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http://nungin.net/Rss/rssGiGwang.aspx지광스님의 좋으신 말씀입니다.ko그대는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없다. 원하는 것도 항상 변해 간다. 변하는 것이 영원의 법칙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6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입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때가 언제인지 자신이나 타인에게 반문하기도 합니다. 언제가 제일 보람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모두가 부족하고 실수 덩어리들입니다. 인간이기에 삶을 살다보면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실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잘 가고 있는지, 혹 이 길이 정도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다보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불자의 마음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자체가 부족하고 실수투성이긴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마냥 그릇된 길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곳에 보람이 있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 보람이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는 계속 정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 삶이 내가 마음먹은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배우고 서로를 통해서 격려하면서 나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태어남도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나왔으니까요. 또 살아가면서는 부모님의 도움 나아가서는 아내의 도움 세월이 흐르면 아들딸들의 도움 서로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자녀들이 어렸을 때 누구나 부모의 말씀을 고분고분 다 잘 듣는 건 아닙니다만 특히 사춘기에는 저항이 더욱 심해집니다. 심리학자가 말하는 사춘기 반항의 이유가 있습니다만, 저항한다는 것이 때로는 자립심을 기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나도 어머니 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인데 왜? 라는 의문을 가지며 부모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자립심을 생각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춘기 얘길 하면 생각할게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속을 썩이는 집안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소통이 잘되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의 앞 가름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미흡한 것이 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체를 쌓아놓고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여 누구와도 소통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성안에 자기를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은 초라하게 생각합니다. 실수를 연발 하다보면 너무 힘들어지고 스스로가 움츠려 들게 됩니다. 그때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자립심을 키워줘야 됩니다. 귀엽고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자립심을 키워주지 못하면 그 아이들은 일생동안 부모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큰 숙제 덩어리로 이 땅에 남게 됩니다. 스스로 부딪치며 살아가야 됩니다. 실수 연발하면서 가야됩니다. 그런데 누구나 실수를 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시도하기조차 포기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담장을 쌓고 아버지 엄마와도 대화를 끊어버리고 방구석에 박혀서 매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이나 만지고 대화도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자기 자신도 초라해 지는데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전혀 바깥세상과 교류를 하지 않으니 자칫 폐인이 되는 거지요. 스스로 고립자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상담을 하는 내용을 보면 그런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부모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20대 30대 때에는 실수 연발일수 밖에 없고 끊임없는 미숙아들인 자녀는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데 쉽게 포기해 버리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 둔 엄마 아버지들은 아이가 죽은 다음날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모로 부터 돈을 많이 물려받았어요. 그 돈을 관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측근을 잘못두면 배신자들도 생기고요, 믿음의 장벽이 깨져버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예요. 돈 많은 사람들 고초를 겪는 일 한꺼번에 많은 돈을 잡다보면 관리 능력이 주변에 포진에 있는 사람들 이것도 작은 일이 아니에요. 부모는 돈을 많이 벌어 물려주면 되는 줄 알겠지만 이게 문제가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오히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굳이 돈을 물려줘서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 세상을 더욱 잘못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재벌들 2세3세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에 국한된 문제만 아닙니다. 뭐가 문제냐 첫째 이 친구들은 세상과 부딪힐 용기가 전혀 길러지질 않았어요. 사회생활에 적응이 잘되지 않아 이것저것 하다 안 되니 부모 재산 다 날리고 완전히 막혀버리니 시도하기도 싫은 거예요. </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 신뢰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이 광활한 우주는 미숙아들을 끊임없이 양성하는 도장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만이라도 훌륭한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가 자기를 신뢰할 때도 있지만 자기를 불신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들이 인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게으르지 말고 항상 정진하라는 오로지 인간을 위해 남긴 말이 팔만사천대장경에 실려 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우린 누구나가 다 이 땅에 미숙아로 왔어요. 완전자로 온 인간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부처님도 이 땅에서 성불의 길로 가기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진하여 해탈을 이루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가고 그 시대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문제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생각을 깊이 해야 될게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게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원하는 게 자꾸만 변해갑니다. 더욱이 제행이 무상이라 마음도 바뀝니다. 변해가요. 이제 앞으로는 우리 자녀들의 자신에 대한 삶에 대한 통찰력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굳이 돈을 많이 벌어서 물려줄 것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엄마 아버지 뱃속에서 나올 때는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지만 이른바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에 대한 조언자가 부족합니다. 아이들을 면밀히 잘 관찰하여 자녀들에게 마냥 도움을 주고 베풀게 아니라,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어떠한 사회인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런데 관심을 갖질 않으면 고통스런 미래를 만나게 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 나의 문제도 자녀의 문제도 잘 생각하여 가르치고 스스로도 건강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이끌며 슬기롭게 살아가도록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조언자나 종교의 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이 방황하거나 힘들어한다면 좋은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홀로 부처님 법을 깨우치거나 성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서 생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은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남은 인생을 지금 시작해서 가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가를 생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슬기롭게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살아가면서 부딪히면서 터지면서 깨지면서 이겨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타박상도 입고 여기저기 다치기도 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잘 관찰해서 아이들의 아픔을, 그릇된 점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른들이 과거에 아팠던 것처럼 그 아이들도 똑같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 걱정을 하면서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시대가 변하면 사회상이나 젊은이들의 사고가 함께 변합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만능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배신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신뢰했던 사람, 나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상대의 신뢰감을 등지기도 하고 또 상대가 나를 배신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로서로 그런 상황에 처해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시계추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인생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 수양의 길로 가는 거지요. 끊임없이 자기를 교정하면서 신뢰감 넘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신심이라는 말, 신뢰감이라는 말, 이런 낱말은 인간을 지배하는 아주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우리는 믿음을 유지해 나가려는 그 마음 갖지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나 사이 진실을 끊임없이 유지해 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성실한 인간의 기본이며 사랑입니다. 남들에게 배신감을 주게 되면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아픈 마음을 갖지 않도록 불도를 닦으며 배워야 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 내가 노력하는 것이 현실의 열매로 승화가 됩니다</SPAN></P> <P style="LINE-HEIGHT: 100%; LAYOUT-GRID-MODE: char; 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슨 보람이 있었습니까? 누군가가 묻는다면 어떤 때는 사람에게 신뢰감 주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고 어떤 순간에는 배신감으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반성하기도 했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지를 못합니다. 부모나 위 어른들로부터 받아온 인간에 대한 불신과 원초적인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불안을 가지게 된 가장 원초적인 사건이 있는 젊은이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엄마의 태를 끊고 나오는 순간서부터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불안함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인간은 태어나면서 개체화 되어 버리니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이 몹시 중요합니다. 부모에 대한 신뢰감으로 시작해서 가정과 사회에 대한 신뢰감이 아이들의 신뢰에 대한 확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무한한 신뢰감으로 키우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엄마 아버지가 나에 대한 신뢰감을 철회했다라고 믿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신뢰나 믿음의 부재가 아이들을 고립시키고 아이들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신뢰해야 될 것인가’라는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힘들어도 자녀에 대한 생각은 믿음을 가지고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 허상을 따라가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속의 인물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믿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아무도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허상에 빠져 우울증이 생기고 자살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결혼도 안하고 취직도 못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부모가 그런 자녀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먼저 지쳐버리면 아이들은 더욱 침묵 속에 빠지고 우울해 집니다. 자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마뜩하지가 않아도 부모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에 대한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불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다 보면 사회도 삶도 자녀들의 마음도 바뀌어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보며 스스로 변하게 됩니다. </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의 삶이 억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스스로 노력하며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는 광활한 이 우주에서 만용이라 할지라도 설령 후회막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계속 시도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이들의 실패를 자꾸 용인하다 보면 지치게 되지만, 그래도 그걸 포기해 버리거나 놓아버리면 자녀들이 더욱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부모는 그런 모든 자녀들의 실패를 받아들이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희들은 자기 스스로 살지 않으면 살수 없는 존재라는 투철한 의지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건 전적으로 부모의 도리 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SPAN></P> <P style="MARGIN-BOTTOM: 10pt"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부처님 말씀을 익히며 열심히 정진해야만 합니다. 내가 노력하는 것이 현실의 열매로 승화되고, 나의 기도가 자녀들에게 향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SPAN></P>2018-02-14 오후 2:43:12탁월한 인물들의 특징은 고통의 관리에 있다 /Media/law/Read.aspx?db_cnt=761&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무명(無明)이 대죄</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흔히 향수(鄕愁) 또는 애수(哀愁)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수(愁)’자를 보세요. 가을 추(秋) 자 밑에 마음 심(心)자를 씁니다. 가을이 오면 푸르던 잎이 곱게 물들어 마침내 떨어지는데 이 때 사람들은 낙엽을 보면서 향수나 애수에 젖는다고 표현합니다. 푸르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듯 사람에게도 일정한 시간이 주어지니 말입니다. 하루가 흘러가면 하루만큼 죽음과 가까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알 수 없는 애수에 찬 마음이 되거든요. 죽음이라는 능선을 넘어 영원의 고향을 동경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사랑의 크기만큼만 주어진다고 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살면 반드시 죽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은, 모든 생명은 왜 죽음을 거듭해야 할까요? 부처님은‘너희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남이 있게 되고, 공간이 있게 되고, 그 공간을 극복하려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분별심, 이기심의 작용입니다. 내가 없어지면 남도 없어지는 것이기에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떠나게 된다는 거죠. 우리에게는 사랑의 크기만큼 수명이 주어지고, 얼마나 나를 이기는가, 얼마나 내가 이기심을 극복하는가에 따라서 우주를 방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은 진화와 퇴화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천당엘 간다고 그러고 극락엘 간다고 그래요. 지옥엘 간다고도 그럽니다. “에이 스님, 그거 거짓말 아니에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삶은 죽음이란 관문을 통해서 전개될 뿐입니다. 우리는 윤회든 부활이든 잠재의식 안에는 과거에도 수도 없이 많이 죽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세월의 흐름에 애수를 느낄 수밖에 없고, 뭔가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끼게 돼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생로병사의 고통을 면케 하기 위해 출가를 하셨고 깨달음의 문을 열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군상, 탁월한 인간의 특징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의 관리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을 내가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가 관건이에요. 우리는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잖아요. 유대인들은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을 했던 민족입니다. 이에 심리학자 애들러는 열등감을 제대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을 이용하라. 고통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스트레스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고통은 영원의 동반자다.’라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실제로 고통은 힘들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면 두뇌에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과 같은 아주 좋은 물질이 배양되고 몸도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아, 내가 이걸 이겨내겠는가’ 하는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 글루탐산이라고 하는 몸에 아주 나쁜 물질이 생겨난다고 해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선천적인 면역물질이 있는가 하면 후천적인 면역물질도 있다니까요. 부처님도 사바세계를 ‘감인토(堪忍土)’라고 해서 과감하게 견디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레스 받는다, 열 받는다, 고통스럽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거예요. 고집멸도의 사성제가 ‘고통스럽냐? 네가 지은 대로 받는 건데 어떡하니?’잖아요. 팔정도, 찬연한 미래를 원하면 열심히 도(道) 닦으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분석해 보면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집중이 되기도 하고, 겸허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고통 가운데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내적인 염력(念力)이 도모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은“나는 중생의 고통을 제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라고 하셨으니 부처님 말씀은 고통을 극복하는 약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벗 삼아 고통을 이겨낼 때 중생이 진보합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 같은 습관에 익숙할 때 발전이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아는 자에게는 병밖에 올 게 없다는 거죠. 고통이 없으면 건강한 삶도 없고 밝은 미래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고통은 죗값입니다. 무명(無明)이 대죄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성공은 노력과 상관관계에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너희의 마음 가운데도 나와 똑같은 지혜와 덕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4장에‘하나님은 사랑이시다’이렇게 나온다니까요. 사랑과 자비를 등지는 마음은 이기심이고 분별심입니다. 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나 스스로 만든 게 고통이며 그 고통을 이겨내며 승화의 길로 가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생을 제대로 살 가치가 없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힘을 배양하는 자들이 부처님의 아들딸이고 부처님의 대를 이을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서 생사가 갈리고 행불행이 갈립니다. 매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시간은 고통스러워도 흘러가고, 즐거워도 흘러갑니다. 파도를 바라보면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고통을 흘려보내세요. ‘처염상정(處染常淨)’아무리 혼탁하고 오염된 세계라도 다 흘려보내라, 항상 청정해라, 흘러가는 것에 감사해라, 이겁니다. 우리의 몸은 물처럼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지저분한 말을 많이 해요. 얼마나 지저분한 생각, 행동을 많이 하냐고요. 사랑과 지혜, 자비심이 부족하다 보니까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철이 없잖아요. 만약 이런 오염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더럽고 탁해지니까 더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수나 향수를 가진다 해도 감사한 마음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꼭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너희는 과거를 망각할지 모르지만 과거는 너희를 망각하지 않는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이에요. 과거에 지은 건 언제든 꼭 받는다는 겁니다. 흘러가는 것은 감사할 일, 축복할 일이지만 과거로 넘어가면 이게 또 업이 되니까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지켜보고 씻어내어 좀 맑아져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마음은 모든 일의 으뜸이로다. 마음은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 가운데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흡사 수레를 따르는 바퀴자국과도 같이’하잖아요. 아름다운 꽃밭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오고 더러운 시궁창엔 파리모기가 날아듭니다. 맑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뿜으며 살아가세요. 우린 누구나가 서로 닮지 않았습니다. 각자 고유의 주파수가 있어요. 부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내보내실 때 아무렇게나 내보내지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내 마음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어야가야 합니다. 그럼 그 향기 따라서 허공의 호법신장들과 불보살들이 보배 비를 내려주십니다. 복을 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저 열심히만 살면 됩니다. 모든 것이 청정하면 삼보천룡강차지라고 그랬잖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과거는 야생의 동물이었지만 미래는 부처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뇌 가운데는 석기시대의 정보도 들어있기 때문에 단기지향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질 못해요. 모든 정치인이 포퓰리즘을 들먹이잖아요. 표를 의식해서 이렇게 해 주겠다 저렇게 해 주겠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입에 단 게 떡이라고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표만을 바라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전부 단기적입니다. 이러한 단기지향성이 항상 문제를 부르고 경제위기를 부르는 거예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멀리 내다보는 시점에서 일을 처리해나갈 때 혁신도 가능합니다. 성공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노력과 상관관계가 있는 건 분명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른바 모든 물질은 에너지고 마음은, 공(空)은 물질이라고 합니다. 항상 노력하는 자에게 미래의 문이 열리는 거니까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세요. 세상에 금방 되는 일 어디 있습니까? 괴롭고 아프고 쓰라린 날들을 수도 없이 이겨나가는 가운데 그 일이 성취됩니다. 운(運)이란 운동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요즘은 운동이 보약이라고 그러잖아요. 운동하는 데 드는 1달러가 의료보험 3달러를 대체한대요. 대체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운이 열립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뇌 근육이 좋아지고 집중력도 향상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좋은 습관들이기</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나의 성공 제1요인은 운(運)이었다’운이 좋아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운이 좋은 게 아무나 좋으냔 말이에요. ‘행운은 노력의 부산물이다’라고 했듯이 노력 없이는 행운도 도리가 없습니다.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매화의 향기가 백리 밖에 진동하듯 결국 힘겨운 삶을 이겨낼수록 자신감과 성취감이 쌓여갑니다. 뉴욕타임스 기자 찰스 두힉이 쓴‘습관의 힘(power of habit)이라는 책을 보면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의 특징을 관찰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물이나 성공적인 CEO들을 조사해 보니까 그들은 아주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더래요.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철저하고 규칙적인 그들만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오바마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매일 독서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산 거 같지 않다고 했대요. 빌 게이츠는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요. 매일 공부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하세요. 매일 기도하는 습관, 부처님 말씀 따라 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연단합니다. 일정한 시간만큼 기도하고 백팔배하고, ‘이건 패 죽여도 한다. 이건 무슨 수가 있든지 해내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다 보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겨 운으로 연결된다니까요. 아는 것하고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어 속담에도 ‘To know is one thing, to do is another.’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거예요. 실천하는 자만이,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매일매일 고통스러워도, 쓰라려도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직장에 가고 퇴근해 텔레비젼 보고 씻고 자고…다람쥐쳇바퀴 돌듯 한다고 그러잖아요. 삶이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잠돼 있어요. 중요한 건 발심(發心)입니다. 마음을 내야 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에 의식적인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발심공덕, ‘내가 일요일에는 꼭 법당에 가야 되겠다, 내가 백팔배 해야 되겠다.’하면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적극성이 필요해요.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업을 만드는 바탕에는 적극성이 있습니다. 능동성, 솔선수범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전개될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 해가 속절없이 가버린다니까요. 자신에게 강한 의무감을 부여해주세요. ‘이걸 해야 되겠다, 꼭 해야 되겠어’하는 마음을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의 소설가도 항상 자신에게 의무를 가했다고 합니다. ‘나는 무조건 새벽4 시에 일어나 하루 일정 양의 원고지를 쓴다’이렇게요. 매일같이 그런 의무감을 발해서 글을 쓰다 보니 유명한 작가가 되었잖아요. 분심이고 발심이에요. 초발심시 변정각입니다. 발심, 초심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삶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자신의 삶에 강한 의식을 발동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몸과 마음에 좋은 습관을 심기가 불가능합니다. 삶의 95퍼센트 이상이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으로 살아가면 소득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선할 때도 강한 신심, 분심을 내는 겁니다. 강한 의심의 화두를 잡고 ‘꼭 해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는 겁니다. 적극성을 띠어야 해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거 아닙니다. 자신의 의식세계 가운데 좋은 습관을 녹여내려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고통도 즐거움도 흘려보내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금 우리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과거엔 경제가 성장하면, 경제가 발전되면 고용이 많아졌잖아요. 직장이, 일자리가 많았다고요. 이젠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공장이 잘 돌아가도 로보트가 대신하니까 고용이 없는 성장일 수밖에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로보트에다 법인을, 인격을 준다고 합니다. 로보트 마다 수입을 책정한대요. 그래서 그 로보트가 사고를 낸다, 그러면 그 월급에서 보상을 치러주고, 그 월급에 세금을 걷는 법을 만들고 있대요. 찬반 여론이 있지만 그렇게 돈을 거둬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즐겨보는‘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젼 프로가 있는데 특히 5~60대의 연령층에서 많이 본다고 해요. 스트레스 받는 삶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마침 불교는 참선, 명상과 같이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경허스님 말씀처럼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 일 없는 것을 오히려 일로 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일 없이 만드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그러잖아요. 이제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게 되면 그런 사람들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뭐든지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산림이 많습니다. 그 많은 산을 나라에서 대여해준다고 가정하면 거기다 공동체를 만들어 수행처소로 만드는 거죠. ‘효리네 민박’이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작금의 시대를 대변하는 거 같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자신의 마음을 흐름대로 가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했습니다.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라. 아이들이 절대로 빗나가는 법이 없을 것이니’ 에밀의 ‘교육론’도 그와 같은 맥락 아닙니까? 아이도 어른도 자연을 벗 삼아 사는데 어떻게 병든 마음이 되겠어요. 우리의 미래는 계속 변해갑니다. 인생은 그저 놀러왔다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습과 업을 쌓아가야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사는 동안 좋은 점수를 받고 부처님 나라로 가야 합니다. 명부전이 여벌로 있는 게 아니에요. 염라대왕이 거짓이 아닙니다. 한 해를 살면 나라에서도 국정감사를 하는 판입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모든 것은 다 흘러갑니다. 왜 죽음이 거듭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당부 드립니다.</SPAN></P>2018-02-14 오후 2:18:24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항상 순간에 달려 있고 어떤 순간이든 순식간에 승패가 갈라진다 /Media/law/Read.aspx?db_cnt=76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우리의 바탕은 ‘영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올 한 해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달려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느 새 연말입니다. 본래는 12월 말에 늘 능인선원 개원기념법회를 합니다. 올해는 송년법회가 겹쳐서 오늘로 당겼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항상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순식간에 승패가 갈라집니다. 순간을 잘 넘긴 사람들, 또 순간에 영원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시험이든 죽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숨이 넘어가면 그다음엔 또 다른 세상이 열리잖아요. 순간이 바로 영원과 통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은 바로 부처님 세계이니까요. 예를 들어 시험을 치릅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시험장에 들어가니까 아는 문제인데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아, 내가 다 아는 건데…’시험장을 나오고 나서 답이 생각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른바 순간은 영원과 통합니다. 그 순간을 장악하고 계신 분이 부처님이세요. 부처님은 항상 승리와 패배의 교차점에 계십니다. 그래서 매순간 승패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깜빡하는 순간에 천당과 지옥이 갈라지고, 깜박하는 순간에 저승으로 가기도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승리와 패배의 분기점이기 때문에 설령 내가 지금 패배의 쓴잔을 마신다 해도 또 다른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옹호를 받는 그런 순간인가, 아닌가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이 영원과 통한다, 일념즉시무량겁이요 무량원겁즉일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의 본바탕은 영원입니다. 스님들도 열심히 수행하잖아요. 우리도 열심히 수행하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수행해 나아가는 길, 그 길의 정점에는 심사희락정, 중지희락정이 있습니다. 어느 상황이건 간에 ‘집중’이란 음식을 만들 때의 소금과 같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과학을 하는 사람, 예술을 하는 사람, 그 누구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거든요.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은 세계는 없습니다. 집중(concentrate)이란 말은 중심(center)에 나의 몸과 마음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정신통일이 필요하잖아요. 예술가도 집중해서 한 획 한 획 그려나갑니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운동선수도 항상 집중력을 바탕으로 합니다. 요즘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운동장으로 구름같이 모여듭니다. 그들이 왜 그럴 것 같아요? 선수들이 골인 시키는 장면을 보면 신기(神技)가 잉태되잖아요. 그들이 평상시에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그 절묘한 상황에서 골인을 시키나 말이에요. 투수가 시속 150킬로의 속도로 공을 던졌는데도 타자는 홈런을 칩니다. 그 자리에 고도의 집중, 성스러움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올림픽 경기를‘제전(祭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육근,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자신을 통제합니다. 하나로의 집중입니다. 세상의 번뇌를 다 떨쳐내고 저 언덕에 이른다는 의미로 이 법당은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집중해서 인생을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많거든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셔서 잘 아시잖아요. 억울한 사람도 많고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거나 욕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된 수행자라면 세상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돌기둥처럼 태어나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을 해 들어가면 시작은 개개인이지만 바닥은 하나, 영원입니다. 그 바닥으로 들어가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오취계라고 하는데 잡동사니들이 다 모여 산다는 겁니다. 이른바 욕계는 욕심이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 중 가장 강한 음욕을 뛰어넘어야 해요. 그 단계를 거쳐 색계로 가면 이제 남녀가 없어진다고 그러잖아요. 남녀가 없어지면 생사가 없어집니다. 이생희락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뱃속에서 태어나는 게 없어지니 화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배를 타고 나오는 것만 이겨낸다 하더라도 얼마나 고통이 덜하겠어요. 그런 데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이 초선천의 세계입니다. 이선천은 이른바 정생희락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참선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는 선정의 세계를 말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육체의 즐거움을 넘어선 선정의 세계를 잘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보는 얘기가“스님, 기도하면 정말 이루어집니까?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겨납니까? 참선하면 무슨 좋은 일이 생겨납니까?”입니다. 그럼 제가 그래요. “그냥 열심히 해 보시는 수밖에 없습니다.”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누가 연구를 잘못했다 그러면 실험을 해서라도 잘못 된 점을 밝혀내면 되는데, 기도의 세계, 선정의 세계는 몸으로 부딪쳐 들어가 스스로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속의 어떤 기쁨 같은 이희묘락, 알 수 없는 묘한 행복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선천에 가면 사념청정이라고 그래서 생각이 떨어져 버린, 마음이 청정하고 고요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도 공무변처, 식무변처 등의 놀라운 세상이 전개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정진하면서 바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을‘견성(見性)’이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스님, 그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처님 말씀을 연구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 드립니다. ‘사바세계에 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기심 반, 이타심 반의 50대 50입니다.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해서 여기에 왔다는 거예요. 60점 이상이 돼야 진급할 수 있어요. 60점 이상이면 사왕천엘 간다고 하니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이타심입니다. 사랑이잖아요. 이타심은 우리의 근본 바탕에서 나오는 마음이에요. 내가 남에게 뭘 베푼다, 그러면 이기심이 부서집니다. 부서진 그 자리가 영원이고, 사랑이고, 부처님이니까 내가 뭘 베풀면 저절로 즐거움이 오는 거예요. 왜냐? 바탕이 떠오르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제는 불교대학 64기가 졸업을 했는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끊임없이 베풀고 베풀어서 이기심이 다 녹아져 버렸다, 그러면 그 마음이 성불이다. 환희와 열락, 즐거움의 세계니까 내가 남에게 베풀 때 오는 즐거움은 바탕에서 오는 즐거움이다.’라고요. 한없는 환희와 열락이에요.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즐거움만 탐하기 때문에 애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부처님 말씀을 따르면 인간은 사막을 헤매는 유목민과도 같다고 해요. 사막을 헤매게 되면 목이 마릅니다. 갈애(渴愛), 삶이란 이른바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물을 마시면 더 물을 마시고 싶어져요.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죠.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나라를 찾아가는 데는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합니다. 나의 모든 걸 던져야 신기가 나오는 거예요. 사막을 헤매다가 ‘아, 저기 오아시스 있다!’ 그럴 때 그 기쁨은 어떠할까요? 그런 경계를 불교에서는 즐거움, ‘희’라고 합니다. 그럴 때 행복감에 가득하잖아요. 그런 다음 내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 ‘이젠 살았구나’ 하는‘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집중을 지속해 나가면 즐거움의 단계와 행복감의 단계를 넘어서 바탕으로 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수행의 세계예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가야 합니다. 한꺼번에 일조일석 되는 게 아니거든요. 듣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젖은 나무는 쉽게 타지 않아요. 계속해서 열을 가해야 해요. 운동선수들처럼 몸을 던져서 합니다. 그런 집중의 세계를 통해서 부처님의 힘이 흘러들어옵니다. 정신일도를 해야 하사불성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가세요. 남들이 칭찬하거나 비난하거나 돌기둥처럼, 태연자약하게 가야 합니다. 순간은 영원과 통해 있으니 그렇습니다. 바탕은 영원이에요. 순간순간 승패가 갈리는 건 그때까지의 성적표 때문입니다. 처칠은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장에 가서 딱 세 마디만 했대요.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세상의 번뇌에 물들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야 피안(彼岸), 저 언덕에 이르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허공을 담보로 사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현실의 세계에는 선과 악이 교차합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교차해요. 물론 본바탕에는 사랑의 마음이 깔려 있지만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 자리인 거예요.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의 생겨남이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입니다. 인생을 구름 한 조각에 비유하니까 너무 처량하지요? 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여러분이나 저나 때가 되면 가야 합니다. 단 한 분도 예외가 없이 염라대왕 앞에 가야 해요. 가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판가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앉아 부처님 말씀 들으면서도 호흡을 합니다. 사람들은 공기를 호흡하는 게 공짠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요즘 회사들은 탄소배출권을 사고팔잖아요. 공장을 크게 돌리려면 탄소배출권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몸도 지금 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니 당연히 허공을 담보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수명은 일종의 복입니다. 오복 중에 수명 복이 들어 있잖아요. 전생에 지은 복업만큼만 살아요. 우리가 전생에 지은 복업만큼만 허공의 공기를 사가지고 이 땅에 온 겁니다. 호흡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못하면 그 때는 끝인 거예요. 우리 몸은 정확하게 감가상각을 하면서 정확한 유효기간을 가집니다. 천년만년이 아니라 전생의 복업만큼만 호흡할 수 있는 것이지 공기가 절대로 공짜가 아녜요. 그래서 수행하지 않고선 안 되는 겁니다. 공덕을 짓지 않고선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기심이라는 건 내가 내려놓는 것만큼 이타심이 자리하는 거예요. 마음도량이 맑고 청정해야 그 자리에 부처님이 내려오시는 겁니다. 내가 나를 밝히면, 광명의 깃발이 돼서 그 마음에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힘이 흘러들어오는 창고가 된다는 얘기예요. 수행하는 것,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펼치는 것은 사철 푸른 나무와 같습니다. 보통 웬만한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집니다. 근데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펼치고 수행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면 수명이 그만큼 사철 푸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덕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 말씀에‘철천지원수가 전생의 네 아버지 어머니다’라고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원수라고 하잖아요. 지구상에 가장 철천지원수 가운데 이슬람민족과 유대민족이 있습니다. 두 민족은 사실 영국의 제국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친하거나 원수거나 선과 악이 교차하는 모든 것은 하나에서 온 거라고 보면 됩니다. 머리로 빠져나가는 자들은 성현의 대열에 든다고 하고 눈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고, 심장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인간으로 오고, 배로 빠져나가는 자들은 아귀로 가고, 무릎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축생으로 가고,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영혼이 빠져나갈 때 내생이 정해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마시는 공기는 전생에 지은 복업을 계속 감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시간은 금이고, 인생은 시간이고, 인생은 금이라고 그랬잖아요. 