계도는 대부분 짜여 나옵니다.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전생에 만났던 사람들의 100퍼센트라고 보면 됩니다. 결국 내가 맺은 그들과 풀어야 할 과제를 푸는 과정이 인생인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광활한 우주 가운데, 삼천대천세계, 그중에서 은하계 우주의, 태양계의, 지구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부모자식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가히 불가사의하잖아요. 그런데도 부모자식, 형제, 부부간의 인연을 헌신짝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부처님은‘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자비의 참뜻을 안다’고 하셨어요. 전생에 상대방에게 미흡하게 해준 것, 또 내가 그에게 해를 끼친 게 있다면 금생이 매양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 고통스런 과정 가운데서도 전생에 그릇되게 한 일들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훈련을 쌓는 도장이 금생이에요. 우리는 지금 무량한 대천세계의 우주학교에서 끊임없이 연마를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춥다고 말하면 더 춥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스님, 그러면 운명론 아닙니까?”아닙니다. 제가 불교대학 강의할 때마다 항상 말씀드리죠? 올해가 2018년입니다. 그럼 2020년 5월 1일 여러분에게 일어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 스님, 그러면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네, 2020년 5월 1일은 예를 든 겁니다. 그날 내가 전생에 빚을 졌던 사람, 빚쟁이가 나타납니다. ‘돈을 내놔! 하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10억을 갚아야 해요. A라는 가정은 부부가 화목하게 잘 지내서 은행에 잔고가 있어요. B라는 가정은 불화를 겪다 보니 은행 잔고가 부족합니다. 자, 그러면 A라는 가정은 부부가 상의를 합니다. ‘여보, 돈은 또다시 벌면 되잖아. 줘 버리고 말자’그러면 감기나 약간의 몸살 정도로 앓고 지나갑니다. 근데 B라는 가정은 어떻게 되겠어요? 잔고가 부족하니 아파트를 팔아야 해요. 아이들이 학교를 못가고, 자칫하면 이혼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빚을 갚는데도 B라는 가정은 가중처벌을 당하는 겁니다. 그런 거 보면 우리는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말아야 해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무도 모르니까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지런히 공덕을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혜를 닦아야 하고요.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 부단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이 무량한 대천세계, 무량한 별나라는 전부 영혼의 학교, 해탈의 학교입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공덕을 닦아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느 날 나에게 거친 사람이 나타나 강도처럼 돈을 달라거나 험하게 대해오는 사람을 통해‘아, 부처님이 내 업장을 녹여주시기 위한 특사를 보내셨구나’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한을 원한으로써 갚으면 원한은 멈추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걸 규정짓는 존재는 상대방입니다. 나를 천당으로 보내는 사람, 나를 지옥으로 보내는 그 사람이 상대방이에요. 하나가 되지 않고선 일이 안 되게 돼 있어요. 의도적으로 하나를 거부하면 고립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이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걸리고 각양각색의 병발증이 오는 거예요.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데 부처님을 거부한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모나게 대해와도 거기서 부처님의 곡진하신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이에요. 그들에게 ‘아, 이 사람이 전생의 내 업장을 소멸해주는구나’하면 업장이 녹아지면서 나를 천국으로, 극락으로, 성불의 길로 안내하게 될 거예요. 언제 어떤 경우라도 베풀어보세요. 우리가 말하는 육바라밀의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계행이 전부 상대를 놓고 하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에 나온 사람 가운데 완전 자는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고통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물하는 영약이니 참아보세요. 그래야 즐거움이 옵니다. 자꾸만 힘들다고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노정하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참을성을 배양해 주지 못하는 부모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습니다. 힘들다 말하지 마세요. 춥다 하면 더 춥다고 그랬잖아요. 우리는 이 땅에 뭔가가 모자라서 왔어요. 그래서 매 순간 고통이 다가옵니다. 산 넘어 산이잖아요. 그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탁월한 인물인가 아닌가가 결판납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아는 자, 그자에게 내일의 문은 막히나니라’부처님 직설이에요. 아이들 앞에서 냉수도 마시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아이고, 엄마 힘들어.” 하면 금방 배워요. 자기 한계를 노정한다니깐요. 어려워도 꿋꿋이, 견인불발의 의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금년에도 풀어야 할 많은 과제가 다가올 것입니다. 우선 불보살님 전에 염불공덕, 활인공덕, 월천공덕을 지으세요. 그래야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제일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스님, 부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입니다. 네, 삼국유사나 단군설화에 보면 ‘천부인’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때 부(符)는 부적 부 자입니다. 한국사회심리연구소에서 나온 데이터를 보니까 서울 시내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의 지갑에는 거의가 다 부적이 들어 있다고 해요. 또 부모가 주신 부적을 몸에 지닌 중·고등학생이 10명에 7~8명은 된다고 그러잖아요. 여러분 중에도 아마 부적을 지닌 분이 계실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법당에 나오는 보살님 남편이 지방으로 전근을 갔어요. 거기서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집으로 올 때마다 “여보, 난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입춘 날 드린 부적을 남편 주무시는 방에다 붙여놓으세요.”했더니 부적을 그 방에다 붙였대요. 그런데 남편 꿈에 이상한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너, 내가 방에 못 들어가게 부적을 붙여놨구나!’하면서 남편과 싸웠대요. 다음날 주인 할머니에게 꿈 얘기를 하고 내막을 여쭤봤더니 그 방에는 할머니의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지냈던 곳이라는 거예요. 남편이 그들의 가족사진을 보더니 “이 할아버지야!” 그러더래요. 사람 사는 곳곳마다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 영혼 없는 곳이 없다고 하잖아요. 사람들이‘죽으면 그만이지’합니다만 죽으면 그만이 아니에요. 허공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꽉 차 있어요. 이 땅을 등졌지만 갈 곳을 몰라 하는 영혼들이 깨우칠 때까진 이 우주의 법칙 따라 우리 주변을 넘나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에서 할아버지가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된 거사님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참회하지 않는 자에게 내일은 없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언제나 더불어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거예요. 직원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세요.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있다고 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거기서도 얻는 게 있어요. 아랫사람이라고, 아이들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유대인들은 회의문화가 발달해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눕니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나온다니까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동체의식이 깨지고 있어서 문제예요. 내 몸과 마음처럼 하지 않는 겁니다. 정치도 5년마다 바뀌다 보니 적폐 청산이라고 해서 전부 감옥에 잡아넣고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될 공동운명체입니다. 함께 살게 돼 있어요. 남들이 잘될 때 박수를 쳐주고 남들이 힘들어 할 때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게 우리의 운명입니다. 상대방이 우리의 미래를 규정짓습니다. 우리는 상대방과 내가 사랑의 정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우리는 인간으로 왔고, 우리의 미래는 성불입니다. 성불하려면 전륜성왕의 복을 지어야 해요. 왕의 복을 짓지 않고선 성불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왕의 복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세요. 도에서 풍기는 힘이 덕으로 작용합니다. 도에서 나온 힘이 덕이에요. ‘그 사람 참 덕성스러워’할 때 풍기는 분위기, 도를 닦는 마음의 끈을 놓지 마세요. 아이들에게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덕화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해요. 이 우주 자체가 부처님이고 법입니다. 법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고 그랬잖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고 걱정근심이 생기는 이유는 도에서 일탈돼 그렇습니다. 이 우주가 법이고,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고, 내 마음 가운데 법신이 있는데 뭐가 불안합니까? 내가 계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마음이 불안해지는 겁니다. 내 마음 가운데 계신 부처님이 채찍을 날리거든요. ‘너 그렇게밖에 할 수 없냐?’우리 마음 가운데는 위대한 심판자가 계십니다. 계를 우습게 알면 안 돼요. 계를 지키는 마음이 내 마음의 안정을 가져옵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머리를 조아려서 참회하세요. 부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도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잘못했습니다’하는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끝없는 참회가 우리의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우리가 법당에 나오는 이유가 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우선 나의 불안감을 불식시켜줄 수 있는, 마음을 청소시키는 도량이라서 그래요.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할까요? 그게 복 받는 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규칙적으로 몸에다 좋은 습과 업을 쌓아가야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부처님 전에 서겠다’ 하는 다짐도 해보시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성실은 자신에 대한 최대의 모욕입니다. 참회하지 않는 자는 내일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녹아내립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마음을 회복하면 내 마음이 강해지고 맑아집니다. 그래서 부처님 복을 받는 겁니다. 그걸 가피라고 부르잖아요. 우리 주변에 불면증이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주로 내향적이거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래요. 즐거우면 웃지만 웃어도 즐겁다고 그러죠. 우린 본래 하나였기 때문에 공동체 속에 살아야 해요. 한 가정의 가장이 돼서 아내를 웃게 하지 못하면 그 가장은 자격이 없는 겁니다. 찡그린 얼굴 하지 마세요. 내 마음 가운데 앙금이 가득하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웃음으로 날려 버려야 합니다. 영원한 고통은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다 보면 다 스러지게 돼 있어요. 부처님 말씀대로 ‘너희에게 감당하지 못할 고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입니다. 이 우주는 그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그 사람이 감당할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어떠한 아픔과 쓰라림이 온다 하더라도 ‘아, 이거는 내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업장의 흐름이로구나’ 이렇게 판단하고 웃어넘기세요. 내가 저지른 업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악업을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절대로 절망하지 마세요. 고통스럽다 말하지 마세요. 누구나 성불의 길을 가는 존재니까, 주어진 시간 내에 몸과 마음을 다하면 주어진 과제를 풀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우리는 공동의 운명체</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상대에 대한 신뢰, 상대방에 내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천당에 보내고, 상대방이 나를 지옥으로 보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상대방은 나의 공덕의 텃밭이거든요. 부처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세상이 너로 하여금 아름다운 씨앗을 뿌려주기를 바라는 옥토임을 알라’ 그러셨어요. 상대방을 믿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불신하면 자기를 불신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안정감이 깨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만나는 사람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잊지 마세요. 세종대왕은 항상 신하들을 모아서 토론을 했다고 해요. ‘나도 잘 모르니 함께 하자’는 취지로 32년간 1898회의 토론을 벌였답니다. 한 달에 보통 5,6회 정도 한 거예요. 그게 세종대왕의 통치술이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스터린이란 경제학자에 의하면 행복지수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분모로 놓고 자기가 성취하는 것을 분자로 놓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지려면 성취를 많이 하거나 바라는 걸 줄여야 해요. 폴 새뮤얼슨도 그런 얘기를 했죠. 분모가 욕망이고 분자가 소유라고. 어떻게 보면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아요. 소박하질 못한 거죠. 바라는 걸 줄이거나 원하는 걸 줄여보세요.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토마스 알바 에디슨, 그는 유대인입니다. 그가 얘기했어요. ‘99퍼센트의 노력하는 자만이 1퍼센트의 영감을 기대할 수 있다’ 영감(inspiration), 1프로의 영감 안에는 수많은 노력과 연습과 기도가 깔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는 부처님을 왜 써먹지 않느냔 말이에요. 영혼의 어버이이신 부처님을 써먹지 않느냐고요. 부처님과 왜 상의하지 않으세요? 많은 의견을 들을수록 총명해집니다. 지혜로워집니다. 세종대왕이‘내가 잘 모르니까 우리 같이 의논하자’ 한 것처럼 ‘부처님, 저하고 얘기 좀 합시다’이렇게 기도하세요. 유대인들은 그걸 잘합니다. 배달겨레인 우리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면 상대를 대하는 삶의 자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누군가와 어울려 살게 돼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그랬잖아요. 모든 이의 성공은 함께함에 있습니다. 나 혼자서 뭘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믿어주고 함께 해야 해요. 함께하는 게 베풂의 원리이고, 나눔의 원리예요. 가능한 한 나눔의 마음, 베풂의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인간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를 배울 때 진정 행복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또 사람은 불생불멸입니다. 유전자는 끝없이 이어지잖아요. 위로 올라가도 끝이 없고 아래로 내려가도 끝이 없습니다. 우린 영원이에요. 어떤 품성이든지 간에 아들딸들과 저 후대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갑니다. 이 땅을 등지더라도 죽지 않는 존재가 있는 거예요. 하늘이 옹호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하늘의 옹호가 깨지면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 거죠. 함께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될 때 그 사람도 성공하고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참회하는 가운데 여러분 신상에, 가정에, 나라에 부처님의 광명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SPAN></P>2018-04-04 오후 2:44:38부처님이시여,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대는 부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Media/law/Read.aspx?db_cnt=76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지심귀명례, 헌신하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알고 살아갑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생명체들이 씩씩하게 자라는구나! 해요. 또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하고, 겨울이 되면 만물이 휴식을 취하는구나! 그러죠. 당연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부처님은 ‘어느 것 하나 당연하지 않다’ 고 하셨어요. ‘모든 것은 다 특별하다’ 하셨거든요. 들숨과 날숨으로 연이어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광활한 우주 가운데 특별하지 아니한 것은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 고 하면 우리가 공기를 마시고, 사계절이 흘러가는 모든 것에 대한 누릴 만한 권리가 있기도 하지만 하늘이 허락하고 부처님이 허락한 장소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살고 있다는 거예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힘든 기회를 얻어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인신난득이라고 그래요. 동물이나 미물중생을 봐요. 식물들, 국화나 해바라기 패랭이 등등… 꽃잎이 나면 꽃잎을 중심으로 씨가 달립니다. 그리고는 자손을 번창시키려 어디로든 훨훨 날아갑니다. 이는 우주의 명(命)이에요. 식물 나름대로 당연한 것 같지만 그들은 번창을 위해서 특수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가운데 거대한 코끼리를 보세요. 아무리 거대해도 집단으로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살잖아요. 서로 의지하며 새끼들을 키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이에나나 사자들도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사냥을 하려면 흩어졌다가도 모여듭니다. 이합집산을 해요.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특별하다는 증거입니다. 이 땅에 이렇게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특별난 것이고 감사의 대상들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 우리는‘그냥 설렁설렁 사는 것이지’ 하면서 살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네 자신을 돕는지, 얼마나 몸과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는지 하늘이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집니다. 시간은 금이라고 수도 없이 얘기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수명(壽命)이란 지은 바 복업이라고 그랬어요. 수명 복 그러거든요. 손튼 와일더의 유명한 책에 보면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저승사자하고 흥정을 한다고 나옵니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무슨 기회냐?’물어요. ‘딱 하루,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가운데 즐거운 날을 회상하면서 딱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그래요. 그러자 저승사자가 ‘그래, 어렵긴 하지만 한번 그렇게 해 보자’해서 가장 황홀했던 하루를 기억하면서 하루를 보내게 해줍니다. 다음 날 저승사자가 와서 ‘기분이 어땠냐?’ 물으니‘아, 어제의 하루가 내가 매일같이 보내던 그 하루와 동일한 하루였는데’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네, 우리의 하루하루는 금쪽 같이 귀합니다. 탐험가와도 같은 삶이어야 해요. 헌신적인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는 있는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과거에 원인이 있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찬연한 미래를 원하면 지금 열심히 도를 닦아야 돼’ 이런 얘기예요. 하늘을 울리겠다는 의지로 살아가세요. ‘내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헌신하겠습니다’하는 게 지심귀명례입니다. ‘지심귀명례’가 바로 헌신이에요. 우리가 법당에 와서 예경할 때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께 나를 던지겠나이다’ 이런 뜻이지요. 헌신이 부처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눈은 마음의 창</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른 워런버핏 아시죠? 투자의 귀재입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워런버핏에게 기자들이 물었어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까? 돈을 많이 버는 비결을 좀 일러 주십시오’ 그랬더니 그의 말이‘나도 실패한 적이 있었다네. 그런데 나는 주식을 한 번 사면 최소한 15년 내지 20년은 가지고 있었네. 나의 근본적인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을 통과한 사람은 수천 명 가운데 열 명도 안 된다네. 그 중에 소로스라나 피터 린치 등 몇 안 되는 이들은 성공했지’그래요. 투자를 하고 나서 15년 내지 20년은 기본이다, 이겁니다. 가장 최고의 투자는 가능성 있는 주식을 사고 배당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그 회사 주식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시간이 말해 준다, 하늘이 말해준다 하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에게 힘겨운 짐과 함께 가혹한 운명이 던져집니다.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어요. 이 때 짐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니죠. 나비에겐 날개가 제일 무겁답니다. 우리도 무거운 짐을 잘 다룰 줄 알아야 나비가 된다는 겁니다. 공룡도 무거운 다리를 잘 다룰 줄 알아야 날 수가 있어요. 흔히 용이 되려면 끈질겨야 한다고 합니다. 연초가 되니까 작심삼일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만 시간의 법칙’이란 거 아시죠? 하루에 3시간씩 1년을 하게 되면 1000시간, 10000시간이 되는 10년은 해야지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은 그 무엇이든 당연하지 않습니다. 수명 역시 전생에 지은바 공덕 따라서 받고 나온 거고요. 시험문제를 풀더라도 시간이 넘으면 회수되는 거와 같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호흡이 한 번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황금 같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라는 자세를 가져야해요. 사람들은‘아, 인생은 허망해’한다면 잘못 산거죠. 수원왕생정토경에 보면 사바세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열 명 중에 아홉은 다시 악도로 간다고 합니다. 시간을 함부로 보내면 강등되는 건 당연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 얼굴에는 여러 개의 근육이 있습니다. 그 중 두 개의 근육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400가지가 된답니다. 심지어 세 개의 근육만 가지면 1000개의 감정을 표현한대요. 5개를 가지면 14000가지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루 온종일 말로 하는 표현, 말로 하는 소통은 15퍼센트 안팎이랍니다. 85퍼센트는 표정과 몸짓과 행동으로 자기를 드러낸다고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죠, 남들이 여러분 얼굴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갖잖아요. ‘오늘 아버지가 분위기가 저기압이야’ 이러기도 하고요. 네, 진지하게 사는 대로 각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향기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말을 해요. 무설설의 경계,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하는 도리가 있다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저 같은 중생은 임종하는 이들을 무시로 맞닥뜨리고 살잖아요. 매일 죽음을 앞둔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니 그들의 동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나오는 기운은 두려움, 공포, 슬픔이에요. 아, 눈빛은 속일 수가 없더라고요. 재미난 게요, 이 눈빛을 가지고 조사한 게 있습니다. 