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http://nungin.net/Rss/rssGiGwang.aspx지광스님의 좋으신 말씀입니다.ko우리는 부처다. 우리는 왜 중생으로 전락하였나. 한 생각의 의미를 깨달아라/Media/law/Read.aspx?db_cnt=80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우리가 중생으로 전락하여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를 알아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엇이든지 생겨나면 소멸되게 되어 있어요. 생겨나면 소멸되는 당체를 생명체라고 부르죠. 생겨나니 언젠간 떠나게 돼 있어요. 생멸이 있는 세계는 모두가 다 상대성의 세계입니다. 본래가 다 부처님이라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중생세계에 떨어졌을까. 내가 왜 이렇게 이 땅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여기 왜 이렇게 와서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겠어요. 다 이유가 있죠.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문을 여니 순간 팔 천생이 다보이고 이 우주가 상전벽해로 만들어지고 머물고 파괴돼서 공으로 돌아갔다 또 다시 생겨나고, 머물고, 파괴되고, 공으로 돌아가고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많이 목격 했노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부처님은 생생하게 정말 다 기억하고 계신가 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자기가 한 생각의 잘못, 한 생각으로 인해 중생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하고 환생하면서 부처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다 겪고 있는 존재입니다. 한 생각 - 그 생각이 바로 나와 여러분들로 하여금 중생 세계에 떨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고,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 그 생각이 바로 미래입니다. 생각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생각이 있음으로 인해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또한 좋은 생각을 일으키면 좋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게 되고,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면 그런 부류가 끼리끼리 모여서 부풀어 올라 문제가 아주 어려워지기도 해요. 우리가 과거를 기억 못해도 사라지진 않아요. 우리는 과거 생도 모르고 우리가 출발해온 시발점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죠. 모든 것은 이 한 생각이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생각이라는 건 바로 한 생각으로 전락하는 상대성의 세계라는 거죠. 기독교로 치면 낙원에서 추방되는 시점인거죠. 타락한 천사가 되는 거죠. 그 시점이 한 생각 - 상대성의 생각입니다. 그 상대성의 생각 떨어져 나오는 것을 불교에서는 무명이라고 불러요. 무명이면 행이요, 행은 식이요. 무명을 타파하면 광명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겁니다. 내가 부처님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천지가 열리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알려면 계속 거슬러 올라가야겠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참선할 때도 고요히 지켜본다고 하잖아요. 고요히 지켜보고 있으면 계속 흘러가거든요.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지켜보는 나가 있어요. 끊임없이 지켜보기만 해요. 관이라고 하기도하고 견이라고 하기도하고. 그 지켜보는 나가 나를 본다니까요. 부처님 세계는 선도 악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중생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니까 선도 악도 있다 그러거든요. 상대성의 세계에 떨어진 존재니까 일어나는 생각조차도 허상이에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이미 생각의 길이 나 있으니 그 다음 생각이 또 일어나요. 그런데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라 힘을 가져요. 방향성도 가져요. 내가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저기 가야겠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 목표가 생기죠. 그런데 상대성의 세계에 떨어지고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나와 남이 갈라져 버리거든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본래 나라는 건 없는 거고 생각 자체도 허상입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냥 원판 그대로 절대 세계에 있는 그런 상태로 머물죠. 부처님 세계를 선이라고 하면, 나를 위주로 하는 생각은 악이 되는 거죠. 상대방을 생각해서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을 선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나라는 선밖에 없어요. 중생 세계로 떨어지면서 악이 생긴 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나라에서는 우리 마음속에 두 개의 나가 있다고 해요. 하나는 진짜 나, 다른 하나는 가짜 나, 허상의 나죠.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 범죄자 불순분자 불구자 매춘부 등에게- 왜 저렇게 살지? 하면서 우월감을 가지고 그들을 저열한 사람이라고 멸시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지시면 안돼요. 그게 환생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에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하대하면 그 다음에 언젠간 그들의 삶이 나의 운명, 나의 길이 되는 겁니다. 그들 또한 한 생각의 잘못으로 그 길을 갔거든요. 그들도 언젠간 모두가 다 부처가 될 존재입니다. 누가 재벌이다, 대통령이다. 권력자다 뭐다하면 이 세상을 살 땐 그들이 힘을 쓰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여요. 여러분도 과거에 권력자일 때도, 재벌, 별나라 천왕이었던 적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스러져버리면 허상이고 다 소용 없어요. 이 땅에 사람으로 나올 때 만일 불운한 운명을 가지고 어려운 삶을 살고, 부모를 잘못만나고 이런 게 전부 우린 업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그게 전부다 생각의 잘못으로 인해서 그렇게 어렵게 살게 되면서 그들에게 깨달음이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살아가시면서 왜 내가 모진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이런 생각을 하시죠. 우린 전생도 기억을 못하고 몇 년 지난 것도 다 망각하지만,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가 다 찍어두고 기록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탁월한 인물들도 그들의 삶 가운데 고귀한 목표, 영원을 가는 이데아를 잊고 살아요. 마음 가운데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나 자신의 실상을 모르고 산다는 건 어둠을 헤매고, 무지 속에 살면서 마음속에 황무지를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관점, 정견, 바른 지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지 실수를 덜하고 참회할 수 있습니다. 돈이면 다고, 권력이 최고고 이런 사람들 안타깝죠. 그들도 언젠가는 고통 속에서 깨달을 날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멸시하고 경멸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감옥에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잘못해도 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많잖아요. 헬렌켈러 - 그런 분들께 박수를 쳐주세요. 우리가 끊임없이 계속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돌아가시면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삶의 주어진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사셔야지 방향타가 상향곡선으로 될 수 있어요. 뭔가 개심을 했구나 싶은 친구들은 궤도가 달라져요. 달라질 수 있으니 개심을 하고, 부처님 전에 나와 공부하셔야 할 이유가 그래서 있는 거예요. 중생들이 좋아 하는 것 - 돈이나 권력 - 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관점을 교정하고, 도를 닦아야 나의 행로가 달라집니다. 땅을 하나 샀는데 거기에 도로가 나면 대박 터진 거죠. 그렇듯이 길을 내야하고, 길을 닦아야 합니다. 길이 나서 대박 터지듯 마음의 길. 마음의 도를 닦아야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어요,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항상 죄악의 구렁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물어야 되는 게 나는 여기에 무얼 하러 왔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만상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한 생각이 오롯이 일어나서 이건 잘못된 길이구나를 깨닫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내가 바른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는 순간에 밝음의 길로 가니까 불보살님과 천신들이 여러분을 호위합니다. 내가 그릇된 생각을 하면 악마들이 들끓어 악도로 끌고 가는 거예요. 악마가 별 다르게 존재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악마가 있어요. 생각이 생각을 부르는 겁니다. 악마는 다 허상입니다. 이 우주는 너무 정교한 법칙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정말 에누리도, 터럭만큼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연이란 게 없어요. 인연이란 말 자체가 필연이고, 이 우주 자체가 필연이고 인연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한 생각의 의미를 알고 고통을 통해 배우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언젠가 제가 로켓공학자 얘기를 들었는데 우주로 로켓을 쏴 올릴 때 오차가 있으면 터져 버린데요. 볼트 하나라도 잘못 조이면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볼트를 만드는 쇠의 재질 등 이런 거 정밀하게 체크 되지 않으면 순간 수천억 들어간 거대한 로켓이 허공에서 그냥 불꽃놀이처럼 팡 터져 버린다는 거예요. 미국에선 한 칠천 억이 드는데 인도에서는 칠백 억으로 만들었죠. 미국에서 그런 탁월한 로켓을 만들 정도의 과학자들은 인도에서 받는 급여보다 네 배를 더 받는데요. 국가와 민족, 자존심을 가지고 한번 해보자하고 과거에 노벨상을 받은 인도인 로켓공학자가 그걸 해냈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면 월급 많이 주겠다고 했는데 자기는 내 고국으로 가야된다하고 해서, 그 사람이 오니까 그 밑에 세계적인 인물들이 따라 모여서 월급도 별로 안 받으면서 10분의 1로 비용으로 쏴 올렸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돼요. 우리나라도 좀 그런 게 있어야 됩니다. 마음이 먼저이고 물질은 의식의 부산물입니다. 부처님께서 좋은 마음은 좋은 물질을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모든 물질은 생각의 부산물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는 순간 어떤 물질이 만들어져요. 에너지가 뭉쳐지면 파워가 되고 파워가 뭉쳐지면 질량이 되는 거니까요. 심지어 우리 몸에 도파민 같은 좋은 물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나빠지면 이 좋은 물질이 한 순간에 아주 무서운 독성물질로 변한다는 겁니다. 학자들이 연구하고 보니까 우리 몸에 살모사 못지않은 독이 나온 데요. 우리 인간이 어떻게 보면 살모사보다 더 잔혹하고 무섭죠. 제가 법회 할 때마다 소립자 양자 중성자 전자 이런 과학 이론을 설명 드립니다. 소립자 등을 연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관련 도서 및 자료를 자주 접합니다.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생성이 같은 맥락, 같은 이치라 그걸 공부하지 않으면 불교가 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원판 그대로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되고,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질 않아요. 한문만 백날해서는 이해가 안돼요. 그러니 설명 안 되는 계를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죠. 어떤 공부도 전부다 빛이 되고, 부처님 말씀을 설명해주는 내용이거든요. 어느 학자가 노벨상을 하나 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부처님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은 바로 물질입니다. 나쁜 생각이 일어나니까 살모사의 독에 못지않은 독 물질로 변하는데 그게 바로 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에요. 도파민하고 분자구조가 너무나 같아요. 사람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니까 독이 머금어지면서 좋은 물질이 독 물질로 변하는 상황을 파악한거에요. 그래서 이 아드레날린의 학명은 메틸 옥시도파민으로 불려요. 극과 극은 통하는 겁니다. 정말 착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게 된다면 독사 이상의 더 무서운 존재가 되죠. 여러분이 공부를 통해 내가 나쁜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겠구나, 내 몸의 좋은 물질이 나쁜 물질로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시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독성이 생겨서 치매가 머리를 깨뜨립니다. 치매가 와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 번지 점프 아세요?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 하니 진짜 아찔합니다. 부처님 경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우리가 부처님 나라에 있다가 물질의 세계로 번지점프를 할 땐 정말 아찔하고 고통스럽고 무섭죠. 우리가 부처님 존재였는데 차원 낮은 세계로 떨어지게 되면 무섭거든요.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고통인거에요. 업 인거죠. 끈이 매달려 있으니까 떨어져도 안 죽는단 걸 아니 안심이 되긴 하지만 정말로 떨어진다 생각하면 아찔 한거죠.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세계로부터 이 땅에 내려와서 고통 받는 건, 굉장히 차원 낮은 진동 속으로 떨어져 나왔기에 인간들이 고통스러운 거예요. 부처님 나라, 하나의 세계 절대 계에 있다가 한 생각의 잘못으로 상대계로 떨어져버리니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이 세상에 와서 물질계의 옷을 입고 여기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면서 계속 공부하는 거예요. 고통은 모두 배움이거든요. 어떠한 고통도 다 빛으로 가는 길이에요. 감옥에, 병원에 계신 천사님들, 사형수라 하더라도 부처님이에요. 기독교에서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악마들의 세계라고 하지만 그들은 거꾸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 나라에는 너도나도, 감옥에 계신 분들도, 지옥에 계신 분들 모두 부처님들이에요. 지옥의 부처님들을 제도 하려고 지장보살님이 지금도 고행하시잖아요. 지옥에 계신 부처님. 감옥에 계신 천사님들이라도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 밖에 안 보이거든요. 부처님 나라에는 죄가 없어요. 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이라는 말이 있듯이 참회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하세요. 너무 죄의식에 시달리지 마세요. 본래 그 자리는 죄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감옥에 있다거나 불순분자라거나 범죄자라 해도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지 마세요. 언젠가 그들도 부처님 되실 분들이니까. 모두 다 선생님들 입니다. 부처님 눈에 그저 측은할 뿐이에요. 살인범이든, 매춘부든. 불교에서는 희생자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희생이라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가 그와 같은 상황을 받아 들여야만 될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항상 깨어서 수행하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사실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인데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이런 게 없는거죠. 우리가 잠 속에 들어가면 과거 현재가 막 녹아버리죠. 전생도 보이고 선몽도 받고 미래가 보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이기도 하고-그건 과거거든요. 영원의 세계가 보여요. 그런데 현실 세계는 그게 불가능해요. 근데 우리가 꿈속에 들어가면 차원의 전이가 자유자재로 일어나요. 그러니까 누구라도-불구자든 살인자든 그 사람들에게 우월감이 있거나 멸시한다거나 냉담하거나 이런 사람은 분명히 장차 언젠가 불구자가 되는 자기를 볼 겁니다. 살인범이 되어있는 자기를 볼 겁니다. 정말로. 우리가 남들과 분리 되어 있다는 건 전부 환상입니다. 지금 여기 떨어져있는데 여러분들이 부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부처님 생각을 안 하나요? 이 모두가 환상인데. 내가 돈 많고, 권력이 있다 해도 그게 한 세상이면 끝이 난다니까요. 우리가 하나에서 분리 되어 있다는 생각이 환상이고 그 환상 때문에 공포도 있고 괴로움도 아픔도 있고 내가 분리 되어 있다는 생각도 있어요. 모든 공포의 원인, 모든 악의 원인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 때문에 생깁니다. 분명한 사실은 현실이 꿈이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생각은 모두 환상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일으키는 생각 이게 전부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다 죽어가면서 내가 잘 산다 못 산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환상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처예요. 왜 중생이 되었는가 한 생각 무명 때문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고 사라짐을 주시하는 게 선이에요. 항상 깨어있어라. 수행하라. 공부하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는 허상입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부처님 직설들이에요. 만상이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처럼 느끼는 너희들은 착각하고 있다. 너희들을 교육시키려는 내용들이다. 이건 모상, 모형이라니까요. 뒤집어쓰고 살면서 교육 받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일생동안 교육받는 겁니다. 장난감도 실물과 똑같이 만들잖아요. 제가 어떤 회사 사장님께 옛날에 정말 잘되고 싶으냐고 물었어요. 그럼 장난감 가게에 가서 비행기 모형을 사서 사장실에 갖다 놔봐 하니 거사가 비행기 모형을 몇 만원 주고 샀답니다. 진짜 그 후에 회사가 상승곡선을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마음 이라는 게 근본이거든요. 장난이 아니에요. 우리의 이 육신은 전부 모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환상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계속 말씀드리는데 꼭 몸과 마음을 잘 다지면서 참선 명상을 해보세요. 제가 단언컨대 부처님 나라를 당장 수행을 해서 내가 몰입해서 들어가면 환희의 세계, 연락의 세계로 몸이 백회혈과 단전이 밀고 터지면서 천지가 통하고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환희와 연락을 체험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나와요. 차원이 달라질수록 즐거움이 더하거든요. 꼭 좀 몸을 단련하세요. 몸의 회로를 열어놓고 계속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짜 체험을 해보시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으니 꼭 해보세요. 정말 확 열립니다. 여기가 환상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 높아질수록 체험하는 즐거움은 더 황홀해요. 악이 허상임을 알게 되고, 내 안에 부처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모두가 다 부처님 나라로부터 타락한 천사들이에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추방시킨 겁니다. 누가 나를 이 땅에 내려 보낸 게 아니에요. 스스로 말고는 그 누구도 우리를 추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건 환상이에요. 자꾸만 의식주, 먹고 살 걱정을 하지만, 여러분 정말 부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넋 나간 육신의 요구에 자꾸 복종하다보면 그게 나의 인생인줄 알아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신 나라에서 두려움 증오 갈등 대립이 넘실되는 나라로 만들어 버린 건 우리 자신의 죄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꾸만 압박 받으면 그 사람이 크잖아요. 어떤 종류의 싸움이든 간에 상대방을 강화시킵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안 죽으려고 하거든요. 싸움은 상대방을 더욱 힘 있게 만듭니다.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면 그냥 지나가 버리면 스스로 쓰러져 버립니다. 우리 몸에는 영원과 통하는 채널이 있어요. 우리는 부처이며, 우리 몸과 생각을 배포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세상은 많이 굴절되어 있거든요. 한 사람 두 사람 자꾸 부처님 나라를 우리 법당의 많은 분들이 체험하면 정말 막 번져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정말 백회혈을 여는 수행이 잘 없으니 꼭 하도록 하세요. 자 마치겠습니다.</SPAN></P>2018-11-08 오후 2:59:21 만상은 항상 양면성이 있다. 길함이 흉함이고 흉함이 곧 길함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라 /Media/law/Read.aspx?db_cnt=80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마음의 여유 삶의 현장을 살펴보면 일이 잘 풀릴 때 ‘아, 잘 나가는구나’하면서 자칫 마음이 해이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일이 잘 되갈수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내면 좋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르고 내림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옛날 선인들은 호사다마(好事多魔)를 얘기했나 봅니다. 지난여름 엄청 더웠습니다. 지독한 더위라 하지만 더울 때는 더워야 합니다. 또 추울 땐 추워야 하고요. 그래야 여러 가지 병균이 사멸하고 그 다음해 농사에 도움이 됩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지 아예 더위가 없거나 추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길함 가운데 항상 흉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흉함 가운데 길함이 들어 있으니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거든요. 한편은 양(陽)이고 한편은 음(陰)이라서 그렇습니다. 상대성의 세계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놓으면 반드시 낙하하게 돼 있거든요. 원아불퇴보리심이라고 그러잖아요. 마음을 놓으면 또 어디로 추락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게으르지 말라’하셨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마음자리는 전부 내 마음 따라 반응합니다. 자기 마음자리가 어떻게 운용되는가에 따라서 움직여요. 부처님이 우리에게‘성불하라’고 하신 이유도 영원히 승리하는 사람 없고 영원히 패배하는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잘나가다가도 무너지고 심지어 감옥에도 가잖아요. 법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고 수행해야 할 대상입니다. 내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과 마음은 순간순간 변해갑니다. 잘나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에 벌써 추락의 기미가 보인다고 그럴까요, 징후가 보입니다. 부처님이나 위대한 선사들이 얘기한 대로 자신을 경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순간에도 만상은 계속 작용하니까 그래요. 내가 좀 잘 나간다고 쉬어도 다른 사람들은 쉬지 않고 계속 가거든요. 한 번 길한 괘를 뽑았다고 지속적으로 길한 건 아닙니다. 또 한 번 흉한 괘를 뽑았다고 계속 흉한 것도 아니에요. 남자의 몸에 남성호르몬만 있는 게 아니고 여자의 몸에 여성호르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남자가 아니고 영원한 여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사홍서원‘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를 실천하며 살아가세요. 원력(願力),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어떤 구체적인 방향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원력은 일종의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 같은 겁니다.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야지요. 꿈이 이루어졌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세속 사람들은 전부 출세를 원하고, 사업이 잘 돼 돈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잘되고 나면 또 그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거예요? 그 다음엔 추락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의 원(願)은 무변(無變)을 말합니다. 중생무변서원도, 끝이 없단 말이에요. 오늘 같은 날은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을 발명해낸 민족이 유대민족이거든요.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하루 정도는 여유를 갖고 쉬자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삼보 일 배, 세 걸음 걷고 한 걸음 절하잖아요. 나아가면서도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엘다 샤피르라는 교수가 실험한 것 중에 재미난 게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큰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과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어요. 큰 가방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자기가 넣고 싶은 걸 충분히 넣습니다. 근데 작은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은‘이거 넣을까? 이거 뺄까?’하면서 여유 없는 마음이 작용해요. 부익부빈익빈 되는 근본 이유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들이 잘 될 수밖에요. 여유가 없으면 넣을까 뺄까 하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그만큼 일이 순조롭게 잘 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2.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순간 변해갑니다. 순간순간 천당과 지옥을 오가요. 이런 저런 선택을 강요당하며 사니까 답답하고 갑갑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큰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넣고 싶은 만큼 넣고 갈 수 있습니다. 작은 가방을 가지고 있으면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아쉬움을 키워요.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하란 법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고 나아가세요. 처절한 아픔 속에 있다고, 괴로움 속에 있다고 영원히 괴로운 거 아니니까요. 하늘을 우러러 몸과 마음을 던져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 어렵다고 영원히 어려운 법 없습니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그러잖아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생각이 달라집니다. 바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빈 마음의 공간이에요. 음악에서 쉼표가 더 중요해요. 뉴욕에 가면 센트럴 파크라고 하는 큰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을 설계한 로버트 모지스는‘만약 맨하탄 중심부에 공원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5년쯤 지나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지금 뉴욕 시민들에게 센트럴 파크는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휴식공간입니다. 그들은 그 공원을 너무너무 사랑하잖아요. 마음의 여유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세상은 계속 변전무상하게 흘러갑니다. 잘되는 날도 있고 못되는 날도 있습니다. 괴로운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습니다. 특히 뫼가 높으면 골이 깊은 것처럼 잘나가는 사람들이 급전직하해요. 그래서 인생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필요해요.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합니다. 결핍돼 있을 땐 악순환 됩니다. 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가? 왜 기도가 중요한가? 왜 진리의 말씀이 중요한가? 자문해보세요. 그래야 여유를 찾을 수 있고, 마음에 안정이 와요. 큰 가방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여유로우니까 스트레스가 덜한 거예요. 작은 가방을 싸는 사람이라면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등산을 갑니다. 또 바다에 가요. 왜냐, 너른 여유로운 공간이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거든요. 공간은 에너지 그 자체이면서 지혜를 줍니다. 무한과 영원이라는 건 신비와 절대성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먼 데 있는 걸 보면 신비롭기도 하고 또 영원성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절대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기도는 무지의 피난처’라고 하셨어요. 기도를 통해 무명을 깨야 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허공을 바라보면 답답한 게 좀 풀리는 듯 하잖아요. 공간이 부처님이고 허공이 부처님이에요. 서양에서 교회나 성당의 천장을 웅장하고 높게 만드는 이유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큰 회사나 단체, 심지어 나라가 무너지는 이유는 허공을 잊고 사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를 잊고 사니까 그래요. 하나를 등한시하면 찢어집니다. 개인도 때가 되면 떠나가야 되고, 나라도 때가 되면 무너집니다. 문명이 마찬가지에요. 수명이 다합니다. 치매박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겁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게 나이 들수록 운동을 안 한다는 거죠. 몸도 계속 움직여야 해요. 많이 걸으세요. 자꾸만 걷다 보면 마음이 정갈해집니다.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돼요. 백세 시대에 걸맞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세요.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있습니다. 그는 매일 걷는 걸 아주 중요한 일 중의 하나로 여겼답니다. 걸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대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옹고집쟁이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 옹고집이란 좋은 게 아닙니다. 옹고집은 누가 말하면 그걸 수용하기를 거부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그래요. 이게 문제라니까요. 누가 나에게 부정적인 말, 생각, 행동을 해와도 그 말에 관용으로 버틸 수 있는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가 인간의 크기입니다. 고집을 세우지 말고, 아집을 꺾어야 부처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알라야식의 식(識)은 기억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두뇌능력이 좋아집니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어요. 몸과 마음을 다하면 시냅스 패턴이 달라집니다. 3.마음이 고요하면 천하를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쓸 데 없는 건 빨리빨리 버려야 합니다. 번뇌 따위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쓰레기밖에 안 되거든요. 쓰레기 치우는 작업이 참선이고 기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떠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마음 가운데 갖고 살아가세요. 허공을 꼭 기억하면 신장님과 불보살님과 많은 인연령이 나를 지켜봐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재의식은 전체의식의 1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의식이 10분의 9거든요. 부처님은‘바다와 땅이 다 깨지면 너희는 어디로 가냐?’물으셨어요. 당연히 허공으로 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밥 먹듯이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허공이 되고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우세요. 쓰레기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야 합니다. 마음을 맑고 청정하게 가꾸며 살아야 허공이 도와줍니다.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신심명에‘좋고 나쁨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도(道)는 좋고 나쁜 것을 이기는 거예요. 좋으면 좋은 대로 좋고 나쁘면 나쁜 대로 꾸준히, 끊임없이 그냥 가면 됩니다. 또 많이 걸으세요.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영어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무조건 영화 한 편을 삼백 번을 봐라, 이랬다는 거잖아요. 삼백 번, 한 편을 씹어 먹으면 귀가 터진다, 이랬다는 거예요. 계속 하다 보면 귀가 열립니다.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계속 가다보면 열리게 돼 있습니다. 내가 좀 잘나간다 싶으면 항상 ‘이만치면 됐지’하지요. 그때부터 낙하산 타는 거예요. 그저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꾸준히 가야합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는 세계적인 천재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정신의학자가 그들을 살피다 너무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어요. 유명한 천재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 아이들에게 자폐가 많더란 말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자폐아 천국 같대요. 그 이유를 밝혀낼 수가 없으니 의사도 굉장히 놀란 거죠. 부모가 항상 몰입하는 습관에 젖어 사니 그게 아이들한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요즘엔 실리콘밸리에서 과학적인 측면보단 예술적인 측면, 인문학적인 면을 많이 적용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늘 고요하면 천하의 바름을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텅 비면 어느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계를 잘 지켜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계를 깨뜨리면 마음이 불안해지고요. 마음이 고요해지는 게 수행입니다. 수행을 나의 생활양식으로 삼고 살아가세요. 그것이 불자의 삶의 준칙입니다. 예를 들어 “술 한두 잔은 괜찮아.”합니다만 의사들 얘기로는 술 한두 잔도 절대로 나쁘다고 해요. 부처님도 신도오계 가운데도 살생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거나 팔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삶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거기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우리 몸 자체가 플러스마이너스로 돼 있거든요. 양자, 전자로 돼 있어요. 우리의 몸을 비롯한 세상 전부가 동글동글해서 돌아갑니다. 지구도 돌잖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요. 너무 전전반측하지 마세요. 그러면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합니다. 항상 여여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가면 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과 함께 가시면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어요. 불보살님, 신장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 모두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만상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길함이 흉함이고 흉함이 곧 길함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항상 부처님은 나와 함께 계시구나, 생각하며 살아가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궁리해야 합니다. 천수경에 나오는‘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이 치매를 예방하는 철칙이자 성불의 길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온통 현실가운데 적용됨을 깨달아 열심히 정진하시기 당부 드립니다. 2018-10-16 오후 2:27:48잘 죽는 것도 실력이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 바람의 방향은 언제든 바뀐다 2018.09.09/Media/law/Read.aspx?db_cnt=80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죽음, 하나의 선물 저는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저세상으로 모셔요. 세속말로 제 업은 시신을 모시는 일이지요. 돌아가신 분들을 매일 매일 만납니다, 매일 제사가 있으니까요. 평생을 이렇게 살다보니 정말 많은 분을 제 손으로 입관하고, 화장하고, 매장하고…. 오늘도 사십구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을 뵈면 느끼는 게 있어요. 이른바 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는 겁니다. 죽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양상이 평생을 대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주검을 대할 기회가 흔치 않으나 저는 매일 시신을 모시고 살잖아요. 항상 말씀 드리는데 여러분이나 저나 떠나가지 않을 분 아무도 아니 계세요. 따지고 보면 산다는 건 사실상 매일 죽어간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어가죠. 근데 사람들은 잘 산다는 것에 목을 맵니다. 돈 버는 일에만 열심이에요.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사는 것만 생각하고 허둥대다 정작 떠나는 시간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돼있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이야기 자체를 듣기 싫어합니다. 막상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들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영가들 역시 발걸음을 잘 떼지 못하고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풍처럼 왔다가 소풍 끝내고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상호는 천태만상이거든요. 사람의 눈빛은 속일 수 없다고 하는데 돌아가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겁먹은 눈, 두려움에 가득 찬 눈, 가고 싶지 않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이에요. ‘정말 죽는 것도 실력이구나’를 절감합니다. 우리가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워지지 않잖아요. 죽는 실력을 잘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이 땅에 해탈을 위해, 새로워지기 위해 왔거든요. 오늘 법회가 끝나면 집에 가서 조용한 시간에 자신의 위패를 써 보세요. 뭔가 새로운 마음이 들 겁니다. 우리의 몸 전체가 그렇지만 인간의 뇌는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해야 썩지 않습니다. 나쁜 말, 나쁜 생각, 나쁜 행동을 하면 두뇌가 썩어 치매가 쉽게 와요. 어리석음에서 오는 게 치매(癡&#21574;)거든요. 뇌는 제대로 쓰지 않으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죽음은 하나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세상을 끝내야 다음 세상이 주어지는데 말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나려면 죽음의 문턱을 잘 넘어가야 합니다. 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삶을 선물 받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지혜와 자비를 닦아가야 해요. 그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답니다.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는 것예요.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을 터이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래요. 이른바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스트레스를 즐기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걸 보셨잖아요. 정권이 수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어떤 몰골로 죽어갈지를 생각해보세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도 앞으로 어떤 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갈공명도 오장원 전투에서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괴테가 파우스트라고 하는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60년을 매일 몰입했다는 거 아닙니까. 60년을 노력한 작품이 파우스트래요. 매일 매일이 쌓여서 일생이 되잖아요. 그만큼 마음과 몸, 머리를 잘 써야 합니다. 소쉬르 말처럼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나 망하려고 들면 말부터 망합니다. 망하는 말만 쓴다는 거예요. 생각도 마찬가지, 행동도 마찬가지고요. 흥하는 자는 말부터 달라요.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마음과 몸과 두뇌를 쓰는 일입니다. 상대방을 살리는 말, 생각,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해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를 생각해 보면 당장 말 한 마디라도 신중히 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가 나를 흥하게 하고, 남을 흥하게 하고, 세상을 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두뇌를 썩게 만들기도 하고 두뇌를 활성화시키기도 합니다. 당장 내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보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된다, 된다’ 하면 정말 됩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정말 안 돼요. 부처님은 그릇 따라 담아주신다고 그랬거든요. 뭔가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된다, 된다’는 의지를 갖고 나아갑니다. ‘아, 뭐가 되겠나?’