인생은 딱 주어진 시간만큼만 존재합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영화관에서 나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의 장기는 힘이 장사예요. 그런데도 나이 40을 못 살고 요절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왜 그럴까요? 전생에 지은 복업이 짧으니까 심장이 멈추는 거예요. 심장내과 전문의들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심장 표면에는 토네이도처럼 회오리바람 같은 전류가 많이 돌아다닌대요. 그러다 부딪히면 강한 전기의 충격으로 인해 심장이 멈춰 버린답니다. 심장마비가 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원인을 의사들도 잘 모르는 거예요. 토네이도 일렉트리시티(tornado electricity), 용오름이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땅에도 회오리바람이 있고 심장에도 토네이도가 있어요. 정말 기도 많이 하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바탕은 영원입니다. 우린 거기 바탕에 떠오른 구름 한 덩어리이고요. 이 구름을 번뇌 덩어리라고 치고 인생이라고 치면 그 구름 덩어리는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게 수행입니다. 공덕력, 지혜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바탕이 드러납니다. 염법, 염승, 염계, 염시, 염천, 화두일념, 일념즉시무량겁, 다 통하잖아요. 세상만사가 설화적인 내용이라도 절대로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잖아요. 그들의 애환을 듣고 살아서 알아요. 순간은 영원과 통하기 때문에 순간이 운명입니다. 지은 대로 받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해요. 뭣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참선, 명상 시키겠어요? 거긴 아이디어의 본거지 아닙니까. 거긴 집중의 세계이거든요.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집중자이고,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들이 지금 신을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구글신을 만들어내고 있다니까요. 그들은 참선이나 명상을 종교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참선이나 명상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 두뇌에 미치는 효과만 따내는 거죠. 하지만 거기에 영원이 빠져 있으니까 그들이 만드는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겁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영원이 빠져 있거든요. 기도가 빠져있어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장애는 열반의 디딤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활이 곧 수행입니다.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해야 합니다. 집중을 다해서 가야 해요.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자기 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비춰 주더라고요. 제가 본 적이 있는데, 방안에 불필요한 것 없고 정갈한 것이 꼭 절간 같더라고요. 딱 필요한 것만 있었어요. 우리는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이기심을 걷어내려 온 것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수행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통 끝에 낙이 옵니다. 고락불이 그러잖아요. 네, 수행에는 장애가 많습니다. 장애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장애는 열반의 디딤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한 식구입니다. 능인선원도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법당을 만들어 많은 후배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본성을 아는 자가 해탈을 안다고 그랬습니다. 고통이 열반으로 가는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 그자는 성불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장애를 통해 지혜로 가는 거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에 체지방이 쌓이면 쌓일수록 운동량이 많아야 합니다. 많이 움직여야 해요. 운동량이 적을수록 인슐린의 기능저하증이 생겨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참선과 명상이 있습니다. 또 절은 요가의 압축판이니까 절도 열심히 하세요. 몸에 있는 모든 물질은 전부 살아 있습니다. 대사증후군일 때 잡아야 해요. 고혈압이 되고 당뇨가 되면 그다음에는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항상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셨어요. 허망한 것에 마음을 던지면 인생이 허망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한 생각 한 생각 일으키는 것은 곧 물질입니다. 마음이 물질인 셈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지요.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을 향해 열어 보세요.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해 보세요.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문을 활짝 열어 수지신시광명당이 되는 거예요. 부처님을 향하는 곳엔 영원이 열립니다. 옛날 어르신네 말씀에 부모가 잘하면 3대까지 복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부모가 잘못하면 삼대까지 앙화가 내려가요. 이게 공갈이 아니에요. 협박이 아니에요. 우주에 대한 자애심을 키워가세요. 죽음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린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해가 다 갔으니 우린 그만큼 염라대왕 얼굴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가 크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염라대왕은 우리를 더욱더 자세히 보고 계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일은 듣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집중이 필요합니다. 집중할 때 영원의 힘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그래요. 평상시에 도의 문을 열어가야 합니다. 알을 까고 나오는 새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해탈하려는 자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해요. 그래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수행이냐고 수행이란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우리가 잠깐 머무는 곳이고, 다만 이기심을 내려놓는 곳이에요. 삶에는 스트레스가 끝이 없습니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린 영원을 가는 구도자, 수행자입니다. 수행을 벗 삼아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얘기해보세요. ‘너 올 한 해 정말 잘 버텼다. 감사하다.’우리에게 수행만큼 절실한 건 없습니다. 인간은 죄와 업보의 소산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업장소멸 하러 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득합니다. 모두 마음이 편치 못해요. 하지만 세상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여기보다 더 어려운 세계도 많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정진하는 삶이 되도록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SPAN></P>2018-02-14 오후 1:41:44끊임없이 영원성을 개발해나가도록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Media/law/Read.aspx?db_cnt=75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천인감응</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lang=EN-US>(天人感應)</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삶을 도모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하늘과 땅, 만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세상은 법 따라서 움직이는 법이 불(佛)이요, 불이 곧 법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재자가 부처님인 동시에 법인 거죠. 흔히 말하는 도(道)는 영원성, 근원성을 가집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인 실재(實在)입니다. 심원하기도 하고 항존하기도 해요. 도의 기운이 이 우주를 다스리는 겁니다. 하늘의 안팎을 모두 다스려요. 도 따라 사는 사람, 법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보답을 받고 부처님의 보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남의 눈을 속이거나 어둡게 해서 자기만 이롭기 바라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끊임없이 도 따라 산 업이라야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도업(道業)이 승화되면 성불한다고 그러잖아요. 하늘은, 그리고 땅은, 모든 만유는 우리에게 항상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늘이 누구에게는 특별한 은혜를 베풀고, 누구에게는 좀 더 해주고, 그런 거 없습니다. 공평하잖아요. 다만 문제는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 정진하는가,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관계를 비롯한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요, 부도덕한 행위, 자연 질서 파괴와 같은 일들이 미래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누구든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인감응</SPAN>(天人感應)<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라, 하늘은 인간의 노력과 정성에 감응합니다. 모든 상황에 맞게 신령스러운 기운이 함께하니 언제나 감사해야 된다는 거예요. 언제, 어떤 자리에 위치하든지 간에 항상 감사하며 사세요. 제가 그런 말씀 많이 드리죠? 개미들에게도 왕이 있고 벌들에게도 왕이 있다고. 딱 정해진 시스템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왕이 있잖아요. 대통령이 있고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예수시왕경에 보면, 사람이 땅을 등지게 되면 49재를 지냅니다. 49일 동안 제일 처음에 만나는 왕이 진광왕인데요, 우선 그가 대강을 평가합니다. 생전에 얼마나 선행을 했는가, 악행을 했는가를 가름해요. 그런 다음 송제대왕이라고 해서 그는 이 영혼을 지옥에 보낼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왕들이 차례차례 그 영혼을 심사합니다. 삼칠일이 되면 초강왕이 이 사람은 아귀도에 합당한가, 축생도에 합당한가를 철통같이 심사합니다. 사칠일의 오관대왕은 이 사람은 중한 죄를 지었는가, 경한 죄를 지었는가를 판가름 하고요. 이승에서도 죄의 경중을 따져 징역 1년, 징역 2년을 따지잖아요. 무기징역이나 심지어 사형도 있습니다. 저승은 여기의 재판하곤 게임이 달라요. 이 땅을 등지고 난 다음의 세상은 광대합니다. 이 우주가 시스템 자체인거죠. 법계라고 그랬잖아요. 광활한 우주를 주재하는, 이 땅을 등진 존재들을 심사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드디어 오칠일에는 중심에 있는 염라왕을 만납니다. 염라왕은 광음천에서 내려온 최초의 왕이에요. 이 왕은 지옥의 주신인데요, 죄를 정확하게 판단한답니다. 죄를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데는 각자가 살아온 일생이 낱낱이 찍혀 있습니다. 지금도 눈으로 다 찍잖아요. 찍은 자료들은 파동상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염라왕 앞의 업경대에 딱 서면 그 역사가 쭈르륵 흘러가면서 보여집니다. 굳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지 않더라도 죽음 앞에서 자기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가 있습니다. 임사체험이거나 잠깐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일생을 봤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 시스템이에요. 그 다음 이제 칠칠일이 되면 태산대왕이 이 사람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그게 49일째에요. 대체로 49일에 판가름이 나지만 시간이 또 걸릴 수가 있죠. 재판도 1심 2심이 있듯이 좀 더 심사숙고해야겠다, 그러면 100일도 갑니다. 제가 저승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려도‘아이, 그런 게 진짜 있을까’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이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부처님 직설이에요. 개미를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개미도 잘못을 하면 사형선고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들의 세계에도 병정개미가 있고 내무부개미, 외무부개미, 국방부개미, 법무부개미와 같은 시스템이 있습니다. 말 안 듣는 개미는 집에 못 들어오게 한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을 불태워야 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영원성을 터득해나가면 영원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안기지만, 영원을 무시하면 영원성도 문을 닫아버립니다. 무명 중생이 돼버려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이러면 영원성이 막혀 세상을 등진 다음에는 막연해집니다. 전혀 공부가 안 돼 있으니까요. 영원의 세계에 대한 지혜가 없으면 승화되기가 힘이 들어요. 차원을 넘어가는 건 이른바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는 건데 죽지 않으면 4차원을 체험할 수 없잖아요. 부처님은 도(道)를 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해주신 겁니다. 그걸 신뢰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이렇게 법회에 참석해‘영원성.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라는 긍정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시민으로서 법과 도를 모르면 진보가 불가능해요. 더 이상 진화가 될 수가 없어요. 승화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대한 감사, 땅에 대한 감사, 조상님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우린 전부 다 감사 속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우주에는 자비 아닌 건 없어요. 은혜로움 아닌 게 없고요.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세상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하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중심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말마따나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해요. 근데 중요한 건 아무나 중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당장 원자핵의 세계를 보세요. 다 통하잖아요. 핵 속엔 양자가 들어 있습니다. 양자는 태양 같은 거예요. 양, 플러스(+)전기죠. 세상살이가 고통스럽거나 아프고 쓰라려도 항상 플러스의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쩝,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내가 이해해야지’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그게 반야심경의 불구부정, 좋고 나쁜 게 없다. 부증불감, 늘고 주는 게 없다 입니다.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항상 겸손하고 마음을 내려놔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건 핵심부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이어야 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되고 싶은 사람은 자기 몸을 불태워야 해요. 많은 사람이 왜 그 사람을 따르겠어요? 그 사람을 따라감으로 인해서 내 가치가 상승된다든지 이득이 있을 때 따라가잖아요. 태양은 우리에게 빛과 열을 줍니다. 그러니까 태양이 되고자 하는 사람, 중심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을 계속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이 될 수가 없어요. 촛불은 뭐예요? 자기 몸을 불태우면서 만 중생을 밝게 만들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유명한 시죠. ‘촛불이여, 나는 너의 삶을 본받고 싶다. 네 몸을 불태우면서 만 중생을 밝히는 너. 나는 너를 본받고 싶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불태운다고 하는데 이는 번뇌를 불태우는 의미와 같아요. 탐진치 삼독번뇌를 태우는 것입니다. 이 몸뚱어리는 욕심덩어리거든요. 덩어리가 있는 이상 이기적인 마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몸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생리학자들은 운동이 보약이라 얘기합니다. 운동처방이란 말, 운동을 너무 안 하니까 그래요. 자기 몸을 자꾸만 불태워야 건강합니다. 몸을 불태우지 않으니까 내장 지방이 생기고 비만해지는 겁니다. 비만은 백병의 원인입니다. 열심히 운동하세요. 아무나 중심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나 핵심의 위치하는 서는 게 아니에요. 항상 긍정적이 돼야 되고,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고 자신을 불태워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공부한 자들만이 ‘영원’을 알게 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기를 불태우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끊임없이 ‘이게 뭐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자기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아기들을 보세요. 태어나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많은 질문을 하잖아요. “엄마, 왜 하늘이 파래?” “엄마, 왜 이거 안 해?” “엄마, 애기는 어디서 나와?” 온 세상이 궁금해져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 기간을 절대의문의 시기라고 하는데 의문 가운데 발전하잖아요. 끊임없이 알아가는 거죠. 그렇게 자라나 이른바 사춘기가 되면 여자는 여자의 성징이 나타나고 남자는 남자의 성징이 나타납니다. 이제 그들은 미래에 가정을 이루고 숙명적인 길을 가야 되니까 여러 가지 개똥철학을 운운하게 됩니다. ‘삶이 왜 이렇게 힘든가?’고민하다가 이유 없는 반항을 하기도 해요. 장자크 루소는 사춘기를 제2의 탄생기라고 했습니다. 제1의 탄생은 몸뚱어리의 태어남이고, 그 다음이 독자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제2의 탄생이고, 이제 제3의 탄생기가 있어요. 제3의 탄생기에는 성인으로서 결혼을 해 살다 보니까 모든 게 시들해집니다. 남편도 시들하고 아내도 시들해져요. 그러면 이런 얘기를 하게 돼요. “절엔 나이 들면 다니는 거야.”, “종교는 나이 들어서 믿는 거야.”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네, 나이가 들면 죽음이 안개처럼 점점 다가옵니다. 그러면 또‘인생이 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점점 죽음이 덮쳐오니까, 영혼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위대한 종교의 천재들이 발명해낸 게 화두(話頭)입니다. ‘의문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그 의문이 완전히 깨지는 날이 온다’ 그럼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거예요. 그게 화두의 진정한 의미예요. 대신 엉성하지 않게 분심을 가지고 정말 정열적으로,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존재들이 태양이 되고 빛이 되고 중심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죽음 저편으로 넘어갈 때 평상시에 죽음 대비를 열심히 했다면 ‘아, 이게 그건가?’ 금방 깨달아 버리니까 저승의 십대왕들도 ‘이 녀석은 공부를 많이 했구나’ 특별대우하게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공부한 자들만이 영원을 알게 됩니다. 항상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세요. 열심히 자기 자신을 불태워야 해요. 우리는 자신을 불태우러 이 땅에 온 존재들입니다. 먹고 뒤룩뒤룩 살찌려고 온 게 아니에요. 지방질을 불태우세요. 몸과 마음을 불태워야 합니다. 삼독번뇌를 불태워 빛이 되어야 합니다. 번뇌를 불태우면‘니르바나’열반이 되는 거죠. 그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사람과 더불어 있으면 따스움을 느끼는데요, 사랑을 느끼는데요, 지혜를 느끼는데요. 그 사람에게는 저절로 사람들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각해보세요. 제가 축원할 때 보면 ‘재판승소발원’도 올라옵니다. 하도 재판이 많으니까요, 이해상관이 많으니까요. 재판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답답하고. 그런데 저승에 가서 열 번 재판 받는 것은 더 기가 막힙니다. 그걸 아셔야 해요. 저승의 재판은 에누리가 없습니다, 저승재판은 감당불능입니다. 자기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아귀보에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축생보에 걸어 들어가게 만든대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도저히 저항을 못하는 거예요. 지옥 아귀 축생 안 가고 여기 이렇게 인도환생한 건 다행이라는 거 아녜요. 삼악도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건 부처님 직설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땅에 권력이나 드날리고 돈이나 벌려고 온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삶의 관점이 잘못돼 있어서‘돈이 최고야, 권력이 최고야’합니다만 부처님은 전생의 복업 따라 일정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물질이 주어지고요. 세 번째로 인연관계가 주어진대요. 시간과 물질과의 관계. 그러니까 이 시간과 공간과 인연을 얼마나 지혜롭게, 자비심으로 관리하다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누리려고 온 게 아니에요. 물질을 잘 관리해서 많은 사람에게 잘 베풀고 가는, 인연을 지혜로운 사랑의 마음으로 관리하는 것, 그게 인생이래요. 그 때마다 부처님 나라와 통신이 가능합니다. 그런 일련의 모습들이 부처님 나라의 기록에 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시간, 물질, 인연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과보가 무섭습니다. 철통 같이 검사받아요. 저승에서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자기가 지은 대로 가게 돼 있습니다. 제가 거듭거듭 말씀드립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도 왕개미가 있고 벌들의 세계에도 시스템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세계에도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 하늘나라의 별들도 천왕이 있어요. 그런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가면서 성불의 길을 가는 거예요. 법으로부터 이탈돼 있는 세계는 없습니다. 우주 자체가 법계예요. 그걸 아셔야 해요. 눈 가리고 아웅,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금 안타까운 현실이 북한에서는 핵폭탄을 만들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위험한 상태라고 하잖아요. 핵전쟁이 터지면 핵겨울이 오고 빙하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 만이천 년 전의 유럽의 지질은 전부 빙하기 토양입니다. 수질이 나빠요. 그래서 독일에선 보리를 키워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고, 남쪽나라에서는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어서 마시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에게 어떠한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걱정하지 마세요.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습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서 투철하게 내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 둘을 불태워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남 탓하지 마세요. 나는 누군가에게 뭘 해줄 것인가, 나는 남편에게 뭘 해줄 것인가, 나는 아내에게 뭘 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자리를 가지고 계속 나가야 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영원성을 발견하지 못하면 영원도 영원성을 거두게 됩니다. 무명이 됩니다. 영원성을 개발해나가는 게 우리의 숙명이에요.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이 물이 H</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O로 돼 있느냐, 이런 거 따집니까? 그냥 물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열심히 사는 겁니다. 부처님이 다 아세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한 사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좋은 말을 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해요. 좋은 글을 써요. 마음을 자꾸만 닦으면 닦은 말을 합니다. 닦은 생각을 하고, 닦은 행동을 하고, 닦은 글을 쓴다니까요.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유수한 기업들이 마음 닦기에 나섰어요. 명상을 하면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아이디어가 촉발되거든요. 구글에서는 창의주치제도가 있어서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담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를 온전한 길로 가게 할 것인지, 그릇된 길로 가게 할 것인지, 안타깝지만 어쨌든 우리의 내면세계는 부처님 나라를 만나려고 악을 쓰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우주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된 철통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SPAN></P>2018-01-31 오후 2:12:57한가운데로 가라 큰 길로 가라. 부처님 나라가 열린다 /Media/law/Read.aspx?db_cnt=75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하나의 마음, 일상이 무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일수록 큰 힘을 갖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과거 유라시아 전역을 호령했던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나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그 대표적 인물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페이스북이니 구글이니 하는 아이디어 역시 지구의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지로 탄생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의 마음, 일상이 무상이요 무상이 무한상이라, 하나의 마음이 온 우주의 영광을 함께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주만유는 유와 무, 착함과 선함, 남자 여자의 각각 상대성을 지녔습니다. 서양에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라고 하는데 사실 만유는 대립이 아니라 이른바 없는 것이 점점 있게 되고, 또 착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악한 사람이 회심하기도 하고요. 대립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 관계인 것입니다. 부처님도‘불행은 행복이 기대는 곳이고 행복은 불행이 엎드리는 곳이다’라고 하셨거든요. 행불행은 항상 교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로 할 수 있을까? 하나로 하는 위대한 힘은 사랑이라고 그럴까요, 자비라고 그럴까요, 지혜라고 그럴까요? 부처님은 ‘자비와 사랑의 크기만큼 번창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크기, 자비의 크기의 토대로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넷이 나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모두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아, 난 농사 안 짓는데요?” 아니에요. 직장에 다니는 것을 포함한 매일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 어디를 가든지 다 농사짓는 일이예요. 참 묘하게도 일 년의 절기(節氣), 한 해의 흐름은 불교적인 차원과 연결돼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 설이 되면 온 국민이 고향으로 모이잖아요. ‘올 한 해 잘해보자’다짐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님에 대한 예를 올립니다. 우란분재, 한가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는 우주의 본원이거든요. 우리가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길, 하나의 마음을 양성하기 위해서 그래요. 내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나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겠는가 하는 하나의 마음, 사랑과 자비 지혜인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성철스님이 하신 걸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청원유신선사의 말씀인‘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보세요. 산조차, 물조차 영원히 그 자리에 있지 않잖아요. 그런데‘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라고 역설하셨어요. 또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하셨으니 부정을 통한 긍정, 대립조차도 조화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실을 사랑으로, 긍정으로, 부정을 통한 긍정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만유는 전부 도(道)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도(正道)로 가야 해요. 사도(邪道)로 가면 일이 순조롭지가 않아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견디어 나아가세요. 비워지면 채워지게 돼 있습니다. 채워지면 또 흐르게 돼 있고요. 달도 차면 기울게 돼 있잖아요. 전부가 돌고 돕니다. 내가 뭘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면 머지않아 어디론가 흘러나갈 게 분명해요.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그릇을 비우라 하셨어요. 비우는 게 공덕을 쌓는 것이고 비우는 것이 자비고 사랑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광의 기본은 사랑이고 이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끌어당기려고만 합니다. 끌어들이는 건 반드시 나가게 돼 있거든요. 모든 이질적인 내용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인 후에야 조화와 장엄의 길로 나갈 수 있어요. 부처님 말씀대로 백 천 가지 물줄기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다, 화엄의 대해로 가게 됩니다. 하나가 된다 이거예요. 모두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그 바탕은 사랑의 힘입니다. 대립이 아니라 조화를 통해서 이 우주의 도리를 터득해가야 합니다. 조화에 의해서 통일되고 보존이 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삶에는 항상 유와 무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신심명에 나오는 대로 ‘한쪽으로 쏠리면 너희가 어떻게 도를 알겠느냐’이겁니다. 도는 하나로 묶는 힘입니다. 우리가 도를 닦아놓으면 모두 그 길을 따라가잖아요. 정도로 가야합니다. 가만히 보세요. 기록에 보니까 IMF 때 우리나라의 30대 재벌 가운데 반 이상이 없어졌다는 거 아녜요. 가끔 가다가 변란이 벌어지면 사라져 버린다니까요. 대비를 철저히 하고 살아온 사람들만이 그 난관을 타파하는 거구요. 개인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고, 이 지구문명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파동이 치는 세계니까요. 삼재가 들었다 하더라도 준비가 잘된 사람은 쉽게 넘어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융복합의 시대라고 그러잖아요.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이게 돼 있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려합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서 갈고 닦아서 고요해진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삶의 근원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그러면 불행이 엎드려 있는 곳이고 불행하다면 행복이 기대는 곳입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불행은 없습니다. 사랑과 감사는 하나의 마음입니다. 아내의 사랑에 대한 감사, 남편의 사랑에 대한 감사, 하늘에 대한 감사, 조상님에 대한 감사, 신령스러운 존재들에 대한 감사일뿐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부른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이 사랑을 부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정반합(正反合)</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상은 하나로 회귀하려는 순환적 운동을 기초로 합니다. 대립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대립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조화하는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변증법적인 통일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것은 원래 공간사상, 이른바 용수보살의 중관사상에 의해 나온 건데, 헤겔이 공부해서 정반합의 원리로 도출해낸 겁니다. 마음은 불멸이죠. 영원을 추구합니다. 도는 불멸, 하나의 길, 영원의 길을 닦는 거예요. 행복하고 완전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항상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만 해요. 한 해 농사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피와 땀과 눈물을 흘러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도가 깊어지는 거예요. 피가 튀고 땀이 튀고 눈물이 튀는 최고의 교육현장, 전쟁터라는 거예요. 전쟁은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만드는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게 전쟁을 하지 않으면 하나로 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가 막힌 게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을 어떻게 교육시켰어요? 항상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어요. 결국 자기가 아들에게 당하지만 말이죠. 사랑으로 모든 걸 포용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면 죽이고 살리고 난리가 납니다. 이 역시 정반합의 원리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근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부정이에요, 대립이고. 반대적인 일이죠. 정(正)과 반(反)을 슬기롭게, 조화롭게 넘어가야 합(合)이 되는 거예요. 안 되면, 터지면 터지는 대로 또 하나가 돼야 하고요.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하나가 되는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삶은 전쟁입니다. 한 해를 사는 것도 전쟁이고요. 다만 참고 견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은 무상하게 흘러가게 돼있습니다. 어느 사물도 고정적이지 않아요. 중심을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도의 근본적인 작용입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의 고마움을 누리고 살지만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합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로 만나야 되는데, 그 방법론에 있어서 사랑과 자비, 지혜로 가야 하는데, 사랑에 반하고 자비에 반하고 지혜에 반하니 극단적인 측면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아야 하고 감사를 담아야 합니다. 말 한 마디에 감사를 담고 사랑을 담을 때 복을 부릅니다. 생각 하나에도 사랑을 담고 부처님을 담고 자비심을 담아 보세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페이스북 사용자 2만 9천여 명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페이스북안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참 묘한 게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은 심장병에 걸릴 우려가 많습니다. 이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하는 결과를 도출해낸 거예요. 2만 9천 명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단어만으로도 그들의 삶과 병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에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를 관찰해보면 좀 격하잖아요.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부드럽게 해보세요. 그래야 병이 치료됩니다. 약 먹고 의사선생님한테 의존하기 전에 부드러운 말, 사랑과 감사의 생각, 사랑과 감사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선과 악의 계측</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영국의 작가 토마스 모어가 쓴 글에 보면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세 시간 일하고 두 시간 논대요. 오후에 세 시간 일하고요. 모어는 책에서 인간이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하는 것을 이상적인 노동시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OECD국 가운데에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중의 하나로 꼽혀요. 좀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야 이상적인 국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 일을 해도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거든요. 장시간 일을 해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일도 생각을 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정신적으론 더 풍요로워져요. 그래야 뭔가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왕권을 제한하고 기술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대해 사회적 차별을 녹아낸 때문이에요. 민주주의를 내세워 사회가 자유로워 지다보니까 산업혁명을 꽃피울 수밖에요. 여유 시간이 많아질수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런 기술자들을 우대했으니 참다운 민주주의가 산업혁명을 부른 거예요.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초가 된 결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우리나라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서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긴 합니다. 이에 따른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타격이 클지 모르겠지만 과도기를 거쳐 위기를 극복해가면 더 큰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의 모든 기업이 어떤 변화의 흐름을 가져올 텐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류역사는 항상 대변혁을 거치면서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이 서로를 보듬고 하나가 되는 마음을 지켜가야 해요. 개개인마다 어려움이 없도록 보살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도 절대로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일본의 다카타란 기업을 아세요? 세계적으로 최고의 자동차 에어백 만드는 회사였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불량품이 나오는 바람에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작은 부품 한 개의 결함으로 기업의 생사를 가르잖아요. 하나가 전체예요, 전체가 하나고요. 큰마음, 대도를 가는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것이죠. 하나가 둘이 되고 무한이 되는 거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몸을 등지면 당장 마음의 나라로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이란 계측기를 가지고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착한가를 계량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지장경에서 ‘부처님 나라에는 너희의 진실과 호의, 선함을 계량하는 계측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나라에서는 마음을 계측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의 물건을 만들 때마다 껍데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정성스러운 마음이 들어가 있는가, 이걸 계측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나라에서는 마음을 계량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한가, 악한가,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가, 거짓인가를 계량한다는 거예요. 제품을 만들 때 이른바 껍데기와 더불어 거기에 알맹이가 같이 가야지 껍데기, 허우대는 멀끔한데 알맹이가 속빈 강정이라면 곤란합니다. 당장 내가 상대방에게 만 원을 줘요. 또 다른 상대에겐 십만 원을 줍니다. 그럼 만 원을 주는 마음하고 십만 원을 주는 마음하고 같아요, 달라요? 전혀 다르죠. 근데 또 만 원을 줄 때 ‘내가 저 친구한테 만 원을 주게 되면 뭔가 반대급부가 있겠지’ 이렇게 따지고 주는 수가 있고, 순수하게 주는 수가 있어요. 십만 원을 줄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걸 계측하지 못한다면 헛수고인 셈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도(道)는 마음 안에 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가다 자동차 부품 하나 때문에 몇 십만 대의 자동차를 리콜 하는 거 보셨죠? 손해가 얼마예요. 지난번에는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잘못돼서 손해는 물론 이미지 타격이 엄청 컸잖아요. 껍데기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 안에 얼마나 사랑과 자비심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도,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말에 사랑이 담기는 것과 같이요. 생각에 사랑이 담기고 감사가 담겨야 합니다. 행동에도 마찬가지예요. 몸을 계측한다는 건 결국 마음을 계측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몸의 세계를 계측하지만, 4차원에서는 마음의 계측기도 있습니다. 3차원의 세계에선 이런 마음의 아름다움을 계측할 수가 없어요. 조상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부처님 전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세요. 우리가 잘한 것도 있지만 부처님 덕분이 아니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또 부처님의 음덕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합니다.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빼놓고서는 삶을 번창시킬 수 있을 만한 방법이 달리 없어요. 정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화엄경에 보면 ‘한 나라의 왕이 되려면 그 나라 모든 국민이 과거생에 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다’라고 나와요. 한 나라 왕이 되려면 그 나라 모든 국민이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래요. 그만큼 공덕을 많이 지어야 한 나라의 왕이 된다는 것이죠. 당장 보세요, 내가 상대방한테 짜장면 한 그릇 사요. 그럼 내가 누구와 다툴 때 짜장면을 얻어먹은 그 친구는 내 편을 들겠어요, 다른 친구의 편을 들겠어요? 나의 짜장면이 그 친구 뱃속에 가 있잖아요. 당연히 내 편을 듭니다. 사랑의 크기만큼 커지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걸 탓할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자비와 사랑이 결핍돼 있음을 탓해야 해요. 절대로 조상 탓할 거 없고 누구도 탓할 거 없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의 결핍과 자비의 결핍. 사랑과 자비와 지혜는 연결돼 있는 거잖아요. 하나입니다. 온 인류를 하나로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살다 보면 어디든지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럴 땐‘아, 내게 사랑의 결핍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절대로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높은 것은 낮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높음은 낮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합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거예요.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깁니다. 도(道)예요.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인생은 잘될 것이란 보장도 없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지구 자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기술이 전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요. 이제는 하나가 되는 이데아를 가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초연결, 초융합의 시대로 가니까 마음도 같이 발달해가야 해요. 그런 모두를 장악한 존재가 유대인들이라는 것이 기가 막히잖아요. 그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탈무드, 토라 공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미국의 10대 부자 가운데 일곱 명이 유대인입니다. 빌 게이츠에서부터, 저커버그까지 그들은 돈을 벌어서 ‘내 재산 전부를 인류를 위해서 내놓겠다’라는 거대한 마음을 내잖아요. 우린 너무 베풀 줄 몰라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압니다. 3차원 세계에는 몸의 계측기가 있지만 부처님 나라에는 마음의 계측기가 있다니까요. 말 하나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계량이 가능합니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마세요. 복 받을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항상 기도합시다, 부처님 말씀 공부합시다, 그러잖아요. 우리는 정말 각성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디서나 마음을 하나로 아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대우주의 도는 하나의 마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결국 수행을 통해서 극복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를 닦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법이 밝아집니다. 화려함의 배후에는 항상 수행이 있어요. 그 길로 가야 부처님 나라와 통합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불자가 되시기 당부 드립니다. </SPAN></P>2018-01-24 오후 3:03:57우리의 안팎은 항상 경쟁중이고 항상성은 위협하는 세력에 노출되어 있다/Media/law/Read.aspx?db_cnt=75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건강이란 고통이 항상 우리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아는 것</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다양한 갈등요인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앞으로의 삶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근심을 합니다. 이러한 작금의 시대를 변화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제행(諸行)이 무상(無想)이라, 계속 변해간다는 거잖아요. 