보살님들에게 여러 가지 그림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 중에서 동공이 제일 크게 확장되는 경우는 아기 사진을 보여줬을 때라고 해요. 반면에 남자들의 동공은 벌거벗은 여자 사진을 보여줬을 때 크게 열리더래요. 눈으로 보고 눈이 말을 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시간은 금</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는 이유는 하늘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다 알고 계시거든요. 우리는 지금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사람 몸 받은 건 아주 특별하거든요. 맹구우목, 거북이가 헤엄치다가 판자를 하나 만났는데,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곳으로 목을 쏙 내밀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게 사람 몸 받는 거라고 하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은 다른 게 아닙니다. 나를 비운다는 게 수행이에요. 결국 남을 배려하는 거죠.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에 보면 사랑이 뭐냐고 물으니‘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거란다’ 그러잖아요. 관심을 갖는다는 건 상대방에게 나의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너희는 정녕 나의 아들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주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도 그 음식이 썩으면 어떻게 되느냐? 너희가 나의 외동아들인 건 맞지만 마음이 썩어 애비를 부정하면 내가 말려도 소용없다. 자업자득이고 자작자수니까 쓰레기 치우듯 치워지는 게 당연하다. 그걸 전쟁이라고 부른다’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불교가 말한 전쟁심리학 같은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생물체에는 알고리즘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AI,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이 알고리즘이란 말을 자주 합니다. 인간은 전기반응을 하는 존재니까 컴퓨터가 우리의 기억을 다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 몸의 모든 생체정보를 저장하게 되고 이를 해석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컴퓨터가 나오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인간 자신을 모른다고 그러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은 부처님입니다. 하늘은 다 알아요. 네, 우리가 알고리즘을 잘 이해하게 되면 내가 뭘 원하는가 하는 욕망을 예상하고 내 몸과 마음의 데이터가 대신 선택해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게 요즘 AI 학자들의 얘깁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게 왜 그래요? 일통삼한, 삼한을 통일하고 중국과 외교도 대단히 잘했다는 증거예요. 공동체정신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고 동력입니다. 근데 요즘 보면 가정도, 나라도 공동체가 해체된 것 같아요. 또 옛날에는 은근과 끈기라고 그랬는데 요즘 젊은이들의 끈기가 많이 부족해졌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과거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했어요. 앞으로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 창조성을 가르쳐야 해요.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전부 하나가 된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거든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살 것인가?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시대를 사는 데 나를 던져야 합니다. 헌신해야 해요.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를 던지고 살아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헌신한 자들입니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곤란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연소득이 약 3만 달러에 이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소득을 가진 나라가 베네룩스3국이라고 그러죠? 그들은 10만 달러나 됩니다. 스위스가 약 7만8천달러 정도 되고 노르웨이가 한 7만 달러, 싱가포르가 한 5만 달러 돼가고, 홍콩이 4만5천 달러, 일본이 약 4만 달러, 독일이 4만 달러래요. 우리는 여전히 3만 달러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도 상황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기와 물 태양의 혜택을 받고 있는 모든 동식물은 당연하게 사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비당연입니다. 전부 전생에 지은 복업 따라 부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겁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헌신하며 사세요. 그런 가운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설령 죽음이 나에게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에요. 우린 영원을 가는 존재니까요. 자신의 가치를 승화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면 됩니다. 선택은 그저 씨를 뿌리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회가 잘되고 기업이 잘되는 것은 작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 자신을 부처님께 바칩니다’라는 지심귀명례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특별하게 여기고 살아가세요. ‘인생을, 시간을 허망하게 살지 않고 금쪽 같이 여기며 살겠습니다’ 다짐하세요. 허공은 부처님 뜻에 따라 전개됩니다. 믿기 어려운 진실이에요. 진리의 은혜라고 그러잖아요. 허공은 시간과 공간 뛰어넘는 영원의 세계입니다. 그 영원 가운데 우리가 전생에 지은 바 공덕 따라서 일정한 시간을 사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헐렁헐렁 하지 마세요. 노는 입에 염불이라도 해야 합니다. 일생을 후회 속에 보낼 것인가, 훈장을 받을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매일 매일 심판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수험생이에요. 법당에 와서 예불 올리고 천수경 독경하고 부처님 말씀 듣는 게 한 편의 장엄한 법석(法席)이라고 하잖아요. 황금과 같은 의지로 진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SPAN></P>2018-03-28 오후 3:56:46광활한 우주는 부처님 나라이고 전체이며 무한이고 무상이다/Media/law/Read.aspx?db_cnt=76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바른 믿음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쓰는 말은 한국말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미국말을 합니다. 우리가 미국사람들하고 통하려면 그 사람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거나 우리가 그 나라 사람들 말을 배워야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세계가 있기는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마음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어요. 그래서 언어를 매개체로 서로의 마음을 알려 하기도 합니다. 마음과 우리는 지금 삼차원의 세계를 살고 있어요. 지구란 별에 살고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행합니다. 부처님은 무한이며 무상이라는 말을 중생들에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곧 불심이라 부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부처님의 나라와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생각이 통한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뭔가 쉽지 않은 그런 경계가 있기는 하나 참된 마음의 화합을 말합니다. 부부가 화목하거나 단란한 가정은 가족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해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 몸에 전달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생각과 몸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한 우리의 지견을 정립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많고 많은 정보들이 입력이 되는 지금의 사회,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 다가오는 백세시대를 살아가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나의 생각이 영원과의 접점이라고 한다면, 생각은 몸에 뭔가 신호를, 부호를 자꾸만 보내야 됩니다. 통신수단. 그 통신수단을 대뇌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확실하게 밝혀놓은 것이 하나 있어요. 호르몬! 생각의 전달부호라는 것입니다. 이 호르몬이라는 게 학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놀라워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호르몬이 몸에서 발견된 것만 해도 삼천 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많고 많은 호르몬을 신경전달물질이라 하는데 이런 신경전달물질이 왜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세포는 하나하나가 아주 작습니다. 세포 하나는 아주 작지만, 그 안에 DNA라고 하는 코드가 있는데 1.8㎛의 아주 작은 세포 하나가 마이크로의 세계입니다. 마이크로의 세계 속에 들어 있는 정보, 그 안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있을까. 현미경으로도 아주 작게 보이는 세포 한 마리에 유전자를 다 풀어놔버리면 엄청난 것이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네안데르탈렌시스, 페키넨시스. 이른바 말하면 북경원인, 자바원인, 고고인류학에 등장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시조들은 백만 년 전의 인류들이지만, DNA에 들어 있는 부호를 따라서 어디로부터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유라시아나 어디든 그 쪽에서 어떻게 해서 어떤 계통을 따라왔다는 것이 나름대로 체크가 됩니다. 매일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합니다. 그 말속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고막이란 시스템을 통해 마음으로 그것이 뭔가 흘러들어서 마음과 마음이 교류된 채널이 바로 음파가 되어 전합니다. 어려서부터 들었던 한국 사람의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는 것처럼 각 나라마다의 민족이 가진 말과 행동이 쉽게 익숙해지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코드가 맞는다고 합니다. 출근할 때‘감색 싱글을 입고 나갈까?’ 남편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아내가 옷장에서 감색 싱글을 들고 나오는 것을 봅니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상황을 코드가 맞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오늘은 뽀글뽀글 끓는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생각하는 그 시간에 아내가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오늘은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장을 봅니다. 부부간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는 각자의 세계가 있는데, 서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없이 서로를 느끼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마음의 소리가 나는 음파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파도 그릇입니다. 우리의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에요. 우리가 몸과 마음을 잘 운용하려고 하려면 투철한 정신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정신희유란 바른 믿음은 바른 마음이 나온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른 믿음은 바른 공부에서 나오게 됩니다. 불자들은 불도를 닦고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바른 정견을 가지고 바르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가끔 주변에서 미신을 믿으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바르게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 미신을 믿고 광신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육바라밀이 바로 보살행입니다. 보살들은 잘 지켜야 합니다. 중요한 공부가 육바라밀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나를 어디로 운반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도구가 육바라밀이라고 생각하며 잘 정비를 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닦는 도구를 잘 정비해 놓아야 하며 그리고 그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부정적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반야심경에서 나옵니다. 공은 허공입니다. 허공이 물질로 변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부처님 나라는 무구청정인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허공 가운데 있는 공기도 청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숨을 쉬면서 들이마시는 공기, 사람의 몸과 마음도 무구하고 청정해야 합니다. 수행하며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몸과 마음의 청정함을 잘 지키려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도 단식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이 단식을 한 사람입니다. 일주일씩 단식하고, 때때로 단식하고, 절식하고, 감식하고.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사람의 몸은 얼마든지 가동이 됩니다. 식사조절이야말로 질병치료에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질병치료는 약이 아니라 생활습관 교정이며 마음자세 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누구나 수행을 할 때에는 호흡을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허공 가운데 모든 기운이 있어서 날씨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스스로의 자세를 잘 다듬으며 운동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음식과 더불어서 공기의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지금의 환경에서 좋은 공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매일 매일의 날씨와 기후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게 됩니다. 생활습관과 더불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땀을 흘리며 하는 운동은 보약입니다. 주위 환경과 몸과 마음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며, 가다듬어서 스스로 환경의 변화를 잘 이겨내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잘 새겨 보면,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조절하며 잘 다스려야 하는지, 부정적인 마음을 항복받아야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과다하게 뭔가 과욕을 부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옵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있는지 그 마음을 가지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를 걱정하면서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장자가 병이 나서 고쳐 달라고 할 때 부처님께서 기도를 하라고 이르셨는데 기도로 병을 고쳤습니다. 다시 장자는 경거망동하며 까불까불한 행동으로 또 병이 났습니다. 병이 나으면 건강한 몸으로 주변에 있는 하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행을 하며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게 생활하라고 그랬는데, 그 동안에 장자가 살아온 날들을 들어 보니까 부처님이 얘기한 대로 별로 실천을 못한 것 같다며 부처님께서 ‘너는 병이 나을 필요가 없다. 병을 낫게 하면 가서 딴 짓만 하는데 차라리 병을 친구삼아 살아’라고 하였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사람들의 삶을 보면 돈을 좀 벌어서 먹고 살만하면 꼭 병이 걸립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이 지나치게 되면 화를 불러들이기 마련입니다. ‘만유하심 자는 지복이 자귀니라’ 마음을 낮추고 하심하고 사는 그 자리가 가장 복된 자리라고 부처님은 중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생각은 영원과 통하는 채널이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을 살아가면서 병이 들어오면, 나를 지도하는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마음과 몸에게 무엇이 중요한 건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순환이 잘 되고 있는지? 순환이 필요합니다. 나가면 들어오고 들어오면 나가야 하는 순환을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은 영원과 통하는 채널이고 내 마음을 담는 곳이 부처님 나라이며 곧 불심을 말합니다. 마음에서 일으킨 이것이 몸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 전령사가 곧 호르몬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호르몬들이 계속해서 다종다양한 생각에 따라서 그때마다 전달이 됩니다. 웃어야 좋은 호르몬이 생성되어 내게로 오니까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고집멸도란 말은 부처님께서 제일 처음에 설하신 법문이에요. 고통스럽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은 과거에 지은 대로 받는 거니까 화내지 말고 잘 이겨내어야 합니다. 전부 다 전생 따라 받은 거예요. 우리가 태어날 때 전생을 기반으로 해서 엄마 아버지 만난 거고, 업 덩어리 만나고, 주어진 시간도 전생의 복업 따라 살게 됩니다. 모두가 전생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이라, 엄마 아버지 뱃속에 있을 때 이 땅에 살면서 관리를 잘하면 조금 더 가겠죠. 고집멸도 사성제가 의방입니다, 치료책이에요, 법약입니다. 사성제를 무시하면 고통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법문이며 현재의 삶이 나중에 나타나는 결과가 되겠지요. 과거에 지은 대로 과거에 뭉쳐진 대로 받는 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찬연한 미래를 원하는지, 내생에 아름다운 미래를 원하는지는 내생의 결과로 나타나고 현생이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게 팔정도예요.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모나게 대해올 때는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나를 아무리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다 하더라도 도리가 없는 겁니다. 겸손하게 받으며 지혜로움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업장소멸이 됩니다. 부처님도 철천지원수인 데바닷따를 처남으로 만났습니다. 부처님을 끊임없이 살해하려고 쫓아다니고 부처님 승단을 찬탈하려고 합니다. 예수님도 유다한테 팔려갔다는 것을 보면, 현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을 피하지 못하고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경전에 보면 만나는 사람은 다 인연 따라 만나는 겁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소중히 여겨서 내생에 잘못된 업을 만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살아가는 것에 중요한 일은 먼저 깨닫는 것입니다. 삶 속에는 타인에게 베푸는 것이 큰 공덕임을 알고, 그런 행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실행해야 합니다. 사회복지관에 나가서 일주일에 세 번씩 봉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일주일에 두 번씩 봉사하는 사람을 조사해보니 봉사하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7년 내지 10년 더 길어지더랍니다. 다니면서 움직이는 것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순환이 되니까, 혈액순환 되어 건강한 몸도 정신도 다 가질 수 있습니다. 헌신하며 희생하는 삶이 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기도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봉사며 헌신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거나 많은 음식에 대한 탐욕 등을 버리게 하는 것을 배우기도 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설법이 귀에 들어오게 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익히어 정신 건강도 지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운동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니 취미삼아서라도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식습관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감식하고, 절식하고, 어떤 땐 단식도 좀 하여야 합니다. 자연환경도 중요합니다. 스스로 공기순환을 하면서 환경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담는 건강한 그릇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 생각이고 호르몬입니다. DNA RNA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 수십만 년전 서부터 흘러 내려와서, 우주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공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빌려 쓰는 바이러스종입니다. 자연과 음식도 모든 것을 다 우리가 잘 빌려 쓰다 가는 거예요. 이 육신도 여기서 살면서 사는 동안 잘 빌려 쓰는 것들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보면 관을 입관하고 할 때 그 아래에 칠성판을 깝니다. 나무판자때기 일곱 개를 쫙 깔아요. 왜 칠성판을 바닥에 까느냐면 사람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을 뜻하여 칠성판을 빌려서 잘 쓰다가 이제 도로 물려드린다는 의미로 칠성판을 깔아 놓는 답니다. 내무일물래요 거역공수거라. 올 때도 알몸으로 왔고 갈 때도 알몸으로 갑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뭔가를 잃어버리고 스러져 사라졌다고 하면 누가 무슨 내 돈을 가지고 갔다. 내 재물을 가지고 갔다. 잃었다고 탄식하지 말고 원래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살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정도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을 보면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며, 백년이란 오랜 세월에 모은 재물을 하루아침의 티끌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물욕을 탐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 닦음이 중생이 해탈할 수 있는 길입니다. 감당할 수 있을만한 그런 고통만 드리게 돼 있는 세계예요. 모든 것의 순환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호르몬은 우리의 생각을 담아서 몸에 전달하는 전령사 역할을 하니까 마음을 잘 쓰고 생각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마음수련과 생각의 연단을 잘 꾸려나가려면 항상 기도하고 부처님 말씀을 약으로 생각하고 잘 새겨야 합니다.</SPAN></P>2018-03-21 오후 4:13:25그 누구도 나와 하나라는 마음이 보살 정신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라/Media/law/Read.aspx?db_cnt=76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해탈한 자는 다만 도울 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대자연의 근본 원리로 보면 ‘아, 부처님이란 어떤 분이신가?’를 재삼재사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학자들은 우주의 궁극을 형성하는 물질이 무엇인가를 계속 연구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전자를 깨뜨리면 광자가 나옵니다. 요즘은 이 광자가 가진 특성을 많은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고 해요. 특히 양자 얽힘이라고 해서 양자 통신이니 양자컴퓨터니 하잖아요. 양자컴퓨터는 전자를 터트려 나오는 광자를 여러 가지의 형태로 연구합니다. 광자는 빛의 속도, 빛과 같은 거잖아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바구니에 공을 집어넣었다가 바구니 밑을 툭 치면 공이 뿔뿔이 흩어지는데, 날아가는 광자 하나를 멈추게 했다고 해서 다른 광자들이 동시에 멈춰 버린다면 이해가 됩니까? 빠르게 날아가던 광자가 상호간에 무슨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겠냐는 말입니다. 참 무상심심미묘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지금 이렇게 법당에 앉아있지만 우리의 분신이 우주 도처에 가득합니다. 즉 한 몸에서 튀어나온 광자들은 상호간에 한 몸, 하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국소성(non-locallity),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로 연결돼있다고 말하잖아요. 하나의 광자가 정보를 담아서 띄워 올리면 언제 어느 곳에 있는 또 다른 광자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 입자의 상태를 바꾸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동시에 바뀐다는 논리입니다. 