의심하면 될 일도 안돼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조차 부처님 뜻에 계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953년 예일 대학에서는 그해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인생의 계획이 있는가? 있다면 글로 써서 내봐라’하는 설문 조사를 했대요. 22년이 지난 1975년, 그 자료를 다시 열어보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체크한 거죠. 그랬더니 자기 계획을 문서화해서 ‘나는 미래에 이런 길을 가겠다’라고 정확하게 써냈던 3퍼센트의 학생들이 97프로가 가진 자산의 총합보다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한 사회지도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유심조 그랬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거예요. 생각이 곧 운명입니다.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디란 말은 깨달음이란 말이고 사트바란 말은 영웅이란 뜻이거든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보살의 삶을 살라는 거 아녜요. 성공하는 개인, 성공하는 단체, 성공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영원’을 압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무량한 존재들에게 자기의 모든 걸 던져 헌신해야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람회에 가 보셨죠?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 되는데 작품을 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보살의 삶을 살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과정이 주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망률이 더 높이 나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견딜 만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의 사망률은 그만큼 낮더라는 겁니다. 인간은 고통을 이겨내는 것만큼 강해집니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이 없잖아요. 고통 없는 인생 어디 있어요? 3.스톡홀름 증후군 아무리 사는 게 바쁘시더라도 조용한 시간에‘나는 임종할 때의 인상은 어떨까? 얼마나 평안한 얼굴로 죽을까? 누군가 나의 죽은 얼굴을 보고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나 저나 언젠가는 떠나갑니다. 즐거움 가득한 눈망울로 부처님 나라로 가야 해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도록 사세요.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말은 전혀 다른데 하루를 살면 하루 죽는 거니까 의미는 같습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마세요. 죽음을 회피하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죽음에 대한 자각이 투철할 때 자기의 실존을 인정하게 되거든요. 죽음을 자각하는 자만이 실존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입니다. 만상은 부처님의 거룩한 의지를 머금고 있습니다. 만상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내지 않으면 절대로 즐거움이 올 수가 없어요. 웃는 얼굴로 모든 고통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지난여름은 너무 뜨거웠잖아요? 하지만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의 구실이 있습니다.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래요. 계절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비분별을 떠나야 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돼요.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것이다, 앞쪽만 생각하지 말고 뒤쪽도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상을 즐거움 가득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어야 해요. 그 기억들이 자신의 개성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의 경험이, 기억이 개성을 만들고 그것이 쌓여 바른 임종이 되는 거예요. 우울한 기억, 쓰라린 기억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란 말을 하잖아요. 그래야 자신의 개성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저도 꿈이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은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이 전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가치하냐? 아니에요. 사람은 꿈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거든요. 지구란 땅덩어리에선 천년만년 살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만 딱 살고 가야 해요. 이제 어디로, 어느 학교로 갈 것인가, 이승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나가 관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승을 등진 다음의 영원성을 제대로 확신하지 않아요. 죽는 것도 실력이란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겁니다. 그저 죽음을 싫어하기만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고 나와요. 여러분의 죽음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거울까, 깃털보다 가벼울까? 나의 죽음은 자손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요즘은 남북이 대화를 하고, 북미가 대화를 해요. 예전엔 텔레비전에 북한의 지도자가 나오면 긍정적이지 않았잖아요. 요즘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아졌어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죠? 스톡홀름의 어떤 은행에서 강도 사건이 났대요. 은행 직원들이 일주일가량 강도들에게 감금됐어요. 다행히 그들은 인질로 잡은 사람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대신 다리에 쐈다고 해요. 결국 전투 끝에 강도들은 잡혔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재판정에 나가 강도들의 흉악한 일을 증언해 달라니까 하나같이 ‘난 안 하겠다. 머리에 총을 쏘는 대신 다리를 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북한에 시달리며 살다 보니까 요즘의 상황과 비교해 북쪽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적용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묘합니다. 부처님은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거든요. 우리는 이 땅을 등져도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부처님께 죄송스럽지 않게 살아야 해요.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영혼의 어버이, 그분이 나의 말과 생각,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부끄럽지 않게요. 왜냐하면 그게 다 점수로 매겨지고 실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괜히 우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영원이란 관점에서 말과 생각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하게 되면 매일 매일의 삶이 밝아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마음이 나의 영원성을 담보합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불안의식, 초조한 앙금을 걷어내는 묘방이 될 수 있습니다. 4.행복은 절댓값이 아니다 산다는 건 죽는다는 것과 같이 갑니다. 그 죽음을 자극하는 자, 그자만이 자신의 영원성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죽는다. 그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며 살아가세요. 죽음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용기 있게 직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역사가 기록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찬탄합니다. 죽음을 생각함으로 죽음의 절박함을 알게 됩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으로 삶이 더욱더 짜임새 있어져요. 삶속의 진정한 희열이랄까, 몸과 마음을 다해서 아내를 사랑해야 되겠구나, 남편을 사랑해야 되겠구나 하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므로 인해 오히려 삶이 절박해지고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삶이 존귀하지 않은 겁니다. 살아있는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서 더욱더 사랑해야 되겠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 죽음이 가져올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깨달아야 합니다. 삶이 더 짜임새 있게 변해갑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언젠가 떠나갈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염세적이 되겠습니까? 아니에요. 보살로서의 삶을 더욱더 열심히 살 게 될 거예요. 죽음을 수용하면서‘내가 지금 이 순간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사랑할 기회가 또 있을까’하면서요. ‘이 순간이 사라지면 다시 오지 않을 텐데’하는 죽음의 절박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찾습니다. 죽은 다음의 행복, 이거 아닙니다. 저도 어렸을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쟁의 끝이라 정말 가난했어요. 지금은 옛날보다 먹고사는 게 훨씬 나아졌는데 사람들은 옛날보다 행복해합니까? 행복은 절댓값이 아니거든요. 행복은 상대적인 거예요. 부처님 말씀에 진정한 행복은 내가 없어질 때,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온다고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 가운데 행복감이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죽음과 함께할 때 옵니다. 스님들이 돌아가시는 걸 ‘열반에 드셨다’고 그러잖아요. 열반과 더불어 오는 행복이 참다운 행복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판다고 칩시다. 상대에게 감동을 주거나 울림이 있을 때 그 물건을 사게 되고 사랑하게 되잖아요. 결국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파는 거거든요. 마음과 제품이 함께 가는 삶을 살아가세요. 순수한 마음, 내가 녹아진 마음으로 만든 제품이라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말과 생각과 행동이어야 합니다. 정신과 과학은 같이 갑니다. 정신세계가 가미된 제품들이 히트를 치는 거죠. 요즘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고, 달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달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물이 드나들고, 갯벌이 생기면서 물고기가 살게 된 거라는 얘기에요. 밀물, 썰물이 전부 달 덕분이래요. 지구 자전축의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게 달이에요. 저는 그 말에 동감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하늘의 보살핌 가운데 가능한 얘기입니다. 항상 ‘나는 언젠가 떠나갈 것이다’라는 의지를 갖고 진정성 있게 살아가세요. 그래야 마지막 떠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 속에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해요. 잘 죽는 것도 실력입니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고 그 실력을 잘 닦아가세요. 절망할 것 없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바뀝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주의 법 따라 사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2018-10-16 오후 2:26:22우리는 누구나 진실과 본질이 연결되고 싶은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 길은 고통의 길이다 /Media/law/Read.aspx?db_cnt=80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진실, 본질(핵심)에 가까워지면, 탁월한 이데아를 창조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나가 다 이 세상에 던져 질 때는 문제를 안고 던져집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나오신 것도 문제의 탄생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우린 매일 매일의 삶을 살면서 매일 매일의 문제가 던져지고 그 문제가 잘 풀려지도록 몸과 마음을 다 던지잖아요. 부처님 말씀대로 라면 우린 누구나가 다 하나도 빠짐없이, 미물중생들까지도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가, 문제의 진실이 무엇인가와 같은 진실과 본질, 핵심을 추구하는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가 다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문제의 해답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항상 궁구하고 살고 계시다는 거죠. 저는 문제의식이 없는데요? 하시는 그런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작은 일을 하시면 작은 일 하시는 대로 큰일을 하시면 큰일을 하시는 대로 누구나가 다 그런 문제의 해결책과 본질에 접근하고, 그런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던집니다.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로 기업도, 나라도 그렇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의 태어남은 문제의 태어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풀려고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자꾸만 생각을 하게 되고 모색을 하게 되죠. 자신이 이렇게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결과의 방향은 그리로 가 버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제 해결책을 잘못 짚어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핵심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이게 아닌데 싶지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 굴레를 부수고 새로움을 만들려면 힘이 드니, 그대로 가다 정말로 문제가 되고, 재앙이 옵니다. 사람들은 아니다 싶은데도 그대로 끌려가니 망하는 거예요. 투자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도 그렇고 이게 아닌데 싶으면 딱 놔야 하는데 설마, 설마 하면서 방치합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죠. 이것이 인간의 취약점입니다. 냉철한 지혜로 아니다 싶으면 중단해야 합니다. 노키아 같이 거대한 회사도 무너졌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내가 물건을 구매할 때 신상품 나오면‘이건 없던 건데’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창조의 거대한 기둥 가운데 하나가 해탈이며, 창조를 위한 파괴가 있다는 부처님 말씀에 따라 계속 새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합니다. 본질을 향해서 계속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해결책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새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어요. 우리 마음 가운데 창조성도 있어요.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면 어디까지 갈지 몰라요, 무한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거나 창조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고 고통이 따릅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렇게나 나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칭찬을 들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도 하죠. 칭찬 중요하죠. 그런데 창의는 고통을 수반해야 되는데, 칭찬 받는 것에 중독되어 버리면, 창의적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거죠. 고통을 즐기는 자 - 창의적인 인간들은 고통스럽고, 고독합니다. 아이디어맨들은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성급할 수도 없어요. 진실과 본질에 접근해가다가 이거다 싶어서, 해결책을 이거로 가면되겠다 생각해서 작품 만들었는데 그게 히트를 치면 그 희열은 말도 못하잖아요. 예를 들면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은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이거 되겠다 이거 한번 해 보겠다 해서 야후의 창업자를 통해서 손정일 만났다는 거죠. 손정일이 아이디어를 한 번 듣더니 오케이 하고, 그 자리에서 이천만 달러를 줬다는 거죠.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이디어를 들어만 보고 해보라고 하니요. 그 사람에게 이천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삼천배로 튀겨졌다는 겁니다. 이천만 달러, 이백 억이 육십조가 됐다는 거죠. 전 세계 아이티업계를 뒤집어 놨다는 거예요.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회사가 단지 십 몇 년 만에 됐다는 거죠. 얼마나 희열이겠어요. 그게 희열 정도가 아니라 세계판도를 뒤바꿔 놓은 거죠. 지형을 바꿨다는 거죠. 얼마나 기가 막혀요. 우리가 본질에 접근하여 얻는 창의적인 이데아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효과는 한도 끝도 없어요. 일체유심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중국의 결제 시스템 - 중국의 15억 인구, 어마어마한 시장이죠,아이티 상거래를 90% 이상 장악하고 있으니 수익이 어마어마하겠죠, 능가할 자가 있을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이데아를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아이티 업계에 3D, 4D가 있어요. 평면에다가 3차원, 4차원, 5차원, 고차원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학은 차원의 전이랄까, 고차원적인 세계를 누락 시키고, 현실 세계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과학이라고 한다면 종교, 염력, 마음의 세계는 차원의 전이 -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 과학과 마음 세계, 염력의 차이는 뭘까요? 3차원의 세계에서는 알 수가 없죠. 차원의 전이는 평면에서 일어날 수 없어요. 마음은 무한이며, 점이성이 되고, 공간으로 나가지만 평면에다가 뭔가 하려면 3D, 4D로 만들어내죠. 탁월한 이데아들은 모두 무한대한 차원, 고차원의 세계와 만나야 가능 합니다. 생각이란 거 자체는 고차원의 제약을 받지 않아요. 자유로이 생각, 사고하면서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공간도 만들 수 있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왜 이렇게 부처님 앞에 모여서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무한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은 몸과 현실에 잡히면 자신의 몸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원의 변이를 꿰뚫는 명상을 한다거나,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염력은 원동력이 되어 우리의 생각이 자유로워져 우주를 덮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법, 생각하는 것이 전 우주에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일체유심조 - 일체가 마음을 바탕으로 창조되고 있다, 마음은 무한한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이미 창조된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노력으로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참선, 수행, 명상을 통하여 의식세계의 차원 고양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법고대통 할 때 질문을 받았는데요, 불면증이라 잠이 안 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무실 때마다 부처님 만나러 갑니다. 다른 종교에 계신 분들이면 하나님 만나러 갑니다. 그렇게 하고 잠에 드시라고 하니, 얼마 후에 편지가 왔어요. 정말 스님 방송에서 들은 대로 잠을 잘 때마다 앉아서 30분 동안 이제 하나님 만나러 갑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잠을 자니까 잠이 잘 오더래요. 그럼요, 잠과 꿈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종 시에도 우리는 잠자듯이 죽어버려요. 꿈은 무한대한 차원이고 불가사의 인데.. 왜 불면증이 있는가. 현실을 생각하니까 두뇌 회로가 활성화되어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영혼의 세계로 들어갈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겁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이리 저리 뒤척거리니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거기다가 아이를 지웠거나, 여러 가지 파장들이 당도하니,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왜 꿈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냐는 거죠. 차원이 다르니까요. 이 문제는 융, 프로이트도 풀지 못했어요. 왜 꿈속에서 미래가 보이고, 돌아가신 분들이 보이는가. 차원이 다르니까요. 표면만 살짝 살짝 건드리는 수행을 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잠 주무시기 30분 전에 마음의 회로를 정리하고, 기도하세요. 오늘 하루 온 종일 피곤하게 전부다 썼더니 부처님 만나는 시간에 어루만져 주시고, 내일을 위해 우리 회로를 다 정리해주시고, 두뇌 회로도 다 정리해 주십니다. 그럼 내일 하루를 살 수 있는 거예요. 수면제 그거 독이에요. 정신 안정제라고 하는데 그거 많이 드시면 큰일 나요. 머리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멍해져요. 잠과 꿈, 4차원 너머와 만나는 시간, 히랍어로 잠다나토즘- 잠, 꿈, 죽음, 영혼은 어원이 같습니다. 잠자기 전에 회로 정리를 하고 영혼과 접하는 일종의 참선 같은 거, 명상 같은 것입니다. 회로 정리하는 그런 차원으로 아셔야 해요. 우리는 영혼과 하나이니까요. 선몽, 예지몽처럼 꿈꾸는 것이 꼭 맞아서 미래가 보인다는 거죠. 탁월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초월적인 인물들이며 수행의 인물들입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전이가 일어나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과학과 마음의 다른 세계가 열려요. 공부하고 책 읽고 문자 쓰고 다 좋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미국 트라이 사이더스 잡지 내용 중 참선, 명상하십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참선, 명상하는 사람은 상류계층 밖에 못한다는 거죠,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은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살면서 30분이건 1시간 이건 간에 무한을 만나는 시간을 자꾸만 만들어 두세요. 허공의 수많은 신장님들과 불보살님들 만나는 시간 나의 의식 세계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거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염파나 염력은 무진장입니다. 진실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 해결책을 알고 싶은 마음, 본질에 접근하고 싶음을 가지고 있어요. 본질이 뭐예요? 껍데기가 뭐예요? 시간이 가면 부패되는 거 아닙니까. 음식에도 발효음식이 좋다 그러죠. 발효와 부패 두 가지가 있어요. 썩는 것은 부패이고, 발효는 몸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유익한 균과 유해균이 몸속에 있는 것과 같이요. 이 몸은 언젠가는 부패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엄에 나오듯이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이 마음에 있지 않다 - 그럼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호흡을 통해서 들락날락 하고, 가동시킵니다. 호흡을 그냥 호흡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입니다. 밤에 잠 주무실 때 다른 아무것도 하지마시고 오로지 부처님 만나는 거예요. 회로를 정비하고 주무셔야 해요. 그래야 잠이 잘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허공 자체가 무한입니다. 무한한 정보가 있어 무한과 만나는 마음 자세를 가져주세요. 구글, 페이스북 등의 회사에서 참선, 명상을 매일같이 시켜요. 우리가 기록을 많이 하라고 하는데 기록을 하면 정리가 잘됩니다. 참선도 마찬가지라 하면 딱 보입니다. 우리가 등산을 해서 정상에 올라가면 왜 시원해요? 온 세상이 눈 밑에 보이거든요. 잘 보이는 겁니다. 고차원이 되면 저차원까지 다 정리되어 보입니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되니 해결책을 알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중국이나 인도에서 영국의 1/10 비용으로 화성 괘도에 진입하는 로켓 발사를 시켰어요. 급여도 미국보다 낮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존심을 걸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황색 돌풍이 불어 격변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삼성전자를 깨트리고 세계 1, 2, 3위 로 등극해버렸죠. 실패하면 돈이 날아가니까 연구를 한 번에 성공 시킵니다. 구라파나 미국 등지에‘공’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킵니까. 인도나 중국은 추상적이잖아요. 과학이 발달하면 고차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 삶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항상 순환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장악하는 그런 인간들이 승리합니다. 점점 고차원적으로 바뀌면 저차원적인 세계는 따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가정에서도, 기업에서도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으로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6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통체적으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다보면 하나의 원리가 있어요.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면 해답을 드리는데,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대의 명제를 아셔야 합니다. 성격도 나이도 배경도 다른 그런 사람들이 서로 만났습니다. 우주와 부처의 이치에 따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요.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전혀 다른 성별, 이질적인 사람이 만나는 결혼은 엄청난 수행입니다. 내 자존심과 정체성을 놔야 된다니까요. 타협하고 양보하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입니다. 그런데 결혼해도 깨달음이 없으니, 하나가 되고픈 환상으로 결혼이 실현 되지만, 살다보면 하나가 될 수 없는 좌절감을 확인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어요. 고통스럽죠, 깨지고 싸우고, 이혼하고.. 안타까워요. 자꾸만 자기가 함몰 돼 가는 거 같고 자길 잃어버리는 거 같으니까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죠. 하나가 되고픈 열망으로 큰 환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양자가 너무 자기주장을 하니까, 자기 페이스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려고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내 정체성 이걸 내가 잊어버린 거 같으니,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니 가정이 깨져 버립니다. 자기 자존심이라거나 정체감이 녹아지는 거 같으니 자꾸 자존심을 세우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고집스러운 마음, 경직된 태도는 참 곤란합니다. 안되거든요. 상대방이 도끼눈을 뜨면 도끼에 맞아 죽을까 봐 나도 공격 태세로 도끼눈을 뜨는 거죠. 장밋빛 환상 때문에 결혼했는데, 전쟁터 같은 그런 가정을 만들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심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 계속 면역 억제제를 맞는데요. 다른 사람의 심장이 내 몸으로 들어왔으니 그 전 사람의 면역세포가 있어서 면역 억제제가 필요하듯이, 심장과 마음이 만나 하나가 되었지만 둘 다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개성화된 특성을 자꾸만 녹이기 위해 면역 억제제를 자꾸만 맞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그 사람의 면역 세포들이 공격을 가한대요. 결혼을 한다는 것, 하나의 하트가 만난다는 것, 한 몸이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 면역주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방과 더불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부처인 나라인데 예외가 있겠습니까. 일본에서 조사된 것인데 우리나라도 결과가 비슷할 것입니다. 한 남자를 만나서 일생을 같이 보내는 여자는 자궁암 발생 유방암 발생 확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여러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 자신과 면역체계가 다르고, 체액이 다르니 자궁이 헐어버리고, 자궁암 발생 빈도가 현저히 높아져 버리는 거죠. 유곽지대에 있던 여자들 전부 다 병이 많잖아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 우주는 에누리가 없어요. 부부는 서로 필요해서 만났지만 면역 억제제를 맞아야 되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양보하고 타협하고 하는 거죠. 그런 노력, 그런 희생, 노력을 치르지 않겠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죠. 하나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런 각오는 하고 살아야죠. 전부 다 내 페이스대로 가려고 하고 소통을 위한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자존심이 자꾸 좌절당하는 그런 경험을 매일하니까, 예측 불허의 전쟁터가 되어 남자는 남자대로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고, 아내는 아내대로 눌리지 않으려고 하니 싸움이 되고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우주의 법칙이 어그러지는 거예요. 결국 다시 윤회하게 됩니다. 아내를 좀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남편도 아내를 많이 안아주세요.그렇지 않고 서로 성질내고 대립하면 피곤해서 일찍 죽어요. 화로 피가 끓어버리면 피가 탁해지고, 독소가 생깁니다. 상대를 먼저 만족시키세요. 미국의 리포트에 보면 섹스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고, 상호 만족이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끌어안고만 있어도 행복한 거거든요. 상대방과 하나가 됐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 부부유별이라고 하죠, 이건 안 되는 거거든요. 저에게 이 거리감에 대한 질문, 상담이 오면 서로 적절하게 타협해서 거리감을 축소시켜 나가야 한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양보와 타협으로 항상 상대를 먼저 생각해야 되며, 또한 나를 그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 결혼이기도 합니다. 가정 안에서 엄마, 아버지가 사는 양상을 자녀들이 그대로 반복하므로 잘 사셔야 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보살님들보면 80-90%가 불우한 가정이에요. 문제아는 전부 불우한 가정에서 나옵니다. 부모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잘못 커가는 것입니다. 일진이나 왕따가 그래서 나옵니다. 부모가 잘해야 됩니다. 사춘기를 잘 보내도록, 엄마, 할아버지 역할,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는 교육이 필요해요. 유대인들은 그런 점에서 정말 무섭습니다. 가족 공동체가 너무 중요하니까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항상 회의하고, 토론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인생전반을 갈음하는 수행임을 아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기업도 마찬가집니다. 탁월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진화하고 발전해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 해탈의 길을 가야하며, 고정된 것이 없어야하며, 창조와 파괴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며 계속 나가는 겁니다. 모기업 총수도 말했었죠,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혁신하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공부, 수행해야 합니다. 또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주식투자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죠, 버리는 거 아까워하지 말라, 멍든다. 사기 당하는 것도 괴로워하지 마세요. 전생 빚을 갚았다거나, 내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었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다 버리고 가는 거고, 새 출발을 위한 파괴입니다. 불교는 매일 부수라고 합니다. 그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주식도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니 개인도 기업도 수행해야 합니다. 명상, 참선, 기도하는 그런 기업이 승리합니다. 기업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데아,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업에서는 운영하는 사업 이상의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새로운 걸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은 제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색다른 것을 만들 수 있을까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은 킬러 앱, 킬러 상품, 킬러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해보세요. 그러려면 내가 죽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스티브잡스 같은 친구는 정말 버리는 마음으로 인도에 가서 히피처럼 살고 그랬죠. 스티브잡스, 페이스 북 등에서 좀 더 새롭게, 다르게 생각하자, 세상을 바꾸자고 합니다. 혁신적인 이데아를 가진, 프레임을 가진 인간이 되려면 새로운 것을 자꾸만 흡수해야 되고, 새로운 가르침에 관대해야 하고, 항상 질문해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도, 기업도, 가정도, 나라도 다 경영, 운영의 원리 원칙을 모두 정립해 놓으셔야 합니다. 직원들이 이상과 목표가 확실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데아가 있을 때 회사가 발전이 되는 것입니다. 발전의 원리입니다. 내가 정말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의 기업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 내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상대방을 위해서가 먼저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수익이 들어오는 겁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내가 중요해지려면 세상을 위해서 뭔가 줘야 내가 중요한 인물로 서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고, 항상 돈 계산부터 하니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줄 것이 없는 거죠. 헌 것을 누가 받나요? 아무리 줘도 헌 거 안 받습니다. 죽은 시체 주면 누가 받습니까? 새것 줘야 합니다. 기업도 새것을 줄 마음이 아니면 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는 능인선원에서 이렇게 하다가 후계자가 들어오면 그냥 다 넘겨주고 홀가분하게 가 버릴 겁니다. 새로운 것을 줄 수 없으면 내려와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눈 뜨면 무슨 말을 해줄까 이런 것을 한 번 연구해 보세요. 아내가 치장을 하면 용모를 칭찬하거나, 어제와 달라진 거 같다고 말하거나, 어제 밤에 좋은 꿈 꿨어? 하면서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어떤 새로운 말을 해줄까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연구도 안하고 어떻게 매일매일 삶이 새롭기를 바랍니까. 새로움 이라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써야 새로움이 옵니다. 또 계를 잘 지키고 이 우주의 룰을 잘 지켜야 합니다. 기도하고 마음을 항상 닦고 참선하면 향기가 달라져요. 항상 고차원을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부처님 지혜를 닦아야 해탈이 옵니다. 부처님 공부하시면서 자꾸만 마음을 새롭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지 정말로 공이 쌓입니다. 성공 그러죠? 공을 쌓아야지 성공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부 간에도 서로 보완해주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가정에도 도입해보세요. 가정 안에서 아내를 배려하고, 남편을 배려하고, 나를 버리고, 직원을 배려하고, 서로 상호간에 보강해주고, 보완하는 가치 창출 시스템이 가정에도 기업에도 누구나에게 다 필요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무언가 줄 수 있는가, 기업은 운영하는 사업 그 이상의 그 무엇을 줄 수 있는가로 가치는 평가되며, 그 결과로 기업의 가치를 입증 받을 것입니다. 새로움을 줄 수 없다면 기업은 문 닫습니다. 자꾸 잊어버리니 기록도 자주 하십시오, 그리고 참선, 기도를 많이 하세요. 이건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이라기보다 삶을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구글, 페이스북에서 명상을 왜 시키겠어요? 효용가치가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여러분들이 이 소중한 인생, 삶을 걸고 하는 일들이 과연 무엇인가, 진실과 본질에 접근해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시면서 사셔야 합니다. </SPAN></P>2018-10-02 오후 12:56:14사랑의 정도 따라 영혼의 아름다움 정도가 다르다. 선심은 하늘과 악심은 악도와 연결돼있다 /Media/law/Read.aspx?db_cnt=79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생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세상을 등진다 해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있다 없다 정확히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영가라는 말씀을 하셨고, 영식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영가, 영혼, 영식이란 존재는 이른바‘생각’입니다. 생각이 영혼이라는 거죠. 지금도 여러분은 생각을 하고 계세요. 생각이 오만가지라 하잖아요. 생각이 많아지면 영혼의 상태가 지리멸렬이다, 생각이 분산돼 집중이 안 된다,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중요한 건 생각을 하나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 중에는 좋은 생각이 있을 수 있고 나쁜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한 생각에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한 생각이 삼천대천세계를 머금는다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에요. 한 생각이 영원과 통한다 하니 생각을 잘 갈무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존재입니다. “저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몰라.” 해요. 그런 공처럼 튀는 생각을 다스리는 숭고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요.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염력이라 말하고 염파라 말하거든요. 에너지는 항존하므로 생각은 저승으로 갑니다. 그러한 생각을 상념체라고 불러요. 생각은 마음의 눈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의 모든 수행은 전부 이 생각을 가다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중 참선은 부정적인 번뇌와 망상을 걷어내는 작업이에요. 쓸 데 없는 생각을 걷어내서 맑고 깨끗한, 순일무잡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생각을 맑혀나가는 염불,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낮추는 마음으로 내야 해요. 누구나 아집이라는 걸 갖고 있잖아요. 자기주장을 거둬들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자기고집이라고 그럴까요, 자기주장을 쉽게 꺾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거예요. 이론적으로 정립해야 실천할 수 있는 거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산 거북이의 등가죽을 벗긴 것과도 같다’고 합니다. 부모의 생문을 통해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 울고 나오잖아요. 또 ‘죽어가는 것은 흡사 산 게를 끓는 물에 삶는 것과 같다’고 해요. 얼마나 태어나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힘들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세요. 정말 고통스러워합니다. 우리는 편안히 돌아갈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각을 잘 다스리셔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공부해 놓으면 시험 날짜가 코앞이래도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려면 뭔가 힘이 쌓여야 합니다. 고통을 용감하게 치고 나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정진력을 쌓아놓아야 해요. 부처님 경에 스스로 공덕을 쌓아 복을 지으면 그 공덕과 그 사람의 주파수가 하늘에 통보되어 업장이 소멸되고, 지은 복 따라 빛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손들, 다음 생에까지 경사로운 일이 생긴다, 이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승을 등질 때까지 계속 공부를 해두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평상심시도’평상시 마음 정리를 잘하고 살아가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삶에는 3가지 대의가 있습니다. 첫째, 누구나 죽는다. 안 죽는 사람 없잖아요. 둘째, 누구도 죽는 날을 모른다. 셋째, 때와 장소 없이 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허공에 한 맺힌 영혼이 꽉 차있을 수밖에요. 또 보통의 여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세 명 정도의 아이를 지운대요. 그럼 그 영혼은 또 어떻겠어요? 허공이 편안해져야 살아있는 자들이 편안해집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날짜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설날. 한가위에 차례를 지내는 건 허공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연중생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나와 척을 진 어떤 사람이 돌아가셨다, 그러면 그는 부정적인 상념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웃어넘기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영혼은 서운한 마음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은 참으로 묘해서 누군가를 생각하면 항상 영상으로 나타납니다. 