변해간다는 건 안정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면 많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됩니다. 과학 혁명의 사상가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의 전환기다’라고 현대 사회를 얘기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만큼 생활은 더욱 쉽고 편해졌지만 행복지수는 그렇게 높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연계에서 상황에 맞게 가장 잘 적응해 나가는 종은 인간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 불편을 승화시키는 법을 터득합니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모든 상황이 다 빠르게 변해가고 있으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위대한 선각자들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가 겪는 고통을 제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도 스스로“나는 생로병사와 각양각색의 고통으로부터 비명을 울리는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러 이 땅에 왔다.” 그러셨어요.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급속히 변해가다 보니까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릴 틈이 없어요. 요즘 뇌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 속에 있는 변연계, 대뇌피질, 편도체 등은 뭔가 나에게 불편을 끼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본능에 의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지난번 어떤 글에 보니까 인간은 어리석어서 결혼을 하고, 성질이 급해서 이혼을 하고 그런대요. 그 문제를 로보트한테 물어봤다는 거 아녜요, 어떡하면 좋으냐고. 그랬더니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말고 좀 참아라, 참아. 참는 게 더 낫지 않냐’라고 로보트가 대답을 했대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편안의 역설(Cosy Paradox)’이란 말이 있는데요,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다 보니까 무조건 편안한 것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선 곤란합니다. 끊임없이 변해 가는데, 어떻게든지 변화에 대처해야 되거든요. 우리는 그런 능력을 공부하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편안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에도 외부의 병원균이 끊임없이 침입하는 거예요.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면역력(immune power)의 취약성입니다. 왜 인간의 면역력이 취약한가, 학자들이 조사해 보니까 불편을 참질 못해서 그런대요. 우리는 편안한 것만을 좋아하잖아요. 편안함을 조장하는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 가득 차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이 몸의 회로가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역동적인 삶의 자세로 나에게 닥쳐온 어떤 상황에 빨리빨리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아, 나 싫어’ 그러면 우리 몸에서는 기존의 세포와 새로운 세포가 충돌을 하게 됩니다. ‘자가면역질환’이라고 그래서 내부에서도 싸워요. 비만이나 우울증, 공황장애, 수면장애와 같은 병이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될 게 건강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은 항상 우리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아는 거예요. 어떤 불편함이나 고통에 직면해서 내 스스로가 평안과 안전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불편을 감내할 수 있고, 불편에 대해서 좀 더 편안해져야 해요. 어차피 세상은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 하더라도 인구는 늘어나는 법이고, 경쟁은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삶에서 불편이 다가와도 ‘아이, 나 귀찮아’ ‘아, 나 싫어’하지 말고 오는 대로 받는 수밖에요. 그걸 부정할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불편함 속에서도 편안함을 찾는 힘 기르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난번에도 말씀드렸죠. 암세포 연구팀이 암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암세포를 밖으로 끌어냈어요. 정상세포와 나란히 두고 비교를 하는 거죠. 학자들이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해 있는 거예요. 학자들이 면밀히 조사를 해 보니 모든 물질은 그 자체로서 파동을 발사한다는 겁니다. 파동, 물질파, 암 정보를 담은 기(氣)가 유리막 안의 배양기에 있으면서도 그걸 투과해 정상세포로 들어가는 거죠. 우리도 작게는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직장을,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주변에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라면 부처님 말씀대로 사회의 역적 같은 존재나 다름없게 되잖아요. 어떤 불편함이 다가와도 그 불편함 가운데서 스스로 평안과 안녕을 도모할 수 있는 상태를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이 우주에 고통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게 있어요? 없습니다. 역경을 거치지 않고 강해진 사람이 누가 있냔 말이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은 옛날보다 생활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근데 그들의 마음은 불편하고 질병은 점점 폭증하잖아요. 질병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정신교육이 제대로 안 돼서 자기가 해야 할 일조차 아내에게 맡기고 남편에게 맡기고, 직원들한테 맡기고 자신은 편안하기만을 바래요. 건강이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어떤 불편함이나 몸의 고통을 직면해도 스스로 평안과 안녕을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거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겁니다. 적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취약한 자기 자신에게 있어요. 강하지 못하니까 자꾸만 쓰러지는 거예요. 자기가 자신의 적인 셈입니다. 불편에 대해서도 좀 더 편안해지세요. 우리의 내부나 외부는 항상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어디 전쟁 없는 곳 있습니까? 갈등이 없는 곳 있어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해소해나가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연계에서는 변이(變異)를 안 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적자생존이에요. 자꾸 누구한테 위탁하고, 편안하려고만 하면 그건 죽음입니다. 경쟁하면서 완벽하게 되려는 차원보다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을 기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가 없습니다. 삶은 내부도 전쟁이요, 외부도 전쟁이에요. 스스로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고, 불편함 가운데 편안해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아내 탓하고 남편 탓하고 직원 탓하지 마세요. 앞으로 펼쳐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더 치열할 것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 왜 참선이나 명상을 주도하겠어요? 그들도 종교가 있는데 왜 그걸 받아들이겠어요? 눈귀코혀몸으로 색성향미촉법을 인연하면 그건 머리도 아프고 너무 복잡해지잖아요. 그럼 어떻게 돼요? 하나의 몸에서 나온 에너지가 갈래갈래 찢겨져 분열됩니다.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져요. 그런데 부처님 말씀대로 하나는 무상이라, 하나는 모양이 없고 영원이란 말이에요. 하나로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보세요. 그럼 무한, 영원성이 강화됩니다. 우선, 세포들의 수명이 안정되거든요.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고요. 참선이나 기도를 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입니다. 갈라져 있는 거보다 하나가 되니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우리는 갈라져 있으니까 불편한 거예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해보세요. 마음의 안정이 옵니다. 유교, 불교, 도교를 망라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절대로 갈라놓지 말라는 게 기본철칙이에요. 어르신네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노는 입에 염불하라고 하잖아요. 이제 융합, 하나로 가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미래로 갈수록 수행의 중요성은 강화될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의 두뇌 안에는 동물과 인간의 성질이 공존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동물인데 우리의 미래는 부처님이잖아요. 부처님의 길을 가게 하는 변연계와 같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성적 세계인 피질의 세계가 취약해지면 우리는 동물로 전락한다니까요. 불편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힘을 꾸준히 길러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몸의 DNA, RNA도 변해가듯이 후성유전자는 계속 변해갑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종을 치면 개는 곧바로 반응하잖아요. 음식을 주지 않아도 종만 치면 개의 입에서는 침이 나옵니다. 우리 신체의 무릎을 톡 치면 발이 탁 튀어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조건반사는 동물적인 시스템이거든요. 요즘 미국에서 실험한 건데요, 맥도날드의 M자라거나 KFC의 마크만 봐도 소비자의 입에서는 침이 저절로 나온다고 해요. 그 회사를 떠올리고 그 회사가 만드는 음식을 먹고 싶은 거예요. 패스트푸드사의 심볼, M이나 KFC만 봐도 충동적으로 과식을 촉발하게 된다는 겁니다. 로고가 그만큼 무서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죠. 또 애플사의 로고와 IBM 로고를 놓고 보면 참 묘하게도 사람들은 두 회사의 로고 중 애플사의 로고를 더 창조적이라고 느낀다고 해요. 본능대로 보는 겁니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당기게 하는 음악을 틀어준다거나 웃는 얼굴이 그 사람의 대표적인 심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아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감사가 감사를 부른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은 어차피 36도 5부의 뜨끈뜨끈한 난로입니다. 그런 뜨끈뜨끈한 난로에 흥분을 잘하고 마음 가운데 갈등이 일어나면 화(火)가 겹쳐 염증(炎)이 생깁니다. 염증은 병증이에요.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그랬는지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즉각적인 만족에 도취돼있어요. 그래서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몸과 마음에 염증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 아로마테라피라고 해서 아로마나 라벤더 향으로 마사지를 하면 몸의 피로도 풀리고 건강해진다고 하잖아요. 두통도 낫고 말이죠. 혈액순환도 좋아지고요. 왜 우리가 예불을 올릴 때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을 먼저 하는지를 꼭 아셔야 합니다. 아니, 라벤다향이나 허브향만 가지고도 몸이 건강해진다는데, 회복된다는데 부처님 계를 잘 지키면 내 몸과 마음 가운데 향기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당연히 나오죠. 제가 왜 참선하라고, 기도하라고 그러겠어요? 그것이 나의 마음을 하나로 몰아가니까, 하나로 몰아가서 상대성이 떨어져버리니까 영원성이 강화되고 수명장수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참선과 기도가 법약인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구각(舊殼)을 탈피하고 끊임없이 해탈해 나아가야 합니다. 자꾸만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창의적인, 창조적인 삶을 살면 부처님 지견이 열리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요. 끊임없이 수행해보세요. 내 몸과 마음 가운데서 나온 향기가 아내에게, 남편에게, 직원들에게 선물이 됩니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각박해질 게 틀림없습니다. 지난번 신문에 나왔잖아요. 페이스북의 최고 경영자 저커버그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근데 일론 머스크는‘인류는 인공지능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 둘이 싸워요.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점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불교의 사명은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에요. 부처님도 절(寺)은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고 낙을 얻게 하는 전당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미국에서는 디지털을 ‘악마’라고 부른다 해요. 디지털(Digital)이 인간을 점점 악마(devil)화 시킨다는 거예요. 컴퓨터 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잖아요. 인터넷으로 인해 섹스에 중독되고 게임에 중독되고 약물에 중독이 됩니다. 심리학에도 나오지만 중독이라는 건 약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더욱더 강한 자극을 요구해요.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날 수 없어요. 자극의 체험이 두뇌를 변화시켜놓습니다. 가정이나 사회 어디서나 매사 불편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보통 문제가 아녜요. 먼 곳을 보는 시력이 점점 약해지는 거죠. 눈앞의 것 때문에 완전히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많아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없어진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고고인류학에 보면 인간이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해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은 직립보행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두발로 서서 걷게 된 다음부터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거든요. 걷는 것이 몸과 마음에 좋다는 얘길 많이 하잖아요. 칸트는 항상 자기가 살던 마을 숲속을 걸었다고 해요. 니체도 많이 걸으면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걷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관통되는 게 우리의 몸이에요. 하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인간의 최상위급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사세요?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내가 뭐 맛있는 걸 먹어요. 꼭꼭 씹어 삼킨 다음엔 나의 의지하고 상관없이 위에서는 소화액을 내서 소화를 시켜주고 장에서는 양분의 흡수를 도와줍니다. 하다못해 배라도 좀 쓰다듬어주면서 ‘야, 오늘 고생했다. 힘들었지?’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 폭음, 폭식을 하면서 어떻게 건강을 담보할 수 있겠어요?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며 사세요. 공기에 대한 감사, 태양에 대한 감사, 땅에 대한 감사… 모두 다 감사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부르는 거예요. 아내에 대한 감사, 남편에 대한 감사, 부모에 대한 감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감각기관을 통해 홍수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를 차단시켜야 해요. 그러면 당장 몸과 마음에 쓰일 에너지가 비축됩니다. 내 몸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면 그만큼 수명장수하게 되는 거예요. 다중작업(Multitasking)을 하면 몸은 오래 견딜 수가 없으니 너무 완벽하게 되려고 애쓰지 마세요. 천천히 꾸준하게 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고통은 스승이요, 불편은 아버지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미국에서 나온 아주 비싼 기계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회사의 CEO가 그 비싼 기계를 사왔다는 거예요. 이분은 나름대로의 지견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 기계에다가 상품을 불량내지 않고 잘 돌아가니‘감사하다’라는 스티커를 써서 붙였답니다. 그랬더니 정말 제품의 불량률이 10프로, 20프로 줄더랍니다. 기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붙여놓으니 그 기계를 가동하는 기술자도 기계를 소중하게 다룰 거 아녜요. 기계도 사람 마음의 연장선입니다. 만상은 다 살아있는 거니까요. 우리의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명심할 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조금도 참지 못하고 신경질 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편도 스승이에요. 불편 앞에서 편안해질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성질내면 당연히 불량품이 나와요. 삶의 불편을 수용하고 좀 더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 고장이 덜합니다. 우리는 불편 앞에서, 고통 앞에서 편안해져야만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개방적인 자세로 삶의 불편을 좀 더 끌어안으라 하셨습니다. 가정이나 사회의 분위기가 그래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참을성을 키우려면 수행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참을성이 없으니까 이혼하는 거잖아요. 좀 참아보세요. 이혼한다고 다가 아닙니다. 어딜 가면 뭐 편안한 데 있습니까. 몸과 마음을 던져 수행하세요. 그래야 업장이 소멸됩니다. 업은 상대적일 때 생기는 거예요. 내 몸과 마음을 일관되게 정립해서 기도하고 참선하는 겁니다. 몸도 기계예요.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백팔배를 해보세요. 백팔배 못하면 오십배 해도 좋습니다. 삼배만 해도 좋아요. 마음 가운데 부처님 모시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몸에서는 삼천만 종 이상의 호르몬이 나온다고 합니다. 호르몬은 마음과 몸의 교량역할을 하는 신호예요.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사랑의 물질이 분비가 됩니다. 마음이 물질이니까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물질을 만드는 거예요. 수행을 하면 그만큼 좋은 물질을 만들어내니까 나쁜 물질은 녹아지는 거지요.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를 감당해낼 수 있는 역할을 해줍니다. 회복탄력성을 촉진하고요. 혼자이기 때문에, 외롭단 생각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옥시토신이 생겨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저녁에 만나 한잔하자는 것도 옥시토신의 분비를 도모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사섭법 아시죠? ‘남에게 베풀어라, 사랑의 말을 하라, 남을 이롭게 하는 하라, 내 일 남의 일이 따로 없이 하라’는 사섭법만 실천하면 됩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이면 포용하지 못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어렵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마음에 혁명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위대한 비결은 불편 앞에서 평안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마세요. 고통은 스승이에요, 불편은 아버지구요. 그래야 빠르게 변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불편함을 스승 삼고, 그런 마음을 가족이나 주변사람들한테 퍼트려나갈 때 사회가, 나라가 안정되게 발전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SPAN></P>2018-01-10 오후 3:29:28가야할 바를 모를 때는‘부처님 나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Media/law/Read.aspx?db_cnt=75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부국강병(富國强兵)</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서는 인연법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자비의 참뜻을 안다 그랬거든요. 우리는 그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나보다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법당 한 자리에서 만나고, 부부가 만나고 또 한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치중한 인연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무화장세계해’의 무한한 별 나라 가운데 지구라고 하는 조그마한 별에 태어난 것은 화엄경의 예지에 따르면 불가사의인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죠. 불수행찬에 보면 ‘어느 한 별, 어느 나라에,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것, 또 어느 부모를 만난다는 거, 특히 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보통 힘든 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수도 없이 얘기하지만 3억대 1, 3억 마리 중 하나를 선택해 사람으로 왔다고 그러잖아요. 모두 다 불가사의예요. 우리는 엄정한 인생의 계획에 따라 각자의 부모를 선택하고 그들의 몸속에서 36도5부의 더위를 280일간 견디고 나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 요즘 신문을 보면 매일같이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등장합니다. 매일 매일 가슴을 졸이고 살아요. 그럴 일이야 절대로 없겠습니다만 대통령조차 ‘우리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할 능력이 없는 게 너무나 애처롭고 안타깝다’했으니 참 걱정스러운 건 맞습니다. 작지만 나라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튼튼한 군사력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경제력이고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 하잖아요. 요즘 경제가 나쁘다 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합니다. 게다가 젊은 친구들의 실업률은 높고 인구절벽이라는 말도 합니다. 이른바 상징권력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어떤 힘이나 이데올로기가 부족해요. 동로마 제국은 상징권력에 의해 천년을 이어갔잖아요. 삼국 시대의 신라도 보기 드물게 오랜 역사를 간직해 내려왔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힘은 있으되 상징권력이 미약했던 알렉산더나 징기츠칸 같은 이들은 오래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어요. 이슬람국가들을 보세요.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국민을 하나로 할 수 있는 투철한 상징권력을 갖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 국민은 현재 너무 많이 갈라져 있어요. 토인비의 잣대로 하면 굳건한 단결력이 취약하다는 거죠. 우선 당장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게 왜 그래요. 결국은 외교를 잘한 증거입니다. 나당연합군을 만들어 삼국을 통일하잖아요. 외교가 생명이거든요. 지금도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작용합니다. 조그만 나라일수록 특히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어쨌든 어렵지만 세계 10위권이라 하는데 북한에서는 핵을 만들어서 공격을 해대니 우리로선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게 기정사실입니다. 나라 안도 그렇고 나라밖도 그렇고 기도가 많이 모자라고 공덕이 많이 모자라는 백성이라 그런 것 같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계 인구 70억 가운데 최상위급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연봉이 54만 달러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극빈한 12억 정도의 인구는 하루 1.5달러로 산다잖아요. 너무 차이가 많아요. 근본적으로 인류자체가 이기심이 강한 탓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울 줄 모르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해요. 유대계 대 부호 로스차일드 가문이 가지고 있는 돈이 지구 전체 재산의 3분의 1, 50경 달러라고 합니다. 엊그젠가 어느 보도에 의하면 삼성, 현대, LG의 세 회사가 우리나라 전체에 국고의 51%를 가지고 있데요. 물론 재벌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이것도 문제가 됩니다. 돈이 한 곳으로만 쏠리잖아요. 민주주의 역사랄까 이런 제도가 오래되지 않다 보니 좀 더 많은 생각을 해 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야할 바를 모를 때는 정말로 부처님께 맡기세요. ‘부처님 나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배달겨레 앞날을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주변사람들이 다 불행한데 나 혼자 잘살면 내가 편안하겠습니까?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타인을 위해 나를 던지고 거기서 나를 재발견하는 삶</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헌신이나 희생은 타인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빌게이츠나 워런버핏 같은 자들은 왜 ‘내가 번 재산을 모두 인류를 위해서 환원하겠다’고 했겠어요. 노블레스 오블리쥬라고 그러잖아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가 타인을 위해서 뭔가 내던지고 거기서 나를 재발견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나의 뜻이 상대방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아름다움을 일깨워서 그들의 삶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그것이 진정한 보살의 삶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나를 던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부의 편중이 너무 심합니다. 나라가 튼튼하려면 결속이 우선 돼야 하고요. 우리는 지금까지 주변 강대국들로 부터 침략당하고 굴종과 굴욕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어내면서도 오천년의 역사를 면면이 이어왔습니다. 고유한 우리말이 있고 우리 문자가 있고, 우리 문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큰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훌륭한 리더가 있어야 해요. 미국이란 나라를 보세요. 그들이 큰 나라가 될 때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탁월한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리더들의 정신력은 강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인연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고 있지만 삶을 도모하면서 꼭 명심해야 될 것은 모두가 인연 따라 만난다는 거예요.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잣대는 그 나라 국민이 약자들을 얼마나 환대 하는가, 박대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힘 있는 대장이라 해도 아랫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해요. 일예로 대표적인 것이 프렌차이즈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의 횡포입니다. 주인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상대적으로 망한 소시민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나라를 문명국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에요. 특히 돈을 벌려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심각하다고 해요. 능인선원에도 네팔에서 온 분이 많잖아요. 제가 네팔의 용수사를 통해 그 소식을 종종 들어요. 그들은 우리나라의 가공 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이나 손가락이 잘려도 불법 채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제 때 치료를 할 수가 없대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동두천에는 그런 네팔 사람들이 몇 만 명이나 와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어와 있는 그들을 데려다 제대로 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싼 임금으로 일을 시키는 겁니다. 그들을 채용하고 있는 기업주들의 야비한 마음이 너무 안타까워요. 업주는 불법 체류자라는 입장을 악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야만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잘 보호해줘야 합니다.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사는 게 현실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리고 또 하나 기가 막힌 게 부부가 아이를 낳잖아요. 그리고 이혼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를 보육원 같은 아동 보호시설에 맡깁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공부를 잘 못해요. 성적이 거의 바닥이죠. 그런데 고아원에 있다가도 일반 평범한 가정으로 입양을 간 아이들은 제대로 된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되니까 뇌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고 합니다. 이른바 회백질 부분이 점점 넓어지면서 주의력과 언어능력이 활성화된대요. 사람의 피부가 몸 전체의 12%인데 그만큼 많이 안아주는 스킨쉽을 받은 아이들의 뇌가 활성화된다는 명백한 결과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빈곤은 되 물림되는 게 틀림없습니다. 참 보통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만도 빈곤에 방치된 아이들이 100만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빈곤 아동을 포함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까지 모두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미래의 사회적 효용성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고 돌봐야 해요. 대단한 어떤 투자라고요. 심지어 부부의 성관계보다 포옹이 더 만족스러운 건강효과를 가져온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어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교감이라는 거예요. 부부가 서로를 많이 안아주셔야 해요. 그래야 사랑이 통하고 세포가 통하고 기가 통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교감을 자주 나누는 아이들의 두뇌능력도 향상됩니다. 아이들을 다정히 안아주세요. 피부를 통해서 사랑이 그들에게 흘러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문명과 야만의 차이</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지혜와 자비는 하나입니다. 무량한 별의 세계 가운데 지구에 태어나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부부가 만나는 것도 불가사의고 아들, 딸 만나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자가 자비의 참뜻을 알고 지혜의 참뜻을 알게 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항상 부르짖은 게 민족개조론입니다. 우리 국민은 결속력 자체가 너무 약해요. 뒤에 가서 남을 헐뜯는 일을 즐깁니다. 하나로 잘 뭉치지 못해요. 흔히 갑질이라는 거 보셨잖아요. 야만적 행위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은 얼마나 정말로 상대방을 약한 자를 환대하는가 아니면 학대하는가?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하는가, 얼마나 상대방을 학대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거 너무 믿지 마세요. 저도 근무를 해봐서 아는데 정말 보도에 나오는 것들이 진실이 아닌 게 너무나 많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배달민족이 부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언제나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부처로 보는 자가 부처라 하셨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강아지 눈에는 뭐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입니다. 내가 얼마나 주변사람들을 부처의 눈으로 바라보는지 살펴보세요. 우리 주변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범죄인지도 모르고 범죄를 저지른다니까요. 우리나라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우리가 아무런 할 일이 없고, 손 쓸 일 없고, 능력이 없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고요. 우리는 짧은 시간에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생각하면서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해 나아가려면 약한 자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다문화 가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한 빈곤계층을 보살펴주어야 해요. 지금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니까 비명을 울리는 계층도 많겠죠. 그러나 우리가 좀 더 많은 사람을 내 가슴에 안아 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때 공덕의 텃밭으로 작용함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1-03 오후 4:08:16본래가 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로 다 통해 있습니다 /Media/law/Read.aspx?db_cnt=75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우주를 커버하는 마음의 스마트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일명 초연결성(Super connectivity)이라 표현하는데 철저히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소셜미디어입니다. 인터넷이 대세니까요. 이렇듯 과학이 발달해가다 보면 결국 하나로 묶이게 돼 있습니다. 제망중중 제망찰해, 이 우주가 그물이라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터넷 사이트를 검색을 할 때 맨 처음 치게 되는 주소가 www(world wide web)입니다. 세계가 전부 연결돼 있어요. 본래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로 통하는 거죠. 이 우주에 고립된 섬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예요. 스마트폰을 보세요. 전파를 이용하는 거잖아요. 전자의 흐름입니다. 현대는 양자를 이용한 컴퓨터가 전 세계를 엄청난 속도로 묶어놓고 그 안에 정보를 담아 놓았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과학을 가지고도 양자컴퓨터를 만드는데요, 양자 속에 정보를 저장하는 바에야 광자는 어떻고 그 이하의 단위는 또 어떻겠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기서 꼭 생각할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는 부처님 나라와 하나 되는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 이상한 소리 하시네.”합니다만 광자,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돈다는 거 아닙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해봐요. 그 순간 영상이 떠오르고 내 마음은 바로 그 사람에게로 갑니다. 몇 십만 킬로가 문제가 아니에요. “스님,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아니에요. 우리가 멍 때린다고 그러잖아요. 그 사람이 다른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누가 내 생각 하나봐’하면서 어슬렁어슬렁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간다니까요. 그래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는구먼’하잖아요. 내가 누군가의 영상을 떠올리는 순간 그 사람에게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정보를 동일한 속도로 보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누가 내 말하고 있나봐. 귀가 간지럽네’이럽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데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우주를 커버하는 마음의 스마트폰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텔레파시라고 얘기합니다마는 알파고를 포함한 모든 문명의 이기는 두뇌에서 나온 게 분명해요. 부처님은 그걸 완벽히 꿰뚫어서 깨달으셨으니까 부처님 되시고 성불하신 거예요. 백호상광으로 우주를 완전히 꿰뚫어보신 거죠. 우리도 수행을 끊임없이 거듭해나가면 천이통이니 천안통이니 숙명통이니, 우주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육신통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인 세계, 부처님과 통하는 바에야 누구와 통하지 않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뿐이 아니에요. 부처님과 통할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영혼들, 우주법계에 있는 그 누구와 다 통해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이 한 말들은 대부분 과학에 바탕을 둔 내용들입니다. 마음 가운데 우주를 하나로 묶는 위대한 스마트폰, 마음의 인터넷이 있다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미지 또는 심상, 그럽니다. 모두 무량한 세계와 관통하는 정보의 양식 같은 것들이에요. 마음이 그냥 개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우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부처님 나라의 도움, 신장님들의 도움, 이건 말로 해야 잔소리예요. 제가 법회 할 때마다 꿈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 뵌 분 손들어보세요’합니다. 대충 5분의 3, 4 정도는 듭니다. 그게 왜 가능해요? 그분들과 마음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돼 있어서 그래요. 눈을 뜨고 있을 땐 세포의 진폭이 크질 않으니까 그걸 감내하지 못하다가 잠이 들면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의 스마트폰과 내 스마트폰이 통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혼들과도 통신을 하게 돼있습니다. 그들과도 하나입니다. 우리 안의 부처님과 통하는데 어디와 통하지 않겠어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이심전심의 묘리</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도 사람들은 전부‘나는 고립된 섬이다. 나는 외톨이다’이래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주의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질병은 이 우주의 법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어리석게 활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법화경에 ‘일념삼천이라, 한 생각이 삼천대천세계와 통해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경전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과학의 입김을 쏘이게 되면 이거는 살아서 펄펄 뛰는 잉어 같아요. 명심하세요. 우리는 부처님 나라의 백성이고, 마음 나라의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합니다. 지성을 드려야 감천이 됩니다. ‘정신일도하면 하사불성’이라고 그랬잖아요.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면 못 이룰 일이 없어요. 참선하고 기도하고 부처님 말씀을 벗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린 본래가 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인 세계로 통하는 차원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층층시하, 아래로는 물론 위로도 사선팔정이니 멸진정이니 다 통합니다. 안 통하는 게 없어요. 식물은 물론 동물들하고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다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몸과 마음 가운데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이 귀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릅니다. 명확히 말씀드리겠는데요, 이 광활한 대천세계의 무량한 천중들과 천신들과 불보살들은 모두 내 편입니다. 다만 내가 그릇되게 사니까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하늘의 도움을 받는 자는 흡사 나라 왕과 같아서 만조백관이 그를 돕는 것과 같고, 하늘의 도움을 못 받는 자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도망가는 것과 같이 불보살과 신장들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느니라’했어요. 마음을 잘 쓰면 마음 가운데에 있는 스마트폰이 우주와 통합니다. 번호 누를 필요가 없어요. 생각만으로 충분해요. 공시성의 원리(Synchronicity)가 적용됩니다. ‘염화미소’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더니 가섭존자가 빙긋이 웃으며 서로 통했다는 거 아녜요. 이심전심의 묘리죠. 부처님 나라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세계입니다. 정성을 드리지 않으니까 부처님 나라의 미묘한 도리를 모르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궤보주의 비유’라고 하죠. 친한 친구가 먼 데로 떠나갑니다. 너무 가난한 친구다 보니까 옷 안주머니에다 보배를 하나 달아줍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그 친구를 만나 보니 여전히 거지로 살고 있는 거예요. “너, 내가 예전에 어마어마한 보배를 줬는데 어쨌냐?”물었더니 “아, 무슨 보배를 줬냐?” 이러더래요. 보배가 안주머니에 그대로 달려 있더라는 거 아녜요. 장난 같은 얘기지만 부처님 말씀입니다. 제가 항상 악을 쓰면서 기도하라고, 참선하라고, 명상하자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해 봐야 그 진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먹어봐야 맛을 압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절 뒷산을 걷다가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산에 나무들이 쭉 서 있잖아요. 나무들은 한번 땅에 뿌리를 내리면 죽을 때까지 거기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길을 가다보니까 나무들이 자기 씨를 퍼트리기 위해 제 옷에 달라붙더라고요. 사람이나 다른 짐승의 몸에 붙어 어디든 이동해가서 살아보려는 이유에서죠. 산도꼬마리가 그래요. 어디 그것뿐입니까? 봄이 되면 버드나무에서 꽃가루가 날려 멀리 날아가고 민들레 씨가 날아다니잖아요. 식물들도 아주 비상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또 새들이 날아와 열매를 쪼아 먹으면 그 열매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배설됩니다. 어디든 날아가서 거기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려는 식물의 영특한 의도입니다. 식물조차 그냥 멍청하게 서 있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도 각자 초 한 자루라고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의 초에 불을 밝혀주려는 마음만 먹으면 수천만 자루의 초에 불을 댕길 수 있습니다. 유마경에 나오는 유명한 무진등 법문입니다. 명심하세요. 지금도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딴 사람 생각 말고 부처님을 생각하세요.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 네가 왜 날 부르냐?’ 이래요. 부처님 나라와 나는 하나로 통하니까요. 부처님 나라의 스마트폰은 영상으로 떠오르는 영구한 최신식폰입니다. 식물들도 자기 자손들 퍼뜨리려고 발버둥 치며 모든 지혜를 동원하는데 하물며 어마어마한 스마트폰을 가진 인간이 무엇을 못하겠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약 아내가 병들었다면 거의 백퍼센트 남편 잘못입니다. 남편이 잘못하고 있다면 백퍼센트 아내 잘못이라고요. 우리 몸에 있는 수백조 개나 되는 이 미생물들이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독을 머금은 채 포자가 되어 상대의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어르신들은 노는 입에 염불하라고 했어요. 염불하는 것 자체가 우리 몸의 포자들에게 부처님을 먹이는 거라 그래요.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따라가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이는 주변에 큰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 부부가 불화해 봐요. 직장에 가서 직원들하고 불화해 봐요. 그 사람 오래 못 버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죽지 않는 영원의 가치</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은하계, 우주마다의 사성제가 다릅니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어요. 내가 지닌 고통이 있고 다른 사람이 지닌 고통이 있잖아요. 고통의 종류가 다 다릅니다. 별들마다의 양상이 다르다는 거예요. 무량한 별나라 자체가 영혼의 학교인 이유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학교로 진학을 하고, 공부를 안 하거나 못하면 강등되는 식으로 말이죠. 왜 좋은 일은 크게 번지기가 힘들고 나쁜 전염병이 빨리 번지는 줄 아세요? 우리의 마음자리 자체가 어둡기 때문에 전염병은 왕성하게 퍼져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낮에 태양 광선을 받으라고 하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땅에 와서 힘겹게 사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세계를 깨달아 보다 의미 있는 존재로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 내려놓으라고 그럽니다. 다 내려놓으라는 건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로 몰입해가면, 그 마음이 영원이 되니까 그래요. 그렇게 자꾸만 수행을 하면 마음이 점점 여유로워지고, 장벽이 깨져 해탈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각자 부처님 나라로 통하는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갈망, 영원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우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게 무엇인가요? 태양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비도 주시고 바람도 주시고, 다 주시잖아요. 다만 농사짓는 건 우리의 몫입니다. 이 육신은 한 자루의 초와 같습니다. 자기를 불태우면서 세상을 밝히는 램프예요. 램프의 연료가 다하면 램프의 운명은 끝입니다. 금생에 지은 공덕 따라서 어떤 램프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가 관건이고요. 부처님 직설입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기적이나 영험 같은 건 부처님 나라의 언어다’우린 말로 하지만 부처님 나라는 영험으로 보여주시고 가피로 보여주십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내가 영원과 하나 되면 영원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옛날에 오라클(Oracle), 신탁이란 말도 있었잖아요. 기적이라고 말하는데, 기적은 없어요. 그냥 부처님 나라의 언어가 기적입니다. 허공 자체가 부처님이라고 그랬으니까 없는 게 없이 무진장입니다. 다만 얻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주의 역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영원을 가는, 영원의 지혜가 다 들어 있는데, 다만 비밀번호를 모르니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매일 드나드는 집인데도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문을 못 여는 거랑 똑같아요. 절대로 바보처럼 살지 마세요. 이 우주에 사는 무량한 존재들은 마음 가운데 영원에 대한 갈망,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은 운명과 싸우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나아갈 뿐입니다. 사홍서원을 보세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건진 중생들 내놔 봐요. 얼마나 건졌어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그걸 매일 약속하잖아요. 그런데 도무지 입으로만 하고, 노래만 부를 줄 알아요. 