이른바 양자 얽힘이라고 하는데요, 광자에 정보를 담아서 띄우면 다른 광자에게도 그게 어디에 있든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부가 같이 삽니다. 아니면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 해도 좋아요. 그럼 내가 상품을 만든다고 할 때 누구를 상정하고 만듭니까?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요. 그런데 그 상품이 대중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면 폐기처분해야 해요. 상대방이 나를 규정짓는 원리와 같습니다. 내가 잘되고 못 되고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규정짓는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도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그러셨어요. 우리의 주변 법계에 있는 무량한 불법승, 삼보님 전에 공양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이거죠. 아내와 남편에게 주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예요. 내가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갈무리하고 수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남들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해탈한 자는 다만 돕는 존재입니다. 해탈한 자는 나가 없는 존재라고 그랬잖아요. 해탈한 자는 문자 그대로 돕는다는 마음, 그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 무슨 대가가 있습니까? 수행한다는 것 자체로 즐겁잖아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해탈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여러분에게는 각자의 아들딸이 있습니다. 귀한 아들딸이 어디 멀리 가 있다면 그들이 아무리 먼 곳에 있다 하더라도 부모 눈에는 항상 밟힙니다. 근데 아들딸들은 부모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한테‘너도 이다음에 커서 애 낳아 봐라’이러죠. 부처님 마음에는 그런 경계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오로지 무량중생이 부처님의 외동아들 같으니까, 부모의 마음보다 더 깊이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해탈한 자, 수행자는 수행을 해서 내가 잘 된다 만다, 그런 게 없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 마약 중독된 사람들이 치료소에 들어가 알코올 끊었어요. 도박을 끊었어요. 마약을 끊었어요. 그럼 치료소를 나올 때 그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아, 도박은 좋은 게 아냐, 손을 털어야지’ ‘마약은 정말 좋은 게 없다. 마약에서 손을 털어야지’하는 해탈자의 마음이 됩니다. 다 놔버린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상대방이 나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사랑의 마음, 자비심을 거양하는가에 따라 내 가치가 규정지어집니다. 나를 규정짓는 이들이 남편이고, 아내고, 주변 법계의 모든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가 만든 상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지금도 나의 마음을 담은 광자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 한 입자의 상태를 바꾸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입자의 상태를 동시에 바꿀 수 있습니다. 너무 이상하죠? 여러분이 이렇게 법당에 나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예불을 올리고 찬불가도 하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이 순간만큼은 우주에 기여하는 거거든요.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서 정말 비트코인 이상의 것이 나온다니까요. 소중한 시간인 거예요. 법당에 있는 시간뿐 아니라 내가 언제 어느 곳, 어느 상황에 임하더라도 모두 성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성스러운 생각과 행동과 말을 하게 되면 그 자리가 성당이고 법당이고 교당이고 그래요. 그럼 그 사람은 그 현장에서 나온 광자의 입자가 바뀝니다. 그럼 주변에 있는 다른 입자의 상태도 따라서 바뀌어요. 내가 계를 잘 지키면 계의 향이 풍겨나가서 상대방의 입자를 바꾼다, 이게 유명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도하는 마음, 참선하는 마음, 법문을 듣는 마음에 따라 우리의 상품성은 강화될 수 있습니다. 결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요. 기도하는 마음, 순일 무잡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면 내 몸과 마음에서 튀어나온 입자들이 허공에 있는 모든 입자의 상태를 동시에 바꿔 버리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이 우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연기법이라는 거 아시죠? 다 연결돼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러셨어요. ‘나는 연기(緣起)를 보았다’이 우주가 하나로 연관돼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지금도 광자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모든 종교의 창립자들은 하나같이 기도하고 수행한 사람들 아닙니까. 예수님도 광야에 가서 40일간 단식했잖아요. 부처님도 6년 고행했다고 그러고, 마호메트도 히라의 동굴에 가서 매일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바탕도 모두 부처님입니다. 계를 잘 지키면서 사세요. 나의 몸에서 나온 아름다운 입자가 향기가 되어, 구름이 되어 나의 주변을 맑게 하고 나의 주변법계의 무량한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이 공양하게 됩니다. 실천공양이 되는 거예요. 그냥 나는 내 멋에 산다, 이런 거 아니에요. 남편이 아내를 규정짓고, 아내가 남편을 규정지어요, 부모가 자식을 규정짓고, 가족이 대한민국을 규정짓습니다. 배달겨레의 마음이 배달겨레의 운명을 가름하는 거고, 지구의 주민들이 지구의 운명을 가름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가만히 보세요. 허공 가운데 수소가 있어요, 그다음 산소가 있어요. 수소와 산소에는 물의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요. 근데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물이 됩니다. 만남이 창조라니까요. 좋은 만남이면 좋은 에너지가 나오고 나쁜 만남이면 나쁜 에너지가 나옵니다. “기도하면 뭐가 나옵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고, 해보세요. 해보면 알아요. 부처님이 항상 ‘현명한 사람들, 선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하셨습니다. 우린 지금 대한민국, 지구별이라고 하는 하나의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연대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대한민국에 무슨 문제가 나면 공동책임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내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광자, 양자가 이 우주와 서로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만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해탈한 사람처럼 살아야 해요. 삶의 궁극은 해탈입니다. 구각을 탈피해 새롭게,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주변사람들의 선물이 되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해탈, 열반이란 말의 의미를 우리가 뭔가 끌어들이려 할 때 그 끌어당긴 밧줄이 툭 끊어진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는 항상 밧줄을 달고 모든 걸 끌어들이려고만 하잖아요. 전부 끌어들이려 애를 쓰면서 노심초사합니다. 그게 툭 끊어져 버린 그 자리가 열반, 해탈자리라면 틀림없어요.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옮기다가 그 짐을 다 내려놓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탁 놔 버리면 얼마나 홀가분해질까요. 우린 뭘 보면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해탈, 열반에 이른 자들은 그 짐을 놔 버렸기 때문에 즐거운 거예요. 그들은 이 우주가 유희임을 압니다. 내 것이란 마음이 없어요. “스님,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합니까?”그렇게 묻지 말고 한번 몸과 마음을 던져보세요. 부처님처럼 6년 고행은 놔두더라도 백일기도라도 한번 해보세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 본 자만이 그 의미를 압니다. 시간 날 때마다 내려놓는 작업을 하면 잠도 평안히 잘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왜 전 세계적으로 참선이나 명상이나 두뇌나 신경과학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지 아세요? 참선이나 명상을 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보니까 그들의 신체상황이 크게 변화하는 걸 발견했어요. 이른바 참선이나 명상한 자들의 자의식이 사라지고, 영적인 경외감, 우주와의 일체감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내 몸과 마음에서 광자가 나오면 이게 상대방의 몸과 마음, 우주에 있는 어느 입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바탕에도 부처님이 계시니까 그래요.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내가 이익 되려면 남을 이롭게 하라는 게 원칙입니다. 자리이타, 자타일시성불도거든요. 우리는 매일같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도 그걸 자꾸만 잊어버리는데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세요. 아내와 남편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어보세요. 미국의 유명한 CEO들은 특유의 친화력이 있어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회사의 실적을 올려주는 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입장에서 내가 하는 일을 한번 살펴보라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근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우리 법당도 마찬가지지만 최저임금제다 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진보세력의 도움을 받은 새로운 정부가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뭔가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을 쏟아내야 하잖아요. 표가 중요하니까요. 그러면 이제 보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기업이 어렵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더불어서 잘 살자, 이러면 이 정책이 성공할 텐데 외국으로 기업을 옮긴다 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쉽지 않을 거예요. 기업은 이윤을 창출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돈만 벌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또 권력을 드날리려고 온 데도 아니에요. 물론 먹고 사는 건 중요하지만 쌓아올리다 죽어요. 많은 사람에게 내 자체로 선물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어때요? 좋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합니다. 내가 이웃에게 얼마나 잘 했는가, 내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이 나의 본성을 만든다는 거예요. 만나는 모든 이에게 내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존재 자체로 최대한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갈고 닦으면 내 존재자체로서 상대방의 선물이 됩니다.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죠. 또 내 몸과 마음이 업그레이드됩니다. 그런 사람은 남들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로 살게 됩니다. 보살행이 바로 그와 같은 행을 말하는 거예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유정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주잖아요. 그냥 돕기만 하는 거예요. 나란 존재 자체가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되어야겠다는 걸 올해의 화두로 궁구해 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그들의 슬픔을 녹여 내릴 수 있는 마음을 끊임없이 펼치는 존재가 되어보세요. 그런 자가 깨달음의 대열에 올라선 사람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역지사지(易地思之)</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모두 연대관계에 서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나온 입자가 다른 입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하나란 말이에요. 나와 남이 갈라져 있지 않아요. 자리이타의 마음으로 살아야 우주의 만상이 부처님 힘으로 굴러갑니다. 만중생의 선물이 되고, 기쁨이 되는 존재를 부처님이 가만 두실 이유가 있냔 말이에요. 한 입자의 상태를 바꾸면 다른 입자의 상태가 동시에 바뀐다, 잊지 마세요. 양자 얽힘, 시간과 공간을 떠날 수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서 계속 입자가 나오면서 우주를 바꿔 갈 수 있다니까요. 한 입자와 다른 입자가 연결돼 있는 판인데, 중생이 연결돼 있는 판인데,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음은 단절이니까 고립되기 쉽습니다. 우리 몸에 자살세포라는 것도 있잖아요. 자멸합니다. 자살세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고립심상을 가진 사람은 몸의 자살세포가 계속 증가한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거예요. 모두가 하나인데 하나를 부정해 버리니까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하는 일을 살펴보세요. 역지사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어떠한 마음을 쓰고 사는가가 곧 나의 점수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으로 성적을 매깁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우리도 몸과 마음을 던져 나가 없어져야 된다는 마음의 무아가 돼야 해요. 무아란 황홀경이거든요. 무아가 열반이고 해탈입니다. 내가 나를 다 비워 나 자체가 선물이 되면 내가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아기가 울어요. 그럼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달래줍니다. 이 때 엄마와 아이의 심장 박동 수가 일체화된답니다. 박동이 일체화되면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몸 안에서 엔돌핀이 쏟아져 나온다는 거예요. 반대로 아이한테 “그거 하지 마!”하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로 말하면 코르티솔 같은 부정적인 물질이 쏟아져 나오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스트레스가 강해진대요. 우린 말 이전의 말, 85프로가 몸짓과 얼굴과 표정(Body Language)이 앞서간다는 걸압니다. 말 한 마디 이전에 표정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가 돈 안 드는 ‘보시’라고 보면 됩니다. 내가 만일 사장이라면 직원들 한번 이렇게 안아주고 “아유, 요즘에 잘 지내지?” 그러면 직원들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겠어요. “김 군! 그러면 안 돼!” 이러면 당장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간단하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정말 제가 간곡히 당부 드리겠는데, 기도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 그 자체가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내가 수행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 몸과 마음 가운데에 풍기는 어떤 입자의 상태가 상대방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 그게 진정한 수행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거예요. 그냥 참선하는 거예요. 그가 뭘 해줄 것이다, 이런 생각하지 마세요. 해탈한 자들은 그냥 돕습니다. 나의 마음이 타인의 마음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나와 하나다, 이런 마음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세요. 우리가 같이 공을 던지며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면 어때요? 즐겁잖아요. 하나가 되니까 그래요. 위대한 성공의 길은 수많은 좌절과 실패, 고통을 겪으면서 가는 곳에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끈기를 갖고 꾸준히 가면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전 세계가 요즘 초연결성을 얘기합니다. 전 세계로 통하기만 하면 수백 조를 벌어드릴 수가 있어요. 데이터 시대라 해서 빅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반을 마련하잖아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의 입자를 바꾸면 다른 입자의 상태가 동시에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수행을 하면 어떤 형태건 간에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내가 상대방을 도우면 이 세상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해탈, 열반에 이른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깨달음의 사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육조단경에서 ‘내가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깨달음의 사람이 시킨 대로 하면 깨달은 사람과 진배가 있겠냐’이러셨거든요. 항상 한 입자의 상태를 바꾸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동시에 바뀐다는 비국지성(non-locallity)을 생각하세요.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가다보면 우주와 통하게 돼있습니다. 올 한 해 나의 본성 이 세상에 얼마나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기쁨을 줄 수 있는가, 얼마나 슬픔을 거둬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마음이 그 사람의 가치고 그 사람의 본성입니다. 해탈한 자들도 과거엔 우리와 똑같은 범부였습니다. 우린 전부 한 배를 탄 연대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우주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3-21 오후 3:40:36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곳엔 절대로 혁신이 없다.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가운데 혁신이 있다/Media/law/Read.aspx?db_cnt=76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미생물들의 반란</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술년 한 해가 밝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세월의 흐름을 더 빠르게 느낍니다. 넋 놓고 지내다 보면 어느 샌가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요. 새해에도 여러분 일신상에, 가정 내, 국가와 인류 모두에게 불보살님, 신장님의 무량한 가피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항상‘게으르지 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는 부처님 말씀을 밥 먹듯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이유는 아는 만큼 밝아지고, 공부한 것만큼 두렵지 않기 때문이에요. 캄캄한 밤에 물을 건너보세요. 눈에 물이 보이지 않으니 무섭죠, 두렵습니다. 근데 밝은 낮에 물을 건너면 어때요? 물이 눈에 잘 보이니까 무섭지 않습니다. 두렵지도 않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당장 가족이 있고 회사를 다니면 직원이나 주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 정진하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보지 않지요. 그럼 누굴 함부로 봅니까? 함부로 사는 사람을 함부로 봐요. 공부하는 사람은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르잖아요. ‘아우라’귀한 분위기가 있어서 쉽게 범접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학에서는 카리스마라고 불러요. 율곡 이이가 그랬잖아요. ‘내 어머니 사임당은 잣대와 같은 인간이었다’자신의 어머니이지만 범접할 수가 없는 어떤 위대한 경지가 있었던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세상살이가 여러 가지로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신문지상에는 경제가 어떠니 인구절벽이 어떠니 요란합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챙기고 공부하는 가운데 두려움을 녹여내야 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해요. 공부란 결국 정의로 향해 나가는 문입니다. 끊임없는 정진은 나로 하여금 정의의 문을 향해 나아가게 만듭니다. 진정한 공부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나를 제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제도한 힘으로 세상을 밝게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헛되게 산 사람이 아니에요. 쇠를 백 번 천 번 두드려야 화로에서 끄집어낼 수 있고, 매화도 모진 추위를 겪은 다음에라야 맑은 향기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사람도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절개와 지조가 드러난다, 그랬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제 올해도 가다 보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을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독사도 있고, 맹수도 있는데 그들이 자신을 문다는 거죠. 마음이 분기탱천하면 내가 나를 태워 버리는 수가 있거든요. 아인슈타인이‘인생은 두 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바퀴를 계속 돌리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넘어집니다. 계속 가야 하는 거예요.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생은 상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도, 상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도 않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건 내가 이겨내야 하는 업장이다’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이 땅에 업장을 소멸하러 왔습니다. 업장을 소멸하는 것만큼 지혜가 드러나게 돼있습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고통은 내가 이겨내야 할 업장이라고만 생각하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은 미생물로부터 진화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학자들은 미생물 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우리 몸의 미생물이 세포 숫자의 열 배라고 합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숫자죠. 문제는 이 미생물들의 주인인 우리가 나태해 함부로 살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미생물들이 배신을 해요. 우리 몸의 세포들과 미생물들은 동맹을 맺고 있는데, 우리가 건전하게 지내지 않으면‘너 정말 그럴래?’하면서 적으로 둔갑해 버려요. 우리가 항상 한 얘기가 있잖아요. 가장 가깝던 사람,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배신을 한다고. 항상 자신을 경계하고, 채찍질하고, 수행하는 자세, 공부하는 자세가 아니면 옆 사람이 우습게봅니다. 부모가 아무렇게나 살면 아들딸들이 아무렇게나 돼버리는 얘기와 똑같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공부한 사람은 유혹에 지지 않고 걱정근심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전거처럼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견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세요. 그렇지 않고선 자기 자신도 보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또 주변 사람들 보전하기도 어려워지고요. 조선시대의 4대 사화를 보세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이들 사화는 모두 중상묘략, 음모가 화근이 됐거든요. 조광조 같은 인물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나뭇잎에다 꿀을 묻혀 놓고, 벌들이 그걸 파먹게 만듭니다. 그러고 상대를 잡는 거 아녜요. 세상엔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룹 아바가 부른‘Winner takes it all’이란 노래 아시죠? 승자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고 그랬던가요? 하여간에 뭔가 잘못되면 삼족이 멸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하고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보세요, 아무리 높은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도 저렇게 잡아들이잖아요. 우주는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는 둘째 치고 그냥 계속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가 왜 이 땅에 왔는가? 내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의무는 무엇인가? 에 대한 자각이 투철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아, 내가 이러면 되나? 내가 너무 노는 게 아냐?’하며 무슨 일을 하다가도 좀 쉬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존재가 있다니까요. 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어요. 