불교에선 알라야식이라고 하죠? 알라야, 쌓여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찍히고 쌓입니다. 알라야식은 이른바 정보의 저장탱크 같은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생각의 응집체, 그걸 식(識)이라 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의 수많은 정보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라짐이 있을 수 있어요? 모두 다 드러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지금도 우리는 허공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항상‘성불합시다’ 합니다. 성불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전체와 하나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타심을 내야 합니다. 사랑은 빛이요, 이기심은 어둠입니다. 어둠 반, 빛 반이니까 낮밤이 반반인 세계, 지구에 태어났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 아미타부처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닌 것처럼 행복도 저절로 오는 게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때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드는 거예요. 남들을 즐겁게 해줘야 합니다. 아내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 남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나보다 남을 배려해야 선령이 됩니다. 남보다 나를 배려하면 악령이 되는 거죠. 지금도 우리는 허공에 있는 호법선신들, 신장님들과 교류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화탕지옥이나 도산지옥과 비슷한 환경에 연결돼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릇된 마음일 때는 악령, 악마들과 만난다니까요. ‘설마 내가 악귀가 되겠나?’ 하지만 내 생각이 나를 만드니까 악귀가 되는 건 순간입니다. ‘요즘 사는 게 지옥 같아’하잖아요. 행복은 기도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 남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음일 때 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우리를 아름다운 영혼으로 승화시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아, 나는 저승하고 상관없어.” 이러지 마세요. 마음은 언제나 영혼의 세계와 연결돼있기 때문입니다. 파동이니까 공명(resonance), 합성이 된다니까요. 사랑의 마음을 가득안고 살아가세요. 그래야 허공계에 있는 코드 맞는 영혼이 나와 더불어 삽니다. 그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내가 커지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도하는 마음, 제사를 드리는 마음, 법당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고 참회해야 나와 인연 있는 영혼들의 악업이 점점 감소합니다. 나의 선업이 증가하면 그들도 기쁘잖아요. 그들이 나를 가호해요.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지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도와줍니다. 허공은 다 압니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그러잖아요. 우리는 지금도 영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삽니다. 다만 감지하지 못할 뿐이에요. 그들도 생각으로 존재하니까 우리 주변에 항상 계십니다. 생각, 의지는 영혼에 속한 능력인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의 눈이 맑아져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맑아지면 보는 게 달라져요. 전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생각은 영혼의 세계와 통하거든요. 맑은 생각을 하세요. 이타심은 밝음입니다. 이기심은 어둠이에요. 남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베풀고 펼치면 해탈의 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다가 등져도 그 사람이 일생동안 가지고 있던 사랑의 정도, 생각의 맑고 깨끗함의 정도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얼마나, 어떻게 살았던가가 중대한 잣대가 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언제나 기도하며 살아가세요.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면 미래가 훤히 보이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몽이 있어요. 몽중가피라고 말합니다. 꿈에 훤히 보이거든요. 선몽은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진리에 따른 끊임없는 실천을 해야 받아요. 진리는 하나니까,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통하니까 미래가 보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서부터 생각했던 거 있죠? 그 생각했던 아주 많은 부분을 경험하고 나서 ‘인생계획서는 짜여 있는 게 분명하구나’깨닫게 되잖아요. 네, 그런 게 있어요. ‘아, 그때 내가 이렇게 되려고 했던 거구나’ 이렇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기분이 통하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끼리 모입니다. 영계도 사랑의 정도에 따라 모임이 각각입니다. 부부가 이승에서 만나 살아요. 그러다 아내가 먼저 돌아가시든지 남편이 먼저 돌아가셨어요. 아내가 저승 가면 ‘내 남편 만나 봐야겠다’합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백퍼센트 다 만납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니까 그래요. 만나게 되지만 사는 영계는 다릅니다. 얼마동안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업이 다르기 때문에 사는 세계는 달라집니다. 때가 되면 흩어져서 제 갈 길로 갑니다. 영혼의 세계는 내가 상대방을 돕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랑의 정도, 지혜의 정도에 따라서 해당된 영계 사회로 가야 합니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인신난득의 의미를 되새기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우리가 사람의 몸 받은 후 얼마나 수행했느냐에 따라 일종의 육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아, 내가 열심히 수행해야 되겠구나. 아, 내가 열심히 공덕을 쌓아야 되겠구나. 아, 내가 법을 생활화해야 되겠구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이미 살아있을 때 저 세상을 봤기 때문에 죽을 때도 죽음에 연연해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세요. 우리는 오랜 세월 갈고닦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왔습니다. 사람으로 왔다는 건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하면서 수행자의 길을 열심히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돈 벌러, 권력 드날리려고만 온 게 아니에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권을 가졌으니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어떤 영혼으로 승화돼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선택권은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은 금입니다. 금 같은 시간은 잠을 잘 때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인간은 잠을 안 자면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시간을 아껴 열심히 공덕을 닦고, 만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정진하세요. 그래야 잠을 잘 권리가 생깁니다. 오늘도 내가 단잠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신난득, 맹구우목의 의미를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법을 얼마나 실천하며 사는가? 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지혜로 가득 차 있는가? 내가 얼마나 영적인가? 자문해보세요. 인간에게는 세속적 인간, 도덕적 인간, 영적인 인간이 있거든요. 승화된 인격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불하는 그날까지 티끌만한 번뇌로 언제든 한순간 강등될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부처님은 삼계(三界) 안에 편안한 자리는 없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보내실 것인가를 고민해보세요. 사르트르 말처럼‘인간에겐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 같다’각자의 자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사랑의 실천을 도모하고, 지혜를 갈고닦기 위해서입니다. 열반을 구현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거예요. 부처님 법 따라, 진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능력이 계속 계발됩니다. 생각은 에너지, 염력이기 때문에 영원히 갑니다. 생각은 죽지 않아요. 관 속에서도 생각합니다. 일생동안 찍은 비디오라고 할까요, 테이프 하나 가지고 심판 받으러 가는 거예요. 업경대 앞으로 갑니다. 우주의 법은 철두철미해서 모두 자신의 행위, 기록 따라 재판을 받습니다. 인간으로 나온 이상 공덕주의 삶으로 채워야 해요.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쉬 꺼져 버립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에게나 생각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다 법신이에요. 누구나가 다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세요. 생각이 영혼이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생각엔 마음의 눈이 달려 있습니다. 그 생각의 눈이 얼마나 세속적으로 열려 있는가, 하늘로 열려 있는가, 부처님 나라로 열려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사랑의 정도에 따라 허공과 연결돼 있습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갈 곳은 정해져 있어요. 각자의 사랑의 정도, 지혜의 정도가 결판나 있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명이 주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하다는 겁니다. 왜냐? 내가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내 생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유념하세요. 사랑의 정도에 따라 지향하는 바, 영계가 달라집니다. 선령은 지극한 하늘과 연결돼 있고, 악령은 악도와 연결돼 있으니까요.</SPAN></P>2018-10-02 오후 12:11:10신심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열광 없이 열정 없이 위대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Media/law/Read.aspx?db_cnt=79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보이지 않는 내 안의 존재</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눈은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봅니다. 눈은 모든 물상을 대하게 돼 있어요. 대신 나를 보지 못해요. 눈은 항상 대상을 향해서 열려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남으란다고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의 취약한 점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에게 대단히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잘 보이니까 그래요. 그런데 자신은 잘 보지 못하니까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로 내가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내 안에는 보이지 않는 나가 있다니까요. 내면의 나인 거죠. 부처님은 이를 가리켜 ‘불성(佛性)’이라 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왜 불안하고 초조하겠어요? 그저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어떤 잣대를 가진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하지 않았을 때, 뭔가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 때, 그때는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그런 병리현상들은 전부 마음의 잣대에 의해 스스로를 징계한 결과입니다. 내가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 관대하면 온전한 판단력이 서질 못합니다. 자기 비호의식이죠. 물론 자기 존중 의식도 중요하지만 그릇된 행동조차 용납한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게 전부 일방통행이거든요. 서로 좋은 점을 채택해서 국리민복을 위해 써야 할 텐데 일방통행을 하다 보면 다른 많은 아픔을 가져옵니다. 불안의식, 절망의식을 가져와요. 불안과 절망은 형제간입니다. 자꾸 불안하다 보면 자기 체념과 절망을 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병리현상이에요. 부처님 말씀처럼 만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연으로, 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게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인과응보는 부처님 법칙이니까요.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언제라도 내 안에 계신 보이지 않는 존재, 잣대를 든 존재가‘너 왜 그렇게 했니?’라고 심문을 가해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항상 자기를 들여다보라’고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준엄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거예요. 불안이 쌓이면 질병이 오고, 불행이 옵니다. 영혼은 여러분의 생각이에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베풀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로 살다가 간다면 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부처님 경에 나오는 선신(善神)이 되는 거죠. 절망과 고통 가운데 스러져버린 사람은 악령이 됩니다. 우리 안에는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재판관도 들어 있고요. 우리 안에 부처님이 계신데 뭐가 없겠어요. 부처님이 그러셨잖아요. ‘상대방을 배려하라. 그리고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껴라’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업이 수승합니다. “쟤는 참 복 받을 사람이야.” 하늘이 다 알아요. 하늘이 아는 것보다 내 마음이 곧 하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신심은 영원히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상대방을 배려하는 삶을 통해서라야만 불안의식에서 오는 절망적인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의 세계로 나갈 수 있거든요. 어느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용 같지만, 상대방을 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상대방을 꽃으로 불러주면 상대방 역시 나를 꽃으로 보고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이란 개념을 불교에선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생각은 이 몸이 죽어도 죽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건 언젠가 사라지지만 생각이 영원을 가는 이유는 그 안에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생각은 마음의 눈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무한자, 영원 자는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영원은 우릴 기만하지 않아요. 그릇된 마음이 자신을 기만합니다. 속인다는 건 불완전한 자들의 속성이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종교가 무슨 필요 있냐고 하는데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인들이 문제입니다. 종교란 어떤 제약이잖아요. 만일 종교의 제약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멋대로,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한도 끝도 없는 욕망을 추구할 겁니다. 아마 세계는 혼란에 빠질 거예요. 종교는 초실정법적입니다. 실정법을 뛰어넘는 세계를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합니다. 도구 같은 거거든요. 종교의 어떤 인도가 없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 역사의 당, 송, 원, 명, 청을 봐도 황제들이 종교를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왕명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인간이 대부분일 겁니다. 종교는 영원을 얘기하잖아요. 고등 종교는 모두가 내세관을 가지고 있어요. 종교는 사회구조의 초인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종교인이 문제지, 종교가 문제가 아니에요. 위대한 성자들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만든 종교를 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욕망이란 전부 아상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의식의 흐름 가운데 생겨났다 사라지는 파도와 같은 것입니다. 삶이 거품이라는 개념을 확립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겨나요. 신심, 불성을 바로 봐야 합니다. 신심은 우리를 영원으로 밀고 갑니다. 몸과 마음을 던져서 시방삼세에 계신 영원하신 부처님을 향해, 법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직업, 어느 사업에 봉직을 하던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이라면 이 우주의 일체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노력과 정진, 그 가운데 독창성, 창의성, 영원성이 담보됩니다. 일의 질이 달라져요.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잖아요. 신심은 영원히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입니다. 신심의 종자가 수승한 지혜를 증장시키고 온갖 부처를 나타내 보입니다. ‘지심귀명례’ 하는 마음 가운데 영원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안, 절망은 내 안에 계신 거룩한 자를 이반해서 오는 결과물입니다. 마음이 불안할 땐 무조건 백팔배를 하세요. 불안이란 감정, 초조란 감정, 절망이란 감정은 순간순간 고개를 듭니다. 그 치료법을 현대의학이 잘 내놓고 있질 못하는 거죠. 중요한 건 영원과 만날 때라야 영혼이 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향을 찾아가면 마음이 평안하잖아요.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거예요. 영원과 만날 때 나의 영혼, 내 마음의 쉼과 만족이 있습니다. 헤겔 말대로 정언명령,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소리를 질러야 열광, 열정적인 마음이 아니고, 지심귀명례 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것이 이뤄집니다. 몸과 마음을 던지는 신심 없이 위대한 것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나 마음 안에는 거룩한 자가 있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타인의 어떤 존엄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 죄 짓는 거예요.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맹자의 말처럼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 배우지 않고도 잘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도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불교에선 전생을 얘기하는데 별로 배운 것 없어도 능력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어두워진다고 그랬어요. 또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하고요. 우리는 타고난 게 있다 하더라도 계속 연마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존재니까 그렇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기적은 언제나 일어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언제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잘 다스리세요.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집단은 망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골치 아픈 일을 당하게 돼 있습니다. 말은 마음을 담는 거거든요. 상대방과 일을 도모해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그 사람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 사람의 행동을 들여다보세요. 그 사람의 장래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한 눈에 보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상대의 말을 들으면 어느 정도는 감이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영철칙이 있습니다. 어디와 거래를 한다면 3대를 넘긴 회사와 한대요. 왜냐, 1대에 카리스마적 능력이 있었다면 2대에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보전을 합니다. 비로소 3대에 이르러서야 기업이 업그레이드되고 앞으로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뭐든 3대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잠을 자도 시간은 흐릅니다. 근데 시간은 금입니다. 금쪽같은 인생이에요. 죽음의 철학자 하이데거는‘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 모든 게 변해간다. 그러나 죽음 하나는 변하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가장 확실한 죽음을 염두에 둔 삶만이 행복하다는 겁니다. 역설 같습니까? 그만큼 나의 인생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다 속에 사는 상어는 최소 1킬로서부터 4킬로, 십 리 밖에 있는 피 냄새까지도 맡는답니다. 흔히 개코라고 하죠. 개들이 냄새 맡는 걸 우린 못 맡잖아요. 개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대단해요. 또 연어, 북대천, 남대천에 치어를 방류합니다. 연어는 최소 3천 킬로 이상 알래스카까지 이동해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곰, 미련이 곰퉁이라고 그러죠? 그거 틀린 얘기예요. 제가 얘기하는 곰은 20킬로미터 밖에 있는 죽은 동물의 냄새를 맡습니다. 밤에 날아다니는 작은 나방은 10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자기 짝의 냄새를 감지한답니다. 이런 예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 우주가 부처님 나라라는 증거예요. 미물중생이지만 그들에게도 부처님의 능력을 하나씩은 들어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동안 절망적인 기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잘못한 게 있으면 매일매일 참회하세요.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그랬잖아요. “아, 스님, 백겁 동안 쌓은 죄를 참회한다고 그게 참회가 됩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죄무자성종심기’ 그랬거든요. 죄는 실다움 없이 마음 따라 일어납니다. 참회하는 마음 하나면 죄는 순식간에 다 타버려요. 부처님 말씀을 믿고 가세요. 주무시기 전 108배를 하시면 좋습니다. 힘들면 3배라도 하고 주무세요. ‘부처님, 오늘 하루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해보시는 겁니다. 부처님은 ‘너 자신의 본성을 쫓아 사는 자, 그와 맞설 자 없다.’하셨어요. 우리의 본성에는 보이지 않는 거룩한 자, 부처님 계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 무엇을 하더라도 적당히 하지 마세요. 힘들다, 외롭다, 는 단말마적인 소리가 나올 때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는 경지가 열리거든요. 일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을 던져 열광적으로,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허물을 벗어야 본질적인 능력,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한 생각 돌리니 여기가 극락이다’ 하셨잖아요. 세상은‘제행무상’입니다. 모든 게 변해가요.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변은 언제나 일어납니다. 결코,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던져 본성과 만나는 자, 어느 누가 그와 맞서겠습니까?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선수들에게 있어 승리의 비결은 오로지 훈련, 연습입니다. 부처님을 철통같이 믿고 가세요. 체험으로 믿는 겁니다. 설명할 수 없는 거룩한 자, 내 마음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열정적으로, 열광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자, 지심귀명례 하는 자만이 위대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 결코 절망하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9-19 오후 3:49:37상대방에 대한 배려, 공감과 사랑이 내 몸과 마음 가운데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Media/law/Read.aspx?db_cnt=79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사랑의 마음과 공감의 마음을 키우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죽은 동물의 영혼을 위해서 천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천도재는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천도의 재를 함께 봉행하도록 했습니다. 고양이나 개 등 동물의 영혼이 제대로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 천도재에 입재를 하여 기도하십시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사람들이 자기가 키우는 애완동물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키우다 보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고양이는 개하고 달라서 배변훈련도 쉽고, 잘 짖지도 않고 소리가 크지 않아서 소음으로 인한 이웃에 피해도 덜 주면서 좁은 공간에서 잘 적응을 하면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잘 산다고 합니다. 또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더욱더 예뻐하면서 가족처럼 사랑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반려동물 천만시대라고 해서 외국의 예를 찾아보니까 재미난 게 많았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보니까 몸 안의 염증지수,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지수 같은 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비교적 심근경색이나 여러 가지 심혈관질환도 덜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하든 동물을 사랑하든 사랑을 하긴 해야 되겠지요. 그래야지 뭔가를 배려하는 마음, 동물을, 식물을 키우면서 나타나는 내 마음이 상대방을 향해서 베푸는 마음이 잘 생기리라 싶습니다. 그런 요소들이 심혈관질환에도 좋다고 하는 보고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 천만시대라는 얘기가 나오는 게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반려동물들도 좋지만 부부나 가족 간의 사랑이나 주변사람도 좀 사랑하는 그런 그 풍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도 그것을 감내하고 반려동물을 둔다는 것은 지양할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공감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사람의 염증지수도 낮고 통증도 줄인다는 것에 대한 한계선이 높다는 보고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을 살아가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친절, 겸손, 공감, 사랑, 관용 등등 좋은 말들을 듣기도하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내 몸과 마음 가운데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항상 생각하는 삶이 되면 내가 주변사람들하고 어떤 형태가 되건 간에 무언가 공감하는 마음, 사랑의 마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말이나 행동을 놓아버리면 스스로의 마음이 괜히 불안해져요. 본래 하나에서 왔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 사람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의무적으로 강화해나가야 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공감하고 교감하는 마음이 없다면, 건강하지 못한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보면서, 부정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의 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면역질환이라는 것이 자기 몸에 있는 균들과 자기 몸에 있는 세포들이, 물질들이 자기 몸을 공격하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 자기 몸을 공격하게 됩니다. 몸의 세균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데, 장내 세균들이 전부가 그 본인의 마음을 머금게 됩니다. 자폐아들, 아이들 가운데 자폐아를 낳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조사를 하고 보니까 비교적 그 엄마 아버지가 고립된 삶을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심리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들은 장내 세균들이 여러 가지 증상들, 다운씨증후군이나 이런 증상들이 그 모태에 있을 때 엄마 아버지의 어떤 심리상태가 자폐아를 출산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항상 공감의 마음, 사랑의 마음, 자비심을 가지고 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내에 있는 세포나 세균들에게도 치명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손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항상 뭔가 상대방을 의심하는 마음, 상대방을 뭔가 부정적으로 보는 마음, 그런 마음을 극복하는 일, 모두가 내가 해야 될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개체적인 어떤 나쁜 덩어리를 극복해 나아가 하나의 마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심을 키우라고 경전에서 많이 공부한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공감하는 마음, 사랑의 마음, 자비심은 우리의 의무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우리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고통이 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손까지 문제가 옵니다. 대체로 엄마 아버지의 품성을 이어받지만,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랑의 마음과 공감의 마음, 이런 걸 키워줘야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누구든 기도를 해준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힘이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스님들이 동물 천도하는 것처럼 흰불나방 천도기도를 사십구일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말로 희한한 게 사십구일 되니까 법당 앞에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마당 가득히 흰불나방이 꾸불텅꾸불텅 기어와가지고 모이더라는 겁니다. 사십구일 날 제사지내고 천도재 지내고 불 다 살라가지고 하늘나라 보냈다고 합니다. 그다음부터 뒷산에 흰불나방이 많이 없어지고 나무들이 살아났으니 참으로 신기한 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미가 많다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보살한테 나방 얘길 해주면서 그렇게 해보라고 하였더니 정말로 삼칠일 가까이 되니까 개미가 안 나타나더래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세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마음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가끔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서 내보낸 사람을 봅니다. 집으로 가서 편안히 잘 먹고 잘 드시게 한 다음에 평안히 계시다 돌아가시게 하라고. 근데 희한하게 병원에서 내보낸 사람이 쾌차 속도가 달라지고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사례를 보게 되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열심히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이 기도가 도무지 뭔가, 그걸 알고 싶어서. 기도 자원봉사 팀을 만들었어요. 어떤 종교도 상관할 거 없이 하루에 한 시간씩 그 사람의 사진과 성별과 이름, 병명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 기도를 하게 했더니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덴 하나인 마음, 본래 하나인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바로 힘이 되어 에너지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말한다는 건 곧바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말에 마음이 담기게 됩니다. 말 따로 마음 따로 아닙니다. 말을 하려면 그 말에 마음이 담겨요. 생각도 같아서 생각만으로도 파동이 발생하게 되는데 하물며 마음이 함께하고 말로 기도를 한다면 커다란 파동을 일으켜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마음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게 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해준다고 하면 마음이 물질로 전달이 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 어떻게 병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물질은 감각기능이 있고 지각기능이 있고 반응을 하고 반응을 한 다음에 꼭 정보가 거기에 담겨진다고 봅니다. 공감능력이나 자비능력, 사랑의 능력이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지름길이란 말도 현대의학자들이 한 얘기들이에요. 그러니까 규칙적으로 만나는 신체적 접촉이 몸과 마음 가운데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염증지수를 떨어뜨리며 통증지수를 떨어뜨리는 데 현저히 기여한답니다. 아동심리학에 보면 많이 안아준 애들이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본래 부처인데 어리석은 마음이 생겨 나밖에 모르고 이기심이 강하다 보니까 업의 덩어리가 져서 땅위에서 고통 받는 거예요. 잊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하는데 결국은 장벽을 허물지 못해서 계속 고통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병의 발생 원인일 수가 있어요. 적당한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공감이나 사랑 같은 게 면역력을 키우고, 혈관의 안정과 심장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전혀 그릇된 말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이 참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나 어떤 사회는 그 몸을 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 국민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공감능력이 향상되도록 항상 배려해야 됩니다. 훌륭한 직장일수록 일터가 즐겁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직장의 한곳을 놀이터처럼 만들어 가지고 직장에 나올 때 애들 다 데리고 나와서 놀이터에 애들 다 맡겨놓고 일한다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더불어 일을 놀이삼아서 하는 것이 무척 능률적인 것이 되리라 싶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두뇌 가운덴 이른바 거울세포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모두 다 하나로 통하는 세포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세계, 요즘엔 인공지능이 발달하다 보니까 독일에서는 모든 부품과 모든 기계에 전부 다 각자의 넘버가 있습니다. 넘버를 붙여가지고 전체 통합, 종합적으로 통합시스템을 짠 거예요. 어느 기계가 수명이 어떻게 되고 상태가 어떤지를 정확히 알려고 부품 하나하나도 쉐어 넘버를 가지고 전체를 계속 통제를 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을 하니 생산량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이 전부 다 마음으로 통제되잖아요. 좋은 마음을 가지면 몸에 있는 오장육부나 모든 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 거죠.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과 내가 하나가 되려는 마음으로 하면 모든 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하나의 길이 존재하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정신일도’가 되면 ‘하사불성’이라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장이나 직원들이나 다 하나가 되면 일사불란하니까 통하게 되고 하는 일이 잘되겠지요. 하나가 되는 마음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면 자기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이 됩니다. 지금! 우리와 아이들 모두에게 사랑의 교육, 공감의 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사랑의 마음과 공감의 마음은 의무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남들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들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는 수백조 개나 되는 세포와 미생물들, 그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선업을 쌓아야 합니다. 벌레 하나도 개미 하나도 통한다고 합니다. 우리 몸도 수없이 많은 미생물과 세포들이 일관성을 갖고 한 몸이 되게 하려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듯, 타인도 사랑해야 합니다. 나의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않아요. 우린 누구나 몸과 마음 가운데 바코드가 다 달려 있다고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나는 얼마나 내 몸과 마음 가운데 하나가 돼 있는가? 누구나가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의 몸과 마음 가운데에 무량한 바이러스박테리아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박테리아보다 모든 면에서 출중한 존재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이러스박테리아도, 유익균, 유해균 등, 자기들 몫을 철저히 아는 것처럼 우리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보다 뭔가 수승한 그런 마음을 가지려면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며 투철한 정신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젊을 때는 잘 모르던 일들을 알게 됩니다. 젊을 땐 건강하니까 서로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겠지요. 요즈음 자주 듣게 되는 황혼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아프게 들립니다. 졸혼이란 말도 여기저기서 마구 튀어 나옵니다. 이상한 단어들이 자꾸만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사랑과 공감이, 아내를 더욱더 많이 사랑하고 남편을 더욱더 사랑하고자 하는 그러한 사랑의 공감이 너무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경제력도 떨어지고, 신체 체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누구나가 다 거치는 과정입니다. 그런 곳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우리는 인연중생이라고 합니다. 관계의 동물이고. 우리가 이 땅에 이렇게 개체로 온 이유는 법화경에 나오는 한 구절의 말처럼 어떤 죗값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욱 참회하고 더욱 사랑하며 선업을 쌓아야 합니다. 사랑의 능력을 더욱더 키우고 자비심을 키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공감의 능력을 더욱더 향상시키면서 우리는 서로 교감하며 살고 있는가, 서로를 배려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남북관계도 마찬가지예요. 계속해서 과거도 지금까지 한겨레면서 남은 북을 이용하고 북은 남을 이용하고, 이러다가 정말 어려운 교착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민족이면서도 서로 사랑과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남과 북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서로 믿지 못해서 불안하니까 자꾸만 이해 못할 짓을 하게 됩니다. 북측은 계속 고립돼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무기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무기도 수명이 있습니다. 전쟁을 육십 년 동안 안 했으니까 무기 만든 게 전부 다 녹슬었겠지요. 강한 걸 갖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을 것 같으니까 더욱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게 한민족이면서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동독 서독 통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손과 손을 내밀어서 사회주의 나라의 내부도 남한 내부도 마찬가지로, 서로가 공감을 하고 교감을 하여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위정자들은 국회에서 눈살 찌푸리는 일들만 많이 벌리지 말고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권을 떠나 좀 더 훌륭한 생각을 하고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서로 갈라지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가 되는 겁니다. 서로 많이 이해하려고 애써야 돼요. 그게 부처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고 주변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고 공감하려고 많이 애를 쓰고, 내가 상대방과 하나가 되려는 마음, 공감의 의식,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나만 좋은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사회전체와 나라가 모두 다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우리는 모두 인연이 있어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 가운데 사랑의 마음, 공감의 마음은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전체로 퍼져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게 이런 의식이 너무 박약해요. 