내 한 자루의 촛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촛불을, 등불을 밝혀줬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마음 가운덴 누구나 영원에 대한 어떤 방향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면 됩니다. 열정(passion)으로 살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 에고가 깨진다고 그랬잖아요. 에고가 깨지면 자비(compassion)가 됩니다. 열정(passion)이란 단어에 접두어 com의 co는 함께(together)란 뜻을 담고 있어요. 무심히 넘기려는 단어 속에 진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몰입의 삶, 지성의 삶을 살아야 해요. 참선을 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던져서 해보란 말이에요. 문수보살, 보현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세요. 실제로 만나 뵙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현전가피라고 그랬잖아요. 체험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자기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체험을 해봐야 저절로‘아-!’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우리가 죽을 수 없는 가치 속에 자신을 탁 놓아버리면 그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 가치, 영원의 가치에 자신을 몰입시켜보세요. 그러면 죽을 때 ‘아, 이거구나!’ 저절로 알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이성은 정의를 낳고 지혜는 선의를 낳는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생사해탈이나 불멸, 영원이란 말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화두를 챙기는 거예요. 이 순간을 확실히 자각하면 화두가 터져버립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이구나’ 이거예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는 햄릿이니 오셀로니 하는 비극이 많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도 그렇고요. 그런 비극적인 작품들을 보면 희한하게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자들이 등장하지 않아요. 왜냐, 현명한 자들이 등장하면 이야기가 금방 끝나버리잖아요. 인간의 어리석음을 담아놓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비극이 사람의 마음 가운데 깨달음을 줍니다. 비극을 읽는 사람들이 그 책을 읽는 가운데 자기를 터득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비극이 재미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말하는 운명이란 말은 별로 좋은 단어가 아니에요. ‘운명적으로’이러면 좀 부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산마루에 올라 자신의 운명을 본다고 합니다. 운명이 지혜롭게 풀리는 거예요. 우리가 사는 양상은 대부분 비극적이지만 한 차원 높이 올라서면 그 윤곽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어떤 키를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거예요. 어려움이 온다 하더라도 ‘아, 이게 나의 운명이었구나’ 툴툴 털고 넘어갈 뿐입니다. 현명한 자들은 운명에 연연해하지 않잖아요. 이성은 정의를 낳지만 지혜는 선의를 낳습니다. 지혜의 길을 가려면 지성을 다해야 합니다. 지성은 바로 정열과 통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지금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통계에 보니까 현재 10억 명이 굶주리고, 20억 명이 영양실조래요. 그런데 또 생산되는 식량의 절반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대요. 너무 많이 낭비하고 있으면서 너무 많이 굶주리며 살기도 합니다. 거기다 물 부족이니 온난화니 하는 갖가지 요인들이 먹구름처럼 인류의 앞길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이미 3차대전은 시작됐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테러의 위협에 놓여있기도 합니다.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커다란 숙제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물질적으로 나아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누구든 간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뭔가를 궁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다가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부처님의 거룩한 가피 속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해요. 감사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일이 주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식물조차도 자기 자식을 번창시키려고 온갖 지혜와 상상력을 짜내는 판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의 번창에 기여하는 자를 칭송합니다. 그런 인물을 양성하는 게 부처님의 의지예요. 부처님 말씀대로 이 우주는 무의식적으로 굴러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절대로 나만의 행복이나 평안이 아닌 이 우주가 나에게 뭘 원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1-03 오후 3:53:25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기적과 영험이 일어날 수 있다 /Media/law/Read.aspx?db_cnt=75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씨앗이 땅에 뿌리 내리는 일은 기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제 봄이 지나고 신록이 온 대지를 감싸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파종의 시기라고 할까요? 해마다 봄이 되면 우리는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준비합니다. 단순하게 씨앗을 뿌린다고 하지만 씨앗이 땅에 뿌려져 싹을 틔우려면 뿌리가 먼저 나야 해요. 식물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씨앗에서 싹이 트면서 그 첫 뿌리를 땅에 내는 작업을‘닻을 내린다’라고 표현하는데 배가 항구에 정박해 닻을 내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때 땅속에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줄기가 나올 수 없고, 잎이 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줄기와 잎이 생기기 전까지 그 뿌리는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살아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입니다.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보통 아무렇게나 씨를 뿌려도 잘 자라겠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씨앗의 입장에서 보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에요. 씨앗으로선 생명을 건 도박인 셈입니다. 씨앗은 빛과 공기와 물, 세 가지만 가지고 우리가 먹는 음식을 제공해줍니다.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CO</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라 그러고, 물은 H</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O라 그래요. 그것이 태양과 합쳐지면서 C</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6</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H</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2</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O</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VERTICAL-ALIGN: sub;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6</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의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니까요. 이른바 식물이 연출해내는 상황은 대단한 겁니다. 저도 뒷산을 산책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식물들은 빛과 공기와 물을 바탕으로 해서 당(糖)을 만들고 우리에게 삶을 공급해주는 거예요. 지상에서 당을 공급해주는 유일무이한 생명체가 식물입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내잖아요. 가히 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빛과 공기와 물만 가지고 저들이 열매를 만들어낸 것을 우리가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린 그저 설렁설렁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매일 매일 기적을 먹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될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이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얼마든지 기적과 영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적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어요. 식물의 첫 뿌리도 사투를, 모험을 하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축구팀이 상대팀에게 자꾸 지니까 외국의 축구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외국 축구팀들은 축구를 할 때 상당히 즐거운,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짓는대요. 패스를 하더라도 진취적인 패스, 공격적인 패스를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축구팀은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패스보다는 백패스가 많대요. 백패스에 주력하는 축구로는 세계축구와 견주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 진취적인, 모험가적인 삶에서 대박이 터져요.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를 여행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춤 속에 살만큼 흥이 많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나라라고 그러잖아요. 경제적인 패턴하곤 달리 일상에 행복이 넘쳐납니다. 그러니 삼바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축구를 즐겁게 하는 거죠. 탱고리듬에 맞춰서 춤추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기적이나 영험이란 말은 부처님 나라의 언어입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사는 삶이 아니라 기적을 연출하는 삶, 영험을 연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자기 자신을 좀 더 정확히 평가해야 하거든요.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자기를 던지면 정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정열적으로 사는 사람은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고, 무위심이 되면 대자대비한 마음이 됩니다. 자비심, 사랑이에요.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 받으려면 몸과 마음을 불사르며 살아가세요. 우린 누구나가 다 영원을 가는 길 위에 있는 등불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도 몸이 활활 불타고 있습니다. 36도 5부짜리 난로에요.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이 연료가 돼서 이 몸이 불타오르고 있다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자신이 등불이 되라 그러셨어요. 법등명 자등명, 자기의 가치를 입증 받으려면 불을 태워 광명의 깃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힘이 내 몸과 마음을 관통할 것입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영원한 광명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깜깜한 밤길을 헤매고 있는 무명중생입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세요.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야 해요. 물론 가다가 보면 슬럼프도 있을 수 있겠죠. 그땐 또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슬럼프를 잘 극복하면서 주저 없이 가야 해요. 그래서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 받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부창부수(夫唱婦隨)</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누구나 부처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부처의 길을 가고 있고요. 자연계의 모든 동, 식물들을 보면 거룩한 의지가 가득히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도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호흡을 하고 호흡을 할 때마다 코와 입을 통해 미생물들이 튀어나와요. 광자와 전자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 광자와 전자는 상대방의 코를 타고 다시 상대의 몸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우리는 연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전부 하나로 다 연결돼 있습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천지가 동근이요, 만물이 일체입니다. ‘아, 나는 그래도 착하게 사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코와 입과 몸을 통해서 광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 회사의 분위기, 나라의 분위기가 국민의 질을 그 나라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광자도 의식이 있다는 건 제 얘기가 아니라 영국의 유명한 소립물리학자 존 벨의 얘기예요. 모든 영상은 빛으로 만들어지잖아요. 광자의 세계는 목적지를 향해 갔다가 꼭 다시 나에게 ‘잘 전달했습니다’ 하고 돌아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의식세계를‘텔레파시’라고 부릅니다. 우린 둔탁한 기계를 가지고 상대방과 소통을 하지만 우리 몸엔 이미 스마트폰의 수천만 배 기능을 가진 마음의 스마트폰이 있어요. 둔탁한 기기가 아닌 그 이하의 단위 광자로, 전자로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 대해서 뭔가 해악한 짓을 하면 꼭 응보를 면키 어려워요. 모두가 연기(緣起) 따라, 인연(因緣) 따라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너무 안타까운 게 정권만 바뀌면 항상 과거의 정권에서 말했던 정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또 그 정의가 바뀌어요. 대체 그 정의란 뭐예요? 이 광활한 우주는 그래서 기적이고 그래서 영험의 세계입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에 영원이 깃들어 있어야 하고, 도가 깃들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심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래요. 부부간에도 불화하면 절대로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씨가 되고, 생각이 씨가 되고, 행동이 씨가 되잖아요. 우리는 모두 영락없는 부처수업을 받고 있는 중생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가 감기에 걸렸어요. “야, 가까이 오지 마!” 이럽니다. 감기바이러스가 나에게 올까 봐 두려워해요. 그런데 독이 묻어 있는 말이나 독이 묻어 있는 생각이나 행동은 다반사로 합니다. 실제로는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더 조심스럽고 더 정성스러워야 해요.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악업을 짓지 말라는 게 십 악업이잖아요. 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사음중죄 금일참회, 망어중죄 금일참회, 기어중죄 금일참회, 양설중죄 금일참회, 악구중죄 금일참회, 탐애중죄 금일참회, 진에중죄 금일참회, 치암중죄 금일참회.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짓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 가운데 독이 머금어져 있을 수가 있고, 아름다운 마음이 머금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만상은 전부 부처님의 기적 가운데, 영험 가운데 존재합니다. 부처님도 과거에 나무들의 신장 역할도 했었데요. 우리도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을 때까진 나무뿐만 아니라 무량한 생명체들처럼 무량한 세월을 수련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건 무량겁의 복덕과 지혜의 소산입니다. 이제 과거의 순간은 잊어버리잔 말이에요. 순간순간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들으면서 ‘내가 호흡을 할 때마다 아, 내 몸에 독을 품은 미생물을 먹여주고 있구나’, ‘내가 화를 내고 내 직원들의 마음 가운데 독 먹은 미생물과 광자를 쏟아놓고 있구나’그런 생각을 해야 해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하라고 그러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업을 쌓는다니까요. 그런 죄와 업을 닦아야 합니다. 모든 색은 모든 물질입니다. 바위나 무슨 돌이나 상관없어요. 불교에서는 생명과 무생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생명으로 봅니다. 모든 물질은 감각작용이 있고, 지각작용이 있어요. 상대를 대하면 반응을 하고 그대로 정보가 쌓입니다. 상대성이라고 그럽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예요. 남편이 소리를 지르면 아내도 자존심이 있으니 똑같이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순간순간마다 자기를 정비해 가세요. 찰나지간에 부처와 악마가 갈라진다니까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정(精</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으로 살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소립자물리학에서는 모든 입자들 세계에 대한 불연속(不連續)이란 말을 써요. 탁탁 끊어진다는 거죠. 불연속, 새날이고, 새해고, 매일매일 태양은 다시 떠오릅니다. 세상은 순간순간 변해갑니다. 지난번 한국에 왔었던 뉴욕타임스의 주필 토머스 프리드먼이 한 말입니다. 바람이 불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벽을 쌓는데 어떤 사람은 풍차를 만든다는 거죠. 똑같은 상황인데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던 백관도사라고 있습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생활할 때 같이 살았는데 그는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문 박사예요, 풍수 박사고. 그의 말에 의하면 집터를 보면 건강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는가, 마음이 얼마나 하늘을 향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가족이 화목한가에 따른 곳을 양택이라 부른다고 해요. 하늘을 따르지 아니하고 부부 사이가 엉망이 되면 그 자리는 아무리 좋은 터라 하더라도 좋지 않대요. 하늘의 뜻이 있고, 땅의 의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몸의 중요한 물질 가운데 하나가 정(精)입니다. 쌀 미(米)자에 푸를 청(靑)자를 써요. 쌀은 땅이잖아요. 청은 하늘이에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나는 자리가 정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현대의학에서는 유전자지도를 만든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나름대로 유전자를 지배합니다만 이 우주는 부처님 나라고, 어디나 기적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의 묘리와 법을 무시하고 살아요. 그런 사람들에겐 영험이 있을 수 없죠.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 받는 방법을 모르는 겁니다.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알고 영원의 뜻을 알고 살아야 해요.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건 그 누구 거나 말이죠. 요즘 미국에서는 경기가 회복되어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거 아녜요. 문제는 우리나라도 빨리 이런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나라와 기업 대학이 삼각형을 이루어 철저히 교육시켜야 하는 거예요. 결국 교육의 문제거든요. 초연결, 초융합, 초지능 그러잖아요. 제가 가만히 보면 이 초연결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가히 몰입의 경지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건 모두 기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하사비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체스의 천재였다는 거 아녜요. 그의 두뇌는 평범한 인간의 두뇌하고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 해도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 내서 키워야 합니다. 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은 거의 하나에 미친 친구들입니다. 몰입하는 인간들이에요. 그러니까 기적과도 같은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있어요. 종교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영원과 하나로 연결돼있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런 몰입의 경계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조사해 보면 그 나라 국민이 1년간 얼마나 책을 읽는가 하는 것과 그 나라 행복의 지수가 일치한대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만큼 마음의 자양분이 생기잖아요. 부모가 책을 보면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정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하기 전에 우선 부모가 선행을 해야 해요. 병도 잘 관리를 해야 하는 것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중요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계는 특정한 사람만 영험을 입고 기적을 입는 곳이 아닙니다. 우주 자체가 기적이에요, 영험입니다. 다만 무명 때문에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어디서나 기적은 넘쳐납니다. 식물들도 빛과 공기와 물을 가지고 우리가 먹는 모든 곡식을 만들어내잖아요. 모든 열매를 만들어내잖아요. 우리도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열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가치를 입증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 나라에 갈 때, 이 땅에서 얼마나 잘 살고 왔나 하는 엄정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임하는 가정, 직장, 회사, 나라에서 영험의 세계를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SPAN></P>2018-01-03 오후 3:21:42모두가 다 사랑의 힘으로, 자비심으로 이룩된 세계 /Media/law/Read.aspx?db_cnt=75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허공은 금강불괴지신</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이 광활한 우주는 사랑의 힘, 자비심으로 이룩된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죠. 우리 아들딸 역시 사랑의 힘으로 잉태됐습니다. 그 무엇을 만든다 해도 전부 사랑의 힘이 바탕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남녀가 만나서 생명체를 형성하는 것도 본래 하나였기 때문이에요. 하여간 이 우주는 좋아하는 것끼리 모이게 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입니다. 주파수 따라서 연결됩니다. 상대방의 번호를 누르면 하나로 통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활을 쏘아 과녁을 맞힌다고 생각해보세요. 중심을 맞히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중심에 들어가면 뭔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부부가 하나로 만나니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창의적인 세계가 열려요. 이 때 창의성이란 많은 실패를 거쳐야 나옵니다. 화살을 명중시키려면 많은 실패를 하는 것과 같아요. 삶이란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이라야 서로 잘 통합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요, 우리가 생면부지의 사람과 만나 그 만남을 이끌어가다 보면 신비로움의 세계가 열리잖아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마음의 장이 열립니다. 삶에는 신비로움이 있어요. 사랑의 신비로움이랄까, 사랑은 몸과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그런 신비로움의 세계가 중심에, 하나에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서는 중도(中道)란 말을 자주 합니다. 중도가 정도(正道)다 그래요. 네, 하나의 세계,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향해 가는 가운데 신비로움의 장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길을 가는 가운데 사랑과 자비의 세계가 열리거든요. 초지일관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신심명에도 ‘지도무난 유혐간택</SPAN>(至道無難 唯嫌揀擇), <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지극한 도는 어려운 게 아니니 다만 간택함이 어려울 뿐이다. 단막증애 통연명백</SPAN>(但莫憎愛 洞然明白), <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좋고 나쁘고를 버려라, 그러면 뻥 뚫려 간다’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하더라도 굴하지 말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명상을 하거나 참선을 하면 화두를 지켜보게 되는데 지켜보는 자, 그 자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끊임없이 호흡을 지켜보라 이럽니다. 호흡은 내 몸에서 일어나지만 지켜보는 자는 내 몸 바깥에 있어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중도로 가야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신비로움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부부가 한 덩어리 돼 살면서도 사랑의 참맛을 모르는 부부가 너무 많아요. 상대방의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는 마음이어야 신비로움의 세계가 열립니다. 그냥 만나면 만나나보다, 그게 아니에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겁니다. 아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내 몸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모든 순간이, 매일 매일이 심판의 날입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과 하나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이 결판나거든요. 내가 얼마나 그 일에 몰입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왜 제가 기도하라, 명상하라, 일요일 법회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라 악을 쓰는 줄 아세요? 매순간이 심판의 순간이고 매일이 심판의 날이라서 그래요. 삐끗하면 갑니다.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보세요, 저커버그는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페이스북을 만든 사람 아닙니까? 아이디어의 시발점은 단순합니다. 그는 “내가 하버드에 온 것이 영광스럽다, 나는 하버드에서 만난 내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라고 말했어요. 그는 하버드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장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페이스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전 세계 22억 인구와 통하는 망이 된 거죠. 한 생각으로 수백억 달러를 버는 부자가 됐어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허공은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라고 하셨습니다. 허공은 금강,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라는 겁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하나의 마음으로 나아가다보면 부처님과 통하는 세계가 분명히 열립니다. 우리는 삶의 신비를 좀 알아야 해요. 탁월한 인물들은 그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허공에서 다이아몬드가 쏟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것은 허공에서 오는 걸 알아요. 삶은 언제나 성스러운 심판입니다. 언제나 심판의 순간입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 그런 거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하나의 마음으로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나’는 내 몸을 지휘하는 위대한 지휘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전생에 지은 공덕만큼 그 에너지를 부여받고 태어났습니다. 각각 전생에 지은 공덕력만큼만 에너지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우리가 백 년을 산다고 칩시다. 그것보다 더 짧게 사는 사람도 있죠. 그 공덕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에너지 낭비하지 마세요. 시간과 공간을 낭비하지 말란 말이에요. 이 우주는 기여하는 만큼만 존재합니다. 공덕만큼만 쓸 수 있어요. 우리 몸 가운데 있는 세포 수만 하더라도 수십조고, 미생물들만 하더라도 백조가 넘습니다. 그게 다 생명체라는 거 아녜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한 티끌 속에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우주예요. ‘나는 우주다’이겁니다. 문제는 이 우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있거든요. 내 몸 가운데 있는 수백조 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세포, 미생물 군단의 지휘자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은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예요. 몸을 합목적적으로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도(道)이고, 그게 덕(德)입니다. 도덕경에 나옵니다. 도와 덕으로 나라를 통치하라. 몸에도 도가 있습니다. 마음이 덕스러워야 합니다. 만약에 수백조 개나 되는 이 엄청난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넋나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유명한 칠불통계가 있습니다. ‘제악막작(</SPAN>諸惡莫作)<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하라- 절대로 악행을 하지 마라, 중선봉행(</SPAN>衆善奉行)<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라-항상 끊임없이 선행을 닦으라, 자정기의(</SPAN>自淨其意)<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하라-스스로의 마음을 항상 청정하게 하라, 시제불교(</SPAN>是諸佛敎)<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이는 모든 부처님의 공통적인 가르침이니라.’우선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선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 이건 악심이잖아요. 나는 단순한 내가 아니에요. 나는 성스러운 지휘자입니다. 당장 이 몸의 건강을 해하지 마세요. 정말 몸과 마음을 잘 갈무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의 수많은 세포들이 활성화돼서 나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합니다. 당장 내 몸에 있는 수백조 개나 되는 미생물들과 세포들을 잘 지휘해서 일생을 원만하게 살기위한 마음을 잘 닦는 게 우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삶의 신비, 자기 자신의 신비를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내 안에 신이, 부처님이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아요. 위험한 거죠. 사랑이 신이에요. 빛이 신입니다. 사랑이 부처님이고, 빛이 부처님이고, 생명이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은 항상“너희 마음 가운데 내가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걸 까맣게 잊고 살잖아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존재의 중심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의 모든 경기가 중심을 맞히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중심을 맞히기가, 골인하기가 그만큼 힘듭니다. 그래서 골을 넣으면 찬탄하고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때 행복이 충만한 법이에요. 내가 지금 중심을 잘 잡고 있는가,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들여다보세요. 그게 선적인 삶입니다. 중국에서 나온 보도에 보니까 항주의 동천목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그래요. 옛날 어느 스님이 열심히 수행을 했던 마을이라 그 동네 이름이 미타촌이랍니다. 그곳에는 지금도 그가 염불을 하던 염불당이 있는데 여든네 살 잡수신 노보살님이 그 염불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다 ‘이제 아미타불의 권속들이 와서 나를 데려가려 한다’ 그러더니 선 채로 돌아가셨대요. 신화 같은 얘기지만 그런 일이 중국에서 일어났어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돈이 최고야’하는 방식으로 사니까 삶의 신비를 잃어버린 거예요.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동체대비(同體大悲), 우린 모두 한 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중심을 맞히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절대로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 낭비하지 마세요. 도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기다릴 대(待) 자를 보세요. 두 인(&#24435;)변에 절 사(寺)자를 쓰잖아요. 성수기, 성장, 성공, 성불은 전부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요즘은 촉급하게 클릭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사람들의 깊이가 없어요. 그런데 몰입해서 연구하는 친구들한테는 통합니다. 내가 나를 텅 비우니까 아미타부처님이 오시는 거예요. 영원이 밀려와서 내 몸과 마음을 채우는 거예요. 매일매일 기다리는 마음으로 중심 잘 잡고 정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정열적으로 사는 사람이 자비로 도약합니다. 자비, 사랑이란 말은 성숙된 정열입니다. 정열적으로 살면 에고가 깨집니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에서 뛰는 친구들을 보면 해설자가 그러잖아요. “꼭 신기(神技)가 어려 있습니다.” 정열, 마음에 열이 충만하다는 거 아녜요. 물도 끓이면 허공으로 뜹니다. 그런 경지가 부처님 경지로 나가는 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몸을 다스리는 건 마음</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 “아이, 골칫거리야.”합니다. 그런데 절대로 문젯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몰입해 부처님을 체험해보라는 테제예요. 춤추는 사람은 춤을 더 잘 추고 싶지 않겠어요? 춤이, 댄서에겐 문젯거리죠. 그래서 자기를 던지잖아요. 제가 이제 나이 70줄에 다가서고 보니까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돌아보게 돼요. 그럴 때마다 부처님이 항상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하며 골수에 사무칩니다. 지난번 국녕사 사경법회에 가서 신도님들한테 물어봤어요. “지금 제 마음 가운데 어떤 마음이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말씀을 하더라고요. 제 마음 가득 담겨 있는 것은 ‘감사함’이에요. 모든 게 다 부처님 뜻이구나. 모든 게 다 부처님이 해결해주시는구나 이겁니다. 모든 것은 문제로 온 게 아니라 진리로 온 겁니다. 나에게 진리를 터득케 하려고, 삶의 신비를 터득케 하려고, 감사를 터득케 하려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젯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제 체험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절대로 아파할 것 없습니다. 인생은 실패했을 때 오히려 많이 배웁니다. 고통에서, 문젯거리에서 많이 가르쳐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야 합니다. 가고 보면 부처님이 천 개의 손으로 나를 어루만져주시고, 천 개의 눈으로 보살펴주십니다. 네, 그래요. 우리는 전생에 지은 공덕만큼만 부처님의 아들딸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부처님의 의지 따라 살고 있는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살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사람은 고통스럽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아프다 그럽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그 사람마다의 최적화된, 계량된 상황이에요. 신비로운 거죠. 부처님이 딱딱 과제를 내 주신 겁니다. 타 종교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그러잖아요. 절대로 불평불만하지 마세요. 언제 어떤 경우라도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문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따라 철통같은 준비만 하면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남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지 않아요. 개인마다 최적화된 진리의 이름으로 주어질 뿐입니다. ‘부처님, 제가 그동안 게으르다고 어려운 문제를 주셨군요. 네, 열심히 풀어내겠습니다. 부처님, 도와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제는 누가 대신 풀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풀어내야 해요. 부처님은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항상 중심을 잘 잡고 숨이 넘어가는 그날까지 풀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제일 마지막까지, 가동되는 심장이 멈추는 그날까지 정열적인 에너지를 만 중생을 위해 써야 합니다. 부처님이 오로지 바라시는 건 자비의 삶으로 승화돼라, 이겁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 시대라 하더라도 종교와 신화는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왜냐, 아름다운 문화나 정신세계는 인공지능과 그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문재인 대통령만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는 각자 통치자예요. 개인 개인이 우주라고요. 우리 몸의 수백조 개나 되는 세포군단, 미생물군단의 통치자입니다. 통치는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을 바로 하는 것이 내 몸 가운데에 있는 국민을 새롭게 하는 거예요. 이 정권을 담당하는 정치인들도 마음의 세계를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통치고 정치입니다. 역사를 쭉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부처님 당시도 그랬지만 권력자가 쓰러지는 것, 재벌이 감옥에 갇히는 것 순간입니다. 우린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아무도 모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몸을 다스리는 건 마음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라면 중심을 잘 잡고 국민의 마음 가운데 신뢰를 얻어야 합치가 되고 협치되잖아요. 한쪽으로 쏠리면 당장 소란이 오고 국민이 불편해집니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세요. 모든 어려움은 부처님께서 해결해주십니다. 언제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나는 우주다’라는 마음으로 사세요. 우리는 지금도 부처님이고 부처님 되실 분입니다. 항상 부처님 법 따라 공부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살피며 살아야 나 자신, 내 가정, 내 사회, 내가 임하는 어떤 곳에서도 평안과 안녕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삶에는 원리가 작용합니다. 다르마(Dharma), 법이 있는 곳에 부처님 계십니다. 중심을 잘 잡고 부처님의 의지에 따라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SPAN></P>2017-12-20 오후 3:40:32교육만이 그대의 살길이다/Media/law/Read.aspx?db_cnt=75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 align=left><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1. 일체만상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보이는 존재들은 그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일체만상은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또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 즉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존재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것이든 목적이 있을 겁니다. 법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경전을 배우며 성불하거나 해탈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서 갈 것인가? 법당에서는 존재의 목적이 부처의 길을 열심히 갈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만상은 하나같이 다 존재의 이유가 있겠지요. 스스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하게 됐는지. 우리 모두는 전부가 다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왔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통해 나왔는데 정작 낳아준 부모님은 자식을 낳고 부터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잘 키워야 된다는 그런 숙명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버이 마음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아들딸이 고통스러워하면 내가 대신 그 고통을 감내하려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기 책임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모나 그런 인물 그런 존재들이 있기도 합니다.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잘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버지, 좋은 인간이 되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여 만들어야 합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공부하는 사람, 공부하는 자세가 된 사람은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입니다. 공자도 육십이 되면 이순이라고, 귀가 순해졌다고 말 합니다.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려면 귀를 많이 열어야 합니다. 부처님도 우리들을 잘 육성하기 위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보리수아래에서 고행을 하고 해탈을 하였습니다. 중생을 보살펴 가르침을 주는 불보살은 우주의 중생이 깨우치기를 기다립니다. 경전을 보면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혜를 닦는 과정을 보면 삼회 문사수(</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聞思修)</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로 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학교를 가면 선생님이 먼저 말을 합니다. 자기가 먼저 공부한 것들을 얘기해 줍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대장경도 마찬가지예요. 얘기해 주고 그것을 듣고 또 질문하고 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수행하고 스스로를 닦아 나아갑니다. 천수경에 나오는 ‘아금문견득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선 들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먼저 들어보고 그 다음에 아! 그래 그곳에 한번 가볼까, 혹은 뭐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을 하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 몸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한 부분이 두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심장과 뇌가 있는데 심장에는 심근경색이 생겨 위험한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혈관이 막히게 되어 심장마비가 와서 순간에 죽음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두뇌는 뇌경색이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뇌경색. 뇌혈관이 막히게 되면 죽거나, 뇌에 이상이 생겨 치매가 오는 것입니다. 갑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되어 가족들을 크게 괴롭히는 것입니다. 치매가 촉진돼 버립니다. 뇌가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머리가 정지되어 버리면, 어리석은 마음이 따라오며 그것이 치매가 되어 버립니다. 삼십년 동안 공부한 것도 계속 이어주지 않으면 곧바로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매일같이 걸던 전화번호도 깜빡 며칠만 멈추고 안하면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공부를 계속 해야 됩니다. 현명한 부모들을 보면 책상이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줍니다. ‘프로이드’나 ‘아인슈타인’이나 ‘키신저’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아버지가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서 아버지 흉내를 자꾸만 내다가 책상에 앉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일어나면 책상에 앉아 책을 보니까 흉내 내다 일생동안 자기도 그 길을 가게 됩니다. 지금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 하면 아들딸이 그걸 배우고 흉내를 내게 됩니다. 그러한 책임감을 가지고 지혜롭게 가정과 사회를 잘 이끌어가며 세계 속에서 으뜸이 되는 사람을 키우며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2. 물러남이 없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은 계속 뭔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어요. 공부하지 않는 자는 지혜도 사라지고 매사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금강경에서는 ‘수보리야 어이 운 하오’ 계속 수보리하고 부처님과의 질문과 응답이 이어집니다. 계속 질문과 응답을 하다보면 성불의 길이 열리게 되고 스스로를 깨닫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경전에서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내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법에 귀의하고 내 자신에 귀의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두뇌가 썩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천수경에는 ‘원아불퇴보리심’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물러남이 없는 마음으로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끊임없는 탐구자적인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을 아함경에서 알려줍니다. 네 아내로부터 존경받는 법을 배워라. 남편으로부터 존경받는 법을 배워라. 아들딸로부터 존경받는 법을 배워라. 우선 가족으로부터 존경받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겁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진리도 우리는 잘 배워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동체대비. 뭇 생명과 우주가 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걸 공부해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수도장이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도량은 가정이든 절이든 광활한 우주 그 자체가 수도장인 것처럼 우리가 몸담은 곳은 모두 수도장이라고 합니다.