우리는 이 땅에 시간과 공간이란 선물을 받고 업장 따라 왔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공간 안에서 업장을 소멸하고 지혜와 공덕을 닦아야 해요. 내가 얼마나 지혜를, 공덕을 닦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삶은 매일 매일이 시험 치는 거와 같습니다. 내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를 체크해야 해요.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넌 안 되겠다’하면서 채찍을 날리는 존재가 마음 안에서 경종을 울립니다. 그 부르짖음을 무시하지 마세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내면세계에의 양심, 불성을 얘기 하지만 또한 그 양심이나 불성은 하늘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늘은 공부하는 자를 돕는다니까요. 공부를 하는 사람은 깨달음이 깊어져 ‘함부로 살아선 안 되겠구나’하는 사랑의 마음, 자비심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부처님 말씀을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못 말리는 사람이 있어요. 범죄인데도 말이죠. 안타까워요. 자비심과 사랑은 나의 업을 개선시킵니다. 나의 업을 선업의 길로, 선업의 나라로 안내해요. 부처님 법문을 따라 살다 보면 법이 나를 옹호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修行), 나를 갈고 닦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습니다. 수행은 나를 보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이 우주는 참으로 무상심심미묘해서 갈고 닦지 않은 자들은 가다 꺾여요. 내가 나 자신을 끊임없이 옹호하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옹호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거든요. 부처님 경지가 그래요. 내가 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 나도 옹호하고 남도 옹호하게 됩니다.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갈고 닦아 자애를 펼치면 펼칠수록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사장님이 열심히 정진하며 사랑으로 주변 사람을 보살피는데, 그의 덕화를 입는 직원들이 어떻게 함부로 하겠어요? 사장이, 대통령이, 재벌들이 하는 행동이 뭔가 잘못돼있으니까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끊임없이 수행하고 배우려는 자는 절망의 터널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이 자꾸 힘들어지고, 막히는 것은 업장 탓입니다. 그러나 옛날 어르신의 말씀이 있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하신 말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고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 우리는 각자 이 땅에 나올 때 이미 짜가지고 나온 삶의 설계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전생을 살았으니까‘넌 금생에 나가서 요만큼 공부하는 거야!’ 딱 이렇게요. 그러니까 계속 공부하고 해결해나가야 해요. 공부를 한 사람은 유혹에 지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 근심을 크게 하지 않습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아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우연을 가장한 필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고통 가운데도 뭔가 배우려는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 새로운 삶으로 나가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런데 고통 가운데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죽거나 쓰러집니다. 가혹한 현실이지요. ‘나는 안 돼. 너무 힘들어’ 하니까 자살을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청년자살자가 그렇게 많다고 해요. 독일의 정치학자 마르크스는‘생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일해야 된다’고 했어요. 또 노동에는 계급이 있는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이 발전해야 한다고 했고요. 이에 맞서 막스 베버는 ‘노동은 신성하다, 신의 소명이다’라고 했지요. 관점에 따라 그렇게 다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전부 갖다 붙이기 나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도 해요. 그런데 일은 신이 주신 소명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의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각자가 하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처님의 소명으로 볼 것인가가 관건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상은 업의 법칙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전부 철통같이 짜여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법당에 나와서 부처님 말씀을 같이 나누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1년을, 일생을 가는 거예요. 우리가 서로 남남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겁니다. 윈스턴 처칠이 어렸을 때 템스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발에 쥐가 나서 익사 직전입니다. 그 때 갑자기 어떤 청년이 뛰어들어 처칠을 구해줍니다. 알고 보니 처칠을 구해준 청년은 집안이 가난했어요. 처칠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살려준 공덕으로 그 청년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줍니다. 그는 마침내 의과대학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처칠은 군인이 되어 아프리카로 출정합니다. 그곳에서 처칠은 폐렴에 걸립니다. 다 죽게 생겼어요. 처칠을 구해준 공덕으로 의대 공부를 했던 이 청년의 이름은 엘리그젠더 플레밍입니다. 플레밍이 누구예요? 페니실린 발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때 마침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명했는데 그는 임상 실험도 안 된 약을 들고 처칠이 있는 아프리카로 날아갑니다. 참 희한한 인연이죠.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처칠은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 덕분에 완치됩니다. 진정한 선순환이죠. 어떻게 보면 우연 같은데 그게 다 짜여 있는 거예요. 이게 과연 처칠하고 플레밍하고 사이 뿐이겠냐는 건데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은 이야기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다해 남들을 제도하면 선순환구조로 나에게 올 수 있는 가능성이 백천만 퍼센트라니깐요. 내가 남을 구하면 그 사람은 그냥 흘려보지 않습니다. 나와 남이 둘로 갈라져 있다는 사고방식이니까 세상이 악순환 하는 겁니다.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끼는 선한 마음으로 사세요. 선순환구조도 인과응보입니다. 천상세계나 극락세계엔 나와 남이 하나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에요. 남이 나에게 뭘 해주는가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남을 위해 뭘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순환구조가 형성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악순환의 흐름 속에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깨달음의 길을 걷는 자,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는 자는 세상이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터럭만큼이라도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을 선순환구조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세요. 요즘 우리나라는 소득 주도 성장이란 말을 합니다. 성장은 성장인데 소득 불평등이 심각해 성장률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득 불평등이 해소돼야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 학자들이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소득이 많은 만큼 선순환이 잘되면 좋지 않겠느냐, 주장하는데 그게 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수행의 목적은 생사해탈에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을 공부한 사람은 훌륭한 정원사와도 같습니다. 훌륭한 정원사는 어때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날씨와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뿌린 씨앗을 잘 보살피고, 비료도 주고, 토양을 관리해요. 세상은 연기(緣起)의 광장이잖아요. 하다못해 자기 집에 있는 화초라도 잘 가꾸려고 노력해보세요. 세상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깨달음의 길을 가는 자는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냥 듣고만 말아버리면 아무 소용없어요. 어떤 이가 그래요. “아휴, 출세해도 별 볼 일 없네요.” 할 말이 별로 없죠. 보왕삼매론에 보면 ‘막힌 데서 터진다’고 그러잖아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병이 없으면 교만해진다는 거 아니에요.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 사치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공부하는 데 마장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장이 없으면 배움에 소홀해진다. 수행하는 데 장애가 없길 바라지 마라. 그럼 서원이 굳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일을 꾀하는 데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쉽게 되면 경솔해진다는 거죠.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길 바라지 마라. 내가 이롭길 바라면 의를 상하게 된다. 남이 내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해주면 교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덕을 베풀면서 과보를 바라지 마라. 과보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뒤끝이 있기 마련이에요.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면 자기를 장애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지내야 합니다. 부부간에, 직원들 간에, 주변의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눠보세요. 그래야 통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이 생겨납니다. 통하는 곳에 부처님의 힘이 흘러드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불면증을 연구한 학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깨어 있는 의식과 수면의식 사이의 층, 그 턱을 잘 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층을 쉽게 넘어 가야 하는데 잘 넘어가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잠이 안 온대요. 우리가 욕계선정, 색계선정, 무색계선정 해서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그러죠? 그다음에 초선 이선 삼선 사선, 그다음에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의 층이 있잖아요. 이 삼계육도의 층을 깨뜨리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거예요. 제가 당부 드리겠는데 우리가 듣는 것만으로 ‘아, 그런가’ 하지 마시고 고요히 마음을 텅 비우고 앉아 있어보세요. 우리는 언젠가 이 몸을 탈출하게 돼 있거든요. 다 놔두고 가야해요. 그러려면 허공과 통해야 합니다. 그런 작업이 참선명상인 거예요. 쉽게 말해 멍 때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등질 때의 그 순간에는 혼비백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는 동안 맺은 남편을, 아내를, 재산을, 모든 걸 다 놔두고 가야하니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죽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죽어지지 않아요. 몇날며칠의 그 고통이란 말도 못합니다. 죽음에 저항하다가 안 되면 양보하고 타협도 합니다. 죽음과 흥정을 하고 난리예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도저히 안 되겠으면 까무러치고 죽는 겁니다. 혼은 날아가고 몸은 흩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스님들의 수행 목적이 생사해탈, 생사요달에 있습니다. 생사(生死)를 이긴다는 거예요.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는 겁니다. ‘잘 있어, 빠이빠이’ 이래야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습니다. 혼비백산하면 자신도 모르게 어디론가 업 따라 끌려가게 되요. 잘 통해야 공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계속 가면 열립니다. 내가 자꾸만 공부를 하게 되면 밝아진다고 그랬죠?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그랬죠? 깃발이 돼서, 깃발을 들고 나가는 거예요, 신령스러운 힘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통하지 않으 면 곧 병입니다. 통해야 병이 나지 않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 나라 국민의 품격이 높아져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어요.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 말마따나 ‘국민의 질이 상품의 질을 결정짓고, 나라의 질을 결정짓는다’고 하지요. 그래서 부지런히 자신의 수행을 도모하는 겁니다. 자기 수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혁신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세요. 자기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 가는데 왜 자신은 변화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느냔 말입니다. 내면세계의 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혁신이 가능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법 앞에 머리를 조아리세요. 절을 하면 통합니다. 그래서 제가 삼천배 하고 백팔배 하라고 하는 거예요. 온몸이 통하니까 몸과 마음이 강화되고, 부처님의 기운이 흘러들어 아우라가 나오고, 카리스마가 나옵니다. 절하고 참회하면 앞으로 나가게 돼 있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사라지고 수행하는 자에게는 막힘이 없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SPAN></P> <P class=바탕글></P>2018-03-07 오후 2:33:13마음 따라 모든 것이 변화한다. 심상이 관상이다. 일체유심조이다/Media/law/Read.aspx?db_cnt=76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center;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align=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한 생각 다스리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항상 ‘모든 것은 마음 따라 변화한다’라는 가르침을 얘기합니다. ‘심상이 관상이다’또 ‘일체유심조다’그러잖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우리의 속마음은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예뻐야 인상도 예뻐진다고 합니다. 얼굴에 아무리 비싼 화장품을 바른다 해도 마음이 예쁘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부처님은 이렇게 개인의 마음이 한데로 모이는 공업(共業)을 말씀하셨어요. 한 가족이라면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가 있고, 또 아들딸들이 있잖아요. 크게는 국민 개개인의 마음이 한데로 모인 나라의 마음이 있어서 국민성, 민족성을 말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은 누구든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거기에는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가 수반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고통과 스트레스를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그 능력의 차이가 불평등을 가져와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진상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쓴 루소가 있듯이 우리가 얼마나 고통과 스트레스를 감내하는가, 이겨내는가가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개개인이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사회면 좋은데 제도적인 문제, 국가적인 문제, 나아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로 확대되면 그동안 쌓였던 문제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는 본질적인 차별이랄까, 민족에 대한 차별이랄까 하는 더 큰 문제가 야기돼 혁명이나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국민의 마음이 아프면 괴질이 퍼진다고 했습니다. 중세시대의 페스트가 그래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병이 아니라 어떤 이유가 있어서 병이 생긴다는 거예요. 안으로 숨어있던 것들이 하나 둘 노출되면서 주기적으로 파동을 칩니다. 사람들이 좀 편안할까 하면 나태해지고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과학적인 발명, 발견한 것들로 인해 인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크나큰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원자력을 비롯한 북한의 핵이나 사드 문제가 계속 보도되고 있어요. 만약 그런 악재가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세상은 온통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참선하고 기도하면 두뇌를 활성화시키는 도파민이 나와 기억력을 좋게 한대요. 분기탱천하면 도파민의 변형체인 아드레날린이란 물질이 생겨나 발암물질이 되기도 하고요. 이른바 콜레스테롤이라고 해서 고밀도(HDL), 저밀도(LDL)를 얘기하는데 이것들 역시 마음의 영향을 입는다고 합니다. 당뇨도 마찬가지에요. 순간순간 물질에 변형이 온다는 겁니다. 당장 이산화탄소(CO</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에서 산소를 빼면 일산화탄소(CO)로 변하잖아요. CO는 연탄에서 나오는 무서운 원소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줍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불교는 모든 걸 일념, 한 생각으로 다룹니다. 한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능엄경에 나오듯이 내 마음 가운데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면 선이요, 남보다 나를 생각하면 악입니다. 좌표축에서 나와 남 사이에 마지노선을 그리라고 그랬죠? 50점 이상의 양신, 플러스는 위에요. 선신이라고 부릅니다. 50점 이상의 존재는 죽어도 호법선신이 됩니다. 50점미만은 음신, 마이너스로 악귀가 됩니다. 우리는 순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죠? 유익균과 유해균. 프로바이오틱스니 락토바실러스니 해서 몸의 균들이 세포 숫자에 열 배나 더 많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균들이 순간 마음이 틀어져 분기탱천하면 유익균에서 유해균으로 변해 버린다는 겁니다. 선신과 악귀가 다른 게 아니라 순간적인 마음이 틀어지면서 선신이 되고 악귀가 된다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에도 지친지대원이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원수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순간순간에 변해갑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스트레스의 이로운 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내법의 적용을 받고 있음을 압니다. 밖으로는 국제법도 있어요. 그것까지 안다 해도 그 다음 문제가 되는 게 우주시민법입니다. 우주시민법은 잘 모르잖아요. 그저 국내법, 국제법 해봤자 수명이 있는 존재들이 적용을 받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우주시민법의 저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영원의 법입니다. 그 영원의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렇다 하는 법철학도 결국은 영원의 법인 인과법이거든요. ‘네가 남에게 해악을 끼치면 네가 그 벌을 받아라’하는 우주 법에 근거한 차원입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학교 공부는 중요시하지만 우주법에 대한 중요성은 잘 몰라요. 종교는 우주법에 대해서, 영원을 얘기합니다만 특히 불교신자들은 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안 하니까 두뇌개량이 쉽지 않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현재 두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딥러닝(Deep Learning), 인공지능을 계속 개량해 나가잖아요. 이제는 알파고 때보다 100배, 160배 이상 그 지능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알파고가 개선될 바에야 인간의 능력도 계속 개선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단 말이에요. 인간의 두뇌능력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제행이 무상이라, 끊임없이 변해가거든요.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게 성장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한 단계 올라서려니 여러모로 어려움이 오는구나, 이걸 극복해야지’라고 다짐하세요. 우리는 영원이 되기 위해, 성불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거거든요. 세상은 해탈의 학교라고 그랬으니 따지고 보면 인간세계의 불평등은 숙명적입니다. 왜냐? 그 사람이 얼마나 변화에 대처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에 따라서 치고 나아갈 수 있고 이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마냥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나름대로의 이점이 있다니까요. 변화를 위해선 항상 스트레스가 따르는 거니까 당연히 감내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몸과 마음을 다해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면 됩니다. 노력하는 자, 하늘이 다 알고 부처님이 다 알아요. 자연은, 이 광활한 우주는 참으로 무상심심미묘합니다. 근데 참 안타까운 게 우리는 자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는 측면이 대부분이에요. 엊그제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미국과 캐나다가 27년간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자연계의 벌레, 나비, 벌 등의 개체수가 75퍼센트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꽃가루받이 역할을 해주는 곤충이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세요. 곡물의 생산량은 현저히 줄어들 테고 그럼 식량이 부족해 사람도 다 죽는 거예요. 여전히 강력 살충제로 인해 수많은 곤충이 죽어가고 있고 사람의 면역력도 많이 약해졌다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더욱이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플라스틱 병은 전부 석유화학의 부산물입니다. 지구에서 매년마다 생산되는 페트병이 5천8백30억개래요. 근데 하나가 분해되는 데는 450년 걸린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마이크로 비즈라고 하는 5미리미터 이하의 아주 미세한 플라스틱 알갱입니다. 베아링처럼 생겼어요. 그걸 뭉쳐서 페트병을 만드는 건데, 그 알갱이가 치약에도 들어가고 비누에도 들어가요. 매끌매끌해지라는 이유에서죠. 화장품에도 들어갑니다. 그게 하수도를 타고 강으로, 바다로 가고 결국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인간은 암에 걸려 죽는 거예요. 쓰레기 문제가 그래서 심각한 겁니다. 아마겟돈이란 멸망, 멸종이란 의미인데 이른바 ‘생태계 아마겟돈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목만 봐도 인류는 아마겟돈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드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230억 개의 종이컵을 쓴다고 하는데 이는 년 간 25만3천 톤 정도의 탄산가스를 배출하고, 50미터 정도 크기의 나무를 1500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구의 자원은 무진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연에게 치명적인 해코지를 하고 있는 건데, 지구온난화는 차치하고 언젠가는 자연자원의 고갈이 올 것입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니까요. 미국의 스타벅스에서는 종이컵 대신 텀블러나 머그잔 사용을 권장한다고 하는데 편리함만을 쫓는 생활습관이 좀 바뀌어야 합니다. 직장의 불안정성, 기득권 계층의 위협, 귀족노조와 같은 문제점이 사라져야 하고요. 우리의 사회 조직에서는 조금이라도 자기 이익이 침탈하면 민노총이니 한노총이니 하는 노동단체들이 나서서 결사항전을 하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가 불안정해져 고통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겁니다. 삶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서로서로 감내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개인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사회 전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인 스트레스를 감내할 수 있을만한 내적 역량을 키워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우주는 하나로 연결돼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선 방하착(放下着)을 말합니다. ‘네가 가진 욕심을 내려놔라. 