나라의 상층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부터, 국가 사회가 사랑의 능력, 공감의 능력을 교육시키는 데 학교서부터 앞장서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 되면 가정과 개개인을 비롯한 사회전체가 잘되지 않을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랑의 마음과 공감의 마음이 취약해지면 ‘토마스 홉스’의 말처럼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가 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어 버리고 개인의 욕망만 추구하는 어지러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걱정입니다. 사랑이 우리의 의무인데도, 공감과 사랑의 마음이 사라져버리면 자기 몸도 마음도 다 갉아먹어 버립니다. 결국 혼자가 되고 외톨이로 남게 됩니다. 사자신중충이라고 외톨이 같은 마음은 사자나 다른 동물에 의해서 공격을 당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에서 나오는 벌레가 있는데 그 벌레가 자기 몸을 다 파먹는 것처럼, 고립된 심상은 인간의 관계망도 파괴시키고 붕괴시켜서 결국은 자기 몸도 마음도 완전히 갉아먹어버립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 왜 우리에게 거울뉴런이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가 다 태어나면서부터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서로서로 다 하나가 되게 돼 있는, 그리고 의무감 속에 살아야 되는 존재들인데도 국가 사회라거나 어느 사회에서 전부 다 이와 같은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아내의 손을 잡거나, 직장이나, 회사나 어디서도 상대방의 손에 손을 잡고 서로가 따뜻한 마음으로 공유한다면 참으로 건강한 사회와 가정이 되리라 싶습니다. 아내와 남편 사진, 다른 여러 가지 사진, 여러 사진들이 많이 있어요. 모두에게 파트너의 사진만 보여줘도 통증이 훨씬 줄어든답니다. 지갑 같은 데 다 가족들 사진이 있잖아요. 그런 사진만 보여줘도 통증이 훨씬 줄어들고 염증지수가 낮아진단 얘기가 있어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야 될 게 우린 이 땅에 사랑을 의무로 알고 태어난 존재들이에요. 그 어느 곳에서도 이 사랑의 능력과 공감의 능력을 뭔가 향상시키도록 교육시키는. 그러니까 요즘에 애플이라거나 구글이나 이 뭐 페이스북 이런 거대한 데, 아마존 같은 덴 명상 참선을 시키고, 마음이 하나로 되도록. 그러니깐 최첨단을 가는 그런 회사들이니까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게 해야 됩니다. 경색이라는 건 막히는 거예요. 그거 왜 막혀요? 스스로가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서로서로 얼싸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통합니다.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직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통합니다. 그럼 직원들도 좋고 나도 좋은 거예요. 국가 사회가 전부 다 그 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되고, 우리 모두 그런 점에 유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SPAN></P>2018-09-19 오후 3:40:56우리는 누구나 부처님의 아들딸이다/Media/law/Read.aspx?db_cnt=79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P><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지구라는 우주선</SPAN> <P></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몸과 마음의 병고액난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병리학에서는 모든 병의 근저에 스트레스가 있다고 얘기하는데 스트레스라는 게 뭐예요? 속을 끓이는 거잖아요. 이 때 속 끓일 일이나 애가 타는 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질병이나 고통의 많은 부분을 이겨나갈 수 있어요. 그 대표적인 방법이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는 거죠. 참선이나 명상은 내려놓는 작업이에요. 번뇌 망상을 다 내려놓는 거죠. 한 단계 더 나아가 스트레스를 녹이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 있어요. 고통조차도 감사하는 마음, ‘이 고통이 어디서 왔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감사를 모르기에 재앙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종대은명심불망(五種大恩銘心不忘)’명심해라, 잊지 말아라, 다섯 가지의 은혜 중에 하늘의 은혜, 부처님 은혜, 부모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해요. 우리가 감사함을 잊고 은혜를 잊고 사니까 자꾸만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세요. 작게는 내가 밥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사람이 엄청 많거든요. 내가 두 발을 딛고 대지 위를 걸을 수 있음에도 감사하세요. 정말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저 잘나서 잘사는 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의 은혜 가운데 살기 때문에 잘 사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내야 잘 사는 거라고요. 근데 사람들은 전부 잘나갈 때는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못나갈 때는 조상을 탓합니다. 고통조차도 감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고통도 영약이 되거든요. 우리의 마음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감사를 아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아는 마음을 자꾸 일깨워내야 합니다. 그러면 고통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습니다. 해방될 수 있어요. 나름대로 많은 고통을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우주가 법계임을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겁니다. 남을 원망하고, 조상을 탓하고 나라를 탓하잖아요. 그런 채로 만약에 돌아가셨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반드시 원한을 가진 령이 돼요. 원귀(寃鬼)라고 하거든요.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죽었다, 이거예요. 죽어서도 계속 억울하다고 합니다. 부처님 직설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을 살면서 감사한 마음을 내면 떠나도 원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가만히 돌아보세요. 나는 이 세상을 등지면 과연 선령이 될까, 악령이 될까를.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보면 ‘천공(天空), 하늘엔 무한한 지구가 있다’고 합니다. 지구란 별에는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이 존재하지만 무량한 또 다른 지구 안에도 종종색색의 인류가 존재한다고 해요. 이에 대해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월고해지자항(越苦海之慈航)’배(船)라고 하셨어요. 칠십억 인구가 지구란 별을 타고 날아다니는 우주선이라니까요. 우주를 질주하는 별입니다.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우주공간을 질주합니다. 무량한 우주의 별들이 아무렇게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광활한 우주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합니다. 무의미한 상태로 존재하는 공허한 덩어리가 아니에요. 이 땅을 사는 동안 마음을 잘 쓰세요. 그래야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살다가 다른 별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다른 배로 갈아탄단 말이에요. 좀 더 의미 있게 산 존재들은 환경이 좋은 별, 환경이 나은 배로 갈아타겠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지금 지구란 우주선을 타고 훈련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훗날 다른 차원의 우주선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죠? 그만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만한 공덕이 필요하고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연마해야 합니다. 지혜와 복덕이 수승해져 다른 별로 가야 해요. 더 좋은 배로 갈아타는 겁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 다른 별나라로 이선한다고 그럴까요? 그 별에 가서 살려면 또 다른 윤리가 필요할 것 아녜요. 이 땅을 살면서 법을 제대로 모른 채 이기심만 가득해서 남을 원망하고, 스트레스 받고, 남을 저주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은 안타까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갈 길을 못 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파동은 숨길 수 없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금생의 하루가 내생의 살림살이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날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지혜를 닦아가고, 공덕을 닦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지구라는 배는 어때요? 각 나라마다 이기심이 가득해 서로서로 다툼이 많잖아요. 환경이 좋은 배를 갈아타려면 그만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만한 복업이 있어야 해요. 사람들은‘죽으면 그만이지’하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를 바꿔 타면서 영원의 길을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저마다 돈이나 권력을 갈망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돈 많이 번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 해요. 외국은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돈을 벌려면 뭐예요? ‘돈이 웬수야’ 이러잖아요. ‘쟤 돈독이 올랐어’ 이러기도 하죠. 돈에는 독이 묻어 있습니다. 독이 다 맺혀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돈을 해독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십일조라는 걸 하거든요. 자선을 의무시합니다. 자선은 해독하는 작용입니다. 록펠러니 카네기니 다 유대인 아녜요.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니, 솔로몬 바니 전부가 어마어마한 자선가입니다. 한국의 재벌들은 돈독을 빼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사회를 위해서 돈독을 빼내야 합니다. 해독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재산에도 정재(淨財)가 있고 부정재(不淨財)가 있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은 날 때부터 진동률, 주파수, 파장대가 각기 다릅니다. 파장은 정보를 담는 도구잖아요. 여러분이 어떤 종잇장을 만져도 거기에 여러분의 분신이 묻어요. 기가 묻고, 파장이 묻어 버립니다. 우리가 사십구재 지낼 때 고인이 쓰던 물건들을 소각합니다. 집물들 소각하는 거, 그거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많이 체험하고 살거든요. 삼화왕관이라고 병뚜껑이나 깡통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그 사장님이 돌아가셨어요. 보살님이 사십구재를 다 지내고 나서 면담을 신청해왔습니다. 꿈에 남편이 허리춤을 잡고 나타나신대요. 그래서 제가 혹시 집에 남편이 쓰던 허리벨트 같은 거 있냐고 물었더니 있을지 모르겠대요. 그 허리벨트를 찾아 묘지에 가서 태워드리라고 했어요. 가족들이 벨트를 소각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꿈에 멀쩡하게 나타나더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또 역삼동 살던 보살님이야기예요. 이 보살님이 약사를 하니까 그녀의 시어머니가 저녁마다 나와서 며느리 저녁 먹는 동안 약국을 봐주셨습니다. 어느 날 약국으로 나오다가 달리는 차에 치여 돌아가신 거예요. 제사를 다 지내고 났는데도 꿈에 시어머니가 맨발로 나타나더라는 거 아녜요. 그래서 고무신이라도 소각해드리라고 했어요. 신발을 소각해 드리고 나니까 꿈에 신을 신고 나타나셨더래요. 그 후 약국을 확장해서 옆의 건물로 짐을 옮기게 됐대요. 짐을 옮기다 보니까 약을 넣어두던 빈 박스 안에 고인이 생전에 신었던 피 묻은 신발이 나오더라는 거예요. 이게 웬일인가, 봤더니 사고가 나던 날, 시어머니 신발이 벗겨졌어요.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가는 바람에 벗겨진 신발을 옆 집 아저씨가 약국의 빈 박스에 집어넣어두었던 거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물건에든 주파수가 있습니다. 파동이 에너지고, 에너지는 불생불멸입니다. 매일매일 경건하게 살도록 애를 쓰세요. 기도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게 여러분의 파장을 정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다음 심판의 재료를 내가 지금 만들어가는 거예요. 재판을 받으려면 서류가 필요하잖아요. 여러분의 파동은 그대로 저장됩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마다 부처님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릅니다. 이렇게 일요일에도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시는 분이 계시고, 집에서 편안하게 텔레비젼 보는 사람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귀의 열림 정도는 모두 다릅니다. 절에 오래 나오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이해가 빠릅니다. 처음 듣는 분들은‘저게 무슨 소리인가?’해요. 귀가 밝아져야 합니다. 총명할 때의 총(聰)자를 보세요. 귀 밝을 총 자에 귀 이(耳)가 들어갑니다. 귀가 왕이 되는, 덕이 되는 글자가 귀 밝을 총 자예요.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에서 풍기는 분위기입니다. ‘저 사람은 뭔가 눈이 무서워’합니다. 또‘저 사람은 풍기는 분위기가 부드러워’해요. 그 사람이 풍기는 기운이 벌(罰)을 부르기도 하고, 복(福)을 부르기도 합니다. 벌은 악 자체에 기인합니다. 복은 선 그 자체에 기인해요. 선행을 하라는 거예요. 악행을 하지 말라는 거죠. 살아가다 보면 누가 벌을 주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죄가 벌을 부릅니다. 선행이 복을 부르는 거예요. 선행을 할 때마다 복이 쌓인다고 생각하면 정확해요.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지금 벌을 쌓고 있구나’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어디든 임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공동체를 위한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보살의 마음은 항상 주려는 마음입니다. 악마의 마음은 빼앗으려는 마음, 끌어들이려는 마음인 거죠. 벌써 내보내려는 분위기하고 끌어들이려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 기가 달라요. 사랑이란 뭐예요? 베풀고 펼치는 거죠. 사랑과 기쁨은 하나입니다. 기쁨은 사랑에서 오거든요. 문제는 세상살이 가운데 내가 끌어들이고 먹을 때 기쁘다는 데 있습니다. 근데 하늘나라에선 베풀고 펼치고 내려놓을 때 기뻐요. 차원이 다릅니다. 부처님 나라는 바라는 바 없이, 무아상입니다. 봉사하고 헌신하는 나라, 사랑과 자비로 수행하는 자들의 나라예요. 남에게 베풀고 펼친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즐거워합니다. 선에 예민해진 거예요. 기쁨에 예민해진 거예요. 영원, 부처님 나라의 사랑에 예민해져야 해요. 자꾸 세속적인 사랑, 물질적인 기쁨을 추구하지 마세요. 그러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마약에 손대는 게 그래서 그렇거든요. 감도가 예민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부처님을 불러 모시고, 부처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생활화하세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열매, 결과물이란 나무에 매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과일 열매도 나무에 매달리잖아요. 열매가 제대로 익을 때까진 많은 걸 이겨내야 합니다. 태풍도 이겨내야 하고 비바람도 이겨내야 해요. 낙과(落果)가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악을 쓰고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악을 쓰고 부처님께 매달리세요. 몸과 마음을 던져 부처님을 꼭 잡는 게 바로 지심귀명례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영원히 공부해야 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하고 그 다음엔 좀 더 공부하게 만들어야겠다 해서 대학원을 만든 거예요. ‘석사, 박사, 계속해라’ 한 겁니다. 박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엔 나름대로 공부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으니까 더 많은 공부를 해 세상에 이바지하게 되겠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원을 가는 존재들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광활한 우주의 어떤 것이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다 움직이잖아요. 지구 자체도 시속3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우주선입니다. 우리는 계속 우주선을 갈아타면서 움직여가고 있다니까요. 이 별에 있다가 또 다른 별로 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항공모함이 있다, 어떤 배가 있다 그러면 그 배의 승무원들이 철통같이 체크하잖아요. 그 배에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주의 시스템으로 볼 때 칠십 억 인구,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구란 별은 로켓보다 더 빨리 가고 있어요. 그래 여기서도 계속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멈추면 안 됩니다. 제행이 무상이고, 제법이 무아예요. 어느 별나라, 어느 우주선을 타고 갈지 모릅니다. 극락이란 아주 멋있는 배를 탈지도 몰라요. 무량한 생명체들이 지은 지혜와 복덕의 정도에 따라서 합당한 별로 가게 될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본질은 부처님입니다. 내면세계에 계신 부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 매달리세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부처님, 양심, 참나가 내 안에 있다니까요. 부처님을 위한 삶이 곧 자기를 위한 삶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삶이 자기를 위한 삶이에요. 우린 지금 지구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질주하면서 우주적인 목적에 합치되기 위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함부로 아무렇게나 살아선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일이 될 듯 될 듯 하다 안 되는 것은 욕심이 과하거나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우주 만상은 진리를 어느 정도 실천했느냐 하는 진리의 실천 정도에 따른 그림자일 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순간이 영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은 얼마나 진리를 실현하고 사세요? 능엄경에 보면 인간은 이기심 반, 이타심 반이라고 나와요. 반수반인이래요. 진리의 그림자들인 셈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자연계, 영원의 세계, 그 세계에 합당한 차원의 그림자에 해당합니다. 그 중 우리의 진리의 실현 정도가 50프로 안팎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근데 참 묘한 게 자연계에 있는 작은 생명체들은 어떤 법칙을 아는 듯해요. 지진이 나면 우리보다 더 먼저 그 징후를 알아채고 준비를 하잖아요. 미물중생이지만 그들은 하늘의 법칙, 영원의 법칙 따라 사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물중생이 가지고 있는 법의 세계가 있다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사바세계의 환경이 나쁠 땐 인간이 열 살밖에 못 산다고 그랬잖아요. 키도 한 뼘밖에 안 된대요. 지구의 환경이 좋으면 팔만 살, 십만 살까지 산다고 그래요. 저는 옛날에 불교 공부하면서 이 말이 모두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이제는 그게 다 이해되더라고요. ‘부처님이 너무 과장이 심하구나. 어떻게 십만 살을 사냐?’ 했는데 이는 우리 기준이 아니에요. 열 살서부터 팔만 살까지 올라가는 걸 증겁이라고 부르고, 팔만 살에서 열 살까지 내려오는 걸 감겁이라고 부른다는 거죠. 그렇게 스무 바퀴 정도 돌면 은하계 우주가 한 바퀴 도는 거예요. 한 바퀴 도는 걸 일 겁이라고 그러고, 스무 겁, 일 소겁이라고 그러고, 스무 겁 지나면 성겁, 주겁, 괴겁, 공겁…, 화엄에 나오거든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은 감겁의 스무 바퀴 중 열세 바퀴에 속한답니다. 점점 지구의 환경이 악화되는 거예요. 지금 과학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했다? 이거 아니에요. 지구의 나이는 150억 년입니다. 힉스가 얘기한대로 하면 137억 년이라고 하지만 한 150억 년, 137억 년 어쨌든 간에 그중에 인간이 아는 건 7천 년밖에 안 됩니다. 그전에 뭐였는지는 꽝이에요. 고생대, 중생대 이런 거 밖에 몰라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신화학이란 학문이 있습니다. 신화학, 융의 심리학에 보면 신화와 전설은 장난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거죠. 단군신화, 제우스신화, 페르시아신화 등 전부 신들과 인간이 같이 논 먼 과거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때는 하늘나라 사람들하고 영계 사람들하고 항상 교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영들의 세계와 하늘나라에 대해서 거의 백지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과 내가 만나요. 그럼 어떻게 돼요? “자기하고 나하고 거리감이 있는 거 같아!” 그렇죠. 마음의 거리가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됩니다. 마음이 가까우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진리와 하나 될수록 시간과 공간이 사라집니다. 팔만 살, 십만 살 정도 되면 고도의 지성이 훈도할 테니 영원과, 하늘나라와, 영계와 교신하고 교통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한 순간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합니다. 순간이 바로 영원이거든요. 무엇이든 결정을 내리는 건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영원이 들어 있고, 그 순간에 그날까지의 모든 공력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결단의 순간은 외롭습니다. 제가 천칭의 비유를 말씀드립니다. 천칭엔 조금만 뭘 올려놓아도 금방 한쪽으로 기울어요. 한 생각이 기울게 만듭니다. 순간을 부처님한테 걸어놓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말씀을 선인들이 만들어놓은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진리의 실현 정도에 따라서 그림자가 달라집니다. 행운이라는 것, 불운이라는 것, 전부 여러분이 얼마나 법 따라서, 이 우주의 거룩한 진리 따라서 삶을 도모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법과 하나가 되는 순간, 기도와 하나 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가세요. 그래야 이 땅을 등질 때 ‘나무아미타불’ 열 번만 해도 극락에 갈 수 있습니다. 한 생각의 위신력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열매가 나무에 매달리지 않으면 익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린 누구나 부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부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결실 맺을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9-12 오후 2:23:55광명이 공이다. 법신이다. 지혜다. 모든 존재의 근원은 법성이다. 부처다. /Media/law/Read.aspx?db_cnt=79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고통의 원천은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온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왜 어렵고 힘든 고통스러운 세상은 살아가는지 아는가?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본질이 고통이라고 하셨어요. 즐거운 날도 물론 있죠. 그런데 그 즐거운 날은 고통을 이겨냈을 때 즐거움이 잠깐 올지 모르지만 또 이내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전진해야 되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부처님 나라, 부처님 세계는 모든 것이 다 신변과 신통이 다재하다, 자유자재하다고 했어요. 여러분 중생세계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가하면 모든 만상들 존재들이 전부가 다 그물처럼(재망중중) 인연 따라서 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연기법이죠.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그 하나를 제대로 인지하고 실천하지 못해 내가 상대방을 아프게 하면 그게 나의 아픔으로 돌아오잖아요. 하나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프면 아내도 아프죠. 아들, 딸들이 아프면 엄마 아버지가 아프잖아요. 생각하는 범위가 기껏해야 가족정도죠. 또 바다 위, 배가 뒤집혀 젊은 친구들이 하늘나라로 가니 내 아들이 떠난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온 국민들의 괴롭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모두가 다 하나인 세계이죠. 하나인 세계는 공이라고 그러죠. 이렇게 공의 세계, 하나인 세계는 광명이거든요. 광명이고 공이며, 밝은 마음, 하나인 마음이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를 깨닫지 못하니까 무명이라고 그래요. 연기에 대한 무지죠. 깨달음은 광명, 무지는 무명이라고 해요. 깨닫고 보니 온 우주가 광명이더라. 상적광토 깨달음, 연기라고 하죠. 모든 게 하나라고 하잖아요. 여러분이 서로 아시던 모르시던 간에 오늘 일요일 날 법당에 나오신 것도 다 인연 따라 나오신 거죠. 부처님 인연으로 서로 한 자리에 앉아서 부처님 말씀을 얘기하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부처님 전에 꼭 나와야만 하는 이유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법당 대신에 술집에 가서 앉아 계시면, 망나니 되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뭔가 생각을 하게 되죠. 부처님 생각을 하게 되고 영원을 생각하게 되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과 내가 하나라는 그런 의식 속에 살면 고통이 그만큼 줄어들겠죠. 죄책감이 큰 것만큼 내가 나쁜 짓을 안 할 것이고, 덜 할 것이며, 레귤러 하게 하루를 살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눈을 뜨고 잠 잘 때까지 하루를 어떻게 하면 내가 부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부처님과 나 사이 인연을 돈독하게 할 것인가 등 부처님 생각하는 그 마음 자체가 광명이거든요.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자비심이 일어나고, 지혜로워지고, 생각 또한 자꾸만 온전한 생각을</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하게 되요. 하나가 되는 체험을 위해 말, 생각과 모든 행동이 하나로 가는 삶을 살아야 해요. 우리가 염불하는 것, 보시하는 것도 하나가 되는 길이죠. 육바라밀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그런 행을 하는 것, 남들 잘되는 것보고 박수 쳐 주고 베풀고 펼치고 이런 게 전부 다 나의 몸과 마음에 하나로 녹아 들어갈 때 길이 쉽게 열리는 것이며, 그런 마음과 몸이 되어야지만 번뇌도 뚫려버려요. 남을 위한 축원을 하거나, 얼굴 표정을 밝게 한다거나, 상대방이 화를 내지 않도록 하고, 경전 공부하고, 긍정적인 얼굴을 띄고, 좋은 말을 하는 것 등 이런 행동들이 다 녹아져서 수행의 결정체가 형성되는 것이며, 삶 가운데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될 수 있기 위한 길이며, 하나가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모든 존재가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허공은 광명이며 존재의 근원은 법성이므로, 수행을 통하여 지혜의 길로 갈 수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4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우리 몸에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정중선이 있고 양쪽에 선이 세 개가 있어요. 통로 하나의 선마다 7200개의 혈이 뚫려 있습니다. 세 개 합하면 이만천육백개의 혈이 온 몸에 다 뚫려 있습니다. 또한 이만천개 혈 자리가 네 번이면 팔만사천 번입니다. 우리 몸에 팔만사천 모공이 있다고 그래요. 21,000에 4를 곱하면 팔만사천이죠. 이만천개의 기본 혈이 있고 거기서 또 4단계 - 열리는 게 다 달라요. 팔만사천 모공이 다 열려 버리면서 온몸이 광명 그 자체로 돼 버려요. 매일의 삶 가운데 말과 생각과 행동,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다 광명이 되요. 그런데 번뇌와 망상을 일으켜 버리면 혈 자리를 막아버려요. 혈을 계속 뚫어 줘야 됩니다. 하루 사는 것만큼, 혈 자리가 막히니, 매일 우리가 수행해야 되요. 백단일통이라고 하죠. 몸의 혈 자리가 다 뚫리게 되면 막혔던 것이 열리는 것만큼 시원해요. 몸을 만들고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혈 자리를 막는 번뇌는 물질과 관계가 있어요. 애착을 하면 몸 가운데 번뇌가 쌓이고 막혀요, 그래서 매일 매일 수행해야 돼요. 수행하는 것만큼 열리는 것이죠. 고통의 원천은 하나라는 생각이 아닌데서, 막히는 것으로부터 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던, 생각하던, 행동을 하던 내 마음 가운데 그것을 지켜보는 나가 있어요. 그 분이 정념의 주체이며,</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그 분이 심왕이며 부처님입니다. 그 분은 지켜보기만 할 뿐이죠. 그리고 계속 기록물을 남겨 놓기만 할뿐이에요. 부처님은 모르시는 게 없어요, 다 보고 계시고, 우리 몸에 항상 들락날락 하고계세요. 양심이라고 불리는 주체 또한 부처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부처님 그 자신이 들어와 이거구나 깨닫고 보면 부처님 말을 하게 되고 부처님 생각을 하게 되고 부처님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지금도 이 순간에도 찍어대고 있어요. 찍어 대는 게 그게 바로 물질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지금 카메라를 돌리면서 찍어대고 있는데 허공 가운데 알 수 없는 물질, 알 수 없는 것들로 뭉쳐지고 지금도 계속 영상화 시키고 있어요. 찍어 놓은 영상을 내 놓아 봐 하면 내 놓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거든요. 우리는 부처님 전에 와서 좋은 말씀을 같이 나누고 부처님 바라보고, 좋은 걸 찍고 있으며 찍는 건 전부 물질화 되는 것이니. 법문을 들으면서 좋은 물질과 허공에 있는 여러 가지 물질들을 응집해 좋은 영상과 좋은 물질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빈 공간에다가 에너지를 계속 넣으면 빈 공간에서 전자와 반전자가 생기면서 물질이 생겨납니다. 텅 비어 있는 허공에서도 얼마든지 물질이 생겨날 수 있어요. 생각이 에너지거든요. 그러니 가정 내 좋은 마음을 가지고 가족들이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정진하면 그런 가정은 분위기가 다른 거죠. 생각이 염력 에너지거든요. 허공 가운데 에너지를 쏴 버리면 물질이 생겨나요. 이 우주 허공 자체가 소립자의 바다이며, 부처님 몸이고 마음입니다. 전자와 반전자, 반물질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빛이 부딪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져 허공 자체가 광명입니다. 우리 고기 덩어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텅 빈 허공 같지만 깨닫고 보면 우주 자체가 찬연한 광명입니다. 전자와 반전자의 충돌이 곧 공이며, 공이 광명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공기는 공기가 아니라 광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처님 기운이 호흡을 통해서 우리 몸에 들락날락 합니다. 허공도 광명이니까 우리가 공기 마시는 것을 그냥 공기라고 생각하면 바보라고 그랬죠. 부처님 정보입니다. 공기가 들어오는 게 아닌 부처님이 들락날락한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부처님께서 계속 이 몸을 컨트롤하고 나로 하여금 성불하도록 계속 유도하는데 우리가 쉽게 깨닫지 못하니, 계속 바보처럼 무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명행멸 - 무명으로 행이 생기고, 무명으로 업을 짓게 되는데 무명이 깨지면 행이 깨지고, 식이 깨지죠. 이 식을 이겨내 버리면 지혜가 돼 버리는 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공기 속에서도 물질이 생기고 허공 가운데도 물질이 생깁니다. 지금도 계속 물질이 생겨나고 있어요. 여러분 생각 따라서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에너지와 좋은 기운이 허공에 방사 되요, 여러분의 생각이 성스러우면 숭고한 생각이 에너지가 되어서 허공의 어떤 부분이 맑아지고 좋은 물질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애국 애족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길까지도 열려요. 그러니까 정말 마음은 에너지에요. 일체유심조 - 마음은 에너지고 생각도 에너지에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여러분 뱃속에 아들, 딸들이 누가 들어올 줄 모르는데 들어오면 내 아들이고 그러잖아요. 지금도 호시탐탐 누구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거든요. 벌써 나는 다 낳았으니까 그만 낳겠다. 이런다 하더라도 여러분 주변에 계속 넘나드는 인연 중생들이 있어요. 그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거든요. 그들은 차식이니까요. 왜냐, 내 식을 빌려서 우리들과 교류합니다. 나의 식을 빌려서 내가 찍은걸 봐요. 우리가 텔레비전 카메라 보는 것과 똑같은 거죠. 우리 마음 가운데 염력이라는 게 있으니 계속 찍어대고 있는 거죠. 찍어대는 그것이 상이고, 오랫동안 쌓이고 모여서 필름이 되고, 이것이 모여 이 몸이, 눈귀코입몸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항상 내가 나를 잘 지켜봐야 되요. 그릇된 짓을 할 땐 요놈 호통을 쳐가면서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바르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란 덩어리는 오랜 세월동안 눈귀코혀몸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이런 마음을 계속 가지고 살다 보니까 이런 덩어리가 생긴 거에요. 우리가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는 이 몸은 - 고통 보따리지만, 수명이 끝날 때까지 몸을 짊어져야 하고, 몸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나오는 것만큼 애착을 끊어야 되니 고통스럽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빛이 법신이고 법성이고 원각이고 지혜이기 때문에 항상 이 몸으로 몸을 닦고, 환으로 환을 닦아야 됩니다. 이 몸으로써 몸을 이겨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부처님 세계로 가게 되는 거죠. 육신은 내 것이 아니고, 썩어져야 되며, 수명이 다해져 놔두고 가야 되니 내 것이 아닙니다. 몸은 환과 같은 것이니까, 이 몸을 가지고 정진하게 되면 부처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모든 만상은 환이며, 환 같은 몸을 가지고 환을 이기는 거죠.</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수행과 연마를 통해 죽음이라는 깨달음의 문을 통과하여 윤회에서 벗어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5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여러분들이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과 죽음은 같은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곧 깨달음입니다. 부처님 나라로 가야 되니까 엄청 고통스럽다고 위대한 도사, 위대한 선지식들이 모두 한결같이 이야기해요. 여러분이 계속해서 수행을 해서 몸과 마음의 문을 열어 놓으면요, 저 척추 밑자리 쿤다리니 기운이 점점 달라져요. 살아있을 때 죽음을 체험하게 되는거죠. 정말로 온 몸에 기운이 밀고 올라오면서 - 경전에 나오는 대로 표현한다면 천개의 잎이 달린 아름다운 연꽃이 온 몸을 밀고 올라와서 확 피어버려요. 천개의 연꽃이, 천개의 잎이 달린 연꽃이 확 피면 - 완전히 열려 버리는 거죠. 완전히 몸이 열려버려요. 실제로 그런 희열에 들어있는, 몸이 열린 사람 사진을 찍어보면 두뇌 부분 백회가 열려 버리니까 머리 부분이 환희 빛이 난다는 거죠. 환희심이 차서 머리가 확 열리는 거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생사해탈의 경계를 가려면, 죽음을 이겨내야 되니 정말 고통스럽겠죠. 우리의 죽음은 호흡이 넘어가는 것만이 죽음이 아니라 했어요. 지수화풍공견식 오대 육대가 전부 쓰러져 가는 과정이 있어요. 우선 지대는 고체잖아요. 고체 액체 기체 이렇게 점점 허공화 되는 과정입니다. 지대가 떠나가면 고체가 액체가 되요. 고체가 금방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액체화 되어야 되며, 고체가 액체가 되는 - 그것 또한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지대가 수대에 녹고 수대가 화대에 녹고 - 차례차례 엄청난 것을 체험합니다. 광명 지대 수대 화대 풍대 공대 허공으로 올라가는 거죠, 까딱 잘못하면 못 올라가요. 대부분의 중생들이 그러고 끝입니다. 그러면 본인의 길 따라서 윤회하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내가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의식이, 이렇게 계속 녹아 들어가 허공이 되어 버리려면 그 과정이 엄청 고통스러워요. 기절하고 까무러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죽음의 고통, 생로병사 - 생고도 있지만,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고통 노고라는 게 있죠. 왜 이렇게 죽고 태어날 때도 고통스러울까요? 고통스러운 걸 많이 체험하다보면 정말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지, 어떻게 다시 안 태어나는 길이 없나 하게 되죠, 또 어떤 사람은 살기 힘드니까 자살하기도 하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힘이 든 거죠.</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죽음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보통 사람들은 3-4일 동안 까무러칩니다, 그래서 3일장 지내는 겁니다. 다시 정신이 들어서 중음신에 갈 때까지 며칠 걸립니다. 그래서 제가 법당에 자주 나오시고 부처님 말씀 연마하시라고 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그 엄청난 고통과 유사한 죽음이 곧 깨달음입니다. 그 유사한 고통도 내가 이겨낼 수 있어요. 거기서 깜빡하면 사바세계 살면서 아무리 수행했다 하더라도 소용없어요. 깜빡하면 큰일 나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되요. 그때 정말로 찬연한 광명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때도 성불의 기회가 있다고 말씀 드렸어요. 우리가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흙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물이 불속으로 불이 바람 속으로 바람이 공기 속으로 이렇게 차례차례 진전돼 가면서 고통을 겪어요. 내가 허공이 되려면 살아있을 때 그 몸을 가지고 놀던 기운을 다 버리게 되겠죠. 땅이 하늘에 딱 붙는 것 같고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고 했어요. 하늘 전체가 캄캄한 어둠으로 휩쓸어 덮이는 것 같고 아주 캄캄한 암흑을 체험을 합니다. 이때 수행자가 아니면 기절해 버립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살아생전에 부처님 말씀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꼭 선정 삼매에 대한 체험을 해 보시고 아 이게 그거구나, 그때 고통이구나, 아 이거 환이지 하면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러면 진짜 좋은 곳으로 가요. 성광명 - 죽음의 순간에 어떤 자성 광명이 체험이 되고, 이 때 정신을 차리면 깨달음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이걸 알아차리지 못해요. 이걸 체험해 본 사람은 이거구나, 과거에 체험한 거구나 하고 알게 되어있고, 그렇지 못하면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죠. 기회를 놓쳐 버리는 거죠. 그러면 그대로 다시 윤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일념, 한 생각이 무량겁입니다. 이게 한 생각 일어나기 전 바로 그 자리, 번뇌가 일어나기 전 바로 그 자리인 - 부처님 자리를 끊임없이 지켜 들어가다 보면 생각이 멈춰지는 자리가 있어요. 생각이란 선과 악으로 구분이 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걸 항상 지켜보는 나가 있어요. 감각과 감정은 항상 에고가 들어있어요. 나라는 존재가 들어있다고 감각과 감정에 대해서 항상 부처님께서 강조하셨어요. 주관과 객관 - 내가 없으면 너도 없어진다는 것처럼, 정에 들어가면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지만, 자기를 놓쳐버릴 경우, 거기에 빨려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에 빠지지 않는 정도만 되어도 성자의 부류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빠지지 않는, 지켜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은 모든 만상들을 보면 환이구나 하지 않고‘아이고, 맛있겠다!, 이쁘다!’하고 빠져 버리죠. 각각의 노예가 돼버리고, 그러면 다시 생멸로 떨어질 수밖에요. 그러니 생멸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윤회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생멸이 떠난 자리를 깨닫는 자는 불멸, 열반으로 가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깨닫고 보면 온 우주가 광명이며, 그물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가 되기 위해 남에게 베풀고 펼치는 것 좋은 말하는 것 이게 다 녹아지고 녹아져서 수행의 결정체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수행의 기본인 사성제 팔정도 육바라밀을 매일 매일 생각하고 행하면, 큰 공덕 될 수 있음을 유념하시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SPAN></P>2018-08-29 오후 3:05:10인류의 유전자 속에 초고도지능이 주입되어있다. 누구나 스스로의 번뇌 때문에 갈등하며 산다 /Media/law/Read.aspx?db_cnt=79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부처님을 예배하는 것은 곧 자신을 예배하는 것</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또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님이라고 하죠. 우리가 만드는 그 무엇이든 마음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어요. 마음 밖에선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아름다운 작품이 나와요. 마음을 부처님으로 승화시켜 나가면 말 한 마디도 부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 하나가 부처님을 닮아가요. ‘행주좌와 어묵동정’행동하는 거, 가는 거, 머무는 거, 앉는 거, 눕는 거, 말하는 거, 침묵하는 거, 움직이는 거, 가만히 있는 거의 모든 순간순간이 선(禪)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부 마음의 그림자이기 때문이에요. 만든 자와 작품은 하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데는 분명히 부처님이 계십니다. 부처라고 하는 존재 법신, ‘참 나’라고 합니다. 참 나는 영원합니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난 자리가 없다고 그래요. 그럼 영원은 누가 만들었는가? 부처님은‘가 봐라’이러셨어요. 여러분이 이렇게 법당에 나오는 것은 부처님을 예배한다는 말도 성립되지만 우주와 부처님, 신과 인간과 나는 무차별하다는 의미도 성립돼요. 차별 없이 하나예요. 부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예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투철한 가치와 영원의 확신이 여러분을 이렇게 법당에 나오게 만든 거예요. 