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가 되려면 공부부터 해야 합니다. 아내의 도리, 남편의 도리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기본으로 지켜야할 도의입니다만, 잘 알지를 못하고 있다면 가장 기본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밖에서 존경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밖에서 인정받는 게 중요하지만 집안에서 아내에게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해 하는 것은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나의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게 나의 행복이 되겠지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불교 수행의 덕목중 하나인 ‘사섭법’이 있습니다. 중생을 제도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피고 보호하는 행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쉽지 않아 힘들 때 이혼하고 그래서 자녀를 보살피지 못하는 가정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 있을 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잘 실천한다면 무사히 이겨내어 가정을 잘 지켜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법당에 나와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길이 가정과 사회, 나라를 지키고 모두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법당에 모인 불자들의 행과 생각은 모두 다르지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한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가장이 돈도 잘 벌고 자녀들은 공부를 잘하고 아내는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모두의 방법이 다르고 지금하고 있는 일들은 다르지만, 기도하는 마음들은 일심으로 통하고 있을 겁니다. 집에서 쉬지 않고 법당에 나온 이 자리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자세와 개개인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금강불괴지심’이라는 말로 우리 마음을 금강석 다이아몬드처럼 만들어 보라고 경전에서 일러주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현실을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자신의 인내와 흔들림이 없는 단단하고 강한마음 즉 ‘금강불괴지심’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정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행하여야 합니다. 아픔을 이겨내는 것도 잘 수행하는 길이기도 하여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하며 살아야 잘사는 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로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금강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끝없이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는 마음을 잘 갈고 닦기 위해서입니다. 금강석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이런 마음과 행이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치매를 예방하는 법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치매가 무섭다고 합니다. 옛날보다 지금의 환경이 더욱 치매가 많이 옵니다. 빈도가 잦아지는 것 을 보면 점점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치매라는 것이 뇌경색, 심근경색에서 오는 것인데 뇌의 피가 순조롭게 흐르지 않으면 터져 버리고, 피가 멈추면 고여서 썩게 됩니다. 신체를 활성화시켜야 하고, 마음 닦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만 치매를 예방할 수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쇠해지고 노쇠해지면 힘이 없으니까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게 되어 버립니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이기 보다 과거를 생각합니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잘못된 것에 대한 회한과 원망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치매증세가 있는 노인을 보면 하루 온종일 중얼중얼 대기도 하고 지나치게 욕을 하면서도 자제할 수가 없는 일이 생깁니다. 매일 새롭게 공부하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만 스스로 마음의 병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제 백세시대가 다가옵니다. 노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법문을 익히고 지혜와 지식을 찾는 공부도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3.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자</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자신의 존재확인을 위해서라도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세대를 보면 무언가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나이가 조금만 들면 건망증이 오는데 이게 조금이라도 촉진이 돼버리면 금방 치매가 와 버립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 하루 온종일동안 스마트폰 보고 영화보고 뭐 인터넷 보고 하는 일들이 걱정스럽습니다. 아마 지금 세대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삶이라는 건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는 영원을 가는 마음으로 살아야 돼요. 계속 정진하는 마음으로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니, 항상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 해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것이 자기수행이며 다음 세대들에게도 올바른 교육을 심어줄 수가 있습니다. 몸을 가다듬고 가정을 가다듬고 이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보고 하루를 소일할 게 아니라 자꾸만 기도를 하고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리들 행이 영원성을 갖추게 됩니다. 스마트폰도 텔레비전도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합니다. 그런 문명의 이기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활용하여야 합니다. 지나치게 그런 물질에 빠지게 되면 생각이 멈추어 버리고 보이는 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버립니다. 생각이 멈추어 버리면 뇌는 바보상자가 되고 몸은 썩어버립니다. 결국 공부하지 않으면 썩어 버립니다. 새로워지는 것을 막아 버리게 됩니다. 두뇌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어떤 형태로건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발전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멈추어 버리면 안 됩니다. 정진을 하고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닦아야 합니다. 결국 교육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여야 합니다. 나와 타인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교육을 잘하여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가 먹는 음식도 문제가 있어 걱정입니다. 점점 다양해져서 몸에 좋지 않은 음식도 알게 모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공기도 나빠지고 주변 환경에 문제가 많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느끼는 진보 속도와 기계의 진보 속도가 맞지 않아 균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머리를 쓰는 못된 인간들은 물건을 계속 팔아먹어야 하니까 계속 그 압축성 대단한 기계를 자꾸만 만들어내요. 그걸 못 쫓아가니까 쫓아가려다 보니까 이른바 말하면 두뇌가 과부하가 걸려 버리고 언밸런스해져 버립니다. 인간의 능력은 두뇌 능력을 따라가지 못해서 밸런스가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국 마약 같은 성분의 약에 의지하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의 마음을 휩쓸어 가려고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이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다 마음을 휩쓸어 가고 있어요. 또 무엇이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의 의식이 좀 더 공부하는 자세로 고양되지 않으면 과부하가 걸려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탐구하기를 그쳐 버리면 평생 걸쳐 공부한 것도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립니다. 고농도로 증류된 휘발유도 놔두면 금방 증발돼버리듯, 옥탄가가 높은 것들 특히 고도의 지식 같은 것들이 금방 날아가 버려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망각이 된다는 것은 날아가 버리는 휘발성이라고 합니다. 듣는 두뇌 능력 가운데 탁월한 능력이 쉽게 날아가 버립니다. 왜냐하면 쌓아놓을 수가 없는 것이 우리 두뇌의 회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기도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라고 생각만 하게 되면 금방 잊어버려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의 뇌가 멈추면 썩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는 정진하고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살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치매도 예방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겁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수행자적인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길만이 살 길이란 걸 알고 지켜 나아가야 됩니다.</SPAN></P>2017-12-20 오후 3:16:44시야를 확대하면 더욱 커지고 정확해진다. 마음의 공간을 넓히면 창의성도 오른다/Media/law/Read.aspx?db_cnt=750&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StartFragment-->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P><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우리의 본성은 자유</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한도 끝도 없는 별들이 반짝입니다. 우리는 그 별들 중에 지구란 별에 와 삽니다. 뭔가 신비한 현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하필이면 왜 이 별에 와서 살까?’ 하는 궁금증도 가질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우주 만상은 모두 끌리는 데로 갑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살게 된 것을‘애착 때문이다’라고 하셨어요. 끌리는 바가 있어서 많고 많은 별 가운데 골라서 이 땅에 왔습니다. 이 지구라는 별하고 인연이 도타운 거죠. 그런데 인간은 늘 시간상으로, 공간상으로 답답해합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자유’잖아요. 속박을 싫어해요.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도 탁 트여서 그래요. 때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큰 집을 선호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너희의 본성은 자유다.’그랬어요. 또‘자승자박’을 말씀하셨죠. 자신의 좁은 시야 때문에 육신이란 공간 속에 갇혀 산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또‘텅 빈 허공은 사랑과 지혜, 자비로 가득하다. 그래서 너희 영혼은 영원인 빛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하신 거죠. 여기서 수행이란 개체적인 나, 덩어리져 있는 나, 속박돼 있는 나로부터 전체적인 나, 우주와 하나인 우주의 마음으로 향해가는 것을 말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많은 학자들이 실험을 했어요. 그 결과 비교적 천정이 높은 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높다고 나왔습니다. 옛날의 성당이나 교회는 규모가 어때요? 대단히 웅장합니다. 물리적으로 시야를 넓게 보라는 거죠. 또 참선 명상을 하는 이유도 마음의 공간을 넓혀라 이거에요. 그러면 창의성도 껑충 뛰어오릅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탁 트이게 해놓으면 마음도 탁 트이게 돼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세상을 살다보면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욕망은 백퍼센트 이루어지지 않아요. 욕망은 분노를 낳게 되고, 분노는 좌절을 낳게 되지요. 그다음 우울해지잖아요. 우울증에 걸린 분들 보면 거의가 그런 맥락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그럼 제가 그럽니다. 우선 마음을 탁 트이게 해야 된다고. 우울하다의 울(&#15191;)자가 답답할 울 자거든요. 녹지공간만 바라봐도 우울증이 완화됩니다. 시간 나는 대로 뒷산에 올라 걸어보세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수행이란 어떤 맥락에서 보면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공간을 확장해나가는 거예요. 우리의 본질은 자유이기 때문에, 해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의 공간을 넓힐수록 창의성이 향상되고 무한으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접해 사고가 열려있어요. 그렇게 마음이 열린 가운데 다중적 시각이 열립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고 합니다. 네, 시간적으로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너무 조급한 마음 없이 한 걸음 두 걸음 정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집을 지으려면 많은 설계도가 필요하듯이 우리 몸을 가만히 봐요. 만약 몸을 설계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복잡한 시스템이 운영돼야 할까요. 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것도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애착 때문에, 집착 때문에 이 땅에 왔잖아요. 자승자박, 자기가 좋아서 온 거예요. 우선 당장 어머니 아버지도 선택해서 왔잖아요. 정자 한 마리와 난자 한 마리가 만나 만든 이 몸의 세포만도 줄잡아 백조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그 열 배 이상의 바이러스, 이른바 미생물, 박테리아들이 공존한다고 하면 몸은 박테리아 덩어리, 미생물 덩어리죠. 그 작은 것들조차 모두 인생설계도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보통 각자의 지은 업 따라서 온다고 얘기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100년, 좋다 이거예요. 주어지는 환경을 고려한 인신난득,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힘든가요? 맹구우목, 태평양 바다에서 눈먼 거북이가 헤엄을 치다가 판자를 하나 만났는데, 판자에 구멍이 있더라는 거 아녜요. 그 구멍에다 머리를 쏘옥 내밀 정도로 힘든 게 사람 몸 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이 다가 아니에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배움터래요. 영혼의 학교라고 그랬잖아요. 영혼의 학교라고 그러면 교과과정이 있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이 땅에 내려올 리가 만무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뱃속에서 나와 도리도리짝짜꿍을 시작으로 매일매일 배워가는 게 인생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자유로운 영혼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지구환경에 필요한 우주복을 입고 잠시 내려와 이렇게 사는 거예요. 매일매일 시험을 치르고, 시련을 겪고, 고통을 이겨내면서 공부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고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마세요. 좌절하지 마시구요. 실망도 하지 마세요. ‘아, 모두 내가 각본 따라 내려와서 받아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좀 더 멀리보세요. 공간은 무한한 지혜이고, 무한한 자비, 사랑입니다. 정자 한 마리와 난자 한 마리가 만나 이 몸을 만드는 과정이 예사롭겠습니까? 신비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세계예요.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법계(法界)입니다. 하나님, 부처님을 떠나 우선 자연계의 기본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입니다. 내가 한 대로 받는 거니까 하면 저절로 옵니다. 뿌리면 거두는 거, 인과응보죠. 누구를 지옥에 보내고, 누구를 천당 보내고, 극락 보내는 게 아니라 각자 한 대로 받습니다. 자승자박이고, 자작자수고, 자업자득이에요. 자기가 한 대로 받는 거니 하나도 힘들 게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우주는 저절로, 절로 가는 거예요. 당장 우리의 본성은 자유다, 해탈이다, 그러잖아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모든 물질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마음이 곧 에너지입니다. 마음이 불성이고, 불성은 광명이래요.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대단히 좁습니다. 화엄경에서 생각은 마음의 파동이라고 그랬어요. 내가 생각을 일으킨 순간 염파, 생각은 곧바로 허공과 맞닿게 됩니다. 점수가 매겨져서 다 기록에 남아요. 부처님은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과 현실의 가교역할이라고 하셨어요. 함부로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이 말과 행동을 낳잖아요. 생각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유의식적으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학자들은 만상은 이른바 빛조차 입자이자 파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양자물리학에 보면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해서 관찰할 때는 에너지가 입자로 나타난대요. 또 안 보려고 하면 파동으로 변하구요. 참 묘하죠? 에너지는 양면성을 가집니다. 관찰자효과로 위치를 알려고 하면 입자화되기 때문에 위치 체크가 안 됩니다. 위치를 모르면 파동으로 변하고 파동은 우주와 연결됩니다. 미심쩍어하지만 사실 우리의 본성은 자유고 허공이고 부처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해보면 알아요. 선가귀감에 나온 대로 우선 열심히 기도하고 염불해보세요. 그런 다음 마음이 고즈넉해지면 화두를 챙기고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개미를 연구한 학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조그마한 몸을 가진 개미가 자기 몸무게의 5천배까지 의 물질을 들어 올린대요. 인간이 들어 올리는 역기와는 게임이 안 되는 거죠.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중요한 건 무아가 되면 무한이 됩니다. 개미가 하는 건데 인간이 못하겠어요? 내가 번뇌와 이기심을 놓아버리면 무한입니다. 아마 개미도 어떤 순간엔 자기 몸의 5천배의 무게를 드는 무한의 힘이 나오는 차력 같은 걸 하는 거겠죠.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요. 얼음덩어리가 있어요. 얼음덩어리는 무겁잖아요. 거기다 열을 가하면 물이 됩니다. 그 물이 끓으면 허공으로 떠요.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얼어 있는 냉정한 존재래요. 사랑을 하면 따뜻해지듯이 마음에 열을 가해보세요. 열심히, 열정적으로 자기 몸을 막 불태우는 거예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타오릅니다. 빛이, 등불이 됩니다. 그래서 ‘법등명 자등명’ 그러는 거예요. 네, 법을 끊임없이 연마해서 스스로 법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태우고 번뇌를 태워버리면 지혜의 당체가 됩니다. 거기에 법의 세계가 열리고, 법의 등불이 됩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 힘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백세시대에 걸 맞는 마음 만들기</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께 ‘잘 되게 해주십시오’하면 잘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함으로서 번뇌 망상이 녹아지고 그 마음 가운데 말과 생각과 행동이 부처님을 닮아가니까 공덕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무문관에 들게 해서 하루 20시간씩 참선을 시켜보면 어떤 경지에 올라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과거 같으면 화내고 신경질 낼 일도 없이 부처님을 닮아가는 본성의 세계, 자유와 여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패혈증 환자들을 모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하는 실험을 했어요. 기도를 받은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박테리아 수의 증가나 감소정도, 또 여러 가지 항체의 생성정도를 관찰한 거죠. 그랬더니 정말 기도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나더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제가 당부 드리겠는데, 항상 기도하고 참선하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세요. 그러면 몸 안에 강한 면역력이 생성됩니다. 백세시대에 걸 맞는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해요. 마음 안에 윤리와 도덕성이 자리해야 해요. 모든 것은 생각의 결과물이거든요. 이 몸은 질량체입니다. 질량은 에너지라는 건 제 말이 아니고 아인슈타인의 주장이에요. 에너지는 파동이고 생각은 마음의 파동입니다. 부처님 직설이에요. 염파는 강한 힘을 가지므로 어둠의 자식들을 물리치는 힘을 갖는 거죠. 면역력이 강해질 수밖에요. 백일기도, 천일기도를 해보세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참선하시구요. 그리고 부처님 경전을 가까이 하세요. 요즘엔 하루 온종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몸 안에 독이 꽉 차게 됩니다. 디톡스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차크라를 시키는 거예요. 독으로 인해 회로가 막혀 있으니까 회로를 뚫어주어 몸과 마음을 연마해가면 신을, 부처를 알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이 세상을 부처님처럼, 극락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렸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입니다.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을 다해야 해요. 시간이 금이라는 건 불후의 잠언입니다. 이 순간을 금쪽 같이, 의미 있게 보내야 합니다. 자기에게 충실하지 않는 것은 죄에 해당합니다. 불안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할 때에 와요. 그것이 죄가 되고 업장이 되는 거예요. 몸을 불살라 만중생의 깃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제대로 산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삶이 반복됩니다. 그런 걸 윤회라고 부르잖아요. 순간이 영원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몸은 불타오르고 있어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부처님의 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본성은 자유이기 때문에 속박된 이 껍데기를 열정으로 불살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의 불길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거예요. 당장 우리는 육안으로만 보잖아요. 육안이란 전부 물 아닙니까. 눈으로, 수정체로, 망막으로 된 이 눈으로 봐봤자 얼마나 잘 보겠어요. 화엄경에서‘부처님은 무한한 눈으로 다 보고 계시다’했어요. 내 마음의 눈을 열어 가면 지금 이 눈이 아닌 또 다른 눈을 갖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에 있는 대사 분자는 1분에 하나씩 바뀐다고 합니다. 지금 병원에 계신 분들이라면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제행이 무상인 것처럼 유전자는 계속 바뀌어갑니다. 부처님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거예요. 췌장세포는 하루에 몽땅 다 바뀐대요. 인생은 동영상입니다. 지금도 계속 바뀌어갑니다. 우리가 누굴 딱 떠올리면 금방 영상이 떠오르잖아요. 그 영상은 없던 게 생겨난 겁니다. 내가 부처님 생각하는 그 순간마다 부처님의 힘을 머금은 입자가, 파동이 몸과 마음을 바꿔나가는 거예요. 항상한 것 없이 무상입니다. 절망이나 좌절하지 마세요. 이 몸 자체가 환영이고 그림자일 뿐입니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에요. ‘정말 참회합니다’하며 살아가세요. 참회 없는 자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참회 없는 자는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참회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기도는 부처님 기운을 머금어가는 진심으로의 참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참법과 전법은 우리의 숙명과 같은 의무입니다. 나만 이렇게 절에 나올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함께 오세요.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하고 그 법을 널리 전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부처님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업장 따라서, 애착 따라서 왔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나 자신을 불태워 그 열정으로 주변 많은 사람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촛불 한 자루로 얼마나 많은 촛불을 켤 수 있습니까? 정진의 정도에 따라서 이 우주를 다 덮을 수도 있습니다. 애착과 집착을 불사르고 보리심, 보살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SPAN></P>2017-12-13 오후 3:31:53일심이 정하면 다심이 정화되고, 다심이 정하면 국토가 청정해지고, 국토가 청정해지면 법계가 청정해진다 /Media/law/Read.aspx?db_cnt=749&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진정한 참회</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전에 나와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자비심과 보리심입니다. 여기서 보리심은 깨달음, 지혜와 연결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의 바탕이 되는 이 두 가지 기준에 미흡한 삶을 살다 보면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습니다. 계(戒)를 파하는 삼독 번뇌가 고요한 마음 가운데 파문이 일어나게 해요. 번뇌는 부처님, 불보살님에 대한 신심이 약화되고, 부처님 전에 귀의할 줄 모르는 이기심에서 생겨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이 점점 노화되는 원리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어요. 그들은 늙음을 의식이 탁해진다는 의미와 같다고 정의합니다. 고식적인 관념, 이기심이 점점 강해집니다. 나이가 들면 자기를 잘 고칠 줄 몰라요. 마음이 틀에 박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된다고 하잖아요. 동심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마음청소, 참법(懺法)이라 하는데요, ‘내가 알게 지은 죄, 모르게 지은 죄를 정말 참회합니다’하는 보리심의 원류이고 자비심의 원류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독성의 원류가 번뇌심이라 한다면 번뇌를 내려놓는 마음이 자비심이고 참회심입니다. 나(我)라고 주장할 만한 게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 몸의 대사분자가 1분마다 하나씩 바뀌어갑니다. 2주 정도 되면 적혈구가 싹 바뀝니다. 4주가 되면 백혈구가 다 바뀌고요. 백일이 되면 우리 몸의 세포들이 한 바퀴를 돌아 완전히 다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우리가 법당에 나와 부처님 말씀을 생활화하는 이 마음이 중요한 거예요. 많은 사람이 신심을 잊고 살거든요. 믿음을 잊고 살다보니까 참회심도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맑질 못해요. 세포가 맑질 못하니 유전자가 탁해지고 노화가 빨라져 결국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거죠. 계를 잘 지키는 것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방법입니다. 경전에는 참회(懺悔)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참(懺) 자는 하늘에 대한 부끄러움이요, 회(悔) 자는 주변사람에게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참회하면서 스스로를 맑히는 거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도 마음을 맑게 하도록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참괴(慙愧)하다의 참(慙) 자는 끊임없이 선행을 하는 마음이고, 괴(愧) 자는 남이 선행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참은 안으로 수치를 느끼는 것이요, 괴는 내가 남에게 나의 잘못을 드러내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참회를 밥 먹듯 하는 게 아니라 기도를 밥 먹듯이 해야 맞습니다. 타 종교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밥 먹을 때 마다 기도합니다. 밥 먹듯이 기도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제게 하는 질문입니다. “스님, 왜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부처님, 제가 알게 지은 죄, 모르게 지은 죄, 참회합니다’라고 기도하라고요. 두 번째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재물과 관계있다면 재물은 베풀어야 들어오는 거니까 작은 거라도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을 내라’고 합니다. 세 번째 절을 한 번만 하더라도 부처님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라는 지극 정성의 마음, 공양 올리는 마음, 회향을 발원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일이 안 풀리는 이유는 진정한 참회가 없어서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보리심은 부처님에 대한 최고의 공양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 말씀을 음미하고, 불심을, 신심을 장양시키는 그 마음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주변사람들에게, 인류에게 뭔가 보탬이 되는 마음인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친한 사람 만들지 말고 원수도 만들지 마라</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보살님은 자식도 원수라 그러고, 남편도 원수라 그래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틀린 말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원수가 친족과 권속이라 하셨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경에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하신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한테 잘 해줄 때는 사랑하고 잘 안 해줄 땐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랑은 전부 조건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에요. 사랑은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그와 하나 되기 위한 결단입니다. 때문에 실제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원수가 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일이 너무나 많잖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예요? 친족과 권속입니다. 예수님도 제자 유다가 배신을 하고 부처님도 처남 데바닷따가 배신을 했어요. 친한 사람끼리 문제가 됩니다. 너무 친한 사람 만들지 말고 또 원한 갖는 사람도 만들지 말아야 해요. 부부로 살다가 헤어지면 원수가 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정말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에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선지식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라, 부모는 너희로 하여금 삼악도에 가는 걸 면케 하지 못한다’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리 뭐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러나 부처님과 선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삼악도로 가는 걸 막아줄 수가 있습니다. 선지식의 은혜, 부처님의 은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좋은 말을 듣고 남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 머리가 나쁜 사람이 된대요.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만방에 펼쳐야 되거든요. ‘네가 주변사람을 존중한 연고로 사람들이 너를 존중하고 따르게 되느니라’이래요. 남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는 건 주변사람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예를 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라면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를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그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낱낱이 국민에게 퍼져가니까 그래요. 세월이 흘러갈수록 인간의 마음은 승진을 하듯이 더 높이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을 잘 닦아가야 합니다. 괜히 짜증내고 화를 내면 주변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원수가 한량없이 생겨요. 부처님 말씀대로 사람들은 항상 내 몸이 있는 줄만 알고 남의 몸이 있는 줄은 모릅니다. 나의 고통만 알고 남의 고통은 잘 몰라요. 자신을 바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바로 하라고 자꾸만 얘길 해요?</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호흡할 때 마시는 산소는 보통 안정된 산소입니다. 그러나 활성산소는 노화의 주범으로 작용합니다. 암을 일으키는 원흉 가운데 하나죠. 자동차가 에너지를 태우면서 나오는 배기가스 중 하나가 활성산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한 활성산소가 건강을 해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기도를 해보세요. 마음의 안정 상태, 선정 상태에선 활성산소의 양이 점점 줄어듭니다. 운동도 과다하게 하지 마세요. 활성산소는 몸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주범 중의 주범입니다. 마음이 들끓으면 활성산소가 생긴다고 보면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래서 요즘 활성산소를 감소시키는 항산화제가 인기잖아요. 그런데 항산화제도 중요하지만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 참회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면 나쁜 정보가 온몸을 돌아다니고 그 정보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장본인이에요.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자녀들을 위해서도 짜증부리고 화내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 참회해야 해요. 잘못된 정치의 상당부분이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게 정경유착이나 편향된 어떤 사회경제정책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불평등을 조장합니다. 사회 곳곳의 어느 누구든 다 중요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마부작침, 끊임없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에요? 적토산성, 흙을 쌓아서 산을 만든다든지, 적수천공,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든지, 우공이산, 어리석은 인간이 산을 매일같이 한 삽씩 푸다 보니까 자손만대로 가면 산을 움직인다고 했어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작게라도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하늘이 돕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끈기를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돼요. 참회해야 되고요. 국민 모두가 참회하는 가운데 풀어가야 합니다. 내가 잘못을 참회하면 나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니까 다른 사람에게 복을 짓게 하고, 다른 사람도 온전한 길로 가게 하니까 양수겸장이 되는 거예요.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고쳐보세요. 내가 바른 사람이 돼야 아들딸을 바른 사람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공부하라’ 그러면 안 해요.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들도 배워나갑니다. ‘너희가 참법을 봉행하면 태양이 모든 중생을 비추듯이 보살의 마음이 살아나서 네 삶의 모든 어둠을 걷어갈 것이다’ 그랬습니다. 태양이 모든 어둠을 걷어가는 것처럼 참회를 하면 내 마음 가운데 자리한 보살의 도심(道心)이 밝아져 어둠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식물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학자들이 식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합니다. 그 이유가 식물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능력 때문이래요. 식물의 활동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데 식물도 소셜 미디어를 주고받는 거 아세요? 조사에 의하면 어느 삼림지대에 솔잎혹파리가 날아와 쑥밭이 되었는데 그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의 동일한 삼림군에는 솔잎혹파리가 전혀 접근을 못한다는 겁니다. ‘이상하다’ 하면서 그 솔잎혹파리 균을 멀쩡한 삼림군에 속한 나무에다 뿌려봤어요. 그랬더니 희한하게 솔잎혹파리가 점점 죽어가더래요. 학자들이 면밀히 조사해보니 나무들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뭔가 부정적인 균들이 침입하면 과거에 그 바이러스를 이겨냈던 미생물들을 빠르게 찾아낸답니다. 그리고는 해를 끼치는 균을 물리치고 그 정보를 허공에 퍼트린다는 거죠. ‘솔잎혹파리들이 쳐들어와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 너희들 조심해’하는 것입니다. 미연에 준비하자는 거죠. 나무들에게 필요한 저항성과 면역성을 길러 온 숲에 퍼트린대요. 나무들에게도 자비심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들도 생명을 가름하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한 이론을 만들었는데‘말하는 나무 이론(</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Talking</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333333; FONT-SIZE: 9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tree</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333333; FONT-SIZE: 9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theory</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333333; FONT-SIZE: 9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이른바 3T라고 해요. 이미 학술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식물이 면역성 정보를 주변에 퍼트리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눈귀코혀몸으로 외부경계에 계속 반응합니다. 눈으로 좋은 것만 보도록 애쓰세요. 보는 대로의 운명이고 듣는 대로의 운명입니다. 나쁜 걸 보면 나쁜 게 만들어져요. 참회를 하면 내 몸과 마음 가운데 자비심과 보리심이 강화되면서 좋은 물질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마음 안의 오염 물질을 녹아내리게 합니다. ‘부처님, 잘못했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해보세요. 내 마음과 몸이 정화됩니다. 유전자의 대사분자가 1분에 하나씩 바뀌어나가는 판인데, 원자 전자 광자가 안 바뀌겠어요? 좋은 마음을 가지면 엔돌핀이 나온다 그랬잖아요.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우리 몸에 최상의 물질이 만들어져요. 매일매일 새로움으로 살아가야 해요. 내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물질이 생겨날 수 있겠어요? 혁신은 자기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서 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끊임없는 실수와 실패를 이겨내는 곳에서 성공이 오는 것처럼 끊임없는 혁신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기참회에서 옵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가운데 집중력이 강화됩니다. 집중은 수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어떤 아이디어를 잡아내는가 하는 능력인데 스티브 잡스가 선(禪)을 했던 이유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거였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하려면 마음이 우선 맑아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거장들, CEO들은 구루처럼 산다고 그러잖아요. 요가수행자들의 스승을 구루라고 하는데 그들은 정말 구루처럼 청신하게 산다고 해요.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집단들은 함부로 살 수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참회가 없는 자에겐 미래가 없다는 건 부처님 직설입니다. 참회가 없는 자에겐 번창이 없어요. 마음을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항상 얘기하잖아요.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앉혀놓고 “자, 오늘 열심히 산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하자. 백팔배 하자.”라고 제안하는 거예요. “아빠는 오늘 직장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걸 털어버리고 내일 또 열심히 살자.”해야 합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그럴 수 있잖아요.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자신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감, 그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연민이란 말과 사랑이란 말이 비슷한 말 같습니까? 아니에요. 연민이란 말은 자기불신과 동의어입니다. 사랑은 진정한 자기사랑이에요. 사랑은 존경과 믿음을 수반하고, 연민은 자기에 대한 가엾음이랄까,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을 동반하는 마음인 거죠. 연민은 일종의 과잉보호 같은 겁니다. 현대는 인공지능의 시대거든요. 인공지능 시대엔 항상 긴장하고 참회하는 마음이 아니면 한 번에 훅 날아가는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걸 제일 우려합니다. 인류 모두가 참회하는 마음, 성찰하는 마음, 반성하는 마음으로 가지 않으면 안돼요. 페이스북을 하는 인구가 20억 명을 넘어섰다고 나오잖아요. 잘못하면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원각경 보현보살장에 나옵니다. ‘일심이 정하면-내 한 마음이 깨끗해지면, 다심이 정화되고, 다심이 정하면 국토가 청정해지고, 국토가 청정해지면 법계가 청정해져서 그 자리는 불보살과 신장들의 옹호를 받는다’가정은 물론 직장, 나라,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가 복 받을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참회입니다. 참회가 없는 자에게는 내일의 문이 없어요. 참회는 선법의 왕입니다. 3일간이라도 열심히 참법을 해보기를 당부 드립니다. </SPAN></P>2017-12-13 오후 3:30:22상대방은 내 마음의 투영이다. 상대방은 나의 운명이다. 나의 미래이다/Media/law/Read.aspx?db_cnt=748&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 상대를 대하는 것에 내 삶의 길이 보인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행복의 법칙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그 법칙은 나의 성공과 성취, 행복이라는 것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서 나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내가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 삶의 공덕과 지혜는 만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축구나 농구 등 운동경기를 보면 경기를 격렬하게 하면 꼭 어시스트라는 것, 누군가가 절묘하게 패스를 해주어야 공을 넣고 득점을 합니다. 평상시에 상대방과 관계를 좋게 가지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들이 나의 성공을 가름 짓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고,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다면 성공이 쉽지 않습니다. 큰 성공이든 작은 성공이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인연, 인과라는 말이 모두 같은 말입니다. 팔만사천대장경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다 같은 말입니다. 서로서로에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면 그것이 과거, 현재, 미래에 작용을 하는 것이니 인연과 인과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살생을 하지마라. 도적질 하지마라. 사음 하지마라. 말도 마찬가지로 망어중죄, 기어중죄, 양설중죄, 악구중죄 등 악업을 짓지 말라는 천수경을 매일 수지하고 독송합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과보가 무서운 것입니다. 과보는 업의 근원이 됩니다. 과거 생에 지었던 망어로 인해서, 거짓말을 하니까 상대가 무시하는 겁니다. 불신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생각을 깊게 해서 깨우치고 수행을 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지장경을 보면 지은 잘못에 대한 업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더듬거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기어의 과보라 합니다. 이간질을 하다보면 주변에 적들이 많아집니다. 과거 생에 연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 사람은 과거 생에 말을 함부로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전부 상대를 대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살생을 자꾸 하게 되면 단명 보를 받게 됩니다. 자기의 목숨으로 갚아야 합니다. 도적질을 하면 잠깐을 잘 살수가 있지만 내내 빈궁하게 된다고 합니다. 빈 천보를 받게 됩니다. 탐, 진, 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심, 진심, 화내고 분노하는 것에도 과보가 따릅니다. 순간 화내는 마음으로 살생을 하고 어리석어서 공부도 안하고 공부를 안 하니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나 어려운 곳에 태어나게 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몸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서 우리 삶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고 갈고닦은 것도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점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다 하는 점수가 나옵니다. 상대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니까 나의 성공이나 성취들이 보잘 것 없어집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말과 생각과 행동이 파탄의 길이 되기도 하고, 긍정의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분수령, 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남편과 아내는 매일 눈을 뜨면 만나고 꿈속에서도 만나는 상대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인연입니다. 