집착과 애착을 내려놔라’이거에요. 사회적인 고통을 직시하고 서로 서로 나눔을 도모할 방안을 모색해보세요. 요즘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서 노조에 친화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복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흡사 남미의 포퓰리즘 같지 않느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상당히 우려됩니다. 국민이 나라에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나라도 국민에게 해야 될 의무가 있어요. 위정자들이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또 뒤집어지는 겁니다. 우주의 시민 되는 부처님 말씀을 투철히 공부하고 영원에 대한 공부, 사랑에 대한 공부, 헌신과 봉사에 대한 공부, 남에게 베푸는 보시와 감사의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우주의 시민으로서 자질과 자세가 중요하거든요. 불교는 우주적인 차원입니다. 화엄경이나 법화경 또 능엄경은 모두 환상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의식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고통이나 아픔, 쓰라림을 슬기롭게 업그레이드시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칸트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내 마음에 빛나는 별(star of my mind and), 하늘에 빛나는 별(star of heaven) 이 두 개의 별이 나를 용약케 한다’순수이성비판에 나와요. 그는 별을 둘로 봤으나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깨치셨습니다. 둘이 아니고 하나란 말입니다. 탈무드에는‘하늘의 별을 보면서 울음을 삼켜라’라고 합니다. 유대인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울음을 삼킨 민족이에요. 우리도 하늘의 별을 보면서 울음을 삼키고 스트레스를 삼켜야 합니다. 이 우주는 하나로 연결돼 있거든요. 내 마음에 빛나는 별과 하늘에 빛나는 별이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타인이나 사회를 비판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반성부터 하세요. 우리가 과거나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는 항상 과거를 돌아봐야 합니다. 준비 없이 충실했던 시간이 있었습니까? 준비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제대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을 내놔 봐요. 준비 없이 잘 되는 법은 이 우주에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수행을 열심히 해야 운이 좋아집니다. 새롭게 노력하지 않으면 운도 좋아지지 않아요. 운(運)은 밀고 나아가야 열립니다. 밀고 나아가는 그 힘은 영원에서 나옵니다. 왜냐? 영원이라고 하는 에너지는 항존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물리학자들 얘기예요. 에너지는 항존하고, 영원하신 분은 부처님밖에 안 계시잖아요. 법신은 영원합니다. 그러니까 내 몸과 마음으로 끊임없이 연습할수록, 수행을 하면 할수록 영원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신령스러운 힘이 나오고, 법력이 나오는 거예요. 에너지의 근원은 내가 영원과, 부처님과 더불어 할 때 나옵니다. 내가 준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충실한 시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각자 한 가정의 부모입니다. 바깥으로 나가면 과장이에요, 부장이에요, 이사예요, 사장님이에요. 어떻게 보면 모두 교육자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고 칩시다. 직원이 몇 십 명 있다, 그러면 직원들에게 월급만 주면 그게 다인 것 같습니까? 아니에요. 내가 사장으로서, 부장으로서, 이사로서 그들에게 뭔가 한 마디라도 해야 할 거 아녜요. 교육자로서 그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한 마디는 해줘야 합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수록 한 마디씩은 해야 합니다. 교육자는 가르치는 사람 이전에 공부하는 사람이 돼야 하고요. 저 같은 중은 부처님 말씀을 전공하는 게 업이잖아요. 내가 봉직한 어떤 장소에서든 해박하진 않아도 우주의 작은 법칙을 마음 가운데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천지만물과 자연과 우주와 하나가 되는 밝은 길에 대해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밝아질 수 있을까? 하는 교육자의 마음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항상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 공부한 힘이 쌓여야 두렵더라도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자세로 정진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던져야 아이디어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직언을 하면 귀담아 들어줘야 해요. 조선시대의 왕이 27명 있었는데, 그중 제일 장수한 왕이 누군지 아십니까? 영조예요. 승정원일기에 나와요. 그는 1년에 전의(典醫)의 말을 140여 차례나 들었다고 합니다. 3일마다 한 번씩 전의의 말을 귀담아 들은 거죠. 전의가 와서 ‘이런 점은 안 됩니다. 저런 점은 안 됩니다’하면 전의 말에 따랐는데 고집이 센 영조도 전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의학은 우주만물과의 만남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니까 영조시대에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가감 없이 듣고 실천했던 영조는 희대의 왕이 틀림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누구나 교육자입니다. 우주만물에 대한 법칙을 알아야 해요.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처참하게 쓰러지는 겁니다. 준비하지 않고 잘되는 법은 이 우주에 없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충실했던 시간은 삶에 존재하지 않아요. 일본에 가서 지하철을 타보면 아줌마들도 전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일본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은 우리나라의 6배라고 합니다. 개인도, 사회도, 기업도, 나라도 우주만유의 근본 도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국가가 분발하려면 개인 개인이 분발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지도자들이 분발해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처럼 자연의 지혜, 우주의 지혜에 눈을 떠야 해요. 세상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이데아가 필요합니다.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할 땐 수술해야 하고, 치료해야 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개인의 마음은 그대로 말과 생각과 행동에 관여합니다. 심상이 관상이라고 그랬잖아요. 나라 전체를 놓고 보고, 세계를 놓고 보고, 우주를 놓고 보고, 우주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세계, 우주의 지혜에 눈뜬 자는 스스로도 분발하고 만인을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래야 번창과 발전이 있습니다. 언제 어떤 곳에 봉직한다 해도 준비 없이 충실했던 시간은 없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우는 사람이 되시기 당부 드립니다. </SPAN></P>2018-03-07 오후 1:46:47그대는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없다. 원하는 것도 항상 변해 간다. 변하는 것이 영원의 법칙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6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입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때가 언제인지 자신이나 타인에게 반문하기도 합니다. 언제가 제일 보람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모두가 부족하고 실수 덩어리들입니다. 인간이기에 삶을 살다보면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실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잘 가고 있는지, 혹 이 길이 정도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다보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불자의 마음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자체가 부족하고 실수투성이긴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마냥 그릇된 길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곳에 보람이 있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 보람이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는 계속 정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 삶이 내가 마음먹은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배우고 서로를 통해서 격려하면서 나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태어남도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나왔으니까요. 또 살아가면서는 부모님의 도움 나아가서는 아내의 도움 세월이 흐르면 아들딸들의 도움 서로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자녀들이 어렸을 때 누구나 부모의 말씀을 고분고분 다 잘 듣는 건 아닙니다만 특히 사춘기에는 저항이 더욱 심해집니다. 심리학자가 말하는 사춘기 반항의 이유가 있습니다만, 저항한다는 것이 때로는 자립심을 기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나도 어머니 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인데 왜? 라는 의문을 가지며 부모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자립심을 생각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춘기 얘길 하면 생각할게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속을 썩이는 집안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소통이 잘되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의 앞 가름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미흡한 것이 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체를 쌓아놓고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여 누구와도 소통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성안에 자기를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은 초라하게 생각합니다. 실수를 연발 하다보면 너무 힘들어지고 스스로가 움츠려 들게 됩니다. 그때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자립심을 키워줘야 됩니다. 귀엽고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자립심을 키워주지 못하면 그 아이들은 일생동안 부모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큰 숙제 덩어리로 이 땅에 남게 됩니다. 스스로 부딪치며 살아가야 됩니다. 실수 연발하면서 가야됩니다. 그런데 누구나 실수를 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시도하기조차 포기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담장을 쌓고 아버지 엄마와도 대화를 끊어버리고 방구석에 박혀서 매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이나 만지고 대화도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자기 자신도 초라해 지는데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전혀 바깥세상과 교류를 하지 않으니 자칫 폐인이 되는 거지요. 스스로 고립자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상담을 하는 내용을 보면 그런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부모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20대 30대 때에는 실수 연발일수 밖에 없고 끊임없는 미숙아들인 자녀는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데 쉽게 포기해 버리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 둔 엄마 아버지들은 아이가 죽은 다음날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모로 부터 돈을 많이 물려받았어요. 그 돈을 관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측근을 잘못두면 배신자들도 생기고요, 믿음의 장벽이 깨져버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예요. 돈 많은 사람들 고초를 겪는 일 한꺼번에 많은 돈을 잡다보면 관리 능력이 주변에 포진에 있는 사람들 이것도 작은 일이 아니에요. 부모는 돈을 많이 벌어 물려주면 되는 줄 알겠지만 이게 문제가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오히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굳이 돈을 물려줘서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 세상을 더욱 잘못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재벌들 2세3세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에 국한된 문제만 아닙니다. 뭐가 문제냐 첫째 이 친구들은 세상과 부딪힐 용기가 전혀 길러지질 않았어요. 사회생활에 적응이 잘되지 않아 이것저것 하다 안 되니 부모 재산 다 날리고 완전히 막혀버리니 시도하기도 싫은 거예요. </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 신뢰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이 광활한 우주는 미숙아들을 끊임없이 양성하는 도장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만이라도 훌륭한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가 자기를 신뢰할 때도 있지만 자기를 불신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들이 인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게으르지 말고 항상 정진하라는 오로지 인간을 위해 남긴 말이 팔만사천대장경에 실려 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우린 누구나가 다 이 땅에 미숙아로 왔어요. 완전자로 온 인간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부처님도 이 땅에서 성불의 길로 가기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진하여 해탈을 이루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가고 그 시대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문제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생각을 깊이 해야 될게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게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원하는 게 자꾸만 변해갑니다. 더욱이 제행이 무상이라 마음도 바뀝니다. 변해가요. 이제 앞으로는 우리 자녀들의 자신에 대한 삶에 대한 통찰력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굳이 돈을 많이 벌어서 물려줄 것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엄마 아버지 뱃속에서 나올 때는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지만 이른바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에 대한 조언자가 부족합니다. 아이들을 면밀히 잘 관찰하여 자녀들에게 마냥 도움을 주고 베풀게 아니라,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어떠한 사회인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런데 관심을 갖질 않으면 고통스런 미래를 만나게 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 나의 문제도 자녀의 문제도 잘 생각하여 가르치고 스스로도 건강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이끌며 슬기롭게 살아가도록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조언자나 종교의 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이 방황하거나 힘들어한다면 좋은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홀로 부처님 법을 깨우치거나 성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서 생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은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남은 인생을 지금 시작해서 가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가를 생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슬기롭게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살아가면서 부딪히면서 터지면서 깨지면서 이겨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타박상도 입고 여기저기 다치기도 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잘 관찰해서 아이들의 아픔을, 그릇된 점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른들이 과거에 아팠던 것처럼 그 아이들도 똑같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 걱정을 하면서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시대가 변하면 사회상이나 젊은이들의 사고가 함께 변합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만능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배신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신뢰했던 사람, 나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상대의 신뢰감을 등지기도 하고 또 상대가 나를 배신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로서로 그런 상황에 처해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시계추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인생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 수양의 길로 가는 거지요. 끊임없이 자기를 교정하면서 신뢰감 넘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신심이라는 말, 신뢰감이라는 말, 이런 낱말은 인간을 지배하는 아주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우리는 믿음을 유지해 나가려는 그 마음 갖지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나 사이 진실을 끊임없이 유지해 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성실한 인간의 기본이며 사랑입니다. 남들에게 배신감을 주게 되면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아픈 마음을 갖지 않도록 불도를 닦으며 배워야 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 내가 노력하는 것이 현실의 열매로 승화가 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슨 보람이 있었습니까? 누군가가 묻는다면 어떤 때는 사람에게 신뢰감 주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고 어떤 순간에는 배신감으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반성하기도 했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지를 못합니다. 부모나 위 어른들로부터 받아온 인간에 대한 불신과 원초적인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불안을 가지게 된 가장 원초적인 사건이 있는 젊은이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엄마의 태를 끊고 나오는 순간서부터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불안함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간은 태어나면서 개체화 되어 버리니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이 몹시 중요합니다. 부모에 대한 신뢰감으로 시작해서 가정과 사회에 대한 신뢰감이 아이들의 신뢰에 대한 확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무한한 신뢰감으로 키우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엄마 아버지가 나에 대한 신뢰감을 철회했다라고 믿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신뢰나 믿음의 부재가 아이들을 고립시키고 아이들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신뢰해야 될 것인가’라는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힘들어도 자녀에 대한 생각은 믿음을 가지고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 허상을 따라가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속의 인물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믿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아무도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허상에 빠져 우울증이 생기고 자살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결혼도 안하고 취직도 못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부모가 그런 자녀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먼저 지쳐버리면 아이들은 더욱 침묵 속에 빠지고 우울해 집니다. 자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마뜩하지가 않아도 부모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에 대한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불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다 보면 사회도 삶도 자녀들의 마음도 바뀌어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보며 스스로 변하게 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의 삶이 억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스스로 노력하며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는 광활한 이 우주에서 만용이라 할지라도 설령 후회막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계속 시도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이들의 실패를 자꾸 용인하다 보면 지치게 되지만, 그래도 그걸 포기해 버리거나 놓아버리면 자녀들이 더욱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부모는 그런 모든 자녀들의 실패를 받아들이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희들은 자기 스스로 살지 않으면 살수 없는 존재라는 투철한 의지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건 전적으로 부모의 도리 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 말씀을 익히며 열심히 정진해야만 합니다. 내가 노력하는 것이 현실의 열매로 승화되고, 나의 기도가 자녀들에게 향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SPAN></P>2018-02-14 오후 2:43:12탁월한 인물들의 특징은 고통의 관리에 있다 /Media/law/Read.aspx?db_cnt=76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무명(無明)이 대죄</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흔히 향수(鄕愁) 또는 애수(哀愁)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수(愁)’자를 보세요. 가을 추(秋) 자 밑에 마음 심(心)자를 씁니다. 가을이 오면 푸르던 잎이 곱게 물들어 마침내 떨어지는데 이 때 사람들은 낙엽을 보면서 향수나 애수에 젖는다고 표현합니다. 푸르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듯 사람에게도 일정한 시간이 주어지니 말입니다. 하루가 흘러가면 하루만큼 죽음과 가까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알 수 없는 애수에 찬 마음이 되거든요. 죽음이라는 능선을 넘어 영원의 고향을 동경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사랑의 크기만큼만 주어진다고 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살면 반드시 죽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은, 모든 생명은 왜 죽음을 거듭해야 할까요? 부처님은‘너희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남이 있게 되고, 공간이 있게 되고, 그 공간을 극복하려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분별심, 이기심의 작용입니다. 내가 없어지면 남도 없어지는 것이기에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떠나게 된다는 거죠. 우리에게는 사랑의 크기만큼 수명이 주어지고, 얼마나 나를 이기는가, 얼마나 내가 이기심을 극복하는가에 따라서 우주를 방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은 진화와 퇴화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천당엘 간다고 그러고 극락엘 간다고 그래요. 지옥엘 간다고도 그럽니다. “에이 스님, 그거 거짓말 아니에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삶은 죽음이란 관문을 통해서 전개될 뿐입니다. 우리는 윤회든 부활이든 잠재의식 안에는 과거에도 수도 없이 많이 죽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세월의 흐름에 애수를 느낄 수밖에 없고, 뭔가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끼게 돼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생로병사의 고통을 면케 하기 위해 출가를 하셨고 깨달음의 문을 열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군상, 탁월한 인간의 특징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의 관리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을 내가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가 관건이에요. 