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원이 존재할 이유가 있나요? 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이 존재할 이유가 있나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처님도 생각하게 되고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만든 모든 것은 내 마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산출한 자는 산출한 것과 하나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모두의 마음 밑바닥에는 궁극적인 하나, 그것이 찬연히 빛나고 있다는 게 부처님 말씀입니다. 불성광명, 법성광명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잘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뭔가 있지’하면서 알긴 알아요. 노력을 해서 갈고 닦아야 빛이 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술어들이 있잖아요. 분골쇄신이니 십년적공이니 절차탁마니, 천신마고니 와신상담이니 백절불굴이니 대기만성이니 하는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예전에 선인들이 전해 준 가르침들이에요. 이 말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어디 멀리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전부 자기 안에서 끌어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정성과 노력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신이여, 왜 이 땅에 전쟁을 만들어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어가게 합니까?”했잖아요. 사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도 잘못된 질문입니다. 신이 전쟁을 만든 게 아니라 하나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들이 서로 부딪는 데서 나온 결과입니다. 어리석음, 무명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러한 무명을 타파하자는 게 불교의 핵심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왜 정신분열증과 같은 질병이 생기는 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리 내면의 참 나와 거짓 나 사이의 갈등이 생겨서입니다. 사실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마음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서였어요. 우린 필연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수행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안식이라고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 광활한 우주를 궁굴리는 거룩하고 장엄한 시스템과 같은 존재가 법이거든요, 법이 없으면 다 깨져 버립니다. 법신상주를 말하는 것처럼 부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너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법성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왔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인류는 영원과 현실의 혼혈 종</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생활화하거나 혹은 또 기도하는 마음이 되거나 수행하는 마음이 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때도 공부를 열심히 해 놓으면 마음이 편안하지만 공부를 안 하는 친구들은 마음이 늘 불안해요. 그러니까 정신분열이나 정신적 병리현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고 자신의 본질을 잊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인 겁니다. 부처님은 항상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 그러셨잖아요. 우리는 정진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확실히 정립해 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밑바닥엔 부처님과, 하나님과, 신과, 우주와 하나인 존재가 분명히 있다니까요. 왜냐?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일체유심조예요. 이 광활한 우주를 만든 당체입니다. 다른 종교인들 봐 봐요. 그들은 일요일에 누가 뭐래도 교회나 성당에 갑니다. 안식일 지키는 걸 생명으로 알아요. 몸을 쉬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만유는 전부 배태(胚胎)된 근원이 있으니까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마음은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 뭐든지 시켜요. 마음 가운데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 또한 그렇듯이 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쩌면 인류는 영원과 현실의 혼혈 종 같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는 영원이 있으면서도 지금은 현실을 살아야 하잖아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연마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예요. 며칠 전 어느 보도에 홍콩의 어마어마한 부자 리카싱에 관한 기사가 있었어요. 그는 공부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공부한 사람들처럼 책을 한 줄 읽으면 한 줄 읽은 걸 꼭 실천하는 삶을 살았답니다. 어디 가서 강연을 들어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한 줄 한 줄, 한 말씀 한 말씀을 몸에 익히는 데, 몸에 배게 하는 데 노력을 한 거죠. 그는‘그래서 지금의 부를 쌓았는지도 모르겠다’이렇게 얘기했대요. 우리는 들어도 실천할 줄 몰라요. 실천해 봐야 이 우주를 장엄하는 그 자의 마음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와 먹고 살기 위해 분투노력하지만 하늘에서 부르면 즉시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누가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어요. 하늘에서 부르면 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누구나 마음 가운데 영상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카메라맨처럼 계속 찍어대잖아요. 그런데 끊임없이 찍어대는 그 실체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거죠.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변칙적인 측면이 우리의 마음과 몸 가운데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지나온 그날의 영상들이 다 머리에 저장돼 있고 생각을 하면 즉시 떠오르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전 세계 어느 나라나 신화와 전설이 없는 곳 없습니다. 그 신화와 전설에서는 하나같이 ‘하늘과 인간은 통해 있다’고 합니다. 단군신화도 환웅천왕이니 환인천제니 하잖아요. 화엄경에도 이 우주의 무량한 별 나라에 있는 무량한 존재의 삶이 낱낱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주 자체가 향기로운 바다와 같다는 거 아녜요. ‘정말 이렇게 기도 열심히 하면 뭐가 나오나? 뭐가 생길까?’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오로지 하시면 돼요. 이 우주는 철통같은 세계라니까요. 악업은 닦지 말고 선업만 닦아가세요. 그 길을 따라 가면 영원의 길, 참 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마음 가운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 또는 천사와 악마가 있다 그래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는 건 결국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낮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낮밤이 있는 별에 태어난다는 거예요. 부처님 경전의 핵심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 때, 장소의 모든 것들이 전부 자기 마음이 배태한 거래요.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들은 밤이 없는 세계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덩어리진 몸으로는 밤이 있어야 해요. 잠을 자야 하거든요. 그러나 덩어리가 없어지면 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생각, 염력의 불가사의</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육신을 떠나면 파동으로 존재합니다. 기(氣)는 파동이에요. 말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 담기잖아요. 내 안에서는 거룩한 마음이 흘러나옵니다.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부정적인 마음을 품게 되면 마장으로 작용한다니까요. 상대를 비난하고 시기하고 원한을 맺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쏟아낸 기운 전부가 다 내가 만드는 파동입니다. 그러한 나쁜 기운이 걷어져야 해요. 낮에 사무실에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반야심경을 독경하든지 천수경을 독경해보세요. 사무실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기운이 긍정적인 파동으로 바뀝니다. E=mc</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per;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모든 질량은 에너지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틀림없이 공격의 파동이 날라 들어오게 돼요. 그래서 항상 상대방을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이익 되는 것만큼 상대방의 비난은 각오해야 합니다. 누군가 저주의 염파를 날린다 해도 염피관음력,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날아오던 저주의 화살이 연꽃으로 변해 떨어진대요. 기도를 하면 중화가 되거든요. 기도하는 마음, 생각의 불가사의, 염력의 불가사의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일을 해 나아가다가 자꾸만 멈칫멈칫하고 문제가 생길 땐 번뇌부터 제거하세요.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법문을 듣거나 하면서 삼독번뇌를 녹여 내야 해요. 번뇌란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번뇌 때문에 스스로 골탕을 먹습니다. 번뇌, 장애는 누가 만든다? 내 마음이 만들어요. 사람들은 ‘우째 이런 일이…’ 하는데 우째 이런 일이 아니라 당장 내가 상대방보다 많이 먹으면 상대방은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누가 나보다 더 많이 먹으면 배가 아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속성엔 그런 게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가 자기 죽는 시간을 알고 죽겠어요? 부처님 같으신 분이나 위대한 도인들 빼놓고 자기가 죽는 날은 대부분이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한을 머금고 죽는 사람이 99.99프로라고 해도 정확해요. 억울하게 죽는다거나 일을 제대로 다 치르지 못하고 죽는다거나 실컷 돈을 벌어놨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한 맺힌 파동이 허공에 가득합니다. 그러한 영가들을 위해 1년에 49일 기도하는 건 우란분재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이 왜 우란분재를 자심하게 만들어 놓았겠어요?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악도에 떨어졌잖아요. 목련존자가 신통제일인데도 혼자의 힘으로 어머니를 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어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부탁드리잖아요. 이에 부처님은‘7월 백중날까지 모든 절의 스님, 모든 수행자들과 신도들이 열심히 기도하니까 너도 그들과 함께 기도해서 백중에 천도시켜드려라’ 그렇게 된 거예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우리는 업장이 두껍기 때문에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항상 경쟁해야 해요. 투쟁해야 하고 전쟁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와 투쟁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생래적으로 그렇거든요. 자기와 싸움을 하던 누구와 싸움을 하던 간에 부정적인 기운은 생겨날 수밖에요. 살기등등하다고 그래요. 좋은 마음으로 염불-생각이 부처님, 염법-부처님 법문을 듣는 거예요. 나와의 투쟁을 통해서 부처가 되고 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의 투쟁은 아상과의 투쟁이고 아집과의 투쟁입니다.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이유도 인간은 전부 상대성의 세계에 사니까 부정적인 기운이 몸과 마음 가운데 계속 쌓이게 돼서 그렇습니다. 그 와중에서 탁월한 인물들은 하늘의 메시지를 들을 때까지 기도하잖아요. 독기를 좀 빼야 해요. 그래야 모든 것이 제 갈 길을 찾아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해야 발전하는 곳입니다. 협동과 경쟁은 두 개의 바퀴예요, 한쪽으로 협동하고, 한쪽으로 경쟁해요. 남들과의 쟁투 가운덴 저주의 파장도 날아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경쟁해야 합니다. 경쟁이 진보를 촉진하거든요. 근데 경쟁에도 법칙과 원칙이 있습니다. 단 10분이라도 좋아요,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해보세요. 깨달은 사람들은 전부 기도를 강조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기도고, 정성이고, 노력입니다. 경기장을 뛰는 데 법을 어겨 봐요. 당장 퇴장당합니다. 수명이 짧아져요. 끊임없이 기도해 부정적인 파동, 파장을 걷어내며 나아가세요. 그런 삶만이 여러분을 복되게 만들어줍니다. </SPAN></P>2018-08-29 오후 2:36:25우주는 영원한 사랑과 자비의 나라. 끊임없는 수행과 영원을 가는 정진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 /Media/law/Read.aspx?db_cnt=79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날빛보다 밝은 천당</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항상 ‘너희 몸과 마음 가운데 내가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우리 몸 안에 함께 계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진실을 얼마나 신뢰하고 계신가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주변에는 ‘아, 그렇겠구나. 그렇다’하는 소소한 진실이 참 많습니다. 우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법당에 나와서 부처님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살아 있다는 것은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일심동체로 뭔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 간에 있는 세포다, 위장에 있는 세포다, 심장에 있는 세포다, 그러면 세포 하나하나가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근데 그 세포 하나하나가 그냥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에요. 몸 전체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있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세포라는 이름의 대우주’란 책을 쓴 학자도 있듯이 간세포가 간을 살려내기 위해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중에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세포가 있다면 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세포를 암세포라고 불러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작은 티끌 가운데도 시방삼세의 묘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하나가 우주의 묘리까지 다 알고 있는 거죠. 자기 직분을 충실히 하면서 전체를 파악하는 힘, 그 힘은 사랑, 자비입니다. 지혜예요. 우리 몸 가운데 부처님의 묘리가 들어 있고 부처님이 들어 계심이 분명합니다. 몸과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신데, 과욕을 부린다거나, 탐욕을 갖는다거나, 독심을 갖는다면 신체 조직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우주의 법이 깨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병이 오겠죠. 몸에 재앙이 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구 옆엔 꼭 달이 따라 다니잖아요. 달이 어떤 역할을 하는 줄 아세요? 하루 24시간은 정확합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균형자 역할을 해서 일정한 시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근원적인 동력의 조합에 의해 시간이 나와요. 달이 그 자리에 있으므로 균형자 역할을 하는 거예요. 낮과 밤 가운데 낮은 빛입니다. 밤은 어둠이에요. 낮과 밤이 생기는 이유는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타심은 광명이요, 사랑입니다. 이기심은 암흑이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지금 이 지구란 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낮과 밤이 반반이잖아요. 마음 가운데 이기심과 이타심이 반반인 거예요.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럽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타심, 사랑의 마음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요? 밤이 없는 광명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이렇게 나오잖아요. 정말 천당이 있냐? 지옥이 있냐? 그러는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이 천사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기심이 가득해서 어둠을 조장하는 악마와 같은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연마해 법성을 강화시켜나가는 고 하니 인간에게는 이타심과 이기심이 반반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매일매일 수행하지 않으면 이기심이 강해집니다. 어둠이 내 마음을 장악하게 된다고요. 그럼 나는 악령이 됩니다. 죽으면 악마가 되는 겁니다. ‘설마 내가 악마?’ 아니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악성의 존재들이 많습니다. 태양은 제 자리에서 묵묵히 빛납니다. 지구가 자전을 해서 태양을 만나기 때문에 태양을 볼 수 있는 낮이에요. 자전을 해서 태양을 등지면 밤이 되는 겁니다. 이기적인 마음이면 어둠이 돼요. 티끌, 원자의 세계로부터 세포의 세계, 지구, 달, 태양, 이 우주에 이르기까지 전부 법성과 불성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내 마음의 문을 열면 하늘의 문이 열린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쓰는 언어 가운데는 하늘과 연관된 말이 많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성을 다하고 지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한다’하잖아요. 그런데 하늘의 언어, 즉 보이지 않는 세계, 차원이 다른 부처님 나라를 이해시킨다는 게 쉬울까요? 이심전심이라, 마음과 마음은 교신을 하거든요. 내 마음이 맑아져 마음이 열리면 하늘나라 사람과 교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이기심이 깨지면 마음의 밝기에 따라 지혜광명, 자비광명이 열립니다. 실제로 신통이란 말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감동 그 자체예요. 감천(感天)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이기 때문에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떤 방법으로든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일단 말을 듣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마음을 닦아가잖아요. 이 껍데기가 다가 아니라는 말씀이에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아는 분 가운데 심폐소생술 전문의가 있습니다. 그가 저한테 와서“스님, 제가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사람들이 여럿인데, 그들 백 명 가운데 몇 십 명은 저승엘 갔다 왔다.”그래요. 우리 주변에도 저승 갔다 왔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알면서도 “괜한 말하시네.”라고 넘기지만 아니에요. 그들은 아주 심각한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저승이 있다는 거예요.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별도 어떤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랬잖아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원의 세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별에도 삼보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부처님 법을 공부해 불법을 몸과 마음에 체화시켜야합니다. 성불해야 해요. 우리는 이 땅에 놀러온 게 아닙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주변에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드날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근심걱정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도 과거에 고관대작 했던 분들이 계세요. 지난번에 그 중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래요.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부처님 말씀에도 ‘명예가 높은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 권력이 많은 사람은 귀찮은 일과 욕된 일이 많다’이러셨거든요. 어떤 큰 회사에서도 승진을 하려면 일단 지방에 내려 보냅니다. 지점에 가서 좀 더 경력을 쌓고 오라는 것입니다.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여기도 잘못하면 귀양을 보낸다고 그랬죠? 하늘나라, 별나라에도 마냥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마음이 완전히 하얀 부처님이 되기 전까지는 상대성이 있는 거니까요. 거기도 감옥이 있어요. 이 땅으로 귀양을 옵니다. 부처님도 도솔천에서 내려오셨다고 그랬죠? 그 당시 많은 인물이 지구의 곳곳마다 내려와 중생을 제도했다고 그러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음을 열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해보세요. 하늘과 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기도하라고 자꾸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하늘의 문을 여는 겁니다. 아무나 하늘과 통하진 않습니다. 하늘의 마음을 써야 하늘과 통해요. 만약 하늘의 마음을 쓰지 않고 이기심이 강해지면 그들은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들과 통할 길이 없게 돼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하죠. 정신일도,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열심히 기도하라는 겁니다. 내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부처님 법 가운데 살아야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의 세계를 열어 보여드릴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나의 이기심이 걷혀야 사랑의 마음이 뿜어져 나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사랑은 기쁨</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세요. 사랑은 기쁨입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 그러면 남편을 기쁘게 해줘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쁘게 해주세요.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면 아내를 기쁘게 해줘야 해요. 말로만 사랑한다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늘나라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 실천이잖아요. 그들은 마음의 존재니까 실천이 우선입니다. 남을 기쁘게 해주는 환희행, 상대방을 이익 되게 해 주는 요익행이 보살의 제1항 요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니까 행동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이에요. 부처님은 ‘나의 가르침은 추상적인 이치에 있지 아니하다. 구체적이고 바른 행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행동은 사랑입니다. 남을 이익 되게 하는 행동이 사랑이에요. 사랑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거예요. 상대방에 이익을 주고 상대방에게 뭔가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기심이 깨져야 합니다. 이기심이 녹아진 정도에 따라서 사랑이 열리거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하늘이 원하는 것, 부처님이 원하는 것, 이 우주가 원하는 것은 밝음입니다. 밝음은 이타이심이거든요. 어둠은 이기심이에요. 마음에 어둠이 가득하면 어두운 데로 갑니다. 지옥이라고도 말하잖아요. “아, 스님, 지옥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승화된 존재들, 사랑의 존재들은 기쁨을 나누는 것을 삶의 본질로 합니다. 가정을 극락으로 만들고, 가정을 부처님 나라로 만들어요. 기쁨을 나누는 것이 사랑의 요체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사람들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하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벌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통한다고 그랬잖아요. 마음은 하나니까 그들도 이 세계를 다 보고 있어요. 우리가 신중기도도 하고 우란분재도 지내고, 천도재도 지내잖아요. 마음의 문이 열리면 하늘의 말을 듣고 천사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신탁이 가능한 거예요. 그들이 항상 우리에게 얘기하고 싶지만 내 마음의 문이 어둠으로 닫혀 있으니까 안 되는 것뿐이에요. 영원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하고 수행해 보세요. 정진할수록, 수행할수록 내면세계는 점점 밝아집니다. 내부가 점점 열리니까 하늘나라 사람들과 교신하고 하늘의 복을 받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이타심은 빛이요, 이기심은 어둠이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항상 하늘의 뜻, 부처님의 뜻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몰입해 하나가 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영육이 하나가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되고, 정신일도 하는 거죠. 일도(一到)가 돼야 중심으로, 집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여기 와 앉아 계신 분 누구나가 다 부처님 되게끔 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부처님이고, 분명히 성불할 분들이에요. 언젠가 부처님 될 분들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부처님 될 분이라는 건 제 말씀이 아닙니다. 법화경, 화엄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정진하라는 거예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몸 전체를 아우르라는 겁니다.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내가 맡은바 직분에 최선을 다하세요. 나만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은 말고 몸과 마음을 다해 우주를 포괄하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세요. 부처가 되려면 우주의 법을 마스터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체화시켜야 해요. 부처님은 성불하고 난 다음에도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하셨어요. 여러분은 무량중생의 어버이가 될 분입니다. 모두를 섬기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내가 남에게 베풀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쁘잖아요. 자꾸만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해 보세요. 내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내 마음이 기뻐요. 수행 정도에 따라서 내 마음 가운데 평화의 질이 달라집니다. 내 마음 가운데 평화의 양이 달라집니다. 낮과 밤 생기는 이치는 이기심과 이타심 돌아가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낮과 밤이 생기는 이유는 태양 탓이 아니에요.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광명을 향해서 살아야 하는데, 어느새 지구처럼 슬금슬금 자전을 하거든요. 그러면 악마의 세력이 강해집니다. 끊임없이 영원을 가는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에요. 내 마음은 빛인가, 어둠인가? 여기서 한 것만큼 그 빛을 받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살아가는 곳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구나가 다 1등 되고자 노력합니다. 1등이 되려면 우선 내려놓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내 몸과 마음처럼 섬기는 거예요. 몸의 세포 하나도 우주의 진리 따라서 활동합니다. 우주의 진리 따라서 움직여요. 진리의 힘 따라서, 사랑의 힘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철석같이 우리 몸을 사랑합니다. 몸을 잘 관리하세요. 몸은 부처님 계신 집이에요. 몸과 마음이 존재하는 동안 참이고 사랑이거든요. 진리의 힘으로 이 몸뚱어리가 움직이는 거예요. 법 따라 몸을 간수해야 합니다. 이 몸은 법의 힘 따라 움직입니다. 이 몸은 사랑의 힘 따라 움직여요. 진리를 사랑하고 실천하며 사는 것, 그 사람이 부처님 사람이고 부처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생은 불확실합니다. 예측불허에요. 하이데거는 ‘이 세상 모든 건 불확실한데, 딱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죽음이다’ 그랬어요. 죽음, 죽음을 통해 인생을 비춰 보라는 얘깁니다. 하늘나라 사람들의 말씀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 사람들의 언어가 우리의 마음속으로 흘러듭니다. 하늘나라 사람들의 언어는 마음으로 통합니다. 지성으로 통해요. 하늘나라의 언어를 듣고 그렇게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 되면 좋겠어요. 절대로 좌절하지 말고 하늘나라의 소리를 듣는 거예요. 남에게 뭔가 베풀면 됩니다. 선 가운데 하나가 되는 거니까 그런 마음 가운데 진리와 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채널이 열리고 길이 열립니다. 하늘의 길이 열리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타심은 빛이요, 이기심은 어둠입니다. 우리는 낮과 밤이 있는 별에 살고 있지만, 점점 고차원이 되면 밤이 없는 별이니까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낮과 밤, 선과 악을 항상 생각하세요. 지혜는 선에서 나옵니다. 남을 배려하고 선행하는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지혜와 자비는 하나입니다. 끝없는 수행, 영원을 가는 정진만이 하늘의 묘음을 듣게 되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고 사는가를 스스로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8-22 오후 3:16:51 우주는 한 통속이다. 영혼도 과거 현재 미래를 떠났다. 영계의 태양은 영원하다/Media/law/Read.aspx?db_cnt=79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생각은 마음의 눈 하늘의 별을 바라보세요. 수많은 별과 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비로운 어떤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영원의 향수를 느껴봅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 가운데서 동요를 만들고, 동화를 만들고, 소설을 만들고, 인터스텔라와 같은 영화를 만듭니다. 별은 인간에게 있어 한없는 상상력을 낳게 하는 원천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 법을 공부를 하면서 마음나라에 대해 공부합니다만 학교에서 마음 세계를 얘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거든요. 그런데 무상심심미묘합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이 삼천대천세계와 통해 있다는 거예요. 한 생각이 영원과 통하는 참 미묘한 얘기예요. 세속에서 텔레파시가 있느냐 없느냐, 하죠? 근자에 들어 인공지능(AI)을 연구한 학자들이 많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근데 ‘아, 이럴 수가…’ 그랬던 게 하나 있어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잖아요. 컴퓨터에 지문을 넣으면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나온다고 그래요. 또 발에 있는 족문, 목소리의 성문이 다 다르대요. 뇌파도 같은 사람이 없답니다. 화엄경에서 생각은 우주의 무량중생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이라는 거예요. 텔레파시가 있느냐 없느냐, 얘기하는 것처럼 생각은 우주에 있는 무량한 중생과의 통신방법입니다. 한 생각이 현실과 영원을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수도 없이 얘기했잖아요. 생각은 바로 마음의 눈입니다. 광활한 우주는 생각 따라서 움직이는 신비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둔탁한 몸을 겉옷처럼, 우주복처럼 뒤집어쓰고 이 땅에 태어나 백년 안팎을 살다 가야만 할까요? 자, 생각해보세요. 한 생각 잘못 놀리면 어떻게 돼요? 순간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문제가 생기잖아요. 자기를 잘 가늠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마어마한 무기를 줬는데, 그걸 잘 다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생각은 상대와 교신하는 어떤 통신수단입니다. 상대성의 세계거든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염파의 작용이에요. 불교에선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이 생각들을 번뇌라고 부릅니다. 백팔번뇌니 삼독번뇌니 팔만사천번뇌니 하지요. 만약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되면 스스로 나락으로 가는 거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항상 얘기하잖아요. 나쁜 뜻이 있으면 악도로 가 버리니까, 생각을 잘 다스리고 생각을 잘 머금어야 합니다. 우리같이 둔탁한 도구를 뒤집어써야 하는 존재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살다 보니까 제약이 많습니다. 한계가 많단 말이에요. 일종의 감옥이지요. 말도 조심해야 하고 생각도 조심히 하세요. 행동도 함부로 하면 당장 감옥에 가잖아요. 말과 생각과 행동을 잘 통제하는 것이 수행의 근본입니다. 생각도 아름답고, 행동도 아름답고, 말도 아름답게 하는 존재가 되어보세요. 그 때는 통제가 필요 없습니다. 광활한 우주는 하나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 마음의 나라입니다. 절대의 세계, 하나의 세계, 영원의 세계예요. 화엄경에 나온 대로 우린 영원으로부터 와서 영원을 살다가 영원으로 가야 합니다.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저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에 빛나는 별, 두 개의 별이 나를 약동케 한다’고 했잖아요. 하늘에 빛나는 별이 있듯이 우리 마음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과 마음의 별, 두 개라고 그랬는데 사실은 하나로 통합니다. 중대한 사실이‘너희 마음 가운데 내가 있다. 너희는 부처다’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능력자가 마음 가운데 계시다는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부처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무명 중생이라는 거죠. 뭔가 잘못 되어져 깨달음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지혜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구라는 별에 육신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귀양 온 것입니다. 2.우리 마음 가운데 창조주의 본심이 들어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뇌파가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같은 사람이 없는 것 처럼요.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개별 개별의 코드 번호는 다 달라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부처님이 탁 깨닫고 보니 무량겁을 두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날들이 모두 한눈에 보이더라는 거예요. 어떤 땐 숲의 사슴이기도 했고, 앵무새이기도 했고, 나찰귀이기도 했다는 겁니다. 과거 생이 낱낱이 보이는데, 그걸 정리해 경전으로 만들어 쓴 게 전생경입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게 모두 뇌파가 다르니까 그 사람의 과거 기록이 철저히 남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겁니다.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릅니다. 그런데 사후 세계로 가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건 내가 누굴 생각하면 그가 바로 그 자리에 온다는 설명입니다. 생각이 마음의 눈이라고 했으니 예를 들어 우리가 제사를 지낸다, 우란분재를 봉행한다, 그러면 생각으로도 죽은 영혼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은 ‘하늘을 고귀하게 여기고 제사를 지내는 자, 하늘은 그를 고귀하게 여긴다’하셨거든요. 내가 먼저 떠나간 영혼들을 위해 ‘좋은 데로 가십시오’라고 천도해드려야 마땅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물어보세요. “스님, 기독교에서는 천지창조주가 있다는데, 불교에선 누가 이 우주를 창조한 겁니까?” 제가 그분한테 말했어요. “창조주가 있다고 칩시다. 창조주가 능력을 다해 만든 제품에는 창조주의 성품자리가 들어가 있겠죠?”우리 마음 가운데 창조주의 본심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이 모든 걸 지었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부처님이라고 그러거든요. 우린 본래 창조주, 부처님이에요. 광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까 지금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우선 우린 계를 잘 지킬 줄 몰라요.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마음의 위신력을 가다듬을 줄 잘 모른다고요. 공부를 게을리 하고 또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움의 길을 연마해가야 합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광명이 됩니다. 해탈, 어둠으로부터의 탈출인 거예요. 누가 우주를 창조하고 누가 창조하지 않았냐는 놔두고 당장 마음을 가다듬어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백 살도 못살고 떠날 존재입니다. 미래엔 어디로 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수행했느냐, 빛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배정되는 별이 달라집니다. 고작 백 년 안팎의 수명을 갖고 있으니 죽고 사는 게 눈에 확연히 보이는 이 별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아, 죽는구나’ 죽음은 위대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네, 죽는 건 무섭고 두렵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해요.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언어 등 삶의 모든 것들은 가히 우주적인 생명체라고 보면 됩니다. 부처님 경전에 나와요. 상응(相應)이라, 우리는 하늘나라에도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핏줄 속엔 하늘나라 사람의, 외계인의 유전자가 있다니까요. 그걸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 생각, 행동은 가히 우주적으로 관통되는 내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기와 차원은 다르지만 우주의 다른 별에도 산, 들, 강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궁전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못한답니다. 우주에 있는 무량한 별나라들은 전부 보석과도 같다는 거예요. 그곳에도 그들의 업적 따라 종종색색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세상 수승하게 갈고닦은 존재들은 자기의 업 따라 수승한 나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공부가 안 돼 복과 지혜가 없는 존재들은 대기소의 중음신이 됩니다. 의식의 제3지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생들은 업 따라서 다시 이 땅에 태어나는 겁니다. 3.우리는 우주와 한 생각으로 연결돼 있는 존재다 누구든 수행한 정도에 따라 가는 곳은 다릅니다. 다섯 가지의 겁탁, 견탁, 중생탁, 명탁, 번뇌탁의 정의에 따라 스스로 찾아간다는 거예요. 미국의 유명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한 얘기가‘인간은 말을 빨리 배운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주를 넘나들며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화엄경에 일미진중함시방이라, 티끌 속에도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먹는 음식, 산, 들, 강 모든 것이 파동의 둔탁 정도에 따라서 물건이나 물질이 만들어지고 그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꾸 마음을 맑혀야 해요. 수행해야 합니다. 수행은 우리의 운명이고 의무라고 그랬잖아요. 딴 짓하고, 딴 생각해서 탁해지면 탁한 세상으로 갑니다. 이 우주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인데 말입니다. 원자의 내부엔 양성자, 플러스가 있습니다. 밖에는 마이너스전자가 있고요. 원자의 가운데 있는 중성자가 딱 중심을 잡는 거예요. 핵심부, 정권의 핵심에 들어 있는 사람이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중심을 잡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밖에 있는 마이너스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도 하나 돼서 서로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 우주의 근본 구도가 그렇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사람, 마음이 밝아 태양 같은 사람이 핵심부로 들어가는 거예요. 빛을 발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끊임없이 어둠을 걷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핵심부에 위치하잖아요.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고차원 세계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절합니다. 우리는 성불하는 그날까지, 영원이 되는 그날까지 그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가야 합니다. 삶을 도모하면서 정말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곳으로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전부 자기가 잘난 줄 알잖아요. 그런데 이 우주는 한 통속이에요. 우린 그저 전생의 업 따라서 백년 안팎을 사는 존재로 왔을 뿐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과제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앉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겁니다. 이기심이라고 하는 먹구름을 걷어내야 합니다. 나와 남을 따지지 마세요. 무엇이든 죽을 때는 다 놔두고 가잖아요. 