가족 간의 만남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매일 의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남편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저렇게 말하는가 보다, 아내를 대하는 자세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저렇게 대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에서 미래의 훌륭한 남편과 아내를 만드는 일들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들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얘기를 해서 공부를 잘하기는 했는데, 가정의 파탄이 나고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아들딸들이 빗나가고 하는 것이 부부가 저지른 과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상대를 대하면서 펼쳐지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그대로 아들딸, 그들의 인생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고 합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남편과 아내도 가족이전에 상대입니다. 상대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와 내 자식들의 가는 길이 정해집니다. 위대한 성자들이 하나같이 사랑과 자비를 말합니다. 힘들 때 일수록 인내하며 삶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한 것인가를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행을 하여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 제대로 불심을 가진 사람만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범죄심리학에서 범죄자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함부로 말하다 보면 범죄가 파생되기도 합니다. 치솟아 오르는 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니까 순간적으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희망을 걸 것은 교육밖에 없습니다. 교도소를 방문해보면 한숨만 가득 나오게 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았던가?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 상대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는 불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 담긴 거대한 경전을 만들어 사람공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인생을 잘살자는 것이 상대를 잘 만나서 상대방을 잘 대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상정하는 얘기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수명 보, 질병, 용모, 위덕, 빈천, 존귀, 재물, 지혜 이런 것들이 다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잘살게 하고 상대의 수명을 증장시키고 방생하고 그들을 잘 다스리면 나의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상대에게 잘하세요. 상대방이 나에게 모든 선물을 가져다주는 존재들입니다. 가정도 기업도 나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잘 도와야 상대가 나를 잘 도울 것입니다. 만백성의 어버이다. 내가 왕이다 나라의 대통령이다 하는 사람들은 일구월신 국민들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의 명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명을 재촉합니다. 남들을 편안케 해야 내 몸과 마음에 병이 덜 할 것입니다. 삶을 도모할 때 펼쳐지는 여러 가지 재앙들이 상대방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면 나의 용모가 좋아집니다.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상대를 대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어떤 사람이 링컨대통령에게 공부도 잘했고 훌륭한 사람을 천거 했는데 그 사람을 채용을 하지 않았답니다. 왜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인간은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데 인상이 안 좋았다고 했답니다. 전부 상대방이 나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덕, 덕성이라는 것 상대에게 잘해야 덕성스러운 내가 되는 것입니다. 빈천, 천상, 귀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의 인상을 보면 귀인, 귀골상이 있는 가하면 천상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남에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귀하게 대하면 내가 귀한 용모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다음에 남 탓을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자꾸 남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 모든 삶의 성공과 영광은 상대방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성현들은 항상 상대에게 잘하라고 하였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사섭법이 있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안아주고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남에게 잘 베풀라는 보시섭이 있고, 상대에게 사랑의 말을 하라는 애어섭, 상대에게 득이 되는 이로운 행을 하라는 이행섭, 상대의 일을 한마음이 되어서 도와주라는 동사섭이 있습니다. 아주 간명하지만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얼마나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가, 정성스럽게 사랑의 말을 했었던가, 상대의 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던가를 우리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마음이 아플 때는 세월이 약입니다. 한 삼 개월쯤 지나면 약화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픈 자리는 상처가 나고 흉터가 생깁니다. 지나고 나서도 그 흉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령 상대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더욱 성숙한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흉터가 아주 오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용감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도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흘러가는 갠지스 강의 물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은, 안타깝게도 물은 이미 흘러가버린다는 겁니다. 누가 나를 아프게 하면 물처럼 흘려버려야 합니다. 마음가운데에 있는 나쁜 마음들을 자꾸 버리고 내려놓고 부처님께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불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처님의 가피를 충분히 받게 될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 나에게 제일 중요한 대</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상은 상대방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삶을 살면서 나에게 제일 중요한 대상은 상대방입니다. 내 마음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내 마음의 투영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것인가 말과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마음을 갈고닦고 수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화엄경에 보면 화가 나면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불을 독송하라고 합니다. 네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는 가. 잘 통제할 수 있는 그 마음이 희망이다. 관용과 이해와 아량과 용서만이 나의 희망입니다. 상대와 나와의 사이가 악화되어 있으면 그 마음이 점점 더 나빠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경을 설하신 이유입니다. 누구를 미워하면 결국 자신이 더 나빠집니다.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은 교육입니다. 법은 연마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는 교육입니다. 항상 좋은 생각과 말, 행동을 하고 항상 기도를 하라는 이유가 두뇌에서 연마되는 교육이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두뇌가 가지고 있으니 매일 기도하는 것이 차곡차곡 저장이 됩니다. 정보를 보관하는 양은 무한한데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저장할 수 있는 양이 많이 없습니다. 공자는 스스로 공부를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공부가 계속되어서 성인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공부하라는 취지로 팔만사천대장경을 계속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육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무의식 잠재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감이 쌓이고 당당해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우리는 이 땅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다 미숙아입니다. 왜 여기에 왔는지 왜 사는지 모릅니다. 왜 사람이 서로 만나야 하고 아픔을 주고 받아야하는지, 왜 법을 공부를 해야 하고, 왜 불심을 가지고 정진해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범죄 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관계를 영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자들의 소산이라고 하고 자꾸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잘 대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말을 자꾸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그러는지 자신을 잘 모릅니다. 부부가 서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운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문제를 풀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며, 그 문제의 해답, 문제의 풀이 방법을 제시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 즉 경전 속에 담겨 있습니다. 개시오입(開示悟入). 법화경에 나오는 이 말은 깨달음의 길을 열어 보면 문제 해결방법이 있다는 말 입니다. 문을 열어서 보여주고 그 길을 가기위해서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문제에 당면하게 되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되는가. 인생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입니다. 나에게 성공을 가져 다 주는 사람, 실패를 안겨주는 사람, 전부 다 상대방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가 뜨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가라앉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육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내가 상대를 만나서 얼마나 잘 지내는가,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하는가에 결정됩니다. 그래서 상대와 항상 잘 지내려면 내가 상대에게 좋게 하려는 의지로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기심을 내려놓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상대방과 나사이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해, 관용, 용서를 해야 합니다. 상대가 용서를 하고 이해를 한다면, 또 다른 상대는 참회를 해고 감사해야 된다고 합니다.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와 나 사이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전생에 지은 업을 탕감하고 녹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자람이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참회해야 합니다. 살인범을 교화를 통해서 죽을 때까지 참회를 하게 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형제 폐지제도가 있는데 생각을 진지하게 해 봐야할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은 미숙아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상대방을 대할 때 내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참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을 하여야 합니다. 누구나 다 사랑을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네가 눈을 뜨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사랑과 자비의 씨앗을 뿌려주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말씀 공부하신 분들은 사랑의 씨앗, 공덕의 씨앗을 많이 심으셔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죄에 대한 업이 있으니까 받아야지요. 인간의 마지막 희망의 보루 같은 것은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불하는 날까지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항상 공부하는 사람, 항상 준비하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기회가 포착되는 것입니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라 하늘에서 항상 황금의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릇이 안 되니까 못 받는 것이다. 그릇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니까 항상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을 다스릴 줄 압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화가 날 때마다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 열심히 독송하다보면 기도가 분노를 이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데 사랑할 원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나의 업보입니다. 업보를 탕감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하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으면 부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은 죄를 자신이 녹이기 위해서라도 그를 응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의 법칙이 그렇습니다. 상대방은 내 마음의 거울이므로 내가 행 한대로 합니다. 내가 받는 것은 과거에 행한 대로 오는 것이지 용서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맡기면 됩니다. 상대방은 나의 그림자이고 나의 모든 성공과 성취, 실패조차도 상대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방은 나의 운명이다, 상대방은 나의 미래다 하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이웃,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이 사람이 나의 성공을 좌우하는구나, 이 사람이 나의 어시스트구나 도움을 못 받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은 나의 운명이고 나의 미래이고 나의 과거의 그림자입니다. 용서보다 내 업장이 소멸되는구나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상대방이라는 세 글자를 항상 마음가운데 새기고 상대방에게 잘해야 되고 상대방이 나의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임을 명심해야 합니다.</SPAN></P>2017-11-08 오후 2:50:22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다. 평등한 마음 가운데에 나와 남이 없다/Media/law/Read.aspx?db_cnt=747&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생각은 화살</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우리는 항상 ‘허공은 부처님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매일 이야기해도 허공은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어요. 그런데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고 그래요. 마음이 부처다, 그러니까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맛볼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게 마음인데, 그게 허공과 꼭 같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경전마다에 ‘허공은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모든 것이 실린다는 거죠. 그래서 마음을 보배라고 그럽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잖아요. 부처님 말씀에도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로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착한 마음을 쓰면 그 말과 생각과 행동 또한 그러하리라. 흡사 수레를 따르는 바퀴자국과도 같이’그랬어요. 말과 생각과 행동에 마음이 담깁니다. 문제는 마음이 허공처럼 불생불멸하다는 거예요. 마음이 영원하다는 거죠. 생멸(生滅)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흔히 마음씨라고 그러죠. “저 사람은 마음씨를 잘 써.” 이른바 말이 씨가 된대요. “저 사람은 말씨가 아주 좋아.”말이 씨가 되고, 생각이 씨가 되고, 행동이 씨가 된다는 거예요. 말 한 마디가 영원한 생명체가 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릇된 말을 하면 영원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해도 그 죄와 업장 또한 심중합니다. 행동도 마찬가지에요, 몸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이처럼 말과 생각과 행동은 생물입니다. 살아 있다니까요, 씨앗입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곧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경주 최 부자 집의 가훈을 보잔 말이에요. 첫째,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정경유착하지 말라는 거예요.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세상에 내놔라. 욕심 부리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라는 뜻이지요. 셋째, 절대로 흉년이 든 해에는 땅을 사지 마라. 가진 자로서 없는 자를 착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넷째, 오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라. 인정을 베풀어 적을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다섯째, 사방 십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 상부상조하라는 뜻입니다.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에게는 3 년 동안 무명 삼베옷을 입혀라. 검소, 절약하라는 의도입니다. 부자가 되는 데도 윤리와 도덕이 있다니까요. 불가(佛家)에선 항상‘육바라밀다행’ 이러잖아요. 모든 것이 말과 생각이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생각으로 짓는 걸 탐·진·치 삼독이라고 하는데 생각은 운명이 됩니다. 생각이 길을 열어가는 거예요. 교육의 어떤 근본목적 가운데 하나는,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계속 몰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뭔가를 모색하는 가운데 창의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바라 매클린톡은 항상 몸과 마음을 다해 궁구했다고 해요. 서양철학의 비조 소크라테스도 ‘나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들은 ‘하부르타’질문식, 토론식의 교육을 한답니다. 하부르타 교육법이야말로 철저한 창의성을 키워줍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지속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도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분명 해결책이 나온다고 그러잖아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립니다. 생각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자꾸만 궁구해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불교에서는 늘 염불(念佛), 부처님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염궁문이라, 부처님 문중은 생각으로 끊임없이 화살을 날리라는 거예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난 항상 물리학만 생각하고 물리와 논다’고 말했어요. 그는 마침내 노벨상을 받았죠. 버틀런드 러셀은 사람은 정말 생각하기를 싫어한다고 질타했어요. 금강경을 보세요. ‘수보리야 어의운하’하면서‘네 생각이 어떠하냐?’ 이렇게 묻잖아요. 자꾸만 생각을 하니까 집중력이 강화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니까 그 궁극은 부처님 나라로 가게 되는 겁니다.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은 남들이 못 가본 전인미답의 경계를 간 자들입니다. 스스로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거죠. 부처님 말씀에 생각은 현실과 영원의 접점이기 때문에 생각을 계속 물고 나가면 영원의 장에 간다고 합니다. 생각은 화살입니다. 몸 신(身) 자 옆에 활 궁(弓) 자를 붙여서 몸 궁(躬) 자라고 그러잖아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궁구해야만 되는 존재예요. 항상 육념심의 ‘부처님 생각하라, 법을 생각하라, 스님을 생각하라, 계행 지킬 걸 생각하라, 남에게 베풀 걸 생각하라, 그리고 하늘이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우리는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매일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해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둥 하면서 말 한 마디가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고 하잖아요. 벌써 상대방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의 마음을 지레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하면서 쭈뼛거리면 ‘저 사람은 뭔가 불안하구나’라고 추측하게 돼요. 선한 사람은 벌써 말에서 풍기는 게 남다릅니다. 말은 말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에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부처님도 금강경에서 항하사의 칠보로 보시하는 공덕보다 부처님 말씀을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법공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셨어요. 남을 해치는 말은 자기 몸을 해치는 거와 똑같아요. 남을 해치는 말은 남을 도끼로 찍는 것보다 자신을 도끼로 찍는 것과 같고요. 말 가운데 진정성이 없으면 불신을 받게 되고, 말 가운데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없으면 서운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거칠고 매정하게 대하면 반감을 사게 되고, 인간관계가 틀어집니다. 말씨 하나가 성공과 실패의 분기점이라니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말에 마음이 담겨요. 생각에 마음이 담긴단 말예요. 행동에 마음이 담기기 때문에 말과 생각과 행동의 그 마음은 바로 영원과 통합니다. 하루를 살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덕이 되는가, 해악이 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씨이고 씨는 영원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잖아요. 감 씨 하나를 심으면 몇 년 있다 감나무가 나오고 그 다음엔 감이 끝없이 열린다고.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에 마음을 담는 이상 우리의 업도 영원합니다. 우리가 조금 늦더라도 절대로 조급해하지 마세요. 수행 이상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포춘지에 앞으로 2050년이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500대 기업의 70퍼센트 이상이 문을 닫게 될 거라는 보도가 나와 있습니다. GMO라고 들어보셨죠?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른바 유전자조작 식품이라는 건데 최근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들 가운데 암에 걸리는 환자가 자주 발생해 그 이유를 FDA(미국식품의약국)에서 조사했습니다. FDA에 따르면 아이들이 과자를 많이 먹는다는 거예요. 그 과자 가운데는 옥수수로 만든 시럽이 들어 있고요. 몬산또나 카길 같은 다국적 종자기업은 콩의 유전자를 조작합니다. 콩을 잘라서 심어보니까 모양이 찌그러져요. 또 다른 부분을 잘라 심으니 색깔이 달라지고요. 어떤 부분을 잘라냈더니 병해충에 약해요. 이런 저런 문제를 제거하고 콩 모양만 나오는 유전자를 추출해서 콩을 속성 재배하는 겁니다. 병충해에 강하고, 저장을 오래 할 수 있지만 본래 콩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사라진 완전 쭉정이 콩이 탄생합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그런 유전자가 조작된 콩과 같은 식품이 엄청나게 많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가정에서 자주 먹는 방울토마토도 유전자조작식품이에요. 특히 소나 가축의 사료로 쓰는 알팔파라는 식물도 유전자조작물입니다. 인간은 자연계와 하나인데 종자에 손을 대서 쭉정이로 먹고 있으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씨라고 한다면 그 씨앗 속에 좋은 건 다 빼버리고 나쁜 말, 나쁜 생각, 나쁜 행동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근데 이제 하나 더 심각하게 생각할 게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적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허공이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에서 떨어져 나온 새들에게도 단계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산책을 할 때 보면요, 이른바 참새나 뱁새부터 까치, 까마귀, 솔개 등 단계에 따라 하늘을 나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층이 달라요. 까치는 아무리 팔랑거려도 까마귀만 못합니다. 또 까마귀 보다 높이 나는 솔개, 매가 있어요. 뜨는 자리가 다 다릅니다. 인간은 발을 땅에 붙이고 사니까 일정한 수명을 채우면 떠나야하지만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저는 부처님 경전을 보니까 이해하겠어요. 인신난득, 맹구우목이라잖아요. 사람들은 헐렁헐렁 ‘에이, 경전에 나온 얘기겠지’하지만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으로 가는 것도 어려운데 지옥·아귀·축생·아수라들이 인간으로 오려면 그것도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런 우리가 여기 지금 이렇게 와 있잖아요. 인간으로서 선한 마음이 아닌 악심, 독이 묻은 빵을 나의 아들한테 줘 봐요. 독 묻은 빵을 친척한테 줘 봐요. 큰 죄예요. 우린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러잖아요. 이제 신중해야 합니다, 진지해야 해요.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마음 챙기기</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불교대학을 나온 보살님인데요, 전에는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해요. 그런데 주변에서“너 능인불교대학 한번 가봐라.” 그래가지고 마음을 내서 법당에 오게 됐는데 그 후 부터 우선 잠을 잘 자게 되더래요. ‘아, 이상하다. 법당에만 갔다 오면 잠을 잘 자게 된다.’ 네,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마음이 담기게 되는데 좋은 마음으로 기도를 하니 주변에 있던 무수한 인연 영혼들도 따라서 편안해지는 거예요. 여러분은 무심히‘내가 법당에 나간다’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과 인연 있는 인연 영혼들도 항상 같이 나오세요. 이걸 절대로 잊으시면 안 돼요. 제가 평상시에 왜 기도하라, 참선하고 명상하라,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라고 아우성을 치는지 아세요?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일미진중함시방, 작은 티끌 안에 우주가 들어있듯이 하나가 전체라고 그랬잖아요.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이기적인 존재로서 영원과 통해 있는 것입니다. 당장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허공이에요. “너 말 조심해.” 이게 문제가 아니라 말 한 마디 할 때도 어떤 마음을 담고 하는가, 영원성을 띠는 것일진대 허공 가운데 인연중생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했죠? 그 책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 모두가 가장 큰 원수가 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하잖아요. 우리는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이 상대방에게 열 가지를 잘해주다가 하나만 잘못해도“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래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큰 원수가 되고 큰 원결을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은 희망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내일의 문을 열어줘요. 순간순간 깨어 있으라는 게 바로 그거거든요. 내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작은 생각 하나를 할 때마다 화두를 놓치지 마세요. 그러면 흑암 굴에 떨어집니다. 말을 염불 기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조심이 가능합니다. 근데 생각은 좀 어려워요. ‘저 자식 소리 안 나는 총 있으면 빵’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손가락으로 탄환을 날리는 격이니 남이 그런 마음을 지니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음경에‘남을 저주하지 마라, 남에게 저주받을 일도 하지 마라’합니다. 저주가 바로 화살이고 총입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생각은 곧 누군가에게 날아가거든요. 만약 생각에 저주하는 마음을 담아 보낸다면 남도 죽지만 우선 나도 죽어요. 그 업이 이 몸을 등진 다음에 드러나는 겁니다. 이런 생각 하나가 큰 죄가 되니까 생각을 잡아가려는 위대한 수행방법으로‘간화선’, ‘이뭣고’, ‘무-’의 화두를 드는 거예요. 항상 일어나는 생각을(mindfulness)을 챙겨야 합니다. 순간이 영원이라는 생각을 놓치면 안 돼요. 화두일념, 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서양에 재미난 말이 있어요. 과거는 흘러가버렸잖아요. 미래는 오지 않았잖아요. 근데 현재는 Present, 이른바 순간이라고 그러죠. 근데 Present는 현재이면서 선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순간이 선물이라는 거예요. 이 순간이 선물인데 이걸 잘못 쓰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나쁜 생각은 놔두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아니, 영원히 정년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이니까요. 그러니까 나이가 많든 적든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건 근로구요, 돈을 안 받고 하는 건 공덕이에요. 우리가 사는 아파트 주변의 쓰레기라도 줍고 약수터 가다가 불이 켜져 있으면 끄기도 하세요. 예전에 스위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어떤 마을의 창가에 전부 다 꽃이 있더라고요. 어떤 집의 창가에 꽃이 있는 게 예쁘니까 옆집, 옆집 하다 마을 전체가 자발적으로 꽃동네를 만들게 된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무아(無我)는 연기(緣起)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른들과 상의를 합니다. 중요한 게 있는데요, 여러분은 부처님의 아들딸입니다. 부처님은 실제로 ‘너희는 나의 외동아들 같다’고 그랬거든요. 부처님은 영원의 어버이시니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선 부처님과 좀 상의해 보세요. 부처님과 이야기를 나눠 봐요.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부처님께 기도해보세요. 부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귀 기울여 보세요. 우리는 현실세계 속을 살기 때문에 영원과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통로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결국 생각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생각을 끊임없이 맑고 깨끗하게 해나가야 하는데 그게 선(禪)이고 그게 수행(修行)이에요. 그게 부처님 나라에 당도하는 길입니다. 요즘 창의성, 창조성이란 얘기를 많이 하고 아이디어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다 부처님 경에 나와 있는 거예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끊임없이 궁구하고 가다보면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끊임없이 연마할수록 밝아질 수 있습니다. 법등명 자등명 그러잖아요. 수지신시 광명당 그러잖아요. 자꾸만 공부하면 등불이 되고 광명의 깃발이 돼요. 만중생의 인도자가 됩니다. 우리가 갈고 닦은 만큼 뜨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부처님 말씀 따라 살면 그 공덕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뭐 천당이다 극락이다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명심할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만 인연중생이 있는 게 아니라 허공에도 무량한 인연중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생각 하나 말 하나 행동 하나도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야 육신이 움직이지만 마음에도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갈고 닦은 수행의 정도만큼 뜨는 거예요. 아무나 뜨는 게 아니에요. 나와 인연 있는 허공중생들의 마음을 좀 풀어줘야 합니다. ‘해원결진언’원결을 풀어주소서 하는 진언이에요. ‘옴 삼다라 가디약 사바하’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수행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죄와 업장 때문에 이렇게 하나의 물방울처럼 살고 있습니다. 물방울도 하나의 풍선처럼 표면이 있잖아요. 그 껍데기는 허상입니다. 바늘로 톡 터트려 봐요. 툭 터져버립니다.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뭔가 잘 되려 하지 마시고 우선 수행부터 잘할 생각을 해보세요. 높이 올라가봤자 추락할 때는 경황이 없습니다. 나의 자기를 사랑한 자가 남의 자기도 사랑합니다. 행복은 추구하거나 모색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발견하는 거예요. 우린 영원한 학생이고 우주는 영원한 배움터입니다.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걸 다시 깨닫고 발견하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 따라 살아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중요성을 모르니까 남의 중요성도 모르는 거죠.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 우주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되는 존재는 자기 자신입니다. 나의 자기를 사랑하세요. 살아가면서 음식도 중요하고 물도 중요한데 수행을 통해 나이를 잘 먹어가야 된단 말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모두가 화속에 살다 화를 입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적들이 기뻐합니다. 화내지 마세요. 욕망의 불길, 번뇌의 불길을 잡아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앉아서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 하세요. 한 오 분, 십 분이라도 좋아요. 그럼 마음의 불이 꺼집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무- 하세요. ‘이뭣고’ 하셔도 좋습니다. 무아(無我)란 내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 무아는 연기(緣起)란 뜻입니다. 모든 만상은 하나로 인연 지어진 세계란 것입니다. 나만 잘났다는 게 아니에요. 무아는 모두가 인연 따라 존재하며 모두가 하나라는 거예요. 아상(我相)은 허상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사는 세상은 태어날 때 부모 만나는 것에서부터 불평등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존재는 평등해요. 전부 불평등 속의 평등이에요. 불평등과 평등을 조화시키는 거, 그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평등한 마음 가운데 나와 남이 없는 무아가 있어요. 불평등을 평등으로 승화시킨 인간이 보살이에요. 불평등과 평등 가운데 어떤 괴리를 메워가는 존재들이 부처님이고 이 우주가 요구하는 인간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에 대한 자비심을 내고 세상을 사랑하세요. 무아를 깨달은 자는 번뇌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영원히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정년이 없어요. 불평등한 세계를 평등한 세계로 승화시키려면 할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은 생명체입니다. 그냥 생명체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체에요. 그것들이 모여서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되는 겁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원자, 전자가 되는 거예요. 이 우주에 죽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참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무심히 허공에 독심을 쏘아 올릴지 모르거든요. 불평등 가운데 평등을 지향하는 무아의 삶이 우주의 연기를 구현하는 보살의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SPAN></P>2017-11-08 오후 2:23:14연등을 밝혀라. 세상을 밝혀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미를 알라/Media/law/Read.aspx?db_cnt=746&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중도를 지키며 흔들리지 않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서사시를 얘기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또 인도가 나은 시성 ‘시타칸트 마하파트라’도 있습니다. 그들이 쓴 서사시들의 공통점을 보면 하나같이 전쟁을 바탕으로 합니다. 트로이전쟁의 목마 얘기가 있고, 또 마하바라타에서는 바라하타족과의 결정적인 전쟁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 속에는 현대 학자들도 대단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야기로 나옵니다. 그 안에서 핵전쟁 얘기가 나와서 도무지 어떻게 저 먼 과거에 그런 게 있을 수가 있을까? 지금과 같이 핵전쟁의 모습을 고대의 서사시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과학이 최고조로 발달했다고 하는데 몇 만 년 전의 고대 기록에 핵전쟁 얘기가 나오는 건 참으로 이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전쟁을 해오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쓰러지고 사라지고 그 연원은 우리의 마음가운데 있어서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우리내부의 전쟁이겠지요. 어느 정치학자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전쟁을 벌이는 결정적인 모티브는 정의다. 우리들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만의 얘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전쟁을 일으키는 원흉이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고 다 자기들이 옳다고 합니다. 친구들하고 말다툼을 하다보면 어때요. 저 친구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상대방도 똑같은 얘기를 해요.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기 마음도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내 마음의 내면에서의 전쟁이,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피곤해지고 힘든 것이 전쟁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갈등의 요인이 있겠지요. 자식을 낳으면 낳는 대로 즐거움도 있으나 수많은 고통도 따라오게 됩니다. 공부를 잘해야 되고, 학교도 진학을 잘해야 되고, 시집도 잘 가야 되고, 배필을 잘 만나야 되고, 여러 가지 직장문제, 사회에서의 일들이 계속 있습니다. 경기가 위축되고 그러면 물건이 안 팔리고 크게는 나라의 문제가 되고 그러다보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사는 게 국제적인 것도 마찬가지로 다 어려워집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와서 제일 처음에 말씀하신 게 고통의 해결입니다. 그래서 고집멸도를 말씀하셨고 그 고통을 푸는 방법을 부처님께서는 도를 닦는 길이고 팔정도를 말하였습니다. 바르게 보려면 바른 공부를 해야 되고 정법을 바탕으로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이 모두를 항상 마음으로 다스리며 실행을 해야 합니다. 니르바나, 열반을 얘기합니다. 죽음 다음의 세계 사생관이 분명해야 된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천당과 극락, 니르바나가 다 비슷비슷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잘 모르니까 그런 얘기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선 당대에 중도를 말하였습니다. 중도는 중심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디에서나 흔들리지 않고 애욕이나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플러스나 마이너스를 따지지 않고 중심을 잡고 가는 겁니다. 세상은 지금 정의라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 때문에 모든 전쟁이 생겨나고 전쟁의 원흉이 됩니다. 모두가 다 자기들이 옳으니까, 이제 적당히 타협하는 사회주의도 나오고 여러 가지 나왔습니다만.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중도를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다면 전쟁이나 싸움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열반이나 극락은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에 누구 한사람이라도 그의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내 마음도 불편하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란 누구든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 전체가 전부 다 모두가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 열반이나 극락이란 세계는 자성미타, 자성극락 부처님 말씀이 열반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마음을 닦고 이 세상에서 부처님 말씀 따라 살면 여기서도 얼마든지 열반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열반이라는 곳이 우리의 생명에 어떤 종말이 왔을 때 가는 게 아니라 최종 결말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마음이 끊임없이 갈등하긴 하지만,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네 마음 가운데 무명이 사라졌을 때 열반이 온다고 합니다. 빛이 됩니다. 무명이 사라지면 광명이 되는 거니까 무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열반은 분명히 실현됩니다. 불교에선 모든 만상이 전부 다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게 전 우주를 포용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 하나 잘 다스리면 만사가 편안해 집니다. 우주도 세계도 내 마음에서 나오고 내 마음에서 사라집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사업을 하다 손해가 많이 났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빚진 걸 갚았다고 생각하자 그래버리면 안타깝지만 마음 하나, 생각하나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나를 치열하게 괴롭히고 아프게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겠지요. 부처님은 마지막까지도 악마와 싸웠습니다. 누구에게나 미운사람이 있어요. 우리들 마음가운데 있어요. ‘내가 그 친구한테 뭔가 잘못했었나보다’ 그렇게 마음한번 다 잡으면 미운마음이 조금은 사라집니다. 누구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마음을 가지면 내 마음만 불편해집니다. 밉다는 생각도 마음에서 내려놓으면 가벼워집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도 다 집착이라는 생각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의 마음은 참 이상한 마음이 있어서 몸에만 면역력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면역력이 있나 봅니다. 어두운 곳에 서보면 처음엔 눈앞이 캄캄해서 주변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도 조금 지나면 조금씩 밝게 보입니다.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영화관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도 몸과 마음의 눈을 뜨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눈을 뜬 자는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눈을 감은 자가 무명입니다. 눈을 뜬 자는 밝은 곳을 볼 수가 있으며 그래서 깨닫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당연히 스스로 잘 닦아가다 보면 부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자성미타요, 자성불천이라 네가 여기서 극락세계가거나 아미타부처님 세계 가는 마음을 닦지 않는데 어떻게 거길 갈 수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계속 갈고 닦으면 운명을 개척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자기 운명의 개척자이며 창조자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하늘에 달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연못에도 달이 뜨고, 강에도 뜨고, 바다에도 뜹니다. 달이 비치는 곳, 달빛을 받을 수 있는 곳에는 모두 달이 뜹니다. 곳곳마다 다 뜨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 달이 뜨는 것이 마음가운데 부처님 계시다는 의미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부처님 계시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이 드는지? 여기에 전쟁의 역사 대서사시가 보입니다. 오래전 지나온 사람의 삶의 역사나 지금의 삶이 모두 전쟁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자비와 인내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해도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완전성을 실현해버리면 열반이지만 완전성을 실현하기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중생이며 인간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우리에게는 인연의 고리가 언제나 연결되어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부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으며 어렵지만 공부하여 열반으로 가야 합니다. 고통가운데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의 진리를 찾아서 노력하며 불심을 키운다면 즐거움의 세계, 니르바나 즉 열반에 도달하게 되겠지요. 진리가 하나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전쟁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진리성이 부족해서 지혜가 부족해서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이 결여되어서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통스런 이 땅에 왔는가 하면 부처님말씀에 따르면 진리성의 결핍입니다. 진실성의 결여는 사랑의 부족이라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우리가 공기 속을 걸어 다니는 건 덜 힘들어요. 그냥 걸어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기압이라는 것에 기압골이 있어서 어렵지만 공기는 이겨내기 어렵지 않아요. 물속에서 살면 어떻게 될까? 물고기는 유선형처럼 생겨서 물의 압력을 잘 이겨낼 수가 있으나 물은 압력이 너무 커서 물속에 사는 생물들은 공기 속을 사는 생물보다 더욱 힘이 들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의 압력을 이겨내야 하니까 더 내려가면 이 지구에도 안에 들어가면 저 물속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명체들이 있어요. 지구의 꼭대기라고 일컫는 산에는 용암이 굴러다니고 있어요. 