우리는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잖아요. 유대인들은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을 했던 민족입니다. 이에 심리학자 애들러는 열등감을 제대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을 이용하라. 고통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스트레스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고통은 영원의 동반자다.’라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실제로 고통은 힘들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면 두뇌에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과 같은 아주 좋은 물질이 배양되고 몸도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아, 내가 이걸 이겨내겠는가’ 하는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 글루탐산이라고 하는 몸에 아주 나쁜 물질이 생겨난다고 해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선천적인 면역물질이 있는가 하면 후천적인 면역물질도 있다니까요. 부처님도 사바세계를 ‘감인토(堪忍土)’라고 해서 과감하게 견디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레스 받는다, 열 받는다, 고통스럽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거예요. 고집멸도의 사성제가 ‘고통스럽냐? 네가 지은 대로 받는 건데 어떡하니?’잖아요. 팔정도, 찬연한 미래를 원하면 열심히 도(道) 닦으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분석해 보면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집중이 되기도 하고, 겸허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고통 가운데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내적인 염력(念力)이 도모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은“나는 중생의 고통을 제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라고 하셨으니 부처님 말씀은 고통을 극복하는 약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벗 삼아 고통을 이겨낼 때 중생이 진보합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 같은 습관에 익숙할 때 발전이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아는 자에게는 병밖에 올 게 없다는 거죠. 고통이 없으면 건강한 삶도 없고 밝은 미래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고통은 죗값입니다. 무명(無明)이 대죄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성공은 노력과 상관관계에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너희의 마음 가운데도 나와 똑같은 지혜와 덕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4장에‘하나님은 사랑이시다’이렇게 나온다니까요. 사랑과 자비를 등지는 마음은 이기심이고 분별심입니다. 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나 스스로 만든 게 고통이며 그 고통을 이겨내며 승화의 길로 가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생을 제대로 살 가치가 없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힘을 배양하는 자들이 부처님의 아들딸이고 부처님의 대를 이을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서 생사가 갈리고 행불행이 갈립니다. 매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시간은 고통스러워도 흘러가고, 즐거워도 흘러갑니다. 파도를 바라보면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고통을 흘려보내세요. ‘처염상정(處染常淨)’아무리 혼탁하고 오염된 세계라도 다 흘려보내라, 항상 청정해라, 흘러가는 것에 감사해라, 이겁니다. 우리의 몸은 물처럼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지저분한 말을 많이 해요. 얼마나 지저분한 생각, 행동을 많이 하냐고요. 사랑과 지혜, 자비심이 부족하다 보니까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철이 없잖아요. 만약 이런 오염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더럽고 탁해지니까 더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수나 향수를 가진다 해도 감사한 마음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꼭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너희는 과거를 망각할지 모르지만 과거는 너희를 망각하지 않는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이에요. 과거에 지은 건 언제든 꼭 받는다는 겁니다. 흘러가는 것은 감사할 일, 축복할 일이지만 과거로 넘어가면 이게 또 업이 되니까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지켜보고 씻어내어 좀 맑아져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마음은 모든 일의 으뜸이로다. 마음은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 가운데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흡사 수레를 따르는 바퀴자국과도 같이’하잖아요. 아름다운 꽃밭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오고 더러운 시궁창엔 파리모기가 날아듭니다. 맑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뿜으며 살아가세요. 우린 누구나가 서로 닮지 않았습니다. 각자 고유의 주파수가 있어요. 부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내보내실 때 아무렇게나 내보내지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내 마음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어야가야 합니다. 그럼 그 향기 따라서 허공의 호법신장들과 불보살들이 보배 비를 내려주십니다. 복을 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저 열심히만 살면 됩니다. 모든 것이 청정하면 삼보천룡강차지라고 그랬잖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과거는 야생의 동물이었지만 미래는 부처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뇌 가운데는 석기시대의 정보도 들어있기 때문에 단기지향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질 못해요. 모든 정치인이 포퓰리즘을 들먹이잖아요. 표를 의식해서 이렇게 해 주겠다 저렇게 해 주겠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입에 단 게 떡이라고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표만을 바라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전부 단기적입니다. 이러한 단기지향성이 항상 문제를 부르고 경제위기를 부르는 거예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멀리 내다보는 시점에서 일을 처리해나갈 때 혁신도 가능합니다. 성공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노력과 상관관계가 있는 건 분명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른바 모든 물질은 에너지고 마음은, 공(空)은 물질이라고 합니다. 항상 노력하는 자에게 미래의 문이 열리는 거니까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세요. 세상에 금방 되는 일 어디 있습니까? 괴롭고 아프고 쓰라린 날들을 수도 없이 이겨나가는 가운데 그 일이 성취됩니다. 운(運)이란 운동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요즘은 운동이 보약이라고 그러잖아요. 운동하는 데 드는 1달러가 의료보험 3달러를 대체한대요. 대체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운이 열립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뇌 근육이 좋아지고 집중력도 향상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좋은 습관들이기</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나의 성공 제1요인은 운(運)이었다’운이 좋아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운이 좋은 게 아무나 좋으냔 말이에요. ‘행운은 노력의 부산물이다’라고 했듯이 노력 없이는 행운도 도리가 없습니다.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매화의 향기가 백리 밖에 진동하듯 결국 힘겨운 삶을 이겨낼수록 자신감과 성취감이 쌓여갑니다. 뉴욕타임스 기자 찰스 두힉이 쓴‘습관의 힘(power of habit)이라는 책을 보면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의 특징을 관찰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물이나 성공적인 CEO들을 조사해 보니까 그들은 아주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더래요.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철저하고 규칙적인 그들만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오바마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매일 독서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산 거 같지 않다고 했대요. 빌 게이츠는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요. 매일 공부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하세요. 매일 기도하는 습관, 부처님 말씀 따라 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연단합니다. 일정한 시간만큼 기도하고 백팔배하고, ‘이건 패 죽여도 한다. 이건 무슨 수가 있든지 해내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다 보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겨 운으로 연결된다니까요. 아는 것하고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어 속담에도 ‘To know is one thing, to do is another.’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거예요. 실천하는 자만이,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매일매일 고통스러워도, 쓰라려도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직장에 가고 퇴근해 텔레비젼 보고 씻고 자고…다람쥐쳇바퀴 돌듯 한다고 그러잖아요. 삶이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잠돼 있어요. 중요한 건 발심(發心)입니다. 마음을 내야 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에 의식적인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발심공덕, ‘내가 일요일에는 꼭 법당에 가야 되겠다, 내가 백팔배 해야 되겠다.’하면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적극성이 필요해요.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업을 만드는 바탕에는 적극성이 있습니다. 능동성, 솔선수범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전개될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 해가 속절없이 가버린다니까요. 자신에게 강한 의무감을 부여해주세요. ‘이걸 해야 되겠다, 꼭 해야 되겠어’하는 마음을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의 소설가도 항상 자신에게 의무를 가했다고 합니다. ‘나는 무조건 새벽4 시에 일어나 하루 일정 양의 원고지를 쓴다’이렇게요. 매일같이 그런 의무감을 발해서 글을 쓰다 보니 유명한 작가가 되었잖아요. 분심이고 발심이에요. 초발심시 변정각입니다. 발심, 초심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삶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자신의 삶에 강한 의식을 발동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몸과 마음에 좋은 습관을 심기가 불가능합니다. 삶의 95퍼센트 이상이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으로 살아가면 소득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선할 때도 강한 신심, 분심을 내는 겁니다. 강한 의심의 화두를 잡고 ‘꼭 해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는 겁니다. 적극성을 띠어야 해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거 아닙니다. 자신의 의식세계 가운데 좋은 습관을 녹여내려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고통도 즐거움도 흘려보내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우리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과거엔 경제가 성장하면, 경제가 발전되면 고용이 많아졌잖아요. 직장이, 일자리가 많았다고요. 이젠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공장이 잘 돌아가도 로보트가 대신하니까 고용이 없는 성장일 수밖에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로보트에다 법인을, 인격을 준다고 합니다. 로보트 마다 수입을 책정한대요. 그래서 그 로보트가 사고를 낸다, 그러면 그 월급에서 보상을 치러주고, 그 월급에 세금을 걷는 법을 만들고 있대요. 찬반 여론이 있지만 그렇게 돈을 거둬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즐겨보는‘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젼 프로가 있는데 특히 5~60대의 연령층에서 많이 본다고 해요. 스트레스 받는 삶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마침 불교는 참선, 명상과 같이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경허스님 말씀처럼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 일 없는 것을 오히려 일로 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일 없이 만드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그러잖아요. 이제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게 되면 그런 사람들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뭐든지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산림이 많습니다. 그 많은 산을 나라에서 대여해준다고 가정하면 거기다 공동체를 만들어 수행처소로 만드는 거죠. ‘효리네 민박’이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작금의 시대를 대변하는 거 같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자신의 마음을 흐름대로 가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했습니다.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라. 아이들이 절대로 빗나가는 법이 없을 것이니’ 에밀의 ‘교육론’도 그와 같은 맥락 아닙니까? 아이도 어른도 자연을 벗 삼아 사는데 어떻게 병든 마음이 되겠어요. 우리의 미래는 계속 변해갑니다. 인생은 그저 놀러왔다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습과 업을 쌓아가야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사는 동안 좋은 점수를 받고 부처님 나라로 가야 합니다. 명부전이 여벌로 있는 게 아니에요. 염라대왕이 거짓이 아닙니다. 한 해를 살면 나라에서도 국정감사를 하는 판입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모든 것은 다 흘러갑니다. 왜 죽음이 거듭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당부 드립니다.</SPAN></P>2018-02-14 오후 2:18:24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항상 순간에 달려 있고 어떤 순간이든 순식간에 승패가 갈라진다 /Media/law/Read.aspx?db_cnt=76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우리의 바탕은 ‘영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올 한 해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달려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느 새 연말입니다. 본래는 12월 말에 늘 능인선원 개원기념법회를 합니다. 올해는 송년법회가 겹쳐서 오늘로 당겼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항상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순식간에 승패가 갈라집니다. 순간을 잘 넘긴 사람들, 또 순간에 영원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시험이든 죽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숨이 넘어가면 그다음엔 또 다른 세상이 열리잖아요. 순간이 바로 영원과 통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은 바로 부처님 세계이니까요. 예를 들어 시험을 치릅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시험장에 들어가니까 아는 문제인데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아, 내가 다 아는 건데…’시험장을 나오고 나서 답이 생각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른바 순간은 영원과 통합니다. 그 순간을 장악하고 계신 분이 부처님이세요. 부처님은 항상 승리와 패배의 교차점에 계십니다. 그래서 매순간 승패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깜빡하는 순간에 천당과 지옥이 갈라지고, 깜박하는 순간에 저승으로 가기도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승리와 패배의 분기점이기 때문에 설령 내가 지금 패배의 쓴잔을 마신다 해도 또 다른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옹호를 받는 그런 순간인가, 아닌가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이 영원과 통한다, 일념즉시무량겁이요 무량원겁즉일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의 본바탕은 영원입니다. 스님들도 열심히 수행하잖아요. 우리도 열심히 수행하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수행해 나아가는 길, 그 길의 정점에는 심사희락정, 중지희락정이 있습니다. 어느 상황이건 간에 ‘집중’이란 음식을 만들 때의 소금과 같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과학을 하는 사람, 예술을 하는 사람, 그 누구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거든요.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은 세계는 없습니다. 집중(concentrate)이란 말은 중심(center)에 나의 몸과 마음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정신통일이 필요하잖아요. 예술가도 집중해서 한 획 한 획 그려나갑니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운동선수도 항상 집중력을 바탕으로 합니다. 요즘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운동장으로 구름같이 모여듭니다. 그들이 왜 그럴 것 같아요? 선수들이 골인 시키는 장면을 보면 신기(神技)가 잉태되잖아요. 그들이 평상시에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그 절묘한 상황에서 골인을 시키나 말이에요. 투수가 시속 150킬로의 속도로 공을 던졌는데도 타자는 홈런을 칩니다. 그 자리에 고도의 집중, 성스러움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올림픽 경기를‘제전(祭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육근,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자신을 통제합니다. 하나로의 집중입니다. 세상의 번뇌를 다 떨쳐내고 저 언덕에 이른다는 의미로 이 법당은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집중해서 인생을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많거든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셔서 잘 아시잖아요. 억울한 사람도 많고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거나 욕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된 수행자라면 세상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돌기둥처럼 태어나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을 해 들어가면 시작은 개개인이지만 바닥은 하나, 영원입니다. 그 바닥으로 들어가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오취계라고 하는데 잡동사니들이 다 모여 산다는 겁니다. 이른바 욕계는 욕심이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 중 가장 강한 음욕을 뛰어넘어야 해요. 그 단계를 거쳐 색계로 가면 이제 남녀가 없어진다고 그러잖아요. 남녀가 없어지면 생사가 없어집니다. 이생희락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뱃속에서 태어나는 게 없어지니 화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배를 타고 나오는 것만 이겨낸다 하더라도 얼마나 고통이 덜하겠어요. 그런 데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이 초선천의 세계입니다. 이선천은 이른바 정생희락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참선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는 선정의 세계를 말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육체의 즐거움을 넘어선 선정의 세계를 잘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보는 얘기가“스님, 기도하면 정말 이루어집니까?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겨납니까? 참선하면 무슨 좋은 일이 생겨납니까?”입니다. 그럼 제가 그래요. “그냥 열심히 해 보시는 수밖에 없습니다.”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누가 연구를 잘못했다 그러면 실험을 해서라도 잘못 된 점을 밝혀내면 되는데, 기도의 세계, 선정의 세계는 몸으로 부딪쳐 들어가 스스로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속의 어떤 기쁨 같은 이희묘락, 알 수 없는 묘한 행복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선천에 가면 사념청정이라고 그래서 생각이 떨어져 버린, 마음이 청정하고 고요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도 공무변처, 식무변처 등의 놀라운 세상이 전개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정진하면서 바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을‘견성(見性)’이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스님, 그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처님 말씀을 연구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 드립니다. ‘사바세계에 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기심 반, 이타심 반의 50대 50입니다.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해서 여기에 왔다는 거예요. 60점 이상이 돼야 진급할 수 있어요. 60점 이상이면 사왕천엘 간다고 하니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이타심입니다. 사랑이잖아요. 이타심은 우리의 근본 바탕에서 나오는 마음이에요. 내가 남에게 뭘 베푼다, 그러면 이기심이 부서집니다. 부서진 그 자리가 영원이고, 사랑이고, 부처님이니까 내가 뭘 베풀면 저절로 즐거움이 오는 거예요. 왜냐? 바탕이 떠오르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제는 불교대학 64기가 졸업을 했는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끊임없이 베풀고 베풀어서 이기심이 다 녹아져 버렸다, 그러면 그 마음이 성불이다. 환희와 열락, 즐거움의 세계니까 내가 남에게 베풀 때 오는 즐거움은 바탕에서 오는 즐거움이다.’라고요. 한없는 환희와 열락이에요.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즐거움만 탐하기 때문에 애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부처님 말씀을 따르면 인간은 사막을 헤매는 유목민과도 같다고 해요. 사막을 헤매게 되면 목이 마릅니다. 갈애(渴愛), 삶이란 이른바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물을 마시면 더 물을 마시고 싶어져요.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죠.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나라를 찾아가는 데는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합니다. 나의 모든 걸 던져야 신기가 나오는 거예요. 사막을 헤매다가 ‘아, 저기 오아시스 있다!’ 그럴 때 그 기쁨은 어떠할까요? 그런 경계를 불교에서는 즐거움, ‘희’라고 합니다. 그럴 때 행복감에 가득하잖아요. 그런 다음 내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 ‘이젠 살았구나’ 하는‘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집중을 지속해 나가면 즐거움의 단계와 행복감의 단계를 넘어서 바탕으로 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수행의 세계예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가야 합니다. 한꺼번에 일조일석 되는 게 아니거든요. 듣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젖은 나무는 쉽게 타지 않아요. 계속해서 열을 가해야 해요. 운동선수들처럼 몸을 던져서 합니다. 그런 집중의 세계를 통해서 부처님의 힘이 흘러들어옵니다. 정신일도를 해야 하사불성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가세요. 남들이 칭찬하거나 비난하거나 돌기둥처럼, 태연자약하게 가야 합니다. 순간은 영원과 통해 있으니 그렇습니다. 바탕은 영원이에요. 순간순간 승패가 갈리는 건 그때까지의 성적표 때문입니다. 처칠은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장에 가서 딱 세 마디만 했대요.