아무리 많이 모아 쌓아놓는다 해도 갈 때는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광대무변한 능력을 몸과 마음 가운데 머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생각 하나에도 무지막지한 능력이 있어요. 우주를 관통하는 귀한 존재들이지요.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가세요. 영원을 모르고 어리석게 살지 말아야 해요. 우리에게 비록 육신이 있지만 파동의 존재이기도 해서 보이지 않는 파동끼리 공명하면 서로 간단히 이어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파동으로 이어지잖아요. 이 우주가 하나라는 겁니다. 무량한 별나라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예요. 우린 생각으로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는 육신을 가진 좀 둔탁한, 저급한 차원의 존재이기도 해요. 마음의 눈을 열고 텅 빈 무(無)에서 고차원의 존재를 따라가 보세요. 진동 숫자에 따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만유는 다만 차원이 다르게 존재합니다. 올여름 조상님에 대한 정성스런 마음 내보시기 당부 드립니다. 2018-08-14 오후 2:08:16나와 나라 그리고 부처님나라의 관계는 어떠한가. 개인의 법, 나라의 법, 부처님나라의 법의 상관성 /Media/law/Read.aspx?db_cnt=79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최초의 인간은 광음천에서 온 존재이다 안녕하십니까. 이제 선거가 앞으로 다가오니까, 이런 저런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는데, 그럴 때마다 이제 당선이 되시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많은 시민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노력을 하실 건가요? 라고 여쭤봅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방면의 리더들과 장들이 계시는데, 오늘은 과연 어떤 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우리와 더불어서 세상을 이끌면서 함께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단지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다 성불의 길을 따라서 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한대로 우리의 선조들은 저 하늘나라에서 왔다고 즉, 이 지구상에 존재한 최초의 인간들은 광음천에서 왔다고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성으로 성대를 울리는 소리로 얘기를 하지만 광음천 중생하늘나라에서 복이 다하고 수명이 다한 존재들이 이 땅에 태어났다는 거죠. 이 지구란 별은 저 외계인들의 식민지와도 같아서,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죄를 지은 사람을 귀양을 보내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광음천 사람들은, 의사 전달을 어떻게 하는가하면 우리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광음으로 합니다. 광음은 문자 그대로 빛의 음성이란 뜻입니다. 들은 빛으로, 빛이 음성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거예요. 전자파가 모두 다 빛의 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전자파를 이용해서 핸드폰, 스마트폰을 쓰고, TV를 사용하죠. 그들은 우리가 만드는 기계, 이 기계의 능력을 몸과 마음가운데 전부 다 저절로 가지고 있는 거예요. 광음천이라면, 우리보다 다른 차원의 능력 즉, 보이지 않는 몸, 광음, 빛나는 진동으로 된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니까, 둔탁한 육신을 가진 우리로선 생각만 해도 신기하죠. 음은 진동이니까 진동이 모이면 파동이 되고 에너지가 모이게 되면 질량이 되는 거니까 그곳은 아마도 순수한 에너지의 세계와 가까운 그런 세계임이 분명합니다. 그 곳에서 살다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진보해서 영원으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상에도 부자로 태어나거나 능력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게으르고 나태한 그런 사람들은 뭐가 안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부처님 문중에 주리반타카라구라는 바보가 있었는데 너무 바보라서 하나를 알려주면 열 개를 잊어버리므로 부처님도 이제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아주 귀찮을 지경이라서 “너는 하나만 해라. 마당을 쓸 듯이 마음을 쓸어라. 그거 하나만 매일같이 외워라.”고 말씀하셨더니, 너무 바보였지만 본인이 몇십년이 걸려서 매일같이 마당을 쓸다가 어느 순간 ‘탁‘ 깨쳐보니 그 바보는 전생에 대학자였는데 마음자리를 거만하게 쓰다가 바보가 된 것을 알게 됐죠. 공부를 해서 남에게 거만하거나, 본인이 리더라구, 장이라구, 돈이 많다구, 권력자라구 으스대면 내생에 바보가 되는 거예요. 리더는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 그래서 광음천에서 내려왔는데, 살다보니까 지구란 땅덩어리, 즉 사바세계가 중생들이 살기에 괜찮은 곳이 되어 인구가 늘어나게 되는거죠. 지구의 인력권에 살다보니까 가라앉게 되어 무거워지니 땅에 내려앉게 되고 남녀가 생기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고 인구가 점점 늘어나니까 자연히 다툼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세상을 살다보면 농사를 지으면서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중에서 밭, 집, 땅이라거나 어떤 경계 때문에 싸움이 많이 일어나지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이데아 가운데는 기회의 균등 즉 평등이라는 것은 인류가 만든 발명품이긴 하지만 기회균등이란 말은 맞지가 않아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는데 어떤 사람은 능력이 출중하고 그렇지 못 한 것은, 전생이라는 게 있어서, 전생에 실력을 갈고 닦아서 능력자로 타고난 사람들과는 균등할 수가 없는 거죠. 학자들 중에서 케이즈를 추종하든지 하이에크를 추종하든지간에 학자들이 말하는 이론들은 나름대로 허점이 많습니다. 하이에크는 나치에 시달리다보니 전체주의는 안 되고 자유를 주장해서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로 억압하지 말고 시장에 맡겨두자는 건데 이 또한 시장에 맡겨두면 능력 있는 자, 먼저 소유권을 가진 자, 재산을 많이 가진 자들이 다 섭취하니까 나라가 간섭을 해야만 하는거죠. 소유권이 생긴 다음부터 공산사회가 논, 밭을 갈다가 기술이 발달하게 되고 산업 기술이 발달되니까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소자본을 일으켜 대자본을 갖게 되니까 노동자, 농민들이 착취당하게 되어 결국은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렇게 혁명을 일으킨 레닌도 그 다음엔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 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던 거라서 소련을 비롯한 동부 유럽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허점이 너무 많이 있던 거였고, 어느 것 하나 지상의 최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탁월한 사람 즉 리더가 필요해서 그들의 판단을 따라서 권리를 이양하고 삶을 같이 도모하도록 한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를 운영할 리더를 뽑아서 안정되게 이끌어달라고 한거죠. 지도자나 왕이나 통치자가 없으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누군가 공동체를 운영하더라도 누군가를 지도자로 뽑아서 그들의 판결을 통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안정시키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음천에서 내려온 탁월한 인물들이라 해도 완장을 채워주면 위세를 잡고 폼을 잡아서 뽑아달라고 부탁할 때와는 달라지는 문제가 생기니 점차로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형성되어 무관심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뽑아 놓고 나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그 다음엔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생기게 되어서 지배계급은 아들, 딸들에게 계속 유지하고 싶게 되는거고, 그 다음은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라는 사람은 이름만 떠올리면 치를 떨지만, 지금도 독일에선 히틀러, 신나치주의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케인즈가 케인즈 이론을 세우기전에 전쟁에 졌는데 그 사람을 추종한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가 아우토반이라 해서 도로망을 짜고 세금을 통해 엄청난 돈으로 전 국민을 근로자로 만들어 풍요롭게 생활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한다고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상하게 된 겁니다. 2. 나라의 리더의 윤리학 부처님께서 왕이라는 존재, 나라의 리더의 윤리학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왕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야하고 백성을 외동아들처럼 생각하고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차안에서 피안으로, 어려운 곳에서 긍정적인 곳으로 이끌며, 그 다음엔 태양과 같아서 모든 백성들을 따사롭게 대해야하며 부모와 같아야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복업 닦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욕심과 탐착을 절제하고 게으르지 말고 또 백성들을 가르치고 교화하면서, 나라의 다스림에 있어서 하늘을 받들면서 끊임없이 법을 따라서 행하라고 경전에 나와 있습니다. 비단 왕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이 길을 가야하므로 사회 생활하시면서 회사에 입사해서 계속 올라가시다보면 과장도 되고 부장이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실하고 정직하게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잘 따라듣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해치지 말고 귀담아 들으시고 포용하셔야만 됩니다. 악행 중생, 못된 중생들도 있으니 이들을 병든 아들같이 생각하고, 고통받는 중생에겐 대비심을 내고 즐거움 속에 있는 중생들은 박수쳐주고 환희심을 내라고 하시며 자신은 무아의 길을 가야하며 이 세상을 잘 다스리면 천왕, 즉 하늘나라의 왕이 된다고 부처님 경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과 마찬가지로 부처님과 같은 연대의 동양에서는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시길, ‘격물치지(格物致知)’라 모든 만상 이라는 것이 지혜와 지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모든 만상을 항상 관찰하라, 모든 만상엔 격이 있으며, 지극한 지혜가 그 안에 들어있으니 그런 도리를 보면서 성의정심(誠意正心)이라 항상 정성스런 마음으로 마음을 잘 닦고 바른 마음을 써서 그와 같은 도리 따라서 몸과 마음을 수신하고 ‘견물치지 성의정심이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하여 자기 몸을 잘 갈고 닦고, 가정을 잘 갈고 닦고, 그 다음에 나라를 닦아야 천하의 군자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토인비라는 사람은 전 세계를 30년을 다니면서 로마 문명의 흥망사, 그리스, 아테네의 여러 가지, 흥망성쇠하거나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난 뒤 마지막 판에 이데아를 세우는데 불교의 성주괴공을 따라 생성 소멸의 법칙을 세웠는데 스스로 본인의 역사 철학은 동양의 석가와 공자, 동양철학자, 동양사상가들의 영향이 크다고 했습니다. 인간도 절정기를 맞으면 그 다음엔 시들어가고, 나라도 마찬가지로, 고주몽 선생님이 세웠다가, 광개토왕, 장수왕때 최고로 올라갔다가 무너지고, 신라도, 고려도, 마찬가지로 끝 무렵이 되면 이상하게 나라가 쇠퇴하면서 쇠망한 기운이 들고 그 때 기회를 딱 잡고 일어난 이성계란 사람이 왕실을 타도하게 되는 거지요. 개인도, 나라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개량하지 않으면 쳐져 버리고 재앙이 와서 점점 어려워지면 대단한 변화가 와야 하는데 시대를 잘 포착하지 못하면 혁명이 일어납니다. 혁명이라는 게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자신이 스스로를 개량하려고 하지 않으면 쳐져버려서 재앙이 오게되어 변화를 일으키는 겁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데, 일어설 때, 전성기를 누릴 때, 그 다음에 나라가 흔들려서 무너질 때가 있는거 라서 그 시기를 잘 포착하게 되면 고려의 경우 당시에 이성계라는 인물이 있어서 조선을 세웠지만 조선은 그런 인물이 없었는데다가 그 중에 끊잉없이 일본과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다가 일본에게 잡혀서 우리는 혹독한 댓가를 치루었고, 해방된 것도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잔재가 남아 있어서 그 업으로 계속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지혜롭게 만상을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조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나라와 부처님나라 이 세 가지는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상관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우주의 흐름이 이 땅은 광활한 부처님 나라의 시민을 만드는 자리입니다. 광활한 우주, 부처님 나라도 인재가 많이 필요해서 광음천에 가려면 공덕을 많이 지어야하며 잘못하면 강등되는 겁니다. 금생에 지금 부자라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깨지고 터지고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달아서 부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그런 길을 걷기 위해 부처님 나라의 법으로 매일 매일 살아야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법을 등불삼고,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입니다. 이 우주는 철두철미하게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 다 있고, 한꺼번에 몇만명씩, 지진이나 재해로 인간 목숨이 파리 목숨과도 같은 것이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계율이라는 것도 서로 도와서 서로 죽이지 말고 모든 사람을 외동아들처럼 대해서 부처님 나라의 수많은 보살로 태어나야만합니다.(무량수불,무량광불) 부처님이 내린 보살의 정의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바로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고 최선을 다해서 보살심을 행하면 부처님은 한도 끝도 없는 분이시니 가피도 주시고 영험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우주 자체가 애기를 낳는 자궁입니다. 엄마의 자궁을 통해 나온 것처럼, 부처님 만드는 자궁이고, 학교이고, 수련장이고, 시험장입니다. 공덕의 차이에 따라 짧게 가고, 길게 가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투철한 마음으로 사셔야만합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말 잘 듣는 사람을 예뻐하듯이 여러분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고 보살심을 행하면 부처님은 한도 끝도 없는 분이시니 모든 걸 다 주십니다. 3. 부처님나라의 법에 따라 시민을 만드는 자리 학자들이라는 게 그 시대를 반영하는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관념을 정형화하는 존재들에 지나지 않아서 다 맞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공부하긴 하는데 어느 학자들 얘기든 전부다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서 취할 건 취해야 됩니다. 전제군주정을 옹호했던 토마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 &#8211; 자연상태는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고 보아서 개인들은 자신의 합리적인 이기심을 발동하여 사회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사회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국가이고 군주는 안전하게 개인의 안전 보장에 힘써야한다며 저항권을 부정하는데 저항권을 통해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폭군이라도 개인에게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홉스보다 40년쯤 뒤에 나온 로크는 홉스와 달리 사유재산권을 중시하는데 만약에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진다면 자신들의 돈도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의 분립을 주장한 것으로 시민의 힘이 강력하여 왕이 제대로 정치를 못할 경우 저항할 수 있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루소인데 그는 왕정을 부정해서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사상이 미국을 만든 것입니다. 점점 자유주의가 팽배해져서 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다보니 마르크스 얘기가 나오고 혁명이 성공하게 되는데 이상은 좋지만 이 또한 개량하지 않으면 실제로 무너지고 있고 지금 남아있는 중국도 북한도 그러합니다. 천진에 우리 절이 있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가겠는지에 대해서 북경에서 공부하다온 박사님들과 공공연히 얘기를 해보면, 갑자기 너무 팽창해서 부패가 너무 심해서 그들 스스로 많이 노력하면서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오는 데 얼마나 피바람이 불었는지 모릅니다. 4.19혁명, 5.16혁명, 광주사태, 6월 항쟁 등 역사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 투쟁이어서 많은 생명이 희생됩니다.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들어와서 동양의 봉건 군주 제도를 쓸어버린 거로 동양의 종주국인 중국도 그렇지만 일본은 재빨리 변화해서 저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변모시켜갈 것인가? 원래 우리인간의 대부분은 보수적이라 변화를 싫어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안정된 것을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여러분들과 우리가 만드는 것이어서 우리가 의식이 깨어있어야 됩니다. 훌륭한 나라는 훌륭한 국민이 만드는 것이므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민단체들, 이른바 말하면 시민불복종운동. 톨스토이, 간디 ,만델라와 같이 시민들이 안 되면 들고일어나야만 됩니다. 저도 많은 분들 모시고 사니까 노조하는 분들 많이 계시지요. 그러면 자본을 가진 인간들이 너무나 절약을 해버리면, 안 되는 거지만, 또 너무 노조를 하게 되면 생산성이 약해지니 조화를 잘 이뤄야 되는 거예요. 한쪽 방면으로만 계속 올바르다고 주장하지 말고 여러 가지 시민 연대들이 많이 있으니까 더욱더 단결하고 현실을 직시해서 좋은 사람을 뽑아야만 되고 훌륭한 나라는 훌륭한 국민이 만드는 것이니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주의적 인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이렇게 내려오는 것처럼 부처님 당시부터 그들의 이론이 지구를 계량하려고 내려온 탁월한 인물, 우리의 선조가 광음천에서 왔고 석가모니부처님은 도솔천에서 왔듯이 전부 다 하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 천명이란 말, 공자님 말씀이에요. 나와, 나라와, 부처님나라, 영원의 나라, 이건 다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강토를, 불국토로 만드는 것이 부처님 이상이에요. 우리가 삿되게 살지 말고 함부로 살지 말아야 되고 부처님나라 시민으로서 잘못하면 귀양가게 됩니다. 지옥, 아귀, 축생도로 귀양 갑니다. 지금 인간으로 왔으니 위로 계속 올라가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것은 부처님나라의 시민되기 위한, 그런 수련장으로 여기 계신다 생각하면 되고 이번 선거 때, 정말로 좋은 사람을 뽑으셔서 이 나라가 좀 더 안정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셔야 됩니다. 민주주의라는 건 인류가 피바람을 쐬면서, 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만들어낸 발명품이므로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2018-08-08 오후 4:17:43차원이 다른 세계가 한 공간에 존재한다. 집착과 이기심을 내려놓자. 우주의 무량한 영혼이 하나가 된다/Media/law/Read.aspx?db_cnt=79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우리는 모두 빛과 같은 존재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의 아들딸이다’라고 얘기합니다. 부처님도 깨닫고 나신 후‘참으로 기이하도다. 저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지혜와 덕상이 있구나. 다만 무명과 번뇌에 덮여 자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분명한 사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 우주가 광명, 빛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본래가 빛이었습니다. 다만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처럼 우리 몸 오온(五蘊)의 색수상행식이 빛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정체는 바로 이기성입니다. 우리도 본래 부처님, 하나인데, 이기성에 가려져 3차원 세계로 떨어져 나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뭔가를 가지면 놓기를 힘들어 합니다. 내 것 네 것, 나와 남을 따지면서 살아요. 놓는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남에게 베푼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의 등불이 되라’는 법등명 자등명을 말씀하셨어요. 베풀고 펼치면 무량대복이라는 거죠. 광명, 빛이라는 거예요. 깨달음이지요. 빛을 가리고 있는 덮개를 걷어내야 합니다. 수행입니다. 흔히 어떤 일에 몰입하는 사람, 자신을 던지는 사람을 가리켜 신들렸다고 합니다. 무아경이라고 그래요. 삼매는 자신이 깨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기적인 장벽이 깨지니까 본질이 드러납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새로운 스타들이 많이 등장했잖아요. 그들이 신기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에 몰입했기 때문입니다. 혁신(革新)이란 말을 보세요. 혁신의 혁은 가죽 혁자를 씁니다. 가죽을 벗겨내야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해탈을 의미합니다. 혁신, 가죽을 벗기는 데는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필요합니다. 두뇌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하나의 신경세포에 수만 개의 발이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 발과 발이 연결되는 신경근접합부(Synapse)가 존재하는데, 이 시냅스가 두뇌에만 어림잡아 천조 개랍니다. 말도 못하게 많아요. 근데 충격적인 일을 경험한 기억이 두뇌에 심어지면 순간 시냅스에 불이 들어온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체험하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시냅스에 차례차례 저장되는데 이 기억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치매가 오고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거예요. 기억되는 것조차 빛, 전자파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도 신경전기죠. 침을 찌르면 찌리릿 통하잖아요. 전자파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전자파는 곧 빛입니다. 항상 얘기하지만 에너지는 파동의 형태로 항존합니다. 에너지는 영원해요. 우리가 이 땅을 등진다 해도 전자파는 남아 있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파동으로 존재합니다. 그 파동엔 금생에 갈고닦은 정도에 따른 모든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비슷한 파동의 세계가 또 있는 거예요. 영원히 끼리끼리 모여 다닙니다. 지구란 별을 보세요. 지구에 존재하려면 만상이 빛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빛을 받아야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항상 등불이 돼라, 빛을 내는 존재가 되라고 하신 겁니다. 지금도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으나 저 태양조차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근데 지금 뭐예요? 우리는 영원한 존재라고 그랬잖아요. 태양에 버금가는 빛이에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하나의 공간 가운데 존재합니다. 상대성의 존재들이에요. 아직 부처님이 되지 않았으니 상대가 보이지 않지만 모두 어떤 개체적인 영혼의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등져도 생각(영혼)은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시면 정확합니다. 관속에 들어가서도 생각을 합니다. 파동으로 된 몸을 가지고요. 네, 우린 또 다른 차원의 태양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빛이 될 때까지 계속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2.우주의 바탕은 영혼의 세계 모든 물질은 감각과 지각능력이 있어 반응을 하고, 반응한 자료정보는 그대로 쌓입니다. 이러한 식(정보)이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지요. 일부러 지우려 하지 않으면 계속 남아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매일매일 참회란 양식을 통해 스스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승 가서도 엄중한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다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본질을 깨달아야 해요. 항상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면 마음 쓰는 데 따라 연결되는 패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부영박사가 쓴 『한국 샤머니즘과 분석심리학』을 보면 정신질환자 중에는 이른바 신들린 사람이 너무 많다고 나옵니다. 악령의 빙의되기도 한대요. 세상을 사는 동안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일 가까운 시부모, 친정부모, 유주고혼, 무주고혼, 태아영가 등… 만약 이들과 원한을 풀지 못하고 떠나보낸다면 죽음 너머에 가서도 인연중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가 광명입니다. 부처란 말이에요. ‘심즉시불’ 그랬잖아요. 빛인데 무명에 가려져 있으니까 어두워지는 거예요. 빛을 가리는 건 이기심이고, 집착이고, 애착이에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세요. 혁신, 끊임없이 가죽을 벗겨내는 해탈자의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내 몸을 향처럼, 초처럼 불태워야 해요. 육신은 수행을 위한 도구입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몸과 마음을 던졌잖아요.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낸 거죠. 그래야 탁월한 경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찬연한 광명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저 태양 너머에는 또 다른 태양이 존재합니다. 대일여래, 대광명변조여래, 비로자나진법신, 영원을 가는 태양입니다. 우주의 바탕은 영혼의 세계라고 보면 됩니다. 이승과 저승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숨만 넘어가면 저승입니다. 우리는 항상 영혼들과 함께 사는 셈입니다. 이른바 성질이 다른 두 차원의 세계가 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마음 안에 저승이 함께 있어요. 마음 가운데 영혼이 있는 거죠. 영혼의 본바탕은 하나입니다. 지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몸도 영원의 세계에 하나의 공처럼 떠 있는 거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지옥과 천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거든요. 마음 가운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있다니까요. 화엄경에선‘사무애(事無碍), 이무애(理無碍), 이사무애(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걸림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 마음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떨어져 있어서 그래요. 육신이 스러지면 시간과 공간은 사라집니다. 다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가, 더러운가에 따라서 악령이냐, 선령이냐로 갈라집니다. 그들의 노는 공간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악령은 악령들끼리 모여 살겠죠. 제가 왜 참선하면서, 기도하면서, 삼매를 따지는지 아세요? 삼매에 들어 하나에 집중하면 상대성의 세계가 깨져 어디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운데에 있는 중심의 세계를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삼매를 체득하는 거예요. 집중을 하면 내가 전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집중력 강한 사람이 핵심을 잘 뽑아냅니다. 집중력이 중요해요. 집중력 강한 아이들이 공부도 잘해요.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아집을 내려놓으면 하나가 되어보세요. 전체를 볼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집니다. 법과 진리는 하나거든요. 내가 하나를 생활화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엔 나와 남이 없잖아요. 해탈이 돼요. ‘무소유의 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법을 생활화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속박돼 있으니까 귀신이 돼서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집을 깨고 집착을 깨뜨리세요. 대자유의 세계가 열립니다. 만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요. 체험을 하고 나면 ‘아, 이 공덕을 내가 무량중생들에게 회향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3.바로 여기 이 자리 그래서 자꾸만 참선하라고, 기도하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부처님 법문을 공부하고 실천하다 보면 마음이 발라집니다. 마음이 바르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텅 비어 거칠 게 없어집니다. 텅 비어지면 부처님 세계를 느끼게 돼요. 진리잖아요. 부처님의 위신력이 작용합니다. 하다못해 집에서 백팔배라도 열심히 해 보세요. 몸으로 체험해 봐야 알아요. 듣는 것만 가지고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직접 해 봐야 느낄 수 있어요. 그럼 이루지 못할 게 없습니다. 만약 이 땅을 등진다 해도 맑고 밝은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방면에서든 대가가 되려면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금강경에도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장벽, 고정된 게 없다는 거죠. 제발 실천해 보세요. 혁신의 길, 해탈의 길이 열립니다. 자기 탈을 벗게 돼요. 미래는 혁신을 통해서 내가 만들어가는 겁니다. 워렌 버핏은 사업에 있어서 노력이 필요하고, 실력이 필요하고, 그다음 행운이 필요하다고 말했잖아요. 우리가 계속 새로워지려 노력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광활한 우주는 전부 수많은 영혼이 함께 공연하는 무대 같은 곳입니다. 빼어난 연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던져 빛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존엄한 존재예요. 존엄한 존재라는 굳건한 마음으로 그 누구도 존귀한 마음으로 대접하세요. 내가 더욱더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 모두가 존귀한 존재니까 그들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부처로 대접하는 사람이 고귀해진다는 겁니다.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든지 정치를 한다든지 어느 방면에서 일을 하든지 만나는 그들을 존귀하게 대접하면 힘이 용기백배해질 거 아녜요. 징기스칸이란 책을 보면 그 당시 몽고 인구는 백만도 안 되었습니다. 징기스칸은 백만도 안 되는 사람들을 가지고도 세계를 제패했잖아요. 그는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큰 힘을 길러냈어요. 백만 명도 안 되는 만주족이 중국을 제패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 어떤 곳에서도‘다른 사람들 모두 부처님의 아들딸이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들을 고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써야 내가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처가 되는 거예요. ‘죽은 다음에…’이거 아니에요. 그 때는 늦어요. 항상‘바로 여기 이 자리’라고 그랬잖아요.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며 살아가시면 됩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로 대하라’하니까 우습게 들리는 분이 계신가 봐요. 그러지 마세요. 그들을 고귀하게 대접하면 그 누구라도 용기백배해지고 감사해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살이라고 그래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입니다. 꼭 당부 드리겠는데, 지금과 같이 성실하게 살아가세요. 이승과 저승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죽으면 공동묘지에 갖다 묻으니까 멀리 있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영혼은 언제나 우리와 더불어 산단 말씀이에요. 한 몸과 마음으로 산단 말이지요. 아름다운 꽃밭엔 벌과 나비가 날아와 열매를 맺고, 더러운 시궁창에는 파리모기가 날아옵니다. 너와 나를 가르는 집착과 이기심을 다 내려놓으세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법을 실천해야 혁신이 되고, 자유가 되고, 해탈이 됩니다. 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18-08-08 오후 12:43:31당장 수행과 공덕이 중요하다. 사후 투철한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라/Media/law/Read.aspx?db_cnt=78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사후의 철통같은 시스템을 바로 알자 오늘은 금년도 우란분재 입재일입니다. 많은 분이 오셨는데요, 우란분재가 어떤 날인지, 왜 우란분재를 봉행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한여름을 보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고 난 뒤 우리에게 뭐가 남는지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주장하는‘에너지는 항존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봄 말마따나 ‘에너지는 파동이다’ 그랬잖아요. 우리가 금생에 나와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 저장됩니다. 불교에선 함장식(含藏識), 알라야식이라 하는데 알라야란 쌓여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전부 식(識)의 상태, 정보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흔히 계(戒)를 잘 지키면 ‘몸과 마음 가운데 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갈고 닦아 마음이 가지런해지면 그에 맞는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풍기는 기운은 남다를 수밖에요. 해탈의 마음입니다. 해탈(解脫)은 문자 그대로 껍데기를 벗는 거예요. 아픔을 퇴치하기 위해, 부정적인 것을 퇴치하기 위해 총진군하는 마음이 해탈자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끊임없이 구각을 탈피하는 길을 가면 얻어지는 마음의 장이 있거든요. 해탈지견 계향, 정향, 혜향, 삼학(三學)이라고 그러죠. 수행의 핵심입니다. 실천을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어디 가서 좋은 장면을 본다고 칩시다. 그 장면을 누구한테 전하고 싶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을 하잖아요. 그런데 경전에 보면 돌아가신 분들도 저승에서 어떤 형태로든 여러분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열망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에너지의 상태로 남는데 에너지는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라는 거죠. 스마트폰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내가 어디 가서 아름다운 걸 봤다면 그것을 찍어서 보내고 싶은 마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선몽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여기 거울이 있어요. 하나는 부엌에다 놔두고, 하나는 방에다 놔둡니다. 방에 둔 거울은 얼굴을 자주 봐야 하니까 매일 닦습니다. 부엌에 둔 거울은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김이 어리고 먼지가 끼니까 그리 맑지 못해요. 영상이 잘 비쳐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마음이 곧 거울이라고 하셨거든요. 안방의 거울처럼 마음을 매일 닦아야 합니다. 마음이 거울처럼 깨끗한 분들은 비교적 선몽을 잘 받으십니다. 근데 별로 기도하지 않은 분 가운데서도 선몽을 받아요. 그런 사람은 대신 부모님이 살아생전 절에 열심히 다니고 마음이 고결했던 분입니다. 두 가지거든요. 하나는 내가 거울을 맑게 하거나 둘은 저쪽에서 나에게 보내는 분의 출력이 강한 경우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양상으로 영원의 정보가 들어온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부처님과 불보살과 신장님들이 눈앞에 나타나서 전달해주는‘현전가피’입니다. 둘째, 꿈의 형태로 나타나서 알려주는 ‘몽중가피’셋째,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해주는 ‘명훈가피’입니다. 가피는 일종의 복이죠. 우리가 미래를 미리 체험한다면 자신감이 생겨나잖아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됩니다. 평상시 열심히 정진해서 거울이 맑아지면 비교적 레이더에 잘 걸리는 거예요. 중요한 건 여러분이나 저나 이 땅을 등지게 되도 어떤 형태로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름 한 철 식물에 정성을 기울여 키우듯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며 열심히 기도해보세요. 비록 사는 게 바쁘고 힘들더라도 수행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닦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이 땅을 등지면 철통같이 심사받아야 하는 엄중한 시스템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2.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은 다음 일주일이 지나면 진광왕이 나와서 심사를 합니다. ‘사는 동안 얼마나 살생을 했는가? 일주일 내내 심사를 해요. 그때 부동명왕이 배석해서 나름대로 변호를 해 준답니다. 또 일주일이 지나면 그땐 초강왕이 ‘사는 동안 얼마나 선행을 했는가?’를 살핍니다. 상품에 족보가 있듯이 우리가 한 세상 살아온 모든 날의 장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등지면 파동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했으니까, 말과 생각과 행동이 어떤 형태로든 저승으로 이어집니다. 알라야식으로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자에도 자세한 성분이 나오는 판인데,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에 대한 선행의 성분이 얼마고, 악행의 성분이 얼마인가가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대로 기록에 남아요. 삼칠일이 되면 송제대왕이 나와서 ‘사는 동안 선심이 들어있었는가, 악심이 들어있었는가?’를 면밀히 검토합니다. 마음의 어떤 차원을 철통같이 심판하는 거죠. 내가 아내를 놔두고, 남편을 놔두고 음행을 했는가, 이걸 조사한다는 거예요. 그때 문수보살님이 입회해 변호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신과 함께’의 시나리오를 만든 친구는 경전을 참고한듯해요. 이제 사칠일이 되면 오관대왕이 나타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용들을 정리하며 일을 매듭지어갑니다. 오칠일이 되면 살아있는 동안 상대방에게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심사합니다. 무명을 깨고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했는지 지장보살님이 나타나 심사한다는 거예요. 육칠일에는 변성왕이 등장해서 다시 한 번 체크합니다. 칠칠일째가 되면 태산대왕이 나타나 최후의 심판을 내립니다. 이 사람을 육도의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 삼계육도의 마땅한 곳으로 판정을 내리지요. 그러면서‘우리가 너를 삼계육도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죄가 너를 심판하는 도다’ 이런다는 거예요. 현실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재판관이 죄를 내리는 게 아니라 나의 죄가 재판관을 통해 형량이 떨어지잖아요. 근데 그중에 애착이 심한 사람들은 백재일까지 가고, 심지어 일주기, 삼주기… 좀 더 심사숙고해서 재판할 존재들도 있다고 합니다. 세상을 얼렁얼렁 살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심사가 철통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일생 동안 살아온 모든 정보를 담고 떠나갑니다. 당장 스마트폰으로 전자파를 통해 서로 통신하는 것과 같아요. 일념삼천이라고 그러죠. 마음은 영원과 통해 있습니다. 과거에도 영원으로부터 와서 지금도 영원을 살고 있고 떠나면 영원으로 갑니다. 일념즉시무량겁, 한 생각이 영원과 통합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삽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우리는 잠을 자면서 죽음을 배우고 꿈을 꾸면서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공부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잠을 자면 또 다른 차원의 힘이 가세합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쉬면서 다음날의 에너지를 공급받기도 해요. 헝클어졌던 두뇌회로가 정리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정교한 시스템이 몸과 마음을 관장합니다. 유명한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남태평양에 있는 여러 섬에서 문명의 혜택을 못 받고 살아온 토인들의 종교를 연구했습니다. 그가 조사한 후 내린 결론은 어디에나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종교를 갖게 됐는가? 시원을 조사해 보니까 재미난 얘기가 있어요. 섬에 살다 보니까 그들은 항상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너, 오늘은 절대로 배 띄우지 마라, 알았지!’합니다.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생생하게 들려준 얘길 들은 이는 그날 배를 띄우지 않았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친구들은 나가 돌풍을 만나고 배가 뒤집혀 죽었어요. 그러자 그는‘아, 아버지가 나를 살려주셨구나’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는, 이른바 애니미즘의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원시상태 종교라는 겁니다. 인간이 죽으면 무엇인가가 있다는 거예요. 목련존자가 누구예요? 부처님 상수제자 아닙니까. 신통제일이죠. 수행을 해서 신통제일이 됐어요. 근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 악도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통제일 목련존자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 상의를 합니다. ‘부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너 혼자의 힘으론 안 된다’고 합니다. 다만 ‘7월 보름날까지 모든 절에서 여러 스님들과 일반 신도들이 모여 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천도하라’고 이릅니다. 그렇게 해서 우란분재가 생겨난 것입니다. 우란분재, 49일 동안 불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조상님을 천도하는 영가천도의 향연이라고 할까요. 3. 진리는 실천해야 할 최고의 가치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하거나 수행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음이 맑아집니다.