지옥도 불지옥과 유사한 지옥이 그곳이겠지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옥을 보게 되면 저 밑 땅속을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은 또 다른 지옥이 있습니다. 지진 같은 재앙이 따라다니며 인간을 위협하고 있어서 더욱 의지할 곳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당장 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별나라 얘기를 하는데 반짝이며 빛나는 그 안에도 용암이 떠오릅니다. 지진 같은 거 우리가 사는 세상도 봐요. 지진이 나니까 집이고 뭐고 다 없어지고 그냥 우뚝 솟았던 백십 층짜리 미국 뉴욕에 있는 큰 건물이 두 개가 삽시간에 포탄에 사라지고 쓰러져 버립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5분도 안돼서 무너져 내리고 먼지만 팍 나는데 그 먼지가 한 십분, 십오분 정도 지나더니 흙먼지 속에서 큰 건물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어요. 큰 건물들이 중간에 폭약을 장치하니까 그냥 씻은 듯이 사라져버립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전부가 존재하고 귀로 들으면 존재하는 것들인데 근데 이게 허망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명이라는 것, 정말 힘이 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생명을 돈을 주고 사기도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병원에는 정자, 난자 은행이 있어서 생명을 잉태하는 정자와 난자를 보관했다가 사고팔기도 합니다. 살다 보니 별의별 케이스가 많거든요. 어떤 여인이 남편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꿈속에서 남편이 아들이 절을 하니까 갑작스럽게 그냥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이제 이 상은 내가 받아야 될 상인데 네가 왜 받느냐면서 갑자기 남편이 앉아있는데 멱살을 쥐고 싸우더라는 겁니다. 너무 상서롭지 않은 꿈이라서 가슴이 아프고, 그래서 제가 조용히 물어봤더니 입양한 아이라서 친부가 따로 있어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정자를 물려준 아버지와 키워준 죽은 아버지의 젯밥을 두 그릇을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뫼를 두 그릇을 올려놓아야 되요. 그래서 가끔은 제사를 지낼 때 뫼를 두 그릇씩 올려놓는 집이 있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자기 아인걸 아는 거예요. 죽은 다음에도 친부와 삶과 죽음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보세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초파일날 감 씨를 하나 심으면 오년 후 초파일날이 오면 감나무가 자라서 감이 열립니다. 그럼 감이 매년마다 수없이 열리고 세월이 흐르다보면 감나무가 죽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그 감이 없어집니까? 끝이 없어요. 죽어버린 나무에서 자란 감의 씨가 땅에서 키우고 또 키웁니다. 없어지지 않는 겁니다. 우주가 멸하지 않는 한 인연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인연이 실처럼 다 연결돼 있어요. 법당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는 전생과 지금과 내생까지 연결되어 있는 인연의 소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부처님과 불심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당장 여기서 보면 우리들이 행하는 모습 속에서 부모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들딸이 외국유학을 갔거나 군대를 갔거나 애들이 항상 눈으로 마음으로 봅니다. 거리에 상관이 없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요. 부처님도 부모님처럼 항상 하신 말씀이 너희들은 나의 자식과도 같다고 합니다. 아들 내려 보내서 전혀 나 몰라라 이러지 않아요. 제가 수행을 해서 체험을 한 거사님들한테 부탁한 게 뭐냐 하면 배우고 감사하라. 오늘부터 이젠 보통사람들인 우리들도 해보면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이른 바 수호신들이 다 있습니다. 삶을 도모하면서 이 땅에 딱 내려오실 때 저승에서 중음 신들이 공부를 합니다. 공부하고 난 다음에 죽음을 통해서 휴식을 통해서 또다시 태어납니다. 저승에 가거나 다음 생에 가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할 지 생각해 봅시다. 업을 닦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한생 한생마다 공부해야 될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전생 업보를 따라서 닦는 것이 살아있는 동안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바다가 있고 파도가 있는데 불교에선 업파 라고 합니다. 우리가 바다 같은 존재에 비유를 한다면 우리의 삶을 파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다하고 파도하고 다르지 않고 한 몸입니다. 우리는 진리성이 모자라고 사랑이 부족하니 사랑을 공부해야 됩니다. 우린 정말 진실하질 못하잖아요. 완벽하게 진실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거짓말도 잘하잖아요. 망어중죄, 기어중죄, 양설중죄, 악구중죄 사랑도 모자라 탐진치 살생중죄, 투도중죄, 사음중죄, 중죄가 많은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통은 바로 죄의 값이라고 말합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대로 눈이 멀고 귀가 안 들리고 전부가 다 교육적인 이유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윤회와 열반 그 영원을 가려는 무량한 중생들은 전부 이 땅에 열반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생사열반, 윤회열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바다와 파도가 하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빛이 들어가면 어둠은 사라집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경전에 재미난 게 나오는데 인간이 후회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 열 가지가 나와요. 첫째로 살아가다가 아 이거 잘못했는데 마음가운데 부처님이 질타하는 거예요. 인신난득이라 사람 몸 받기 너무 어려운데 사람 몸 받았으면 쓸데없는 일에 평생을 낭비하는 일,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마세요. 두 번째 쓸데없는 일에 생명을 낭비하는 일이 후회의 원인이 된다. 그 다음에 뭔고 하니 기가 막힌 거예요. 불결한 속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 이거 안 돼요. 세속적인 일로 너무 인생을 소모적으로 쓰는 거, 법신의 본성을 제대로 모르고 이승의 환영에 취해 사는 거, 그 깨달음을 얻기 전에 거룩한 스승과 헤어지는 거, 그 다음에 어리석음으로 신심과 소원을 부수는 것, 다음에 자기가 아는 공부를 세속적인 일로 탕진하는 거, 숭고한 가르침을 제대로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람을 싫어하고 관계를 부인하는 일 이걸 예사처럼 하고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데 싫어한다고 관계를 부인하고 인연을 부인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다음에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을 쓸데없이 무관심으로 보내는 거, 딱 후회막급한 일들 이예요. 후회스러운 일 하지 마라. 공부하러 왔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요. 부처님께서 연꽃이 되라 그랬잖아요. 더러운 곳에 뿌리박고 사는 연꽃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워라. 등불이 되라. 마음 가운데 너희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바다와 파도사이는 둘이 있느냐? 하나라고 합니다. 바다는 아니지만 그 파도라고 하는 거 하나하나 바다에서 나온 거니까요. 바닷물 한 방울이 바다라고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바닷물 한 방울에 바다의 성분이 다 들어있다고 항상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법신이고 보신이고 화신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은 다음에 천당, 극락 이런 얘기하지 말고 여기서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하늘에 달이 떠 있어요. 우리는 달이 훤히 비추니까 스스로 빛을 내는 것으로 알지만,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나는 겁니다. 달은 햇빛에 극히 적은 부분만을 반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빛나는 세계 때문에 삶에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어 빛을 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어 깨달음으로 빛의 길로 이끌어주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단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이 인간으로서 참된 길을 인도하는 것인지 제대로 보며 공부하여야 합니다. 잘못 배우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전쟁을 면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종교가 옳고 어떤 종교가 그르다 이렇게 말하는 건 아주 바보스러운 짓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깨고 스스로의 무명을 깨는데 총력을 다 해야 됩니다. 빛이 들어가면 어둠은 사라지니까 자꾸만 빛을 쏘이는 거죠.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자꾸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언젠가는 부처님이 돼야 되고, 지금도 부처님이어야 합니다. 바다와 파도와 관계 같은 거죠. 항상 부처님 말씀대로 중생들의 등불을 선물하라, 연등을 선물하라, 연꽃을 선물하라, 항상 연꽃이 되라 그러셨잖아요. 항상 깨어있으라.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환상이라고 말씀하셨고, 진짜로 눈뜬 사람, 모든 진짜로 눈뜬 사람들은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쓰러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을 뜬 자 그자는 최고의 승리자라고 합니다. 운명을 사랑하고 금생에 나와서 만난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 자녀들 다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다 나에게 금생에 주어진 어려운 상황이 주어진 것도 나에게 공부하고 닦기 위해서 주어진 상황이라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삶과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생을 위하는 등불이 되고 자신을 위해 인내하며 연꽃을 피워내야 합니다. 스스로가 끊임없이 연마하고 연꽃이 되고, 연등이 되고, 등불이 되는 게 정말 우리의 운명 같은 것이고 숙명 같은 것입니다.</SPAN></P>2017-11-08 오후 1:52:09응보는 정의와 자비로 인도하기 위한 배려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45&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인생은 흡사 연극</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지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습니다. 죄인을 감옥에 보내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새사람이 되게 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로 표현합니다. 인과응보란 단죄의 목적이기보다 어떤 배움을 통해 정의롭고 자비로운 인간 사회로 거듭나기 위한 우주의 근본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법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떤 벌이나 법칙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그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예를 들어 사바세계에서 10명을 살상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목을 열 번 칠 수가 있겠어요. 한 번 사형, 그러면 그만입니다. 옛날에는 부관참시라고 그래서 묘 속에 들어가 있는 시신을 끌어내어 흉악한 벌을 주는 예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열 명 또는 백 명을 살상한 사람과 실수로 한 사람을 살상한 사람 둘 다 죄의 경중에 따라 두고두고 그 죄 값을 받는다고 하셨어요. 인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고,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세세생생 그 과보를 받아나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천억이나 되는 많은 돈을 남에게 손해 끼쳤다 치면 이 우주는 그가 천억을 벌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그가 그만한 돈을 갚을 때까지 이 우주는 유예한다고 그랬어요. 우주의 법칙은 단죄하기에 앞서 기다려줍니다. 그러다 천억 부자가 한 번에 날아가는 거, 일조 부자가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거 보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정의롭고 자비로운 것이지요. 영원을 가면서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는 것인데 우리가 삶을 도모하면서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정말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간은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배역이 주어집니다. 남편으로, 아내로, 또 한 직장의 직원으로, 임원으로, 사장님으로 이렇게요. 어떤 배역이든 그 배역을 맡아서 자신을 연마하기로 이 우주와 약정이 돼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것은 전부 과거생의 연원을 둔 내용이라는 거예요. 어떤 배역이든, 지금 억울하기 짝이 없어도 기꺼이 맡아서 열심히 연기해야 합니다. 인생은 흡사 연극과도 같습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와 있듯이 어떤 정해진 법칙이 약정돼 있어요. 작용반작용의 법칙, 인과잖아요.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성불하기 전까지는 한대로 받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아프게 했다면 그 아픔을 다시 내가 받으면서 이기성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계속해서 육신을 갖고 이 땅에 내려오는 이유는 험난한 경험을 통해 느끼고 깨달아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로는‘왜 이렇게 힘든 일을 나에게 시키시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겠죠. 그런데 거긴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세요. 연기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눈을 치켜뜨고, 탁자를 탕 치고’등등 상황마다의 제스처가 시나리오 안에 자세히 짜여 있잖아요. 고민하는 표정, 고통스러운 표정, 부러 실수하는 행동, 그런 게 모두 대본에 쓰여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 가운데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아, 저 사람 굉장히 너그러운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잖아요. 똑같은 책을 봐도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 다릅니다. 디테일 하나가 예삿일이 아니라니까요. 미세한 세계에도 각자의 다른 마음이 흘러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는 어떤 것 하나도 우연이라는 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통스럽다 칩시다. 그 고통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돼요. 더 깨달아라, 이거죠. 고통은 내가 맡은 배역의 일부입니다. 고통을 피하려하는 건 배역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응징이 가해집니다.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어떤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평행우주</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허망하다고 그러고 환영(幻影)과 같다고 하는 걸까요? 사실 욕망은 별 볼 일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그 욕망을 이기는 마음자리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광활한 우주가 우리의 마음을 다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지혜와 자비로 슬기롭게 풀 것인가, 아니면 패악적으로 풀어 많은 사람을 도탄에 빠트려 괴로움을 줄 것인가. 만약 욕망을 잘못 풀게 되면 그 업보는 더 커집니다. 인생설계의 많은 부분이 과거생과 연결되어 정해지잖아요.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해나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우주가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우리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를 죽으라고 이 땅에 내려 보낸 게 아니에요. 역경을 잘 이겨내서 마음자리인 영원에 얼마나 눈을 뜨고 사느냐가 숙제인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은 항상 ‘너희의 근본적인 잘못이란 영원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법이 불이요, 불이 법입니다. 법이 부처님이에요. 이 광활한 우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계입니다. 언제나 부처님과, 법과 상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더욱 더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내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참회할 때 이 우주의 거룩한 의지는 ‘아, 이 친구가 나름대로 깨달았구나.’를 압니다. 내가 잘하고 잘못한 걸 부처님이나 하나님 이전에 내가 먼저 아는 것입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해야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이래버리면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양심을 통해 틀림없는 응보가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광활한 우주는 무한입니다. 이 우주에는 나와 인연 있는 중생들이 한도 끝도 없이 널려 있어요. 그걸 아셔야 해요. 나는 외로운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여기까지 올 때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거쳤거든요. 그런 사실을 연구해낸 미치오 카쿠와 같은 과학자는‘광활한 우주에는 너의 분신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분신들은 너와 동일한 자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인연중생들이 우주에 널려 있기 때문에 그 널려 있는 존재들의 세계를 나와 동일한 마음의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평행우주라고 불러요. 무수한 ‘나’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원래 하나였으니까요. 어떤 형태로건 서로 하나로 다 연결돼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사람이 아주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하면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입니다. 간디를 20세기 최대의 영웅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는 부끄럼을 많이 타고 언변이 뛰어나지 않은 아주 인기 없는 변호사였어요. 하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푸대접을 받고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소명을 다한 나머지 결국 위인이니 성인이니 하며 불리게 된 겁니다. 어느 누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쌓아가야 합니다. 요즘 미국의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일론 머스크가 한 얘기를 들어보면 참 재미난 게 있어요. 부처님 얘기하고 비슷한 얘기예요. 자기가‘이렇게 한번 해보자, 저렇게 한번 해보자’하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보면 딸까닥 하고 하늘에서 아이디어가 내려오는 것 같대요. 허공에도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포진해 있음을 아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모든 질량은 에너지로 돼 있습니다. 에너지는 파동이니까 우리 주변엔 무한한 파동이 있는데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걸 저 광활한 우주의 그 누군가가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는 거죠. 일론 머스크는 광활한 우주의 무량한 별들의 세계에는 얼마든지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에너지가 불생불멸이라고 한다면 에너지는 파동인데, 우리 주변에도 파동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에도 파동이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일론 머스크의 생각은 틀리지 않아요. 그대들 주변에는 우주의 수많은 파동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도 99.99퍼센트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걷거나 물건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면세계에서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은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어요. 외부에 나와 있는 몸뚱어리 외에 내부에 있는 99.9퍼센트 것들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시련에는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람들은 하루에 보통 5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그러죠. 그 많은 생각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과 대등하게 움직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말대로 골똘히 궁리하다 보면 허공으로부터 답이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골몰하던 이들만이 답을 만들어내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광활한 우주는 사람의 마음을 훤히 다 읽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생각을 도야(陶冶)해야 합니다. 미국의 교도소에서는 티베트의 스님들을 배치해서 참선을 가르쳤다고 해요. 그런데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재범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자, 보세요, 마약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가 죄를 지어 감방에 들어갑니다. 그들이 감방에 오래 있다 보니까 마약과 알코올로부터 자연스럽게 해방됩니다. 그런 수감 생활을 거친 후 세상에 나와 보니 ‘아, 내가 과거에 정말 악의 소굴에 살았구나’하며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틀을 바로 보게 됩니다. 감옥에 다녀온 후 해탈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 후‘마약과 알코올은 여러분을 악마의 세계로 이끕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전도사처럼 마약, 알코올에 대한 해악을 얘기하고 다니게 되더랍니다. 그게 바로 해탈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다르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명으로부터 깨어나는 것, 구각을 탈피하는 게 해탈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이 땅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감옥에 가서 몇 년 형을 살면서 그 속에서 알코올중독자가 깨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우리도 감방에서 나가 해탈된 도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마약중독자에서 깨어나야 하는 거죠. ‘아, 이게 잘못됐구나’입니다. 꼭 감옥에 가야만 감옥입니까? 우리도 육신을 뒤집어쓴 감옥에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깨닫기 위해서 각자의 배역을 맡아 이 땅에 왔어요. 연기를 잘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그 배역에 따라 연기하다 보면 점점 대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약에 중독 돼봤으니까 마약중독자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처럼 부처가 되려면 마음 가운데 자리한 이기심을 녹여내면 됩니다. 자기가 맡은 배역에 따른 지혜와 자비로 잘 마스터해야 돼요. 그게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입니다. 그래야 다음 생에는 또 다른 배역이 주어진다니까요. 힘든 배역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도록, 이익이 가도록 슬기롭게 연출해 내면 그 다음에는 좀 쉬운 배역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놓인 각자의 자리마다에서 겸허히 감사한 마음,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한 마음으로 슬기롭게 연출해보세요. 짜증부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야 되는가? 왜 이런 시련 속에 살아야 되는가?’하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시련에는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교육의 목표는 다른 게 아니라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잘 발굴해내는 데 있습니다. 골이 깊은 만큼 뫼가 높다고 그러죠? 고통을 깊이 겪은 사람일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연기도 완벽해지는 법입니다. 고통의 깊이는 영혼의 깊이입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나태함으로 자신의 배역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곤란한 일이죠. 요즘 나이 50이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퇴직을 합니다. 그런 분들이 시간을 내서 템플스테이 형식으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절 일을 하면서 기도를 해보면 좋겠어요. 절에도 나름의 할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놀고 있는 재산이랄까, 이런 게 많아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미얀마나 태국의 젊은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절에 가서 살다 나오잖아요. 우리나라도 스님들과 기도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일본의 쇼무 천황에 대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쇼무 천황이 태자를 책봉을 한 거예요. 세자를 책봉하고 나면 기회를 놓친 다른 아들들이 책봉된 세자를 독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으니 세자를 책봉한 다음에는 세자를 절로 보냅니다. 오랜 시간 절에서 생활하다 보면 절 생활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일본은 한 번도 불교가 탄압받은 적이 없다고 해요. 대부분의 왕족들이 스님이 된다고 합니다. 홋카이도서부터 가고시마까지 큰 절들은 전부 다 왕족들이 들어가 살고, 그 왕족이 전부 도지사 같은 직위를 맡았다고 하니 왕족이 절에 들어와서 살다 보면 나라의 민심이 정화될 건 분명한 이치입니다. 우리나라의 실업 청년들도 저렇게 그냥 놀리며 놔둘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수행을 하면 좋겠어요. 일정한 기간 동안 숲속에 가서 살면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절 생활을 하면서 수행할 수 있게 하면 민심도 많이 완화될 텐데 직장이 없다고 계속 낭인으로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우주는 정의와 자비, 지혜의 세상</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개인적인 일을 하려면 컴퓨터를 로그인한다고 그러죠. 근데 한 번 로그인해서 올려놓은 건 쉽게 지워지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말과 생각과 행동의 모든 건 영혼의 컴퓨터, 마음의 컴퓨터에 기록됐다가 응보를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게 있으면 상대방의 상처의 깊이만큼 내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아픔을 느껴야 해요. 한 대로 받는 거잖아요. 상대방에게 준 상처의 깊이만큼 내가 아파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라는 것도 연극할 때의 소품에 불과합니다. 돈도 종잇장에 지나지 않아요.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종잇조각에 사랑이 담길 때 가치를 냅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를 낸 세계적인 기업가들은 돈을 벌어 인류를 위해 쓰겠다고 말하잖아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여러분의 기분이 말과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다 전이(轉移)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영혼의 감정은 영구히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항상 고즈넉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기분이 나쁘다고 성질부리지 마세요. 내가 과장이다, 임원이다 해서 아래 직원한테 함부로 하면 언젠가는 과보가 돼서 돌아온다니까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같은데도 그래요. 일론 머스크가 그랬잖아요. ‘우주 안에 나의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정보가 파동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이 우주의 뜻에 계합하고 살아가세요. 인과응보는 그 사람을 단죄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그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우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자비의 나라예요. 나에게 고통이 주어질 때 고통에서 얻는 교훈이 없으면 고통의 강도는 깨달을 때까지 커지게 됩니다. 지옥 아귀 축생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강아지도 감정이 있잖아요. 동물을 다루는 사육사는 동물의 마음을 압니다. 그들의 감정도 인간과 진배없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의 영혼은 우주를 돌고 돌면서 끊임없이 갈고 닦는 과정에 놓여있습니다. 윤회가 그래서 있는 거구요, 인과응보가 그래서 있는 거예요. 이 우주는 정의와 자비, 지혜의 세상입니다. 주변에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주에다 물으세요. 일론 머스크는 ‘하나님이다, 부처님이다’라고 얘기 안 해요. 우리 주변엔 간절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궁구해나가다 보면 ‘궁즉통’열리게 될 뿐입니다. 기분 따라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하나도 사라짐 없이 기록됩니다. 그것에 대한 응보는 보복차원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로 인도하려는 뜻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해요. 항상 끊임없이 질문하는 상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여러분의 앞길이 훤히 열립니다. 항상 우주에다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아가시기 당부 드립니다.</SPAN></P>2017-11-01 오후 2:48:59하나 되는 마음이 모든 번창과 번영이의 디딤돌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44&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1.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마정수기를 받게 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모든 물상들은 나름대로의 중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보면 무거우니까 움직이기를 싫어해요. 지구 중심에서 당기기 때문에 모든 물질들은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멈추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들은 정지 상태를 좋아하고 또 마찬가지로 외력을 가하게 되면, 움직이는 것은 운동 상태를 지속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만유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말하는 속에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습관처럼 우리는 한해를 시작으로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정진해야 됩니다. 정성스런 마음을 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움직이면서 변화해야 합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변화하려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삶의 프레임이나 자기가 오랫동안 지녀온 어떤 방식들을 파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을 파괴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쌓아 올린 거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만히 두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이것이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 말합니다. 선뜩 어떤 변화를 일으켜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특히 여자나 보살님들 중년 노년 이런 분들은 뭔가 변화를 싫어하지요. 왜 그럴 것 같아요? 여성들은 아이들을 키워야하며 가정을 수호해야 하니까 쉽사리 변화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또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 청년이나 소년들처럼 힘이 왕성하지 않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외지에 갔다가도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고향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낡은 골동품이 녹이 나도 골동품을 사랑합니다. 왜 그럴까요. 녹이 난 고가의 가치나 향수를 지우지 못하는, 옛 것에 대한 친밀감이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이 힘이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되어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들었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삶을 원한다면 혁명을 해야 하고 자기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룹 총수들은 직원들에게 마누라만 놔두고 다 바꾸라고 그러고 계속 개혁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속도 싸움이니까. 생각에 스피드가 없으면 속도가 기업을 흔들어 놓고 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를 만들고 페이스 북을 만들고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누가 먼저 생각하고 실행하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는 속도 싸움이 기업이나 개인에게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면 도태됩니다.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치열하게 속도 싸움을 하는 거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젊은 친구들은 진보라고 합니다. 나이들은 사람은 보수주의라고 하고 나이가 들면 힘이 떨어지니까,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생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자신이 없으니 생활도 보수적으로 되고 사상적으로도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계절적으로도 봄여름에는 힘이 나고,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활기차게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개혁론자가 된다고 할까요. 사람의 사주도 계절에 따라서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나온 사람과 보름부터 월말까지 나온 사람의 패턴이 달라요. 아침에는 개혁론자가 됐다가 저녁에는 힘이 떨어지고 개혁론자들은 적극적이고 보수주의자들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개혁론자들은 실천적 힘을 가지고 나간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존심 따지고 내가 왕년에 어쩌고 하는 겁니다. 누구나 힘이 모자라면 주저앉아 버리거든요. 보수라고 하는 시스템들은 보수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으니까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에 저항감을 가지고 정신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서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낡고 손때 묻은 것들을 좋아하지요. 정취가 있는 것처럼 골동품을 사랑하고 골동품에 정감을 갖게 됩니다. 친숙성 있는 낡음에 정이 간다고 그럴까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원아불퇴보리심’이라 부처님도 같은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열반에 들으신 날 게으르지 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 마지막까지 부처님은 인생이 멈추면 도태가 된다고 합니다. 멈추면 과거의 타성에 죽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래되고 나아가기가 힘겨운 사람일지라도 골동품처럼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한계를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계속 나아가야 됩니다. 죽음이 한걸음 넘어서 내생이 있으니,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사람은 계속 시작에 기상을 가지고 매일 새롭고 새로운 일신의 꿈을 같지 않는다면 살아갈 가치가 없지 않을까요. 관성에의 법칙을 잘 알고 있다면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운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몸이 무거워지면서 병이 나게 됩니다. 매일 움직이려면 일정한 시간을 가지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원아불퇴보리심’은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불심에서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면 마정수기를 받게 됩니다. 언젠가는 곧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오래된 습관을 이겨내고 관성을 타파해야 합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일종의 의복 같아서 몸에 배어 있어서 벗지를 못합니다. 부처님 돌아가신 다음에 <내가 경을 펼친 이유가 무어냐 너희들의 중독된 마음 중독된 삶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부처님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삼독번뇌, 독이 머릿속에서 중독이 되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부정해 버리고 평정심도 잃어버리고 집착 속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며, 자기의 행동을 돌아봅시다. 마음 가운데 깨달음의 장이 열립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앉아서 참선도 해보고 제대로 안되더라도 노력을 해서 부처님과 하나가 될 때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열반에 묘한 불심이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물상들도 갈라질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동물과 식물도 우리가 동물과 식물로 나누어 말하지만 그런 모두가 하나의 생물로 되어있습니다. 동물이 탄산가스를 내뿜고 식물은 산소를 주고 서로서로 동반해서 살아가는 우주속의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부부가 둘입니까. 나눠져 있는 것 같지만 일심동체가 되어 삶을 살아갑니다. 거기서 생명체가 나오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2. 우리는 우리들 삶의 자세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정적으로 불우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혼한 사람이 셋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통계도 나와 있는 거지만 예를 들면 두 가지가 결정적인 요인이거든요. 하나는 혼외 부정을 저지르거나 또 하나는 성격 차이 때문이겠지요. 가만히 보면 연애 결혼한 사람들은 혼외 부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중매 결혼한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차이 때문에 이혼을 합니다. 이유가 왜 그런 가 했더니 연애 결혼했으니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된 그 한 사람밖에 모르니 부정을 잘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결백하게 너만 사랑했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면서 헤어지기도 합니다. 가정마다 다 케이스가 다르겠지만 결국 마음이 안 맞는다는 것이 이혼의 사유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감정의 차이점이 있겠지요. 인간이 먼저가 되어 서로서로 인간적인 면을 놓치지 않고 산다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요. 원만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것도 남녀의 감정으로 얽히어 왈가왈부하다 보면 부부간의 거리가 잘 좁혀지지 않아서 거리가 멀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애민정신으로 살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부정한 일도 차츰 사라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람들은 네 것 내 것 따지니 항상 번뇌 망상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상이 문제겠지요. 깨달음이라는 게 별것 아닙니다. 새벽별 보고 문득 깨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깨달음이 다른 게 아니라 개체에서 부터 떨어져 나와 우주와 하나 되는 과정 같은 거예요. 망상을 깨부수고 ‘나’라는 아상을 버리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고 삶이 어려워졌더라도 툴툴 털어버려야 합니다. 어차피 잊어버렸는데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사는 날까지, 괴롭고 아프긴 하겠지만 아픈 것을 이겨내는 게 큰 지혜고 자신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니까 덩어리져 있는 이 몸도 허망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으면 다 해체 되니까 가지고 있던 것 조금 내보냈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부처님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법당에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 중생들은 업이 많으니까 근기가 성숙되거나 말거나 자기 업 따라서 때가 됐거나 말거나 자기가 업 따라서 때를 만나는 겁니다. 좋은 시절을 만나는 사람이 있고 나쁜 시절을 만나는 사람도 업 따라서 좋은 나라에 가는 사람이 있고 나쁜 나라에 가는 사람도 있고 업 따라서 부처님 같으신 분은 원생이야 마음대로 골라갈 수 있지만 중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종족에 태어날 것인가 배달겨레에 태어날 것인가 어느 부모의 뱃속에 태어날 것인가 이게 전부다 업 따라서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생에 태어난 것도 업 따라 왔다고 봅니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 자연과 하나가 되고 순응하고 우주와 하나 되고 부부가 하나가 되어 순리대로 살아야 아들딸이 잘 크고 잘 살아갑니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남편의 부정 때문에 성격차이 때문에 그 외에도 폭력이나 알코올 중독이나 등등 이혼 사유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보면 혼외정사 부정이나 성격차가 대표적인 이혼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짓 하지 않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전부가 다 하나가 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다양한 사건들이 있지만 그 모두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잘못했다 아내가 잘못했다 사장님이 잘못했다 부장님이 잘못했다면서 남의 잘잘못을 꼬집으려면 그 회사 왜 들어갔으며 그런 부족한 사람을 만나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겁니까? 스스로가 하지 못하면 사회나 타인은 더욱 책임지지 않습니다. 내 가족이 된 것, 내 친구가 된 것, 내 회사가 된 것에 대한 의무나 책임은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책임지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사랑이란 끊임없이 친밀감을 가지고 하나가 되려는 마음과 서로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상태 같은 것입니다. 삶을 도모하면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의 삶 가운데서 남편이나 아내나 누구도 험담하지 말고 그 누구에게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스마트폰 가지고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야단을 쳐서 엄마랑 싸웠는데, 엄마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스마트폰에 대한 관점이 다릅니다. 엄마는 하루 온종일 친구와 몇 시간씩 전화하면서 자기가 전화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는 거예요. 엄마가 전화하면서 낄낄대는 것을 가지고 전화는 통신 수단이 아니고 오락 수단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애들은 전화기에 개념이 달라요 전화기를 가지고 노는 기계 오락기계로 봐요. 요금이 많이 나오든 적게 나오든 상관이 없는 거예요. 부모가 그렇게 가르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전화통 붙잡고 한 시간 두 시간씩 하니까 그것을 보고 애들이 전화기는 재미나게 얘기하는 도구구나 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통신 수단이 아니라는 생각의 관점이 어른의 모습을 통해 달라진 겁니다. 그런 것을 하지 말라 놀이기구를 쓰지 말라하니 싫어하는 거지요. 전화기는 통신수단이 아니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화기 가지고 한 시간 두 시간 통화하는 것은 좋은 짓이 아니에요. 스마트폰을 애들은 놀이 기구로 생각하면서 엄마도 그러는데 날보고 그러냐면서 야단을 치면 아이들이 통하겠어요. 우리는 우리들 삶의 자세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3. 하나가 되는 과정에는 변해가는 사람과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가끔 보이는 한국남자들 모습 속에 사회 활동을 하는 아내를 억압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인의 능력을 키워주고 능력이 모자라면 향상 시켜주려 하고 집에 가두어 두려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즈음은 드물긴 하지만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곳이나,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우리사회를 퇴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할 수 있는 영향을 키워줘야 하고,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같이 고양 시켜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가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겠지요.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신을 끊임없이 해탈시켜 가는 겁니다. 자기를 발전시켜 가는 것이며, 자기를 재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아내가 자꾸만 뭔가를 열심히 하려하면 남편으로서 부추겨주고 아들딸로서 엄마를 부추겨야 합니다. 우리사회의 원동력은 남자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의 사고나 엄마로서의 경험 등이 오히려 사회나 가정을 따뜻하게 이끌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남자만의 사회가 이제는 고루 남녀의 차별 없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권위만을 앞세우는 일은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남편에게도 기회를 주어 가사를 분담하며 함께 이끌어가게 하여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할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서로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하면서 열심히 살게 되면 어떤 보상이 따라 옵니다. 어떠한 인간상을 요구하는가 생각해보면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는 사고는 현존하는 삶에서는 어울리지 못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회 속에서 만나는 남자와 여자 등등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며 배려를 해야 하나가 됩니다. 