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세상의 번뇌에 물들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야 피안(彼岸), 저 언덕에 이르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허공을 담보로 사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현실의 세계에는 선과 악이 교차합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교차해요. 물론 본바탕에는 사랑의 마음이 깔려 있지만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 자리인 거예요.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의 생겨남이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입니다. 인생을 구름 한 조각에 비유하니까 너무 처량하지요? 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여러분이나 저나 때가 되면 가야 합니다. 단 한 분도 예외가 없이 염라대왕 앞에 가야 해요. 가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판가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앉아 부처님 말씀 들으면서도 호흡을 합니다. 사람들은 공기를 호흡하는 게 공짠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요즘 회사들은 탄소배출권을 사고팔잖아요. 공장을 크게 돌리려면 탄소배출권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몸도 지금 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니 당연히 허공을 담보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수명은 일종의 복입니다. 오복 중에 수명 복이 들어 있잖아요. 전생에 지은 복업만큼만 살아요. 우리가 전생에 지은 복업만큼만 허공의 공기를 사가지고 이 땅에 온 겁니다. 호흡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못하면 그 때는 끝인 거예요. 우리 몸은 정확하게 감가상각을 하면서 정확한 유효기간을 가집니다. 천년만년이 아니라 전생의 복업만큼만 호흡할 수 있는 것이지 공기가 절대로 공짜가 아녜요. 그래서 수행하지 않고선 안 되는 겁니다. 공덕을 짓지 않고선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기심이라는 건 내가 내려놓는 것만큼 이타심이 자리하는 거예요. 마음도량이 맑고 청정해야 그 자리에 부처님이 내려오시는 겁니다. 내가 나를 밝히면, 광명의 깃발이 돼서 그 마음에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힘이 흘러들어오는 창고가 된다는 얘기예요. 수행하는 것,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펼치는 것은 사철 푸른 나무와 같습니다. 보통 웬만한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집니다. 근데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펼치고 수행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면 수명이 그만큼 사철 푸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덕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 말씀에‘철천지원수가 전생의 네 아버지 어머니다’라고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원수라고 하잖아요. 지구상에 가장 철천지원수 가운데 이슬람민족과 유대민족이 있습니다. 두 민족은 사실 영국의 제국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친하거나 원수거나 선과 악이 교차하는 모든 것은 하나에서 온 거라고 보면 됩니다. 머리로 빠져나가는 자들은 성현의 대열에 든다고 하고 눈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고, 심장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인간으로 오고, 배로 빠져나가는 자들은 아귀로 가고, 무릎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축생으로 가고,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영혼이 빠져나갈 때 내생이 정해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마시는 공기는 전생에 지은 복업을 계속 감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시간은 금이고, 인생은 시간이고, 인생은 금이라고 그랬잖아요. 인생은 딱 주어진 시간만큼만 존재합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영화관에서 나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의 장기는 힘이 장사예요. 그런데도 나이 40을 못 살고 요절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왜 그럴까요? 전생에 지은 복업이 짧으니까 심장이 멈추는 거예요. 심장내과 전문의들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심장 표면에는 토네이도처럼 회오리바람 같은 전류가 많이 돌아다닌대요. 그러다 부딪히면 강한 전기의 충격으로 인해 심장이 멈춰 버린답니다. 심장마비가 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원인을 의사들도 잘 모르는 거예요. 토네이도 일렉트리시티(tornado electricity), 용오름이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땅에도 회오리바람이 있고 심장에도 토네이도가 있어요. 정말 기도 많이 하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바탕은 영원입니다. 우린 거기 바탕에 떠오른 구름 한 덩어리이고요. 이 구름을 번뇌 덩어리라고 치고 인생이라고 치면 그 구름 덩어리는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게 수행입니다. 공덕력, 지혜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바탕이 드러납니다. 염법, 염승, 염계, 염시, 염천, 화두일념, 일념즉시무량겁, 다 통하잖아요. 세상만사가 설화적인 내용이라도 절대로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잖아요. 그들의 애환을 듣고 살아서 알아요. 순간은 영원과 통하기 때문에 순간이 운명입니다. 지은 대로 받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해요. 뭣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참선, 명상 시키겠어요? 거긴 아이디어의 본거지 아닙니까. 거긴 집중의 세계이거든요.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집중자이고,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들이 지금 신을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구글신을 만들어내고 있다니까요. 그들은 참선이나 명상을 종교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참선이나 명상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 두뇌에 미치는 효과만 따내는 거죠. 하지만 거기에 영원이 빠져 있으니까 그들이 만드는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겁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영원이 빠져 있거든요. 기도가 빠져있어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장애는 열반의 디딤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활이 곧 수행입니다.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해야 합니다. 집중을 다해서 가야 해요.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자기 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비춰 주더라고요. 제가 본 적이 있는데, 방안에 불필요한 것 없고 정갈한 것이 꼭 절간 같더라고요. 딱 필요한 것만 있었어요. 우리는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이기심을 걷어내려 온 것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수행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통 끝에 낙이 옵니다. 고락불이 그러잖아요. 네, 수행에는 장애가 많습니다. 장애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장애는 열반의 디딤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한 식구입니다. 능인선원도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법당을 만들어 많은 후배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본성을 아는 자가 해탈을 안다고 그랬습니다. 고통이 열반으로 가는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 그자는 성불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장애를 통해 지혜로 가는 거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에 체지방이 쌓이면 쌓일수록 운동량이 많아야 합니다. 많이 움직여야 해요. 운동량이 적을수록 인슐린의 기능저하증이 생겨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참선과 명상이 있습니다. 또 절은 요가의 압축판이니까 절도 열심히 하세요. 몸에 있는 모든 물질은 전부 살아 있습니다. 대사증후군일 때 잡아야 해요. 고혈압이 되고 당뇨가 되면 그다음에는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항상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셨어요. 허망한 것에 마음을 던지면 인생이 허망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한 생각 한 생각 일으키는 것은 곧 물질입니다. 마음이 물질인 셈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지요.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을 향해 열어 보세요.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해 보세요.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문을 활짝 열어 수지신시광명당이 되는 거예요. 부처님을 향하는 곳엔 영원이 열립니다. 옛날 어르신네 말씀에 부모가 잘하면 3대까지 복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부모가 잘못하면 삼대까지 앙화가 내려가요. 이게 공갈이 아니에요. 협박이 아니에요. 우주에 대한 자애심을 키워가세요. 죽음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린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해가 다 갔으니 우린 그만큼 염라대왕 얼굴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가 크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염라대왕은 우리를 더욱더 자세히 보고 계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일은 듣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집중이 필요합니다. 집중할 때 영원의 힘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그래요. 평상시에 도의 문을 열어가야 합니다. 알을 까고 나오는 새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해탈하려는 자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해요. 그래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수행이냐고 수행이란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우리가 잠깐 머무는 곳이고, 다만 이기심을 내려놓는 곳이에요. 삶에는 스트레스가 끝이 없습니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린 영원을 가는 구도자, 수행자입니다. 수행을 벗 삼아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얘기해보세요. ‘너 올 한 해 정말 잘 버텼다. 감사하다.’우리에게 수행만큼 절실한 건 없습니다. 인간은 죄와 업보의 소산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업장소멸 하러 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득합니다. 모두 마음이 편치 못해요. 하지만 세상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여기보다 더 어려운 세계도 많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정진하는 삶이 되도록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SPAN></P>2018-02-14 오후 1:41:44끊임없이 영원성을 개발해나가도록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Media/law/Read.aspx?db_cnt=75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천인감응</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lang=EN-US>(天人感應)</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삶을 도모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하늘과 땅, 만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세상은 법 따라서 움직이는 법이 불(佛)이요, 불이 곧 법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재자가 부처님인 동시에 법인 거죠. 흔히 말하는 도(道)는 영원성, 근원성을 가집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인 실재(實在)입니다. 심원하기도 하고 항존하기도 해요. 도의 기운이 이 우주를 다스리는 겁니다. 하늘의 안팎을 모두 다스려요. 도 따라 사는 사람, 법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보답을 받고 부처님의 보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남의 눈을 속이거나 어둡게 해서 자기만 이롭기 바라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끊임없이 도 따라 산 업이라야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도업(道業)이 승화되면 성불한다고 그러잖아요. 하늘은, 그리고 땅은, 모든 만유는 우리에게 항상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늘이 누구에게는 특별한 은혜를 베풀고, 누구에게는 좀 더 해주고, 그런 거 없습니다. 공평하잖아요. 다만 문제는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 정진하는가,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관계를 비롯한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요, 부도덕한 행위, 자연 질서 파괴와 같은 일들이 미래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누구든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인감응</SPAN>(天人感應)<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라, 하늘은 인간의 노력과 정성에 감응합니다. 모든 상황에 맞게 신령스러운 기운이 함께하니 언제나 감사해야 된다는 거예요. 언제, 어떤 자리에 위치하든지 간에 항상 감사하며 사세요. 제가 그런 말씀 많이 드리죠? 개미들에게도 왕이 있고 벌들에게도 왕이 있다고. 딱 정해진 시스템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왕이 있잖아요. 대통령이 있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예수시왕경에 보면, 사람이 땅을 등지게 되면 49재를 지냅니다. 49일 동안 제일 처음에 만나는 왕이 진광왕인데요, 우선 그가 대강을 평가합니다. 생전에 얼마나 선행을 했는가, 악행을 했는가를 가름해요. 그런 다음 송제대왕이라고 해서 그는 이 영혼을 지옥에 보낼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왕들이 차례차례 그 영혼을 심사합니다. 삼칠일이 되면 초강왕이 이 사람은 아귀도에 합당한가, 축생도에 합당한가를 철통같이 심사합니다. 사칠일의 오관대왕은 이 사람은 중한 죄를 지었는가, 경한 죄를 지었는가를 판가름 하고요. 이승에서도 죄의 경중을 따져 징역 1년, 징역 2년을 따지잖아요. 무기징역이나 심지어 사형도 있습니다. 저승은 여기의 재판하곤 게임이 달라요. 이 땅을 등지고 난 다음의 세상은 광대합니다. 이 우주가 시스템 자체인거죠. 법계라고 그랬잖아요. 광활한 우주를 주재하는, 이 땅을 등진 존재들을 심사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드디어 오칠일에는 중심에 있는 염라왕을 만납니다. 염라왕은 광음천에서 내려온 최초의 왕이에요. 이 왕은 지옥의 주신인데요, 죄를 정확하게 판단한답니다. 죄를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데는 각자가 살아온 일생이 낱낱이 찍혀 있습니다. 지금도 눈으로 다 찍잖아요. 찍은 자료들은 파동상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염라왕 앞의 업경대에 딱 서면 그 역사가 쭈르륵 흘러가면서 보여집니다. 굳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지 않더라도 죽음 앞에서 자기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가 있습니다. 임사체험이거나 잠깐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일생을 봤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 시스템이에요. 그 다음 이제 칠칠일이 되면 태산대왕이 이 사람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그게 49일째에요. 대체로 49일에 판가름이 나지만 시간이 또 걸릴 수가 있죠. 재판도 1심 2심이 있듯이 좀 더 심사숙고해야겠다, 그러면 100일도 갑니다. 제가 저승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려도‘아이, 그런 게 진짜 있을까’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이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부처님 직설이에요. 개미를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개미도 잘못을 하면 사형선고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들의 세계에도 병정개미가 있고 내무부개미, 외무부개미, 국방부개미, 법무부개미와 같은 시스템이 있습니다. 말 안 듣는 개미는 집에 못 들어오게 한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을 불태워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영원성을 터득해나가면 영원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안기지만, 영원을 무시하면 영원성도 문을 닫아버립니다. 무명 중생이 돼버려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이러면 영원성이 막혀 세상을 등진 다음에는 막연해집니다. 전혀 공부가 안 돼 있으니까요. 영원의 세계에 대한 지혜가 없으면 승화되기가 힘이 들어요. 차원을 넘어가는 건 이른바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는 건데 죽지 않으면 4차원을 체험할 수 없잖아요. 부처님은 도(道)를 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해주신 겁니다. 그걸 신뢰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이렇게 법회에 참석해‘영원성.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라는 긍정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시민으로서 법과 도를 모르면 진보가 불가능해요. 더 이상 진화가 될 수가 없어요. 승화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대한 감사, 땅에 대한 감사, 조상님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우린 전부 다 감사 속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우주에는 자비 아닌 건 없어요. 은혜로움 아닌 게 없고요.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세상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하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중심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말마따나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해요. 근데 중요한 건 아무나 중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당장 원자핵의 세계를 보세요. 다 통하잖아요. 핵 속엔 양자가 들어 있습니다. 양자는 태양 같은 거예요. 양, 플러스(+)전기죠. 세상살이가 고통스럽거나 아프고 쓰라려도 항상 플러스의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쩝,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내가 이해해야지’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그게 반야심경의 불구부정, 좋고 나쁜 게 없다. 부증불감, 늘고 주는 게 없다 입니다.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항상 겸손하고 마음을 내려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핵심부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이어야 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되고 싶은 사람은 자기 몸을 불태워야 해요. 많은 사람이 왜 그 사람을 따르겠어요? 그 사람을 따라감으로 인해서 내 가치가 상승된다든지 이득이 있을 때 따라가잖아요. 태양은 우리에게 빛과 열을 줍니다. 그러니까 태양이 되고자 하는 사람, 중심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을 계속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이 될 수가 없어요. 촛불은 뭐예요? 자기 몸을 불태우면서 만 중생을 밝게 만들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유명한 시죠. ‘촛불이여, 나는 너의 삶을 본받고 싶다. 네 몸을 불태우면서 만 중생을 밝히는 너. 나는 너를 본받고 싶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불태운다고 하는데 이는 번뇌를 불태우는 의미와 같아요. 탐진치 삼독번뇌를 태우는 것입니다. 이 몸뚱어리는 욕심덩어리거든요. 덩어리가 있는 이상 이기적인 마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몸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생리학자들은 운동이 보약이라 얘기합니다. 운동처방이란 말, 운동을 너무 안 하니까 그래요. 자기 몸을 자꾸만 불태워야 건강합니다. 몸을 불태우지 않으니까 내장 지방이 생기고 비만해지는 겁니다. 비만은 백병의 원인입니다. 열심히 운동하세요. 아무나 중심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나 핵심의 위치하는 서는 게 아니에요. 항상 긍정적이 돼야 되고,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고 자신을 불태워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공부한 자들만이 ‘영원’을 알게 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기를 불태우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끊임없이 ‘이게 뭐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자기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아기들을 보세요. 태어나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많은 질문을 하잖아요. “엄마, 왜 하늘이 파래?” “엄마, 왜 이거 안 해?” “엄마, 애기는 어디서 나와?” 온 세상이 궁금해져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 기간을 절대의문의 시기라고 하는데 의문 가운데 발전하잖아요. 끊임없이 알아가는 거죠. 그렇게 자라나 이른바 사춘기가 되면 여자는 여자의 성징이 나타나고 남자는 남자의 성징이 나타납니다. 이제 그들은 미래에 가정을 이루고 숙명적인 길을 가야 되니까 여러 가지 개똥철학을 운운하게 됩니다. ‘삶이 왜 이렇게 힘든가?’고민하다가 이유 없는 반항을 하기도 해요. 장자크 루소는 사춘기를 제2의 탄생기라고 했습니다. 제1의 탄생은 몸뚱어리의 태어남이고, 그 다음이 독자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제2의 탄생이고, 이제 제3의 탄생기가 있어요. 제3의 탄생기에는 성인으로서 결혼을 해 살다 보니까 모든 게 시들해집니다. 남편도 시들하고 아내도 시들해져요. 그러면 이런 얘기를 하게 돼요. “절엔 나이 들면 다니는 거야.”, “종교는 나이 들어서 믿는 거야.”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네, 나이가 들면 죽음이 안개처럼 점점 다가옵니다. 그러면 또‘인생이 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점점 죽음이 덮쳐오니까, 영혼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위대한 종교의 천재들이 발명해낸 게 화두(話頭)입니다. ‘의문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그 의문이 완전히 깨지는 날이 온다’ 그럼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거예요. 그게 화두의 진정한 의미예요. 대신 엉성하지 않게 분심을 가지고 정말 정열적으로,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존재들이 태양이 되고 빛이 되고 중심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죽음 저편으로 넘어갈 때 평상시에 죽음 대비를 열심히 했다면 ‘아, 이게 그건가?’ 금방 깨달아 버리니까 저승의 십대왕들도 ‘이 녀석은 공부를 많이 했구나’ 특별대우하게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부한 자들만이 영원을 알게 됩니다. 항상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세요. 열심히 자기 자신을 불태워야 해요. 우리는 자신을 불태우러 이 땅에 온 존재들입니다. 먹고 뒤룩뒤룩 살찌려고 온 게 아니에요. 지방질을 불태우세요. 몸과 마음을 불태워야 합니다. 삼독번뇌를 불태워 빛이 되어야 합니다. 번뇌를 불태우면‘니르바나’열반이 되는 거죠. 그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사람과 더불어 있으면 따스움을 느끼는데요, 사랑을 느끼는데요, 지혜를 느끼는데요. 그 사람에게는 저절로 사람들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해보세요. 제가 축원할 때 보면 ‘재판승소발원’도 올라옵니다. 하도 재판이 많으니까요, 이해상관이 많으니까요. 재판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답답하고. 그런데 저승에 가서 열 번 재판 받는 것은 더 기가 막힙니다. 그걸 아셔야 해요. 저승의 재판은 에누리가 없습니다, 저승재판은 감당불능입니다. 자기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아귀보에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축생보에 걸어 들어가게 만든대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도저히 저항을 못하는 거예요. 지옥 아귀 축생 안 가고 여기 이렇게 인도환생한 건 다행이라는 거 아녜요. 삼악도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건 부처님 직설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땅에 권력이나 드날리고 돈이나 벌려고 온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삶의 관점이 잘못돼 있어서‘돈이 최고야, 권력이 최고야’합니다만 부처님은 전생의 복업 따라 일정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물질이 주어지고요. 세 번째로 인연관계가 주어진대요. 시간과 물질과의 관계. 