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그거예요.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자기 복업에 따라서 복을 받는다는 거죠. 삶이란 총체적으로 하나라는 걸 깨닫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껍데기를 보지 말고 영혼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상대로 하래요. 말 한 마디를 해도 상대방의 영혼을 상대로 하면 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하더라도 영혼을 상대로, 하나의 행동을 하더라도 영혼을 상대로 해야 합니다. 성불하기 전까진 누구나 상대성의 세계를 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경우라도‘우린 함께이다. 서로가 소중하다. 총체적으로 하나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영혼을 상대로 하면 그런 마음 씀으로 인해서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강한 면역물질이 대량 생산됩니다. 공덕을 짓고 수행을 하라는 이유입니다. 이거다 저거다 따질 것 없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부처로 생각하고 살아가세요.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지금, 여기 (Now and Here), 당장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수행하고 공덕을 쌓아 가면 됩니다. 3년, 10년, 아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야 해요. 그러면 저절로 입에서 ‘부처님’하고 흘러나옵니다. 부처님이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십니다. 우리가 개체로 세상에 나온 이상 다툼은 필연적입니다. 부부지간은 물론 누구와 말하게 되더라도 각자의 고집이 있거든요. 아집, 법집이 있어요. 아집은 ‘내가 최곤데…’하는 아상을 말합니다. 법집은 마음 가운데 가지고 있는 견해를 꺾지 않는 집착을 말해요. 다툼은 소용없습니다. 말로 업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사섭법의 애어섭이 있잖아요. 또 보시섭, 남에게 베푸는 마음입니다. 이행섭, 남들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는 마음이고요. 동사섭, 내 일 남의 일 따로 없이 하라는 겁니다. 불교의 기본 교리입니다. 그걸 무시하고 사니까 힘이 든 거예요. 여러분은 혼자서 걸어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많은 인연령이 함께 걸어 다니는 겁니다. 인신난득이라고 그랬죠? 지금 이렇게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이 땅을 등진 영혼들은 몸이 없기 때문에 생각대로 움직이잖아요. 한 생각으로 천당 지옥을 마음대로 오고 갑니다. 생각지간에 움직이니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요. 이 영혼들을 잘 길들여(taming)야 합니다. 길은 도(道)입니다. 손에는 손길이 있고 눈에는 눈길이 있습니다. 말도 발도 다 길이 있어요. 생각을 통제할 줄 모르는 영혼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이 땅을 수행처 삼아 왔습니다. 부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성불하셨잖아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시방 곳곳에 계신 분들의 안녕을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아가세요. 여기서 사는 시간은 백년 안팎이지만 시간과 공간이 떨어진 저승의 시간은 어마어마합니다. 상상을 절해요. 아귀보 축생보…. 진리는 인식의 대상이 아닙니다. 진리는 실현해야 할 최고의 가치입니다. 부처님은‘나의 가르침은 추상적인 이치에 있지 않다. 구체적이고 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데 있다’하셨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하늘은 덕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덕 없는 자를 징계합니다. 우주의 징계법칙입니다. 죽기 전에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준비하세요. 죽은 다음에 후회해야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텅 비우고 고요하게 만들어 가야합니다. 마음이 안정된 가운데 흔들림이 없습니다. 마음을 맑게 하고 덕을 쌓아가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세요. 항상 많은 사람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지극한 선행에 몸과 마음을 던지며 살아가야합니다. 우란분재는 영가들의 향연입니다. 그 동안 소홀하고 무심했던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무량한 인연영가, 나와 억겁을 두고 쌓아온 모든 영혼을 위해 49일 동안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세요. 마음의 먹구름이 사라지고 청정해질 것입니다. 청정해진 가운데 지혜가 나와요. 불가사의한 어떤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많은 가족이 동참해 정성스러운 마음 내보시기 바랍니다. 2018-08-01 오후 3:07:34우리는 초자연의 일부 우주와 인간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열어라 우주의 리듬에 맞춰 만상은 춤춘다/Media/law/Read.aspx?db_cnt=78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 우주 속 모든 만상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짜여 있으며, 각각의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 자연계의 박쥐는 초음파를 발사해서 돌아오는 상황을 캐치해서 나방이 같은 벌레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나방이가 굴속에 같이 살며, 이에 대비해 특수한 방음장치를 개발하여 초음파가 날아와도 그것을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박쥐도 그렇다고 굶을 수가 없어 굉장히 고심을 하고 특수한 무언가를 개발합니다. 여러 가지로 비행경로를 바꿔가면서 음파를 발사하지만 나방이가 거기에 잘 걸려들지 않죠. 박쥐와 나방사이에 쫓고 쫓기는 팽팽한 드라마를 연출한다는 논문이 네이처지에 실린 적이 있어요. 참 묘하죠. 말라리아균과 모기 또한 묘한 점이, 딱 정해진 시간에 열을 나게 해서, 모기들이 그 사람 몸에서 나오는 열선을 감지하여 그곳을 향해 날아들게 합니다. 정확한 시간에 열을 내 모기를 불러들이는 겁니다. 모기가 그 사람 몸을 찌르는 순간, 그 사람 몸으로부터 탈출하여 모기 몸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거죠. 이게 너무 정교해서 학자들은 놀랍다고 합니다. 우주와 하나임을 말라리아도, 박쥐도 알고 있다는 거죠. 말라리아균과 모기와의 상관관계처럼 대자연의 만상은 미묘하고도 불가사의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천체가, 이 우주가 광활한 우주가 하나의 몸 이예요. 거대한 전체의 부분들이고 모두가 초자연의 일부이면서 쫓고 쫓기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미묘하게 살고 있어요. 균들이라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에이즈바이러스, 말라리아균, 에볼라바이러스 이런 것들이 왜 생기는가? 전부다 이유가 있어요. 이 우주는 아무렇게나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갯지렁이가 거리가 수십 킬로 떨어져 있는 저 대양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건 조수의 리듬을 안다는 거죠. 지구, 바다, 천체에 모두 리듬이 있으니… 태양빛 속에 함유되어 있는 가시광선의 양 - 태양이 내리쬐는 그 양은 모든 자연계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필요한 에너지의 양과 아주 정확히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흑점(1300만℃에서 폭발하는)이 터져서 에너지의 양이 강해지면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이 여러 가지로 지장이 많다고 합니다. 굴을 가지고도 실험한 결과, 굴을 수천 킬로(1,600 km)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시켜도 달빛에 반응해서 수정을 한다고 해요. 굴이 달빛을 알아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데 모든 미물중생들도 달, 지구, 해 전부가 연관 관계가 있어요. 미생물들 모두가 다 자기 몸과 마음 가운데 나침반을, 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시계를 가지고 있지요. 어떻게 그렇게 시계 관련 나침반이 정확할 수가 있을까요. 미물중생을 배에 태워 가다보면 미물중생이 지구에 자장을 알아 남쪽인지, 북쪽인지에 반응을 하고 자장에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미물중생들도 그 몸과 마음 가운데 전기장과 자기장에 반응합니다. 전기장과 자기장, 그게 바로 정보예요. 감자 넝쿨도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을 확실히 알고 때에 따라서 다른 제스쳐를 보인다고 해요. 감자만 그러겠어요? 또 묘한 것이 별똥별, 혜성 같은 별들이 지구 인력권까지 들어와서, 인공위성이 떠 있는 그 자리까지 지나간다고 해요. 잘못되면 충돌이 발생합니다. 보름달일 때 집중적으로 많이 접근되고, 초승달일 때 큰 게 날아들고 하는 것이 일정하다고 해요. 지구에 재난이 많고 지구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을 때 충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둑도 내 마음이 끌어들이는 것처럼 -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받습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인류가, 우리 마음이, 불러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물과 두뇌도 80%가 물이고 온몸은 70%가 물입니다. 이게 전기와 자기에 영향을 받아요. 두뇌와 몸은 전자기파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두뇌라거나 미물중생들도 그 몸에 물이 들어 있잖아요. 아주 미세한 미물중생들도 전자기파에 예민하게 반응한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혜명과 태양, 달의 위치가 지구 생명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를 합니다. 오로라 또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은하계 우주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해요. 지구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은하계 우주에 전반적으로 끝까지 번져간다는 거죠. 우리는 전자기파, 우주에서 날아오는 무한한 파장, 지구의 파장 안에 있어요.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리는 여행하고 있으니 여기에 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지구의 리듬과 호흡, 달과 해, 수금지화목토천혜명, 은하계 우주 등 모든 영향력을 받고 있는 거죠. 미국에서 천문학자들이 점성술이 맞느냐 틀리느냐 집중적으로 조사했는데요. 놀라운 것은 대체로 5월 달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이큐가 높고, 1-2월 달에 태어난 아이들이 정신적 결함이 다른 달 보다 많다고 통계적으로 나와 있는데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 영향력을 맹탕이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 사주팔자도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 공자님도 가죽 끈이 8번인가 끊어질 정도로 제일 많이 본 책이 역책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달을 ‘moon’이라하고, 달의 형용사를 루나, 미치광이를 루나틱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사실 보름달이 떠올랐을 때가 한 달 중에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요. 백화점 도난사고가 많은 것도 보름달 떴을 때라고 해요. 이 천체, 이 광활한 우주의 모든 만상은 하나의 시스템이고 서로 에너지를 받아서 살기 때문에 천체 리듬에 맞춰서 춤추는 마하무드라입니다. 장엄한 춤을 추고 있고, 지구 표면에 기생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지구 호흡, 지구 리듬, 맥박을 다 안다는 거예요. 우리도 자연계의 리듬을 무시하고 살 수가 없어요. 이 우주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우주자체의 공개적인 대화에 서로 참여해서 뭔가 끊임없이 움직여가는 진화적인 생명체인 것입니다.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법칙 따라서 모든 생명체들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지구, 달과 해 별 모든 것과 전혀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2. 모든 만물중생은 생명장을 통해 우주의 소리를 듣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몸 주변에도 아우라가 있어요. 이것을 생명장이라고 하는데 참 묘한 건 우리 인간만 아우라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미물중생들이 다 자기 나름대로 아우라가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 적외선 감광기를 켜고 동물들을 비추면 눈에서 빛이나요. 나무 잎들, 벌레들도 전부 다 자기 나름대로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요. 이 껍데기가 사라진 다음에도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아요. 파동치는 물결, 안개 같다고 할까요? 누가 뚫고 들어올 수가 없어요. 회전 속도,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니까 침투를 못해요. 그러니까 생명장이라 하는 것은 생명체가 죽은 다음에도 영혼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런 생명장이 있으니 우주에서 날아오는 모든 빛을 이온화시켜서 거기에 반응하고 감질당합니다. 일본 기상청에서는 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지진이 온다는 것을 예측한다고 합니다. 뱀들은 지진 나기 3일 전, 길게는 일주일 전부터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기상청측은 뱀의 움직임이 있으면 언론에 먼저 보도하고 본다는 거죠. 뱀들이 흉측해서 일까요? 일본에 가서 보면 웬만한 곳과 화산지대에 가면 꼭 어항이 있습니다. 왜 어항이 많을까요? 금붕어는 물속에서 살아서 지구 내부 자장을 감지하여 지진오기 전에 먼저 알고 펄떡펄떡 뛰고 난리가 난답니다. 그럼 문제가 발생할 거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집 밖으로 피신하죠. 그리고 왜 밀림 지대는 코끼리가 많은 줄 아세요? 남방에 있는 인도 같은 나라들은 코끼리를 신주단지처럼 모셔요. 가뭄 때 코끼리는 물이 있는 곳을 찾아내어 그 자리에 멈춰서 버립니다. 코끼리가 수원지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미생물들의 우주의 리듬과 자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 지구라고 하는 우주선은 끊임없는 진동을 통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은 목소리로 계속 모종의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몸도, 뇌는 80% 물이고 몸은 70% 물이고, 98%가 물 분자이므로 우리도 감지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물의 진동은 아주 예민합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기가 막힐 수가 있어요. 기가 막힌 자리에는 꼭 양성 종양, 악성 종양(암)이 생기지요. 기를 통하게(일통) 해야 돼요. 우리 몸이 전부 하나로 통하게 되면 치매뿐만이 아니라 모든 질병은 다 해결됩니다. 백회혈과 단전이 일통- 하나가 되서 돌게 되면, 하늘 문이 열리고 광명을 체험합니다. 그러려면 정진보림, 성통신공, 성불교화 해야 합니다. 세포라고 불리는 이름의 대우주라고 했듯이 우리 몸속에도 우주가 있어요. 우주가 항상 통해야 하듯이 우리 몸도 잘 통해야 돼요. 통하지 않고 기가 막히면 죽는 거니까요. 세포 하나도 생명체이고, 우주와 하나니까 부처님이 어루만져 줘야 되거든요. 이게 안 되면 죽는 거예요. 항상 내 몸과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 기를 돌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줘야 합니다. 시간 날 때 마다 기도하고, 좌선하면 (천지일통 천문통화) 하늘에 문을 열리게 하고 그렇게 계속 나가다 보면 체험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몸 전체로 우주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음을 분명히 아시고 항상 자기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소립자, 내 몸 전체, 이 우주,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함을 알아야 합니다. 3. 무한한 반복수행을 통해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강장동물, 편형동물, 원형동물, 연체동물 - 온 과정이 비슷해 그 구조와 기능의 기본적인 유사성을 지니며,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사성은 모든 생명을 결합하는 끈으로 작용합니다. 인간은 결국은 죽기 때문에 불안한 존재라고 느낍니다. 인간도, 소립자의 세계도 불안정합니다. 소립자의 세계, 즉 염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소립자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소립자는 물질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든요. 이 소립자들의 움직임에도, 우리 몸의 전기장, 중력장에도 말과 생각과 행동의 힘이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 중요한 거예요. 수행은 말과 생각과 행동부터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요가(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경계)의 틀에서 공부하셨고, 요가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부처님 사고가 형성되었으며, 또 다른 길을 간 것이죠. 자기만의 독자적인 길을 간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선정을 닦아나가고 끊임없이 수행도 하고, 어떤 경험적인 지식과 지혜의 조명을 받들고 자꾸만 부처님 말씀을 연마해야 니르바나로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부처님께서 법이라는 것은 이해되어져야 하고 체험도 되어져야만 한다고 하셨어요. 만일, 이해만 있으면 생각에 머물며, 체험만을 할 경우에는 체험에 도취될 위험이 있다 했어요. 항상 체험과 이해가 같이 가야 되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진리와 더불어 가야 되며, 지혜와 더불어 가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세계를 여시고, 깨닫자마자 8천생이 한눈에 보이셨고, 계속해서 전생을 거슬러 올라 가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생을 전혀 기억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기억능력을 중요하게 여기셔, 과거 전생 끝까지 가서 완벽하게 자신의 본질을 꽤 뚫으셨어요. 아라한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가 계속 윤회하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 자기 본래 진면목을(본질) 몰라서,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모르니까, 깨닫지 못했으니 계속해서 윤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염불, 기도 등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수천만 번 무제한적인 반복을 합니다. 반복을 하다보면 결국 한계가 끝나는 자리가 있으며, 제한이 끊어지는 수가 있지요. 누구든 간에 계속 반복을 하다보면 거기서 신령스런 힘이 작용하며, 반복에 끝이 있어요. 생각도 마음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닌 인과 따라서 가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을 해야 되요. 말 또한 생각이 의식하는 세계에서 나오잖아요. 계속 수행하며 가다 보면 뭔가 경계가 열리는데 그런 것들은 통로에 불과한 것이지 해탈이 아닙니다. 성불의 경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좋고 화두도 좋고 다 좋은데 무한하게 해야 됩니다. 진언을 하건 화두를 챙기든 계속하다 보면 한계를 깨뜨려 버리거든요. 음파를 초월해버려요. 그래서 무한히 반복수행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번뇌 망상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 생각의 끝으로 가다 보면 전생을 낱낱이 다 기억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내가 어디서 왔는지 체험하는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아요. 자신이 온 자리를 완벽하게 알 때 끝나는 거예요. 전생을 낱낱이 기억해 들어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다음에 전생을 기억해 들어가지요. 계속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출발점이 있어요, 그것을 보는 자리가 성불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세계로 나아가려면 무제한적인 반복을 하고 계속 나아가야해요. 무제한적인 반복을 하다보면 어눌한 과거나 대상이 파괴돼 버리고 그 자리에서 무한을 체험하게 됩니다. 2018-07-25 오후 2:08:43대사일번이면 대불현성이라, 죽음을 이겨낸 자에겐 장애가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Media/law/Read.aspx?db_cnt=78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 1. 거두어들이는 곡식은 뿌린 대로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들이 만나는 명절날,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을 봅니다. 명절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경사롭고 즐거워야하는 명절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최악의 사태를 만나고 강한 적을 만나는 때가 오기도 합니다. 죽음이 인생의 최대 강적이고 죽음이 최악의 사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의 삶에는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죽음 이상의 강적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과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달래도 소용없고 달랠 방법도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우리도 모르게 다가오는 폭풍우처럼 막 몰아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도저히 피할 길 없는 태풍이 오는 것이 되고 홍수가 몰아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리가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울고불고 난리치는 상황이 되겠지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반항을 하거나 덤빈다고 될 일이 아니겠지요. 별다른 해결책이 없이 절망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삶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런 일들을 냉정하게 따지면 자기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폭력행위 같은 거라 생각되지만 우리는 담담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항상 최악의 상태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됩니다. 부처님 경전을 보면‘대사일번이면 대불현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이겨낸 자에겐 장애가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겁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겨낸 자는 불교에서 하는 말 가운데 있는 생사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도 그와 같은 강적을 슬기롭게 이겨내어야 한다는 각오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지막 마지노선처럼 처절하게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그런 상황도 있지만, 그거보다 좀 단수는 낮더라도 여러 가지 장애들, 많고 많은 어떤 장애물들이 있을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탁월했던 인물들이 다 하나같이 그와 같은 강적들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춘성 큰스님은 죽음 앞에서도 ‘잘 있어’ 라는 말을 초연히 하면서 입적하셨습니다. 뒤에 두고두고 그 현장을 목도했던 스님들은 큰스님의 그런 삶이 많은 공부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강적이라고 생각 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 강적들이 많아요. 세상을 살다보면 남에게 주지도, 베풀지도 않고 복을 짓거나 덕을 베풀지도 않고 자꾸만 받으려만 하고, 잘되기만 하려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수명, 재물, 건강, 복과 덕 등이 있는데 인간의 욕심이 그 모든 것을 다 받고 싶어 합니다. 지은대로 받는 게 복인데 지은 것 없이 받기만 하려는 게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허나 불교의 진리를 아는 불자들은 복을 지어야 하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약사경을 보면 제 명에 잘 죽는 거, 이것도 복인데, 갑자기 사고, 병사, 비명횡사, 구종횡사, 산란이사, 경등법계 등. 잘못 죽는 게 경전에 나옵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을 보게 됩니다. ‘수복여불등’이라는 말이 천수경에 나옵니다. 수복,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불등, 부처님과 똑같은 복을 받는다고 경전에서는 말합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지은 대로 받는 거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서 먼저 복을 지어야 합니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습니다.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거나 주지도 않고 받으려고만 한다면 안 됩니다. 미리 미리 복을 짓고 덕을 베풀어서 화를 막아야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다 보면 인과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주지도 않고 받으려고 하니까, 베풀지도 않고 받으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남의 행복을 찾아줌으로 해서 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의 절도 있는 삶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기도 합니다. 가끔 법당을 찾아오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관음제일이나 초하루 지장제일 등, 제일 날이 되면 불자들은 기도를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면 피곤하거나 힘든 마음을 버리게 됩니다. 기도를 하면서 발원을 하게 되고 그것이 잘 이루어진다면 뿌린 만큼 거두어들이는 것이 됩니다. 가을들판이 전부 누렇게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서 열심히 기도하듯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농부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거두어들이는 곡식은 스스로가 뿌린 대로 들어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 마음깊이 불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거나 기도를 하면 깨우치는 순간이 옵니다 누구나 다 자기에게 잠재해 있는 자기만의 힘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느끼듯이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를 하거나 불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보면 부처님을 통해서 뭔가를 느끼게 되고 무엇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아! 내 마음 가운데 이게 있구나’ 하고 깨우치는 순간이 옵니다. 사람의 삶이 만만치가 않아 가끔 화가 나기도하고 나쁜 기운이 열을 올려 몸이 힘들어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면서 머리에 있는 열이 발바닥으로 빠져 나가게 하는 것도 열이 빠지게 하는 법입니다. 몸에서 머리에서 나는 열은 머리가 아닌 발로 뺄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가 발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니 발로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기가 폐로 들어오면 손으로 나갔다 머리로 갔다 발로 빠지는 것입니다. 머리를 많이 쓰면 머리에 열이 찹니다. 이것을 운동을 해서 열을 빼야 합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꼭 운동을 해주어야 합니다. 운동이 큰 보약이 됩니다. 우리 몸의 체온도 태양이 활활 타오를 때처럼, 타오르고 타오르기 시작하면 열이 올라가 힘들어 집니다. 새벽녘에 으슬으슬 몸이 추울 때면 몸의 체온이 제일 많이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태양의 시스템하고 우리 몸의 시스템이 같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노벨상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과학자의 논리를 보면 태양과 우리 몸이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여행을 했는데 시차적응을 잘 못했다고 합니다. 태양이 도는 시스템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가버리니까 몸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런 시차를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외국에 얼마동안 갔다 오면, 갔다 와서 상당기간은 리듬을 다시 찾으려면 고생합니다. 리듬이나 태양이 잠을 잘 때 나도 자야하고. 태양이 뜰 때 나도 떠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의 몸이 지닌 이치가 부처님의 경전에 있습니다. 아침에 신선한 마음을 가지고 “일쇄동방결도량”.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 몸도 도량이고 가정도 도량이고 마을 앞마당도 도량이고 하니까 “이쇄남방득청량”. 태양이 정남 방향에 딱 옵니다. 이글이글 타오를 땐 청량한 마음, 푸르름, 청춘처럼 열심히 일하라고 합니다. “삼쇄서방구정토” 예전엔 농사짓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게 되면, 곡괭이하고 쇠스랑을 챙겨가지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사쇄북방영안강” 자시 방향에, 열두 시, 이렇게 저녁이 되고 해가 지게 되면 잠자라는 거예요. <천수경> 사방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불교의 과학적인 뜻이 담겨 있음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연구를 해서 노벨상 받은 사람이 경전에 있는 말을 잘 알고 활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몸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정확하게 태양의 하루의 패턴과 똑같은, 그러한 스타일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을 알게 되고 연구를 하였답니다. 그러니까 태양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가장 의미 있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만 어겨버리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과학자가 배우며 이용하는 불교의 진리와 경전의 힘을 우리가 찾아서 실행하므로 불자로서의 의지를 잘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머리를 쓰고 할 땐 조용히 앉아서 5분, 10분 쉬어야 합니다. 머리를 좀 쉬어주고 몸을 좀 쉬어준다는 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매일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고, 때로는 108배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도 몸이 피곤하고 머리를 쓰는 일이 많이 생기면 그냥 가만히 멍 때린다는 것처럼 생각 없이 앉아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이 병을 고친다.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자연이 고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을 조용히 쉬면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안 든, 그냥 멍청하게 앉아 있어 봅니다. 그럼 몸의 약한 부분, 취약한 부분으로 기가 다 모여가지고 몸의 평정을 유지해 주게 됩니다. 내 몸에 있는 기운들이 5분, 10분 내로 몸의 약한 부분에 기운이 흘러들어가게 합니다. 몸에 상처가 나고, 상처가 난 부분이 가려워지면 그쪽으로 항체가 막 몰려가는 겁니다, 치유해야 되니까 자연치유력이 효과를 발합니다. 몸의 약한 부분으로 몰려갑니다. 몸과 머릿속에서 치유력이 생기며 가만히 얼마만 있다가 깨어나도 기억력이 두 배 이상 상승되어 건강해집니다. 이런 의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게 부처님 마음입니다. 완전한 안정 상태, 우주의 흐름. 허공이 안정되고 허공 속에서 부처님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고요히 안정을 시켜놓으면, 약한 부분으로 기가 다 몰려갑니다.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적정한 시점에, 강의할 때도 50분 강의하고 10분 쉽니다. 눈앞의 것만 보고 허둥대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좀 쉬어가야 합니다. 창조적인 사유의 또 다른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견으로 그냥 눈앞에 있는 상황에 나를 던지는 거보다 좀 멀리 쉬어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천재는 인내와 미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선지식에게 의문을 던지며 알고 싶어 합니다. “스님, 기도하면 뭐가 됩니까? 기도하면 뭐가 이뤄집니까?”선지식께서 예를 들어 말합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총으로 대포로 인디언을 제압하고 몰아내려 하던 시절 날이 가물어 비가 오지 않을 때만 되면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내곤 했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오니까 물어본 거죠. ‘당신들, 참 희한하다. 우린 무서운 총을 가지고, 대포를 가지고 있는데도 비를 못 내리게 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하늘과 통해서 비를 내리게 하냐?’고 물으니 인디언의 답은 “우린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뭐가 잘 되는 게 아니라 잘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한 마음으로 가는 것, 지성이면 감천인데 기도하면 성공합니까? 라고 물어보지 말고 성공할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그럼 하늘이 감응을 합니다. 하늘은 알아요. 민심이 천심이란 얘기가 있듯이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을 하늘과 자꾸만 닮게 만들면 위대한 창조의 힘, 창의성이 도발됩니다. ‘기도하면 성공합니까? 기도하면 이루어집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 안 해본 사람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날도 오고 괴로운 날도 오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세상을 사는 한에 있어서는 이 세상에게 끼쳐주는 게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 어려운 날 가운데서도 뭔가 일어날 수 있는 기틀이 됩니다, 항상 주변사람을 즐겁게 하고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천재는 다른 이름이 아니다. 인내와 미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랬습니다. 인내, 천재는 참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고 미소 짓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참는, 인내와 미소의 위력, 천재의 위력이라는 거예요. 천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람이고, 천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미소 짓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괴로워도 미소 짓고 즐거워도 미소 짓는 사람. 아인슈타인 얘기가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재는 인내와 미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괴로울 때 찡그리지 않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남다른 사람입니다. 시신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입니다. ‘아, 정말 이분은 정말 잘 살았구나’ 아주 빙긋이 웃으면서 임종을 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좋은 게 보이는지 빙긋이 웃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입관할 때 염을 하다 보면 빙긋이 웃으면서 돌아가신 시신을 볼 땐 기분이 좋아집니다. 항상 미소 속에서 살아왔다면 “항상 웃음 가운데 사신 분이셨어요.” 그러니까 마지막도 웃고 가는 거지, 빙긋이 웃으시면서. 다른 건 다 놔두고라도 천재는 뭐라, 인내와 미소의 또 다른 이름이라 이거예요. 천재는 많이 참는 사람이에요. 인내하고 미소 짓는 그런 마음만이 진실한 성공의 기쁨을 누구에게나 가져다줍니다. 천재의 또 다른 이름은 인내와 미소예요. 살아가다 보면 강적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삶의 최고 강적인 죽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이 우주가 만든 거예요. 죽음은 이 우주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어서 우리는 우주에 의지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며 스스로를 잘 닦아야 합니다. 태백산 망경대 밑에는 무당들 본거지가 있어요. 유일사라고, 무당들 본거지가 사찰의 이름으로 있었는데 그 절의 주인이 무당입니다. 무당은 신이 들린 사람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신들려버리면 달라요. 신이 나면 혼이 들어옵니다. 스님들은 귀신이 들어와도 내보내죠. 스님들 가운데 참선하다 귀신 들어오는 스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해제철만 되면 스님들이 그냥 미쳐서 몰입하다 보면 귀신들이 들어오고, 자기 인연영가들이 들어오고 합니다. 스님들은 그런 것을 잘 이겨내고 중생제도에 힘쓰려고 공부를 하면서 힘을 기릅니다. 먼저 해탈한 스님이 다른 스님과 중생을 위해 강적을 이겨내면서 갈고 닦습니다. 죽음이 설령 덮쳐들어온다 하더라도 미소 지으면서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분이 부처님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인내와 미소, 이것이 천재의 참뜻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인내하고 미소 지으며 우리 함께 성불합시다. 2018-07-18 오후 3:55:49우리는 지금도 영혼들의 세계와 끊임없이 교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다/Media/law/Read.aspx?db_cnt=78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 시공을 넘어선 세계와의 교신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우리는 살다가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배운다는 게 좀 겁나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제가 어제 다라니 기도를 할 때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이 중에 선몽을 받아본 분이 계십니까?” 여러 분이 손을 드시더라고요. 심리학에서는 선몽을 인지(precognize) 또는 예지몽(precognition dream)이라 부릅니다. 서양에서도 선몽을 인정하는 거예요. 사람들의 꿈을 채집해서 얘기하다 보면 뭔가 미래를 보게 되잖아요.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본다는 것은 미래가 이미 짜인 게 아니냐는 시나리오 같은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지요. 실제로 저 같은 중도 선몽을 보며 살고 있으니 의문이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인생계획서(life plan) 네, 그렇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환생, 재생, 윤회라고 그러잖아요. 이 광활한 우주의 무량한 중생이 모두 윤회를 한다는 거예요. 윤회는 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왜 자꾸만 윤회를 시키는가? 윤회의 어떤 이점이 있으니까 그래요. 우주의 법칙, 자연계의 법칙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재생하게 만듭니다. 다시 태어나게 해요. 그건 한 생을 살 때마다 뭔가 배우는 게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아무렇게나 태어나지 않았다는 방증이지요. 사람 몸 받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우리는 땅 위에 삽니다. 땅 밑에 사는 중생은 또 얼마나 많아요? 허공을 날아다니는 존재들, 물속에 사는 중생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요즘 병원에 가면 MRI나 CT로 몸 구석구석을 자세히 촬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특수카메라로 찍어내는 거죠. 눈에는 보이지 않은 미세한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일체동관(一切同觀), 일체를 하나로 보라고 합니다. 여래유육안부,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있느냐 합니다. 우리가 보는 눈만이 눈이 아니라는 거 아녜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은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누구 얘길 들으면서 자기 안으로 또 다른 판단을 합니다. 투트랙으로 가는 거죠. 우리는 이 땅에 일정한 시간만 와있지만, 이 육신 너머엔 영원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의 세계로부터 와서 영원으로 갑니다. 우리가 계속 재생을 하는 건 뭔가 자신에게 이점이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태어날 때마다 과거 생에 어떻게 살았느냐를 참조하면서입니다. 전생에 살았던 날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환경을 예비해 두는 겁니다. 우린 이 땅에 와 고작 백년도 못 사는데 이 우주는 유유히 영원을 갑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하늘을 향해, 영원을 향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제사를 올린 자, 하늘은 그들은 축원한다, 그랬어요. 하늘은 그들을 고귀하게 여깁니다. 저 세상으로 가면 우리보다 먼저 간 죽음의 선배들이 있겠죠. 여러분의 선조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뭔가 알려주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근데 우리는 삶에 취해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소홀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3차원이 아닌 4차원을 받아들여야해요. 고차원의 세계로 갈수록 점점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해져야 영원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세, 정진하는 자세, 참선하는 마음이 돼 고차원을 호흡하면 고차원 세계에서 뭔가를 간절히 알려주려 애씁니다. 그러한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소홀한 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항상 꾸준한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저차원이 될수록 장벽은 높아집니다. 고차원이 될수록 시간과 공간을 떠나 버려요. 시간과 공간을 떠난다는 건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많은 인연 영가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린 여기서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살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우리와 끊임없이 연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면 그들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밖에요. 역으로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 좋은 데로 가십시오’하면‘고맙다, 감사하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한 생각을 넘어서세요. 