요즘은 공부를 잘하는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군대도 안가고 사법 시험이나 행정 시험에 앞도적인 많은 사람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여성 두뇌 능력자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들, 내 딸. 내가 있는 곳에는 보편적인 가정과 사회가 있습니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가족이나 내 친구, 내 동료 등 모두가 하나의 마음을 가지며 가정과 사회를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 문득 새벽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며 깨우쳤다면, 새벽별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걸 깨친 겁니다. 이 우주가 하나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돌이켜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내를 미워한다거나 남편을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성격차이가 있어서겠지요. 마음이 흡족하지 않아서 그러니 서로를 흡족하게 해주고 조금만 마음을 배려한다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마음 자비심을 가진 마음이 쌓여있는 것을 다 풀어지게 합니다. 새벽별을 보며 깨우치고 느끼는 마음을 가지듯 내가 아닌 모든 사람과 사물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가 되겠지요. 항상 하나 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고 동서가 갈라져 있고 학연 지연 갈라져 있는 게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스스로 깨닫고 공부해야 할 게 많다는 겁니다. 그걸 붙여야 되니까 우리 국민들이 업이 두터워 서로 갈라졌다면 다시 붙여야 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 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위정자들은 더 많이 아파봐야 알게 될까요? 야당이다 여당이다 진보다 시끄럽게 나누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국민에게 화합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하나로 뭉쳐야 힘이 나오지 갈라져 있으면 힘을 잃어버린다는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입니다. 정세가 변할지도 모르는데 많이 갈라져 있다는 것은 많이 반성하고 많이 노력해야 되는데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한국의 부모들은 오래전부터 장남에 대한 우대 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장남을 우대하고 그러다가 장항하게 버림받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개인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하나라는 의식을 버리고 어느 하나만을 특별하고 특출하게 만들거나 대해버리면 결코 하나가 될 수가 없어요. 나누어지고 분리되는 것을 만들면 안 됩니다. 국가가 튼튼해져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려면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자꾸 남을 해하고 무시해버리면 결국은 자기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나라가 하나로 엮어지면 자연히 남북도 잘 화합하게 되는 지혜가 생깁니다. 시대에 맞추어 변해가야 합니다.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 속에는 내 것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대상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내가 아내를 생각하고 남편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고 이러면 이럴수록 그게 행복의 길이며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게 자기 창조의 길입니다. 변해 나가는 길은 하나가 되는 길이고 자의식을 타파하고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번뇌와 망상을 걷어내는 모든 과정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선, 명상, 기도는 조용히 앉아서 스스로 혼자일 때로 돌아가서 자기를 벗겨내는 과정입니다. 가정생활 할 때는 가정생활을 하면서 나를 벗어 던지는 그런 삶의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친절하고 나를 버리고 비우고 그게 변화입니다. 다른 게 변화가 아닙니다. 나의 고집만 세우고 자존심만 세우고 그러면 실천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변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변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자꾸만 변해 나가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을 만들어 갑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좀 더 좋은 제품 만들려고 애를 쓰다보면 생각에 속도를 내기도 합니다. 왜?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중퇴를 해가지고 그런데 매달리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생각을 하다보면 절정에 다다르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남이 하기 전에 먼저 하려는 마음들이 생각과 행동에 속도를 내게 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에게서 특허가 나오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혜택이 있어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변화해 가는 데 어떤 변화가 중요한 것인가 변화의 껍데기를 자꾸만 벗어나가는 삶이 그게 선적인 삶이고, 기도자의 삶이고, 구도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기도하면 하나만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껍데기를 벗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이겨 나가면 너른 세계를 얻게 되고 많은 가피를 받게 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lang=EN-US></SPAN></P>2017-10-25 오후 3:27:25헌신은 도를 위해서, 희생은 중생들을 위해서 자기를 던지는 용기의 산물이다 /Media/law/Read.aspx?db_cnt=743&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낙(樂)과 약(藥)</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행복하다, 즐겁다’라고 할 때 한자의 즐거울 낙(樂)자를 씁니다. 희락(喜樂), 낙원(樂園) 할 때도 즐길 낙자를 써요. 그런데 낙(樂)자 위에 초두변을 쓰면 약(藥)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에 고통이 있었는데 약을 쓰면 즐거움이 온다는 거거든요. 부처님 말씀 가운데 법은 약이라고 하는 ‘법약(法藥)’이란 말이 있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몸에 병이 나면 약을 쓰지만, 마음에 병이 나거나 영원의 길을 가는 수행자에게는 법약이 필수불가결합니다. 마음의 법칙과 몸의 법칙이 다르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도 결국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법당에 모여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떤 분이 그러세요. “제가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법당에 나오고 있는데 참 느끼는 게 많다.”그래서 “제가 뭘 느끼느냐?” 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예전에는 “너, 넋이 나갔냐? 일요일만 되면 법당에 나가서 뭐하는 거냐?” 그러더라는 거예요. 근데 한 10년 지나고 나니까 요즘엔 “야, 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훨씬 노화가 더딘 게 분명하다.”라고 얘기하더래요. 법당에 나오면 매양 하는 얘기가 지혜, 자비, 사랑이잖아요. 사랑은 나와 남이 하나 되는 거니까 그만큼 내 마음이 확장됩니다. 마음이 확장된다는 건 영원성에 점점 가까워지는 게 분명하니 그분 말씀 말마따나 노화가 덜한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해야합니다. 악행이란 결국 이기심이잖아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사랑의 마음은 선심입니다.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선행을 하며 사는 게 불교의 핵심이에요. 그 마음이 낙(樂)이고 약(藥)이라니까요.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면 상대방이 즐거워합니다. 우린 하나니까 인과응보, 하는 대로 받게 되니까 내 마음도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의 호르몬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요. 이 호르몬으로 인해 저절로 마음이 즐거워지는 겁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면 즐거워요? 안 즐거워요? 남에게 뭔가를 베풀 때도 옥시토신이 나오는 데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입니다. 사랑의 묘약입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성장하는 동안엔 늙지 않는다.”고 하셨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행복을 줄 수 있으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건 그만큼 나의 이기심을 녹여내니까 내 마음의 의식이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나의 의식이 맑아지는 지성적인 측면이 아니라 양심적인 세계, 의식의 어떤 경지를 말하는, 행복은 좀 고차원적인 그 무엇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헌신과 희생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요, 헌신(獻身)은 내 몸을 던지는 거예요. 도를 위해서 내 몸을 던지는 경지를 헌신이라고 한다면 희생은 중생을 위해 나를 던지는 겁니다. 헌신과 희생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사랑이 충만합니다. 그들은 다른 많은 중생을 위해 자기를 던지는 용기의 산물입니다. 용감한 행동이 어떤 현실의 지렛대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보세요. 그들은 한없는 혁신의 삶을 삽니다. 다윈이 말한 대로 자연의 생명체들은 계속 돌연변이를 하며 자기를 바꿔나갑니다. 우리의 몸 가운데 있는 세포들도 돌연변이 종(種) 같은 게 나타나 암세포가 되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건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이고, 자기의 운명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지혜는 사랑을 원만하게 하기 위한 행복의 기술을 터득해가는 능력입니다. 지혜와 자비는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바로 사랑과 자비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는 능력이나 기술 같은 것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법약(法藥)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런데도 우리는 탐진치(貪瞋痴)의 삼독심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욕망의 불꽃 속에 있는 겁니다. 활활 타오르는 이 욕망의 불을 좀 꺼줘야 된다니까요. 불을 꺼주지 않으면 몸의 내부에 염증이 생깁니다. 참회는 내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는 부정적인 재앙의 불을 끄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성품과 몸을 더럽히게 되고 내 안에서 곪아버려요. 또 내 몸과 마음이 더러워지면 남도 더럽게 합니다. 일심이 탁하면 다심이 탁하리라고 그랬거든요. 내 마음이 탁해지면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탁해지고 세상이 탁해집니다. 내가 나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가 있어요. 불법승(佛法僧)의 삼보를 따라 살아가세요. 법을 실천하면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왜 모셔야 됩니까?’라고 물어요. 부처님께 귀의하면 ‘지혜와 복덕이 구족해지고, 법에 귀의하면 네 마음 안에 있는 욕망의 불을 잡아나가게 된다. 욕심을 자꾸만 내려놓게 되면 너의 운명이 점점 완성을 향해 가는 길목에 서 있게 된다. 스님들을 따라서, 많은 대중을 따라 화합한 마음으로 살면 많은 사람이 너를 존경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러는 가운데 우리의 운명을 끊임없이 채찍질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항상 남을 의식합니다. 내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이런 생각을 해요. 인간의 두뇌는 혼자만 살기 위해 진화하지 않습니다. 이 몸뚱어리 자체가 더불어 살기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타인의 생각과 판단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심을 갖잖아요. 아리스토텔레스도‘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그랬듯이 인간의 뇌는 사회적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혼자 살기 위해서 진화한 게 아니에요.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지 않으면 뇌에 이상이 온다니까요. 자기 혼자 욕심만 따지면 치매라는 게 오잖아요. 치매란 사랑에 문제가 생긴 걸 말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 잘났다’ 그러는 거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병이 나면 돈을 주고 약을 사먹지만 법약은 돈 주고 사먹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은‘나는 좋은 의사와 같아서 너희의 병을 다 안다. 그래서 약을 처방해주는데 그 약을 먹고 안 먹고는 너희의 몫이다’그랬거든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처방전을 주셨지만 그 약을 먹지 않는 것은 각자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씀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랑은 상대를 상정하는 단어입니다. 사랑, 자비의 참뜻은 남들이 고통스러우면 내가 대신 등짐 져주고 남들이 즐거우면 같이 박수쳐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뇌는 사회적인 어떤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키워 가면 두뇌도 녹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풍요로운 정신세계입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지면 마음의 세계도 풍요로워집니다. 마음의 세계를 치료하는 데는 법약이 최고입니다. 진리는 약이거든요.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는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것입니다. 행복에 이르려면 욕망의 불꽃을 잡아가야 해요. 그 때 모든 사람의 몸과 마음의 질병이 잡아질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실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기관에서 그러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다, 4차 산업혁명이다 해서 과학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세계의 인구 다수가 직장을 쫓겨나게 될 거라는 걱정도 있어요. 그럼 돈 많은 부자, 자본가들이 세상의 돈을 모두 휩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돈의 70프로가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파레토의 법칙에도 나오지만, 어느 나라나 혁신적인 삶을 사는 존재들의 20프로가 나머지 80프로의 인구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인재의 법칙이라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인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풍요의 나라, 어떤 꽃을 피우는 그런 나라라서 그런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발굴해내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지혜롭다는 건 그만큼 내가 탐욕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겁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함부로 살지 않죠. 지혜는 자비와 사랑과 연결돼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기 자신을 깨달아갈 때 ‘아, 이게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구나’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랑을 하게 될 겁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공부한 사람,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은 남들을 사랑하는 데 좀 다를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수명도 다르겠죠. 나의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사람들은 아내의 자기도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나밖에 모르고 사는 저 여인, 나밖에 모르고 사는 저 남자, 그러잖아요. 사랑이라는 건 하나가 되는 거니까 사랑은 노력하면서,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사랑은 노력이래요. 그리고 기다림이래요.</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인재(人才)의 기준</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기다릴 대(待)자를 보세요. 두이(二)변에 절사(寺)자를 씁니다. 절은 끊임없이 수행하면서 그 무언가를 기다리는 곳이라니까요. 부처님을 기다리는 곳이고, 사랑과 자비의 길을 열어가는 곳입니다. 사랑은 노력하는 것이고 사랑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인내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더욱 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 대해서 의미 있게 깨달은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사랑을 하게 될 것이고, 좀 더 나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좀 더 나은 행복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 몸은 질량체입니다. 질량은 에너지로 돼 있고 에너지는 파동이에요. 그 파동에 마음이 담긴다고 그랬잖아요. 여러분이 이렇게 법당에 나와서 부처님 말씀 들으면 좋은 파동이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우리가 이 세상을 등지게 되면 파동의 당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금생에 몸과 마음을 다해서 갈고 닦은 대로 자기가 갈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자기가 갈고 닦은 그 파장 따라서 가버린다니까요. 지금도 스마트폰에 들은 게 전부 다 전파라고 그랬잖아요. 전부 파동으로 존재해요. 따라서 우리가 계속해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길이 열립니다. 그 길을 열어가는 사람을 해탈자라고 부르는데 불교의 해탈은 창의성이란 뜻과 통해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껍데기를 벗는다, 구각을 탈피한다는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전에 나와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파동을 맑게 해야 하는 이유는 맑으면 우선 병에 쉽게 걸리기 않기 때문입니다. 낙과 약이 통한다고 그랬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되면 부처님 나라의 파장과 연결된단 말이에요. 여기 법당에 많은 분이 앉아계시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어떻게 할까?’하는 모색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아, 이렇게 한번 해볼까?’하면서 성공의 결실을 맺기도 했을 테고 잘못 판단해 문제가 생기기도 했을 겁니다. 항상‘평상심시도’ 평상시에 꾸준히 내일, 남의 일 따로 없이 베푸는 마음, 사랑의 말, 이로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내게 돈이 많건 그렇지 않건 그 마음은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갈고 닦으면, 염파, 뇌파는 통하게 돼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천재적인 친구들은 전부 전생서부터 닦은 이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점지를 받는 거죠. 사랑은 노력하는 거, 기다리는 거, 인내하는 것입니다. 수행과 똑같아요. 끊임없이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인재는 선천적으로 타고납니다. 인재 측정 기준이 있는데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보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뛰어난 과학자나 아티스트들의 대분은 훌륭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에서 나온 인재를 측정하는 기준에 보면 rewarding, 이른바 그 인간이 매력적인가, ability,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willingness,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의지를 갖고 있는가, likability, 많은 사람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driving force, 그가 얼마나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위 내용을 기준으로‘아, 이 친구는 인재구나.’ 이렇게 판단하는 거예요. 개인도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업가는 항상 깨어 있어야 된다니까요. 기업의 수익을 내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를 보면 첫째로 공급자와 어떤 교분을 터야 되는가입니다. 두 번째로 소비자와의 교섭력, 소비자를 항상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세 번째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거죠. 잠재적인 경쟁자가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혁신합니다. 반면에 인간은 게으르거든요. 게으르지 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나</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말씀대로 진정한 행복은 마음 안에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했다, 그런 사람이 모두 행복합니까? 아니잖아요.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불행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을 연마하면서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때 지혜가 열립니다. 지혜는 나를 사랑과 자비의 세계로 이끄는 능력과 같습니다. 요즘 아무리 먹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병원에는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들에게는 모두 법약(法藥)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거든요. 사회심리학에 보면 문제가 전부 속도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먹는 것도 패스트푸드라고 해서 빨리 쉽게 먹는 걸 선호합니다. 음식을 빨리 먹게 되면 빨리 죽는 거예요. 뭐든지 빨리 빨리 하다 보면 사람은 충동적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조그만 일도 못 참습니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고 그러잖아요. 빨리 빨리에 휴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휴식(休息)이란 글자를 보세요. 사람 인(人) 변에 나무 목(木)자를 쓰잖아요. 자연에 가서 좀 배워라 이겁니다. 인간이 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래서 그런 겁니다. 식(息)은 스스로 자(自)에 마음 심(心)자를 씁니다. 휴식, 자연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호흡이 다운되거든요. 제가 여러분에게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이유도 염불을 하다 보면 1분에 18번 하던 호흡이 서너 번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느려지면 당장 심장부담이 덜해집니다. 염불 따라서 부처님을 머금게 되니까 심장이 편안히 쉴 수밖에요. 계속 도는 심장의 기능이 완만해집니다. 절도 절묘한 거예요. 참선도 기가 막힌 거구요. 부처님은 부처가 되는 방법을 그렇게 발명해내신 겁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자연과 하나 되고 끊임없이 수행해나감으로서 나란 존재는 많은 중생에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잖아요. 사랑과 하나가 되잖아요. 지혜와 하나가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방은 ‘아, 저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쉬게 돼’이렇게 되거든요. 일심(一心)이 맑아지면 다심(多心)이 맑아집니다. 내가 나를 사랑의 당체, 지혜의 당체로 승화시켜나가면,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건 분명한 이치에요. 그걸 아셔야 해요. 그런 사람을 하늘이 돕습니다. 나 자신이 선물이 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한없는 창조의 에너지를 갖습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대자연은 평생을 학습합니다. 대자연은 상황 따라 항상 깨어 있어요. 상황에 맞게 변하면서 진화돼가는 거예요. 새로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돌연변이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냅니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놀러온 게 아니에요. 내가 나를 던질 수 있는가가 과제입니다. 헌신은 도입니다. 희생은 자비의 길이에요. 내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가운데 마법과도 같은 효과가 일어납니다.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하면 무조건 매일매일 백팔배라도 해보세요. 그게 어려우면 한 오십배라도 좀 하세요. 잘못한 걸 그냥 놔두면 곪습니다. 염증이 생겨요. 몸과 마음의 질병이 되는 겁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가득할 땐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참회하는 마음 가운데 녹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랑하세요. 그래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살다보니까 이러저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지 않도록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존재입니다. 우선 내가 참회하는 가운데 내 자신에게 용서를 빌 수가 있어요. 부처님의 용서는 우선 놔두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주변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성불의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SPAN></P>2017-10-25 오후 2:49:30한 생각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었지만 깨닫고 보니 부처라네 /Media/law/Read.aspx?db_cnt=742&NOW_TITLE=nungin_01&NOW_PART=nungin_01_02&page=1<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left; MARGIN-RIGHT: 2pt" class=바탕글> <P style="TEXT-ALIGN: right"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1. 집(home)은 있지만 가족(family)는 없다는 게 사회적 현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세종대왕을 성군(聖君)으로 모시듯 인도인들은 아쇼카왕을 성군으로 모십니다. 아쇼카왕이 집권할 당시 지금의 인도를 만들었고 나아가 이란과 페르시아 쪽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쇼카왕 시기에 불교가 결집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리랑카,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심지어 유럽에까지 불교를 펼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오늘의 불교를 아쇼카의 불교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어느 날 아쇼카왕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난 뒤 시체가 썩어가는 현장을 보러 가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살생하다니…’ 아쇼카왕은 잦은 전쟁으로 많은 군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던 거예요. 그런데 참혹한 전쟁터에서 평화로운 얼굴을 한 스님들이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합니다. 왕은 그들을 불렀어요. “나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대들의 얼굴은 어째서 그리 평화로운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그러자 스님이 되묻습니다. “대왕폐하는 나라를 크게 만드셨는데 지금 행복하십니까?” 왕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스님은 아쇼카 왕에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어떤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숲속의 연못처럼 맑고 고요합니다. 천지의 진귀한 온갖 것들이 왔다 가도 마음은 여전히 고요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행복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그러자 아쇼카왕은 크게 느끼는 바 있어 스님들을 따라 불교 공부를 시작하고 마침내 호불왕(</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333333; FONT-SIZE: 9pt;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護佛王)</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mso-ascii-font-family: 굴림체">왕이 되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지금도 그를 추앙합니다. 인도의 중심지에 가면 아쇼카왕의 이름이 들어가는 상점이나 호텔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세종대학, 세종시가 있는 것과 같아요. 내가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되면 사랑의 큰 힘을 알게 됩니다. 혁명적 행동이 열립니다. 내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한없이 베풀 수 있는 공급자가 되는 것입니다. 돈으로만 베푸는 게 아니니까요. 공부를 하거나 수행을 해서도 상대방에게 얼마든지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수용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없이 공급하는 공급자이기 때문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면 남편에게, 아내에게 한없이 베풀 수 있어요. 주변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한없는 공급자입니다. 누구나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다고 그랬잖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는 크나큰 사랑의 힘을 알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마음을 베풀 수 있습니다. 좋은 말로 기도해줄 수도 있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급자의 자세를 가지려 하지 않아요. 공급자의 마음은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꼭 배워야 합니다. 요즘 신문에 보면 청소년 범죄가 많습니다. 상당히 엽기적이에요. 문제 부모 밑에 문제아가 나온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들조차 사회가, 국가가 보호해야 합니다. 모두 내 아들딸처럼 보살필 순 없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집(home)은 있지만 가족(family)는 없다는 게 사회적 현실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가장 안타까운 게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입니다.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남편이 된다고 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니까 그걸 배운 겁니다. 제가 아는 분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님,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것 같아요.”그래요. 요즘 보육원에는 탈북자 아이들이 들어오는데 그들은 싸움을 하다가 부엌에 가서 칼을 들고 나오는 게 일이래요. “너무 난폭하게 커서 참 큰일입니다.” 그러더라고요. 사회 전체가 서로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라도 공급자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사랑을 펼칠 수 있는 공급자, 보살의 마음을 펼쳐야 하는 존재입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2. 공급자의 자세</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지장경 이익존망품에 보면 생전에 미리 닦는 공덕은 본인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생전예수재는 미리 공급자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공급자의 자세를 확장하기 위해 왔습니다. 남에게 베풀고 펼치지 않으면 썩어요. 그게 질병이고 재앙이고 불행입니다. 요즘 새 정부 들어서고 나니 대기업이 나서서 중소기업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공급자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사섭법(四攝法)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공덕의 텃밭이 되는 수행방법입니다. ① 보시섭:진리를 가르쳐주고 재물을 기꺼이 베풀어주는 일, ② 애어섭: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하는 일, ③ 이행섭:몸으로 하는 행위, 말로 하는 행위, 마음으로 하는 행위, 즉 신(身)·구(口)·의(意) 3업으로 선행을 하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 ④ 동사섭:보살의 동체대비심에 근거를 둔 것으로 중생들에게 접근하여 함께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일, 이렇게요. 내 일 남의 일 따로 없는 사섭의 마음을 가지면 모든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남들이 잘 되길 기도해주세요. 부부간에도 일방적으로 공급한다 해도 다 받게 됩니다. 이 우주의 법칙이 그래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처님 경에 보면 내가 어떤 동물을 직접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문으로도 남을 살생하지 말라고 나옵니다. 이른바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거보다‘저 집 되나 봐라’, ‘저 사람 되나 봐라’ 하는 주문으로도 살생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스님, 주문으로 어떻게 살생합니까?”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중국의 암신이라고 하는 유명한 기공사가 있습니다. 그는 1g의 라듐이 0.5g으로 변해가는 데 1800년이 걸리는 반감기에 인간의 기는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고 합니다. 그가 라듐에다 사람의 기를 쏘였더니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양이 금새 축소되더라는 겁니다. 기는 방사능보다 훨씬 강하다는 게 조사결과에 나와 있다니까요.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양을 약화시키고 완화시키는 힘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옛날 우리 선조들도 ‘제웅’이라고 해서 짚새기로 사람을 만들어 심장부분에다 바늘을 꼭 찍어 나에게 피해를 준 집에다 던지곤 했습니다. 저도 실제로 그런 분들을 본 적이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누구나가 간접살인자들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되는 살인자라도 살인자는 살인자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고 하면 옛날에 ‘할미 손은 약손이야’하면서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면 아픈 배가 낫는다고 그랬잖아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기가 원자력에서 나오는 방사선보다 더 강하다는 겁니다. 즉 저주의 염파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때로는 미워합니다. 애증이 교차한다고 하지요. 이와 같이 우리 마음 가운데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미움은 부정적인 기운이에요. 관세음보살 보문품경에 보면 누가 나를 저주하고 독을 머금은 생각을 품는다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와 같은 저주의 염파는 연꽃이 되어 떨어진다고 합니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부부간에도 서로 사랑의 기운을 공급해야 돼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급자의 자세를 회복해야 됩니다. 수용자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 가운데는 퍼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바다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요즘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초연결사회라고 해서 수십억 인구가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여기다 부정적인 마음을 담아 전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의도를 가진다면 큰 일이 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1차 산업혁명이 오는 바람에 1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2차 대전이 왔어요. 3차 산업혁명은 IT혁명인데, 그 여파로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치닫고 있어요. 이러다 3차 대전이 오는 게 아닌가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뒤덮어도 욕망을 끊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남편이라면 매일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오는 게 그들의 일이구요, 아내라면 집에서 가족들을 잘 관리해서 기도하고 정진하는 게 그들의 일이잖아요. 옛말에‘여자 말 들으면 손해 볼 것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까 사실이래요. 결혼한 남자가 아내와 더불어 사랑 가운데 지내면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미혼인보다 훨씬 낮고, 대동맥류도 10프로, 뇌혈관질환도 10프로 정도 더 낮고, 말초동맥질환 발병률도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결혼한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A군과 B군으로 나눠 그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보니까 결혼한 사람들에게서는 발병률이 대략 15퍼센트 가량 떨어지더래요. 아내 말을 잘 듣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게 사실입니다.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조사한 걸 보면 결혼생활을 성실하게 임하는 부부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훨씬 낮게 나왔다고 합니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공감의 콘텐츠랄까, 협력, 배려,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해요. 만상은 부처님 말씀대로 끊임없이 변해가니까 우리도 거기에 보조를 맞춰가야 합니다.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지런해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 나이와 상관없이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부처님도 게으르지 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하셨듯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수행자의 모습을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불교는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을 거예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수행자들의 모습은 보기가 좋잖아요.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3. 깨달은 사람처럼 살면 된다</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항상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이뭣고’의 화두를 챙겨 나를 끊임없이 깨달아가는 작업을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물어요. “스님, 불교는 깨달음이 근본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우리는 여기서 꼭 생각할 게 있습니다. 육조단경에 보면‘네가 설령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깨달은 사람들이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깨달은 사람과 무슨 공덕의 차이가 있으랴’ 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행을 하라. 그러면 네가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말을 하라. 그러면 네가 부처님이다. 항상 부처님 생각을 하라. 그러면 네가 부처님이다’ 이랬어요.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깨달은 사람과 똑같이 살라는 겁니다. 깨달은 사람처럼 살면 깨달은 자의 공덕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깨닫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게 없다는 거예요. 내가 깨닫지 못했으니까 ‘아, 난 불교를 안 하겠다’ 이거 아녜요. 깨달은 자가 걸어간 길을 따라 나도 그렇게 걸어가면 됩니다. 깨달은 자의 말을 하고, 깨달은 자의 생각, 깨달은 자의 행동으로 살아가세요. 깨달은 자는 철저한 공급자입니다. 철저한 보살행의 화신이에요. 깨달은 자는 철저하게 무아거든요. 철저하게 자기를 비운 자입니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고 그랬잖아요.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합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어려서 교과서에서 배운‘큰 바위 얼굴’기억하시죠? 동구 밖 산중턱에 아주 숭고하게 생긴 얼굴이 하나 딱 새겨 있더라는 거 아녜요. 여섯 살 먹은 어니스트란 아이가 할아버지한테 물어봅니다. “저 큰 바위 얼굴은 누구세요?” 할아버지가 설명합니다. “그는 이 마을 출신의 훌륭한 사람인데 그 분이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단다. 근데 큰 바위 얼굴을 만나려면 정말 마음이 맑고 깨끗해야 해. 또 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기여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저 큰 바위얼굴을 만날 수 있는데 이 할아버지도 일생동안 그를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못 만났단다.” 합니다. 그러자 아이는“할아버지, 저는 열심히 노력해서 꼭 큰 바위 얼굴을 만날 거예요.”라고 다짐을 해요. 그 아이가 자라 20대가 되고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되었는데 큰 바위얼굴을 만나지 못합니다. 자기도 할아버지와 똑같은 나이가 된 거예요. ‘아, 나도 우리 할아버지처럼 큰 바위 얼굴을 못 만나고 죽는가보다’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던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났다!’ 그래서 동네사람들과 큰 바위 얼굴을 보러 나갔어요. 그런데 또 못보고 예전에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들판에 앉아 동네사람들과 망연히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 때 동네사람 하나가 황혼에 비친 그 큰 바위 얼굴과 어니스트의 얼굴이 똑같이 닮았다고 말해줍니다. ‘보라! 저 큰 바위 얼굴과 어니스트의 얼굴이 꼭 닮지 않았는가!’</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부처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고 깨달은 사람처럼 살면 됩니다. 그럼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거예요.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해도 인간의 근본으로 진리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랑의 공급자로 살 수 있는가, 그게 그 사람의 진가예요. 그런 사람이 이 땅에 온 근본적 목적에 충실한 자입니다. 깨달은 사람처럼 살아가세요.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다가도 불필요한 자료는 사라지잖아요. 불필요한 정보는 넣어둘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에서도‘내게 무엇이 불필요하다’하는 것들은 정리되듯이 두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자꾸만 깨달은 사람처럼 살면 깨달은 사람의 정보가 몸과 마음에 점점 쌓여갑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가 그 사람이 무엇을 망각하는지의 바로미터가 되는 거예요. 인간의 두뇌는 스마트폰과 똑같은 공간관리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쓰이지 않는 기억들은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됩니다. 따라서 공급자의 삶을 살아가면 그런 마음 가운데 아이디어가 백출합니다.</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4. 한 생각 깨닫고 보니 부처 </SPAN></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엊그제 신문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글이 실렸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전성기를 60세부터 75세까지였다고 그래요. ‘내가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니까 그런 즐거움의 기운이 나한테로 와서 수명이 늘어났나보다’ 라고 썼더라고요. 공급자로 살면 나의 수명도 늘어나는 겁니다. 그분은 인생을 확실히 아는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는 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깨달은 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공급자의 삶을 사는 거예요. 이제 100살이 다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해요. 80살까지는 본인이 직접 차를 운전했대요. 여러분도 오래 살려면 공급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수명 장수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에 대한 참된 이해는 지식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공급자의 마음으로 살면 사랑의 바다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사는 자들의 몸에는 사랑의 물질이 가득하니 오래 살 수밖에요.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수행정진하면 도파민이란 물질이 나오지만 더럭 화를 내면 발암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쏟아져 나옵니다. 근데 학자들이 연구하고 보니까 너무 희한한 게 우리 몸의 제일 좋은 물질과 제일 나쁜 물질의 분자코드가 거의 똑같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코드가 변조 되어 가장 좋은 물질이 독성물질로 변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아드레날린을‘메틸옥시도파민’이라고 부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공급자와 수용자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기심이라는 장벽만 부수면 됩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는 한 수입니다.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 lang=EN-US>육조단경에 전념미즉중생 후념오즉불(前念迷卽衆生 後念悟卽佛)이라, 한 생각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었지만 깨닫고 보니 부처라네, 이랬거든요. 일념미즉중생 일념오즉불(一念迷卽衆生 一念悟卽佛)이라, 한 생각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었는데 한 생각 깨닫고 보니 부처입니다. 연습이 대가를 만듭니다. 깨닫지 못했다고 절대로 실망하지 하지 마세요. 깨달은 사람처럼 살다보면 분명히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공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남에게 돈을 주라는 게 아니에요. 떡을 주고 빵을 주라는 게 아니에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라도 상대방을 위한 축복의 말과 축복의 기도를 해줘야 합니다. 최고의 건강 비결은 하나의 작은 행동으로 상대방을 도울 수 있는 공급자의 삶입니다. </SPAN></P>2017-10-18 오후 3:54:43