그러니까 이 시간과 공간과 인연을 얼마나 지혜롭게, 자비심으로 관리하다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누리려고 온 게 아니에요. 물질을 잘 관리해서 많은 사람에게 잘 베풀고 가는, 인연을 지혜로운 사랑의 마음으로 관리하는 것, 그게 인생이래요. 그 때마다 부처님 나라와 통신이 가능합니다. 그런 일련의 모습들이 부처님 나라의 기록에 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 물질, 인연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과보가 무섭습니다. 철통 같이 검사받아요. 저승에서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자기가 지은 대로 가게 돼 있습니다. 제가 거듭거듭 말씀드립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도 왕개미가 있고 벌들의 세계에도 시스템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세계에도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 하늘나라의 별들도 천왕이 있어요. 그런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가면서 성불의 길을 가는 거예요. 법으로부터 이탈돼 있는 세계는 없습니다. 우주 자체가 법계예요. 그걸 아셔야 해요. 눈 가리고 아웅,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금 안타까운 현실이 북한에서는 핵폭탄을 만들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위험한 상태라고 하잖아요. 핵전쟁이 터지면 핵겨울이 오고 빙하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 만이천 년 전의 유럽의 지질은 전부 빙하기 토양입니다. 수질이 나빠요. 그래서 독일에선 보리를 키워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고, 남쪽나라에서는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어서 마시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에게 어떠한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걱정하지 마세요.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습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서 투철하게 내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 둘을 불태워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남 탓하지 마세요. 나는 누군가에게 뭘 해줄 것인가, 나는 남편에게 뭘 해줄 것인가, 나는 아내에게 뭘 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자리를 가지고 계속 나가야 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영원성을 발견하지 못하면 영원도 영원성을 거두게 됩니다. 무명이 됩니다. 영원성을 개발해나가는 게 우리의 숙명이에요.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이 물이 H</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O로 돼 있느냐, 이런 거 따집니까? 그냥 물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열심히 사는 겁니다. 부처님이 다 아세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한 사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좋은 말을 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해요. 좋은 글을 써요. 마음을 자꾸만 닦으면 닦은 말을 합니다. 닦은 생각을 하고, 닦은 행동을 하고, 닦은 글을 쓴다니까요.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유수한 기업들이 마음 닦기에 나섰어요. 명상을 하면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아이디어가 촉발되거든요. 구글에서는 창의주치제도가 있어서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담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를 온전한 길로 가게 할 것인지, 그릇된 길로 가게 할 것인지, 안타깝지만 어쨌든 우리의 내면세계는 부처님 나라를 만나려고 악을 쓰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우주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된 철통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SPAN></P>2018-01-31 오후 2:12:57한가운데로 가라 큰 길로 가라. 부처님 나라가 열린다 /Media/law/Read.aspx?db_cnt=75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하나의 마음, 일상이 무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일수록 큰 힘을 갖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과거 유라시아 전역을 호령했던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나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그 대표적 인물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페이스북이니 구글이니 하는 아이디어 역시 지구의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지로 탄생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의 마음, 일상이 무상이요 무상이 무한상이라, 하나의 마음이 온 우주의 영광을 함께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주만유는 유와 무, 착함과 선함, 남자 여자의 각각 상대성을 지녔습니다. 서양에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라고 하는데 사실 만유는 대립이 아니라 이른바 없는 것이 점점 있게 되고, 또 착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악한 사람이 회심하기도 하고요. 대립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 관계인 것입니다. 부처님도‘불행은 행복이 기대는 곳이고 행복은 불행이 엎드리는 곳이다’라고 하셨거든요. 행불행은 항상 교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로 할 수 있을까? 하나로 하는 위대한 힘은 사랑이라고 그럴까요, 자비라고 그럴까요, 지혜라고 그럴까요? 부처님은 ‘자비와 사랑의 크기만큼 번창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크기, 자비의 크기의 토대로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넷이 나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모두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아, 난 농사 안 짓는데요?” 아니에요. 직장에 다니는 것을 포함한 매일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 어디를 가든지 다 농사짓는 일이예요. 참 묘하게도 일 년의 절기(節氣), 한 해의 흐름은 불교적인 차원과 연결돼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 설이 되면 온 국민이 고향으로 모이잖아요. ‘올 한 해 잘해보자’다짐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님에 대한 예를 올립니다. 우란분재, 한가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는 우주의 본원이거든요. 우리가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길, 하나의 마음을 양성하기 위해서 그래요. 내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나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겠는가 하는 하나의 마음, 사랑과 자비 지혜인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성철스님이 하신 걸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청원유신선사의 말씀인‘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보세요. 산조차, 물조차 영원히 그 자리에 있지 않잖아요. 그런데‘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라고 역설하셨어요. 또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하셨으니 부정을 통한 긍정, 대립조차도 조화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실을 사랑으로, 긍정으로, 부정을 통한 긍정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만유는 전부 도(道)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도(正道)로 가야 해요. 사도(邪道)로 가면 일이 순조롭지가 않아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견디어 나아가세요. 비워지면 채워지게 돼 있습니다. 채워지면 또 흐르게 돼 있고요. 달도 차면 기울게 돼 있잖아요. 전부가 돌고 돕니다. 내가 뭘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면 머지않아 어디론가 흘러나갈 게 분명해요.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그릇을 비우라 하셨어요. 비우는 게 공덕을 쌓는 것이고 비우는 것이 자비고 사랑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광의 기본은 사랑이고 이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끌어당기려고만 합니다. 끌어들이는 건 반드시 나가게 돼 있거든요. 모든 이질적인 내용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인 후에야 조화와 장엄의 길로 나갈 수 있어요. 부처님 말씀대로 백 천 가지 물줄기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다, 화엄의 대해로 가게 됩니다. 하나가 된다 이거예요. 모두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그 바탕은 사랑의 힘입니다. 대립이 아니라 조화를 통해서 이 우주의 도리를 터득해가야 합니다. 조화에 의해서 통일되고 보존이 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에는 항상 유와 무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신심명에 나오는 대로 ‘한쪽으로 쏠리면 너희가 어떻게 도를 알겠느냐’이겁니다. 도는 하나로 묶는 힘입니다. 우리가 도를 닦아놓으면 모두 그 길을 따라가잖아요. 정도로 가야합니다. 가만히 보세요. 기록에 보니까 IMF 때 우리나라의 30대 재벌 가운데 반 이상이 없어졌다는 거 아녜요. 가끔 가다가 변란이 벌어지면 사라져 버린다니까요. 대비를 철저히 하고 살아온 사람들만이 그 난관을 타파하는 거구요. 개인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고, 이 지구문명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파동이 치는 세계니까요. 삼재가 들었다 하더라도 준비가 잘된 사람은 쉽게 넘어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융복합의 시대라고 그러잖아요.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이게 돼 있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려합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서 갈고 닦아서 고요해진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삶의 근원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그러면 불행이 엎드려 있는 곳이고 불행하다면 행복이 기대는 곳입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불행은 없습니다. 사랑과 감사는 하나의 마음입니다. 아내의 사랑에 대한 감사, 남편의 사랑에 대한 감사, 하늘에 대한 감사, 조상님에 대한 감사, 신령스러운 존재들에 대한 감사일뿐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부른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이 사랑을 부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정반합(正反合)</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상은 하나로 회귀하려는 순환적 운동을 기초로 합니다. 대립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대립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조화하는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변증법적인 통일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것은 원래 공간사상, 이른바 용수보살의 중관사상에 의해 나온 건데, 헤겔이 공부해서 정반합의 원리로 도출해낸 겁니다. 마음은 불멸이죠. 영원을 추구합니다. 도는 불멸, 하나의 길, 영원의 길을 닦는 거예요. 행복하고 완전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항상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만 해요. 한 해 농사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피와 땀과 눈물을 흘러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도가 깊어지는 거예요. 피가 튀고 땀이 튀고 눈물이 튀는 최고의 교육현장, 전쟁터라는 거예요. 전쟁은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만드는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게 전쟁을 하지 않으면 하나로 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가 막힌 게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을 어떻게 교육시켰어요? 항상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어요. 결국 자기가 아들에게 당하지만 말이죠. 사랑으로 모든 걸 포용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면 죽이고 살리고 난리가 납니다. 이 역시 정반합의 원리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근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부정이에요, 대립이고. 반대적인 일이죠. 정(正)과 반(反)을 슬기롭게, 조화롭게 넘어가야 합(合)이 되는 거예요. 안 되면, 터지면 터지는 대로 또 하나가 돼야 하고요.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하나가 되는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삶은 전쟁입니다. 한 해를 사는 것도 전쟁이고요. 다만 참고 견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은 무상하게 흘러가게 돼있습니다. 어느 사물도 고정적이지 않아요. 중심을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도의 근본적인 작용입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의 고마움을 누리고 살지만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합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로 만나야 되는데, 그 방법론에 있어서 사랑과 자비, 지혜로 가야 하는데, 사랑에 반하고 자비에 반하고 지혜에 반하니 극단적인 측면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아야 하고 감사를 담아야 합니다. 말 한 마디에 감사를 담고 사랑을 담을 때 복을 부릅니다. 생각 하나에도 사랑을 담고 부처님을 담고 자비심을 담아 보세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페이스북 사용자 2만 9천여 명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페이스북안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참 묘한 게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은 심장병에 걸릴 우려가 많습니다. 이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하는 결과를 도출해낸 거예요. 2만 9천 명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단어만으로도 그들의 삶과 병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에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를 관찰해보면 좀 격하잖아요.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부드럽게 해보세요. 그래야 병이 치료됩니다. 약 먹고 의사선생님한테 의존하기 전에 부드러운 말, 사랑과 감사의 생각, 사랑과 감사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선과 악의 계측</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국의 작가 토마스 모어가 쓴 글에 보면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세 시간 일하고 두 시간 논대요. 오후에 세 시간 일하고요. 모어는 책에서 인간이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하는 것을 이상적인 노동시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OECD국 가운데에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중의 하나로 꼽혀요. 좀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야 이상적인 국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 일을 해도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거든요. 장시간 일을 해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일도 생각을 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정신적으론 더 풍요로워져요. 그래야 뭔가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왕권을 제한하고 기술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대해 사회적 차별을 녹아낸 때문이에요. 민주주의를 내세워 사회가 자유로워 지다보니까 산업혁명을 꽃피울 수밖에요. 여유 시간이 많아질수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런 기술자들을 우대했으니 참다운 민주주의가 산업혁명을 부른 거예요.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초가 된 결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우리나라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서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긴 합니다. 이에 따른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타격이 클지 모르겠지만 과도기를 거쳐 위기를 극복해가면 더 큰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의 모든 기업이 어떤 변화의 흐름을 가져올 텐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류역사는 항상 대변혁을 거치면서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이 서로를 보듬고 하나가 되는 마음을 지켜가야 해요. 개개인마다 어려움이 없도록 보살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도 절대로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일본의 다카타란 기업을 아세요? 세계적으로 최고의 자동차 에어백 만드는 회사였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불량품이 나오는 바람에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작은 부품 한 개의 결함으로 기업의 생사를 가르잖아요. 하나가 전체예요, 전체가 하나고요. 큰마음, 대도를 가는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것이죠. 하나가 둘이 되고 무한이 되는 거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몸을 등지면 당장 마음의 나라로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이란 계측기를 가지고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착한가를 계량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지장경에서 ‘부처님 나라에는 너희의 진실과 호의, 선함을 계량하는 계측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나라에서는 마음을 계측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의 물건을 만들 때마다 껍데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정성스러운 마음이 들어가 있는가, 이걸 계측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나라에서는 마음을 계량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한가, 악한가,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가, 거짓인가를 계량한다는 거예요. 제품을 만들 때 이른바 껍데기와 더불어 거기에 알맹이가 같이 가야지 껍데기, 허우대는 멀끔한데 알맹이가 속빈 강정이라면 곤란합니다. 당장 내가 상대방에게 만 원을 줘요. 또 다른 상대에겐 십만 원을 줍니다. 그럼 만 원을 주는 마음하고 십만 원을 주는 마음하고 같아요, 달라요? 전혀 다르죠. 근데 또 만 원을 줄 때 ‘내가 저 친구한테 만 원을 주게 되면 뭔가 반대급부가 있겠지’ 이렇게 따지고 주는 수가 있고, 순수하게 주는 수가 있어요. 십만 원을 줄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걸 계측하지 못한다면 헛수고인 셈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도(道)는 마음 안에 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가다 자동차 부품 하나 때문에 몇 십만 대의 자동차를 리콜 하는 거 보셨죠? 손해가 얼마예요. 지난번에는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잘못돼서 손해는 물론 이미지 타격이 엄청 컸잖아요. 껍데기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 안에 얼마나 사랑과 자비심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도,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말에 사랑이 담기는 것과 같이요. 생각에 사랑이 담기고 감사가 담겨야 합니다. 행동에도 마찬가지예요. 몸을 계측한다는 건 결국 마음을 계측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몸의 세계를 계측하지만, 4차원에서는 마음의 계측기도 있습니다. 3차원의 세계에선 이런 마음의 아름다움을 계측할 수가 없어요. 조상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부처님 전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세요. 우리가 잘한 것도 있지만 부처님 덕분이 아니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또 부처님의 음덕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합니다.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빼놓고서는 삶을 번창시킬 수 있을 만한 방법이 달리 없어요. 정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화엄경에 보면 ‘한 나라의 왕이 되려면 그 나라 모든 국민이 과거생에 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다’라고 나와요. 한 나라 왕이 되려면 그 나라 모든 국민이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래요. 그만큼 공덕을 많이 지어야 한 나라의 왕이 된다는 것이죠. 당장 보세요, 내가 상대방한테 짜장면 한 그릇 사요. 그럼 내가 누구와 다툴 때 짜장면을 얻어먹은 그 친구는 내 편을 들겠어요, 다른 친구의 편을 들겠어요? 나의 짜장면이 그 친구 뱃속에 가 있잖아요. 당연히 내 편을 듭니다. 사랑의 크기만큼 커지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걸 탓할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자비와 사랑이 결핍돼 있음을 탓해야 해요. 절대로 조상 탓할 거 없고 누구도 탓할 거 없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의 결핍과 자비의 결핍. 사랑과 자비와 지혜는 연결돼 있는 거잖아요. 하나입니다. 온 인류를 하나로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살다 보면 어디든지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럴 땐‘아, 내게 사랑의 결핍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절대로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높은 것은 낮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높음은 낮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합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거예요.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깁니다. 도(道)예요.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인생은 잘될 것이란 보장도 없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지구 자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기술이 전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요. 이제는 하나가 되는 이데아를 가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초연결, 초융합의 시대로 가니까 마음도 같이 발달해가야 해요. 그런 모두를 장악한 존재가 유대인들이라는 것이 기가 막히잖아요. 그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탈무드, 토라 공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미국의 10대 부자 가운데 일곱 명이 유대인입니다. 빌 게이츠에서부터, 저커버그까지 그들은 돈을 벌어서 ‘내 재산 전부를 인류를 위해서 내놓겠다’라는 거대한 마음을 내잖아요. 우린 너무 베풀 줄 몰라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압니다. 3차원 세계에는 몸의 계측기가 있지만 부처님 나라에는 마음의 계측기가 있다니까요. 말 하나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계량이 가능합니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마세요. 복 받을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항상 기도합시다, 부처님 말씀 공부합시다, 그러잖아요. 우리는 정말 각성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디서나 마음을 하나로 아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대우주의 도는 하나의 마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결국 수행을 통해서 극복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를 닦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법이 밝아집니다. 화려함의 배후에는 항상 수행이 있어요. 그 길로 가야 부처님 나라와 통합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불자가 되시기 당부 드립니다. </SPAN></P>2018-01-24 오후 3: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