빛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내 몸과 마음에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수지신시광명당, 수지심시신통장이 된단 얘기에요. 해보지 않은 자는 모릅니다. 2. 우리가 끊임없이 재생하는 이유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영원의 세계, 저승으로 넘어간 자들은 허공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후손들에게 뭔가 얘기해 주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대신 전달해 주는 존재들이 있잖아요. 흔히 영매(靈媒), 무당이라고 하죠. 묘한 것이 무당은 전 세계 공통입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 다 있어요. 어떻게 보면 중들도 영매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무당하곤 좀 차원이 다르지만 저세상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갈고 닦은 대로 모습도 다르고, 두뇌능력도 다릅니다. 또 전생에 지은 공덕에 따라 부모 만나는 패턴도 달라요. 어려운 집안에 태어나는 사람, 자칫 태백산 하늘아래 첫 동네 김씨네 똥개의 세 번째 딸로 오기도 합니다. 저마다 영혼들이 어울리는 장소가 다른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오면 부모가 생기잖아요, 형제가 생겨요. 이 땅을 등져도 차원에 따른 관계를 맺습니다. 부처님 경에 우리는 과거에도 수 없이 많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을 살 때의 사랑의 마음, 내가 뭘 좋게 생각하는가 하는 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을 등져도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이 같습니다. 기호가 같아서죠. 이른바 업이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몸에서 나오는 파장은 육신의 눈으로 봐서는 잘 모릅니다. MRI나 어떤 특수한 기계로 봐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봐서 고치는 병들이 많잖아요. 알기 쉽게 말씀드리면 개인마다의 아우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별 그 주변에 강한 아우라가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한 면적, 상당한 공간에 존재합니다. 지구 저 너머, 지구 저 위의 상공에 가득해요. 육천 도, 칠천 도, 만 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하는 존재들이 거기 산다는 거예요. 네, 은하계 우주 중심부의 찬연한 별나라는 지구의 태양열과는 게임도 안 된다니까요. 우리가 왜 자꾸 이 땅에 오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 늙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병들지 않을 수가 없고, 죽고 싶지 않지만 다 죽어야 해요. 이 우주의 영적인 법칙, 부처님 법을 위반한 죄, 욕망과 아욕, 노예성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탐욕스럽거든요. 이기심이 가득해요.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좀 더 고차원인 자가 되어보세요. 장막이 깨져야 비로자나진법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린 오감(五感)이지만 영혼들은 육감(six sense)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관 또는 영감이라고 하죠. 99퍼센트의 노력으로 1퍼센트의 영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하잖아요. 영감의 세계, 불교에선 방편원력지, 지혜의 영역, 통찰지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아이디어의 영역이라고 할까요.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의 ‘노벨상의 법칙’을 보면 20대에 아이디어를 내서 연구를 시작하면 4,50년 이상씩 한다는 거예요. 계속 심부로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얘기했잖아요. 노벨상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70대나 80대라고요. ‘아, 이걸 한번 연구해 보자’ 해서 50년 동안 밀고나가면서 심부로 들어가는데 뭐가 안 나오겠어요? 영원의 접근자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재생하는 이유는 영원성을 확보하고 완전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금강경에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이렇게 나오거든요. 시간과 공간이 떨어져 버리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저승으로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버리니까, 생각하는 순간 움직이니까 이게 굉장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생각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저승에 가면 생각의 통제를 가르칩니다. 생각을 제어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금강경의 핵심, 어떻게 마음을 쓸 것이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을 것인가가 태제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옵니다. 실제로‘내가 저 친구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하면 저주의 염파가 나오잖아요. 제가 왜 여러분에게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기도를 해서 어느 정도의 단계에 올라가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들과 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은 누구나 산 자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광겁다생에 나의 부모형제자매가 아닌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흔히 백세시대라 해도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갑니까? 올해도 6개월이 금방 지나갔어요. 1년의 반이 간 거예요. 이제 또 가을 오고 겨울 온다니까요. 인생 백년 아무것도 아닙니다. 3. 간절히 기도하는 자, 고차원의 존재를 만난다 우주의 법 따라 살아야 합니다. 법이 이 우주, 지구를 지배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법이 있잖아요. 법은 어떤 때 작용해요?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법을 느끼게 만들고 내가 한 말과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면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가잖아요. 우린 영원으로부터 와서 영원을 살다가 영원으로 가는 존재이니까 영원한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겁니다. 또 영적인 법칙도 있어요. 모든 물질은 에너지, 즉 파동으로 돼 있으니까 이 자리에 또 다른 차원의 에너지의 당체가 얼마든지 앉을 수 있다는 거죠. 육신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서는 한 자리에 꼭 한 사람밖에 못 앉습니다. 그런데 시공을 떠난 존재들은 한 공간에 무량무변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걸 무시하고 산단 말이에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고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얘기하는 이유가 허공에 사람 숫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우리같이 저차원적인 존재하곤 상종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 따라서 보살의 마음을 내거나 신장님의 마음을 가지면 그들의 옹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저는 만중생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다짐해보세요. 허공의 옹호성중들이 우리를 보살펴줍니다. 3차원적인 의식만이 아닌 4차원, 고차원적인 의식 속에 살아야 그들과의 교신이 가능해집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고차원적인 존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선몽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아요. 선몽을 받은 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분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속박이 돼서 일종의 감옥 같은 곳에서 수련과 수행을 해야 하는 존재지만, 그들은 시간과 공간이 풀어졌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공을 넘나들면서 우리 주변에 함께할 수 있거든요. 제가 살면서 통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거예요. 죽음을 공부하지도 않고 영원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요. 이러니 또다시 태어나야죠. 육체는 탄소생명체입니다. 제가 비유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텔레비전 세트는 리모트 컨트롤을 눌러야 들어옵니다. 꺼놓으면 고철이에요. 이 몸도 죽으면 썩어지지만 지금은 가동되고 있잖아요. 이른바 물질적인 차원과 파동적인 차원의 복합생명체라니깐요. 차원이 다른 존재가 한 몸에 공존하고 있는 거예요. 다만 상념체와 육체의 파동이 다를 뿐입니다. 제가 참선을 할 때 차크라를 시키는 이유도 우린 음식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몸에는 항상 우주의 기운이 넘나듭니다. 차크라를 통해 드나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차크라가 파괴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몸에 독소가 쌓이는 거예요. 통로가 막히면 죽는 겁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탐진치 삼독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릇된 마음에선 그릇된 것밖에 더 나올 게 없어요. 운동 삼아서라도 차크라를 해보세요. 척추는 몸의 대들보입니다. 척추는 하늘과 땅의 연결자라니까요. 한의원에 가면 경락에다 침을 놓습니다. 차크라 요법의 일종이에요. 매일 간단하게 침 맞는 수련법(차크라)을 말씀드린 거예요. 침 맞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거든요. 몸 안에 쌓인 유독가스가 배출됩니다. 이 광활한 우주는 부처님 몸과 마음 그 자체입니다. 4. 죽음을 두려워 말고 삶을 두려워하자 중요한 건 시간과 공간을 떠난 존재들이 생각으로는 우리와 교신한다는 겁니다. 유비무환, 이 땅에 사는 동안 좀 더 갈고 닦고 가야합니다. 내생에는 더 좋게 나와야 하잖아요. 믿고 안 믿고는 자유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인간에게는 무섭도록 자유가 주어지는데, 선택을 잘못해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열반경에‘철천지 원수가 과거 생에 네 아비 어미다’라고 나오잖아요. 조상들이 분명히 산 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자꾸만 조상님께 잘못했다고 빌어야 해요. ‘살아생전 잘못 모신 것을 참회합니다’이렇게요. 여러분 주변의 일가권속들한테도 열심히 기도하라고 얘기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고, 질병과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당장 그 사람이 기도를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인연령들이 ‘어, 너 철들었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살아생전에도 엄마 아버지가 아들딸이 어, 정말 불효하던 녀석이 마음잡아서 효도를 하면 어떻게 돼요? 어머니 아버지가 기특하다 여기잖아요. ‘아이, 내가 뭘…’ 이런 생각하지 마세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한 마디 두 마디 누구에게라도 귀띔이라도 해 주시고요. 그게 큰 공덕이 됩니다. 항하사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부처님 한 말씀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하잖아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두려워하세요. 세상의 욕망과 집착을 이겨내면 찬연한 세계가 열리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부처님 말씀 따라 살면 정말 복업이 있어요.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아 스님, 뭐 기도해도 안 되데요.” 왜냐? 업이 두꺼우면 좀 시간이 걸리겠죠. 다만 마음자리를 바꾸고, ‘아, 내가 지금까지 내가 뭘 잘못했구나’하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헤쳐나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부처님 말씀 들으려고 부처님 전에 나온 사람들은 과거 생에 일불 이불 삼사오불 이종선근, 부처님 종자를 뿌려놓았었다는 증거에요. 과거 생에 천만부처님 처소에서 공부를 한 근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신 거예요. 그걸 믿으세요, 부처님 직설이니까. 아, 너무 멋있는 말씀이잖아요. 여러분은 얼마든지 주변에 계신 분들한테 말할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당장 해 보시라니까요. 그들을 제도해야 합니다. 이젠 의사선생님만 가지고 안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의사선생님만 믿지 마세요. 기도하는 순간 여러분은 영원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의 에너지를 호흡할 수 있으니 영적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가세요. 선행에는 꼭 보답이 있습니다. 선행을 하면 허공의 부처님법이 작동해서 복을 주려고 애를 써요. 여러분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법을 작동시킵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옵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에너지를 방사하게 돼요. 에너지는 파동이기 때문에 여기선 3차원의 세계지만 영원과 보이지 않는 세계와 항상 링크가 돼 있는 거예요. 그릇된 말과 생각과 행동하면 여러분 스스로를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재판관이 벌을 주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벌을 부르는 겁니다. 그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3차원적인 생명체와 영체, 파동의 복합생명체입니다. 금생에 어떠한 마음을 썼는가 하는 정보가 우주통제청으로 그대로 옮겨갑니다. 영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소중히 여겨야 해요. 영적 발전의 진동에 따라서 몸과 마음에서 발하는 광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플롯에 따라 이 땅에 왔습니다. 적법하게 살아가야 해요. 지금은 내생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영원의 세계와 끊임없이 교신하고 있는 중이에요. 언제나 자신이 영원을 가는 부처님의 아들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018-07-18 오후 3:20:53연등을 밝히면, 마음의 등불을 밝히면 언제나 새로운 아침, 새로운 태양, 새로운 인생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8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 연꽃의 마음, 연등의 마음 이집트 신화는 7천 년 전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시기 훨씬 전이지요. 신화에 등장하는 오시리스(Osiris)신은 항상 연꽃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 역시 자신의 침소를 연꽃으로 꾸몄다고 나와요. 제우스신의 부인, 헤라도 연꽃으로 장식된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고 하고요. 연꽃은 다른 꽃과 달리 혼탁한 곳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게 특징입니다. 인류 역사와 가장 밀접한 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연꽃을 상징하는 연등에 관한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일화가 더 있습니다. 디오게네스가 워낙 현명한 인물이다 보니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갑니다. 디오게네스는 대왕이 찾아온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좀 비켜 주시오.”합니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도 항상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살지만 무명(無明)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자기 인식,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은데, 자기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역설이죠. 눈으로 보고 사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법당에 나와 이렇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니까 ‘뭔가 있긴 있다’하는 막연한 마음은 들겠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둡고 힘든 마음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미래의 성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선 매일 매일을 연등처럼 살아야 해요. 지금 당장 연등을 밝혀 부처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한 예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대부분 과거의 어떤 사례를 기초로 해서 사건을 판단합니다. 항상 지난 자료와 씨름하다 보니 흘러간 과거에 매달리는 편입니다. 직업군인이라면 현재에 서 있고요. 또 정치가라면‘찬연한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요. 그들은 미래를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종교의 카테고리는 무엇일까요? 지금 이‘순간’에 주목합니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거예요. 부처님도 ‘참회하는 가운데 나의 가르침을 실천해 이 시대의 등불이 돼야 한다. 다른 순간이 있지 아니하다. 순간이 영원이다’라고 주장하셨거든요. 순간을 놓치고서는 ‘영원’이 있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런던대학의 노먼 빈센트 필 교수가 사람들이 온종일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조사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조사를 했는데 그들의 약 40퍼센트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걱정을 한다는 겁니다. 또 그들의 30퍼센트가 이미 일어나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한대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22퍼센트의 사람들이 하고요. 이제 도저히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을 4퍼센트의 사람들이 한다고 합니다. 96퍼센트의 사람들이 비싼 밥 먹고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겁니다. 경전에 나오잖아요. 정반왕이 부처님께 묻습니다. “기도의 공덕, 염불의 공덕이 어떠합니까?”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명멸하는데 그중에 자기가 잡는 생각 따라서 미래가 결정된다. 염불하는 공덕은 그와 같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생각을 녹여 내리면 하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요. 그 방법이 염불, 부처님 생각입니다. 찰나 간에 구백 생멸을 하고 수많은 생각이 흘러가는 중에도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하면 그 길로 간다는 거예요. 우리 두뇌에는 쓸 데 없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만큼 두뇌가 탁해요. 두뇌가 탁하니까 생각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라, 연꽃을 피워라 하는 거예요. 이른바 기도하는 마음, 참선하는 마음 같은 거거든요. 연꽃의 마음, 연등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의 모든 상황은 전부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뽑아낸 생각으로 만든 세계라는 겁니다. 안팎의 모든 존재가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라는 거죠. 시간이란 도로 위에 스스로가 만든 그림자 따라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그 같은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시간의 열차를 타고 자기의 생각을 뽑아내면서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생멸하는 수많은 생각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2. 자기통제력 좋은 뜻이 있으면 좋은 길로 가고, 나쁜 뜻이 있으면 나쁜 길로 갑니다. 유심정토(唯心淨土),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극락으로 만들어가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법문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마음 가운데 정토가 열립니다. 혼탁한 마음을 거둬낼 수가 있어요. 많고 많은 생각을 잘라내고 한 생각으로 모으면 문제해결능력이 강해지거든요. 순간순간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을 염해보세요. 마음 안에 연꽃이 피어납니다. 염불하는 순간 연꽃이 피면 새아침이 열리는 거예요. 새로운 태양이 뜨는 겁니다.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어제의 것은 어제에 줘 버리세요.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도 오늘의 등불을 밝히고 다녀야 해요. 오늘이라는 새로운 날에 집중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흐르는 강물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하셨잖아요. 미련과 망상, 집착, 애착은 오늘을, 미래를 침식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죠? ‘아름다운 꽃밭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 들어온다. 더러운 시궁창엔 파리, 모기가 날아 들어온다’고. 마음에도 매일 매일의 쓰레기가 쌓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요. 일요일은 법당에 나와서 한 주일을 정리하고, 새로 맞이할 한 주를 준비를 해야 해요. 그래야 삶이 새로워집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부처님께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세요. 내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마음으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내 안에 계신 거룩한 그 분이 위력적인 음성으로 나를 질타합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참회해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처님께 삼배라도 올려보세요. ‘하루를 살아오면서 지은 여러 가지 잘못을 참회합니다.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잠자리가 편안합니다. 미국에서 아침에 일어나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까 그들의 두뇌에 독성 아밀로이드, 치매조작물질이 다른 사람의 1.6배가 더 많다는 통계가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머리가 맑아야 합니다. 잠 관리, 꿈 관리를 잘해야 해요. 종교 의식이전에 두뇌건강을 위해서라도 마음쓰레기를 청소해내야 합니다. 죄는 실다움이 없습니다. 마음 따라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쓸어내면 그만큼 마음이 맑아집니다. 요즘은 지식테러리스트가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마구 올라오잖아요. 디지털 무정부주의라고 할까요. 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고 또 너무 무례합니다. 블랙스완(black swan), 단 한 번의 예외가 모든 상황을 날려 버리는 경우가 전개되는 거예요. 그럴수록 대중의 의식은 흐리멍덩해집니다. 모두가 다 똑똑하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매크로 같은 여론 조작사건이 일어나요. 예전엔 정부 기관을 이용했었는데 이제는 전문가들을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한대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 진짜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통제력을 키워가세요. 얼마나 마음을 항복받는가? 얼마나 마음으로 참회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삶을 도모하면서 항상 자기의식을 정리해야 해요. 특히 지도층에 계신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 그러잖아요.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 내에는 성불할 때까지 한 군데도 편안한 곳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증오하는 마음만 내려놔도 성공으로 가는 길은 확연히 열립니다. 3. 연등을 밝히면 매일 매일이 새롭다 세상 가운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범주가 있습니다. 이 우주는 아름답고, 자연 그대로가 법입니다. 엔지니어나 예술가들은 창의적인 이데아를 가지고 있고, 운동선수들은 경쟁심, 투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자(sage)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합니다. 직업에 따른 지혜로운 안목이 필요한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거든요. 우선 자기인식, 내가 누구인가를 객관적으로 봐야합니다. 현실 가운데 나와, 영원을 가는 나, 마음 나라의 나를 절대로 무시하지 마세요.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티끌조차 만들어진 근본 원리는 마음, 상념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주만상 전부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셨잖아요. 여러분의 몸도 마음이 만들었고, 세포도 마음이 만들었고, 나아가선 회사도 여러분 마음이 만든 거예요. 어떤 자리에 있든 우주 의지에 따른 마음으로 나아갈 때 자신의 위치에서 제대로 부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에 시작할 땐 청신하니까 잘 나갑니다. 가다가 마음이 흐리멍덩해지면 이내 무너지잖아요. 처음에 돈을 벌 땐 열심히 하는데 어느 정도 벌고 나면 ‘힘들다. 좀 쉬었다 가자’합니다. 그러나 내가 쉴 때 새로 출발한 친구들은 그때부터 뛰거든요. 그들이 앞서가면 나는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해 나아가세요. 나를 지키는 게 나를 존중하는 자세예요. 계를 지키는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하늘이 사랑합니다. ‘나는 이 일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참회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자기주도성이 강해져야 해요. 자기주도성이 약화되면 무너집니다. 자기존중 의식이 자기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거예요. 상대방에 대한 예절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대한 예절도 중요합니다. 거기서 강한 주체성이 드러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평상심은 위대한 성자들의 기본자세입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음식을 조심하고 많이 움직입니다. 적절한 수면은 필수고요.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이 자기 몸도 잘 관리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편안하게, 깨끗하게 갈 수 있습니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리를 투철히 하세요. 부정적이고 혼탁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를 험담하지도 마세요. 그럼 부처님도 애잔해 하십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유감없이 인생을 살다 떠나야 해요. 고종명(考終命), 제 명에 깨끗하게 죽는 것도 큰 복입니다. 항상 ‘부처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인정하는 마음, 부처님을 존중하는 마음, 부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저는 감사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수행의 목표, 공부의 목표는 부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를 존중해요. 끊임없이 수행하는 자세, 수련하는 자세만이 승리의 DNA, 성불의 DNA를 양성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연등을 밝히면 매일 매일이 새로운 아침이고, 매일 매일이 새로운 태양, 새로운 날이에요. 매일 매일 몸 청소 하듯이 매일 매일 마음 청소를 해보세요. 그리고 초파일날은 전법의 날이니만큼 주변 일가권속에게 연등 하나씩 밝히기를 권유해보세요. 그들을 법당으로 인도하는 거죠. 그럼 마음이 부처님 전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연등이 곧 인등이거든요. 인등은 끌어온단 말입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은 백 명, 백오십 명 정도 된다고 하니까 주변에 계신 분들을 부처님 전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연 맺은 사람들을 부처님 전에 끌어오면 여러분 자신에게 복이 돌아옵니다. 지혜를 불러와요.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여러분 모두 연등행렬에도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2018-07-11 오후 3:07:42수행하지 않는 자는 가장 흉악한 자. 성인은 항상 사랑과 자비를 귀하게 여긴다/Media/law/Read.aspx?db_cnt=78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1. 수행의 목적 부처님은 항상 “너희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또“너희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너희를 부추기는 향상심이 있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근데 사람들은 그와 같은 가르침을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무심하게 흘려보냅니다. 물론 몸과 마음, 환경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음 안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부족해도 그렇게는 살고 싶은 거예요. 누구나‘오늘보다 나은 내일이었으면’하는 원(願),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너희는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는 그것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거든요. ‘부처의 자리란 나보다 지혜를 닦기에 더 이상 부지런한 자가 없는 자리, 나보다 복덕을 닦기에 더 이상 부지런한 자가 없는 자리’라는 겁니다. 부처님은 ‘영원’ 그 자체란 뜻입니다. 우리는 사바세계, 지구에서 나름의 쓰임새를 갖고 살아갑니다. 이 땅에 마땅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저 같은 중생은 매일 경전 속에 살다시피 하니까 항상 즐거운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세속에서 돈을 벌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마음이 힘들 거예요. 미국의 한 유명한 재벌 상속자는 워낙 돈이 많으니 주변사람들을 돕는 데 거의 매일 매일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항상 즐거운 얼굴일 수밖에요. 남에게 베풀면 우선 내가 즐거워지잖아요. 심리학에선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부릅니다. 헬퍼스 하이, 남을 도와주는 데서 오는 즐거움 속에 사니까 항상 몸과 마음이 밝고 건강한 거예요. 하이(high)란 일종의 마약 용어거든요. 중요한 건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잘 쓰고 사는가? 나보다 남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부처님은 수행하지 않는 자는 광활한 우주의 의무불이행을 도모하는 존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운명이듯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많은 스펙을 쌓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이 각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존재하지 않아야 해요. 우리는 거대한 쓰임새,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그 길을 가는 거예요. 법화경에 나옵니다. ‘너희는 부처님 될 운명을 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세상을 사는 동안 열심히 부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자기의 쓰임새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가야 해요. 하늘나라에 가서 살 수 있을 만한 마음자리나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거죠. 부처님이 “수행은 너희의 운명이니라. 수행은 너희의 의무이니라.”하셨듯이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것이 여러분의 운명이자 의무입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니까 죄를 짓게 되는 겁니다. 부처님은 유언으로 “게으르지 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으뜸가는 현자가 되라하셨잖아요. ‘하나’를 깨달은 자, 상현이 세상을 건져냅니다. 중현은 나라를 잘 보필하고 관리하지요. 하현은 희로에 물들지 않고 허물됨이 덜합니다. 이들과 같은 현명한 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신을 개량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해악을 줄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앞으로, 영원을 향해서 나아가세요. 수행하지 않으니 재앙의 연속이요, 수행하지 않으니 질병과 불행의 연속입니다. 수행하지 않으니 그릇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2. 도(道)의 근본 원리 마늘이 있으면 마늘 냄새가 납니다. 양파가 있으면 양파 냄새 나요. 마찬가지로 암세포에서 나온 파동은 주변 세포들에게도 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암에 걸린 사람에게 병원 의사가 물어보잖아요. “가족들 가운데 암에 걸렸던 사람이 있습니까?”가족력이라고 하죠. 부부간에도 절대로 불화해선 안 됩니다. 부부가 불화하면 그 파동이 아이들에게 날아갑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지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청신해야 국민에게 좋은 향기를 발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정보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는 이유가 수행하지 않는 자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마음자리의 점수를 높여가세요. 영원을 가는 노력을 소홀히 해선 곤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법당은 마음을 정화해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게 하는 병원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좋은 의사라고 하셨잖아요. 수행을 하지 않으니까 탁한 마음, 악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법당은 병원이요, 법문은 법약입니다. 부처님은‘그대가 향이 되면 무량한 삼보님께 공양을 올린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하면 우주 자체가 장엄한 보배궁전이 된대요. 항상 부처님 생각하고 기도하고 정진하면 그대로 부처님 길을 가는 구도자가 되는 겁니다. 모험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갖게 돼요. 문제는 지속성에 달려있습니다. 창업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세요. 그들은 목표가 투철하고 목표 지향적입니다.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으로 가다 보니까 사소한 것에서 악마를 만나게 됩니다. 디테일을 소홀이해서 무너지는 수가 있어요. 강한 도전의 효과가 있는 것에 반해 무모한 점이 뒤따릅니다. 자기 주도적이니까 주변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해 주는 게 도(道)입니다. 지속성을 유지하는 브랜드의 특징은 본질에 투자하고 진정성을 담는 것입니다. 도를 담으라는 거예요. 도는 만물에 규범을 부여하는 법칙이고, 천지만물 본체이고, 천지만물을 산출하는 주재자입니다. 4차 혁명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마음 가운데 도를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우주의 법을 담을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의 근본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자연계의 형이상학적인 구조하고 인간의 시스템은 하나로 통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까요. 차가운 건 내려오고 뜨거운 건 뜨잖아요. 무거운 건 가라앉고 가벼운 건 뜹니다. 이게 원리예요. 뜬다는 건 욕심을 버리고 나를 낮춘다는 의미죠. 도인들이 그래요. 이 우주는 부처님 말씀대로 법의 궁전입니다. 허공은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보배의 궁전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서 살게 됩니다. 눈은 빛을 쏘고 귀로는 파동을 듣고, 입으로는 맛을 자극하고…. 온몸의 시스템이 우주의 시스템과 백퍼센트 일치합니다. 마음을 닦으면서 몸도 같이 닦아야 해요.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두가 하나로 모입니다. 때로는 전부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하나로 일치시키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천지만물을 하나로 꼬는 ‘도(道)’가 필수라니까요. 합자연, 일합상이 핵심입니다. 반야심경이 계속해서 무(無)를 주장하는 이유도 무가 모든 걸 다 삼키기 때문입니다. 무(無)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에요. 무는 만상을 머금고 있는 거대한 우주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하면서 고요히 앉아 우주의 도를 생각하는 자, 그 자가 부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감사입니다. 인간의 최상위의 마음가운데는 ‘감사합니다’하는 긍정의 마음이 있거든요. 감사를 아는 자는 강한 도전의식이 싹틉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자발적 동기부여가 되지요. 감사한다는 마음은 하늘을 인정하고, 도를 인정하고, 부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니까 판단력과 창의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합력하고 협력하는 데 능수능란하거든요. 매일매일 ‘부처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다른 종교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하잖아요. 결국 이 시대의 핵심은 도입니다. 삶을 얼마나 도답게 만들어갈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3. 정직은 최상의 정책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오백생 동안 보살만 낳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부처님을 낳으셨잖아요. 끊임없이 승화해 가다가 마침내 부처님 낳을 유전자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예요. 여러분도 매일매일 수행함으로서 후성유전, 유전자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비록 금생에 아이를 그만 낳는다 하더라도, 여기를 떠나서 다른 세계로 가서도 쓸 데가 있거든요. 끊임없이 향상심을 갈고 닦아가야 합니다. 수행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입니다. 영원 그 자체가 될 때까지 끝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먹고 마시고 즐기려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어’ 하는 말도 하지 마세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정진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놔두고 가는 건 이 몸뚱어리뿐입니다. 자신이 갈고닦은 마음의 세계를 그대로 가지고 간단 말입니다. 수행이 운명일 수밖에요. 제가 아는 거사님이 공무원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셨어요. ‘이젠 뭘 할까?’고민하다가 퇴직한 그 다음날서부터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를 돌면서 지저분한 걸 치우고 눈에 띄는 대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대요.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일을 하는 분이 찾아와서 ‘여기 일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래요. 자기 브랜드라는 건 자기 본질에 투자하는 겁니다. 수행은 자기 본질에 투자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무슨 가게를 한다, 음식점을 한다, 상점을 한다, 제품을 만든다는 건 거기에 자신의 진정성을 담는 겁니다. 그게 진짜 브랜드 가치죠. 세계적인 경영 구루들이 하는 말입니다. 선전을 많이 하는 것보다 브랜드에 진정성을 담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게 오래(steady)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본질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진정성을 담아내야 합니다. 회사도, 개인도,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바르고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거든요.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잖아요. 디지털 시대가 되고 보니까 점점 사물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모든 기업이 경쟁자이면서 협력자이고, 공급자이면서 구매자이고, 적이자 친구라는 얘기예요. 이젠 자동차가, 자동차가 아니라 컴퓨터입니다. 컴퓨터 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거죠. 진정한 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창의력은 거짓된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근본으로 돌아가라, 영원으로 돌아가라. 하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인은 ‘하나’를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 허공은 사랑입니다. 허공 자체가 지혜예요. 구경에 성불하면 텅 빈 허공이 되거든요. 우리는 그러한 허공의 공기를 마시며 삽니다. 믿기 어려운 진실인데요, 허공 자체가 무한한 사랑이고 부처님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수행해서 구경 궁극에 무아가 되는데, 구경무아, 무아는 내가 없이 허공으로 가는 거예요. 무량한 불보살들이 허공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허공과 끊임없이 교신해야 해요. 그 자가 수행하는 자입니다. 마음을 비운 자에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하잖아요. 마음을 비우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순간이 영원이라고 그랬습니다. 멍 때리는 가운데서 머리가 맑아질 수 있습니다. 탁월한 자는 항상 자비를, 사랑을, 하나 됨을 귀하게 여깁니다. 수행을 생활화해 보세요. 수행은 우리의 운명이자, 의무입니다. 수행하는 마음가운데 영원의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과 저는 언젠가 이 땅을 등져야 합니다. 근데 죽는다고 끝이 아니에요. 죽으면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고 그 다음 어디론가 또 다른 세계로 가야 합니다. 한 세상 어떻게 살았는가, 판단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수행하지 않은 자는 흉악한 자라는 지당한 부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수행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018-07-11 오후 2:4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